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5 장

3

(1)

 

《그동안 탁아소설립을 위해 정선생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장군님과 녀사의 덕분에 탁아소가 문을 열게 되였습니다.》

김정숙동지를 모시고 탁아소로 가는 정신옥은 생각이 깊었다. 장군님께서는 나라사정이 어려웠지만 녀성들의 사회적진출을 위해 반드시 탁아소를 내와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 뜻을 받드신 녀사께서는 올해 정초에 탁아소로 쓸 건물을 탐문하시였다. 추위를 무릅쓰고 여러곳을 돌아보시던 끝에 순영리(오늘의 중성동)에서 적당한 건물을 찾아내시였다. 전날의 음악학교자리였다. 절대다수가 왜놈학생들이였던 학교였다. 놈들은 쫓겨가면서 학교건물을 적지 않게 파괴해버렸다. 탁아소로 쓰자면 많은 품을 들여 보수를 해야 했으나 새로 짓는것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녀사의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보수대책을 세워주시고 보수가 끝난 한달전에는 친히 나와보시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걸음마를 떼는 아이들이 연마된 콩크리트바닥을 걷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질수 있으니 주단을 깔아주자고 하시였다.

이튿날에 주단이 실려왔다.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청사의 계단에 깔려던 주단이였다.

녀사께서도 여러번 나오셔서 보살펴주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며칠안으로 아이들을 받아들이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신옥과 함께 탁아소마당에 들어서시였다. 현관에서 나이 지숙한 소장이 맞이했다.

탁아소는 젖먹이반과 젖떼기반으로 구분되여있었다. 매 방들이 비교적 훌륭히 꾸려졌다. 복도에 깔린 주단은 발밑에 느껴지는 감각이 부드럽고 폭신했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그 주단이였다.

녀사께서는 이제 이 주단우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아이들을 그려보시였다.

《래일이라도 탁아소의 문을 열수 있겠습니다.》

아래층을 다 돌아보신 녀사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탁아소이름을 아직 짓지 못해서 간판을 내걸지 못하고있습니다. 해방후 우리 나라에선 첫 탁아소인것만큼 뜻깊은 간판을 걸어야 할게 아닙니까. 나오신김에 녀사께서 탁아소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정신옥의 얼굴에 간절한 기대가 어렸다. 진작 모셔오실 때부터 그런 소청을 품었었다.

《탁아소이름이야 이곳 주인들이 지어야지요.》

《이 탁아소야 장군님과 녀사께서 세우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응당 이름을 지으셔야 합니다.》

정신옥은 말마디에 그루를 박았다. 결코 사양하실수 없다는 드팀없는 태도가 그의 어조에 풍기였다. 녀사께서는 입가에 웃음을 그리며 생각하시였다. 국제부녀절의 날자를 따서 《3. 8탁아소》라고 하면 어떨가? 피끗 그런 생각이 드셨지만 터놓지 않고 달리 말씀하셨다.

《제가 정선생의 심정을 장군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탁아소이름은 장군님께서 지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신옥은 탄성을 터쳤다. 그렇게 된다면 두분의 뜻이 합쳐진것으로 될것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아까부터 2층에서 녀자들 여럿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울리였다.

 

    …

    공장의 녀성도 농촌의 녀성도

    가슴마다 불타는 애국심 품고

    씩씩하게 뭉치자 장군님두리에

    찬란한 우리 조국 완전독립 위하여

 

얼마전에 창작되여 보급되기 시작한 《녀성의 노래》였다. 잠시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던 녀사께서는 그윽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잘 꾸려진 탁아소와 노래소리는 너무도 잘 어울리는듯싶으셨다. 아이들때문에 발목이 잡히던 어머니들의 가슴속에서 저 노래가 울려나오도록 하기 위해 이 탁아소를 세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탁아소보모들이 노래를 잘 부르는것 같습니다. 혹시 개소식을 앞두고 예술써클련습을 하는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리중앙녀맹문화선전대가 노래련습을 하고있습니다.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2층에 있는 아이들의 놀이장을 리용하고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한번 구경을 해도 될가요?》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한번 봐주십시오.》

정신옥은 기뻐하며 녀사를 2층으로 안내하려고 서둘렀다. 그런데 이때 젊은 녀인 하나가 그에게로 급히 다가왔다.

《회의시간이 다 되여오는데 나타나지 않는다고 중앙녀맹에서 련락이 왔습니다.》

정신옥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듯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서두르며 말씀드리였다.

《남녀평등권법령 발포 한돐을 성대히 맞이하기 위한 문제를 가지고 각 도 녀맹위원장들의 협의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가보십시오.》

정신옥은 지금껏 말없이 따르던 탁아소소장에게 녀사를 안내해드리라는 부탁을 남기고 떠나갔다.

녀사께서는 소장을 앞세우고 문화선전대의 련습장으로 들어서시였다. 선전대원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모았다. 소장이 녀사를 소개하자 금시 환성을 터칠듯 한 기세로 그이를 에워쌌다. 모두가 녀사를 처음 뵈왔던것이다.

《동무들의 련습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층에서 동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에 이끌려서 이렇게 왔습니다.》

《녀사님, 반갑습니다.》

마주선 처녀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했다. 유난히 반짝이는 눈동자에 기쁨이 차넘쳤다.

《이 동무가 선전대책임자인데 바로 정신옥선생의 따님입니다.》

탁아소소장이 말씀드렸다.

《아, 그렇구만!》

녀사께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처녀의 아름다운 용모를 바라보시였다.

《그래 어떤 종목들을 준비하고있어요?》

다정히 물으시였다.

서분영은 자기들이 준비하고있는 공연종목을 꼽았다. 《일성장군의 노래》를 비롯해서 해방후 새로 창작된 노래들과 민요들, 남존녀비사상과 미신을 반대하는 화술소품들이 들어있었다.

《내용이 참 좋군요. 평양에서는 이미 여러번 공연을 했지요?》

《그렇습니다. 인제는 지방순회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래일 황해도로 떠납니다.》

《황해도로 간다니 하나 부탁하자요.》

녀사께서는 군복생산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시고 이렇게 당부하시였다.

《동무들의 공연종목에 목화기증사업에 녀성들이 적극 떨쳐나서도록 선동하는 내용을 포함시켜주세요.》

《공연과정에 선동연설을 하겠습니다.》

서분영은 상기된 얼굴로 힘주어 말씀올렸다. 그는 남다른 감정으로 녀사의 말씀을 받아안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알수 없으나 림정하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녀사께서 관심하시는 군복에는 바로 그가 입을 군복도 들어있을것이라는 생각이 피끗 떠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에게 믿음이 가시였다. 어머니를 닮아서 청중의 가슴을 흔드는 연설을 할것이다. 황해도는 북반부지역에서 그중 목화가 많이 생산되는 고장이다. 김책동지의 지시를 받은 도당에서는 이미 해당된 조직사업을 벌릴것이다. 거기에 중앙녀맹이 파견한 문화선전대의 선동이 안받침된다면 커다란 성과를 거둘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안고 군복을 짓고있는 작업장으로 돌아가시였다.

 

×

 

서분영은 어머니와 오빠의 저녁상을 챙겨놓고 집을 나섰다. 해는 멀리 서켠에 기울었지만 낮동안 달아오른 대기는 여전히 열기를 뿜었다. 다급히 옮기는 걸음에 땀이 흘렀다. 림정하를 만나려고 떠난 걸음이였다. 여러번 만나군 했지만 지금까지는 매번 림정하가 찾아왔다. 서분영이 먼저 찾아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림정하가 처음 집에 나타났던 그날에는 자기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번져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리숙해보이는 그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가 데려온 손님이라는것뿐이였다. 아름다운 자태에 세련된 교양이 겸비된 서분영은 적지 않은 총각들의 관심을 끌었다. 애타는 시선의 유혹도 받아보았고 감미로운 련애편지도 받아보았다. 그러나 번번이 물리쳤다. 림정하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결코 미남자가 아니였고 분식된 언어로 처녀들의 마음을 끄는 다스려진 재주도 없었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미술가의 재능이였다. 분영은 그 재능보다 첫눈에 어리숙해보이는 외양과 달리 점차 드러나는 내면의 세계에 이끌렸다. 허위와 분식을 모르는 인간적진실성과 사회앞에 자기할바를 다하려는 성실성이 마음에 들었다. 림정하는 분영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품고있으면서도 그것을 서뿔리 표현하지 않았다. 어깨를 붙이고 산보를 한 일도 있었지만 처녀의 손을 잡지 않았다. 용기가 없기때문이였을가? 아니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을 순결하고 고귀한것으로 간주하기때문일것이다.

날이 갈수록 분영은 정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고 사랑의 감정이 불타올랐다. 인제는 그것을 스스로도 억제할 길이 없었다. 오늘은 그 신뢰의 감정이 영원한것으로 이어진다는것을 확인할 결심을 했다. 처녀쪽에서 먼저 그런 용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정하는 언제까지나 제먼저 고백하지 못할것 같았다.

(모자라는 총각!)

입속으로 외운 분영은 애틋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걸음을 다그쳤다. 보안간부훈련대대부에 이르렀을 때에는 해가 져버렸다.

《미안하지만 림정하동무를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접수실에 앉아있는 직일관에게 부탁했다.

《그 동무와 어떻게 되는 사이요?》

직일관의 호기심어린 집요한 시선을 느끼며 분영은 고개를 숙였다. 림정하가 만일 직일관완장을 끼고 저 자리에 앉았다면 낯모를 처녀를 이처럼 무례하게 쳐다보지 않을것이다.

《잘 아는 사이입니다.》

쌀쌀하게 대답하였다.

직일관은 알만 하다는듯이 시뭇이 웃더니 련락병을 림정하에게 보냈다. 독신군관들의 합숙은 병영안에 있었다.

분영은 접수실에서 물러나 정원수밑에서 기다렸다. 5분도 못되여 정하가 나타났다. 웬 처녀가 면회를 왔다는 련락을 받았을 때 누가 왔는가를 짐작했던것이다. 황황히 달려나온 그의 손에는 여러 자루의 화필이 쥐여져있었다.

《그림을 그리댔어요?》

《호실에 걸 풍경화를 그리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림정하는 숨이 가빠오는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놀라운 눈길로 마주보았다.

《전 래일 해주로 출장을 떠납니다. 당분간은 만나지 못할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겠지요?》

《물론.》

림정하는 화필을 직일관에게 맡기였다.

그들은 대동강변으로 나왔다. 달이 떴다. 달빛어린 강물이 기슭의 모래불을 쓰다듬었다. 살랑이는 강바람이 한껏 달아오른 그들의 얼굴을 식혀주었다. 모래불에 또렷한 자욱을 남기며 나란히 걸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똑같이 후둑후둑 높뛰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서로가 륙감으로 느낄뿐이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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