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7 장

2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진혁이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진혁이도 엊그제 부대에서 전해주는 안해 응희의 편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 편지는 안해가 집에서 쓴것이 아니라 평양산원침대에서 몇자 적은것이였다.

평양친정집에 갔다가 자기 집으로 내려왔던 응희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평양산원으로 올라왔다. 새 생명의 출생을 예고해주는것인지 요동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런데 부대병원에서나 주둔지역 병원산원에서는 첫아기인데다가 산모에게서 이상현상이 나타난다고 하면서 자신없어하였다. 토론하던 끝에 평양산원에 련락하였다.

평양에 올라온 응희는 산원에 들어가기 전에 동서가 입원한 병원에 잠간 들렸었다.

동서 경림이에게 자기가 산원에 왔다는것을 알렸고 거기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동서와 한호실에 미국에서 온 녀기자가 수술을 받고 누워있다는것과 그에게서 형님네 집에서 본것과 꼭같은 사진이 나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구체적인 사연을 알아볼새는 없었다.

응희는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안고 산원에 들어왔다. 남편에게 자기가 평양산원에 올라와 입원한 일과 동서면회를 갔다가 거기서 알게 된 미국녀기자와 사진에 대한 사실을 편지에 적었다. 마침 후송때 볼일도 있고 해서 따라올라왔던 부대군의소 군의가 있어서 그에게 자기의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던것이다.

진혁은 안해가 쪽지편지의 마감에 《아직은 해산전이여서 당신이 꼭 보내달라고 한 애기의 손발을 그리지 못했어요. 승리하고 돌아오는 날 우리의 새 생명과 함께 당신의 품에 꼭 안기겠어요.》하는 구절만 없어도 그 편지를 형님에게 통채로 내보이며 푸념질했을지도 모른다.

진철은 뿌루퉁해서 하는 동생의 말마디에서 미국녀기자라는 소리가 나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놀랐다.

하마트면 동생에게 그 미국에서 온 녀기자의 이름을 모르는가고 물을번 하였다.

밤이여서 동생은 형의 그런 기미를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그 시각 진철의 머리에 불쑥 떠오른것은 외무성의 최성훈이 찾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알아봐달라고 하면서 적어주던 《변사향》이라는 녀기자의 이름이였다.

안해와 한입원실에 있다는 녀기자가 틀림없이 그라고 여기고싶었다.

이런 우연도 있단 말인가. 이런 기이한 일도 있는가.

그가 어떻게 안해와 한방에 입원해있고 우리 집에 있는것과 같은 사진을 내놓아 해후까지 할수 있었단 말인가.

아니, 그건 틀림없다! 틀림없어!

외무성의 최성훈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사진소리만 했어도 자기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단정해버리지 않았을것 아닌가. 하긴 최성훈인들 그런 사진이 있다는것까지야 어찌 알았겠는가.

진철이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 곧 우리 나라에서 또다시 인공지구위성이 우주에로 솟구쳐오르고 경이적인 사변들이 련이어 일어나는 때에 미국이라는 적대국가에서까지 동포녀성인 기자가 평양으로 찾아오고 자기 가정과도 인연이 맺어지는것이 우연도 기이한 일도 아니라고 여겨졌다.

이것은 오늘날에 와서 례사롭고 어쩔수 없는 일로 된 필연적과정이라고 말하고싶었다.

진철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렇지만 동생앞에서는 아직 이 심정을 터놓을수 없었다. 아무리 전후사연이 맞아떨어지고 예감이 틀림없다고 해도 《혹시》나 《설마》의 경우도 있지 않는가.

진혁의 두서가 좀 뒤바뀌고 흥분하여 한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도 진철은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그대로 말없이 앉아있었다.

담배 한대를 꺼내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가 동생에게 물었다.

《한대 태우겠니?》

《피우지 않습니다.》

더 권하지 않았다. 진철은 자기가 피우려고 입에 물었던 담배마저 도로 갑에 넣어 의자의 끝에 밀어놓았다.

《진혁아, 너 그래서 어제오늘 얼굴이 그렇게 어두워있었니? 의기소침해서…》

《…》

《물론 제수가 알려왔다는 그 소식을 듣고 나도 아직은 영문을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를것두 없지. 너도 본 기억이 나지. 아버지가 계실 때부터 전해오는 사진첩 앞장에 붙어있는 사진 말이다.

해방후 할아버지가 나라에서 분여받은 제땅에서 농사를 잘 지어 곡식가마니들을 마당에 산처럼 쌓아놓고 이웃집할아버지랑 아버지동무랑 함께 찍은 사진 말이다.》

《그 사진이야 지금의 박두성중장이 형님네 부대 부대장으로 있을 때 우리 집에 왔다가 보기까지 했는데요.》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명 그 사진이 틀림없는것 같다. 그 사진이 미국에서 왔다는 녀기자에게도 있다면 필경 무슨 사연이 있고 연고관계가 있는것만은 틀림없는것 같다.

하지만 그 일때문에 네가 얼굴이 어두워지고 의기소침해질건 뭐냐? 누가 뭐라 하길 했니,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니?》

《형님두 참, 내가 뭘 어쨌게 그럽니까?》

진혁은 지금에 와서야 형님앞에서 한 엇드레질이 자기로서도 좀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지는지 슬그머니 변명하였다.

《너희네 정치지도원동무랑 동무들이 네 얼굴을 보고 걱정하는것 같더라.》

《형님, 미국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에서 불이 펄펄 이는걸 어떻게 해요.…》

《허허허… 반미사상이나 반미감정에서는 이 형님도 너를 따라배워야 할가보구나. 핫핫핫…》

진철은 또 한번 허리까지 뒤로 젖히며 통쾌하게 웃었다. 진혁이도 형님의 그 말과 웃음에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러나 진철의 웃음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고 다시 울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뒤에 무거운 침묵이 뒤따랐다. 공기마저 희박해진것 같았다. 그것을 느끼자 진혁은 슬그머니 눈길을 들어 형님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어둠속이지만 가려볼수 있었다. 방금 소리까지 내여웃던 낯이 아니였다. 혈육의 정을 쏟아 따뜻하게 말해주고 알아보던 친형같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는 열기가 풍기고 무릎우에 꽉 틀어쥔채로 놓은 두주먹은 떨고있었다. 코허리쪽으로 모아진 짙은 눈섭이 푸들거리고 두눈은 꾹 감고있었다. 이발을 꺽 억물고있는데 가슴에서 격렬하게 끓고있는것을 참고있는것 같았다. 그것을 노성으로 터뜨릴듯싶어 몸이 옹송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혁이의 지레짐작이고 잠시후 다시 울린 형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였다. 그러나 좀 갈려있었다.

《진혁아, 너나 난 다같이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태여나고 성장하여 오늘은 손에 총을 잡고있는 혁명전사들이다. 난 너를 친혈육이나 친동생으로 여기기 전에 먼저 위대한 장군님을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혁명대오에 함께 서있는 혁명동지, 전우로 생각하고있다.

넌 우리 조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고 빛내이기 위한 이번 싸움을 무엇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은 총대를 틀어잡은 우리 전사들이 죽어도 버리지 말고 지키며 변심을 몰라야 하는 혁명적신념이 아닐가.

장군님의 전사인 우리는 그 어데서 어떤 바람이 불어오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음의 흔들림을 몰라야 한다.

우리의 인공지구위성발사를 어떻게 하나 파탄시키려는 적들과의 대결도 먼저 이 흔들림 없고 반석같은 신념과 의지를 간직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가.

수령결사옹위정신, 육탄정신, 자폭정신은 바로 이 신념과 의지가 철석같아야 높이 발휘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넌 뭐냐? 미국땅에서 사진 한장을 들고 나타났다는 그 녀기자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지고 의기소침해 있단 말이냐?

설사 그 녀인이 우리의 친척이나 우리를 녹여내려고 들어온 나쁜 사람이면 어떻다는거냐? 그런데 머리를 기웃거릴 너냐? 나냐? 그런 정신으로는, 그런 심장으로는 적의 아성에 육탄이 되여 날아들지 못해! 그래가지고는 경계선이나 국경이 표시되여있지 않는 푸른 하늘에서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울수 없어!》

《형님! 그럼 나의 신념에, 이 머리에 문제가 있다는겁니까?》

진혁은 머리를 번쩍 들며 형님을 마주보았다. 어둠속이지만 그의 두눈에서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이 한데 엉켜 황황 타고있다는것이 알렸다.

《내 말이 가슴아프냐?》

《아닙니다. 형님! 더 꾸짖어주세요.》

《진혁아!》

진철은 동생의 손을 잡았다. 진혁의 손은 뜨거웠다. 손만이 아니라 온몸이 불덩어리인것 같았다.

《난 너를 나를 믿듯이 믿는다. 친동생, 친혈육으로서가 아니라 동지, 전우로서 말이다.

우리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또 어떤 바람이 불어오건 오직 최고사령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편단심을 간직하고 살며 싸워나가자꾸나.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이긴다.》

《형님, 내가… 내가…》

진혁은 진철에게 손을 맡긴채 그의 앞가슴에 얼굴을 박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떨었다.

《됐다! 됐어, 사내녀석이 울긴…》

진철은 진혁의 화끈한 등을 자꾸 쓸었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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