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편

(1)

(2)

 

두사람은 부지런히 걸음을 다그쳤다.

푸른 물이 늠실거리는 대동강을 끼고 그들의 눈에 안겨오는것은 멋진 락락장송으로 단장한 영명산(모란봉)이였다.

부벽루는 대동강물이 처절썩 굽이치는 강가둔덕에 자리잡고있었다.

홍자번과 앞서거니뒤서거니 다투면서 마침내 부벽루에 이른 설경성의 입에서 《야!-》하는 환성이 터져나왔다.

책을 통해 부벽루에서의 경치구경이 희한하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신비경일줄은 몰랐었다.

경치도 경치이지만 기이한 일화들도 수없이 깃들어있는 부벽루였다.

선조의 나라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오기 전에 세웠다는 절이 이 산에 있는 영명사이고 그때는 부벽루를 영명사의 루정이라는 의미에서 영명루라고 하였다는것이다.

영명루가 제모습을 드러낸 그날부터 이곳으로는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와 천하제일의 경치를 한눈에 볼수 있는 명당이라고 찬탄해왔다.

그 영명루가 고려에 와서 부벽루로 이름을 달리했으니 그 부름속에는 거울같이 맑고 푸르른 강물이 감도는 청류벽우에 두둥실 떠있다는 뜻이 어려있었다.

홍자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이번까지 부벽루가 세번째일세. 여기에 올 때마다 시를 채 짓지 못한채 붓을 내던지고는 자기의 시재가 부족함을 통곡한 김황원이 생각나네.》

백수십년전사람인 김황원은 그 당시 고려제일의 문장가로 일러주던 뛰여난 문인이였다.

부벽루에 깃든 김황원의 일화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강산을 둘러보던 설경성은 입속으로 시 한수를 읊조렸다.

 

강줄기들 모여서 큰 강을 이루어

네 이름 대동강이라 하였는가

 

설경성이 읊은 시는 몇해전 세상을 떠난 최자가 지은 《대동강의 노래》였다.

의술이 전업인 설경성이 시인인듯 좔좔 시를 외울수 있은것은 《대동강의 노래》를 지은 최자가 홍자번이 못지 않게 가까이 지내는 최유엄의 아버지이기때문이였다.

설경성의 이웃마을에서 태여난 최유엄은 그보다 두살아래로서 대바르고 향학열이 높았다.

그에 마음이 끌린 설경성은 국자감시절에 후배였던 최유엄의 친구가 되였다.

몇해전 국자감을 마치자 과거에 급제한 최유엄은 지금 모든 관리들의 언행을 살피는 어사대에서 말직벼슬을 맡고있었다.

홍자번이 강물을 가리켰다.

《서경을 찾는 문인이라면 마땅히 정지상의 이런 시도 떠올려야 할거네.》

 

그 누가 하얀 붓을 가지고

새 을(乙)자를 강물우에 그렸을가

 

설경성도 그 시가 백수십년전 다섯살때의 정지상이 류두날에 대동강물우에 떠있는 어떤 흰새를 가리키며 그 새를 형상한 글을 지으라는 서경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읊은 시임을 모르지 않았다.

겨우 다섯살짜리가 하얀 붓은 흰새이고 그 흰새가 두발을 물속에 잠그고 떠있는 형상을 새 을자로 그려냈으니 천하에 그런 신동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지상을 그려보던 설경성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나도 다섯살에 글도 쓰고 책도 읽을줄 알았지만 정지상은 스무살에 고려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건만 서른살을 가까이한 난 아직 명의가 되지 못했으니

이런 생각에 설경성은 여러 사람들이 제곁에 와있는줄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도 눈앞에 펼쳐진 절승경개에 혀를 차는데 문득 《여기에 의원이 없나이까?》하는 어떤 녀인의 웨침이 부벽루를 울리였다.

그제서야 설경성이 제곁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의원을 찾는다누만.》하고 술렁이는 사람들속에서 설경성은 애원의 눈길로 두리번거리는 애젊은 처녀가 웨침소리의 임자임을 알아보았다.

설경성이 처녀의 앞으로 나섰다.

《내가 의술을 좀 아는데 왜 그러오?》

처녀는 부끄러움도 잊고 설경성의 팔에 매여달렸다.

《어서… 어서 가시오이다.》

설경성은 무작정 잡아끄는 처녀에게 이끌려갔다.

홍자번도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처녀를 바라보며 설경성의 뒤를 따랐다.

영명사의 본전을 에돈 처녀는 아름드리 버드나무아래에서 멈춰섰다.

바로 그 나무아래에서 코흘리개 총각애가 배를 싸쥐고 울고있었다.

처녀가 그 애를 가리켰다.

《경치구경을 나온 제 동생이온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것이오이다.》

설경성은 첫눈에 그 애가 음식을 먹고 체했다는것을 알아보았다.

먹은게 체한 병자는 누구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배를 싸쥐기마련이였다.

침통조차 가지고 나오지 못했지만 이런 병쯤은 맨손으로도 다스릴수 있었다.

총각애의 팔을 잡은 설경성은 량손의 합곡혈에 이어 량다리의 족삼리혈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설경성이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총각애는 자지러진 비명을 질렀다.

총각애를 눕힌 설경성은 명치에서부터 배꼽까지 손바닥으로 거듭거듭 주물렀다.

그다음 중완혈과 같이 체기를 다스리는 배의 침혈들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총각애는 연방 새된 비명을 질렀다.

드디여 총각애의 얼굴에서 피기가 돌았다.

《그래 이젠 좀 어떠냐?》

설경성의 물음에 총각애가 방긋 웃어보였다.

《이젠 아픈줄 모르겠소이다.》

그 말에 울상이던 처녀도 방긋 웃었다.

《허지만 아직은 조금만 참아라.》

총각애를 엎디게 한 설경성은 두손으로 그 애의 엉치로부터 허리에 있는 여러 침혈들을 눌렀다.

이윽고 손을 털며 일어선 설경성은 웃으며 말했다.

《이젠 일없을게다. 점심엔 죽을 먹고 저녁부터는 밥을 먹어도 되겠다. 그러되 배가 고풀사 하게 먹어라, 알겠느냐?》

설경성을 따라 일어선 총각애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알겠소이다.》

《그럼 가봐라.》하고 설경성이 돌아서는데 총각이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의원님, 다시 배가 아프면 어떡하나이까? 예서 우리 집이 멀지 않으니 함께 가시오이다.》

총각의 간청이 하도 절절하여 설경성은 딱해하는 눈길로 홍자번을 바라보았다.

홍자번이 벌씬 웃었다.

《허- 그녀석이 똑똑한데. 제 병을 고쳐주었다고 인사치레를 하자는것 같애. 시간은 넉넉하니 마음놓고 가보라구. 그럼 난 처소에서 기다리겠네.》

홍자번이 제먼저 사라지는 바람에 설경성은 총각애의 청을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네 말대로 하자꾸나.》하고 대꾸를 한 설경성은 총각애의 손을 잡은 처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던 설경성은 제 눈을 의심했다.

방금전까지는 처녀를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선녀처럼 어여쁜 처녀가 총각애의 손을 잡고있는것이였다.

푸른 치마저고리를 입은 처녀의 허리에 드리운 까만 머리태에는 빨간 댕기가 늘여져있었다.

이렇듯 고운 처녀는 처음인것 같았다.

늘씬한 몸매가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잘 어울렸다.

설경성은 넋잃은 사람처럼 처녀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닭알모양의 얼굴은 해말갛고 버들잎같은 눈섭, 쌍까풀진 반달눈, 오똑한 마늘모양의 코, 작은 입, 어느것이나 고와보였다.

서경에 미인이 많다더니…

설경성의 가슴이 후두둑 높뛰였다.

이런게 연분이 아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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