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12. 간계냐 무지냐

 

(1)

 

(어떻게할것인가?)

량세봉은 그냥 이 물음을 머리속에 걸어놓고 그 해답을 찾아 골몰하였다.

사태의 악화를 막으라. 이것은 강서명의 당부이다. 스승을 만나고나니 설설 끓어오르던 분노의 감정이 잦아들고 랭정한 리성을 되찾게 되였다.

강서명의 당부는 옳은것이였다. 지금 조선혁명당 원로들의 동향을 보면 무엇인가 험악한 사태가 불쑥 어둠속에서 튀여나오듯 덮쳐오는것만 같았다.

중대를 이끌고 뜨고싶은 생각도 났다.

여기에 있다가는 불의의 재변에 자신과 중대가 말려들게 뻔하였던것이다. 독립군중대들가운데서 가장 전투력있고 무장장비가 현대화되고 수적으로도 많은것이 량세봉의 중대였다.

다른 중대는 고작해야 백명안팎이였다.

그러나 량세봉의 중대는 조선혁명당 중앙과 독립군사령부가 자리잡은 조선이주민들의 중심지라고 부르고있는 왕청문을 보위하는 중대로서 200명을 넘어서고있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욕심을 내고 부러워하며 의지하고저 하는 무력집단이였다. 이제 공산당세력과의 싸움이 벌어지면 민족주의두령들이 자기 중대를 선봉에 내세우려고 할것이 뻔했다. 그러니 싸움판에 끼여들지 않고 중대를 고스란히 보존하는 길은 하루속히 원정길에 오르는것이다.

량세봉은 이제 중대에 도착하면 즉시 비상소집을 일으켜 중대를 이끌고 압록강국경대안으로 원정을 떠날 결심을 굳히였다.

그러지 않아도 량세봉은 왕청문에 정착한 후 서너달째 그 일대에서만 뱅뱅 돌아가며 쳐들어오는 왜놈경찰들과 수비대의 소집단을 소탕하는 싸움이나 벌리고있어 기회만 있으면 원정길에 오를 계획을 하여왔었다.

그런데 량세봉이 중대의 보초소에 도착하여 비상소집명령을 떨구려고 하는데 파수장이 달려와 지금 고인허와 참모장 김한석이 와서 중대장님을 기다린지 두시간이 된다고 전달하는것이였다.

량세봉은 대뜸 그들이 찾아온 리유가 짐작이 가 가슴이 철렁하였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고인허가 김한석과 함께 부중대장과 마주앉아 고불통을 빨다가 성이 독같이 올라 그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량세봉은 김한석이 리진택을 따라가지 않고 고인허의 옆에 붙어있는것이 이상스러웠다.

그는 전번 리진택이 소집한 회의때 자기 립장을 한번도 내놓은적이 없었다. 다만 량쪽의 주장을 들으며 무표정한 눈길로 줄곧 토론자들의 얼굴만 쳐다볼뿐이였다.

량세봉은 그가 대체로 새시대 사조에 눈을 뜬 여러명의 지휘관들과 함께 리진택의 주장으로 돌아섰을뿐아니라 리진택과 석태무를 비롯한 여러 중대장들을 암암리에 꼬드기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런데 어찌되여 저 사람은 고인허와 나란히 앉아있는가.

고인허가 량세봉이 서두름없이 자기 걸상에 가서 무겁게 앉자 성이 독같이 올라 고함을 내질렀다.

《이 비상사태에 중대장이라는 사람은 어데 가서 반나절이나 시간을 보내다가 왔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량세봉은 시치미를 떼고 모르쇠를 하였다.

《무슨 일이라니? 지금 공산세력이 여기 왕청문을 들이칠 작전을 준비하고있단 말이요.》

《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친다구요?》

량세봉은 고인허의 길쑴한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깜깜이라구야, 매사에 심중하고 등탈이 없던 벽해가 대세에 둔감하니 웬일이요? 그래서 현선생이랑 국민당군대를 찾아갔소.》

《왜요?》

《왜라니? 리진택이 독립군노란자위를 다 뽑아가지 않았나. 우리에게는 임자네 중대밖에 볼게 있는가. 나머지 두개 중대는 대원수나 무장이 약해서 무슨 수로 저놈들을 막아낸단 말이요?》

《그래, 어떻게 하자는겁니까?》

《국민당사람들이 군대를 보내준다면 우리가 협동을 해서 저놈들을 족치자는걸세. 그래 오늘 저녁에 벽해가 먼저 중대를 인솔하여 선제타격을 하자는거네. 나도 함께 갈테네.》

《선제타격이요?》

《앉아서 쳐들어오길 기다리다가는 무리죽음을 당할수 있네. 장학량이 우리 제의를 받아줄걸세. 아마 래일 낮이면 국민당군대가 도착할거네.》

《그러니우리 조선사람들의 싸움에 중국사람들까지 끌어들이자는겁니까?》

량세봉은 연해연방 소스라치듯 놀라며 반발해나섰다.

《그럼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 4중대는 통화쪽에 가있는데 기별해야 언제 오겠나. 그러니 임자 중대 하나만 가지고서야 네개 중대를 끌고 달아난 리진택이를 들부실수 있겠나?》

《애당초 싸움을 하지 말아야지요.》

《싸움을 하지 만다? 어떻게 날아오는 총탄을 우리 재간에 돌려보낸단 말인가?》

《좀 생각해봅시다.》

량세봉은 고인허의 말이 어처구니없어서 짜증을 내며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고인허는 그냥 집요하게 그를 설복시키느라고 말을 걸었다.

《생각해볼게 없네. 공산세력이란 원래 그런 흉물들이 아닌가. 흑하사변을 누가 일으켰나? 조선에서 공산당을 말아먹은것들이 일으킨게 아닌가.》

량세봉은 고인허의 성깔사나운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고 손바닥에 이마를 얹고 생각에 잠겼다.

방금전에 강서명이 그리도 걱정하고 자기를 불안하게 하던 일이 이렇게도 빨리 급박해오다니.

그는 리진택이 미워났다. 석태무도 덩달아 미워졌다. 리진택이 제일 신임하는 사람이 석태무다. 이쪽을 공격해온다면 그 두사람이 선봉에 설것이다.

석태무, 네가 그럴수 있느냐?

그는 엊그제 자기 사무실에 뛰여들었던 석태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졸간에 커다란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벌써 그때 석태무는 이 모든것을 이미 짜놓고 우리 중대까지 저들 진영에 끌어들이려고 찾아왔던것이 틀림없다.

석태무! 다름아닌 네가 내앞에서 오그랑수를 쓸수 있느냐.

드디여 량세봉은 타오르는 분노를 억제할수 없어 대답을 하였다.

《좋습니다. 타격합시다. 그런데 국민당군대에 손을 내민것은 잘된 일 같지 않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 독립군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때 지금까지 고인허의 소리에 공감이라는 뜻으로 몇번 고개짓만 보이고 입을 다물고있던 김한석이 깔끔한 어조로 쐐기박듯 끼여들었다.

《하여간 이제 와서 그들을 돌려세울수는 없소. 문제는 이 남만에서 우리가 독립운동의 주선을 그냥 틀어쥐는거요. 공산세력이 제힘을 키우려고 우리의 절반력량을 나꿔챘는데 이러다가는 우리 혁명당이 조만간에 빈털터리가 될것이 아닌가.》

김한석은 조선혁명당에서도 서너번째 서렬의 겸직을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참모장님은 어떻게 되여 남아있게 되였습니까?》

량세봉은 김한석의 얼굴에 날카로운 눈총을 박으며 불만스러운 어조로 직방 물었다.

《나 말이요? 이상스럽소?》

김한석의 눈빛에서 섬광같은것이 번쩍거렸다.

《예, 이상스럽습니다. 난 참모장도 총사령의 주장에 기울어져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허튼소리를 합니까?》

《허튼소리가 아니요. 그런데 그건 여기 위원장선생님이 대답해주실거요.》

위원장선생님이?》

량세봉이 고인허에게로 여전히 예리해진 눈길을 돌렸다.

고인허가 《어험-》하고 헛기침을 크게 하고는 대답하였다.

《리진택의 반변을 처음으로 보고한것이 참모장이였소. 난 리진택총사령의 진맥을 짚어보라고 참모장에게 부탁하였소.》

《진맥을 짚어보라구요? 그러니… 참 한심도 하군요.

참모장님, 누가 부탁한다고 리진택의 주장에 동조하는 계교를 썼다는것은 비렬한짓입니다.》

량세봉이 고인허의 소리에 우쩍 밸머리가 살아올라 엄하게 소리쳤다.

《참모장이라는 중책을 지니고있는 사람이 어쩌면 독립군의 운명에 흥망의 관건적인 문어귀로 되는 시각에 그렇게 유치하게 움직일수 있습니까.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몸을 내대고 리진택의 반변을 돌려세우고 오늘의 이 엄청난 비극을 막기 위하여 결연하게, 당당하게 주장을 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 어떤 다른 리해관계로부터 자기의 립장을 달리한다면 그건 비렬한짓입니다.》

《뭐라구? 비렬한짓이라구?》

참모장이 금시에 창백하던 얼굴이 아예 백랍처럼 되여가지고 씨근덕거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뭘했는가. 난 그래도 고인허선생의 부탁이니 위임을 실행하여 그들의 계책을 알아내고 이렇게 사전에 제압할 기회를 마련하였지만 중대장은 도대체 무얼 잘했다고 제편에서 오히려 훈시인가. 교만해, 교만해. 교만하단 말이야.》

《참모장님, 똑똑히 들으시오. 참모장과 중대장은 발언과 행동에서 근량이 같을수 없습니다. 나도 당신이 한 행동이 어느 한 소대장이나 대원이 한 일이였다면 리해하여줄것입니다. 그러나 참모장이라는 자리는 부대전체의 생사를 책임지는 자리가 아닙니까. 어떻게 어제까지는 리진택을 동조하고 부추기다가 오늘은 리진택에게 총부리를 돌리라고 명령하는겁니까.》

량세봉은 처절한 목소리로 참모장의 행위를 규탄하였다.

고인허가 그들의 언쟁이 격렬해지자 그들사이를 막아나섰다.

《아아, 지금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요. 저것들이 쳐들어오면 우리모두가 결딴이 나겠는데 지금 어디 시비를 따질 경황인가. 눈섭의 불부터 꺼야지.》

김한석이 고인허의 훈시에 힘을 얻어 짜랑짜랑하게 명령하였다.

《옳습니다. 위원장선생, 불은 빨리 꺼야 합니다.

명령이요, 중대장! 당신이 만약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냥 목을 뻣뻣이 세워 명령에 맞서 고의적으로 시간을 끈다면 부득불 나는 자기의 직권을 행사해야겠소.》

김한석은 맺고 짜르듯 량세봉을 쏘아보며 고압적으로 위협하였다.

량세봉은 이 책임적인 시각에 더는 그냥 뻗칠수 없었다. 그렇다고 만사를 제쳐놓고 《난 모른다. 너들 할대로 하라.》는 식으로 물러날수도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사명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참모장이 정말 직권으로 자신을 체포하고 부중대장에게 지휘권을 넘겨준다면 그 지휘권이 어차피 고인허와 참모장의 총과 검이 되여 더 큰 화를 불러오게 될것이다.

《좋습니다.》

마침내 량세봉은 자리에서 솟구치듯 일어났다.

그제야 고인허는 마음이 놓이는듯 숨을 내그으며 말하였다.

《다행이요, 량중대장이 나서리라고 믿었소. 사실 앉아서 얻어맞기만 한다면 독립군이 끝장나리라는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요. 어서 중대를 거느리고 참모장과 함께 리진택과 그 부하놈들을 징벌하시오.》

고인허는 그냥 량세봉의 심기를 쿡쿡 찔러댔다.

사실 조선공산세력과 리진택이 왕청문을 들이친다는 헛소문을 퍼뜨려놓은것은 김한석이였다. 고인허는 그에 쉽게 말려들어 사태를 크게 벌려놓게 된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정황을 급하게 그려놓아야 량세봉의 분노를 격발시키고 자기 휘하의 인물들도 싸움에 끌어낼수 있다고 타산하였던것이다. 사태는 그들의 계략대로 악화되여갔다.

 

련 재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회)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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