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1. 서당지기

 

(2)

 

량기화부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잰걸음으로 훈장네 집으로 향하였다. 량기화는 중태기에 든것이 너무 가벼워 걸음이 무겁기는 했으나 아들의 기분이 잡칠세라 밝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훈장님 계시나이까?》

량기화는 초지를 정갈하게 바른 훈장집 문앞에서 량세봉을 옆에 세워놓고 떨리는 어조로 기척을 냈다.

문이 가볍게 열리고 앉은책상을 마주하고 책을 보던 40대 초반의 훈장이 내다본다.

《하, 세봉이 아버님이?… 어서 오십시오.》

엷은 무명바지저고리에 버선발을 하고 흰 두루마기를 걸친 훈장 강서명이 찾아온 손님들을 알아보자 돋보기안경을 벗어들고 반색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소를 머금은 안색이 무척 선하고 은근한 지성이 온몸에서 풍기는 강서명이였다.

량기화가 허리를 구붓이 하고 량세봉과 함께 정하게 절을 하자 강서명은 문턱을 넘어서 널판자를 깐 퇴마루에 나와 절을 받았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세봉이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려왔습니다. 자, 세봉아! 아버님을 모시고 어서 방에 들어오너라.》

강서명은 각근한 어조로 량씨부자를 방으로 청하였다.

량기화는 방에 들어서서도 관청에 들어선 촌닭처럼 어리어리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였다.

량기화는 아직도 영계들이 숨이 갑갑해서 푸들쩍거리는 중태기를 그냥 어깨에 메고 서서 긴 허리를 굽석거리며 물었다.

《훈장님, 제 우리 세봉이가 꿈같은 소리를 하기에 이렇게 불문곡절하고 뵈오러 왔습니다. 정말 우리 세봉이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예. 난 이 세봉이가 짬짬이 우리 서당문밖에 와서 공부하는걸 보군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애를 공부시켜볼 생각을 했습니다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되였습니다. 다행스럽게 세봉이가 먼저 나를 찾아와 서당을 지키며 공부도 하겠다고 해서 나도 그간 빚진 심정이였는데 피차에 마음을 놓게 되였습니다. 이제라도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선생님,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량기화가 강서명의 진심어린 말에 감격해서 또 허리를 굽석거리였다.

《은혜라니요.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로잡자면 우리 후손들이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어서 바삐 후진국에서 벗어나 저 섬오랑캐들과 당당히 겨루자면 나라에 까막눈부터 없애야 합니다.

이 세봉이를 보십시오. 이애를 어디 아이라고 보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봉이의 용모를 보십시오. 이런 애를 까막눈으로 둬두면 그건 나라앞에 큰죄로 됩니다.》

강서명은 고마움에 어쩔줄 몰라하는 량기화와 량세봉부자를 세워놓고 자못 격앙된 어조로 말하였다.

《황송합니다. 훈장님! 미거한 자식을 놓고 과찬의 말씀을 하시니 애비된 맘에 그저 황송할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세봉의 어느 구석에 남다른게 있겠습니까. 이 철산땅에 흔하디흔한 막돌 한덩이일뿐이지요.》

《아니, 난 이 마을에 와서 저 세봉이한테로 자꾸만 눈이 돌아가군 했습니다. 저 불덩이같은 눈을 보십시오. 과시 천야만야를 평정할 기상과 위엄이 비껴있지요. 꾹 다물면 성벽같이 무거운 저 입엔 그야말로 산악의 무게가 실려있구요. 쩍 버그러진 가슴팍과 모루장같은 어깨며 벌써 불끈 튀여나온 팔뚝은 그야말로 장수의 기골입지요. 개천에서 룡이 났다는 말 저애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강서명이 정을 담아 량세봉의 용모파기를 내리엮자 량기화도 아들의 얼굴을 새삼스러운듯 세세히 훑어보았다. 그의 눈에는 너무도 익어있는 모습이라 남다른것이란 찾아낼수가 없었다.

하긴 누구나 량세봉을 보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큰키와 굵은 몸집을 놓고 장수감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몸가짐이 준수하고 얼굴에 무엇인가 상대를 압도하는 기운이 서려있어 함부로 아이취급을 못했다.

《자, 그러면 세봉이 공부할 서당을 한번 돌아보고 가십시오.》

강서명이 제 먼저 방문을 열고 퇴마루에서 내려섰다.

량세봉은 아버지가 중태기를 어깨에 걸메고있다가 그냥 마당을 벗어나려고 하자 《아버지, 그걸…》하고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튕겨주었다.

《아, 그렇지!》

그제야 량기화는 중태기를 어깨에서 벗어놓으며 어줍게 한마디 여쭈었다.

《저 훈장님, 우리 세봉이소리를 듣고 곧장 오느라고… 뭐 눈에 차지 않은것이지만 받아주사이다.》

량기화가 중태기에서 세마리의 영계를 꺼내놓자 강서명이 당황해하며 혀를 찼다.

《원, 세봉이 아버님도… 세봉이를 공부시키게 되여 나도 시름이 풀리는데 이렇게 옹색하게 들고오십니까. 도로 가지고가시여 살림에 보태십시오.》

하지만 벌써 세마리의 영계는 뿔뿔이 헤쳐져서 모이를 찾아 분주히 마당을 돌아갔다.

《선생님, 너무 약소해서 사실은 드릴만 한게 못됩니다. 가난이 원쑤라 하더니 사람구실도 변변히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저 저의 성의로 아시고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량기화는 미천한 살림의 궁기가 엿보이는 진상품에 자기도 얼굴이 뜨끈뜨끈해서 몸둘바를 몰라했다.

《허허…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당방을 지켜주는것이 사실은 작은 품이 아니니 고마운 인사치레는 내가 해야 할 의당한 일입니다.》

강서명은 중태기에서 놓여나와 제멋에 노니는 영계들을 다시 모아들이는 일도 난감한데다가 그냥 마다하면 량순하기 그지없는 량기화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것으로 될것 같아 헌헌하게 웃으며 마당을 나섰다.

서당은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양지바른 산기슭에 있었다.

강서명이 몇해전에 이 마을에 정착해서 제 돈으로 세운 집이였다.

운동장으로 쓰는 마당에는 철봉과 평행봉을 비롯한 신식체육기재들이 서있고 울타리를 따라 여러 꽃들이 곱게 피여있었다. 조짚으로 이영을 한 서당방에 들어서니 공자와 맹자의 초상부터 보였다. 그밑에 새까만 칠판이 있고 자그마한 교탁이 있을뿐이였다.

서당에 공자와 맹자의 초상을 걸어놓은데는 연고가 있었다.

이 시기 뜻가진 선비들이 저저마다 산간오지에까지 서당이나 사립학교를 세우고 교편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는것이 하나의 류행처럼 되여있었다.

일본놈들에게 통채로 먹히우고있는 나라의 국권을 되찾자면 실력을 키워야 하며 실력을 키우자면 계몽사업부터 벌려야 한다는것이 이 시기 애국에 불타는 선각자들의 주장이였다.

그런데 일본놈들이 점차 여기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서당방을 통하여 반일교양과 애국적인 민족교육이 진행되는것이 두려웠던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저기서 적지 않은 서당과 사립학교들이 페쇄되고 훈장들이 요시찰인물로 등록되여 감시받다가 붙잡혀가 옥고를 치르기 시작하였다.

애국적인 선비들은 일본놈들의 촉수를 마비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렇게 되여 서당앞벽에 조선의 시조 단군의 초상대신 공자와 맹자의 초상이 오르는가 하면 일본말교육도 진행되게 되였다.

학생들은 날마다 아침에 등교하면 공자와 맹자의 초상에 절을 하고 공부를 한다.

강서명은 서당을 보여주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봉아, 여기서 밤에 자면서 서당을 지켜라. 낮에는 글공부를 하고. 도적들이 들어와 들어갈건 없다 해도 근래에 외인출입이 잦아져 좋지 않다. 눈을 밝힐 일이 한두가지 아니다. 이왕 왔으니 오늘저녁부터 자리를 잡는게 어떠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오겠습니다.》

량세봉은 그렇게 소망하여온 글공부가 쉽게 락착이 되자 기뻐서 어쩔줄 모르고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집에서는 량세봉이 서당에 들어간 소식을 들으려고 김씨와 동생들이 다들 그냥 마당에서 서성거리였다.

량기화가 싱긋벙긋거리며 삽짝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씨가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되였나요? 훈장님께서 허락하셨나요?》

《암, 허락하시구말구. 우리 맏이를 세워놓고 그냥 흠썩해하시는데… 허허.》

량기화는 맏이의 서당문제가 너무 쉽게 풀린데다가 훈장으로부터 후한 자식칭찬까지 받은것이 너무 흐뭇해서 대답을 하다말고 소리내여 즐겁게 웃었다.

《아이, 됐구나! 우리 맏이가 글방에 가게 됐구나!》

김씨가 옷고름을 눈에 올리며 울먹거리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인차 웃음꽃이 만발했다.

량세봉이 감자범벅에 오이랭국으로 이른 저녁을 치르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생들도 따라나섰다.

량세봉은 기분이 붕- 떠가지고 동생들을 거느리고 서당으로 왔다.

그는 동생들과 함께 삿자리를 깐 교실바닥을 깨끗이 닦고 마당도 비자루로 쓸고 말끔하게 치웠다.

다음날 아침 제일먼저 서당에 나온 강서명은 안팎이 반반해진 서당을 보자 흡족해서 량세봉더러 빨리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오라고 일렀다.

그러며 하는 말이 래일부터는 아침시간에 누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해가 솟으면 집에 돌아가 아침을 먹고 다른 동무들과 같은 시간에 출석해야 한다고 하였다.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가 베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개천에 나가 걷어온 깨끗한 모래를 채운 《글주머니》를 내놓았다.

학습장을 마련할수 없는 아이들은 이런 《글주머니》를 학습장대신으로 앞에 놓고 손가락으로 글을 익히고있었다.

량세봉이 아침밥술을 놓기 바쁘게 그 《글주머니》를 가지고 서당에 들어서니 강서명이 그를 학생들앞에 내세웠다.

《이제부터 량세봉이 여러분들과 함께 글공부를 합니다. 모두 잘 알고있겠으니 서로 도와주면서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 앞날의 역군으로 준비해야겠습니다.》

강서명은 소개말을 엄숙히 하고나서 손벽을 쳤다.

학생들이 모두 눈망울을 반짝이며 신입생을 환영하여 박수를 쳤다. 량세봉은 그들을 향하여 허리를 숙여 답례를 하였다.

이어 그가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자 《세봉형, 여기 와.》하는 소리가 가운데자리에서 들려왔다.

량세봉보다는 머리 하나가 작아보이면서도 외알들이 밤알처럼 반들거리는 되박이마가 만만치 않아보이는 소년이 손을 흔든다. 량세봉이네 아래집에서 사는 석태무라는 소년이였다.

《응, 그래.》

량세봉이 석태무가 앉은 자리에로 가는데 그의 잠뱅이를 잡는 소년이 있었다.

《여기 앉아.》

량세봉이 잠뱅이가랭이를 놓아주지 않는 소년을 내려다보니 싱아대처럼 키가 크면서도 몸이 약한 이 고을의 유일한 음식점이라 할수 있는 국수집아들 최현수가 올려다보면서 생긋 웃는다.

하는수없이 량세봉은 그자리에 눌러앉았다.

서당학생들은 다 책걸상이 따로없이 갈노전우에 무릎을 꿇고앉아서 글을 배웠다.

학습장을 가지고있는 학생이란 불과 두세명이였다.

다른 학생들은 다들 《글주머니》를 가지고 그우에 손가락으로 글을 익혀간다.

흑판에는 우리 나라 글 자모가 분필로 써있었다.

서당에서는 한문을 기본과목으로 가르치면서 우리 나라 글도 배워주었다. 이것 역시 일본놈들의 탄압을 예상한 방비책이였다.

《아, 야, 어, 여…》

강서명이 이렇게 지시봉으로 꼭꼭 짚어가며 불러가면 학생들모두가 일제히 큰소리로 따라외웠다.

아이들속에는 몇해동안 배운 덕으로 이미 천자문을 떼고 국문을 좔좔 읽는 아이도 있었고 금방 서당에 들어와 우리 나라 글의 자모부터 배우는 아이도 있었다.

나이차이가 많아보이는 두 아이가 흑판옆에서 손을 들고 고개를 떨구고 서있었다. 벌을 받고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훈장이 불러가는 글자들을 따라외운다.

보기에는 싹싹해보이는 훈장이 학생들을 가르치는데서는 엄하기 이를데 없었다.

공부를 잘하지 않거나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는 아이들은 매일처럼 손바닥에 회초리를 받아야 했다. 흑판옆에 나가서 팔을 들고 서있는 벌도 받아야 한다.

때로는 자식 두셋을 거느린 20대의 학생들이 팔을 쳐들고 꼬마들과 함께 벌서는 꼴이란 해괴하기 그지없으나 강서명이 시행하는 엄격한 법도에 누구 한명 키득거리는 학생이 없었다.

량세봉은 최현수의 옆에 무릎을 꿇고앉아 강서명의 말을 크고 쟁쟁한 소리로 따라외우기 시작하였다.

량세봉을 따라왔던 동생들이 문짬으로 들여다보며 형과 눈을 한번 맞추고싶어 그냥 바재이였으나 량세봉이 정신을 집중하여 흑판의 글자들만 쳐다보고있을뿐이여서 종시 입부리를 삐쭉 내밀고 돌아가고말았다.

량세봉이 오매에도 갈망하던 배움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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