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5 장

5

(1)

 

화물자동차 한대가 대동교를 건너 동평양으로 달리였다.

운전사의 옆자리에 앉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차체의 진동을 즐겁게 느끼시였다. 조면공장에 군복천을 접수하러 가시는 걸음이였다. 며칠전에 공장으로부터 적지 않은 천을 생산하여 놓았다는 련락이 왔다. 예상밖의 커다란 성과였다. 농민들은 아들딸들의 례장감으로 간수했던 목화솜까지 기증했다고 한다. 황해도에 나간 문화선전대의 선동이 농민들의 가슴을 격동시켰을것이다. 공장에서는 빠른 시일내에 설비조립을 끝내고 목화가 도착하는 차제로 생산을 다그쳤다고 한다. 군복천에는 장군님의 건군위업을 받드는 로동자, 농민의 열의와 성의가 갈피마다에 어려있다. 우리가 처음으로 생산한 천이여서 더구나 뜻이 깊다. 다가오는 길폭이 도투마리에 필필이 감기는 군복천으로 보이시였다.

자동차가 공장에 이르렀다. 처음 오셨을 때와는 달리 공장의 간판이 새로 나붙었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조면만이 아니라 방적과 방직을 련쇄공정으로 갖추었으니 공장의 이름을 바꿀만 했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빨리 생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배인을 만나신 녀사께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치하하시였다. 그런데 지배인이 난색을 지으며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그는 잠시후에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녀사님, 공걸음을 하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공걸음이라니요?》

지배인은 정신옥이 왔다간 사실을 말씀드렸다. 녀사께서는 커다란 실망을 느끼며 의혹짙은 시선으로 지배인의 낯색을 살피시였다. 지배인은 죄스러운 표정으로 정신옥에게 천을 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딱한 심정을 설명했다.

해방직후 정신옥은 이 공장의 설비를 훔쳐가려는자들을 막아나섰다. 공장직원이 많지도 않았고 녀성들이여서 그들의 힘만으로는 공장을 도저히 지켜낼수 없었다. 정신옥은 녀성로동자들과 여러날 함께 지내면서 설비를 노리고 접어드는자들에게 호령도 하고 연설도 하였다. 그의 담찬 기개와 열렬한 호소앞에서는 누구나 숙어들지 않을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해방된 조국의 건설보다 제주머니 채울 생각만 앞세우며 《적산품》을 벼락맞은 소고기처럼 여겼던 자신을 눈물속에 뉘우쳤다.

《…이런 일이 있었기때문에 저로서는 정신옥선생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듣고보니 모든것이 리해되시였다. 녀사께서는 여전히 죄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지배인에게 너그러운 미소를 보내시였다.

《이 공장을 지켜낸 정신옥선생에게 우선 천을 보장해준건 잘한 일이였습니다. 언제쯤 다시 오면 천을 접수할수 있겠습니까?》

《3, 4일후이면 한차분정도는 보장해드릴수 있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오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장을 떠나시였다. 커다란 기대를 안고왔다가 빈차로 돌아가는 서운함이 없지 않으시였다. 하지만 정신옥으로서는 십분 그럴수 있었다고 생각하시였다. 군복을 생산하는것보다 남녀평등권법령발포기념행사가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을것이다. 그가 건군위업을 리해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안해들의 이름으로 성토문을 썼던 사실이 상기되시였다. 단신으로 일제군경의 무장을 해제한 사실도 되새겨지셨다. 그토록 애국에 열렬하고 과감하면서도 군대건설, 군력강화에 진정한 애국이 있다는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가 안타깝게 여겨지시였다. 그의 드높은 애국의 기개와 《범할머니》로 불리우리만큼 도고한 투지가 건군위업에 지향된다면 얼마나 좋을가.

 

×

 

낮동안 학생들의 전술훈련을 지도한 김홍구는 깊은 잠에 들었다. 위병대의 련락병이 찾아와서 거듭 안타까이 불렀지만 깨여나지 못했다. 마구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하불도 덮지 않고 네활개를 펼친 그의 건장한 육체는 뿌리박힌 바위처럼 끄떡하지 않았다. 속이 상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던 련락병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의 귀가에 입술을 바투 가져가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군관동지, 남포에서 춘심이라는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홍구의 몸이 전기에 닿은듯 흠칫했다. 잠든 의식에도 사랑하는 처녀의 이름은 강한 자극을 안겨주는 모양이다. 련락병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엉?》

마침내 홍구는 뜻 모를 외마디소리를 터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자 뭐라고 했소?》

썩썩 눈을 비비며 다급히 물었다. 련락병의 대답을 듣고난 홍구는 서둘러 군복을 입었다. 평양학원을 졸업하고 이곳에 눌러있게 된 후로는 춘심이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였다. 사무치는 그리움속에 한해가 흘렀다. 멀지 않은 곳에 사랑하는 처녀를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애달픔은 참기 어려운것이였다. 하지만 학생시절에 승인없이 춘심이를 만나러 갔다가 학원에서 소동을 일으킨 심각한 교훈이 있었다. 상봉의 욕망이 아무리 커도 불타는 사랑을 가슴속깊이에 고이 간직하며 참아야 했다. 그런데 그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찾아왔을가 하는 의혹은 생각밖이였다. 상봉의 기쁨만이 가슴에 넘치였다. 춘심이가 기다리는 직일관실을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하지만 정작 처녀를 만났을 때 이를데없이 처절한 그의 모습에 놀랐다. 흩어진 머리카락, 흠뻑 땀에 젖은 적삼, 아래도리에 감탕이 튕긴 치마, 한쪽발에만 걸친 고무신… 모진 수난을 겪은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모습이였다. 그런데 이쪽을 마주보는 처녀의 눈만은 외모와는 관계없이 기쁨과 반가움으로 빛났다. 얼핏 방안에 걸린 벽시계를 보니 밤 한시였다.

《어떻게 왔어?》

《조용히…》

춘심은 직일관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다.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뜻이였다. 홍구는 처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학원의 울타리밖에서 마주섰다.

《큰일났어.》

처녀는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말했다.

《무슨 일이게?》

《글쎄 기양호와 그 조카가 쑥덕거리는 소리를 엿들었는데 수상보안대에서 훔친 금덩이를 래일 아침 배로 해주에 실어간댔어. 놈들은 금덩이를 광목필에 쌌어.》

그랬었구나, 그 소식을 전하려고 경황없이 밤길을 달려오다나니 처절한 모습으로 될수밖에 없었다. 그 용단과 용기가 놀랍고 대견했다.

《춘심인 오늘 밤 큰일을 했어.》

홍구는 잠긴 목소리로 치하를 했다.

《자기가 날더러 놈들의 꿍꿍이를 살피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공로는 자기가 아니라 홍구쪽에 있다는것이다. 이럴데라구야. 곱게 눈을 할기며 보내주는 처녀의 웃음이 애처롭게 안겨오며 홍구의 가슴을 들부셨다. 잠시후에야 학원지휘부에 이 사실을 시급히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원장의 사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마침 원장은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었다.

일거리가 많은 원장은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자는 때가 많았다.

홍구의 보고를 받은 원장은 수상보안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홍구에게 말했다.

《수상보안대에서도 놈들의 출항을 단속하겠지만 좋기는 놈들이 떠나기 전에 기양호라는자의 집을 수색하는거요. 동무는 그 집을 알고있소?》

《알고있습니다.》

《참, 처녀를 만나려고 그자의 집에 갔다가 영창처벌을 받았댔지?》

원장은 긴장한 속에서도 그때의 사실을 되새기며 싱긋이 웃었다. 비록 무단외출을 하여 처벌은 받았지만 그날의 상봉이 있었기에 춘심이라는 처녀가 오늘처럼 자각할수 있었다는 생각으로 은연중 미소가 떠올랐던것이다.

《홍구동무, 학생들중에서 10여명을 선발해가지고 그놈의 집을 수색해야겠소. 곧 떠나시오.》

《알았습니다.》

얼마후에 무장을 한 학생들이 남포로 떠났다. 캄캄한 밤이였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춘심이가 뒤따랐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오의 앞장에 선 홍구는 반달음을 놓았다. 끓어오르는 복수심이 가슴을 불태웠다. 기양호네 집에 이르렀을 때에는 새벽을 부르는 수닭의 청높은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였다. 하지만 사위는 아직 짙은 어두움속에 잠겨있었다. 홍구는 집주변에 네명의 학생을 배치하고 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시오!》

《날도 새지 않았는데 누구야?》

짜증기어린 안주인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인차 응대를 하는걸 보면 잠들지 않고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왔소!》

홍구는 어찌하여 그런 대답이 튀여나갔는지 알수 없었다. 은연중 년놈들에게 자기의 위엄을 보이고싶은 충동이 앞섰기때문일것이다. 아무튼 상대의 대답에서 잘 아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여겼는지 안주인은 얼른 대문을 열어주었다.

홍구는 성큼 마당으로 들어섰다. 총을 멘 여러명의 학생들이 뒤따랐다. 그제서야 안주인은 휘둥그레 눈을 뒤집으며 혀아래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도대체…》

《집안에 들어가서 이르시오. 령감과 조카놈을 비롯해서 반동놈들더러 손을 들고 나오라고 말이요. 이 집은 포위되였소. 만일 반항을 하면 즉석에서 쏘아갈기겠소.》

김홍구는 엄숙히 말했다. 학생들은 장탄을 하고 벽들에 붙어 섰다.

《집에는 나밖에 아무도 없다. 그런데 보안서원도 아닌 네놈이 무슨 권한으로 야밤중에 이렇게 달려드느냐?》

어느새 마음을 다잡은 녀자가 악을 쓰며 접어들었다. 홍구를 하찮게 여기던 전날의 본성이 드러났다.

《당신네가 반동짓을 하기때문에 체포하려 왔소!》

《우리 령감은 시상공협회 부회장이다! 누구에게 감히 반동감투를 씌우려는거야? 그래 반동질을 하는걸 누가 보았느냐?》

《내가 보았소!》

홍구가 아니라 녀자의 되알진 목소리가 울렸다. 대문가에 서서 이쪽을 지켜보던 춘심이가 웨쳤다. 그를 발견한 안주인은 대바람에 기가 질렀다.

《네년이?…》

그는 춘심이를 흘겨보며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어서 방안으로 들어가서 모두 나오라고 하시오!》

홍구가 그에게 다시 호령했다.

《글쎄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니까.》

안주인의 목소리가 공손해졌다.

《모두 어데로 갔소?》

《나는 모르네.》

홍구는 그를 앞세우고 대원들과 함께 집안을 수색했다. 그의 말대로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춘심이가 사라진것을 알게 된 놈들은 서둘러 도망을 쳤거나 시간을 앞당겨 출항을 한것이 분명했다.

홍구는 통절한 실패감이 가슴에 밀려드는것을 의식했다. 정녕 이 간악한 원쑤를 놓쳐버린단 말인가. 시간을 다투어 달려왔지만 한발 늦었다. 자신의 불찰로 엄중한 사태가 벌어진것처럼 여겨졌다. 혹시 수상보안대에서는?… 잠시후에야 그런 생각이 피끗 떠올랐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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