(제 5 회)

제 1 편

(3)

(2)

 

벼슬길을 바라서 애써 학식을 닦은 설경성이 마음을 돌려야 했던것은 어머니때문이였다.

설경성은 국자감을 마친 그날 어머니에게서 초달을 받던 그때를 돌이켜보았다.

《래일부터는 오로지 의술을 닦는 일에 전심해야겠다.》하고 어머니가 말했을 때 설경성은 억이 막혀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이때껏 모든 학문을 알아야 한다며 불교의 경전까지 얻어다주던 어머니가 리해되지 않았다.

그때문에 볼멘 소리를 하였다.

《의업은 잡직으로서 천한것이고 의술로는 큰 공을 세울수 없소이다. 제가 닦은 학식이면 과거급제는 물론 벼슬길에서도 막힘이 없으니 얼마든지 가문을 빛내이고 나아가서는 국력을 떨치는데 기여할수 있소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엄하기 그지없었다.

《난 네 아버지앞에서 널 훌륭한 의원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넌 의술을 하치않게 보는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의원은 풍랑을 만난 배를 구원하는 사공과 같으니라. 이 말은 네 아버지와 조부님의 말이다.

나라는 많은 사람이 뭉칠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사람을 개개별로 따져보면 병이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병자는 풍랑을 만난 배와도 같다. 풍랑을 만난 배가 아무리 많다 한들 산을 떠실을수가 있느냐? 난 너에게 앞선 의술을 배워도 주고 보다는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주기 위해 국자감을 다니게 한거다. 세상을 바로 볼줄 알아야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수 있고 명의로도 될수 있다.》

하지만 설경성은 어머니의 말을 따를수 없었다.

외란때문에 단명하신 아버지는 그렇다치고 한생 의업을 놓지 않은 할아버지는 무엇을 남기였던가.

의서를 써내지도, 후세에 명의라는 부름도 남기질 못했다.

《넌 마음만 먹으면 능히 아버지의 뜻을 빛내일수 있다.》

설경성의 귀에는 어머니의 말이 더는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생각은 하나 벼슬길에서 공신이 될 그뿐이였다.

이때문에 어머니는 여러날이나 속을 썩이였다.

그러나 끝내는 의서 《제중립효방》을 내놓은 김영석이라는 의원의 생을 거들어 아들의 마음을 돌리였다.

김영석은 근 이백년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문하시중(수상격)의 최고관직을 지닌 사람의 아들로 태여난 김영석은 어려서부터 학업에 열중하였다.

깊은 학식을 가지고 오랜 기간 벼슬길에서 바른 정사를 힘썼기에 그는 시중 다음가는 중서시랑평장사로 되였다.

하지만 그는 퇴임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그 좋은 벼슬을 내놓고 집에 들어와 의서를 집필하였다.

《그때 김영석어른이 그냥 벼슬길에 있었더라면 시중이 되였을게다.

그런데도 집에 들어와 왜 의서를 써냈는지 그걸 모르겠느냐?

오랜 세월 벼슬길에서 그 어른이 깨달은것은 부국강병은 바른 정사와 더불어 사람들의 육체가 건전해야 이루어질수 있다는 그것이였다.

사람이 육체에 병이 들면 정신도 허약해져서 제구실을 할수가 없게 된다.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가지고서야 어떻게 부국강병을 이룰수 있단 말이냐? 하기에 김영석어른은 젊어서부터 터득한 의술의 비방들을 모아 의서를 내놓았다. 의서를 써낸다는것이 어디 헐한 일이냐. 한생 의술을 생업으로 해온 사람들도 얇은 의서조차 내놓기 힘들어하는데… 하지만 그 어른은 13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하루와 같이 애써 끝내는 의서를 내놓았다. 그 어른이 내놓은 의서는 우리 고려의 풍토와 고려사람의 체질, 우리의 실정에 맞게 썼기때문에 훌륭한것이다.

사람들의 육체가 건전해야 나라도 강해질수 있다는것을 절감했기에 너의 조상들도 의업에 나섰던게다.

너는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고 해서 나라앞에 해놓은 일이 없다고 여기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못쓴다.

바로 너의 선친들과 같은 의원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람들이 건강한 육체를 보존할수 있었고 몽골침략군도 쳐부시고 나라를 지켜낼수 있은게다.

공을 이루기도 전에 제 이름부터 낼 생각을 하는 사람은 큰일을 할수 없다.

난 네가 김영석어른을 돌이켜보면서 스스로 의업에 나서리라 믿는다.

너에겐 훌륭한 의원이 될수 있는 바탕이, 바로 백성을 아끼고 위해주려는 착한 마음이 있다.

난 네가 열다섯살나던 해 전상자들을 도맡아 돌봐준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하겠구나.》

그 말에 설경성의 눈굽이 축축해졌다.

설경성은 열다섯살때 벌써 웬만한 의원만큼 의술을 가지고있었다.

그해 전장에 나가 군공을 세운 전상자들이 마차에 실려왔다.

설경성의 마을에도 그런 전상자가 여러명이나 돌아왔다.

전상자가 늘어나니 의원들의 손길이 미처 따라서지 못하였다.

이 사실을 안 설경성은 스스로 이웃마을의 전상자들까지 맡아가지고 날마다 찾아다니며 치료했다.

만일 그때 설경성의 가슴에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없었다면 스스로 그 일을 맡아하지 못했을것이였다.

《훌륭한 자식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고 하였다. 자식이라면 응당 훌륭한 선친들이 못다한 일을 끝장을 볼 때까지 이어야 하는게다.

옛말에도 훌륭한 뜻은 따를지언정 줴버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만에야 설경성은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다.

《어머니, 제가 잘못 생각하였소이다. 선친들의 뒤를 잇겠소이다.》

설경성은 그 사연을 입에 올리였다.

그 말에 리승휴도 눈굽이 축축해졌다.

설경성을 어떻게 해야 지름길로 떠밀가 하고 많은 생각을 해가지고온 리승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거처지로 가세, 내 한턱 내려네.》

리승휴와 함께 설경성이 방을 나서니 뜨락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리가 보꾸레미를 안고있었다.

헤아리는 눈이 밝은 리승휴는 나리와 설경성의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엿보았다. 그래서 얼른 그 자리를 피해 먼저 대문을 나섰다.

다들 어데로 갔는지 뜨락에는 설경성과 나리뿐이였다.

《나리!》

설경성의 정찬 소리에 나리의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속에 옷이 있사오이다. 뜻을 이루시고… 돌아오소서.》

설경성도 눈물이 글썽하여 나리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내 어디에 가있든 그대를 잊지 않겠소. 나를 기다려주오.》

설경성은 눈물속에 웃는 나리의 눈빛에서 그가 반드시 자기를 잊지 않으리라는것을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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