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3 장

4

(1)

  

응희는 동서의 면회를 끝내고 돌아오자바람으로 내려갈 차비를 서둘렀다.

해산전에는 못 내려간다고 지청구를 하며 우악스럽게 붙들고 야단하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친정집을 떠났다. 하경숙을 찾아 사연을 알려주고 평양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들이 렬차를 타고와서 집에 당도한것은 춘분이 지나 점점 낮시간을 길게 해주는 봄날의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한창 붉은 노을을 펼치고있는 때였다. 남향받이 산기슭에 줄을 맞춰 들어앉은 군관살림집마을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저녁녘이여서 그런지 마을은 별로 조용하였다. 뜨락에 나와있는 녀인들이나 아이들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엇을 그리 많이 꿍져넣었는지 기차역에서부터 멀지 않은 집으로 들어오면서 하경숙이와 짐을 엇바꾸어가며 지고 맞들고 했는데도 두번씩이나 쉬지 않으면 안되였다. 응희는 가지고온 배낭과 보짐들을 마루에 내려놓기 바쁘게 심한 갈증이 느껴져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수도꼭지를 틀고 정신없이 물을 두고뿌나 받아마셨다. 그제야 심신이 좀 거뜬해지는것 같았다.

부엌을 휘둘러보았다. 자기가 평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손질해놓은 그대로였다.

불이 죽은 부뚜막은 싸늘하게 식었고 쌀함박이며 칼도마는 물기 한점없이 말라있었다. 늘 반짝반짝하던 늄가마도 그새 빛을 잃고있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한번도 미치지 못한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남편은 이 부엌에 들어서보지 못했다는것을 말해준다. 떠날 때 자기가 없는 동안의 식사랑 잠자리랑 걱정하자 남편은 흔연히 말하지 않았는가.

《나야 총각동맹에서 탈퇴한지 얼마된다구 그런 걱정을 다 하오? 부대에 나가면 내가 자던 침대, 내가 늘 마주앉던 식탁이 그대로 있소. 걱정 꽉 놓소.》

《그래두…》

응희는 떨어져있는 며칠동안에 자기들사이의 그 열렬하고 억척같은 정이 무르녹던 보금자리가 식어지고 빛을 잃지 않을가 하는 위구심이 생기며 가슴 한구석이 알찌근해났다. 응희의 그런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남편은 제꺽 말그루를 바꾸었다.

《걱정놓으라는데. 내 그럼 아무리 바빠두 하루 한번씩은 집에 들려보겠소. 당신없는 사이에 동자질련습이랑 좀 해보고… 그래야 당신 수고도 헤아리지?》

《아이, 누가 내 수고를 헤아려달래요? 그러다가 옆집 동무들이나 아주머니들의 눈에 띄면 어쩔려구…》

《보면 뭐라오?》

《그래두 안돼요. 날 욕하지요 뭐. 저 집에선 남편을, 그것도 비행사를 부엌간에 들게 한다고…》

《그럼 뭐 할수 없구만. 무슨 수가 있겠나? 그렇지, 문을 닫아걸구 해보는 수밖에…》

《그것두 안돼요.》

《그럼 부엌불이라도 죽이지 말아야지.》

《그건 허용합니다.》

응희는 팔을 들어 한번 흔드는척 하며 응했다.

했던것인데 부엌불은 죽어있다. 부뚜막이고 방안은 싸늘하다.

온기나 사람의 손길이 미친 흔적은 없지 않는가.

응희는 방안으로 올라와 살펴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문에는 자기가 떠날 때 쳐놓고간 가림천이 그대로 밖을 막고있다. 침대우에는 남편이 요구해서 그렇게 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수놓은 베개잇을 낀 길다란 통베개에 두툼하지도, 그렇다고 얇지도 않은 비단이불 한채가 포개놓은채로 있었다.

집으로 달려내려와 황혼이 깃드는 이때쯤이면 남편이 반겨맞아줄것이라고 생각했던 응희는 빛을 잃은듯 한 집안이며 고즈넉한 정적에 마음이 산란해져 가는 한숨을 내그었다.

그러다가 인차 자신을 다잡았다.

(요즈음 정세가 몹시 긴장하다고 면회를 갔을 때 형님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부대에서 들어오지 못할수 있다. 일이 바쁜데 내가 없다는것을 알면서야 무엇때문에 빈집에 자주 나온단 말인가. 이제 저녁식사랑 준비해놓고 련락을 하면 내가 돌아왔다는것을 알고 아무리 바빠도 한달음에 달려올것이다!)

그는 집에서 입는 허드레옷을 갈아입은 다음 팔을 걷어붙이고 일에 달라붙었다. 응희는 처녀때 《괄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일손도 걸쌌다. 지금 그 솜씨가 되살아난것 같았다.

먼저 부엌에 불을 지폈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어보지 못하고 열을 내보지 못한 아궁에 마른 장작을 밀어넣고 불쏘시개를 앞에 놓은 다음 성냥을 득 그어댔다. 불길이 확 피여오르는것과 함께 파르스름한 연기가 솟구치며 앞으로 밀려나왔다. 그랬다가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한것처럼 조금 있더니 장작에 불이 당기고 후룩- 후룩- 소리를 내며 불길이고 연기고 끌려들어갔다.

갓 결혼하고 이 집에 들 때 불이 잘 들어야 방안이 아늑하고 가정주부가 공연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며 부대정치위원이 얼굴에 검댕이칠까지 해가며 손질해준 부엌이고 온돌이여서 불이 여간만 잘 들지 않았다.

먼저 부엌을 물걸레질하여 찬장이며 가마, 부뚜막의 윤기를 되찾았다. 그런 다음 어머니가 떠나올 때 꾸려준 짐들을 마루에서 끌어들여다가 풀었다.

훌쩍 떠나간다고 못마땅해하고 치원은 했지만 어머니사랑은 역시 다심하고 변함이 없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국수만 해도 청수랭면, 즉석국수 해서 몇가지나 되였다.

《얘, 네 남편은 지금도 국수라면 그렇게 오금을 못쓰니?》

평양에 올라간 첫날 저녁밥상에 마주앉았을 때 어머니가 불쑥 한 말이였다.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응희가 방금 밥 한숟가락을 크게 떠넣다말고 눈이 둥그래지며 물었다.

《아무러면 가시어머니가 제 사위 식성도 모를가. 장가가는 날 누가 볼가봐 두릿두릿 살피면서두 국수그릇은 들여보내는족족 말끔히 비우더구나. 네 몫까지두 다 빼앗아 축냈지?…》

《아이, 어머니두. 좀 모른척 하실거지. 말짱 다 들여다보았군요.》

그랬었는데 보짐안에 번쩍거리는 은지포장을 한 국수가 여러 봉지 되였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쉬는날 같은 때 집에서 눌러먹으라며 감자농마가루, 메밀가루까지 봉지봉지해서 여러 묶음 있었다.

배낭밑에 꽁꽁 싸서 넣은걸 펼쳐보니 참미역이였다.

(참, 어머니두…)

응희는 얼굴이 홀딱 붉어졌다. 곁에서 누가 엿보는 사람이 없는것이 다행이였다. 그건 분명 자기가 해산하고나서 먹으라고 보냈을것이다.

그밖에도 비닐로 진공포장한 왕새우튀기, 조개살, 낙지며 살찐 통닭, 통오리훈제 같은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정도이상으로 풍청대는것이 께름직하고 사위앞에서까지 그 무슨 위세를 뽐내려 하는것 같아 마음이 그닥 밝지 않았다. 하면서도 이 꾸려준 물건들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도 깃들어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하였다.

응희는 오늘 저녁은 어머니가 보내준것으로 한상 푸짐히 차리기로 했다. 남편이 들어오면 마주앉아서 《이것 맛보세요.》, 《요것도 들어보세요.》하며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밤새껏 오손도손 이야기하고싶었다.

다른 사람은 없고 자기들 둘뿐이여서 네모배기소반을 놓을가 하다가 아무래도 어머니가 보내준 갖가지것들을 골고루 맛보라고 다 올려놓자면 상이 작을것 같아 손님들이나 와야 쓰군 하는 둥그런 큰 상을 놓았다. 그랬는데도 자리가 모자라 어떤것들은 상우에서 내려지는 서운함을 당하였다.

(용서해라, 어찌겠니. 자리가 없는걸…)

응희는 제 혼자 중얼거리며 흥에 떠 돌아갔다. 이렇게 놓고 한번 보고 저렇게 놓고 또 한번 보기도 했다.

그리고나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데 남편은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오늘 밤 전투근무는 아닐가.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소식이 없으면 몇집건너에 있는 하경숙이네 집에 가보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가 꾸려준것을 거의나 같은 몫으로 함께 갔던 경숙이네 집에 보내려고 따로 갈라 싸놓았다. 평양에 친정어머니도, 밭은 친척도 없는 하경숙에게는 내려올 때 자기처럼 짐이 많지 않았던것이다. 각근하게 관심을 돌려준 사람이 별로 없은것 같았다.

응희는 차려놓은 상을 다시한번 눈여겨 살펴보면서 남편이 특별히 좋아하는것들을 그가 앉을 앞쪽에 또 옮겨놓았다. 그리고는 상보를 씌워 벌써 따뜻해진 아래목에 밀어놓았다.

부엌에 다시 내려가 걸레와 소랭이에 맑은 물을 떠담아들고 올라왔다. 방안청소까지 말끔히 해놓으려는것이였다.

먼저 아래방을 구석구석까지 깐깐하게 닦아냈다. 새 물을 바꾸어가지고 이번에는 웃방으로 올라갔다. 소랭이를 한쪽에 놓고 걸레를 쥔채 벽 한쪽에 있는 책상우의 탁상등을 켰다.

제일먼저 눈에 띄우는것이 남편과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이였다. 액틀속에서 두 청춘남녀가 왜 이제야 돌아왔느냐고 힐책하면서도 무척 반기는것 같았다. 그 액틀을 들고 한참동안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가정을 이룬 남편과 자기자신이건만 마치 퍽 오래전에 사귀였던 친근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다시 만난듯이 느껴져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이 사진은 약혼을 하기 전에 찍은것이였다. 우연이면 우연이라고 할가. 아니, 그것은 자기들사이의 결합은 필연적이라고 두 심장이 높뛰며 말없이 고백하던 그날에 찍은 사진이였다.

련애때는 소경이 된다고 한 어느 한 외국의 이름난 문필가의 격언의 뜻을 초월하여 이 땅에 사는 청춘남녀들의 사랑은 무엇을 위해 필요하고 어떻게 불타야 하는가를 깨닫고 그것을 한생 변함없이 지켜가자고 언약한 바로 그날에 그들이 남긴것이였다.

그래서 약혼사진이나 결혼사진보다도 더 소중한지 몰랐다. 그래서 이 사진이 가정을 이룬 날부터 오늘까지도 책상우에서 떠나지 않고 자기들사이의 영원한 사랑의 상징처럼 자리잡고있는지 모른다. 두 청춘남녀의 얼굴은 분명 행복에 겨워있다. 그렇지만 활짝 웃음을 담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둘이 다 긴장해보이고 몸가짐이며 표정들이 굳어진듯한감을 주었다.

아직은 숫저어하고 두려워하는 부자연스러움뒤에 애틋하고 열렬한 무엇이 끓어번지고있었다.

사진사는 이런 청춘남녀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본 경험자인듯싶었다.

《자, 곧 신랑신부가 될 젊은이들같은데 자세들이 너무 꼿꼿합니다. 자, 날 보라요. 서로 고개들을 이렇게…》

사진사는 사진기를 든 왼손말고 오른손을 들어 가운데쪽으로 가리켰다. 그것으로 서로 고개를 안쪽으로 기울이라는것을 권고하였다.

《아니, 아니… 신부될이는 좋은데 신랑될이는 군인이여서 그런가요? 막대기처럼… 그렇지, 그렇지. 좋습니다. 그럼 찍습니다.》

당장 샤타를 누를것처럼 하던 사진사는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허리를 펴고 렌즈에서 눈을 뗐다.

《눈길을 서로 허둥거리지 말고 여기 좀 봅시다. 낯색이 너무 굳어요. 좀 웃으라요. 웃으라는데… 안되겠군. 내가 이제 하나, 둘, 셋 하면 이렇게 하라요. 그러면 저절로 웃는 표정이 됩니다.》

사진사는 제가 먼저 입까지 실룩하며 두눈을 크게 뜨고 마주보았다.

응희는 그 모양이 너무 우스워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틀었다.

《자, 자… 너무 좋아는 하지 마시고… 그럼 찍읍시다. 하나, 둘, 셋. 예, 좋습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였다.

지금도 응희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옥류교가까이에 있는 사진관과 제먼저 우습강스러운 표정을 짓던 늙수그레한 사진사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러면 마음이 봄날처럼 따뜻해지고 행복에 잠기군 한다. 그리고 그 사진관앞을 지날 때면 고개를 갸웃하고 창문안을 한참씩 들여다보군 한다.

그와 남편 유진혁이와의 교제와 결합은 응희가 우연히 던진 한마디의 롱담에서부터 시작되였다고 할가?

아니, 롱담에는 언제나 심각한 목적이 숨어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응희로서는 사실 그때 무슨 특별한 목적을 두었거나 일이 그렇게까지 번져지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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