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12. 간계냐 무지냐

 

(2)

 

이날 새벽 량세봉은 김한석과 함께 중대를 인솔하고 동창구에 있는 리진택의 병영으로 접근하였다. 그곳에서는 공산계렬의 엠엘파가 주도권을 잡고있었다.

량세봉은 동창구주변에 있는 수수밭에 도착하자 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이 싸움은 바보들끼리 벌리는 싸움이요. 저 사람들이 오늘 저녁 우리에게 불질을 걸어온다니 사전에 그걸 응징하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손을 쓰는 싸움이요.

모두가 똑똑히 아시오. 절대로 저 사람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되오. 공산주의든 뭐든 관계없이 저들도 일본놈들과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한사람이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재삼 강조하오. 여기서 한시간정도 총소리나 내고 돌아갑시다. 이러한 싸움은 헛된것이라는것을 저들에게 알려주는것이 이번 싸움의 목적이요. 다들 이걸 알고 함부로 총탄을 날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소.》

그러나 량세봉이 간곡하게 호소하고 엄엄하게 명령하였건만 사태는 그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끝나지 않았다.

일단 총탄을 날리는 싸움은 결코 군사유희가 아니였다.

싸움이 시작되고 총탄이 비발쳤다. 부상자들이 생기고 지어 희생자도 났다. 더구나 새벽녘에 도착한 중국국민당의 동북군 세개 중대력량까지 투입되자 싸움은 격렬한 류혈전으로 번져졌다.

량세봉은 한시간정도 교전을 벌리다가 일방적으로 사격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련이어 《철수!》 하고 피가 터지도록 소리질렀다.

량세봉의 중대가 교전장에서 급하게 빠져나오자 중국국민당군도 슬금슬금 뒤걸음쳤다.

《왜 철수요? 맞붙은바에는 깨깨 쓸어버려야지?!》

김한석이 뛰여와 당장 일을 낼듯 고함을 질렀다.

《뭣이? 쓸어버린다구?》

량세봉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마주 고함쳤다.

《그럼 뭣때문에 왔소? 저놈들이 다시 살아서 덤벼들지 못하게 해야 할게 아닌가?!》

량세봉이 버럭 화증머리가 나 여전히 어성을 높였다.

《참모장, 내게 뭘 내리먹이자는거요?! 그래 공산세력의 군대는 왜놈을 치자는 군대가 아닌가? 그 사람들을 죽여버려 덕볼게 뭐 있소?! 저 사람들을 죽이는건 장차 저 사람들이 쓸어버릴 왜놈들을 도와주는것으로 되오. 안되오. 당신이 뭐라든 난 더이상 이 싸움을 하고싶지 않소!》

량세봉은 김한석이 두말 못하게 단호하게 주장을 폈다.

뒤늦게 국민당군과 함께 왔던 고인허가 생각밖으로 가렬해지는 싸움을 보고 기겁하여있다가 량세봉이 눈에 달이 올라 열차게 부르짖는 말에 선뜻 동의를 표시하였다.

《옳소, 옳소. 싸움을 더는 벌려서는 안되겠소. 이건 도가 넘었단 말이요. 당초에 이런 싸움을 하자는건 아니였지. 중대장, 빨리 중대를 수습하고 돌아갑시다.》

이 싸움은 조선독립운동에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기였다.

두 세력은 이 싸움으로 하여 급속히 약화되였으며 만주의 조선사람들속에서 신망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후과를 낳게 하였다.

싸움을 마치고 돌아온 량세봉은 강서명의 앞에 가서 완고하고 보수적이며 사기적인 인간들의 장단에 놀아나 머저리짓을 한 자신의 망동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뉘우치고 탄식하였다.

《정말 이렇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그저 리진택의 부대가 우리한테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그들에게 겁을 주어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총소리를 내느라고 찾아갔던것입니다. 그런데 글쎄 이 싸움이 어떻게 벌어졌습니까. 제가 눈에 곰팽이가 껴서 천추에 용서 못할 동족상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량세봉은 이렇게 자기를 타매하였다.

강서명도 량세봉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불편한 몸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더니 베고있던 목침을 가지고 방바닥을 두드리면서 고함을 쳤다.

《벽해! 무슨 망동질을 했나. 어떻게 다름아닌 벽해가 그짓을 한단 말인가? 벽해는 나라와 백성들앞에 죄를 지었네. 내가 그만큼 이야기해주었는데 돌아서서 그짓을 앞장에서 벌리다니! 이건 그저 덮어서 넘길 문제가 아닐세. 임자가 요사스러운 간계에 넘어갔나 아니면 임자가 부질없는 싸움을 가려보지 못할 정도로 무지스러워졌나?》

강서명의 추상같은 질책이 량세봉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들었다. 량세봉은 무릎을 꿇고앉은채 돌처럼 굳어져서 눈물만 떨구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리진택은 새롭게 꾸린 공산계렬의 무장대의 군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부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부근에 있는 군용창고를 습격하고 돌아오다가 왜놈들의 매복에 걸려 평양감옥에 압송된 후 고문끝에 옥사하였다.

하늘을 찌를듯싶던 독립운동세력의 기세는 쭈그러들고 대오는 급속히 약화되였다. 많은 대원들이 대오를 떠나갔다.

한편 흥경현을 중심으로 독립군이 분쟁에 말려들어 내부가 복잡하고 전투력이 비할바없이 약화된것을 내탐한 일제가 이 기회에 독립운동을 완전히 괴멸시키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일본특무대가 뻐젓이 왕청문에 나타나 조선혁명당원들을 잡아가고 가족들을 고문하고 학살하였다.

《선민부》가 량세봉을 선두로 한 조선독립군에 완전히 제압당한 다음 그를 대신해서 일본놈들이 또다시 만들어낸 《보민회》라는 무장한 일본인들이 수시로 독립군이 세운 화흥중학교를 습격하고 조선혁명당의 지도자들을 암살하였다.

이렇게 되자 량세봉은 중대를 이끌고 각지에 솟아난 《보민회》지역본부들을 습격하는 피어린 싸움을 벌려나갔다.

일본경찰들은 만주국 군벌들과 결탁하여 조선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한 수색작전을 대대적으로 벌려놓았다.

놈들의 탄압이 강화되자 량세봉은 조선독립군의 잔여부대들을 몇개 조로 편성하여 산중깊이에 대피하도록 하고 자신은 한개 부대를 인솔하고 통화현일대에 가서 왜놈경찰들을 기본과녁으로 하는 기습작전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량세봉의 승전소식이 련일 왕청문에 날아들었다. 그때마다 움츠러들고있던 조선혁명당 중앙본부와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출로와 희망을 량세봉에게 걸게 되였다.

1931년 9월 18일 일본관동군이 심양 북대영서쪽에 있는 철도를 제놈들이 폭파하고는 그 책임을 중국측에 넘겨씌우고 만주군벌의 본거지인 심양에 대규모의 포격을 가하는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경악케 한 9.18사변이였다.

오래전부터 중국과의 전면적인 침략전쟁을 암암리에 준비하여온 일본놈들은 하루밤사이에 심양, 장춘 등 동부의 주요도시를 점령하고 얼마후에는 동북의 전 지역을 제놈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흥경현에도 심양에서 패전한 중국동북군이 쓸어들어왔다. 그들은 9.18사변의 결말을 이곳 주민들에게 알리면서 이제는 중국동북지역은 일본의 식민지로 되고 인민들은 일본의 노예로 전락되였다고 하면서 눈물을 쭈룩쭈룩 흘렸다.

정세가 급변해지자 량세봉은 자기의 중대를 거느리고 왕청문으로 돌아왔다.

량세봉은 중국인민들도 반일투쟁에 떨쳐나서는것을 보고 정식 조선독립군의 대표자격으로 왕청문으로 쓸어들어온 동북군을 찾아갔다. 그는 여기서 흥경현성을 방위하며 일제를 반대하여 공동으로 항일투쟁을 벌려나갈것을 제의하였다.

그의 제의를 동북군에서는 쾌히 접수하였다.

이렇게 되자 량세봉은 앞으로 보다 장기적이며 대대적인 대결전이 벌어지리라는것을 예견하고 집으로 찾아갔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집에 들리기 힘들리라는 생각때문이였다.

딸 귀녀가 《아빠, 아빠.》하면서 고사리같은 손가락으로 수염이 덮인 아버지의 두볼을 쓰다듬고 어리광을 부렸다.

해죽거리며 안겨드는 딸의 해맑은 얼굴을 들여다보느라니 어쩐지 눈굽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일본놈들은 날을 따라 그 힘이 커져가고 승승장구하고있다. 이놈들은 한때 로씨야와 청국까지 굴복시키고 조선을 통채로 타고앉더니 이제는 중국의 광활한 령토마저 무력으로 병탄하고있다. 정말 우리가 일본놈들을 이기는 날이 언제일가. 언제면 일본놈들을 몰아내고 철산땅에 돌아가 마음껏 농사지으며 이애에게 아버지구실을 잘해줄수 있을가.

윤재순은 전에없이 비애에 젖어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입술을 옥물고있었다. 어쩐지 남편의 기색이 심상치 않고 그 무슨 슬픔을 가슴에 가득 안고있는듯싶었던것이다.

《편치 않으세요?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나요?》

윤재순이 남편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아니요. 이애를 보니 마음이 산란해지는구만.》

량세봉은 윤재순에게 애를 도로 넘겨주며 애써 웃어보였다. 그는 중대의 대원들과 함께 지고온 짐을 풀어놓았다. 그것은 중대대원들의 옷과 양말들이였다.

그전에도 중대가 가까이 있을 때면 노상 윤재순과 량시봉의 처가 중대안의 빨래감을 걷어가지고 와서 며칠동안 품을 놓고 빨고 말리워 풀을 먹이고 다림질까지 해서 가져가군 하였다.

량세봉은 저녁상을 물리고나서 식솔들이 다 모이자 심중하게 말을 꺼냈다.

《지금 일본놈들이 동북의 전 지역에 자기네 군대를 대대적으로 들이밀고있다. 조만간에 여기 흥경현에도 그놈들이 기여들것은 뻔하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의 본거지로 되여온 왕청문도 그놈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될것이다. 왜놈들이 여기를 타고앉으면 우리 식솔들이 그놈들의 피해를 보게 될것은 명백하다. 그래서 난 인차 이곳을 뜨는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그 소리에 동생들은 다 찬성하였다.

김씨가 물었다.

《그러면 독립군은 영영 왕청문을 떠나게 되느냐?》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일대를 기본거점으로 하고 싸우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부터는 산속에 본거지를 정하고 부단히 움직이면서 싸워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니 가족들을 지켜줄 형편이 못됩니다.》

그러자 김씨가 아들의 의사를 헤아리고 분명하게 자기의 주장을 내놓았다.

《다들 떠나거라. 그런데 나와 귀녀의 모녀는 안 가겠다. 그래야 맏이가 드문드문이라도 집에 들릴게 아니냐? 내 이제 살면 몇해 더 살겠다고 아들도 보지 못하고 산에 숨어 살아가겠느냐. 그렇게 살아서야 무슨 멋이 있겠느냐?》

김씨의 고집스러운 주장에 누구도 반대의사를 내놓지 못하였다.

김씨의 주장대로 며칠후 김씨와 윤재순모녀는 왕청문의 다른 부락으로 이사시키고 나머지식구들은 멀리 청원현으로 이사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윤재순은 또 딸을 낳았다.

소식을 들은 량세봉은 대원 한명을 보내여 어머니와 처자들이 청원현으로 가도록 하였다. 김씨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아들의 말을 따랐다.

더구나 김씨는 가문의 자손들을 보존해야 한다는 대원의 말에는 두말을 못하고 집을 나섰다.

그때부터 량씨집안은 다들 량가라는 성대신 김씨나 최씨, 정씨로 엇바꾸어 성갈이하며 계속 집을 옮겨가면서 살아야 하였다.

가족모두가 고난스러운 생활의 가시밭을 헤쳐나갔다.

벌써 룡정에 설치된 일본령사관에서는 량세봉과 그 가족을 체포하기 위한 수배령을 내리고 그를 전담하는 특무집단까지 만들어놓았다. 바로 이 특무집단의 책임자가 고향에 있던 박지주의 아들 박창해였다.

가족들은 놈들의 체포소동이 악랄해질수록 량세봉이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고있다는것을 알고 꿋꿋이 살아나갔다.

9.18사변후 동북지역의 중국사람들도 항일운동에 떨쳐나섰다.

왕청문의 구장이였던 왕동헌은 지방유지회의를 소집하고 《항일투쟁결의》라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동변도일대에서 명망이 높던 왕동헌이 항일구호를 내걸자 왕청문일대에서는 짧은 시일안으로 천여명의 중국사람들이 그의 두리에 뭉치게 되였다. 그들은 무장부대를 조직하고 《료녕농민자위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왕동헌은 무장을 구입하기 위하여 자기의 땅과 주택까지 내놓았다. 그의 애국적헌신에 감동된 이 일대의 부자들도 곡식을 기부하고 무기를 사들여서 왕동헌에게 넘겨주었다.

자위단은 처음에는 일제의 이목을 돌리게 하느라고 《마적토벌》과《자위》를 표방하였다.

량세봉은 왕동헌을 적극 도와주었다.

그는 왕동헌에게 적지 않은 무기와 탄약을 무상으로 넘겨주고 그들에 대한 군사훈련도 책임지고 도와주었다. 또한 중대에서 학식이 있고 전투경험이 풍부한 소대장들과 대원들을 그들에게 파견하여 군사훈련을 시키고 한시바삐 실전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주었다. 어떤 때는 자신이 직접 강의에 출연하여 지난 시기에 벌려온 수많은 전투담을 구수하게 들려주어 자위단 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싸움하는 요령을 배워주었다.

량세봉이 강의에 나설 때면 왕동헌도 늘 앞자리에 앉아서 수첩에 요점을 적어가며 열심히 들었다.

량세봉은 자위단을 훈련시키면서 더 많은 중국사람들을 항일운동에 참가시키는것이 독립군대오를 늘이는것 못지 않게 필요하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였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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