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3 장

4

(2)

 

처녀시절의 응희는 괄랭이라고 할 정도로 성격이 활달하고 주저하는것이 없었다. 손우로 두명씩이나 되는 오빠들속에 뒤섞여서 응석을 부리며 구김살을 모르고 자라서인지 말이건 행동이건 두려워하는것이 없고 거침없었다.

한날한시에 나온 손가락도 길고 짧은것이 있다더니 한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여난 그들 남매들도 성격이 각각이였다. 오히려 두 아들은 성품이 차분하고 말이 적었다. 학교에서나 집에 들어와서나 책밖에 몰랐다.

그러나 응희는 오빠들과 달랐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자 대학으로 가라는 부모의 요구에 자기는 온실의 화초가 아니라 비바람을 이겨내는 들꽃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자면 일찍부터 일을 배우고 단련해야 하는데 로동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것이였다.

아버지가 나서서 어느 요란한 호텔의 상점판매원으로 주선해주었으나 자기가 말하는 로동현장이란 그런 곳이 아니라며 이번에는 제 혼자 뛰여다녔다. 그렇게 굳이 골라 생산기업소의 로동자가 되였다.

그렇지만 포부는 컸다. 대학은 통신으로 졸업하겠다고 했다.

맏오빠가 응희의 파격적인 행동에 어이가 없어하며 한마디 했다.

《너 같은 괄랭이를 이담에 어떤 총각이 얻어가겠는지…》

《오빠 말하는걸 좀 보라. 내가 무슨 물건짝이라구 얻어가구 말구 해? 얻으러 오는 사람이면 절대로 가지 않을래.》

《얘 얘, 너 같은 처녀한테 누가 장가들겠는가 하는게 걱정돼서 그래.

《오빠, 걱정 꽉 놓으시라요. 난 인민군대 군관한테 시집가자구 그래요. 이제 두고보지. 오빠보다 더 멋진 총각이 짝을 뭇게 해달라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지 않나. 그땐 오빠가 훼방이나 놀지 말라요.》

《야 야- 내 손들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는 매부는 아마 네 손탁에서 숨도 크게 못 쉬는 어리숙한 위인일게다. 헛헛헛…》

맏오빠는 그러며 녀동생의 방울코를 꼭 쥐였다놓았다.

《아야야- 오빠 그런 걱정은 말라는데… 호호호…》

그런 딸을 그의 부모들은 불안한 눈길로 살피였다. 일하는데서나 생활에서 더우기 이제 나이가 되여 대상자를 고르는데서 물덤벙술덤벙하여 실수하지 않을가 하는 위구심이 컸던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불러앉히고 타이르기도 했다. 그런 때면 응희는 눈을 살풋이 내려뜨고 얌전이가 된듯 앉아 《알겠어요, 어머니.》하고 공손히 받아들였다. 하면서도 《내가 뭐 어린앤가. 마음놓으시라요.》하는 제딴의 장담비슷한 꼬리를 꼭 달군 하였다. 과연 응희는 그후 자기가 한 말대로 일에서나 생활에서 남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기업소의 게시판에서는 늘 임무수행에서 모범인 그의 사진이 떠나본적 없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딸을 잘 두었다고 인사하였다.

그런데 대상자선정에서만은 부모들의 우려가 그대로 번져졌다.

어느해 모내기철이였다.

응희가 다니는 기업소에서는 평양에서 퍼그나 떨어진 벌방지대에 농촌지원을 나갔다. 처녀들이 많은 기업소여서 응희 말고도 같은 또래의 처녀들이 여러명 되였다.

철을 놓치지 말아야 할 모내기가 한창고비에 이른 어느날, 주둔지역에 있는 부대군인들이 논벌로 달려나왔다. 하늘색령장을 단 공군부대군인들이였다.

군인들이 나타나자 논벌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논뚝의 곳곳에 주런이 세운 붉은 기폭들이 바람에 기세차게 펄럭이고 방송선전차에서는 격동적인 선동과 힘찬 노래들이 논판을 들었다놓았다.

그날 모내기전투장에는 비행군관학교의 학생들까지 나타나 더욱 이채를 띠고 열의를 북돋아주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금 여기 논벌로는 오늘 진행한 실습비행훈련에서 혁혁한 성과를 이룩한 군인동지들도 달려나왔습니다. 그리하여 모내기실적은 시간이 다르게 더욱 높아가고있습니다.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방금 저 푸르른 하늘에서 훌륭한 비행술을 보여준 유진혁, 차용세동무를 비롯한 군인들은 올해 사회주의건설의 주요전선의 하나인 농업전선에 용약 달려나와 모내기에서도 일당백의 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며 혁신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키고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옆 논배미에서는 멀리 평양에서 지원나온 ××기업소의 처녀모내기명수들이 푸른 주단을 펼쳐가고있습니다. 그 앞장에는 렴응희, 김향단, 서청옥동무들이 서있습니다.

군민의 단합된 힘, 군민의 뜨거운 정이 차넘치는 이 드넓은 논벌에 이제 가을이 오면 반드시 풍년의 황금나락이 설레일것입니다.

그럼 오늘의 모내기전투에서 모범을 보이고있는 이들을 축하해서 노래 한곡 보내드리겠습니다.》

방송선전차에서는 쉴새없이 새 소식이 전해지고 노래들이 울려나왔다.

《얘 응희야, 비행사들이 논벌에 나왔대.》

《나도 들었어. 방금 머리우에서 멋진 비행운을 펼치며 창공을 날던 군인들이겠지? 우리 이따가 한번 찾아가볼가?》

《누굴 말이냐?》

《미래의 군인비행사들을…》

《얘, 너 정신있니?》

《군인비행사들을 만나보자는데 정신은 무슨 정신…》

《응희, 넌 네 오빠말대루 괄랭인 괄랭이구나. 군인들을 찾아가선 어쩐다는거야?》

《미남자들인가 한번 보기두 하고 비행기에 좀 태워줄수 없는가고 청도 드려보지 뭐.…》

《호호호… 너 인민군대 군관한테 시집가겠다고 하더니 오늘 군인들이 나왔다니까 무척 마음이 싱숭생숭한 모양이구나.》

《청옥이 넌…》

《호호호…》

《호호호…》

모내는기계뒤에 앉아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며 두 처녀가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또 한배미가 푸르러갔다.

드넓은 벌이 방송선전차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소리, 모내는기계의 발동소리, 전투원들의 웨침소리, 웃음소리로 끓어번졌다.

응희네 기계가 논뚝을 가까이 했는데 앞에서 누가 그들을 찾았다.

《자, 평양처녀동무들, 잠간 기계를 멈춰달라요.》

얼굴이 갱핏한 안경을 낀 중년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앞가슴에서 사진기가 데룽거렸다. 그는 급히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는 첨벙첨벙 논판에 들어섰다.

응희와 청옥이가 나란히 앉은 모내는기계뒤에 오더니 사진기를 내들었다.

《누구예요? 사진은 왜 찍어요?》

응희가 매몰스럽게 내쏘듯 물었다.

《하- 피차 바쁘다보니 자기소개를 미처 못했습니다. 농장의 직관원입니다. 미안합니다. 모내기명수들인 평양처녀들을 사진찍어 게시판

에 소개하라는 중대한 임무를 받았습니다. 사양하지 말아주십시오. 잠간이면 됩니다. 자, 얼굴만 약간 들어주십시오.》

《우린 필요없어요. 저쪽에서 혁신하고있는 군인동지들을 찍어주세요.》

《예에- 다 생각이 있습니다. 잠간이면 됩니다. 군인들이건 평양처녀들이건 다 혁신자들이거던요.》

《우린 정말 안돼요. 이런 차림으로 어떻게 사진을 찍는다구…》

옆에 앉은 청옥이가 울상이 되여 손까지 내저었다.

《사진이 필요없단 말이지요. 옷차림이 안됐단 말이지요. 일하는 모내기명수들의 차림이 어떻다구… 지금 차림이 더 진실하고 아름다와보이지요. 군인동지들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자, 잠간이면 됩니다.》

직관원은 제잡담 한참 너스레를 떠는척 하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구도를 잡아서 벌써 몇번이나 샤타를 눌렀다.

《자, 그럼 더 큰 성과를 바랍니다. 게시판에서 만납시다.》

그는 두 처녀에게 겁석 인사까지 하고는 아까처럼 첨벙거리며 논뚝으로 도로 나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참 재미나는 사람이다야. 그런데 우릴 찍긴 찍었을가?》

청옥이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필요없다고, 안 찍겠다고 매몰스럽게 대답했으니 사진사가 정말 찍지 않았거나 아무렇게나 찍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옥이는 락심천만한 얼굴로 사라지는 직관원의 뒤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얘, 빈포기 생기겠다. 어딜 그렇게 멍청히 쳐다보니? 찍든말든 상관치 말자. 게시판에 나붙으면 어떻구 못 나붙으면 어떻니?》

《얜 자기는 일년내내 기업소게시판 영예란에 사진이 나붙어있으니까…》

청옥은 입을 샐쭉하며 웃었다.

《얘 청옥아, 그러지 말고 우리 이제 쉴참에 아까 말하던대로 군인들을 보러 가자.》

《너 정말 이 머리가 어떻게 잘못된게 아니야? 난 망측하게 찍힌 사진이 나붙을가봐 그래.…》

청옥은 또 울상이 되였다.

《망칙하면 어떻고 화려하면 어떻다는거야. 우리가 생긴 그대로겠지. 별걱정을 다하구 앉았다야.》

응희는 방울코를 움씰움씰하며 곁에 앉은 청옥이에게 밉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그들이 바둑판같이 네모반듯한 면적이 큰 논배미의 모내기를 끝내고 다른 배미로 기계를 옮겨놓았을 때 마침 휴식구령이 내렸다.

방송선전차에서는 벌써 흥겨운 군중무용곡이 울리고있었다. 군인들이 먼저 군중무용을 시작하고 농장원들과 지원자들 또한 춤판을 벌리였다.

휴식장이 된 좀 둔덕진 풀판에다는 게시판을 세우고 모내기에서 모범인 혁신자들을 소개하는 속보와 사진들을 주런이 내붙였다. 안경을 번쩍이며 목에 사진기를 건 농장직관원이 부지런히 뛰여다녔다. 손에는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등 여러가지 색갈을 찍었던 큰 붓들이 여러개 들려있었다. 귀밑으로 내돋은 땀방울이 해빛에 번쩍거렸다. 쉴참에 모든 사람들이 보게 대서특필하고 사진을 깨워 붙이느라고 어지간히 바삐 돌아친것 같았다.

숱한 사람들이 그앞에 모여서서 사진을 가리키기도 하고 속보의 글줄을 소리내여 읽기도 했다. 저들끼리 수군수군, 소곤소곤하는 축들도 많았다.

큰 게시판의 한쪽에는 군인들의 사진이, 다른 한쪽에는 지원나온 평양처녀들의 사진이 또 그옆으로는 농장원들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그 사진을 크게 잘 뽑았다.》

《사진을 잘 뽑았소? 원체 사람들이 잘생겼지. 다 미남, 미녀들이요.》

나이든 농장원들과 지원자들은 게시판앞에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

자기들의 모습이 망측할가봐 걱정하던 청옥이도 저렇게 싱싱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자기가 옳긴 옳나 하며 남이 볼세라 몇번이나 훔쳐보았다. 청옥은 한옆에서 붓을 든채 흐뭇해서 서있는 안경낀 직관원에게 머리를 다소곳이 숙여 인사까지 했다. 직관원은 마주 끄덕하며 알은체를 했다. 그는 자기 솜씨가 어떠냐는듯 묻기라도 하는것처럼 느슨한 미소까지 지었다.

그런데 이날 직관원이 찍은 사진을 붙이면서 우연히 그렇게 됐는지 아니면 우정 그랬는지 게시판의 맨 웃단의 유진혁의 사진과 렴응희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었던것이다. 함께 사진을 보던 평양처녀들이 응희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곤거렸다.

《응희야, 네 사진 왼쪽에 붙어있는 군인이 앞날의 비행사야. 이름이 유진혁이구나. 네 사진하구 나란히 붙어있다야. 어마나, 얼마나 멋있니. …》

《내 사진만 있니? 그옆에 청옥이 너도 있고 향단이, 수옥이 다 있잖니?》

《그래두 응희, 우린 다 이쪽에 외기러기처럼 따로 떨어져있지만 넌 비행사하고 가지런히 어깨를 맞대고있다야. 호호…》

《그게 어쨌다는거냐?》

《이젠 군인들을 만나보러 가지 않아두 되겠다야. 사진으로 상봉을 다 했으니. 야- 잘생겼다야. 저 눈섭이랑 어글어글한 눈이랑 코랑 좀 보려마.》

《비행사가 될 군인이 그럼 못생겼겠니?》

《비행사가 된다구 다 잘생겼을가?》

《난 저 군인이 미남인것두 좋지만 그보다는 비행훈련에서나 오늘의 모내기에서나 언제나 모범이구 앞장선다는게 더 맘에 들어.》

《그럼 한번 너와 맞세워볼가?》

청옥이가 응희를 중떠보았다.

《마주서기나 새나. 난 저런 군관이라면 선을 볼 필요도 없이 합격이야!》

《정말이야?!》

《정말 아니면.》

응희가 그 실팍한 한팔을 올려 흔들며 제 동무들앞에서 으시대기까지 했다.

《호호호…》

《호호호…》

평양처녀들은 저들끼리 어깨를 두드리고 손을 잡아흔들면서 웃어댔다.

그러는데 머리우에서 좀 걸걸한 목소리들이 울렸다.

《처녀동무들! 이자 뭐라구요?》

《선을 안 보구두 합격이라구요?》

뜻밖의 남자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처녀들은 소스라치듯 놀라며 눈이 화등잔만 해져서 입을 싸쥐였다.

《어마나, 이걸 어쩌니-》

처녀들은 어쩔줄 몰라하며 돌아갔다. 여러명의 군관들과 군인들이 등뒤에서 게시판의 사진을 올려다보다가 그들이 하는 말을 고스란히 들었던것이다.

《여 진혁동무, 진혁이 어데 갔어?》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 응희사진 왼쪽에 나란히 붙어있는 사진의 주인공을 찾는것이였다. 그통에 더 바빠난 처녀들은 재재거리던 참새무리가 무엇에 쫓겨 포르릉 날아나듯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처럼 거침없고 대담하던 응희까지도 얼굴이 홍당무우가 되여 천방지축 들구뛰였다. 그렇지만 떨어진 손수건을 집느라고 어물거리던 뚱뚱보처녀 향단이가 군관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평양에 있는 기업소명이며 응희네 집주소 그리고 방금 저들끼리 한 말까지 털어놓고서야 겨우 놓여나왔다.

군관들이 몰켜선쪽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한동안 그칠줄 몰랐다.

이런 일이 있은 때로부터 두해가 지난 풍요한 가을 어느날.

아침출근을 서두르던 응희는 손기척소리에 문을 열었다. 체격이 미끈하고 눈이 억실억실한 한 공군군관이 복도에 서있었다. 그는 거수경례를 붙이더니 대뜸 《렴응희동무네 집이 맞지요?》 하였다.

응희는 가슴에서 돌덩이같은것이 쿵- 하고 떨어지는것 같았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뉘신지?…》

《농촌지원때 게시판에 사진이 나란히 붙었던 공군상위 유진혁입니다. 응희동무가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할수 있겠는지 해서 찾아왔습니다.》

《어마나? ! 아이! 아이!…》

응희는 두손을 모두어 앞가슴에 잡았다가 얼굴을 싸쥐며 그 자리에 풀싹 주저앉았다.

그들의 첫 상봉은 이렇게 있었고 교제가 이루어졌으며 급류를 타고 또 한해후에는 한가정이라는 배에 탔다.

응희가 처녀때에 한 롱담은 진담으로 되였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랑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을가? 있기에 롱담에는 언제나 심각한 목적이 숨어있다는 격언도 생겨났지.… 지금 그 사진을 점도록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있는 응희의 눈앞으로는 그 잊을수 없는 나날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갔다.

액틀을 몇번씩 다시 쓸어보고 제자리에 도로 놓았다.

그러던 응희는 책상우에 네모나게 접어놓은 종이장을 발견하였다. 흠칫하였다.

(내가 왜 집에 돌아오자바람으로 이 사진이 놓여있는 책상부터 살피지 않았을가. 난 맹꽁이야. 아직도 처녀때처럼 덜퉁해.…)

황급히 그것을 들고 펼쳤다. 큼직큼직한 남편의 글씨가 눈에 확 안겨들었다.

《사랑하는 응희!

떠나보내놓고 급히 찾아서 안됐소. 며칠 되지 않았는데 당신이 보고싶고 알고있어야 할 일이 있기에 조카 철림이한테 전화를 하였소. 처가집에까지 전화를 하면 소동을 피운다고 할것 같아 그만두었소. 달리 생각마오.

돌아오면 집은 비여있을거요. 당신이 없는 동안 매일 우리의 보금자리에 들려보며 부엌불을 죽이지 않고 동자질련습을 하겠다고 내 입으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여 미안하오.

중요한 임무를 받고 사랑하는 와 함께 훈련을 떠나오. 대대비행사들중에서 용세동무와 내가 뽑혔소. 비행사라고 하여 누구에게나 다 차례지지 않는 이처럼 큰 기대와 믿음을 절대로 잊지 않겠소. 꼭 보답하겠소!

어떤 일이 있어도 받은 전투임무를 기어이 수행하고 당의 품, 조국의 품에 안기겠소. 승리자가 되여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겠소. 기다려주오!

응희! 혹시…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이 있었다.) 입밖에 내자니 좀 별난 생각이 드오. 당신만 볼 글이니 용기를 내여 쓰오.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우리 둘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게 해줄 행복동이가 태여나면 어떻게 할가? 아직 사진을 보내달라고 할수는 없고… 이름도 많이 생각해두었다가 돌아온 다음에 지읍시다.

그렇지만 하얀 종이에 귀염둥이의 고 깜찍스러운 손과 발만을 그려서 보내주오. 부대에서 일군들이 자주 다녀간다고 했소. 안녕히.

주체98(2009)년 3월 ×일 20시 20분 당신의 사랑하는 진혁》

응희는 몇번이나 그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눈을 감고 가슴에 그 종이장을 소중한 보물처럼 꼭 껴안았다.

(그래서 당신이 철림이한테 전화했군요. 우리 집에는 날, 날 놀래울가봐… 그런것도 모르고 순간이나마 당신을 섭섭하게 생각한 이 불민한 녀자를 용서해주세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는 응희의 두눈굽에서는 맑은것이 샘솟아 도르륵 뺨으로 굴러떨어졌다.

갑자기 지금까지 잠자고있던 새 생명이 요동치는듯싶었다.

글줄에 담겨진 남편의 심정이 아직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새 생명에게 가닿은것인가!

응희는 두손으로 배를 살그머니 눌러잡았다. 그지없이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심정이 엷은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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