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11. 왕청문

 

(1)

 

량세봉은 이튿날 흥경현 왕청문으로 떠났다.

왕청문은 흥경, 통화, 류하, 환인 등 네개 현의 경계에 있는것으로 하여 남만주지역의 중심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이곳에 있으면 남만주일대의 실태를 잘 알수 있었다. 게다가 왕청문주변의 산들이 높고 골이 깊어 교통이 불편하므로 중국관헌들과 경찰들의 왕래나 통제가 심하지 않고 아직 일본놈들도 자기의 세력을 뻗치지 못하였으므로 일찍부터 이곳에는 조선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모여들어 생활하고있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보다 이곳의 중국사람들과 조선이주민들의 사이가 좋아서 활동하는데 퍽 유리하였다.

량세봉은 금구자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 왕동헌을 찾아 소학교로 갔다.

왕동헌은 구장이라는 행정직책을 가지고있었지만 왕청문의 소학교 교장으로서 학교에서 늘 시간을 보내였다.

왕동헌은 이미 가까이 사귄 량세봉이 말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학교마당에 들어서자 반색을 하며 마중을 하였다. 특히 그사이 지휘관으로서의 틀이 잡히고 산전수전속에서 자기의 풍격을 완성시켜온 량세봉에게서 위압감까지 느껴져 자기의 사무실에 안내하여 차도 권하고 정중하게 대해주었다.

그들의 교제는 몇해전 량세봉이 검무관사업을 맡아볼 때부터 시작되였다.

그때 량세봉이 검무관사업을 해보니 독립군대원들과 중국사람들 그리고 조선이주민들과 중국주민들과의 관계가 적지 않게 제기되여 오동진이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량세봉은 타개책을 모색하다가 이 지방에서 커다란 영향력과 행정실권을 장악하고있는 왕동헌을 만나보기로 작정하였다.

만나기 전에 초보적으로 왕동헌을 알고있는 사람을 만나 알아보았다. 사람이 부자이지만 검박하고 직권이 있다지만 겸손하며 인정이 있다 하였다.

그는 왕동헌의 도움을 받을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학교로 갔다. 학교경비실에서 왕동헌이 수업시간이 되여 교실에 가있다고 하였다.

량세봉이 교실을 향해가다가 창문에 서서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왕동헌이 한팔을 쳐들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있는데 얼핏 들어보니 귀가 솔깃하였다.

왕동헌은 분개한 어조로 그해 여름에 야나기 사이까라는 일본사람이 중국위조지페를 만들다가 붙잡힌 사건을 설명하고있었다. 왕동헌은 사건을 설명하고나서 이렇게 이야기를 결속하는것이였다.

《처음 일본령사관은 자기들에게 그런 사람이 없다고 잡아떼면서 그건 필경 조선사람일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국이 그렇다면 중국법대로 처리하겠다고 하자 하는수없이 자기네 령사관에 등록된 사람이 옳으니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일본사람들은 못된짓을 하다가 들장이 나면 자기는 조선사람이라고 하면서 책임을 조선사람에게 들씌우고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의 관리들이 그놈들이 하는 수작을 확인도 하지 않고 조선사람들을 덮어놓고 의심하고 미워하며 조선사람들이 나쁘다고 여론을 돌리고있는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중국사람들의 밭을 빼앗으려 한다는 따위의 류언비어를 퍼뜨리는데 그래서 중국사람들과 조선사람들과의 관계가 자꾸 나빠지고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우리 학교에 조선사람도 있고 중국사람도 있는데 서로 다투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고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는데 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화목하게 살아온 이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량세봉이 꼭 제가 하고싶은 말을 하는듯싶어 감격스러워 《옳습니다. 조중 두 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형제들입니다. 지금 나쁜 놈들이 두 나라 사람들사이에 쐐기를 박기 위하여 못된 소리, 못된짓만 하고있습니다.》하고 큰소리로 교실에 대고 웨쳤다.

그러자 창문들이 열리고 학생들이 내다보았다.

량세봉은 그들에게 두손을 들어 흔들어주며 빙그레 웃었다.

왕동헌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준수하게 생긴 독립군지휘관차림의 량세봉에게 호감을 느낀듯 수업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왔다.

량세봉은 그에게 허리부터 깊이 숙이였다.

《저는 조선독립군을 대표하여 방금 교장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소개하였다.

왕동헌은 그의 손목을 잡아 흔들어주며 교장실로 안내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동헌은 외팔이였다. 어려서부터 팔 하나를 잘 쓰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학식이 높고 덕망이 있어 주변사람들모두가 그를 따랐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왕동헌은 그에게 차를 권하며 각근히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독립군부대 대원들과 여기 중국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사들에게 죄상에 따라 벌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 독립군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왕동헌이 한팔을 들어 가로 흔들었다.

《병사들에게 벌을 주다니요? 그러지 마시우다. 오히려 우리 중국사람들이 아직 당신이 말씀하신것처럼 일본놈들의 요사스러운 술책에 넘어가 조선사람들을 무턱대고 깔보고 적대시하는것이 많습니다. 절대로 한쪽말만 듣고 독립군의 애매한 병사들에게 벌을 주지 말아주십시오.》

왕동헌이 이렇게 성근하게 나오는 바람에 그들의 이야기는 화기애애하게 번져졌다.

왕동헌은 조선사람들이 왜놈들뿐아니라 중국군벌들의 무지로 해서 이중의 압박을 당하고있다고 사죄하였다.

당시 동북3성의 실권을 쥐고있던 군벌은 관원들에게 지방각지에 있는 조선사람들을 엄하게 단속하라고 훈령을 시달하고 《조선인단속법요강》이라는것까지 발표하였다.

훈령에는 중국에 거주한 조선사람들은 중국조정의 규정에 따라 매 가정의 토지를 중국관리들에게 보고하고 집집마다 문패를 달아야 한다고 되여있었다.

중국관리들은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된 후 조선사람들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였다고 떠들기도 하였다.

한편 일본놈들은 제놈들의 위세를 믿고 못된짓을 마구 하고는 저들의 행위를 다 조선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광고함으로써 조선사람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분노를 격발시키군 하였다.

현청의 경찰서들에서는 경찰들을 훈련시키면서 중일관계규약, 조선인단속법 등을 학습시키였고 그들을 조선의 독립지사들을 마구 잡아죽이는 살인마로 길들이고있었다.

일본령사관과 결탁한 현청에서는 왕청문을 주요조사구역으로 정하고 이곳에 와서 조선사람들을 수많이 체포해가고 고문학살하였다.

현청은 조선사람 한사람을 숨겨주고 발각이 되면 100~200원의 벌금을 내도록 했는데 해마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돈이 7만여원에 달하였다.

왕동헌은 량세봉에게 앞으로 자기가 관할하는 왕청문에서 조선사람들과 독립군에 대한 현청의 압박을 청산하고 현지 조선이주민들의 생활을 도모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량세봉은 그에 대하여 대단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후로 왕동헌은 학교교원들은 물론 많은 학생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인독립운동자들을 보호해주도록 교양하고 이끌어주었다.

그들은 자기가 알고있는 비밀을 량세봉을 통하여 독립군에 전달하고 물질적인 지원도 하였다.

《참으로 여러해가 흘렀습니다. 그동안 검무관선생도 무척 달라지구요. 어떻다고 할가, 내가 대상하기 어려운 장수같아 보입니다.》

왕동헌은 한쪽에는 권총을 차고 한쪽에는 룡천검을 둘러멘 분명 장수가 틀림없는 량세봉을 대견한 눈으로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예, 크게 한 일도 없이 독립군의 한개 중대를 맡아봅니다.》

《아, 그렇군요. 이 어려운 시국에 중대를 인솔한다는것이 쉽지 않지요. 참, 광복군총영의 총영장님은 별고없으십니까?》

《얼마전에 일본놈들에게 체포되여 지금 통화령사관에 억류되여있습니다.》

《뭐라구요? 총영장님이 체포되다니… 그분은 이모저모로 훌륭한 분이였는데… 참 안되였습니다.

그래, 어떻게 나를 찾아오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우리 총영이 왕청문으로 오려고 합니다. 혁명당 중앙본부도 이쪽으로 이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협조를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우리 총영은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예.》

왕동헌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명쾌히 대답을 주었다.

《오십시오. 내가 힘은 부족하지만 힘껏 우산이 되여주겠습니다. 량중대장이나 오동진총영장의 휘하에 있는 부대라면 나는 기꺼이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량세봉은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시하였다.

《이제 며칠후에 우선 저의 중대전원이 여기로 올것입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우리 중대 대원들앞에서 좋은 연설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쾌히 접수합니다. 아니, 영광이올시다. 조선의 애국지사들에게 한번 인사를 드리고싶었는데 꼭 가겠습니다.》

왕동헌은 량세봉이 그밖에 제기한 문제들도 즉석에서 받아주었다.

량세봉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왕동헌은 학교정문밖까지 따라나오며 그를 배웅하였다.

량세봉의 울적하던 기분은 왕동헌과의 상봉으로 다소 가시여졌다.

이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였다. 량세봉은 벌써 여러해전부터 중국땅에서 왜놈들과 싸우는 조건에서 중국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것을 통절히 체험하여왔다.

중국사람들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등을 돌려버리면 반일투쟁은 곱으로 힘겨워질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조선독립운동가들은 이 문제가 순조롭지 못하여 적지 않게 활동제한을 받거나 피해를 당하군 하였다.

량세봉은 왕동헌을 만나고나서 가벼운 걸음으로 자기 집으로 향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막내동생 정봉이가 마당 한구석에 있는 거름더미에서 일하다가 형을 알아보고 《형님!-》하며 달려왔다.

그러다가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서 《맏형님이 왔다!-》하고 집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출입문들이 와당탕 열리고 김씨와 여러 가족들이 뛰여나왔다.

《얘야, 맏이야, 그새 상한데는 없느냐?》

김씨가 량세봉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왈칵 묻으며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머니, 저는 살 한점 긁히지 않고 왔습니다. 다만 어머님께 효도를 드리지 못하여 늘 죄송할뿐입니다.》

량세봉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늘 속에 맺혀있던 말을 꺼내놓았다. 어쩐지 목구멍이 꽉 잠겨들어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사이 어머니는 몹시 늙었다. 둥그렇던 얼굴에 주름발이 가닥가닥 잡히고 까맣던 머리가 허옇게 되여버렸다. 자기에 대한 걱정때문에 때일찍 백발이 서리였을것이다.

량세봉은 어머니의 머리우에 저도모르게 굵은 눈물을 떨구었다.

제수가 시형에게 인사를 하고는 부리나케 동네앞을 흐르는 시내가로 달려갔다,

윤재순이 양재물에 삶은 빨래감을 한버치 이고 시내가에 헹구러 나갔던것이다. 동서의 말을 들은 윤재순은 빨래방치를 던지고는 주먹을 부르쥐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때까지 가족들은 마당에서 량세봉을 에워싸고 떠들썩거리고있었다.

《돌아오셨군요!》

윤재순이 달려오던 기세와는 달리 삽짝문가에 서서 이렇게 나직이 인사말을 하고는 우뚝 굳어졌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량세봉은 살아가는 형편을 들었다.

아직까지는 크게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있는것 같았다.

량세봉은 훈장집 아씨 강연희가 보내준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마련해준 사탕과자와 선물을 꺼내놓았다.

윤재순이 자기에게 차례진 선물중에서 목도리는 동서에게 내주어 서로 받으라느니 이래선 안된다느니 하다가 결국 동서의 어깨에 걸쳐졌다.

《그래, 그 아씨가 어디에 있기에 이걸 보내주었단 말이냐?》

김씨가 희한해서 물었다.

《총영장의 비서로 있답니다.》

《원 저런, 그 분꽃아씨가 어떻게 사내들 틈사귀에 끼워 사나? 아씨가 너무 곱고 나비처럼 매칠한게 군사노릇은 어떻게 하고… 그럼 훈장님은?!》

《선생님께서도 독립운동을 하고계십니다. 아마 얼마후이면 다들 이 왕청문에 모여올것입니다.》

《응, 참 모두 장하구나. 그래 그 아씨는 랑군을 맞았다더냐?》

《아니, 독립이 돼야 시집을 가겠답니다.》

《저런… 독립이 언제 되겠다고… 하여튼 장하다.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지. 훈장님도 이제는 년세가 퍼그나 계시겠는데 그 년세에 독립운동하신다는게 쉽지 않을거다.》

《예, 선생님도 백발이 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롭고 강직하고 속이 천길같은분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경신년대토벌때 왜놈들에게 잘못되였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저런, 참 깨끗하고 인자한분이였는데. 그저 왜놈들이 원쑤구나, 왜놈들이 원쑤야.…》

김씨는 저고리고름을 눈굽에 올려가며 애통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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