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7 장

1

(2)

 

그 다음날 저녁이였다.

식사가 끝난 다음 진철은 어제 정치지도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휴식장에서 동생 진혁이를 만났다.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밤기온은 산산하였다.

하늘에서는 보석을 쥐여뿌린것처럼 별들이 반짝이였다. 하늘이 맑아서인지 이밤따라 그 별들이 더 도글도글해보였다. 먼곳에서 처절썩- 처절썩- 하는 파도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형님, 찾았습니까?》

어둑시그레한 속에서 진혁이 불쑥 나타났다. 차렷자세를 하고 거수경례를 절도있게 했다. 말은 형님이라고 불렀지만 행동이나 제식동작은 군대물이 푹 뱄다.

진철은 움쭉해서 의자의 한옆으로 나앉았다. 다른 의자에 자리를 잡으려던 진혁이가 좀 주저하며 형이 내주는 자리에 조심히 앉았다. 오래간만에 형제간이 한의자에 앉아 어깨를 나란히 한것이다.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형인 자기의 손탁에서 자란 동생이다. 어머니없는 설음을 모르게 하자고 무척 마음을 썼지만 어떻게 그 깊이를 헤아릴길 없는 그처럼 다심한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수 있었으랴.

철이 들고 커가면서는 자립성을 키워주고 헴을 빨리 들게 한다면서 엄하게 굴고 요구성을 높이였다. 그를 곁에 앉혀놓고보니 어릴 때 어머니도 없는 그를 좀더 살뜰하게 대해주고 사랑해줄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며 짜릿한 아픔이 가슴을 허비였다.

이제는 철부지가 아니다. 비행사가 되고 가정까지 이루었다.

《그래 요즈음 훈련과 전투임무를 수행하는데서랑 힘들지 않니?》

《힘에 부치지는 않는데 어쩐지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아서…》

《네가 결의한대로 새로운 전투방안을 습득하는데서 앞장서더구나. 며칠전 미국놈들의 전략정찰기 경계전투임무랑도 잘 수행한것 같다. 경험이 많은 비행사들과 비행지휘관들까지 입을 모아 칭찬하더라.》

《뭘요, 다른 비행사들이였다면 더 멋지게 해냈을겁니다.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

진혁은 형님앞인데도 어줍게 대답하며 무릎우에 올려놓은 손을 주물럭거렸다.

《용타, 항상 그렇게 자신을 낮추고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는건 좋은 일이다.》

진철은 말과 행동거지가 몰라보게 달라진 동생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화제를 슬쩍 바꾸었다.

《진혁아, 내 한가지 물어도 되겠니?》

《형님두 참, 동생에게 승인을 받고 묻겠습니까?》

진혁이 진철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하얀 이발이 어둠속에 드러나는것으로 보아 웃음을 지은것 같았다. 밝을 때 보았다면 그 얼굴은 무척 사랑스러울것이다.

《하긴 그렇긴 하다만… 너 요새 마음속에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예?!》

진혁은 이번에는 흠칫하며 형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인차 고개를 수그렸다.

가는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무릎우에 놓은 손으로 손톱여물을 썰었다.

침묵, 침묵… 먼곳의 파도소리가 아까보다 퍽 크게 들려왔다.

(정치지도원동무의 말이 옳구나. 무슨 곡절이 있는것이 틀림없구나!)

진철은 가슴이 철렁하였다. 방금전과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동생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 집안 친척들중에 지금 미국에서 살고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미국에서 사는 사람?!》

아닌 밤중에 홍두깨내밀듯 동생의 입에서 불쑥 튀여나온 말은 진철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냈다.

《좀 차근차근 말하려무나. 난 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차근차근이구 천천히구 입에 다시 올리기조차 싫습니다. 미국놈들과 당장 대들이판 싸움을 벌리려는 때에 그런 악의 나라에서 사는 친척이 나타나다니요? 지금까지 자라면서 아버지나 형님한테서 그 비슷한 소리도 한번 없지 않았습니까?》

형님앞에서 지금까지 어려움을 타며 얌전하게 앉아 묻는 말에나 대답하던 동생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푸들푸들 떨었다. 마주잡았던 두손을 풀어 주먹을 꽉 틀어쥐고 제 무르팍을 약간씩 두드렸다. 말투도 아까와는 달리 거칠어졌다.

《너에게 누가 뭐라더냐? 누가 그런 소릴 해?》

《형님, 누가 말하든 그건 상관마시고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하고 명백히 답변을 주십시오.》

몹시 흥분한 진혁의 어조에는 아버지와 형을 못마땅해하는 감정이 짙게 배여있었다.

《진혁아, 분별을 잃지 말아. 사람이란 어떤 경우에도 똑바른 제정신을 가지고 남의 말도 듣고 분석판단해야 한다. 더우기 너야 하늘을 나는 비행사가 아니냐.》

《그래서 더 분한 생각이 듭니다. 나라에서는 나에게 얼마나 큰 믿음과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었습니까. 미국놈들이 우리의 인공지구위성을 요격하겠다고 날치는 때에… 놈들과 사생결단해서 싸워이겨야 하는 때에 그런 나라에서 사는 친척이 나타나다니요.… 그쯤한 일에 마음이 흔들릴 이 유진혁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쩐지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허참…》

진혁은 푸념질하고나서는 제딴에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김빠진 웃음을 터쳤다.

진철은 그러는 동생이 천진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내처두었다. 그렇지만 그런 랑설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알고싶어 다시 물었다.

《어데서 그런 말을 들었느냐?》

좀 주저하며 진혁이 맥없이 입을 열었다.

《집사람이 알려왔어요.》

《제수한테서?》

《예.》

진혁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앉았다가 잠시후에 자신을 좀 다잡았는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엊그제 부대정치부에서 한 일군이 이곳으로 왔다. 그는 부대일군들과 군인들이 보내는 전투적인사와 함께 비행사가족들이 쓴 편지도 전투가방이 터지게 가지고왔다.

진철이도 그것을 알고있었다. 비행사들은 부대일군들과 군인들의 전투적인사에서 큰 고무를 받고 새로운 힘과 용기가 북받쳐 일떠섰다. 사랑하는 안해와 자식들의 편지를 보면서는 입이 귀밑까지 째지게 웃기도 하고 절절한 당부를 가슴에 새기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조국앞에, 사랑하는 처자들앞에 부끄럽지 않게 싸울 결의를 더욱 굳게 가다듬기도 했다.

비행사 안동혁의 안해가 보내온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

국성이 아버지, 당신이 떠날 때 보일락말락하던 국성이의 앞이가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젠 제법 딱딱 이발소리를 내며 어-어-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답니다. 마을에선 국성이를 보고 꼭 제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해요. 당신의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않으면 누굴 닮겠어요. 나를 닮았다는 말을 듣는것보다 어찌나 좋은지 밤이면 정신없이 애를 들여다보며 다독여준답니다.

어서 커라, 어서 커서 아버지처럼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비행사가 되거라. 그리고 용감하구 씩씩하구… 미남이 되거라.

이렇게 누가 들을세라 나혼자 중얼거린답니다.

요즈음 저의 마음은 기쁘기도 하고 당신 생각에 잠 못 들기도 해요. 이번 전투임무수행에서 기어이 빛나는 위훈을 세워주세요.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마세요. 이 편지를 쓰는 곁에서 국성이도 자기 부탁을 함께 전해달라고 또 뭐라뭐라 소리를 내고있어요.

당신을 끝없이 사랑하는 안해 성옥이와 아들 국성이 씁니다.》

비행사 정영남의 딸애의 편지는 또 얼마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던가.

《…아버지가 보고싶어요. 정말 보고싶어요. 그래서 밤마다 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꾸어요.

언제나 용감한 아버지.

위대한 장군님의 품을 지키러 떠나간 나의 아버지, 나는 알아요.

장군님의 슬하에서 자란 조선의 비행사들의 결사옹위정신, 육탄정신을…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더없이 존경하고 사랑해요. 아버지, 뒤를 돌아보지 마시고 꼭 조국이 준 전투임무를 빛나게 수행해주세요. 설사 아버지가 그 길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나는 절대로 울지 않을래요.

미국놈들을 꼭 복수하고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있겠어요.…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는 딸 정원경 올립니다.》

비행사 조창기의 안해는 자기 마음도 쌍기가 되여 결전의 항로를 난다고 했고 차영전의 안해는 남편이 결사옹위의 길에서 한목숨 서슴없이 바친다 해도 변함없는 모습, 변함없는 마음으로 영원히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비행사의 안해들에게는 가정을 이룬 다른 녀성들과 구별되는 자기식의 생활방식이나 계률이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누가 배워준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도 없으며 남편들조차도 언제한번 요구한적이 없다.

그러나 비행사의 안해들은 그것을 가장 신성한것으로,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여기고있다. 경계선도 국경선도 없는 가없이 넓은 하늘에서 조국과 인민을 지켜싸우는 남편들과 마음도 몸도 하나가 되여 분분초초를 함께 보내는것이 그들이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비행장에서 리륙의 폭음이 울리고 하늘에서 비행기가 날 때면 남편과 꼭같이 뜬눈으로 지새는 그들이다. 갓 결혼한 신혼살림때에는 사랑이 샘물처럼 찰랑거리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피여오르는 불안과 위구심때문에 가슴이 조마조마해있었다면 지나가는 날과 흐르는 세월속에서는 그 진할줄 모르는 사랑이 지심깊은 곳에서 뿜어져나오는 활화산의 열도처럼 뜨겁고 반석같이 굳은 믿음으로 화하여 이번처럼 중요한 임무를 받고 먼길을 떠날 때에도 눈물을 모르는 녀성들로 되게 하였다.

그들은 요즈음도 몸은 비록 천리 먼곳에 있지만 마음은 낮이건 밤이건 하늘을 나는 남편들과 함께 있는것이다.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고 그렇게 절절히 그리워하며 그렇게 뜨겁게 포옹하고싶어하면서도 조국이 준 명령을 수행하기 전에는 절대로 집문턱을 넘어서지 말라고 하는 비행사의 안해들.

이들처럼 열렬하고 이들처럼 강잉하고 이들처럼 순결한 량심과 의리를 간직한 사랑스러운 녀인들이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 또 있겠는가.

유진철은 비행사들의 처자들에게서 온 편지를 함께 보면서 멀리 평양에 두고온 안해 경림이와 딸 철림이를 그려보았다. 그들도 군복입은 남편과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리라.

요즈음 안해의 몸은 좀 어떤지, 철림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있는지.

불시에 보고싶고 그리움이 차올랐다.

그런데 제수는 동생 진혁이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기에 그가 이렇게 풀이 죽어가고 마음이 번거로와하는것인가.

그도 이젠 당당한 비행사가족이 아닌가.

진철은 아직 그 영문을 알수 없었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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