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2월 27일 《우리 민족끼리》

 

《강화도조약》은 오늘도 절규한다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침략과 략탈로 살쪄온 일본의 죄악에 찬 력사의 갈피속에는 1876년 2월 27일 조선봉건정부에 강요하여 체결한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강화도조약》도 있다.

19세기 중엽 《명치유신》을 계기로 침략적인 《정한론》을 국책으로 삼은 일본은 19세기 후반기부터 우리 나라에 대한 강도적무력침공에 착수하였다.

조선침략책동의 일환으로 조작한 1875년 《운양》호사건을 구실로 일본반동정부는 이미 세워진 침략계획에 따라 조선봉건정부와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압체결하는데 달라붙었다.

군국주의우두머리들을 모아놓고 벌린 이른바 《어전회의》라는데서 왜왕은 왜관에 둥지를 틀고있는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밑에 조선에 군함을 파견할것과 《운양》호에 포격을 가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전권대표》를 조선에 파견하며 불평등적이며 예속적인 조약을 강압체결할것을 명령하였다.

1876년 1월 15일 수척의 군함에 수백여명의 침략군을 싣고 부산에 기여든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 남해와 서해안일대를 제멋대로 싸다니면서 비법적인 측량을 감행하고 무력시위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불평등조약체결을 강요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대포와 군함으로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여 1876년 2월 27일 끝끝내 강화부에서 조선봉건정부에 일방적인 저들의 부당한 요구조건을 강제접수시키고 12개 조항으로 된 《강화도조약》을 조작하였다.

《강화도조약》은 명칭상 조일간의 《수호조규》라고 되여있으나 본질에 있어서는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리익을 전면적으로 침해한 침략적이며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이였다.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으로 일본은 우리 나라에 대한 자본침투의 길을 열어놓았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비법적인 《강화도조약》에 사실상의 치외법권을 규정해놓은것을 통하여 조선봉건국가의 주권행사를 제한하고 우리 나라에서 봉건국가의 법에 구애됨이 없이 제 마음대로 침략과 략탈을 비롯한 온갖 범죄행위를 다할수 있는 법적담보를 마련하였다.

일본은 이밖에 날강도적인 《강화도조약》에 조선연해에 대한 일본의 측량 및 지도작성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조항을 비롯하여 공사 및 령사주둔권, 보충조약체결권 등을 박아넣었다.

이와 같이 《강화도조약》은 일본군국주의자들에게는 유리하게 권리만을 부여하고 조선봉건정부에는 일방적인 의무만을 강요한 불평등조약이였다.

그때로부터 한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오늘도 우리 겨레는 조선민족의 자주권과 리익을 란폭하게 침해한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있다.

오늘날 일본이 과거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엄청난 죄악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하는것은 법적, 도덕적의무이며 전체 조선민족의 한결같은 요구이다.

하지만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일본반동들은 오히려 저들의 과거죄악들을 정당화하면서 반공화국적대시정책과 대조선침략책동에 더욱 로골적으로 매달리고있다.

최근에도 일본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력소동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한편 군국화를 다그치면서 재침야망실현에 본격적으로 나서고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우리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인 총련에 대한 탄압말살책동을 강화하고 침략력사외곡과 독도강탈책동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벌려놓고있다.

현실은 《강화도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의 범죄적인 침략력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우리 겨레는 지난날 동서고금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로 조선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일본의 치떨리는 죄악을 기어이 결산하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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