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9

 

련대지휘부에서 휴가명령서를 받은 분대장 신금성은 그 다음날에야 렬차를 타러 역으로 나가게 되였다. 부대직일관이 경무부에 알아본 결과 렬차출발시간이 늦어졌던것이다.

일은 그렇게 되였어도 때마침 역을 거쳐 군단지휘부로 돌아가는 군단부참모장을 지휘부앞에서 만나 승용차신세를 질수 있었다.

승용차에는 또 한명이 올랐는데 그는 다름아닌 학생선발을 나왔다던 금성제1고등중학교 교원이였다.

녀교원을 바래러 지휘부앞마당까지 나온 정치위원의 안해는 금성을 다시 만나자 무척 반기였다. 간리역에서 강계까지 가는 렬차를 갈아타게 되였다는것을 알고는 그곳까지 녀교원의 편의를 잘 돌봐줄것을 신신부탁하였다.

달리는 승용차안에서 부참모장 안강조는 신금성에게 물었다.

《입대해서 첫 휴가이겠지?》

《그렇습니다.》

《어제 동무네 중대에 들려 다 들었소. 앓는 어머니가 녀동생을 데리고있다니 가정형편이 어렵겠구만.》

신금성은 묵묵부답이였다. 일이 별나게 되여 두달전의 어느날 군단정치위원에게 가정형편이 알려지고 오늘은 군단부참모장까지 이렇게 관심해주고있다. 마치 군단적인 동정의 대상이 된듯싶었다.

부참모장이 자기 말을 계속했다.

《후방의 현실은 심각해. 어머니가 자기 병을 두고 맥을 놓을수 있는데 처신을 잘하오. 약절반 마음절반이라고 하던데 동무까지 맥을 놓아서는 안되지. 동무네는 아직 다 몰라. 어떤 믿음속에서 이번 정기휴가가 시작되였는지.…》

신금성은 역앞에 이르러 녀교원과 함께 부참모장의 차에서 내렸다.

렬차가 연착된때문인지 역안은 몹시 붐비였다.

금성은 정치위원 안해의 부탁도 있고 하여 제스스로 일반차표매표구로 가서 녀교원의 차표를 끊었다. 그리고 번잡한 렬차에 올라 빈의자를 겨우 찾아 자리를 같이했다. 그런 경황에서도 리해되지 않는것이 있었다. 어제 정치위원네 집으로 함께 가던 때와 달리 녀교원의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짙게 어려있었던것이다. 어디 아픈가, 아니면 선발대상이 기대에 어긋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 한들 저렇게 락심해할거야 없지 않은가?

렬차가 얼마간 달렸을 때였다.

녀교원은 자기의 얼굴표정이 동행자에게 실례로 된다고 생각하였는지 짐짓 기분을 달리했다.

《녀동생이 몇살인가요?》

《9살입니다.》

《오빠를 만나면 무척 반가와하겠구만요.》

금성은 쓸쓸히 웃었다. 어머니가 앓는다고 눈물방울로 얼룩진 편지를 보내온 녀동생 금주였던것이다. 부참모장도 예고해주었지만 앓는 어머니를 어떻게 위로해주어야 하겠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녀교원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마세요. 옆에서들 다 도와주겠지요.

참, 어머니는 앓기 전에 직장생활을 하셨는가요?》

금성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예, 정밀가공반을 다루었습니다.》

《정밀가공반이라면 대단한 기술자겠는데…》

《처녀때 일반선반을 다루다가 공장대학을 나온 후 정밀가공반을 맡아보게 되였습니다.》

금성은 그때까지 자기가 배낭을 당반우에 올려놓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에서 거들어주던 녀교원은 배낭아구리우로 번들번들하고 누런 《번대머리》가 불쑥 솟구치는 바람에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금성이 슬쩍 손끝으로 튕기자 《번대머리》가 요술을 하듯 배낭속으로 쑥 사라졌다. 아구리를 바싹 조인 팽팽한 배낭을 당반우에 올려놓고나서 금성은 면구스러운 어조로 말하였다.

《이건 금자라라는겁니다. 중대장동지가 기어이 가지고 가라기에…》

녀교원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자라요?…》

《예, 피와 살은 고혈압, 간염을 치료하는 고려약재로 리용하는데 몸보신에 특효랍니다. 몸색갈도 금과 비슷해서 금자라로 부르고있지요.

중대장동지가 이것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다섯마리인데 굉장히 큰 놈들입니다. 이걸 잡느라고 중대장동지가 손가락을 물리우기까지 했는걸요.》

《손가락까지요?》

《예, 너무도 큰 놈이 걸린 기쁨에 주의를 못 돌렸지요. 하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중대장동진 정말 좋은 지휘관입니다.》

웬일인지 녀교원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을뿐이였다.

렬차는 그 다음날 새벽에야 간리역에 도착하였다.

녀교원은 금성을 바래러 역홈에까지 따라내려왔다. 뜻밖에도 그의 손에는 보기에도 깜찍한 빨간 접이식손거울이 쥐여져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군요. 오래간만에 만나는 녀동생이겠는데 오빠의 기념품이 될수 있겠는지…》

《아니, 이건…》

금성이가 사양하자 녀교원은 굳이 손거울을 손에 쥐여주고는 렬차에 다시 올랐다.

그날 저녁, 신금성은 강계역에 도착하였다.

고향도시는 변함이 없는듯싶었다. 역앞의 국수집도 백화점도 그전 그대로이고 오가는 사람들도 다를바 없었다. 다만 고층살림집 창문마다에서 흘러나오던 밝은 전등불대신 불그레한 등불이 얼른거려 거리가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뿐이였다.

금성은 묵직한 배낭을 멘채 장자강옆에 자리잡은 자기 집을 찾아 수걱수걱 걸음을 옮겼다. 병석에 누워계실 어머니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지금쯤 동생 금주는 무엇을 하고있을가?

별안간 등뒤에서 들려오는 녀인들의 요란한 웃음소리에 금성은 고개를 돌렸다.

기발을 든 한무리의 녀인들이 웃고 떠들며 오고있었다.

금성은 도로 한옆으로 걸음을 옮기다말고 때마침 마주오는 자동차불빛에 비쳐진 기발의 글자를 알아보았다. 녀맹돌격대였다. 그러나 자기옆을 지나는 녀인들한테서 물씬 풍겨오는 진한 분냄새에 그만 얼굴을 찡그렸다. 어쩐지 돌격대와 분냄새가 어울리지 않는것처럼 느껴졌던것이다.

《봄순이 엄마, 왜 그렇게 걸음이 빨라졌어요?》

《아이참, 래일이 3. 8절이 아니나요. 오늘 내가 저녁을 지어야 래일 애아버지더러 아침을 짓게 할수 있단 말이예요!》

《저녁이고 아침이고 오늘은 우정 늦게 들어가는게 좋아요. 돌격대에 들어온 첫날이겠다, 또 품들여 화장을 했겠다, 애아버지가 먼저 들어와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릴 때 보름달같은 얼굴을 척 내밀고 들어가란 말이예요!》

와하!― 녀인들의 웃음소리가 새떼처럼 건공중에 날아올랐다.

노죽섞인 목소리가 또 울렸다.

《그렇게 화장하고 머리단장까지 달리하니 나도 몰라보겠는데 남편이 알아볼게 뭐예요. 랑군님이 어리둥절하여 〈저, 뉘신지? 혹시 집을 헛갈리지 않았는지요?〉할거란 말이예요.

그때를 놓치지 말고 눈을 살짝 치뜨며 〈깨꼬.〉하면 랑군님이 얼마나 놀라겠어요. 얼마나 좋아하구. 호호!…》

녀인들이 와짝 따라웃었다.

금성은 힝 실소를 지으며 씨엉씨엉 걸어갔다.

낯익은 5층살림집앞까지 온 그는 현관을 지나 자기 집 문앞에 이르렀다. 저도 모르게 울렁이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문을 두드렸다.

귀에 익은 동생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누구나요?》

금성은 갑자기 목이 꽉 메는듯싶었다.

《금주야 … 나야, 오빠다!》

재빠른 걸음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급히 열리고 매캐하게 쓸어나오는 연기속에 손전지를 든 금주의 자그마한 형체가 나타났다.

《금주야!…》

《오빠야!…》

손전지가 바닥에 툴렁 떨어지고 금주가 와락 오빠의 품에 안겼다. 거뿐하게 안겨오는 동생, 코로 쓸어드는 연기, 휘뿌연 전지불빛에 드러난 구석에 쌓아놓은 몇덩이의 구멍탄… 눈앞이 뿌잇해왔다.

《그래, 어머니병은 좀 어떻니?》

금주는 오빠의 품에 안긴채 울음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심하게 앓아. 헌데 앓으면서도 맨날 직장에 출근해!》

《직장에?…》

금성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등잔불이 켜진 방안에는 금주가 저녁을 지어놓은듯 흰보가 씌워진 밥상만이 댕그라니 놓여있었다.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시니?》

금주는 호― 한숨을 내쉬였다.

《오빠, 속상해! 어머니는 몸을 돌보지 않아.…》

금성은 낯익은 방안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둘러보다말고 무심결에 밥상보를 벗겼다.

낮에 먹다 남긴듯 한 삶은 감자 몇알이 담긴 국사발과 김치그릇이 놓여있었다. 보를 도로 덮는 금성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가정이 처한 형편을 그대로 보는듯싶었기때문이다.

금주가 곧 부엌에 나갈 차비를 하였다.

《오빠, 내 인차 불을 살리구 저녁지을게. 우리 집에 흰쌀이랑 마른 물고기랑 있어.…》

금성은 의아해서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병문안을 온 반장아저씨랑 공장당비서(당시)할아버지랑 가져왔어. 오빠네 중대장, 정치지도원이 공장에 보낸 편지를 가지구. 우리 학교에두 편지가 왔어. 얼마나 오빠를 칭찬했는지 몰라.

엄만 너무 기뻐 눈물만 흘렸어. 엄마가 꼭 필요할 때가 있을테니 건사하라고 했댔는데 아마 이렇게 오빠가 올줄 알았나봐.》

금성은 가슴이 뭉클해왔다. 그는 눈을 슴벅이며 금주에게 말했다.

《어머닌 괜히… 금주야, 그저 어머니만 건강하면 돼. 그러니 넌 오빠대신 엄마 병구완을 잘해주어야 해.

헌데 어머니는 무슨 병을 앓고있니?》

《병원에 갔다가 의사선생님들이 이야기하는걸 몰래 들었는데 위에 무슨 종처인지 종… 좌우간 무엇이 생겼대. 오빠, 그게 뭘가?》

금성은 덤덤히 침묵을 지켰다. 지금껏 군사복무를 해온 그로서는 동생의 말을 넘겨짚을만 한 의학지식이 없었던것이다. 그저 어머니몸보신에 좋다던 자라생각이 갑자기 나 동생에게 일렀다.

《참 금주야, 거 버치같은것이 있으면 가져다주렴.》

금주는 영문을 몰라 주춤거리더니 부엌에 나가 비닐버치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배낭을 열고 무엇인가 한마리씩 조심히 꺼내여 버치에 담는 오빠의 행동을 두눈을 반짝이며 지켜보았다. 누런 바탕에 역시 누런 줄무늬가 뚜렷한 괴상스런 짐승이 번대머리를 주억거리며 짧은 다리로 버스럭대자 금주는 겁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이건 뭐나?》

《자라라는거다. 어머니의 병치료에 쓸거다.…》

금성은 자라가 든 버치에 물을 붓고 한옆에 옮겨놓은 후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였다.

《이건 금주꺼고!…》

《야! 손거울!…》

금주는 손거울을 받아들고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오빠, 이거 산거나?》

《산거 아니고 마음씨 고운 한 선생님이 금주한테 주는거다.》

《선생님이?…》

《그래, 너와 같은 학생들을 가르쳐주는 녀선생님이시야.》

《그런데 그 선생님이 왜 나한테 이걸 주나?》

금성은 갑자기 렬차안에서부터 몰린 피로를 느꼈다.

《금주야, 그 이야긴 차차 하기로 하고 베개를 좀 가져다주렴.》

《오빠, 피곤하나?》

《그래…》

금주가 이불장에서 베개를 내리웠다.

금성은 그 베개를 베고 벌렁 누웠다. 착잡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무슨 병일가, 당비서동지랑 반장이랑 찾아오는걸 보면 중한 병 같은데… 어머니두 참, 그런 몸에 직장에 나가시면서… 집안일은 어린 금주에게 맡기고…

금주가 금성의 곁에 소곳이 앉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고있다.

금성은 동생의 그 시선을 느끼며 몸을 뒤척이였다. 그러다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무한정 어머니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수는 없는것이다. 그래, 어머니를 마중가자!…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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