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4 장

6

 

어느 나무에서 떨어졌는지 알수 없는 락엽 하나가 소슬한 바람에 떠밀리우며 눈앞에서 굴러갔다. 어느새 조락의 계절이 찾아왔는가?

한동훈은 쫓기듯 굴러가는 락엽을 무심히 바라보며 무겁게 자욱을 옮겼다. 가슴속에서는 울분과 절망감이 교차되였다. 내가 배운 군사과학, 내가 쌓은 전투경험을 인정하고 리해하여주는 사람이 이곳에는 그렇게 없단 말인가? 교장에게서 그렇게 혹독한 모욕을 받자고 내가 여기에 왔단 말인가? 최강의 붉은군대군관이였던 내가리다는 이전부터 붉은군대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그것이 옳지 않았는가. 한동훈은 교장과의 격렬한 론쟁끝에 모욕을 당한 후로는 줄곧 번민에 사로잡혀있었다.

처음 포병학강좌장의 직무를 받게 된 때에는 의욕이 있었고 포부가 있었다. 땅크가 전문이였지만 학교에 아직 땅크병종이 없는 이상 자기의 전문분야에 제일 가까운 병종은 포병이였다. 하지만 한개 학과를 책임지고 교단에 서기에는 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다는것을 인정하고 밤을 새워가며 쏘련군사학교들의 포병학교과서들을 읽었다. 땅크포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과히 나쁘지 않은 두뇌가 있었기에 빠른 시일안으로 포병학을 터득했다. 일가견을 가지고 포병학의 과정안을 작성했고 강좌교원들의 강의안을 검토했다. 그런데 자기의 견해와 주장이 먼저번 회의에서 여지없이 무시를 당했다.

지난 며칠동안은 쓰디쓴 모멸과 환멸속에 나날을 보냈다. 교장과는 다시 상종하지 않았다. 비록 나이가 많고 그의 말대로 중국혁명에 참가한 년조가 오래다고 하여도 먼저 머리를 숙이기 전에는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군대가 특수한 조직이라고 하여도 명령과 복종의 관계는 철저해야 하지만 모욕과 굴욕은 허용할수 없는것이다. 차라리 상급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억울한 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서 총살형을 선고받는것이 떳떳한 일이다. 비장하다고 하리만큼 결연한 반발의식이 치솟았다. 강좌안의 교원들이 그 무엇을 문의하거나 강의안을 검열받으려고 제출하면 퉁명스레 응대했다.

《나는 포병학을 모르는 사람이요. 이 학교에서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란 말이요.》

교원들에게 역증을 내는것은 미안스러운 일이다. 시어머니역증에 개옆구리를 차는것처럼 못난이의 처사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삭일수 없는 분노와 번민이 그렇게 하였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도 퇴근시간이 바쁘게 사무실을 나섰다. 복잡한 상념속에 언제 집앞에 이르렀는지 알수가 없었다. 군복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들었다. 강서의 붉은군대구락부에 간 리다가 돌아오자면 한시간나마 기다려야 할것이다. 자물쇠를 따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전등을 켰다. 흰 보자기를 덮은 밥상이 눈에 뜨이였다. 리다는 늦어돌아올것을 예견하여 남편의 밥상을 차려놓는 일이 전에도 있었다. 한동훈은 점심을 설때린 배가 출출하여서 군복도 벗지 않고 밥상에 마주앉았다. 밥상우에 접힌 종이가 있었다. 펼쳐보니 로어로 쓴 리다의 편지였다.

 

《나의 사랑 쎄료자.》

옛시절의 애칭으로 이름을 쓴 첫 문장이 애틋한 정을 불러냈다.

결혼을 한 후로는 쎄르게이라고 부르군 했다. 순진하던 중학시절에 리다가 부르군 하던 애칭에 접하고보니 그때가 추억되면서 따뜻한 미소가 저도 모르게 입가에 피여올랐다. 그러나 다음문장들을 더듬는 눈길에 점차 침중한 빛이 어리였다.

《나는 오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결심을 품고 평양에 있는 옛집으로 떠나갑니다. 어제 랴쉔꼬사단 작전과장의 안해인 따냐를 구락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우리가 살던 집은 아직 비여있답니다. 당신의 후임은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고 해요. 뒤따라 당신도 정든 옛집으로 돌아와서 전날의 직무를 다시 차지하리라고 믿어요. 당신은 말하지 않았지만 교장한테서 참을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나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당신을 잘 알아요. 그런 모욕을 받고 중앙보안간부학교에 그냥 눌러있는 당신의 처사가 리해되지 않는군요. 그곳의 생활조건이 어렵다고 타발을 하면 당신은 말했지요. 조국의 군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어려움은 참아야 한다고. 조국이란 추상적인 개념이지요. 그보다는 쏘도전쟁에서 군공을 세우고 적기훈장과 용감성메달을 수여받은 쏘련군소좌의 현실적인 명예와 직위가 더 귀중하지요.

당신의 군사지식과 재능이 무시당하면서도 그냥 있는다는것은 치욕이예요. 당신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을뿐이예요. 굴욕을 당하며 그냥 있든가 아니면 충분히 인정하고 찬양되는 전직으로 다시 돌아오든가 하는거예요.

쎄료자, 소년시절부터 맺어진 우리의 인연은 끊을수가 없고 우리의 사랑은 변할수가 없어요. 나는 흘러간 옛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면서 떨어져살수 없는 나의 품으로 당신이 돌아오리라고 확신했어요. 먼저 가서 집을 꾸려놓을테니 인차 돌아오세요.

                                                                                    당신의 리다.》

 

한동훈은 종이에서 눈을 들며 생각했다. 오늘에 이르고보면 이곳으로 온것이 잘못된것이 아니였을가. 리다의 말대로 자기의 재능이 무시되는 이곳에 그냥 남아있을수는 없지 않는가. 마음의 동요속에 불현듯 김정숙동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사의 친절하신 말씀을 듣고 조국의 군건설에 이바지하려고 했었다. 이제 떠나버린다면 녀사앞에 죄스러운 일이다. 정녕 이곳에 쓸모없는 존재인가를 확인하고 결심을 하자. 누구를 찾아가 확인을 해볼가. 그래도 제일 마음이 쏠리는 사람은 군사부교장 최용진이다. 그와는 군인답게 에두름이 없이 솔직한 심정을 나눌수 있다.

대충 저녁을 치르고난 한동훈은 최용진을 찾아갔다. 용진도 이즈막에 교육내용을 두고 고민이 많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아직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을것이다. 그 예견이 옳았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최용진은 침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교장과 다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견해의 대립으로 교장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군사부교장동지, 포병학강좌 한동훈 만날수 있습니까?》

거수경례를 하며 정중히 물었다.

《잘 왔소. 동문 요즘 일을 다 줴버렸다면서?》

용진의 어조는 어째서인지 처음부터 거칠었다.

《내가 왜 자기 사업을 포기하는지 몰라서 묻습니까.… 교장동지로부터 포병학교육내용에 대한 나의 주장이 부정을 당했을뿐더러 참을수 없는 인간적모욕까지 당했습니다. 물론 학술적주장은 다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급이라고 해서 인신공격까지 할 권리가 있습니까. 난 그래도 그 장소에서 부교장동지만은 바른 소리를 할줄 알았습니다.》

최용진은 피끗 쏘아보더니 시선을 떨구었다. 한동훈이 방을 뛰쳐나간 후에 교장에게 그 누구도 모욕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제입으로 자신의 정의감을 드러내보이는것은 어느 경우든지 떳떳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알리 없는 한동훈은 흥분된 어조로 따져물었다.

《군사부교장동지도 우리의 정규군을 8로군식으로 건설하자는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소.》

최용진은 명백히 대답했다. 그러자 동훈은 더욱 열기를 띠고 성큼 한걸음 다가섰다.

《그럼 왜 협의회때 내 주장에 침묵을 지켰습니까?》

(적어도 당신은 교장앞이라고 해도 자기의 견해를 주장하지 못할 시람은 아닐텐데요.)

이런 말이 뒤따르며 목밑까지 치미는것을 꿀꺽 삼키며 최용진을 예리하게 살폈다.

《동무의 주장에는 나 역시 공감할수 없었소.》

일순 어리둥절해진 한동훈은 말마디에 그루를 박으며 입을 열었다.

《파쑈도이췰란드를 타승한 붉은군대의 군사과학은 오늘날 전세계가 그 과학적우월성을 인정하고있습니다. 뽈스까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나라들은 별로 싸워보지 못하고 그놈들에게 흰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붉은군대는 모스크바근교까지 쳐들어왔던 놈들을 타승하고 베를린까지 진격해서 동유럽의 광활한 지역을 해방했습니다. 이 과정에 창조된 군사예술은 응당 우리가 배워야 할 본보기로 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을 공정하게 볼줄 아는 군사부교장동지조차 나의 주장에 공감할수 없다니 도무지 리해할수 없군요.》

《나는 다른 나라의 군사과학과 전쟁경험은 참고로 해야 할뿐이지 그것을 고스란히 따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식의 정규군을 건설해야 하오.》

그들의 론쟁은 점점 날카로와졌다.

《우리 식의 군대란 두 나라것을 절충한 제3의 군대를 의미하는가요?》

《절충이 아니요. 제3의 군대란 더구나 있을수 없소. 우리 식의 군대란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빨찌산의 넋을 따르고 우리 나라 현실과 지형조건에 맞는 군사과학으로 무장한 군대를 의미하오. 쏘련군대의 군사과학과 전쟁경험이 아무리 우월하다 하더라도 우리 나라 실정에는 맞지 않는것이 있단 말이요. 전쟁과 전투는 자기의 실정과 구체적인 정황에 맞는 전략과 전법을 창조적으로 구상할 때만이 승리할수 있는거요. 우리 장군님빨찌산이 전투마다 승리할수 있었던것은 이때문이였소.》

《내가 공연히 찾아온것 같군요. 빨찌산투쟁만 하여온 당신으로서는 나의 주장이 리해될수 없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동훈은 실망했다. 길게 한숨을 톺았다. 반면에 최용진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동훈의 마지막말마디가 그를 여지없이 격분시켰다.

《여보, 빨찌산투쟁을 모욕하는 그따위 발언은 삼가하는게 좋겠소. 어디다 대고 감히… 당신이 쏘련서 군관학교를 나오고 2차대전에서 고작 3년을 싸운걸 가지고 우쭐하지만 난 10여년간을 장군님을 모시고 일제의 백만대군과 싸웠소.》

동훈은 최용진이 지금처럼 성을 내는것을 처음 보았다. 하지만 기가 눌린 기색이 조금도 없이 랭담한 어조로 응대했다.

《당신까지 이렇게 나오는 이상 나는 이곳에 눌러있을 필요가 없다는 확고한 결심에 도달했습니다. 다시 붉은군대로 돌아가겠습니다.》

《갈테면 가오. 당신이 없다고 우리가 정규군을 건설하지 못할것 같은가?》

최용진의 눈에서는 상대를 즉시 태워버릴듯 한 불길이 뿜겨졌다. 하지만 동훈의 표정은 방금전과 달리 오히려 평온해보이였다. 운명적인 결심을 하고나니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것이다. 최용진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학원에 같이 있을 때부터 내가 제일 신뢰했던 사람은 당신이였습니다. 붉은군대에 돌아가더라도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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