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4 장

3

 

(2)

 

백두산에는 장군님께서 이끄신 항일대전의 자취가 어려있다. 그 자취를 밟아보지 못하고 서둘러 붓을 든 자신을 어렴풋이 뉘우쳐지는 모양이다.

《제가 좀 말씀드려도 좋을가요?》

녀사께서는 리찬의 낯색을 살피시며 조심히 물으시였다.

《아, 어서 말씀하십시오.》

《저는 가사창작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생의 말씀을 듣고보니 좀 생각되는바가 있습니다. 선생이 말씀하신것처럼 절세의 애국자이신 장군님의 풍모와 업적을 한편의 가사에 담는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힘들다는 생각만 앞세우면 성공하지 못할것입니다. 선생도 아다싶이 백두산 줄기줄기와 압록강 굽이굽이에는 장군님의 피어린 자욱이 찍혀져있습니다. 바로 그 자욱이 나라의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잠시 눈시울을 내리깔고 말씀의 의미를 새겨보던 리찬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광채가 흐르고 얼굴에는 흥분으로 혈조가 번지였다.

《백두산 줄기줄기와 압록강 굽이굽이에 피어린 자욱이 찍혀있다. 무엇인가 잡히는것 같습니다. 제 당장 백두산과 압록강에 다녀오겠습니다.》

그후에 노래가 성과적으로 창작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장군님께서는 노래를 절대로 보급해서는 안된다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은 김책은 김정숙동지를 찾아왔다.

《난 하바롭스크에서 장군님을 처음 만나뵈운 이래 그분의 뜻을 한번도 어겨본 일이 없었소. 앞으로도 그럴것이요. 그러나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보급하지 말라는 지시만은 따르지 못하겠소. 그래 이 노래가 정숙동무나 김책이가 발기하고 지시해서 나온 노래요? 천만에,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소망으로 나온 노래란 말이요. 그래서 나는 보급하기로 결심했소. 정숙동무, 내가 잘못되였소?》

열기를 띤 김책의 어조는 결연했다.

《저도 이번만은 장군님의 뜻을 어겨야 할것 같군요. 보급하자요. 그런 훌륭한 노래를 가지고있으면서 보급하지 않는다면 인민들이 우릴 용서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리하여 노래는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후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찬과 작곡가 김원균의 창작성과를 축하해주시였다. 그날 리찬은 이렇게 고백했다.

《녀사께서 고무해주었을뿐아니라 노래의 상을 튕겨주신 덕에 저희들이 창작할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시인선생이나 작곡가선생이 장군님에 대한 경모심이 열렬하고 재능이 좋기때문에 그처럼 훌륭한 노래를 지을수 있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정을 말씀하시였다. 그들이 기울인 고심과 열정을 값높이 여기고싶으셨고 민족의 이 뛰여난 재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싶으시였다.

《녀사님, 저희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보시지 않겠습니까.》

김원균이 청을 드렸다.

《그러자요.》

녀사께서는 쾌히 응낙하시였다. 김원균이 피아노반주를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창작가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시였다. 3절까지 부르시였을 때 리찬과 김원균의 눈에 물기가 어린것을 보시였다. 그 눈물의 의미는 그들만이 설명할수 있을것이다.

추억을 떠올리며 종이우에 가사를 다 쓰신 녀사께서는 창작가들과 자리를 함께 하신 그날처럼 이제 모든 경위대원들과 목소리를 합쳐 이 노래를 부르게 되리라고 생각하시였다. 부르고 불러도 매번 새로운 감명을 받게 되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였다.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군관이 조심히 들어섰다. 원명철이였다.

《녀사님, 우리 할아버지가 왔습니다. 녀사님을 꼭 만나뵙고 가겠다기에

《그래요?!》

녀사께서는 반가움에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왜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덮이였다.

《할아버지한테서 또 꾸중을 들었어요?》

《아닙니다.》

원명철은 고개를 수굿하고 나직이 대답올렸다. 대답끝에 뜻모를 한숨이 뒤따랐다. 그는 최근에 새로운 출발을 하고있었다. 직무에 성실했고 품행도 단정했다. 워낙 바탕이 좋은 청년이다보니 일시 허영에 들떴던 자신을 뉘우쳤다. 그런데 할아버지를 만나고 왜 이렇게 기가 질렸을가?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필경 대찬 할아버지로부터 무슨 변을 당했을것이다. 할아버지에게 개심을 하였으니 걱정을 놓으라고 이르실 생각으로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식당앞에 달구지 한채가 서있었다. 취사복을 입은 대원 몇명이 달구지에서 새끼구럭에 담긴 감자와 남새를 한창 부리우고있었다. 멍에를 메고있는 황소가 발통으로 땅을 우비며 영각을 질렀다. 원명철의 할아버지는 넙적한 파리채로 연신 소잔등을 갈기며 지꿎게 달라붙는 파리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십니까.》

녀사께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였다.

돌아선 로인은 벙싯 웃었다.

《녀사님, 제 약속대로 오늘 뭘 좀 싣고왔습니다.》

《집의 살림도 넉넉치 못하실텐데 이렇게 많이 싣고오셨군요.

로인은 대통에 써레기를 쟁여서 걸탐스레 한모금 빨고나서 손자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내 저녀석한테서 저저이 다 들었습니다. 저것이 구실을 하도록 녀사께서 깨우쳐주셨다니 정말 고맙쉐다.》

《명철동무는 워낙 좋은 동무입니다. 앞으로 훌륭한 군관이 될겁니다.》

《저녀석이 송금이한테 보낸 편지만 봐도 덜된 생각을 버린게 분명합니다.

《그랬다면 그 처녀도 퍽 기뻐했겠군요.》

녀사께서는 일시 금이 갔던 그들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였다는 생각으로 무척 기뻐하시였다.

로인은 볼이 오무라들도록 대통을 빨더니 한탄조로 말했다.

《하, 그런데 저녀석과 송금이 일이 우습게 번져졌수다. 원 세상에…》

《아니, 우습게라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과 원명철을 번갈아보시였다. 모두가 상심한 기색이였다.

《저녀석은 잘못했노라고 심심히 사죄를 하고 일후에는 그런 일이 없을것이라고 맹세를 했지요. 헌데 편지를 받은 송금이년이 팩 돌아서지 않았겠습니까. 울고불고 할 땐 언젠데… 사내들치고 젊은 시절에 난봉기가 좀 있는건 흔히 보는 일인데 그 애는 절대로 용서할수 없다는거지요.》

명철의 얼굴에 아까부터 그늘이 졌던것은 그때문이였구나, 일이 또 그렇게 번질줄이야… 녀사께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딱한 심정이시였다. 배신을 당했던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도 아팠기때문에 처녀는 자기의 존엄을 지켜 모질게 자신을 가다듬었을것이다.

로인이 다시 말했다.

《송금이는 저 녀석이 군관이 되였다고 자기를 깔봤던만큼 자기도 군관이 되겠다고 했수다. 면당에 찾아가서 평양학원에 추천해달라고 했지요. 어저께 추천서를 받아가지고 떠났수다. 이미 그 학교에서 개교를 했다지만 하두 독한년이라 무슨 수를 쓰던지 입학을 할거우다. 앵돌아진 마음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치마를 두르고도 기어이 총을 잡겠다는 마음이 기특해서 그 애 할아버지와 함께 나도 역전에서 바래워주었지요. 로자도 몇푼 찔러주고…》

《할아버지가 주시는 로자를 그 처년 받던가요?》

《받습디다. 눈물이 글썽해서 나한테 깍듯이 인사도 하더군요. 정정한 몸으로 오래 앉아계시라고. 가만 생각해보니 명철이 놈보다 더 훌륭한 군관이 되여서 돌아올테니 그날을 봐달라는 뜻인것 같쉐다. 송금이는 명철이보다 열배는 더 똑똑하웨다. 이끝저끝 저녀석의 잘못으로 일이 그렇게 되였지요.》

로인은 손자에게 서리찬 시선을 보내였다.

《이제 그 처녀가 군관이 되면 명철동무를 용서하게 될겁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을 일별하며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망일뿐이다. 그들의 관계가 장차 어찌될런지는 아실수 없었다. 아무튼 송금이라는 처녀가 평양학원에 탄원을 한것은 로인의 말대로 반가운 일이다. 단순히 명철이에 대한 반발심만은 아닐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동기에 불과할것이다. 진작 처녀는 조국보위초소에 서리라는 마음속 다짐을 하여왔을것이다. 어찌면 배가 고프다고 평양학원에서 도망쳐온 명철이를 보고 안타까이 원망하던 날에 그런 결심을 품게 되였을지도 모른다. 애모쁜 원망에 애인을 대신하여 자기가 학원으로 달려가고싶었을수 있었다.

《녀사님, 이걸 받아주시우.》

로인이 달구지에 남아있던 두개의 새끼구럭을 들고왔다. 감자와 호박을 담은 구럭이였다. 알알이 골라서인지 특별히 크고 싱싱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러나 경위대식당에 마저 주십시오. 그럼 제가 받은것으로 여기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양하시였다. 로인의 얼굴에 피여나던 웃음이 가셔졌다.

《섭섭하웨다. 댁에서 어떻게 잡수시는가를 내 눈으로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수다. 비록 변변치는 않소만 이 늙은것의 성의로 알고 받아주시우.》

마주보는 로인의 눈에서 간절한 마음이 세찬 빛발로 뿜겨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쩔수 없어 로인의 손에서 구럭을 받으시였다. 로인은 뜻을 이룬 기쁨에 히뭇이 웃었다.

《그럼, 난 돌아가야겠수다. 아무쪼록 편히 계시우다.》

《할아버지, 저의 집에 들렸다 가십시오.》

로인은 사양했다. 남의 집 소와 달구지를 빌려왔기때문에 인차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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