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6 장

8

 

경림이의 가정사는 사향에게 꼭 무슨 전설이나 신화처럼 여겨졌다.

경림이가 이따금 머리를 기웃거리고 놀라와하는 사향이에게 《잘 믿어지지 않지요?》하며 웃기까지 했지만 정말 쉽게 믿을수 없는것은 사실이였다.

그렇지만 그 모든것이 조금도 틀림없는 조국의 현실이고 자기와 한 입원실에 있는 이 나라 한 평범한 녀인의 생활인데야 어찌 부정할수 있단 말인가.

그날부터 사향은 마음이 울적해지고 말하기가 싫어졌다. 왜 그런지 자신도 알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의 인생이 허무하기도 하고 보잘것없기도 하고 가련하게까지 느껴졌다. 가슴을 두드리며 울분을 터뜨리고싶고 누구인가를 원망하고싶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울분, 그 원망을 경림이에게 쏟아놓을것 같아 자신을 다잡으며 그앞에서만은 흔연하려고 했으나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눈을 감으면 꿈조차 어수선하고 불길하였다.

어제낮이였다. 경림이도 잠간 자리를 뜨고 방안은 끝없이 고요하였다. 잠을 청하려고 사향은 눈을 감았다.

방문이 열리더니 혜정이 례의 그 활짝 웃는 얼굴로 들어온다.

혼자가 아니였다. 뒤에 웬 남자가 따라섰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용모가 준수하였다. 그도 벙글벙글 웃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혜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는 자기의 첫사랑이고 정을 다 바쳤던 남편이 아닌가.

분명 그이다.

코허리 가까이로 모아붙은 짙은 눈섭, 부리부리한 두눈에는 의아함이 실려있다. 방금 웃음을 짓던 표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끝이 약간 처질사하고 뭉툭한 코와 두툼한 입술은 왜 저렇게 실룩거리는가. 분명 누워있는 사향을 알아본것 같은데 모르는척 하며 지나치려 한다.

《여보, 나 여기 있어요.》

사향은 이렇게 부르짖지만 목소리가 울려나가지 않았다.

그는 그래도 들었는지 말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한번 쳐다볼뿐이다.

《여보, 나 여기 있는데 어델 가요?》

남편은 또 한번 흘끔 돌아본다. 방금전과 달리 기상이 무서워졌다. 눈에서 불찌가 펑긋하고 시커먼 눈섭이 곤두서는것 같았다.

《나와 아들애를 버린지 언젠데 예까지 와서 날 찾소?》

목소리는 높지 않은데 노기가 잔뜩 실렸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당신과 아들을 버린건 내가 아니예요. 그건, 그건…》

《듣기 싫소. 그런 넉두리가 싫단 말이요. 썩 사라지오!》

《여보!-》

사향의 그 부름소리가 신음소리로 밖에 새여나간것 같았다.

방에 들어오던 서경림이 그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다가왔다.

수건으로 이마에 흥건히 내밴 땀을 닦아주며 근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몸이 다시 더 아픈가요?》

사향이 눈을 뜨고 멍청히 있다가 경림인것을 알아보고 머리를 저었다.

《신색이 좋지 않군요. 의사선생이나 간호원들을 찾을가요?》

경림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걱정하였다.

《아니, 찾지 말아요. 별일 없어요. 혜정씨는 아직 오지 않았지요?》

이번에는 경림이가 대답대신 머리를 가로저었다.

《경림씨,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저 좀 혼자 있게 해주세요.》

사향의 눈빛에는 절절함과 애수가 끓고있었다.

경림은 그가 지금 무엇인가 가슴아픈것을 추억하고있음을 감촉하였다.

불행은 나눌수록 덜어지고 행복은 나누면 배로 커진다지만 이 녀인은 아직 자기와 마음을 터놓고 그런것들을 덜고 보태고 할 처지까지는 되지 못하였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무슨 사연인가 알자고 강요할수는 없는것이다. 멀리 미국땅에서 평양에 와서 수술을 받고 침상에 누워있으니 무슨 생각인들 없으랴.

경림은 그의 요구도 그렇고 혜정의 행처도 알아볼겸 사향이 혼자 있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사향의 침대머리에 더운물 한고뿌를 따라놓아주고 바람을 좀 쏘이겠다며 자리를 떴다.

경림이 입원실을 나간 후 사향은 다시 반듯이 누워 눈을 감았다.

자기의 요구를 다른 말없이 웃으며 받아들이고 자리를 피하는 경림이 무척 속이 깊고 지성이 높은 녀성이라는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리도 소박하고 리해력이 넓은것인가.

그는 방금전에 눈앞에 나타났던 남편을 다시 생각하였다.

사향에게 있어서 그는 이성에 눈이 뜬 녀자로서 첫 정을 쏟았던 남자였고 한생 의지하고싶었고 의지하던 기둥이였다.

이 세상에서 진실만을 알고 진실만을 전하려고 강심을 먹었던 사향은 대학을 다니는 기간 헛눈을 팔새가 없었다. 아니, 그 부패타락한 사회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지냈다. 그런 사향에게 때가 되자 아버지가 한 남자를 택하여주었다.

그 남자의 부모들도 지난 조선전쟁때 원자탄공갈에 정든 고향산천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가정도 3대를 외독자로 가문을 이어왔다고 한다.

안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열살또래의 어린것을 아버지가 미군이 원자탄을 쓰면 집안이 몰살한다고, 가문에서 너 하나만이라도 살아남아 조상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이모부의 등에 업혀 무작정 배를 타게 했다고 한다.

사향의 선친들처럼 미국땅에까지 흘러와서 갖은 천대와 수모를 받으며 목숨을 이어온 동포의 자손이였다.

처지의 공통성으로 해서인지 아니면 슬하에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양놈에게만은 붙여줄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아버지는 이웃에 살던 그 조선청년을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있다가 때가 되자 맞세웠던것이다.

집에서 사위삼아 아들삼아 함께 살면서 크지 않은 기업이지만 눈을 감을 때는 그것도 다 넘겨주려고 했다.

다행히도 남자는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의리도 있었다. 흠이라면 준수한 용모에 비해 남들이 홀아비라고 할만큼 겉늙어보이고 웃음이 없는것이였다. 하긴 남자가 사향이보다 10년나마 나이가 우이다보니 남들이 그렇게 말할만도 했다.

오히려 한창 젊은 나이에 가랑잎에 불달리듯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권태를 느끼고 헛눈을 팔며 부화방탕을 일삼는 젊은이들과의 사랑과는 달리 남편의 사랑은 너그럽고 웅심깊었으며 변덕을 몰랐다. 반대로 사향의 사랑은 퐁퐁 솟구쳐오르는 샘물처럼 맑고 순진하고 진할줄을 몰랐다.

사향이 대학을 졸업하고 CNN텔레비죤방송회사에 겨우 취직한 해에 그들은 한마을에 사는 동포들과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고 그렇게 3년을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3년은 사향이에게 꿀같이 단 3년이였다.

그 기간에는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갈증난 목을 추기던 때처럼 시원하고 상쾌한 순간도 있었고 사나운 비바람과 눈보라를 막아주는 보금자리의 따뜻함과 아늑함을 느끼던 그런 때도 있었다. 그 3년기간에는 부부사이에 태여난 새 생명의 맑은 눈동자와 웃음을 보며 행복에 취하였던 때도 있고 독한 마음을 품고 남편이 아버지와 함께 양놈들을 이겨보려고 크지 않은 기업이지만 번창시켜나가던 나날도 있었다.

그러던 사향이 마른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에 기둥처럼 믿고 살아오던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낼줄이야 어이 알았으랴. 상상이나 했으랴.

아버지를 도우려고 그의 은행구좌에 있는 돈을 찾으러 갔던 남편은 어떻게 그것을 알고 뒤따르던 강도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시체마저 시궁창에 처박혔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례사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불행이 사향이한테 들이닥치리라고는 생각 못하였다.

그날 특종뉴스감이 있다는 통지를 받고 취재를 위해 현지에 달려왔던 사향이 이 참변의 당사자가 남편이라는것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였다.

그날은 남편과 결혼한지 꼭 3년 3개월 3일째 되는 날이였다.

3자는 길수라고 한다. 하지만 조국이 없고 안아주고 지켜주는 품이 없는 인간에게는 그것이 당치 않았다. 길수가 아니라 모든것이 흉수였다.

불행은 사향을 끈질기게 뒤따랐다.

그때로부터 6년후에는 아들 하나만이라도 잘 길러 남편의 피줄을 잇게 하려던 애오라지의 희망마저 잃고말았다.

아들은 아침에 엄마품에 안겨 해쭉 웃었다. 이제 3일후면 9살이 된다. 어쩌면 커가면서 아들은 점점 더 제 아버지를 쏙 빼닮아갈가. 도두룩한 이마, 가운데로 몰킨 짙은 눈섭, 억실억실한 눈, 이따금 실룩거리는 뭉툭한 코와 두툼한 입술…

아들애는 책가방을 메고 고개를 곱삭이 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학교갔다 오겠습니다.》

《오냐.-》

《어머니, 공부 잘하고 오겠습니다.》

《예에- 공부 끝나면 인차 집에 와야 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것 같고 성차지 않아 사향은 도무지 그냥 놔줄수 없었다. 이렇게 이르고는 무릎을 꺾고앉아 아들애의 그 보동보동한 볼에 《쪽-》소리가 나게 입맞춰주었다. 아들애는 문밖을 나가면서 손까지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랬던 아들이 오후에 피투성이시체로 되여버렸다. 학교에 뛰여든 무장한 괴한이 아이들을 향해 총을 란사한것이다.

매일 아들을 학교에 보낼 때마다 승냥이무리에 어린 양을 들이미는것 같던 불안이 이렇게 현실로 된것이다.

아- 미국이라는 나라는 악으로 빚어놓은 곳인가. 악마의 무리들만이 득실거리는 지옥인가.

사향에게서 웃음은 영영 사라졌다. 눈물도 말라버렸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흘렀다.

가슴에 쌓인 재는 그냥 남아있지만 눈물은 내리고 밥숟가락은 오른다고 사향의 생은 모질지만 그래도 이어졌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향은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온 정체모를 불한당들의 희롱에 걸려들었다. 두놈이나 되였다. CNN때방송기자의 신분을 밝힌 증명서를 보여도 소용없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작정 웃옷을 찢어발기였다. 드러난 가슴을 두팔로 싸안은 그의 목에 날이 시퍼런 칼을 들이대고 돈을 내든가 몸을 맡기라고 하였다.

그자들이 내댄 비수에 스스로 목을 들이찔러 세상을 하직하려는 순간 또 한대의 오토바이소리가 퉁탕거리고 뒤미처 한 사나이가 비호같이 몸을 날리며 뛰여들었다. 하늘이 도왔는가. 생명의 《은인》이 나타난것이였다. 목소리가 우렁우렁하고 체구도 우람하였다. 큰일날번 했다며 밤길을 혼자 다니지 말라고 점잖게 일러까지 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여 그들의 교제가 시작되였고 아버지와도 알게 되였다.

그동안 메말라버린 이성의 열정이 다시 사향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그 《사내》다운 사내는 열렬히 사랑을 속삭이고 얼마후에는 청혼해왔다.

사향은 완강히 도리머리질을 하였다. 이성에 눈을 떠 처음으로 간직했던 사랑이 아직도 가슴속에 그대로 있는데다가 사내는 자기보다 여덟살이나 아래이지 않는가.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며 사내쪽에서 오히려 펄쩍 뛰였다. 자기의 튼튼한 육체와 수완이면 사향이뿐아니라 아버지까지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완강히 도리머리질을 하자 어느날 사내는 사향의 발에 엎드려 어깨를 떨었다. 세상에 나서 사향이 같은 《천사》를 만나라고 하느님이 그날 밤 지옥의 문턱에 선 그에게 자기를 보냈다고, 연분을 주었다고 력설하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두번째 《가정》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은 사향이에게 라스베가스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거기로는 왜 가요?》

《일확천금을 할수 있소!》

《어떻게요?》

《글쎄…》

대답대신 얼버무리며 눈을 끔쩍하였다.

사향은 가슴이 섬찍하였다.

라스베가스, 그곳은 도박의 도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 어느곳이라고 다르련만 그중에서도 이 도박의 도시에서는 략탈, 살인, 자살, 강간, 폭행 등 범죄가 특별히 많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곳이였다.

이런데로 《남편》이 사향을 유혹하다못해 협박, 공갈하기 시작한것이였다.

아닐세라 그런 말이 오가기 시작한 다음부터 《남편》은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향의 돈지갑에 손을 대더니 아버지의 금고를 털라고 강박하였다.

아웅다웅하는 싸움이 잦아지면서 《남편》되는 사내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날 밤 사향이를 《구원》하는 놀음도 같은 불한당끼리 짜고 한 연극이였다.

정체를 더는 숨길수 없게 된 어느날 밤 《남편》은 사향을 죽어라 하고 차고때리고 해서 실신시켰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함께 생활한것으로 하여 새 생명이 태동하던 때였다. 사향은 찬비내리는 밖에서 태질하다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아! 변사향, 너는 하느님에게 무슨 죄를 졌기에, 무슨 잘못을 저지른것이 있어 이다지도 길지 않은 생이 불우한것인가.

그 액운이 평양에까지 따라와 나를 괴롭히는것이 아닌가.

아니다! 평양에서는 나의 생명을 구원해주었다. 내 무엇으로 감사를 드리고 은혜를 갚아야 하는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라 뺨을 적셨다.

눈물을 모르는 독한 녀자로 살리라고 강심을 먹었건만 평양에 와서는 왜 이렇게 눈물이 헤퍼진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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