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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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다음날이였다. 달근이 허가를 받아냈다는 《명당자리》에 가보니 웬놈이 벌써 그곳에다 허연 색감으로 금까지 그어놓고 뚝딱거리며 무엇을 짓고있지 않는가.

달근은 눈이 화등잔이 되고 온몸이 굳어졌다.

(어허, 이런 변고라구야. 집사람이 눈을 펀히 뜨고 생눈알을 뽑힌다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달근은 자기가 장소를 헛갈리지 않았나 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눈을 떴다감았다 해보기도 했다. 암만 보아야 어제 그 관리인인지 뭔지 하는 작자와 함께 와서 찰떡같이 약속하고 문서까지 꾸며서 지금 제주머니에 가지고있는 곳이 틀림없었다.

《이보시오, 당신은 누구게 임자가 있는 땅에 와서 이짓이요?》

말이 처음부터 좀 거칠었다.

《여보, 사람이 말하는데 귀가 이사를 갔소?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는가 말이요!》

달근은 또 한번 버럭 소래기를 질렀다. 뒤모습을 보니 상체는 어른 같지만 다리정갱이는 밭은게 시끄럽게 놀면 자기 혼자서라도 얼마든지 손찌검을 해댈것 같은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경악할 일이 어데 있는가.

듣는척도 않고 먹는척도 않으며 하는 일을 계속하는 놈은 다름아닌 해방전 고향마을에서 순사질을 하던 고노놈이 아닌가?! 눈을 슴뻑거리며 아무리 다시 보아야 틀림없는 그놈이였다.

그 몇년새 그놈도 풀싹 늙은것 같았다. 거드름스럽던 기상은 간곳없고 잰내비낯짝엔 그물같은 주름이 촘촘히 덮이였다. 주독이 올라 늘 빨갛던 코등에는 보기에도 구역질나는 고름집까지 생겨있었다.

고노도 머리를 들고 두번씩이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쳐다보는 순간 두눈을 뒤집었다.

《잘 만났다. 이놈, 네놈이 여기까지 와서 내 발등을 밟는구나!》

달근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그는 팔소매를 걷어올리며 노려보았다.

고노도 입을 실룩거리며 상통이 험악해졌다. 멍청해진것 같던 눈에서 살기가 뻗쳐나왔다.

《사람값에도 못 가는 조선놈!》

《뭐? 사람값에두 못 가는 조선놈이라구? 이 쪽발이새끼야. 아직도 네놈들의 세상이 그냥인것 같아?》

《난 나또? 고노 쿠사이야쯔.》

《이 자식이 아직 입이 살았구나. 날보구 구린내나는 녀석이라구? 내 이국땅에서 만나기는 했다만 조선사람의 주먹맛이 어떤가 한번 봐라!》

달근은 달려들어가며 고노의 사타구니를 들이찼다. 어떻게 맞았는지 그놈은 두손으로 불통을 싸쥐고 앞으로 폴싹 꼬꾸라졌다.

그런것을 다시 한손으로 그놈의 머리끄뎅이를 잡아 뒤로 젖히며 다른 손으로 상통을 들이쳤다.

《이놈아, 네놈에 대한 한을 고향땅에서 풀지 못한게 분하다. 오늘 잘 걸려들었다. 그 잰내비혀바닥으로 한번 핥아봐라, 뒤간 구린내맛이 어떤가 보란 말이다.》

《변상, 이거야 이국땅에 건너온 같은 처지에 너무하지 않소. 내 잘못했소. 잘못했소.》

《뭐, 같은 처지라구? 이놈아, 내 눈이 멀어 사람답게 살아보자던노릇이 이 꼴이 됐다만 네놈하구 같은 처지가 되고싶지 않다. 이놈아.》

달근은 주먹을 또 한대 들이먹였다. 고노는 사타구니와 볼기짝을 붙어잡고있던 손으로 싹싹 빌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놈아, 가자. 가서 변소간바닥을 핥은 다음 이 회계장을 까도 까자.》

달근은 성이 조금도 풀리지 않고 고노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그는 곁에서 놀라기도 하고 키득키득 웃으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정말 무슨 일을 낼것처럼 여기 가까운데 변소가 어데 있는가고 묻기까지 했다.

《사람이 있는데 변소가 없겠소? 정 못 찾으면 궁둥이를 벌리고 더러운것이 나오는데를 핥게 하면 되지 않소?》

《저 골목을 돌아가면 맨 황금무지요.》

달근이 하는 조선말을 알아들은 사람들가운데는 이런 소리를 하며 박장대소하는 젊은 축들도 있었다. 젊은 녀인들은 코를 싸쥐고 이마살을 찌프리며 종종걸음을 하였다.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달근의 안해와 어린 부호까지 달려와 고노를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욕설하였다.

한쪽에서는 끌고가겠다고 눈을 부라리며 을러메고 다른 쪽에서는 끌려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질을 하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였다. 길가던 사람들이 에워싸고 와와 하며 따라가기는 하지만 말리려드는 축들은 별로 없었다.

이날 달근은 뒤간은 끝내 찾지 못해 고노놈에게 변소바닥핥기는 못시켰지만 길가의 시궁창맛은 톡톡히 보였다. 그러고나서 무릎을 꿇여 앉혀놓은 다음 일의 내막까지 말짱 알아냈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 기이한것이였다.

일제가 패망한 후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건너와 애틀란타에 정착하게 된 고노는 변달근이 그 자리를 세낸것까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이미 점찍어두었다는것은 알면서 일본놈 고유의 그 간특한 기질로 관리인을 후려냈던것이다.

달근은 고노의 멱살을 쥔채 관리인녀석을 찾아가 또 한번 대들이판싸움을 하고는 기어이 그 자리를 따내였다.

《이 쪽발이새끼, 내 눈앞에 다시한번 얼씬만 해봐라. 그때는 네놈이 저 하늘을 마지막으로 보는것인줄 알아라.

내 이 더러운 나라에 와서 살인죄로 감옥귀신이 되더라도 용서 안할테다.》

달근은 고노에게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죽기내기로 차지한 곳에서 달근은 피를 물고 장사와 소기업을 해서 얼마간의 돈을 벌기는 했지만 눈을 감을 때까지 사람대접을 받아보지 못했고 인간다운 생활이나 존엄은 누려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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