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6 장

6

 

어느날 경림은 유형욱이네 집 방안벽에 걸려있는 사진액틀에서 별 세알을 달고있는 군관과 병사복을 입고있는 군인의 독사진을 보게 되였다. 둘 다 무슨 일이 그리 좋은지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였다. 어글어글한 눈매며 뭉툭할사한 코, 웃으면서도 열지 않고 꾹 다문 입술이 형제라는것을 첫눈에 알아볼수 있게 하였다.

《그게 우리 아들들이네.》

언제 등뒤에 와 섰는지 유형욱이 한손으로 액틀에 나란히 끼여있는 독사진들을 가리켰다.

경림은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졌다. 다른 사진이 아니라 바로 총각들의 사진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다가 들킨것이다.

(난 맹추야. 오늘따라 새빠지게 왜 그 사진을 그리도 오래 들여다보았을가.)

다행히 유형욱이와 마주선것이 아니라 사진액틀쪽에 눈길이 가있어서 달아오른 얼굴을 크게 나타내지 않을수 있었다.

《이녀석이 우리 집 맏이야. 비행중대장을 해.… 이젠 장가갈 나이가 되였는데 통 혼자 사는 아비생각은 안하구있어.… 몇번 편지를 해서 이 홀아비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며느리를 봐야 하지 않겠는가구 독촉을 했지. 그때마다 아버지, 다 생각이 있습니다.하는 회답이 오는데 눈맞은 처녀가 있다는 소린지 이 아버지의 의향을 따르겠다는 소린지 쇠통 속내를 알수가 있나. 그래서 요즈음 최후통첩을 했어. 고향에 아버지가 점찍어둔 좋은 처녀가 있으니 절대로 다른 녀자를 달구 문간에 나타나면 안된다구. 빈몸으로 달고올것만 떼놓지 말고 오라고 했지. 흐흐흐…》

유형욱은 제가 말해놓고도 우스운지 실눈이 되였다.

《회답이 왔는데 이제 불원간 휴가를 받아가지구 오겠대.》

《아이, 아버님두. 아무리 점찍어놓은 처녀라도 당자가 마음에 들어 해야 하지 않아요?》

《거야 그렇지만 이제 와서 제 눈으로 만나보면 고운 얼굴이나 착한 마음씨에 이 애비보다 더 반하지 않나 두고보라구.》

《그래요? 그런 처녀가 정말 있습니까?》

《있지 않으문.… 있어두 아주 가까이에 있지. 흐흐흐…》

유형욱은 또 한번 흐드러지게 웃었다.

(그런데 난 지금까지 왜 그런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가. 가까이에 있다면 이 마을 처녀겠는데 그가 나를 두고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경림은 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경림은 이 집에 발걸음을 좀 삼가하였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두명이 다 인민군대에 나갔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까지 하전사로 복무하는줄 알았지 당장 장가갈 나이의 아들이 있는줄이야 생각했는가. 과년한 처녀가 그런것도 모르고 제집 드나들듯 했으니 동네에서는 뭐라 하고 아버지가 점찍어두었다는 녀자는 또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오새없는 녀자라고 할게 아닌가.

생각해볼수록 어처구니가 없고 맹랑하였다.

(그렇지만 나야 아버지의 곡진한 말씀이 계시구 해서 그 집 아버님의 건강과 집안살림을 돌보느라고 다녔지 다른 생각이나 일이야 전혀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후 일은 급회전하여 뜻밖으로 번져졌다.

유형욱의 말대로 아들 유진철이 휴가를 온것이다.

이번기회에 결혼식을 하고 안해까지 데리고 귀대하라는 지휘관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군대에서 지휘관의 지시나 명령은 법이다.

《그렇게 하자. 약혼식이요 결혼식이요 따로따로 번잡하게 할게 있니. 당자는 점찍어놓은거구 네가 보고 마음에 들면 오늘 당장이라도 잔치를 할수 있다.》

아버님마음에 꼭 드신다면 전 반대가 없습니다.》

《얘 얘, 그런 봉건냄새나는 소린 하지두 말아. 너와 일생을 같이해야 할 사람인데 아버지마음에만 들어서 되니?》

《그래도 아버지가 다른 처녀는 문간에 달고오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야 했지. 여기 있는 체네가 너무 욕심나서 그랬다.》

유형욱이 점찍어두었다는 처녀는 다름아닌 경림이였던것이다.

서경림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런 청혼이 들어왔을 때 경림은 얼굴이 창백해지고 발밑으로 온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그는 얼굴을 싸쥐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나오지 않았다.

(안돼요! 안돼! 난, 난 그의 반려로 될수 없어요. 앞날이 구만리같은 그에게 무슨 짐이 되자고…)

경림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엎드려 어깨를 떨었다.

유형욱아버님이나 그의 아들인 유진철중대장은 내가 어떤 녀자라는것을 모르고있다. 난 종신 《주의경고》를 받은 녀자다. 인민군대에서 먼길을 가야 할 그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짐이 되는 녀자가 그 청혼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기만이고 량심을 속이는것이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이럴줄 알았으면 유형욱아버님이 병을 털고 일어났을 때부터 발걸음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아니, 우리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수 있단 말인가.

며느리감으로 점찍어놓은 당자가 이렇게 나오자 유형욱은 이번에는 서만호를 찾아와 노성을 터뜨렸다.

《만호, 날 허수룩이 보아도 분수가 있지 자네야 딸 둘을 집안래력을 묻지도 않고 출가시켰다는 무던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이 유형욱이한테만은 왜 이리 박정한가. 내 홀아비라구? 집안에 볼것이 없다구? 딸애를 군복입은 사람에게 시집보내기 싫어서?…》

《형욱이! 그런게 아닐세. 실은…》

두 딸을 너무 훌렁훌렁 출가시켰다던 서만호지만 막내딸혼사만은 선뜻 승낙하지 못하였다. 결곡한 그는 남을 속이거나 그의 짐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여겼던것이다.

《그럼 뭔가? 난 자네 딸의 됨됨을 아네, 이건 분명 자네가 뒤에서…》

《아이구, 아주버님, 그런게 아니라 우리 애는…》

옆에서 듣다못하여 경림이 어머니가 끼여들었다.

《형수님, 멀쩡한 딸애가 어떻다는거요?》

《우리 애는 녀자구실을…》

《여보 로친, 무슨 쓸데없는 소릴!…》

서만호가 소리질렀다.

그날 끝내 누구에게서도 허락을 못 받은 유형욱은 섭섭하기는 하지만 필경 무슨 곡절이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머리를 기웃거리며 돌아갔다. 결국 아들 유진철은 부대장의 지시를 집행 못하고 어깨가 처져 부대로 귀대하였다.

그랬었는데 그후 박두성이 이 일을 알고 진철의 고향마을에 찾아왔다.

《누구라구?! 누가 유진철중대장의 색시감이라구?》

진철이네 집이 아니라 서만호네 집앞에서 승용차를 멈추고 내리며 박두성은 이렇게 큰소리로 찾았다.

영문을 모르고 밖으로 나서던 서만호네 식구들은 눈이 둥그래졌다. 모자채양에 누런 줄이 건너간 장령이 서있지 않는가.

그들중에서도 경림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어푸러질듯 달려나갔다.

그는 군사복무시절처럼 사단장앞에 멈춰서서 차렷자세를 취하고는 거수경례를 하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보고하듯이 했다.

《사단장동지, 련대군의소 간호장 서경림은…》

《좋아 좋아, 아직 군복을 입었을 때의 그 정신, 그 모습대로야.… 세상이란 넓으면서도 좁다더니 경림이가 유진철중대장의 이웃리에 살고있을줄이야.… 위훈을 세우고 제대된 부대 대원이 어데 가 사는지도 모른 이 부대장을 욕많이 하라구.…》

뜻밖의 박두성의 출현으로 아버지조차 미처 모르고있던 서경림이 발휘한 전투위훈과 혁명적동지애의 소행이 고향마을에 구체적으로 짜하게 알려지게 되였다. 동네사람들은 놀라와하였다. 경림을 선망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제대되여 리인민병원 간호원으로 일하면서 고향마을사람들과 유형욱에게 기울인 지극한 정성은 그 바탕이 이처럼 깨끗하고 진실하고 웅심깊은데서부터 꽃펴난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치하하였다.

그통에 유형욱은 며느리감을 정말 잘 골랐다는 인사를 비발치듯 받았다.

그런가하면 경림이 부모들의 소행은 딸이 세운 공로를 내색하거나 재세하지 않고 오히려 제 자식이 육체적으로 변변치 못해 남의 짐이 된다면서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심없고 량심적인것으로 하여 듣는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이렇게 박두성이 나타나서 유형욱쪽에서는 어렵지 않게 며느리를 맞았다. 동네사람들의 축복속에 그들은 결혼하였다. 참으로 우리 나라가 아니고서야 있을번한 일인가!

서경림은 유진철이와 가정을 이룬 후 행복한 나날을 보내였다.

그들사이에 딸 철림이까지 태여나 집안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만 갔다.

그런데 철림이를 본 후 얼마 지나서부터 우려하던 경림의 몸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은 제 몸을 생각지 않고 너무 혹사해서 그래.… 내 가족소대장에게 말해주겠대도 절대로 그러지 말아달래,… 좀 쉬염쉬염 일하래도 말 안 들어, 탈이 날수밖에 없잖소.

할수 없지. 이제부터는 내가 부대일을 좀 못해도 집안에서 안해시중을 들수밖에…》

《아이, 철림이 아버지, 갑자기 무슨 모자라는 사람같은 소릴 해요? 누가 뭐…》

《됐소, 됐소. 나도 이제부터는 옹고집쟁이 서경림동무때문에 모자라는 사람이 돼보자는거요.》

유진철이 얼굴이 컴컵해서 퉁명스럽게 이렇게 나오자 서경림은 당황해났다.

《내가 잘못했어요. 정말이예요. 이제부터는 당신 하라는대로 다 할테니…》

《그럼 또 한번 속아봐?》

《속다니요? 정말이예요.》

《허허… 다시 약속했소. 절대로 무리하면 안된다. 병원에 자주 가고 약도 제시간에 먹는다. 이 약속을 어길 땐 모자라는 사람이 된다. 자, 손가락을 걸기요!》

《아이, 애들처럼 손가락은 무슨… 철림이가 보겠어요.》

《학교에 간 철림이가 보긴 어떻게 봐.… 자.》

유진철은 정말 손가락을 걸 자세로 안해앞에 손을 내밀었다. 서경림은 그러는 남편의 손을 자기의 두손으로 꼭 잡아 볼에다 가져다대며 눈을 감았다.

《지키겠어…요. 당신의… 짐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그러는 그의 두눈굽으로는 맑은 눈물방울이 맺혔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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