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4 장

7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시선을 들어 장내를 둘러보시였다. 군관가족들이 가득 모이였다. 태반이 20대 초기나 중반의 젊은 녀인들이였다. 개중에는 젖먹이를 등에 업은 애기어머니들도 여렷이였다. 필경 첫아이들을 업었을것이다.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축들은 몇명 되지 않았다. 이것은 학교의 교직원들이 대체로 청춘시절에 살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해방된 조국은 한해사이에 군사학교의 새 세대 교직원을 키워냈다. 갓 창립된 중앙보안간부학교는 지금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있지만 항일투사들이 평양학원에서 키워낸 새 세대 교직원들에 의하여 그 미래는 확신성있게 담보되리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이제부터 강연을 하겠다는 성옥의 소개가 끝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옷깃을 여미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먼저번 헤여질 때 꼭 다시 내려와달라는 부탁을 지켜서 오늘 이리로 오신것이다. 소박한 치마저고리차림으로 연단에 나서시자 장내에서 갑자기 선풍이 이는듯 했다. 녀인들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쳤던것이다. 개교식날에 남편들은 장군님을 모시고 행사에 참가하신 그이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안해들은 오늘 처음 만나뵈옵게 되는것이다.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니 기쁩니다. 새로 창립된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앞으로 잘돼가기를 바라며 남편들과 함께 애를 쓰고있는 여러분들에게 진작 인사를 보내고싶었는데 그만 걸음이 늦어졌습니다.

방금 성옥동무는 강연이 있겠다고 소개를 하였는데 저는 그 무슨 강연이라기보다 개교식날에 받아안은 충격과 품었던 소망을 기탄없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녀사께서는 친근하고 담담한 어조로 그날의 기쁨과 추억, 기대와 확신을 펼쳐가시였다. 많은 청중을 향해 말씀을 하시지만 듣는 사람들은 꼭 자기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려주시는것만 같은 친근감을 느꼈다. 매 사람의 얼굴을 다정히 바라보시며 마실을 온 녀인들사이에 쓰는 쉬운 말로 부드럽게 말씀하셨던것이다. 거기에는 화려한 표현이나 분식이 없었다. 다만 개교식에서 받으신 자신의 소감을 헤쳐보이실뿐이다. 녀사와 청중은 어느새 감정과 호흡이 하나로 일치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보무당당히 분렬행진을 하는 대오를 바라보시던 때의 느낌을 말씀하실 때 목소리가 갈리시였다. 저도 모르게 옛전우들이 생각나시던 그 순간의 추억이 되살아나며 가슴이 저릿해오셨던것이다. 녀사께서는 그날의 개교식을 보지 못하고 간 전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으시면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꽃나이청춘을 바친 그들이 어떻게 싸웠으며 최후의 순간에 무엇을 념원하며 숨져갔는가를 말씀하시면서 계속하시였다.

《나는 씩씩하게 나아가는 대오를 보면서 첫 순간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을 보지 못하고 간 전우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자 눈물이 앞서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먼저 간 그들앞에서 살아있는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였습니다. 비록 가정부인의 한사람이지만 정규군을 건설하는 사업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결심을 새롭게 가다듬었습니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나아가는 대오의 앞장에 옛전우들이 서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흐려진 나의 눈에는 분명히 그렇게 보이였습니다. 잊을수 없는 그 정다운 얼굴들이 말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여서 말씀을 멈추시였다. 청중들에게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날처럼 눈물이 흘렀다.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장내는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울렸다.

녀사께서는 잠시 진정을 하신 후에야 계속하시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는 장군님의 학교입니다. 나도 여러분과 같은 한사람의 군인가족이라고 할수 있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이 학교를 위해 아무것도 보탬을 준것이 없어서 죄스럽군요. 평양학원은 터가 잡혔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집에서 기르는 돼지나 터밭에서 가꾸는 남새도 이 학교에 가져올 생각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앞으로 창건될 정규군의 원종장인 이 학교 군관의 안해된 긍지를 안고 사랑하는 남편들과 함께 학교의 번영을 위해 힘써주리라고 믿습니다.》

녀사께서는 말씀을 마치고 깊숙이 머리를 숙이시였다. 모두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그이를 우러르는 녀인들의 눈시울은 하나와 같이 젖어들었다.

《정숙동무, 훌륭한 강연을 해주어서 고마워요. 오늘 감동이 컸으니까 가족들이 이제부터는 누구나 새로운 출발을 할거예요. 어쩌면 정숙동무는 사람들을 그렇게 감동시킬수 있을가?》

회관을 나서며 성옥이가 하는 말이였다. 녀사를 우러르며 성옥은 생각했다. 김정숙동지의 말씀은 웅변조도 아니고 그 무엇을 납득시키시려는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청중의 가슴에 파고들어 그들을 격동시킨다. 그것이 진실과 진정만을 겸손하게 펼쳐보이는 말씀이였기때문이였지만 그 비결을 알수 없는 김성옥은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그런데 오늘 리다동무만은 참가하지 않았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쉬운 눈길로 성옥을 바라보시였다.

《평양으로 돌아가버렸어요. 남편과 함께.》

《그들이 돌아가다니요?》

《리다가 먼저 떠나가고 다음날에 동훈동지가 돌아갔어요. 아마 전에 복무하던 땅크사단으로 돌아갔나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커다란 실망을 느끼시였다. 오늘 여기로 오신것은 가족들과 담화를 하시기 위해서만 아니였다.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어제 저녁 쏘련에 간 차영환으로부터 국제전보를 받으시였다. 부탁대로 한동훈의 아버지유해를 가져온다는 내용이였다. 그 소식을 동훈에게 알려주려고 오신 걸음이기도 하였다. 생전에 죽어서도 고국에 묻히고싶다던 아버지의 소망을 가슴에 새기고있는 그가 아닌가. 그것이 이루어진다는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뻐하랴. 기나긴 리별끝에 생전의 아버지를 마침내 조국땅에서 만나는 심정일것이다. 아버지 또한 넋이 있다면 화승대를 메고 독립군에서 싸우던 자기의 옛시절과 해방된 조국에서 현대적인 정규군건설에 이바지하는 아들을 대비해보며 얼마나 깊은 감회와 대견스러움에 잠길것인가. 그런데…

《도대체 어찌된 일이예요?》

《전번에 정숙동무가 내려왔을 때 교장과 한동훈동지사이에 격렬한 론쟁이 있지 않았나요. 그후 그 사람은 우리 철수 아버지와도 언쟁을 했다나봐요. 동훈동지가 떠나간 후에 철수 아버지도 속이 좋지않아 하였어요. 왜 그러는가고 물었더니 몰라도 된다면서 무섭게 소리를 치지 않겠나요. 무슨 고민이 있을 때면 내게도 그렇게 멋없이 큰소리를 치지요.》

《내가 용진동지를 만나보겠어요.》

성옥이와 헤여지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최용진의 사무실로 가시였다. 방안에는 여러명의 군관들이 둘러앉아있었다. 도로 밖으로 나가 기다리시려는데 최용진이 그냥 있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녀사께서는 구석쪽의 비여있는 걸상에 조심히 앉으시였다. 최용진은 엄숙한 표정으로 군관들에게 하던 말을 계속했다.

《…이처럼 장군님께서는 군사교범들을 우리 식으로 만들고 군사용어들을 우리 말로 고칠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시였소.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각 학과들에서는 우리 식 군사교범을 만들기 위한 토론회를 활발히 벌리고 좋은 안들은 다음번 학술평의회에 제기해야 하겠소. 오늘부터 당장 고쳐야 할것은 구령을 다른 나라 말로 치는것이요. 다시는 다른 나라 군대의 구령소리가 교원들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되겠소. 그만합시다. 돌아들 가시오.》

군관들이 물러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최용진의 책상곁으로 자리를 옮겨앉으시였다.

그는 마라초를 굵직하게 말며 하소하듯 이렇게 말했다.

《난 교육사업이 이렇게 힘든줄은 몰랐습니다. 부대를 지휘하고 전투를 벌리는것 하고는 대비도 할수없이 복잡하지요. 난 아무래도 군사지휘관이지 군사교육가의 재목은 못되는것 같습니다.》

그는 무슨 일에서나 주저나 동요를 모르는 사람이였다. 완강한 의지와 정열의 소유자인 그가 이런 말을 하는걸 보면 참으로 지금의 사정이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게 어려운 사업이기때문에 장군님께선 용진동지에게 군사부교장직을 맡기시지 않았나요.》

《그런데 장군님뜻대로 일을 못하니 그게 죄스럽단 말입니다.》

그는 페장에 스미도록 깊이 빨아들이였던 담배연기를 내불었다. 크고 뭉툭한 코구멍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책상우로 퍼져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고충이 리해되시였다.

《방금 제 성옥동무에게서 들었는데 한동훈동무가 떠나가버렸더군요.》

《노래에도 있지 않습니까.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고.》

《내 알기엔 한동훈동무는 결코 비겁한 사람이 아니예요. 마지막으로 용진동무와 다투고 떠나갔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건가요?》

《교육내용을 두고 모임이 있었던 날 저녁이였습니다.》

용진은 그날 저녁과 그후 한동훈이 찾아왔던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다. 용진은 결코 동훈의 그릇된 행동을 과장하지 않았다. 그러한 처사를 비렬하게 생각하였다.

《사실 한동무는 머리가 비뚤어지다나니 그렇지 사내다운 사람이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풍부한 군사지식과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있어도 우리와는 군건설의 근본립장이 다른걸.》

《용진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저으기 안타깝게 부르시였다. 사연을 들어보시니 최용진이 너그러운 아량을 보이며 설득력있게 깨우쳤다면 그는 학교를 떠나가지 않았을것이다.

옥에 티라고 할수 있는 최용진의 지나친 성미가 그지없이 안타까우시였다. 녀사께서는 저도 모르게 다소 격한 목소리가 입밖으로 새여나가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어쩌면 용진동지를 믿고 마지막기대를 걸고왔던 그에게 그럴수가 있어요. 외국에서 군사교육을 받았고 그 나라 군대의 전투경험을 쌓은 한동훈동무의 사고방식이 우리와 같을수 없는건 어느정도 불기피한것이 아니겠어요. 그래도 그는 조국의 정규군건설에 자기가 쌓은 지식과 청춘을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예요. 그만큼 그에게는 애국심이 있어요. 그것을 귀중히 여겨야지 자기 주장만을 세운다고 해서 갈테면 가라고 하다니… 너무하지 않아요.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며 함께 갈 사람에게 그렇게 박정하게 대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정숙동무, 아무리 전문지식이 높다고 해도 그런 사람 하나 없다고 해서 우리가 기술병종을 키우지 못하겠습니까?》

《전문지식이 높아서가 아니예요. 그는 해방된 조국이 품에 안아서 옳게 이끌어주어야 할 조선청년이란 말이예요!》

녀사께서는 안타까이 말씀하셨다.

번쩍 머리를 든 최용진은 반사적으로 터져나오던 목소리를 삼켰다. 녀사의 눈에 물기가 어린것을 보았던것이다.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마간 마음을 진정하고 어조를 바꾸며 말씀하시였다.

《하도 안타까워서 제 용진동지에게 지나쳤나봐요. 하지만 용진동지, 장군님께서는 당과 인민정권을 세우시면서 국내와 해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다 포섭하셨어요. 인민민주주의 새 조선 건설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예요. 군건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나라 군대출신이든 그리고 견해와 주장의 차이가 있다 해도 함께 손잡고 일을 해야지요. 이런 의미에서 정규군건설은 새 인간을 키워내는 과정이라고 할수 있을거예요. 한동훈동무는 보내서는 안될 사람이예요.》

숨을 몰아쉬던 최용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사람을 보내놓고 속이 편안치 않았습니다. 운명적인 결심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던 그의 고백이 자꾸만 되새겨지더란 말입니다. 확실히 이 최용진이 옹졸하고 편협한것 같습니다.》

자신을 잘 모르는군요.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대범하고 호협하지요. 과격한 성미가 문제지. 자신을 비하하는것을 보니 제 말이 지나친거군요.》

《원 무슨 소릴… 정숙동무니까 내게 기탄없이 속에 품은 말을 해주지 누가 그러겠습니까.》

용진은 여전히 울기가 오른 표정이였고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반성의 감정에서 오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그에게 말씀하시였다.

《사실 저도 이 방에 들어설 때부터 지나치게 흥분했댔는데 리해해주세요. 학교로 떠나올 때 한동훈동무를 만나면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그 기대가 뒤집혀지고보니 그렇게 되였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정쩡해있는 그에게 차영환이 쏘련에 갔다가 한동훈의 아버지유해를 가져오게 된 사연을 말씀하시였다.

《참 이런!》

최용진은 뜻모를 외마디를 뇌이였다. 감심이 된듯 하였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렸다. 최용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딴데 갈 생각말고 우리 집에 가서 점심을 나눕시다. 변변치는 못하지만.》

《내가 여기 와서 용진동지네 집이 아니고 어데 가서 점심을 먹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성큼성큼 자욱을 옮기는 용진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가시였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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