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17

 

저녁이 되여 선희는 콩나물이 가득 담긴 두개의 커다란 비닐구럭을 들고 중대로 향하였다. 어둑어둑한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발목까지 잠기는 미끄러운 눈길에서 몇번이고 넘어질번 했으나 식사전까지 콩나물반찬을 해줄 생각으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며칠후면 설날이다. 그 설을 앞두고 선희의 생각은 많았다. 어떻게 하면 병사들의 식탁우에 찬 한가지라도 더 놓아줄수 있을가? … 이미 가을철에 김치를 담글 때 병사들용으로 설날에 터칠것을 계획하고 특별히 양념을 잘하여 한독 더 장만하였다. 그러나 장군님의 축복을 받고 가정을 이룬 군관의 안해로서 어찌 그것만으로야 자기 할 일을 다했다 하랴. 그 생각이 콩나물을 기를것을 결심하게 하였다. 콩나물이 어찌나 잘되였는지 광주리마다 차고넘칠 지경이였다. 그래서 설날은 설날이고 얼마간 솎아가지고 중대로 가고있는것이였다.

중대병영에 이르러 식당을 향해 교양실앞을 지나던 선희는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군인들이 모여앉아 무슨 힘찬 노래를 부르고있는데 그앞에서 열심히 손을 젓고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던것이다. 그는 누가 보지 않나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조심히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지인선이가 군인들에게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래일 이 노래를 가지고 련대적인 대렬합창판정이 있습니다. 그런것만큼 행진곡조로 씩씩하고도 힘차게 불러야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

병사들의 우렁찬 노래소리가 창문을 드렁드렁 울렸다.

 

백두밀림 헤쳐온 항일의 준엄한 나날에

사령부를 보위해 한목숨 바쳐온 7련대

 

선희는 이윽토록 지인선을 지켜보았다. 제법 두손을 흔들다가 때로는 한손을 흔드는 거동이 그럴듯했던것이다. 노래의 세계에 잠기듯 두눈을 감고있다가 번쩍 뜨는 남편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고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누구얏!》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마나…》

선희는 흠칫 창문가에서 물러서며 소리나는쪽을 돌아보았다. 병실밖 직일탁앞에 직일병이 히죽이 웃으며 서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자기행동을 다 보고있은 모양이다.

선희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눈을 곱게 할기며 우정 아부재기를 쳤다.

《간 떨어질번 했어요.》

직일병이 다가와서 콩나물구럭을 들어다주게 하겠다는것을 급히 만류하고 서둘러 식당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뽀얀 김이 서린 취사장안에서 식당근무를 서고있던 남용일이 반갑게 선희를 맞이했다. 몸이 약한것으로 하여 용일은 그들부부의 남다른 관심속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용일은 선희를 친누나처럼 따른다.

선희가 커다란 버치에 콩나물을 꺼내놓자 용일은 대번에 환성을 올렸다.

《야, 콩나물! …》

《용일동무도 콩나물국을 좋아해요?》

《좋아하지 않구요. 하지만 래일모레가 설인데 그때 가져왔으면 더 좋았을걸!》

《설날에는 온 중대가 푸짐히 들고도 남을 콩나물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

용일은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며 버치앞에 다가앉았다.

선희는 용일이와 마주앉아 콩나물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병사가 유명한 설계가의 가정에서 태여났다던 언젠가 한 남편의 말이 생각나서 한마디 물었다.

《집에서 소식이 오는가요?》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아들인 내가 더 큰 행운을 받아안았다는겁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녔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까지 합쳐 안변청년발전소건설을 기어이 앞당겨 완공하는데 앞장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더러 하루빨리 무쇠같은 장수힘을 키워 일당백의 병사로 준비하라구 거듭 당부하였습니다. 정말 언제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그 사랑과 믿음에 보답할수 있겠는지…》

《용일동무 말을 듣고보니 꼭 그런 훌륭한 병사로 준비되리라 믿어져요.》

《제가요?》

용일의 두눈이 반짝 빛났다.

선희는 밝게 웃었다.

《처음엔 몸이 너무 약해보여 미타한 생각이 들었댔는데 이젠 생각이 아예 달라졌어요. 호호!》

용일은 나무람을 타지 않고 선희를 따라 활짝 웃었다.

선희와 용일은 부리나케 콩나물을 손질하였다. 집에서 양념감까지 가져왔는지라 찬을 다 만들어 접시에 담아놓으니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밖에서 대렬합창을 부르며 식당으로 오는 군인들의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백두밀림 헤쳐온 항일의 준엄한 나날에

사령부를 보위해 한목숨 바쳐온 7련대

 

선희는 기쁜 마음으로 취사장을 나섰다.

밤하늘에서는 여전히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고있었다.

뽀득뽀득 기분좋게 울려오는 눈밟는 소리는 선희로 하여금 동심에 사로잡히게 했다. 지금쯤이면 남편이 집으로 올 때라는 생각에 선희는 사택으로 가는 오솔길목에 가지를 드리운 우중충한 소나무밑에 우뚝 멈춰섰다. 한껏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는 마치 우산마냥 내리는 눈을 긋게 해주었다.

아닐세라 귀에 익은 남편의 발자국소리가 인차 울려왔다. 불쑥 장난기가 솟구쳐오른 선희는 나무뒤에 얼른 숨었다. 그리고는 온몸에 힘을 모았다. 남편이 허겁지겁 밑을 지나는 순간 선희는 터지는 웃음을 참아내며 힘껏 나무중간을 뒤흔들었다.

눈꽃은 와르르 쏟아져내리고 선희의 웃음꽃은 까르르 솟구쳐오르고… 안해의 소행을 알아챈 지인선은 우정 옆구리에 손을 척 얹고 소나무우듬지를 향하여 얼굴을 쳐든다. 그는 삽시에 눈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선희는 즐거운 기분으로 남편앞에 나섰다.

《글쎄, 벌써 갔을리가 없지. 금방 식당에서 떠났다기에 부랴부랴 따라섰는데 어디 그림자라도 보이더라구?》

남편도 자기와 함께 걷고싶어했다는 사실이 선희를 무등 기쁘게 했다. 그런 조그마한 기쁨이 대담하게 남편의 팔을 척 끼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다른 가정들에서처럼 《여보, 당신》이란 부름도 무척 어색하여 입에 올리지 못하는 남편인지라 어딘가 어색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하면서도 그닥 싫지는 않은지 자기에게 몸을 의지한 선희의 허리를 꼭 그러안는다. 숫눈길우에 행복한 부부의 발자국이 두줄기로 나란히 찍히기 시작했다.

《내 기쁜 소식을 전해주지. 아마 동문 깜짝 놀랄거요.》

문뜩 터놓는 남편의 말에 선희는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

《기쁜 소식? …》

《집에 가서 이야기해주겠소.》

선희는 오똑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말해주어요!》

《집에 가서 말해주겠다는데두. …》

《깜짝 놀랄 기쁜 소식이라면서… 난 더 못 참겠어요.》

《허 참…》

인선은 할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선희의 허리를 더 힘껏 그러안았다.

장군님께서 동무 아버지와 오빠를 접견해주시였소!》

《예?! …》

선희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정녕 믿어지지 않아 재우쳐물었다.

《어떻게 되여 동시에 장군님의 접견을 받을수 있었단 말이예요?》

지인선은 주춤거렸다.

《그걸 다 전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겠는데… 그래서 집에 가서 말해주겠다는게 아니요!》

선희는 더 고집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이 자리에서 들어야겠어요. 한초가 급해요!》

지인선은 나직이 웃고나서 심중히 물었다.

《동문 언젠가 만수대예술단 단장동지가 집에 찾아온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지?》

선희는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끄덕이였다.

《있었어요. 우리 두 오빠가 집에 들린 그날에 아버지는 무슨 작품토의를 한다면서 단장동지를 데리고 왔댔어요.》

《바로 그거요! …》

어지간히 흥분된 지인선은 떠듬떠듬 말을 곱씹으며 조무진련대장이 들려준 가슴뜨거운 사연을 선희에게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그러니 아까 교양실에서 부르던 노래가… 어쩐지 노래가 별로 친숙하게 들려온다 했어요.》

선희는 눈물이 그렁해서 남편의 팔을 꼭 끼였다.

《지금 이 노래를 온 중대가 아니, 온 련대가 아니, 전군이 부르고있소. 〈오늘도 7련대는 우리앞에 있어라〉! …

선희, 이젠 다 알겠지?》

《! …》

선희에게는 모든것이 꿈만 같이 생각되였다. 잊지 못할 그 저녁이 다시금 떠올랐다. 심각하면서 절절하던 아버지의 목소리, 굳은 각오에 넘쳐있던 윤범오빠와 무진오빠의 붉게 상기된 얼굴모습, 그 분위기에 공감된 단장의 열정적인 목소리…

지인선의 재촉하는듯 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선희, 왜 말이 없소?》

선희는 그제야 펄쩍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너무도 기쁘고 자랑스러워서! …

인선동지, 우리 가정에 얼마나 큰 영광이 차례졌어요?

나에게도 그 노래를 배워줘요.》

지인선은 벙긋 덧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배워야지. 군관의 안해라면 응당 군가에 발을 맞추어야 하니까. 더우기 우리 장군님께서 군관의 안해는 최고사령부 작식대원이라는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시지 않았소.》

선희는 남편의 팔을 잡고 어리광스럽게 흔들었다.

《이젠 집으로 가자요. 이러다 길가에서 밤을 새겠어요!》

집에 들어선 선희는 급히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음식이래야 특별한것이 없었다. 잡곡밥, 무우국, 김치, 무우오가리…

밥상을 마주한 인선은 웬일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흰쌀이 많이 섞인 자기의 밥그릇과 잡곡이 많이 섞인 선희의 밥그릇을 갈마보다가 다짜고짜로 일렀다.

《선희, 거 쟁개비같은거 좀 가져오오.》

《아니, 왜요?》

《글쎄, 가져오라는데두! …》

거의 성을 내다싶이하는 인선의 요구에 선희는 영문을 모르고 부엌에 나가 법랑쟁개비를 가지고 들어왔다.

인선은 그 쟁개비에 선희가 미처 어쩔사이 없이 두 밥그릇을 모두 엎었다. 골고루 숟가락으로 섞어놓고는 만족한듯 싱긋 웃었다.

《한집안에서 딴가마밥을 먹어서야 안되지.》

선희는 그만 어이없어 웃었다.

《이건 한가마밥인데…》

《한가마안에서도 계선이 있으면 딴가마밥이지!》

선희는 그만 눈굽이 핑 젖어듦을 어쩔수 없었다. 여러 기회에 보아왔지만 늘 병사들과 어울려 훈련장에서 뛰여다니고 진지작업장에 나가있는 남편이였다. 그런 육체적부담을 겪고있는 그에게 찬 한가지라도 더 해주고싶지만 이 외진 전연초소마을에서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흰쌀 한알이라도 더 가게 해주려고 하는데 인선은 그것조차 도무지 허용하려고 하지 않는것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는데 인선이가 급하게 불러댔다.

《선희, 빨리 들어오라구, 빨리! …》

선희는 서둘러 설겆이를 끝냈다.

그리고 재빨리 손을 마른 수건에 닦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텔레비죤화면에서 바로 그 노래가 나오고있었다.

 

내 나라 내 조국 부강을 지켜가며

오늘도 7련대 우리앞에 있어라

 

아쉽게도 선희는 노래의 마감절 몇소절만 듣고말았다.

인선은 미안한 눈길로 선희를 돌아보았다.

《에참, 텔레비죤을 미리 켜놓는건데… 하지만 또 나올거요. 오늘 방송에서도 몇차례씩이나 이 노래가 반복되여 나왔으니까.

이미 〈로동신문〉에도 노래가 편집되였소. 그렇게 이 노래가 중시되고있소.》

《그래요?! 그럼 인선동지…》

선희는 인선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이젠 부탁한대로 노래를 배워줘요.》

《아참, 그렇지! …》

인선은 급히 야전가방에서 한장의 신문을 꺼내들었다. 노래가 실린 신문을 선희의 무릎우에 펼쳐주며 음, 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노래를 따라부르던 선희는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남편의 손을 보자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아까 교양실에서 손을 흔들면서 두눈을 감기도 하고 번쩍 뜨기도 하던 남편의 그럴듯한 거동이 생각났던것이다.

《아니, 왜 그러오?》

선희는 그만에야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교양실에서 노래를 지휘하던 인선동지 모습이 생각나서 그래요. 얼마나 엄숙하고 감정적이던지, 정말 전문지휘자같던데요!》

인선은 얼굴이 벌겋게 되여 허허 웃었다.

《그 수준은 못되지만 중대계선에서는 그래도 한다하는 축이요.

중대예술공연판정에서 우린 언제나 1등을 양보한적은 없었소.

이건 정말이요!》

선희는 기뻐했다.

《나도 한번 봤으면! …》

《힘들거야 없지. 설을 맞으며 준비하는데 꼭 와서 보오. 그런데 공연을 본 값으로 꼭 한곡 불러야 한다는걸 잊지 마오.》

선희는 제꺽 응했다.

《절 어떻게 보구… 저도 한땐 군인…》

선희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놀란듯 손을 자기 배부위로 가져갔다.

무엇인가 배속에서 꿈틀거리며 요동을 쓰고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오?》

《아니, 괜찮아요. …》

선희는 슬며시 인선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였다. 살풋이 두눈을 감고있는 그의 얼굴에는 끝없는 행복이 어려있었다.

모든것을 알아차린 지인선의 얼굴도 기쁨과 숫저움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선희! 내 동무를 첨 만났을 땐 시든 꽃다발밖에 안겨주지 못했지.

하지만 동무가… 엄마로 되는 그날엔 이 세상 제일 크고 제일 멋있는 꽃다발을 꼭 안겨줄테요!》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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