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10. 오동진

 

(3)

 

강연희는 량세봉에게 김한석이 이중성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하였다.

총영안에서 원칙이라는 자막대기 하나만 가지고 가장 정바르게 생활과 규률과 전투에서 한미리의 편차도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사고있지만 뒤생활은 결코 그렇지만 않다는것이다.

강연희는 야밤중에 자기 침실에 들어온 김한석을 세번씩이나 쫓아내야 하였다.

그의 기습적인 침실방문을 두번째까지는 처녀의 리성으로 리해하여주고 아량있게 웃으며 돌려보냈으나 세번째에는 단단히 입침을 박았다.

김한석은 강연희의 호된 타격을 받고 그래도 이렇게 끈을 달아놓고 떠나갔다.

《너무 도도한걸. 우리는 어울리는 상대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에, 저는 어울리는 상대를 찾느라고 해를 넘긴게 아니예요.》

《처녀로서 당신의 꽃은 아직도 아름답소. 더 시들기 전에 난 꺾고야말테요. 당신을 위해 그리고 물론 날 위해.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하오.》

《당신의 결심은 기초부터 허물어진걸요. 난 이제는 당신이 이중의 인격자라는 판단을 가지게 됐어요. 명심해요.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 말라고 했어요.》

이런 일이 있었지만 강연희는 량세봉이 아무리 믿어의심치 않는 상대라 해도 지저분한 문제를 화제에 올리기 싫었다.

강연희에게 있어서 량세봉은 예나지금이나 자기의 마음속을 언제나 곱게만 다듬어 바치고싶은 사나이였다.

검무관일이 심화될수록 량세봉은 깊숙한 고민의 수렁에 빠져서 헤여나오지 못하였다.

상소들을 파고들면 그밑에는 삼검불처럼 복잡하게 엉켜있는 사람들간의 호상문제가 불거져나오고 총영의 핵심지휘관들과 독립운동의 고위인물들도 심의의 대상에 올려놓아야 하였다.

그를 그냥 괴롭힌것은 상소를 들고오거나 피고가 되여 검토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돈과 금품을 가져와 슬그머니 자기 방에 떨구어놓고가는것이였다.

아무리 마다해도 그칠길 없었다.

어떤 때는 화를 크게 내고 목청을 돋구고 해도 뢰물은 그치지 않았다.

력대 검무관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규률과 질서를 세우느라고 뛰여다니다가도 몇달 넘기지 못하고 불량행위에 말려들고 나중에는 쫓겨났다고 하던 총영장의 말이 생각나군 했다.

상소에 걸려든 사람들이 호출되기 바쁘게 들고오는 금품을 오동진에게로 즉시 가져갈 생각도 해보았으나 옹졸한 일인듯싶어 총영의 군수관에게 바치고 령수증을 받아두군 하였다.

한겨울과 봄철은 자기 모순에 빠져있으면서도 검무관일을 바로해보려고 애를 써오던 량세봉은 여름철에 잡아들면서 총영의 지휘관들이 저마다 작전지로 떠나가기 시작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오동진을 찾아갔다.

그는 그동안 받아두었던 령수증들과 며칠전에 들어온 꿩알만 한 아편덩이와 두쌍의 은가락지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갔다.

오동진은 여느때나 다름없이 허우대 큰 량세봉이 헌걸찬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동진은 량세봉이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고는 두말없이 자기 책상에 보자기에 싼것을 풀어놓자 시뭇이 웃기부터 하였다.

《하, 이건 검무관이 내게 주는 진상품이렷다, 헌데 총영장이 아편쟁이가 되여버리면 총영이 건들건들거리겠는데. 우리 마누라에겐 이런 패물이 어울리지 않을것이고.》

오동진이 롱조로 한마디 하며 량세봉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동진은 무쇠처럼 강한 사람이였으나 매사에 여유작작하고 유모아도 풍부한 매력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량세봉이 수하에 들어온 때부터 그를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잘 키워보자고 하시던 김형직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있었다.

그는 늘 량세봉의 일거일동을 눈여겨 살피면서 그의 성장을 이끌어주고 떠밀어주었다.

량세봉의 일처리도 마음에 들었고 무거우면서도 기민하고 실수가 없는 언행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언젠가는 총영에 찾아온 강서명과도 량세봉을 화제에 떠올려놓았는데 그가 짧게 한마디 던진 이야기가 의미심장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 독립운동의 대들보가 될거요.》

량세봉의 사업에 대해 머리떠는 사람들은 참모장이나 몇 안되는 사람들뿐이고 대체로는 다들 좋은 말만 하였다.

그래 오동진은 자기 경위대가 따로 있고 여러명의 부관들도 있었으나 먼길을 떠날 때에는 늘 참모장과 함께 량세봉을 달고다니였다.

총영안에서 벌어지고있는 모든 군사적움직임과 전략전술적문제들도 알려주고 그의 의견을 심중히 청취하기도 하였다.

오동진의 이런 신임과 보살핌은 량세봉에게 군사적예지를 틔워주고 장차 큰 임무를 맡아 수행할수 있도록 정치군사적으로 빨리 성장하게 하였다.

《말하오. 무엇때문에 왔소?》

오동진은 정해진 시간에 찾아오게 된 질서를 어기고 자기 방에 때없이 들어선 량세봉이 쉬이 입을 떼지 않고 묵묵히 서있자 필시 말떼기 힘든 문제를 들고왔다는것을 생각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총영장님, 부탁입니다. 검무관노릇 더 못하겠습니다. 그자리에 더 있다가는 미칠것만 같습니다. 총영장님이 미워하던 견물생심이 생길가봐 두렵습니다.》

《허허, 견물생심이라… 원, 안할소리. 견물생심이라는것도 사람따라 붙어다니는거야. 그래서?》

《저를 다시 천마별영으로 보내주십시오. 마음껏 총탄을 날리고싶습니다.》

《흥, 비둘기마음 콩밭에만 가있다고 하더니 임자 머리엔 그냥 전투장만 있구만. 좋아, 그렇게 하세!》

《정말입니까? 고맙습니다!》

량세봉은 총영장이 자기의 결심을 뒤집을가봐 걱정스러운듯 얼른 되받아 환성을 올리며 굵고 긴 허리를 굽석 꺾었다.

《하하, 그런데 꼭 천마별영으로 가야겠나? 하여튼 의논해보세.》

오동진은 이날 저녁 부총영장 리진택과 참모장 김한석을 자기 처소에 불러들여 량세봉에게 새로운 직무를 줄데 대하여 토론하였다.

오동진이 량세봉을 5중대장자리에 앉히자고 제기하자 두사람이 다 덴겁을 하듯 눈들이 둥그래졌다.

독립군에서 중대장자리가 쉬운 자리가 아니였다.

그것은 대체로 중소전투를 벌리는 독립군에서 중대가 기본전투단위였기때문이다.

뿐더러 중대장들은 자기 중대의 무기와 후방물자를 자체로 마련해야 했으며 중대대원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아니, 그 사람에게 검무관자리도 분수에 넘는 자리였는데 이제는 중대장이요? 그가 총영에 들어온지 한해도 되지 않았는데그럼 오광중대장과 자리바꿈을 하렵니까?》

리진택이 생각나는대로 자기 생각을 꺼내놓았다.

《오광은 검무관일을 못합니다. 중대장자리가 적임입니다. 그 사람에게 검무관일을 맡겨놨다가 총영을 무슨 길로 끌고나가겠습니까. 그사람은 그냥 그자리에 눌러놓는게 좋을듯싶습니다.》

총영장의 제안이라면 언제나 두말 없던 김한석이 고개를 두어번 가로저었다.

《오광에게 중대장자리도 적임이 못되오. 그 사람은 부중대장으로 내려앉히자는거요. 중대들치고 5중대가 제일 망태기야. 참모장이 거기에 있을 때에는 5중대가 싸움을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싸움도 생활도 잘 못해.

이번에 검무관이 들추어냈는데 5중대가 저렇게 된데는 오광이 그사람이 마구잡이로 대원들을 쳐몰고있는데 원인이 있소. 안되겠소. 그 사람은 중대를 이끌만 한 재목이 못되오.》

《그래도 5중대가 싸움에서는 정 한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지금도 패하는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오광이 중대원들을 다스리는 방법이 서투른거야 고쳐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김한석은 5중대가 자기가 중대장으로 있던 중대이고 오광이 자기가 중대를 떠날 때에 내세웠던 사람이라 은근히 기색이 좋지 않아가지고 5중대와 오광을 두둔하였다.

《중대장은 싸움만 하는 자리가 아니요. 작은 총영장이란 말이요. 세살적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소.

오광이 소대장때에 이 사람, 저 사람을 허물잡고 뚱기쳐서 중대안의 공기를 흐려놓았는데 중대장이 돼가지고서도 뿔난 말새끼처럼 우쭐해서 여러 사람들을 못쓰게 했소.

검무관이 제때에 문제를 잡아내서 상정시키였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두다가는 온통 중대를 가물든 파밭으로 만들번 했소. 중대를 수습하자면 꼭 량세봉이같은 사람을 앉혀놓아야 하오.

전일에 최시흥영장도 평가했소. 그 사람은 싸움도 잘하고 속도 깊고 대가 있어 중대장을 시켜도 잘할거라고 말이요. 강서명선생의 문하에서 자란 사람이요.

강서명선생의 평가는 그이상이요.

김형직선생님께서도 전번에 그 사람을 만나시고나서 대번에 만족해하시였소.

한번 믿어보고 중대장으로 일을 시켜봅시다. 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소. 사람을 잘 쓰는게 얼마나 중한가 하는걸 난 날이 갈수록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있소.》

오동진에게서 물러설 틈새가 없다는것을 확인한 김한석이 재빨리 자기의 립장을 접고 선선히 동의를 표시하였다.

《총영장님의 주장이 다 옳습니다. 저도 지지합니다.》

오동진이 즉시 량세봉과 오광을 불러 총영본부의 명령을 발표하겠다고 하자 김한석이 손을 내저었다.

《래일 낮에 하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오늘 저녁에 오광중대장을 만나 사전량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전량해? 그건 왜?… 해임조동은 처벌이나 같은건대 뭘 사전량해가 필요하단 말이요. 오광은 사실인즉 크게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요.

반년사이에 탈주병을 13명이나 냈는데 중대장이 무사할수 있는가. 그중에 옛날 내가 영장을 할 때 데리고있던 소대장도 있었는데 사람이 무척 착하고 싸움을 잘했소.

날 찾아와 오광에 대해 몇번 송사질하는걸 잘 타일러 보냈는데 끝내 그 꼴 만들었단 말이야. 그따위 지휘관은 어루만질게 없네. 방망이로 후려쳐야 해.》

리진택이 사전량해라는 참모장의 소리가 귀에 거슬려 팩팩 골을 내면서 사리분명하게 뿔을 세웠다.

리진택은 여러번 김한석이 오광을 싸고돈다는 말을 들어온지라 언제부터 김한석이에게 한마디 짭짤하게 해주어야겠다고 별러온 참이였다.

《그래도… 사람의 감정에 관한 일인데… 생나무 꺾듯 할수야 없지요.》

김한석이 리진택의 매운 소리에 말끝을 여물쿠지 못하는데 오동진이 두사람의 언쟁에 껄껄 웃었다.

《됐소. 두분의 주장에 다 공감이 가오. 사람문제는 공명정대해야 하오. 욕사발 안길건 욕질을 하고 벌줄건 벌을 주고… 좋소. 참모장이 오늘 저녁 만나시오. 만나서 되게 다불러대야 하오. 절대로 오광을 어루만지지 마시오.

난 이미전부터 그 사람을 탐탁치 않게 보아왔소.》

《알겠습니다. 저의 책임에 대해서도 느낍니다.》

김한석은 더는 대꾸가 없이 접수하고 리진택을 향해서도 싸늘한 어조로 사죄하듯 말하였다.

《부총영장님의 말도 옳은것 같습니다.》

다음날 오동진은 두사람을 불러 총영본부의 결정을 발표하였다.

량세봉이 아연해진 표정으로 구원을 바라듯 오동진을 쳐다보았다. 중대장사업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걸 검무관사업을 하면서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더구나 년한이 짧은 자기가 독립군생활을 오래 해오는 오광의 우에서 중대장노릇한다는게 걱정스럽기 그지없었다.

5중대는 자기를 기어이 잡아서 물고를 내려고 윽윽하던 중대였다. 그 시절의 대원들이 여러명 있었다.

비록 검무관사업을 하면서 5중대 대원들과도 친숙해졌으나 중대에는 오광을 무턱대고 따르는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어제밤에 김한석이 《사전량해》를 어떻게 했는지 총영장의 앞에서 대거리를 할듯싶었던 오광은 덤덤한 표정으로 오동진의 명령발표에 고개를 두어번 무겁게 끄덕거렸을뿐이였다.

(참모장이 이번 통에 단단히 길을 들인 모양이군.)

오동진은 하루에 한번씩은 아무하고라도 싸움판을 벌리지 않고서는 오금이 싸하는 인간이라고 하던 사람이 그저 시무룩해 서있는게 오히려 측은하고 동정이 갔다.

그는 리진택이 하던 말이 생각나서 어서 가서 중대장사업을 인계할 준비를 하라고 돌려보냈다.

오동진은 오광을 따라 방을 나서는 량세봉을 불러세웠다.

《가까이 오게.》

오동진은 량세봉을 중대장으로 세워놓고 스스로 감개무량해져서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그새 김형직선생님께서 임자 이야기를 자주 하셨네. 잘 지내는가, 검무관일은 어떻게 하는가.검무관일을 착실히 해서 크게 도움을 받는데 본인은 그 자리를 달가와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 김형직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사람은 무척 솔직하고 속이 큰 사람같았는데 십분 그럴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군사일군으로 잘 키우라고 말씀하시였네. 난 임자가 새로운 직책을 잘해내리라고 믿네.》

《걱정이 앞섭니다. 잘하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도 말씀드려주십시오. 신임과 보살피심에 보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또 하겠습니다.》

《암, 그렇게 해야지. 빨리 중대를 인계받고 잘 정리하게. 며칠후에 김형직선생님을 만나뵈러 팔도구로 나와 같이 갑세.》

《팔도구로 말입니까?》

《음, 아무래도 왜놈들의 거동이 미타해. 지방총관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왜놈들이 김형직선생님을 노리고있는것이 분명해. 그래서 천마별영을 팔도구로 돌리고 선생님을 잘 모시도록 해야겠네. 우리도 이곳을 떠나 흥경현의 왕청문쪽으로 이동하려고 하네.

임자에게 또 하나 특별임무가 있네. 앞으로 김형직선생님께서 이곳에 오시면 일체 모시는 사업을 임자가 맡아주어야겠네.》

《알았습니다. 저에게 커다란 영광을 안겨주신 총영장님의 믿음을 잊지 않고 특별임무를 목숨바쳐 수행하겠습니다.》

량세봉의 목소리는 뜨거운 감격으로 떨리였다.

오동진은 사귄지 얼마 안되여도 량세봉의 남다른 인간적향기를 귀중히 여겼으며 김형직선생님의 뜻대로 제때에 응당한 위치에서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펼칠수 있도록 나래를 달아준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5중대에서는 예상밖의 일이 터졌다.

부중대장으로 임명된 오광이 배낭을 둘러메고 권총까지 가지고 달아난것이였다.

《나를 찾지 말라. 난 고향으로 간다. 모두가 보기 싫어서.》

오광은 이런 글쪽지를 남겨놓고 도망을 쳤다.

오동진이 격노해서 김한석을 찾아 어성을 높였다.

《참모장이 도대체 <사전량해>를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했소?》

《하, 글쎄요. 그놈이 딴꿈을 꾸고있는줄이야 알았습니까.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놈이 있어야 량중대장이 고달플게고…》

오동진은 김한석이 마치도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을 꺼내놓듯 거침없이 대답하자 쓴입만 쩝쩝 다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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