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6. 꽃샘잎샘계절

 

(4)

 

악몽같은 세월의 년륜이 또 한돌기 돌아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자 집안의 대소사가 량세봉의 두어깨에 무겁게 실리였다.

무엇보다도 식솔많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는 농사일에 뼈심을 바쳤다. 새벽부터 저녁늦게까지 노상 밭에서 살았다. 박지주의 땅을 내놓고 국수집 최현수의 도움을 받아 그 집 땅을 함께 다루고 가을에 가서 7 대 3으로 몫을 나누어가졌다.

7은 량세봉의 몫이여서 옆의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였다.

국수집에서는 여유가 생기는족족 해마다 땅을 사들였는데 그 땅이 이제는 몇정보 실히 되여 국수집영업때문에 늘 드바쁘게 지내던 최현수의 부모들과 최현수의 손발만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었던것이다. 더구나 최현수는 스물이 넘어서자 장가를 들고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작정하고있었다.

량세봉은 자기 힘으로 집안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동생들과 함께 벼짚을 구해가지고 지붕을 다시 일매지게 하고 벽도 석비레와 흙을 적당히 섞어 물매질을 반듯하게 하였다. 거기에 웃산에 가서 백토를 파다가 회칠까지 하였다.

이듬해에는 웃방에 곁방을 하나 더 꾸리고 가슴들이 볼록해가는 봉녀와 윤재순이 함께 있도록 하였다.

닭과 개도 구해오고 꿀벌도 몇통 쳐서 앞으로 송아지 한마리 구해다가 기를 작정을 하였다.

국수집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는 변소를 여러개 만들어세우고 진거름을 많이 만들어 늘 논밭에 뿌렸다.

《국유림》에서 솔검불도 져다가 읍거리에 가서 팔고 비료를 사서 듬뿍 뿌리였다.

마을사람들은 량세봉이 큼직한 지게에 나무단이나 곡식단들을 메고 마을로 들어올 때에는 산이 걸어온다고 혀를 빼물었다.

농사가 해마다 땅이 꺼지도록 잘되였다. 살림살이가 약간씩 펴나갔다.

아버지의 3년상이 끝나자 량세봉은 어머니에게 웃음을 안겨드리고 동생들이 활기있고 명랑하게 자라도록 집안의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왼심을 썼다. 량세봉의 의식적이고 주도적인 생활조직에 따라 가족들은 더 화목해지고 김씨도 점점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명절날마다 집에서는 노래와 춤으로 들썩거렸는데 량세봉과 형제들이 다 그만하면 노래군들이고 춤군들이여서 그들의 집에서 노래가락이 울려나오면 마을사람들이 마당이 좁다하게 몰려들어오군 하였다.

하지만 왜놈들의 식민지화정책이 점차 심화됨에 따라 전반적인 주민들의 생활고는 점점 더 비참해지고 그것이 량세봉일가에도 막을수 없는 조수처럼 점점 더 거세게 밀려들었다.

왜놈들은 이미 1910년 3월에 매국역적 리완용에게 《림시토지조사국관제》를 제정하도록 하고 조사국을 만들어 전국적인 판도에서 토지조사를 시작하였다.

1912년 8월에는 《토지조사령》과 《시행규칙》을 공포하고 조선사람들로부터 가장 악랄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토지를 빼앗아냈다. 놈들은 문서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측량조사도 토지의 주인들에게 통고하지도 않고 저들끼리 어물쩍해서 조사하고는 이미전에 토지조사청구를 하지 않은 집들에 대해서는 토지의 사용권을 무효로 선언하였다.

그 토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에 넘겨버렸다. 이리하여 토지의 주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어쩔새없이 《동척》에 토지를 강탈당하고 순식간에 파산당하였다.

자작농들은 물론 소작인들까지 소작권을 떼우는판이였다. 그렇게 되면 토지는 《동척》에 넘어가고 소작인들은 물론 땅을 잃은 자작농들까지 《동척》과 계약을 체결하고 《동척》의 소작인이 되여 농사를 짓는수밖에 없었다.

량세봉이 당시 7 대 3이라는 후한 조건으로 부치던 최현수네 땅도 몇년후에는 왜놈들의 간교한 술책으로 눈을 뜨고 하루새에 빼앗기고말았다.

최현수의 국수집도 몰락되여 현수의 서울에 공부하러 가려고 했던 계획도 실현될수 없었다.

따라서 량세봉도 땅을 잃고말았다.

량세봉은 남들은 《동척》과 다시 소작계약을 체결하려고 분주하게 뛰여다녔지만 철천지원쑤 왜놈들에게 쌀을 공짜로 섬겨주는 일은 하고싶지 않았다. 량세봉은 뒤산기슭에 뙈기밭을 일구어가지고 강냉이와 고구마를 심는가 하면 동생들과 함께 부지런히 나무짐을 졌고 간석지에 나가서 물고기도 잡아 기울어져가는 가세를 버티여보려고 모지름을 썼다.

김씨는 집안이 완전히 허물어지기 전에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하여 어린 딸 봉녀를 서둘러 시집을 보내였다.

어느날 김씨가 윤재순이 홀로 지내게 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윤재순이를 잠시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을 뗐다.

《재순아, 네 머리도 얹어야겠다.》

《예… 머리를 얹다니요?!》

윤재순은 처음에는 놀라와하였다.

그다음에는 머리를 얹는다는 그 의미에 두볼이 홍시처럼 빨개졌다. 두려움속에, 부끄러움속에 이날이 오기를 은연중 기다려온 그였다.

김씨가 윤재순에게 가까이 다가앉으며 살틀하게 말하였다.

《이제는 너희들 차례다. 얼른 부엌칸에 가서 머리를 감고 들어오너라.》

윤재순은 김씨의 분부에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후 김씨는 얼레빗으로 물기가 있는 재순의 함함한 머리채를 훑어주며 말리워주었다. 참빗으로 다시 빗어 가리마를 곱게 갈라서 머리태를 딴딴하게 엮은 다음 이마앞으로 곱게 넘겨 빈침을 꼭꼭 찔러 고착시켜주었다. 윤기가 자르르 도는 머리칼에 개울가에 곱게 핀 연분홍빛의 찔레꽃송이를 따다가 살짝 꽂아주었다.

《고개를 들어라.》

머리치장을 끝낸 김씨는 윤재순이 고개를 들자 한참이나 말없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실하게 곱게 피여난 그였다.

방금 망울터친 찔레꽃처럼 싱싱하기도 하고 햇살오른 복숭아처럼 탐스럽기도 하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항상 웃는 모양의 두눈, 귀살이 빨갛게 익고 량볼이 볕에 타서 발그레한 얼굴, 햇물같이 청신한 모습에 김씨는 저절로 눈이 부시였다.

《우리 재순이가 정말 고와졌구나.》

김씨는 부지불식간에 혼자소리를 냈다.

《재순아, 네가 다 보아왔겠지만 세봉이도 괜찮은 사내다. 오늘저녁에 너희들 혼례를 하자고 한다. 좀 있다가 의주에서 삼촌님이 오시면 상을 차리고 식을 올리자.》

《어머니!》

윤재순은 김씨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재순아,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통 모르겠구나. 실은 세봉이와 원봉이가 사흘전부터 네 아버지소식을 들어볼가 해서 돌아가고있는데 아직까지 찾았다는 기별이 없구나. 너의 아버질 찾아서 혼례식에라도 참여하게 하면 여북 좋겠니.》

사실 며칠전부터 량세봉과 량원봉이 어머니의 간곡한 이야기를 듣고 해안가를 돌아가며 윤재순의 아버지를 찾느라고 애를 썼다. 그런데 어제저녁에 기별이 왔는데 의주로부터 평안도 해안가마을을 다 훑었는데 윤재순의 아버지 윤길주의 행처를 찾아내지 못했다는것이였다. 그래 김씨는 이제는 그만하고 돌아오라고 기별을 보냈다.

《어머니!》

윤재순은 김씨의 품을 파고들며 어깨를 흔들었다. 이제 시집으로 될 사람들의 인간다운 뜨거운 정이 고마와 울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거나 아니면 벌써 무주고혼이 되였을 아버지의 불쌍한 모습이 그려져 울었다.

《재순아, 이다음에라도 아버지를 꼭 찾아내자. 너의 아버님이 쉽게 꺼지기야 했겠니. 이제 살아가느라면 꼭 만나게 될것이니 너무 걱정말아라. 》

《어머니, 고마와요. 》

《이것아, 울지 말아. 이 험한 세상을 눈물을 달고는 살아가지 못한다고 돌아가신 아버님이 항상 말했다.》

김씨는 윤재순이 틀어올린 머리를 부끄러워하는것 같아 농짝에서 그에게 주려고 건사해왔던 무명수건을 꺼내 머리를 가리우게 하였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의주에서 삼촌량주와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꽃같이 활짝 핀 윤재순을 보고 함박꽃같다느니, 복이 넘실거리는 상이라느니, 세봉에게 꼭 어울리는 색시라느니 하면서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벌써 봉녀의 잔치를 치른 한달전부터 재순에게 안겨줄 잔치상도 슬금슬금 준비하여왔었다.

남편이 숨지기 전에 맏이를 장가들이지 못하는것을 두고 괴로와하며 특별히 재순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큰상을 차려주라고 하던 말을 명심하고있었던것이다. 찰떡도 몇되박 치고 시루떡도 쪄내고 닭도 한마리 삶아서 빨간 고추를 물려 상에 올렸다.

원봉이, 시봉이, 정봉이형제들이 건져온 가물치, 잉어, 붕어도 찜을 쪄서 내놓았다. 이것저것 상우에 올려놓으니 미닫이문을 뜯어 만든 큰상이 섭섭치 않게 꽉 채워졌다.

저녁시간에 동네어른들이 오고 량세봉의 친구들도 찾아왔다.

《자, 이제는 재순이 상에 나가앉아봐라. 아니, 신랑도 나가앉아라.》

삼촌이 량세봉과 윤재순에게 말했다.

둘이 어색해하면서 상에 나가앉았다.

《곰과 토끼가 앉아있는것 같애.》

누군가의 속살거리는 소리에 까르르 웃음사태가 일었다.

정말 두볼과 코앞에 수염발이 잡힌 억대우같은 신랑과 아직은 자기 나이보다는 퍽 숙성해보여도 소녀꼴을 채 가시지 못한 신부가 나란히 앉으니 무던한 큰곰옆에 깜찍한 토끼 한마리 앉아있는듯싶어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저절로 즐거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량세봉이 쑥스러운지 자꾸만 뒤통수에 손을 올려가며 신부옆에 가까이 다가앉지 못하는데 윤재순은 잔뜩 겁기까지 나서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윤재순이 민며느리여서 약혼식에서 례물교환같은것은 하지 않았지만 주례인 삼촌이 결혼의식은 례법대로 다 하도록 하였다.

량세봉은 교배를 하라는 삼촌의 말만은 굳이 따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풍습대로 해야 한다고 웃고 떠들었으나 량세봉은 아직도 쬐꼬만 아이로 보이는 신부에게 절만은 하고싶지 않아 그냥 버티였다.

결국 윤재순만이 량세봉에게 곱게 절을 하였다.

신랑신부가 제자리에 다시 앉으려 하는데 《이건 뭐요? 도적잔치 해먹기요?》하는 큰소리를 앞세우고 청하지 않았던 석태무가 술방구리를 안고 들어섰다.

젊은 패가 들이닥치니 집이 움씰움씰거리는듯싶었다.

최현수와 그의 처가 국수를 말아 손달구지에 실어가지고 나타났고 그뒤로 글방친구들이 뭘 한가지씩 들고 메고 줄레줄레 따라들어섰던것이다.

없는 살림이라 삼촌식솔과 이웃 몇을 찾아 간소하게 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되고보니 판이 커졌다. 동네늙은이들도 다들 찾아왔다.

석태무가 옆에 앉아있는 동네처녀와 쏙닥거리다가 제풀에 《하하-》하고 허파에 바람든듯 웃어댔다.

《뭘? 큰곰에 토끼라고… 정말 신통해, 하하.》

석태무의 실없는 수작질에 잔치집이 또다시 들썩거리게 웃음판이 터졌다.

이날 량세봉과 윤재순은 이웃들과 친구들의 끈질긴 성화에 못 이겨 여러번 일어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다음해 온 나라에 흉년이 들었다.

철산이라고 해서 례외가 아니였다.

가뜩이나 일본놈들의 가혹한 량곡수탈로 빈궁해진 농민들은 이해에 전례없는 가물에다가 가을철에 쏟아진 무더기비로 완전히 페농이 되여버렸다. 어데 가서 리자쌀이라도 구해볼 길이 없었다. 이해따라 송충이까지 번성해서 가난한 백성들이 농량으로 크게 보탬을 하던 송기마저 발가올수가 없었다.

여느집과 다름없이 량세봉의 집에서도 한숨소리만 높아졌다.

생각하던 끝에 량세봉은 어머니에게 중국으로 떠나갈 의향을 넌지시 비치였다.

그 말을 들은 김씨는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하였다. 선산이 있는 고향을 버리고 낯설고 물설은 고장에 가서 누굴 믿고 살아가겠는가? 이것이 김씨의 주장이였다.

가정의 크고작은 일들을 량세봉의 주관에 따라 하는데 습관되여온 어머니였지만 그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자 량세봉은 한동안 더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단 덮쳐드는 기아와 죽음을 앉아서 묵묵히 받아들일수는 없었다.

사처에서 사람들이 굶어죽고 가족이 다 몰살되였다는 소리도 드문히 들려왔다. 하여 량세봉은 김씨를 설복하느라고 루루이 설명하였다.

…살아가는 길은 그 길뿐이다. 뼈빠지게 일을 해도 살아갈수 없는데야 어찌하겠는가. 나를 믿고 길을 떠나자.

이렇게 되여 이해 겨울 량세봉일가는 중국을 향하여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기 전날에 온 가족이 아버지묘소를 찾아가 제를 지내고 하직인사를 드렸다.

그들에게는 명확한 목적지가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가 될수록 국경에서 멀리로 들어가면서 살만 한 고장을 찾아보자. 이것이 량세봉의 결심이였다.

량세봉과 이제는 스무살에 잡히는 둘째 량원봉이 가족의 재산을 지고 갔다.

량세봉은 얼마 안되는 집가산을 팔아 천오백원의 구화페와 일본이 발행한 약간의 지페를 무명천에 싸서 웃몸에 질끈 동이고 그우에 솜저고리를 걸치였다. 그가 가지고가는 재산중에는 강서명이 주고간 룡천검과 책들도 있었다.

량원봉은 이불과 옷가지를 지고 윤재순은 집안에서 대를 이어 가보로 물려오는 거문고를 끈을 매여 등에 지였다.

글방친구들인 석태무와 최현수가 의주까지 따라왔다.

그들은 얼어붙은 압록강기슭에서 손과 손들을 굳게 잡았다.

《량형, 잘가. 우리 집도 인차 강을 넘어가게 돼.》

석태무의 말이였다.

《그래, 우리 만주에서 또 만나자구.》

《량형, 우리도 이제 여길 인차 뜨려고 하네.》

최현수의 말이였다.

《현수네는 왜?》

《더는 못 견디겠네. 국수집도 며칠후에는 문을 닫으려고 하네.》

최현수네도 《동척》에 토지를 강탈당한 후에 여기저기서 빚단련을 받고있었다. 그러니 그들도 갈길은 뻔하였다.

《그래?! 좋아. 내가 먼저 가서 자리잡고 기별을 보내겠네. 자, 다들 건강해서 만주에서 다시 만나자구.》

그들은 서로 굳게 끌어안고있다가 헤여졌다.

 

련 재
[장편전기소설] 량세봉 제1부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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