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12. 간계냐 무지냐

 

(3)

 

어느날 량세봉에게 중국의 무술가들의 조직인 《대도회》의 두령 량석복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이름난 대법사인 량석복이 경을 외울 때에는 총칼도 들어가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는 산동사람으로서 량민들의 안정을 도모하는 영웅호걸이라고 항간에 전해졌다. 어렸을 때 량석복은 무예를 배우고 스무살에 고향사람들과 함께 살길을 찾아 림강현으로 왔다고 한다.

어느해 이 지대의 한 부자가 마적떼들을 막고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산동성에서 온 《대도회》의 대법사를 데려와서 자기의 측근들에게 무예를 가르치게 하였다. 이 소식이 린근에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대도회》에 참가하여 무예를 익혔는데 산동출신인 량석복이도 이때 대법사의 무예까지 배워 자기의 스승을 훨씬 릉가한 도사로 되였다.

당시 림강과 통화일대에는 《대도회》의 위력으로 한동안 치안이 유지되고 평화로와졌다. 이에 겁을 느낀 관청이 배신적으로 《대도회》회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량석복을 비롯한 《대도회》의 두령들이 나서서 관청과 교섭하였으나 관청에서는 경찰들을 출동시켜 그들을 압박하였다.

드디여 《대도회》성원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바빠난 당시의 중국 반동군벌은 봉천의 군대를 풀어 《대도회》봉기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량석복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그후 여기 깊은 산중에 들어와서 변성명을 하고 농사를 짓고있었다.

이러루한 소식을 전해들은 량세봉은 그를 중심으로 이미 무예를 닦은 《대도회》의 사람들을 항일운동에 내세우기 위하여 량석복을 찾아갔다.

량세봉이 그와 만나 술 몇잔 나누고보니 그는 듣던바대로 매우 순박해보이는 사람이였다.

량세봉이 자기를 소개하고 독립군에 와서 무예를 가르쳐줄것을 부탁하자 자기는 조선사람들의 항일운동을 지지하지만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없고 농사군으로 말년을 편안히 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는 량세봉의 소탈한 품성에 반하여 중국이나 조선의 량씨는 다 한피줄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제자들인 여러명의 농부들을 불러 무예를 겨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량세봉은 무술의 위력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뒤날에 꼭 찾아와 배우겠다고 하고는 작별하였다.

그는 량석복을 잘 설복하면 그가 항일에 나설수 있고 그가 항일운동에 나서면 량석복을 전설적인 위인처럼 여기는 수많은 《대도회》성원들을 항일전에 나서게 할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어느날 량세봉은 자위단의 훈련을 도와주고나서 왕동헌에게 이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왕동헌은 량세봉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 왕동헌은 그다음날 량세봉과 함께 여러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그가 살고있는 곳으로 갔다.

량석복은 량세봉이 도착하자 이 며칠 손꼽아 기다렸다고 하면서 반가와하였다.

그는 중국의 량심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재능과 힘과 재산을 털어내여 일본놈들을 쳐몰아내야 한다는 량세봉의 이야기를 심중하게 들었다.

왕동헌도 이렇게 타일렀다.

《이제는 일본놈들을 치는것이 조선애국자들의 몫만이 아닙니다. 중화민족이 지금 일본놈들의 총칼에 짓눌리고있는데 어찌 출중한 재능을 가진 당신같은 명인들이 앉아서 대세를 관망하고만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조선애국자들의 뒤를 따라 힘을 합치고 재주를 합쳐 무엇보다 저 강도같은 무리들을 쳐몰아내야 합니다. 조선의 애국자들이 목숨걸고 싸우는데 중국땅의 주인인 우리가 달려드는 왜놈들앞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으면 안되지요.》

두사람이 겨끔내기로 토하는 열변에 마침내 량석복도 항일운동에 동참할것을 결의 다지였다.

량세봉은 그에게 부대를 조직하고 지휘체계를 세우는데 필요한 경험을 들려주어 그가 자신심을 가지고 부대를 조직하고 지휘하도록 성심성의로 도와주었다.

량석복은 그후 자기의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항일운동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고 그들을 묶어세웠다.

이렇게 되여 흥경현의 주변마을에서 수백명의 《대도회》성원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량석복은 그들로 홍기, 청기, 백기, 황기 등 4기군을 조직하고 자기의 의형제들을 매 기군의 사령으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부대의 이름을 그냥 세간에 신비하게 전해지는 《대도회》라고 불렀다.

이들은 칼과 함께 길이가 팔척에 앞에 붉은 술이 달린 창을 가지고 다니였다. 창을 만드는데 필요한 철이 적은 량이 아니였다. 량세봉은 자기의 대원들을 사처에 파견하여 쇠붙이를 수집하도록 하고 왕동헌이 그 자금을 보장하였다.

량석복이네가 데려온 야장쟁이들이 산속에 가마를 걸어놓고 철을 녹여 칼과 창을 만들었다.

이렇게 량세봉이 중국사람들의 무장부대조직에 적극 관여하여 남만에서 일본제국주의와 대결할 진을 꾸려나갈 때 이를 내탐한 일본놈들도 서두르고있었다.

일제는 심양을 점령하자 봉천지방 자치위원회를 조작해냈다. 그리고 저들의 괴뢰를 성장으로 하는 성행정부를 조직하고 뒤이어 각 현의 현장들도 제놈들의 괴뢰로 바꾸어 앉혔다. 일본놈들은 또한 4 000여명의 병력으로 동변도의 모든 현들을 관할하도록 동변도방위사령관 우지산을 협박, 공갈, 매수하여 제놈들의 동변도보안위원회 사령관으로 앉혀놓았다.

우지산은 1931년 10월 13일 일제놈들이 시키는대로 조선독립군과 조선혁명당 성원들을 체포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독립군과 조선혁명당의 간부들과 당원들을 체포학살하는 대검거소동이 벌어졌다.

압록강 남쪽에 주둔하고있던 일본수비대들도 강을 건너와 합류하였다.

살벌한 공포분위기와 탄압속에서 1931년 12월 중순에는 조선혁명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독립군사령부의 주요성원들이 거의다 체포되였다. 이것은 남만에서의 반일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일본군경과 만주국괴뢰들의 탄압으로 도처에서 조선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이 체포되여 처형되였다. 지휘부가 거지반 사라진 독립군의 여러 부대들이 일제 《토벌대》들에게 무리로 녹아났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이미 대오를 떠나갔던 석태무가 200명에 가까운 대원들을 거느리고 왕청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왕동헌의 자위단에 가서 일본놈들의 탄압책동에 맞설 대책을 의논하던 량세봉은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영으로 돌아와 석태무를 만났다.

석태무는 여기로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그에게 이야기하였다.

리진택이 적들에게 체포된 후 공산세력휘하에 들어간 무장부대들은 나날이 약화되여 파멸직전에 이르렀다.

공산계의 엠엘파잔여성원들은 령도권쟁탈싸움으로 서로 반목질시하면서 매일같이 소동을 벌렸다.

석태무는 날이 지나갈수록 공산세력에 대하여 극도의 환멸을 느끼게 되였다. 그는 이들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조국의 독립도 공산주의건설도 지상공론이라는것을 깨달았다.

특히 9.18사변후에 공산계의 상층인물들은 독립운동의 승리에 대하여 신심을 잃고 무장부대의 무장활동을 저들에 대한 신변보위사업으로 국한시킬것을 요구하였다.

공산주의파쟁군들에 불과한 그자들의 책동에 혐오감을 참을수 없었던 석태무는 새롭게 조성된 정세에 맞게 항일운동을 더욱 고조시키기 위하여 여러날 고민하다가 체면과 수치감을 뒤전에 밀어내고 다시 독립군으로 돌아왔던것이다.

석태무가 돌아서자 다른 중대의 대원들도 100여명가까이 줄줄이 따라왔다. 모두가 고행의 흔적이 력력한 모습들이였다.

《잘 왔네. 난 기다리고있었네.》

량세봉은 과거를 탓하지 않고 이 어려운 시기 대오에 다시 돌아온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의 중대 대원들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중에는 천마산무장대에서부터 낯을 익히고 싸움을 함께 벌려온 전우들도 많았다.

석태무의 밑에서 부중대장으로 있는 최윤구와 소대장으로 있는 오금수도 오래전부터 량세봉과 면식이 두터운 사람들이였다. 오금수는 량세봉을 소 한짝까지 매놓고 사는 부자로 오인하고 기부금 30원을 내라는 독립단의 령까지 만들어내게 하였던 사람이였다. 그것때문에 대장에게서 단단히 경을 쳤지만 그게 또 인연이 되여 량세봉과 가까이 지내왔던것이다.

오금수는 량세봉을 만날 때마다 그 일을 거들며 죄스러워하군 하여 량세봉을 옹색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최윤구도 1924년경에 독립군에 들어온 오랜 대원으로서 석태무와 함께 공산계렬을 따르면서 석태무를 꼬드겨 량세봉도 그쪽으로 끌어가려고 은근히 왼심써왔었다. 그는 량세봉의 인간됨에 무척 반해있었던것이다. 그런 최윤구인지라 지금 량세봉에게 허리를 숙이며 자신을 심심히 뉘우쳤다.

《량중대장, 파쟁군들 구호에 눈멀고 가볍게 움직였던 우리를 용서해주니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 형제들! 난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과거는 과거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시련을 겪고있습니다. 우리의 지도부가 완전히 분해되였고 우리의 력량도 퍼그나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힘을 합치자, 단결하자, 이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독립운동의 초행길에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였던 김형직선생님께서 남기신 현명한 금언입니다.

나는 지금 단결의 폭을 넓혀 중국의 반일운동가들과도 손을 잡고 싸우는것이 오늘의 시대적요청이라는 생각에서 이 사업도 다그치고있습니다.

중국사람들과도 손을 잡고 싸우려고 하는데 동족이며 어제날 우리의 전우들이였던 당신들이야 더 말할게 있겠습니까. 우리는 옛일을 다 흘려보내고 항일을 위해서 손을 잡으려고 하는 석태무중대장과 최윤구부중대장, 오금수소대장 그리고 여러분들의 의사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환영합니다. 우리 독립군도 크게 후퇴하고 대오가 약화되였지만 중국의 벗들과 함께 여기 남만에서 항일세력을 두배, 세배로 커지게 하였으며 나날이 그 수가 불어나고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손실에 비관을 말고, 어제날의 실책에 주접이 들지 말고 앞을 내다보며 승리를 위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굳세게 싸워나갑시다!》

량세봉의 길지 않은 연설에 석태무와 그의 대원들은 크게 감동되여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다.

사실 그들은 이곳으로 오면서 량세봉과 독립군대원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대해주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무척 고심을 하였던것이다.

량세봉은 부상병들을 따로 병동에 들게 하고 치료를 받도록 하였으며 식량도 나누어주고 군복도 해결해주어 석태무의 부대가 쉽게 체모를 갖추도록 도와주었다.

량세봉은 석태무가 자기 부대를 데리고온것을 두고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석태무의 부대말고도 만주의 각지에 흩어져있는 조선독립군의 여러 부대들이 지도부성원들이 체포되자 왕벌을 잃은 벌떼처럼 갈팡질팡하고있을것이다. 빨리 그들을 안정시키고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진 독립운동을 수습하여 일본놈들의 전면적인 공세에 대처하자면 한시바삐 지도부를 새로 조직하여야 한다. 이 단계에서 더는 어물거리거나 지체해서는 안된다. 시간을 놓치면 독립운동이 영영 파멸되여 구원될수 없을것이다.

량세봉이 이에 대하여 명색이나 다름없는 지휘권을 잡고있던 참모장 김한석과 의논하였다.

김한석은 반변하였던 석태무를 받아들인것도 심히 잘못된건데 어중이떠중이들을 다 데려다가 무슨 변을 당하자고 하는가 하면서 머리를 떨었다.

량세봉은 더 의논할 멋이 없어 이내 돌아섰다.

고인허를 찾아간 량세봉은 그에게 한시바삐 흩어져있는 독립군과 리진택의 부대사람들을 불러들여 새로운 지도부를 조직하자고 절절하게 제기하였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을 늦잡으면 남아있는 독립부대들이 왜놈들과 중국군벌들에게 각개격파되고 이 남만에서 영영 솟아나지 못합니다. 될수록 빨리 부대를 일떠세워야 합니다.》

고인허는 그의 말을 심중하게 듣더니 이렇게 무거운 어조로 대꾸하였다.

《량중대장의 말이 일리가 있소. 그런데… 지금 다 사그러진 불무지에서 다시 타오를 불씨가 도대체 몇개나 되겠소. 그 공간을 타고 왜놈밀정들이 쓸어들수 있소. 난 오광이놈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오. 괜히 미꾸라지 몇놈 건지려 하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치지 않을가?》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왜놈밀정이 기여들가봐 흩어진 부대들을 그냥 놔두면 크게 타격을 받을건 우리 독립군들입니다.》

《음… 하여간 나도 좀 생각해보겠소.》

고인허는 길씀한 얼굴을 잔뜩 찌프린채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량세봉은 고인허한테서까지 물에 물탄것 같은 대답을 듣자니 맥이 풀렸다. 애당초 이렇게 뼈대무른 인간들과 말을 붙인게 괜한짓같았다. 물러설수는 없었다. 김한석이나 고인허를 만나보니 정말 사태는 방임해서는 안되며 이제는 자기 결심으로라도 결단을 내리고 단호히 움직여야 할것 같았다.

아무 일에서나 기수가 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내 한몸을 불태워서라도 마지막숨을 몰아쉬고있는 독립군을 다시 세울수 있다면 그까짓 체면이나 동의가 무슨 필요인가.

량세봉은 자기 결심으로 흩어진 부대들에 파견원들을 보내기로 하고 강서명을 찾아가 이에 대하여 밝히였다.

그자리에는 강연희도 있었다. 자리에 누워있던 강서명은 대뜸 희색이 만면하여 쌍수를 들어 찬성하였다.

《옳네, 벽해! 좋은 일이요. 그리고 한시도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말 지당하이. 찬부를 묻고다닐 여지도 없는 일이니 서둘러 실행하게.》

《오빠, 나도 전적으로 지지해요. 기회를 놓치면 오빠의 주장대로 이 남만에서 독립군도 독립운동도 영영 꺼질수 있어요. 아버님말씀이 옳아요. 찬부를 묻느라 더 다니지 마세요.》

강연희도 선뜻 량세봉의 립장에 찬성하였다.

 

련 재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5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6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7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8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9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0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1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2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3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4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5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6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7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8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9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0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1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2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3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4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5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6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7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8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9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0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1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2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3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4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5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6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7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8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39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0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1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2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4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5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46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마지막회)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