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제 7 장

4

 

다음날 사향은 평양을 떠나 경림이네 고향마을로 내려갔다.

경림이 부모 서만호내외와 그동안 남편이 제대되여 고향에 돌아온 옥림이네 식구들 그리고 또 여러명의 농장일군들이 동구밖에까지 나와있었다.

일행이 승용차에서 내리자 마중나온 사람들중에서 목에 붉은넥타이를 매고 손에 싱싱한 꽃다발을 든 소녀애가 소리치며 총알같이 달려나왔다.

옥림이의 막내딸이였다. 철림이보다 두살이나 아래였다.

《이모!-》

그러자 모여섰던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마주 오고 사향이네 일행도 마음이 급해서 걸음을 빨리 했다.

이모를 제일먼저 알아보고 달려온 소녀애는 차림새를 보고 알아맞혔는지 별로 주춤거리지도 않고 사향이앞에 가서더니 씩씩하게 머리우로 손을 올려 소년단경례를 하며 류창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향땅을 찾은 기자선생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리고는 들고나온 꽃다발을 내밀었다.

《아니예요. 아니, 이건 내가 받을 꽃다발이…》

사향은 당황해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향선생, 그러지 말고 어서 받아요. 조카애예요. 어서요. 고향사람들의 인산데…》

곁에 섰던 경림이 사향의 등을 떠밀었다. 그랬는데도 사향은 머밀머밀하였다.

《언니, 어서 받아요.》

뒤따라선 혜정이까지 권해서야 사향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꽃다발을 받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소녀애의 볼에 자기의 볼을 꼭 대고 한참이나 있었다.

경림이 부모를 소개하였다.

사향은 다시 일어났다가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인사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이 꽉 메여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았다.

경림이 아버지 서만호로인이 그러는 사향의 어깨를 투덕투덕 두드리며 뇌이였다.

《잘 왔네, 잘 왔어. 우리 형욱사돈이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반가와할고…》

경림이 어머니도 저고리고름으로 눈굽을 찍다말고 사향의 어깨를 자꾸 쓸었다.

농장일군들과 옥림이네 부부하고도 인사하였다.

그날 저녁 서만호네 집은 대사를 치르는것처럼 흥성흥성하였다.

한쪽에서는 넙적한 떡돌에다 김이 문문나는 찹쌀익힌것을 퍼담아 내다놓고 두 젊은이가 성수가 나서 떡메질을 하였다. 그 소리가 마당까지 쿵쿵 울렸다. 그런가 하면 부엌에서는 설설 끓는 가마우에다 국수분틀을 올려놓고 농마국수를 눌렀다. 농장의 한다하는 료리사며 음식솜씨가 여간 아니라는 동네녀인들 여럿이 분주히 돌아갔다. 열어놓은 부엌문으로는 김이 꾸역꾸역 쓸어나왔다.

마을조무래기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다가 공연히 서만호네 집 마당가에 모여와서 집안을 기웃기웃하며 재잘거리고 좋아라 뛰여다녔다. 뉘집에서 기르는 복슬강아지까지 꼬리를 쳐들고 한들거리며 덩달아 그들을 따라 승이 나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였다.

그러는것을 아까 사항이에게 꽃다발을 주었던 경림의 조카애가 나와 제법 한손을 입가에 대고 떠들지 말라는 시늉을 하고는 다른 곳에 가서 놀라고 일렀다.

《놔두려무나, 그 애들도 반가운 손님이 왔다고 기뻐서 그러는데…》

경림이 어머니가 뒤울안에서 소랭이에 무엇을 무드기 담아가지고 나오다가 띄여보고 오히려 손녀애를 나무람했다. 나이 칠순을 넘겼는데 허리 하나 굽지 않고 아직도 기력이 펄펄했다. 그는 오늘 여간 어깨바람이 나지 않았다.

귀한 손님에다가 막내딸이 병을 고치고 몸이 좋아져 나타난것이 꿈만 같았던것이다.

방안에서 행주치마를 두른 경림이가 나오며 어머니의 손에서 소랭이를 넘겨받으려고 했다.

《어머니, 이리 주세요. 무슨 일인지 제가 할게요.》

《얘, 옷적실라. 평양에서 오래간만에 내려온 네가 부엌간에 안 들어도 된다. 어서 도로 올라가라. 방안에 손님을 앉혀놓구… 어서.》

《별일 없어요.》

《글쎄 안된데두…》

어머니는 기어이 소랭이를 넘겨주지 않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서도 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철림이는 앓지 않고 잘 크니? 철림 아비랑은 늘 바쁘겠지?》

로인은 마중나갔을 때도 그렇고 집에 와서도 지금까지 딸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새가 없었다. 그래서 부엌간에는 얼씬 못하게 하면서도 각근하게 물었던것이다.

다 잘있고 바삐 지낸다는 딸의 대답을 듣고는 《그럴테지…》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또 물었다. 이번에는 방안에서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퍽 낮추었다.

《애, 철림 에미야. 그 손님은 뭘 좋아한다던?… 여기 촌음식이 입에 맞을가?》

《어머니두, 별걱정을… 그 선생도 우리처럼 떡이고 국수고 다 좋아해요. 그저 듬뿍 차리기나 하세요.》

《아이구나, 그럼 됐구나. 차리자,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자. 이 기쁜 날에 뭐가 없어 못 차리겠니?》

서로가 한창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웃고있는데 앞집, 뒤집 동네녀인들이 빛다른 음식감들을 담아들고 연방 찾아왔다.

《평양에서 귀한 손님들이 왔다면서요?》

《뭘 이렇게 들고오면서… 농장에서도 생선이랑 조개랑 저렇게 가득 가져왔는데…》

《이거 많지는 않지만 꼭 맛보게 해주세요.》

《아유, 경림인 몸이 좋아지구 점점 더 예뻐지는것 같애.》

찾아온 녀인들이 이번에는 경림이를 보고 반색하며 서로 한마디씩 하였다.

《다들 안녕하셨어요?》

경림이 그러는 그들에게 활짝 웃어반기며 인사를 했다.

혜정이와 방안에 앉아있는 사향은 부엌이며 밖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과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페부로 느끼고 듣고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릴 때부터 자기의 온몸과 넋에 와닿던 서만호로인네 가정과 동네사람들의 소박하면서도 후더운 정과 진심은 점점 더 뜨거운 열기로 휩싸안아서 사향으로 하여금 이름할수 없는 격동과 자책에 잠기게 하였다.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이 이리도 진실하고 깨끗할가. 어쩌면 지금껏 그렇게도 그리웠건만 주려왔던 인정을 이리도 푹푹 쏟아부어주는것일가.

내가 이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이 마을, 이 나라를 위해 바친것이 있기나 한가. 오히려 나야 나라가 시련을 겪을 때 자신의 넋과 존엄을 지키기는 고사하고 제 한목숨 건져보겠다고 고향을 버리고 떠난 떳떳치 못한 사람의 후손이 아닌가.

그런데도 이들은 아무 탓하지 않고 반겨맞아주고 기뻐하며 흥성거리고있다.

아, 이 진실하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무슨 말로 속죄하고 감사를 드린단 말인가.

사향의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날 사향은 경림이네 식구들과 함께 련포리에 있는 유성덕과 유형욱의 묘소를 찾았다.

진철의 할아버지 유성덕의 묘는 마을 애국렬사들의 묘지구역에 있었고 유형욱의 묘는 거기에서 릉선 하나를 넘어선 남향받이산턱에 있었다.

두곳 다 묘지뒤에는 로송이 울창하게 우거졌고 그사이로 진달래가 소담한 꽃망울을 터칠 차비를 하고있었다. 묘지에는 새봄을 맞아 파랗게 돋아나기 시작하는 잔디가 덮여있었다. 거기서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네모반듯하게 정리된 논벌과 곧게 가로세로 뻗어간 관개수로들, 양지바른 산턱에 자리잡은 추녀가 건듯 쳐들리고 발그스레한 기와를 얹은 살림집들, 푸른 띠를 두른것처럼 무성한 방풍림이 우거진 너머에서는 푸른 바다가 출렁이고있었다. 그것은 그대로 한폭의 그림같았다.

사향은 산으로 오르면서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그런 풍경을 한참씩 취한듯 바라보았다.

그는 먼저 할아버지와 이웃해서 살았다는 유성덕로인의 묘를 찾은 다음 유형욱의 묘로 내려왔다. 유성덕로인의 묘에서부터 눈가에 서렸던 눈물은 유형욱의 묘에 당도한 시각부터는 줄기를 이루며 두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어깨를 이따금씩 떨면서도 강잉히 참았다.

그는 함께 온 혜정이에게서 가지고온 트렁크를 달래서 열었다.

그안에는 하얀 생화묶음이 있었다. 시들지 말라고 꽃줄기밑을 축축한 이끼로 감싼것이 그대로 있었다. 여기로 오기 전 혜정이와 함께 화초원에 가서 자기 손으로 한송이한송이 골라 엮은 꽃묶음이였다.

사향은 조선치마저고리로 소복단장한 자기 옷매무시를 다시한번 살피고는 향기그윽한 꽃묶음을 묘지앞에 정히 놓았다. 그 꽃은 봉분을 덮은 잔디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도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며 고인에 대한 쩌릿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사향은 다시 트렁크를 뒤져 또 무엇인가를 찾았다.

뒤에 섰던 혜정이와 경림이가 그가 잔에 부을 술을 찾는줄 알고 자기들이 들고온 구럭에서 곽에 넣은 술병을 꺼내였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사향이 이제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숨기려고조차 하지 않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일렀다. 그리고는 트렁크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는데 그것은 크지 않은 종이에 그린 조선지도와 빨락지로 싼 세알의 사탕이였다.

서만호로인내외며 함께 온 동네사람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경림이와 혜정이까지도 두눈이 둥그래지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사향은 그것들을 준비해가지고온 접시에 따로따로 담아 상틀우에 정히 올려놓고서야 잔에 술을 부었다. 그러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어 엎드리며 나부시 조선절을 하였다.

그 시각부터 입안에서 흐느낌과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용케 참아오던것을 더는 어쩔수 없는것 같았다.

《유형욱… 아…버님, 흑-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변…부호의… 외…동딸 변사향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인사드리고 용…서를 빌…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으흐흑…》

첫번째, 두번째 절을 할 때까지만 해도 간신히 지탱하던 몸을 세번째절을 할 때는 맥없이 내던지며 사향은 엉엉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한손으로는 묘비를 두드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봉분의 잔디를 애타게 쥐여뜯었다.

《우리… 아버님은 한을 풀지… 못하고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 좋은 제 나라, 제 고향을 버리고 간 죄…의식과 후회를… 안은채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태를 치듯 엎드려 울었다. 그런 광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경림이 뒤에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흐느끼다가 안된 생각이 들어 사향에게 다가가 일으켜세우려고 했다. 그렇지만 사향은 한손을 내저어 뿌리쳤다.

《놔두려무나,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설음과 아픔을 다 쏟아놓게…》

서만호로인이 물기가 번들번들한 눈굽을 팔소매로 찍으며 딸에게 일렀다.

한참 울고난 사향은 머리를 들더니 방금전보다는 퍽 담담한 어조로 마치 산사람에게 아뢰이듯 중얼거렸다.

《형욱아버님, 우리 아버지는 이 소녀에게 자주 말했습니다. 어린시절 형욱아버님이 조선지도를 잘못 그렸다고 매를 안겼을 때 정신을 차렸어도 자기 신세가 그렇게는 되지 않았을거라구 말이예요.

아버지는 눈을 감으시기 전에 내 손에 다시 그린 이 지도를 쥐여주면서 꼭 찾아가 용서를 빌라고 했습니다. 그때 던져버렸다는 이 사탕 세알도 다시 받아달라고 하셨습니다.

소녀가 아버지의 유언을 받은지도 어언 1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형욱아버님, 늦게야 찾아온 이 소녀에게 매를 안겨주세요.

아버…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용서하시지요? 우리… 아…버지를… 이… 소녀를…》

사향은 다시 어푸러지며 울었다.

한참후에 그러는 그를 경림이와 혜정이가 다가가 량쪽에서 팔을 잡았다.

《사향선생, 그만하세요.》

《언니, 이젠 돌아가자요.》

서만호로인도 눈물을 훔치고 사향에게로 다가갔다.

《새아기, 그만하구 일어나라구. 우리 사돈님이 비록 땅속에 누워있지만 선생의 말을 알아들었을거네. 용서하구말구.》

사향이 부축을 받아 일어났을 때 서만호로인은 그의 등을 쓸며 더 외웠다.

《제 고향과 제 나라를 버린 후회는 그렇게 막심하다네.

나도 사돈이 살아있을 때 선생의 선친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네. 선생네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본시 성정이 어질고 착한분이였다고 하더군.

하지만 마음속에 새겨두지 못하고 산것이 있었거던. 믿음이 약했지. 우리에게 일성장군님이 계셨는데 뭐가 무섭고 뭐가 두렵다는건가. 장군님이 계시기에 우리 나라는 절대로 미국놈들에게 먹히우지 않는다는 믿음이 없었거던. 그래서 결국은 한을 못 풀고 이국땅에서 못 돌아온거네.》

사향은 이따금 흐느끼면서도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듣고있었다.

《하지만 딸이라도 찾아와 한을 풀고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좋소. 선생도 조국에 와서 보았겠지. 우리 고향마을사람들도 이렇게 만나보구… 우리 조국은 미국놈들의 원자탄공갈따위에 겁나하거나 흔들리는 나라가 아니야.

우리에겐 일성장군님을 그대로 닮으신 김정일장군님이 계시거던. 어따 대고 조선을 숙보고 함부로 건드려!

선생이 찾아온 우리 사돈이 이렇게 누워계시니 내가 대신 답변하는것으로 하세. 아버지나 선생의 용서를 받아들이는것으로 하잔 말일세. 돌아가면 아버지의 령전에 그렇게 아뢰게.》

《고맙습니다, 아버님!》

사향은 고개를 숙인채 대답하였다. 그러던 그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아버님! 한가지 일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인데…》

《유형욱아버님의 봉분곁에서 흙 한줌을 가지고가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령전에 놓아드리고싶어서…》

서만호와 함께 온 일행이 무슨 일인가 놀라와하다가 그 말을 듣고는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어서 그렇게 하라구.》

《그리고 다시 고향에 올 때는 아버지의 유골을 유형욱… 아…버님의 곁에 묻고싶어요.》

사향은 또 흐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던 서만호가 아까보다 퍽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렀다.

《바다물은 아무리 많은 강물이 흘러들어도 넘쳐나는 법이 없지.… 선생 아버지가 눈을 감으면서 그렇게 소원했다면 고향마을사람들도 마다하지는 않을걸세.》

경림이와 혜정에게 두팔을 맡긴 사향은 흐느끼고 일행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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