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6 장

2

 

이러던 사향이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겼다. 뜻밖이였다.

자기의 불찰이라고 인정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남을 함부로 의심하거나 속단할수도 없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례상사이지만 조선에 와서는 이런 일이 없을줄 알았다. 자기도 모르게 각성이 무뎌졌는지 모른다. 그것을 누가 노렸을가?

사향은 몸에서 한시도 떼지 않고 들고다니던 손가방을 잃은것이다.

그 가방안에는 거액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그래도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쓰려 했던 미딸라가 있었다.

돈이 없으면 하루한시도 살아갈수 없고 밖에 나선다는것은 곧 자기가 걷는 한발자국한발자국에 돈을 뿌리는것이기도 한 미국사회이고보면 들고다니는 돈가방이야말로 진짜 사람의 생명이고 명예이고 가치이기도 했다. 평양에서라고 다를수 없고 돈을 노리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수 없었다.

돈을 잃은것 못지 않게 가슴아픈 일은 바로 그 가방에 대를 물려오며 가보처럼 전해오고 이번 평양에 오면서 행여나 하고 기대를 가졌던 그 사진이 들어있었던것이다.

언제 어데서 어떻게 하다가?…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도무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평양에 와서는 지금까지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에서 그처럼 친절히 맞아주고 참관시켜주고 봉사하면서도 돈, 돈 하며 손을 내밀거나 돈때문에 큰소리를 치고 얼굴을 붉히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무슨 다 《금욕주의》자라고 돈을 외면하겠는가, 이제 장부에 다 적어두었다가 나중에는 반드시 회계하자고 할것이다. 그것을 나쁘다고 할수 없다. 응당한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돈가방을 잃었다고 궁한 소리를 해야 할가, 본사에 지급으로 련락할가.

아니 , 아직은 좀더 두고보자.

사향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기 바로 전까지의 자기 행동을 돌이켜보며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비행장에서 친절히 맞아주던 일군으로부터 안내원 혜정이, 호텔관리원처녀… 이렇게 꼽아나가다가 소스라치듯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무슨 천벌을 받을 생각을 하는가. 그들을 의심하다니… 그래도 혹시? 돈보고 침뱉는 사람 없다고…

아니, 그 순결하고 마음씨 착하고 따스한 인정미를 가진 안내원을 두고 그런 치졸스러운 생각을 하다니. 그를 의심하는것은 나자신이 도적이고 짐승이라는것을 자인하는것이다. 그를 의심하는것은 선친들의 고국 인민들에 대한 모욕이고 죄되는 일로 된다.

나의 불찰로부터 다시 추리해보자.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어데서 실수한것인가.

사향은 이런 일이 생길줄 알았으면 평양에 도착하는 날로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호텔 가까운 은행이나 저금소같은 곳에 돈을 맡길수 없겠는가를 알아보고 보관시킬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변사향자신이 이미 그 어느 나라에 가든 스스로 도리머리질을 하며 부정해버린 방법이 아닌가!

사향에게는 자기의 어린시절 선친들이 미국땅에서 겪은 믿기 어렵고 몸서리치는 체험이 아픈 상처로 지금껏 박혀있었다. 눈을 펀히 뜨고도 생눈알을 뽑히는 나라, 눈을 잠간 감으면 코를 베가는 사회, 서로 속이고 서로 빼앗아내고 서로 죽일내기를 하는 사회악으로 하여 사랑도, 하나밖에 없던 어린 자식마저 다 잃은 사향이 아니던가.…

어느해 겨울 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날이였다. 사향의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끝에서 피가 나도록 일하여 마련한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집에서 수십리 떨어진 애틀란타시내로 갔다. 집안에서 돌릴수 있는 간단한 손기계같은것을 한대 사가지고 소소한 가공품같은것을 만들어 생활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 기계를 사자면 꼭 도회지상점에 가야 했다.

드살찬 함경도녀인인 할머니는 이국땅에서 당하는 수모와 가난을 털어버리려면 록록치 말아야 하고 이발을 사려물고라도 오륙을 놀려 벌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것 같았다. 아들, 며느리가 그렇게 그만두라고 만류하는것을 뿌리치고 길을 떠났다.

《어머니혼자몸으로 별일없겠습니까?》

아버지가 걱정하였다.

《아애비야, 누구와 같이 가면 또 하루를 공치게? 아직은 내 기력이 펄펄해.… 사향아, 추운데 어서 들어가거라. 내 인차 오마.》

할머니는 손녀의 머리를 몇번이나 쓸어주고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는 돈꾸레미를 싼 보자기를 허리에 다시 꼭 처맸다.

할머니가 애틀란타시내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눈길이 미끄러워 걸음이 지체된것이였다. 일만 바로되면 그날로 돌아서자고 한노릇이 케가 글러졌다. 하루밤 묵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할머니는 호텔같은데 들 형편은 못되고 그렇다고 얼굴을 익힌 집도 없었다. 하는수없이 아들과 함께 시내에 나왔을 때 한두번 들려보았던 려인숙을 찾아갔다. 방을 받아 들어가니 어둑시그레한 전등이 켜져있는 안에 백인, 흑인녀자들 여럿이 웅크리고도 있고 누워도 있었다. 들어서는 녀인을 보자 침울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중에서 구석쪽에 앉은 녀자의 눈에서는 살기가 번뜩이였다.

할머니는 가슴이 섬찍하였다. 배에 띤 돈보자기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갔다. 그러자 방금전보다 더 많은 눈길과 낯짝들이 호기심을 띠고 할머니의 아래우를 훑었다.

(저년들이 내가 몸에 돈을 띠고있다는것을 눈치챈것이 아닌가. 밤새 이것을 그러안고 앉아있을수도 없고…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왔더니 벌써부터 온몸이 노그라지는데 어쩌면 좋담. 잠든 다음 어느 년이 손을 뻗쳐 풀어가지고 달아나면…)

소름이 오싹 돋고 근심이 큰산같아졌다. 이럴줄 알았으면 사람을 붙여주겠다던 아들의 말을 들을걸 그랬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러다가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자리에서 움쭉 일어섰다. 려인숙주인에게 돈을 맡겼다가 아침에 찾자는것이였다. 물론 보관료는 물어야겠지만 통채로 돈을 도적맞힐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았다.

할머니가 방안에서 일어서자 먹이를 놓치기라도 한듯 락심천만해하는 년들이 없지 않았다.

《이 자리는 없애지 말게. 잠간 나갔다 오겠으니…》

할머니는 방안년들에게 눈길을 쏘며 오금을 박아놓았다. 그리고는 방을 나서 려인숙주인놈을 찾아갔다.

양인치고는 키가 작달막하고 구레나룻을 두볼에 꼬아붙이다싶이 한 주인이 처음에는 마뜩지 않아하고 심드렁해있더니 돈소리가 나오자 눈알이 반들반들해지고 별로 삽삽해졌다. 그는 자기 방에 들어선 늙은이 뒤에 더 다른 사람이 없는가를 흘끔흘끔 살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일어나서 방금 할머니가 들어온 나들문을 빼써 열고 밖을 살핀 다음 다시 꼭 닫았다.

《조선할마니, 우리 려인숙이 불편하지 않습네까?》

《불편하든 안하든 난 하루밤만 묵으면 되는 사람이우다.》

《그야 그렇겠지요. 할마니가 요구하면 더 좋은 방을…》

《그만두겠수다. 지금 방도 괜찮수다.》

할머니는 사내라는것이 늙은이를 보고 별로 수다를 떠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이왕 발걸음을 한것이고 해서 배에서 돈보자기를 풀어 맡겼다.

《래일 새벽일찍 찾겠으니 그리 알아주시우.》

《오케이! 오케이! 조선할마니나 그건 념려마시우. 할마니, 참 생각을 잘하셨습니다. 방안에서 쉬다 도적맞히면 아무리 우리 려인숙이라 해도 책임을 못 집네다.

할마니, 참 생각을 잘했습니다. 조선할마니, 대단히 영특합니다.》

주인놈은 횡설수설하며 또 사방을 둘러보았다. 할머니와 단둘이라는것이 틀림없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상상도 못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약속대로 아침일찍 할머니가 맡긴 돈을 찾으러 가자 주인놈은 마치 처음 보는것처럼 노랑눈을 크게 뜨고 뜨부럭거리며 아닌보살을 했다.

《노, 처음 보는 할망군데 돈이란건 무슨 소립네까?》

《맡긴 돈을 찾겠다는데 무슨 소리라니?》

《할마니, 여기가 어데고 내가 누군줄 알고 그따위 허튼소릴 함부로 합네까?》

《어디긴 어데겠소! 여긴 려인숙이구 당신은 이 려인숙주인이지.》

주인놈이 그래도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시치미를 떼는통에 대들이판 싸움이 생겼다. 돈을 맡겼다느니 받은 일이 절대로 없다느니 양인놈들은 다 강도라느니 조선로친네가 미쳤다느니… 서로 팔을 내뻗쳐 삿대질을 하고 입에서는 험한 욕설들이 터져나왔다.

방안이 떠나가게 싸우는 소리에 려인숙에 든 손님들이 쓸어나오고 나중에는 주인놈이 부른 경찰까지 뛰여들었다.

헌데 청청하늘에서 이런 날벼락이 어데 있는가. 할머니가 주인놈과 단둘이 있은노릇이니 돈을 맡긴것이 사실이라고 해줄 증인이 없지 않는가.

승냥이처럼 파렴치하고 여우처럼 교활한 주인놈은 바로 그것을 노렸던것이다. 참으로 눈을 펀히 뜨고 눈알을 뽑힌것이다.

《노, 조선의 로친네가 머리가 돌았소. 여기가 어디라구 생돈을 내라고 지랄이야? 지랄이…》

앙바틈한 려인숙주인놈은 비틀어올린 구레나룻을 신경질적으로 잡아뜯는 시늉을 하며 눈알을 부라리고 발을 굴렀다.

할머니가 가슴을 쥐여뜯다말고 그놈의 멱을 쥐려고 달려들자 주인놈은 이쪽저쪽으로 토끼뜀을 하며 더 기승을 부렸다. 려인숙에 든 손님이건 달려온 경찰이건 주인놈의 편을 들었지 할머니의 말이 옳다고 동정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결국 할머니는 제 돈을 고스란히 떼우고도 경찰에 끌려가 영업을 방해했다는 터무니없는 죄를 들쓰고 뭇매까지 맞았다.

《어이구, 원통하구나. 그 살기 좋은 고향땅과 마음씨 고운 이웃들을 버리고 승냥이같은 양놈들이 살판치는 곳에 와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수모를 받다니…》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 가슴을 쥐여뜯으며 통곡하였다. 한달나마 몸져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할머니는 머리를 동이고있던 띠를 풀어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늙은이지만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랭수 한사발 달래서 다 들이켰다. 그리고는 아들을 불러앉혔다.

《사향 애비야, 내 말을 막지 말고 듣거라.》

《어머니, 어서 말씀하십시오.》

《나한테 또 돈을 좀 다구. 많을수록 좋을것 같다.》

《돈 말입니까? 어데다 쓰실려구…》

《글쎄 그건 묻지 말아다구. 일이 다 된 다음 어련히 알게 되지 않으리.…》

《그래두 이 아들두 알아야…》

《글쎄 아직은 모른척 하고 돈만 좀 내라는데… 그리구 이번에는 아애비가 나를 따라나서든가 같이 일하는 사람중에서 힘꼴이나 쓰고 주먹이 센 젊은일 한명 붙여다구.》

《어머니, 또 무슨 일을 저지르시려고…》

《걱정말라는데…》

아버지는 불안한 마음으로 할머니의 안색이며 거동을 살폈다.

그물같은 주름이 뒤덮인 얼굴에 그 어떤 비장한 각오가 물결치는듯싶었다.

《천벌을 받고 뒈질 양놈의 종자새끼 이 조선할미를 업수이 봐도 분수가 있지.》

《어머니,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런 나라예요. 한번 속아보시구두 또…》

《그만해라. 그래 돈과 사람을 내겠느냐 못 내겠느냐. 그거나 대답해라!》

할머니의 기상은 무서웠다. 두주먹을 푸들푸들 떨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요구를 듣지 않을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들이 내주는 돈을 전과 꼭같이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차고 길을 떠났다. 다르다면 이목구비가 좀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팔과 주먹이 무쇠방망이같이 단단한 젊은이가 따라선것이였다. 그렇지만 아들도 젊은이도 할머니가 어데 가서 어떻게 하려는것인지 전혀 몰랐다.

할머니는 한달전에 나왔던 애틀란타시내에 들어가 저녁어스름이 깃드는 때에 역시 전에 들었던 려인숙을 찾아갔다. 알아보니 마침 주인놈은 바뀌지 않았고 어데 가지도 않았다.

같이 간 젊은이와 저녁밥을 한술 먹고 각기 방을 받아 잠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런 다음 젊은이를 다시 불러내였다.

《자넨 이제부터 아무 말 말고 이 늙은이를 따라만 다니게, 내 하는 일엔 참견 말라구.》

《예.》

본시 말수더구가 적은 젊은인데 로인이 그런 오금까지 박자 입에 더욱 빗장을 질렀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은 더 엄해보였다.

할머니는 젊은이를 달고 려인숙주인놈을 찾아갔다. 한달전에 있었던 일을 전혀 모른척 하고 돈을 좀 맡기자고 했다.

주인놈은 할머니를 보는 순간 좀 놀라는것 같더니 전혀 아는척 하거나 아니꼬와하는 기색이 없이 자기도 덤덤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뗐다. 다만 뒤에 따라선 기골이 장대하고 무뚝뚝해보이는 젊은이에게 한두번 눈길을 주었을뿐이다.

《래일 새벽차로 떠나야겠는데 돈을 좀 일찍 찾게 해주시우다.》

할머니는 이 말도 례사롭고 능청스럽게 하였다.

《거야 뭐 념려할게 있삽니까.》

주인놈은 그러는 로친이 좀 이상스럽기는 했지만 영문을 알수 없어 그 작은 키와 어깨까지 으쓱 솟구며 쾌히 응하였다.

할머니는 밖에 나와 방으로 들어갈 때 젊은이에게 마음놓고 푹 쉬라고 했다.

그 이튿날 새벽이였다.

할머니는 제 말대로 아침일찍 일어나 몸가짐을 제대로 하고는 방에 든 사람들이 잠을 깰세라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혼자서 주인놈을 찾아갔다.

《주인님이 마침 계시는구려. 이 늙은이때문에 일찍 깨나신것 아닌가요. 돈을 찾으러 왔쉐다.》

할머니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돈을 드려야지요.》

주인놈은 인두겁을 쓴 승냥이이긴 하지만 한달전에 로인의 돈을 옭아낸 일이 있는지라 이번에까지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군말없이 내주었다.

《고맙쉐다.》

할머니는 인사까지 건숭 하고 주인놈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가 들었던 방에 가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가 주인놈에게 갔다온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이 활짝 밝은 다음에도 소식이 없자 젊은이가 오히려 아침일찍 돈을 찾겠다던 할머니의 말이 생각나서 제 먼저 찾아왔다.

《밤새 잘 잤나?》

《길을 좀 걸었더니 끌어가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댔습니다. 할머니는요?》

《나도 방금 잠을 깼네. 어서 세면이랑 하라구. 아침밥을 먹은 다음 돈을 찾아가지구 시장에랑 들려보자구. 오늘은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서야지?》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자기가 잠든 신새벽에 있었던 일을 전혀 알수 없었던 젊은이는 흔연한 얼굴로 하는 로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는 제가 늦잠을 잤다고 서둘렀다.

《든든히 먹으라구. 비빔밥 한그릇을 더 받아올가?》

《아닙니다. 할머니, 이거면 됩니다.》

《이 늙은일 따라왔다가 배를 곯았다는 말을 말게.…》

《참, 할머니두…》

할머니는 식사를 하면서 이런 롱질까지 하였다.

해가 떠오르고 한밤 자고난 손님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떠나가는 때에 할머니는 어제 저녁 돈맡길 때와 꼭같이 젊은이를 뒤에 달고 주인놈을 찾아갔다.

《맡긴 돈을 찾으러 왔쉐다.》

할머니는 시치미를 뻑 따고 들이댔다.

《?!…》

장부를 뒤적이며 전자수산기를 부지런히 두드리던 주인놈이 그 말소리에 머리를 들더니 와뜰 놀래며 두눈을 뒤집었다.

《맡긴 돈을 찾으러 왔다는데 불에 덴 소처럼 놀래긴 왜 그리 놀래시우? 어서 돈이나 주시우다.》

《노우. 로친네 돈을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노우란건 뭐고 돈을 찾아갔다는건 또 무슨 소리요?》

《까땜, 까땜.》

구레나룻이며 웃입술수염을 파들파들 떨며 오른손을 쳐들어 손가락으로 찌를듯이 할머니의 눈앞으로 내뻗쳤다.

《이게 어데 천하에 이런 불한당같은 놈이 있나? 야, 이 양놈의 종자야, 맡긴 돈을 찾으러 왔다는데 뉘앞에서 삿대질이냐? 촌늙은이라고 허수룩이 보고 뭉치돈을 삼켰는데 그래 무사할줄 알았느냐, 이놈?》

할머니는 록록치 않았다. 마주 소래기를 지르며 저고리소매를 걷어올렸다. 발을 쾅쾅 구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주인놈도 만만치 않았다. 아침에 할머니가 왔을 때 돈을 내준것은 사실이니까 더한것 같았다. 려인숙직원들을 부르고 경찰에까지 련락하였다.

한창 아웅다웅 싸우는 때에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할머니를 따라온 젊은이가 주인놈의 한쪽손목을 휙 틀어잡았다. 어떻게 한것인지 그놈은 죽는 소리를 지르며 몸을 틀었다.

《주인장, 내 한가지 묻기요.》

《당… 당신은 누… 군데…》

《이 로인의 아들이요.》

《예쓰, 예쓰… 이 팔목을 좀 놓고…》

《날 똑바로 보오. 옳게 처신하면 놔주겠소.》

젊은이는 눈을 뚝 부릅뜨고 쏘아보며 을러메였다.

《예쓰, 예쓰…》

《어제 저녁 내가 이 할머니와 함께 와서 돈을 맡겼소. 안 맡겼소?》

《그야… 그야 맡겼습지요.》

《그런데 방금 잠에서 깨나고 함께 식사까지 한 할머니가 언제 당신한테 와서 돈을 찾아갔단 말이요?》

《그건, 그건… 사… 사실입니다.》

《사실은 무슨 사실? 백주에 산 사람 생눈알을 뽑는데 이골이 난 이 양놈의 종자. 그래, 꿀꺽 뭉치돈을 삼키고 무사할줄 알았느냐. 이놈!》

할머니는 젊은이가 려인숙주인놈의 팔목을 비틀어잡고 꼼짝못하게 하자 기세가 올라 또 한번 발을 굴렀다. 젊은이가 소리를 질렀다.

《주인장, 듣소! 당신이 거짓말을 하오. 이 할머니가 거짓말을 할것 같소? 뼉다귀를 싸가지고 물러앉기 전에 어서 순순히 돈을 내놓소!》

눈을 뚝 부릅뜬 젊은이가 틀어쥔 팔을 우쩍 들어올리며 비틀었다. 주인놈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모여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경찰이 그전처럼 오토바이를 퉁탕거리며 왔다.

그앞에서 할머니가 주인녀석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고소》하였다.

《이 덜돼먹은 주인놈이 날 허술한 조선촌로친네라고 숙보고 맡긴 돈을 눈 한번 껌뻑하지 않고 삼켰수다. 한달전에 왔다가 그런 횡액을 당했는데 오늘 또 그 수작질이우다.》

오토바이를 타고 급히 온 경찰중에 한달전에 있었던 일을 처리한 놈이 있었다. 그때는 려인숙주인편을 들어 할머니를 경찰서에까지 끌어가는 공평치 못한짓을 했는데 오늘은 가만 보니 케가 그른것 같았다.

함께 온 증인까지 나서서 격분한것을 보면 분명 주인놈이 나쁜짓을 또 한것 같았다. 경찰은 젊은이가 팔을 잡고있는 주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

《주인장, 이걸 보구 돈을 돌려주든가 손목에 차든가 하라, 까땜!》

그러면서 들고온 수갑을 그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아무리 뻗대고 어째보아야 판은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주인놈은 잘못했노라고, 돈을 주겠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젊은이가 팔을 놓아주자 울상이 되여 손을 와들와들 떨며 맡겼다는 액수의 돈을 또 내주었다.

《그러면 그럴테지!》

할머니는 기세가 등등해서 언제 준비했는지 어제 돈을 맡길 때 싸가지고 왔던 보자기를 꺼냈다. 숱한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것을 몇번 툭툭 턴 다음 돈을 싸가지고 허리춤에 찼다.

《가세!》

할머니는 범잡은 포수마냥 기세가 등등해서 젊은이의 팔을 당겨가지고 나왔다.

등뒤에서 주인놈이 징징 우는 소리, 모여섰던 사람들이 와하 웃는 소리, 경찰놈이 으름장을 놓는 소리,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떠들썩했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와 집안식구들모두와 함께 갔던 젊은이를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그들앞에 두개의 돈뭉치를 내놓았다.

《아니?! 이건…》

집식구들도, 따라갔던 젊은이도 눈이 둥그래졌다.

《내 고국에서 해방전에 그 간특하고 악착한 쪽발이놈들한테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산 내인이야. 령감이 눈이 멀어 우리를 이런 지옥에 끌고와서 양놈들속에서 살긴 한다만 그렇게 호락호락할줄 알았니?!》

할머니의 눈굽에서는 물기가 번쩍거렸다. 그제야 모두는 사연을 알고 혀를 차며 놀라와하였다. 그리고는 방안이 떠나갈듯 가슴후련하게 웃었다.

그후 사향이네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이 일을 몇번이나 화제에 올렸다. 그러면서도 어데 가서든지 집식구들이 돈이나 물건을 함부로 누구에게 맡기는 놀음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 타성은 사향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평양에 와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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