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3 장

4

 

다쫓아가던 홍구는 마침내 기도선의 덜미를 덮쳐잡았다. 그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힘껏 뺨을 후려쳤다. 기도선은 단매에 쓰러졌다. 홍구는 그의 배를 가로타고 목줄띠를 눌렀다. 버둥거리며 마주보는 기도선의 눈알이 금시 튀여나올것 같았다.

《이 반동놈아,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알지 않구. <닭털>이지.》

기도선의 이지러진 입술사이로 가는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뭐 <닭털>! 네놈이 아직 그따위 수작질이냐?》

홍구는 기도선의 입술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옛시절의 별명을 듣고보니 참을길없이 격분이 치밀면서 전신이 떨렸다. 맨살이 드러나보이도록 너슬너슬하게 해여진 옷을 입고다니는 어린시절의 홍구에게 치욕스러운 《닭털》이라는 별명을 처음 달아준것이 바로 기도선이였다. 그것이 어느핸가 초봄이였던것으로 기억된다.

홍구는 그날도 개펄에 조개주이를 나갔다.

《얘 홍구야, 이리 좀 오너라.》

등뒤에서 호령소리가 울리였다. 돌아보니 기도선이 닭의 모가지를 들어보이며 싱글거렸다. 기도선은 댓살우였다.

《네 옷주제가 어쩌면 이 닭털하고 그리도 비슷하니.》

야밀거리는 수작이였으나 홍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기도선의 손에 들린 닭을 보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깨달았다. 살찐 씨암닭이 눈에 익었던것이다.

《그게 우리 이웃집 닭이 아니요?》

기도선은 일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인차 흔연한 표정으로 돌아가며 싸늘하게 뇌까렸다.

《무슨 허튼 수작이야? 시장에서 사온거다.》

홍구는 분명 이웃집 닭이라고 생각했다. 사흘전에 그 집 어머니가 다른 집 닭과 구별하기 위해 가위로 꼬리를 자르는것을 보았었다. 그런데 기도선의 손에 들린 닭의 꼬리도 잘리워있었다.

저놈이 훔쳤구나! 기도선은 어려서부터 동네에 남의 물건을 솜씨있게 훔치는것으로 소문이 났다. 그만한것을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였다. 도적질자체를 천성적인 흥미로 알고있었다. 자기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도 재미로 훔치군 하였다. 소년시절에 키운 좀도적솜씨가 후날 어벌이 크게 은행을 터는 큰 도적으로 자랐지만 이날 홍구는 기도선의 그러한 장래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씨암닭을 도적맞힌 이웃집을 가슴아프게 생각했을뿐이다.

《홍구야, 이걸 구워먹자. 너도 닭고기가 먹고싶지?》

기도선은 전에없이 살틀했다. 자기의 뒤가 드러날가봐 그럴것이다.

《난 조개를 주어야 해요.》

홍구는 물러나려고 했다.

기도선이 왁살스레 팔굽을 틀어잡았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재미없어. 네 에미도 우리네가 하라는대로 하는데 쪼꼬만 놈이 감히 엇설테냐?》

《내가 왜 남이 시키는대로 해야 하나요?》

《이자식, 너도 빚진 종이란 말이다!》

홍구는 그 말의 뜻을 다는 몰랐지만 도저히 거역할수 없음을 느끼였다. 어머니도 꺼지는 한숨속에 그 말을 외우며 기양호나 기도선의 말에 순종을 하군 했던것이다.

홍구는 하는수없이 시키는대로 삭정이를 주어왔다. 그사이 기도선은 닭의 멱을 따고 털을 뽑았다. 그리고는 물에 적신 종이를 바르고 그우에 감탕을 덧발라서 불길우에 올려놓았다. 하는 솜씨를 보아 이런 놀음을 여러번 한것이 분명했다. 기도선은 닭이 구워지자 감탕과 종이를 털어버리고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때? 구미가 당기지?》

그는 닭의 대가리를 잘라서 홍구에게 주었다.

《난 닭고길 못 먹어요.》

《왜? 뼈가 많은 대가리를 준다고 그래?》

그래서가 아니였다. 이웃집에서 귀중히 여기던 닭에 어떻게 손을 댄단 말인가. 기도선은 히쭉 웃고나서 술을 곁들이며 통닭구이를 거뜬하게 먹어치웠다.

《닭고기를 입에 못 댄다니 그대신 너에게 닭털로 옷이나 해주지.》

거나해진 기도선은 몸부림치는 홍구를 꽉 부여안고 해진 옷갈피사이에 틈틈이 닭털을 꽂아주었다.

《헌옷에 닭털을 꽂으니 제격이로구나. 바람도 막고 보기도 좋으니 고마운줄이나 알아라.》

헤여질 때 기도선은 주먹을 들어보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입건사를 잘해! 함부로 주둥이를 놀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줄 알아라!》

홍구는 금시 주먹이 정수리에 떨어지는듯 하여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옷에 배긴 닭털을 털어버리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따지고들었다.

《조개는 하나도 줏지 않고 뭘했니?》

홍구는 침묵했다. 기도선의 마지막다짐이 입을 얼구어버렸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그물구럭을 들고 조개를 주으러 바다로 나가던 홍구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웃집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기도선이 집주인에게 생사람을 도적으로 몬다고 행패를 부렸다. 일터로 나가던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홍구도 그들을 따라 울바자안으로 들어갔다.

《네놈이 닭을 훔쳐가는걸 본 사람이 있다. 그래도 뻗댈테냐?》

이웃집 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러자 기도선은 흠칫 놀라며 얼굴이 벌겋게 익어갔다.

홍구는 속이 후련했다. 누군가 닭을 훔치는 기도선을 띄여보고 주인에게 알려준 모양이다.

두눈을 허둥거리며 사위를 둘러보던 기도선의 눈길이 홍구에게 박혔다.

《좋수다. 그럼 빠개봅시다그려.》

기도선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홍구의 덜미를 들었다.

《바로 이놈이요.》

홍구는 억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다. 기도선은 홍구의 옷갈피에 남아있는 닭털을 뽑아들었다.

《자, 보시오. 이 집 닭털이 분명하지요? 이놈이 구워먹었단 말이요.》

홍구는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기도선의 억지가 생벼락같았으나 속이 떨려 밝힐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홍구에게 쏠렸다. 부인할수 없는 증거물이 홍구의 몸에서 나타난셈이다. 화끈 달아오른 홍구의 뺨으로 어머니의 드센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네가 정말로 이 집 닭을 훔쳤느냐?》

얼얼한 볼을 쓰다듬으며 홍구는 머리를 들었다. 아니라고 항변을 터치려고 했으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는 입을 열지 못했다. 어머니는 제 자식을 믿고있었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 흘렀으나 그 일은 홍구의 가슴에 지울수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옛 기억을 떠올린 그는 깔고앉은 기도선에게 물었다.

《우리 이웃집 닭을 훔치고 나한데 도적루명을 씌웠던 때를 잊지 않았겠지?》

《그땐 정말 잘못했소.》

《더러운 놈, 우리 어머니한테 뜨거운 물을 들씌우던 일도 기억나느냐?》

기도선은 불거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이 없었다. 하도 고약한짓을 많이 저질렀으니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홍구는 그의 머리를 호되게 쥐여박았다.

《네놈의 집에 불리워간 어머니가 발 씻을 물을 끓여다주었을 때 기양호는 물이 지내 뜨겁다고 욕질을 했지. 그런데 네놈은 그 뜨거운 물을 우리 어머니한테 들씌우지 않았느냐. 그런 못된짓을 하고서도 기억하지 못해?》

《생각나오. 그때도 내가 잘못했소. 제발 용서해주오.》

《그런것은 다 용서할수 있다. 그러나 부관장의 집에 불을 지른것은 어떻게 용서를 하겠느냐.》

홍구는 연신 주먹으로 기도선의 골통이 부서지도록 때렸다. 마침내 기도선은 죽어버렸다.

《드디여 피맺힌 원한을 갚았구나.》

홍구는 부르짖었다.

《환자동무, 왜 자꾸 헛소리를 치나요?》

누군가가 근심스레 속삭이며 팔굽을 흔드는통에 홍구는 잠에서 깨여났다. 환자복이 축축하니 젖었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침대모서리에 눈부시게 흰 위생복을 입은 간호원이 서있었다. 날은 이미 훤히 밝았다. 처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리였다.

헛소리를 치는 환자가 걱정되였던 모양이다.

《꿈을 꾸었소.》

홍구는 얼굴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상을 당한 다리가 띠끔거렸다. 이마를 찌프리며 수건으로 얼굴에 홍건히 내밴 땀을 씻었다.

《불길한 꿈이였나보죠?》

간호원이 물었다.

《아니, 통쾌한 꿈이였소.》

간호원은 상두대우에 아침밥이 담건 쟁반을 가리키며 간절히 말했다.

《오늘 아침엔 식사를 다 하세요. 한숟가락의 밥이 악귀 천을 물리친다고 했어요. 병은 밥상머리에서 숙어드는거예요.》

홍구는 간호원이 물러가자 꿈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실지로 있었던 과거와 애타는 보복의 갈망이 결합된 꿈은 너무도 생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이였다. 아무런 단죄와 보복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도선이 쏜 총탄에 다리만 상한것이 현실이다. 그놈을 놓쳐버린것이 참으로 분하였다. 그저께 찾아온 어머니에게는 그저 반동놈의 총탄에 부상을 입었다고 하였을뿐 그놈이 기도선이였다고 말하지 못했다. 바로 그 기도선놈에게서 화를 당한 이야기를 차마 터놓을수 없었던것이다.

창피하고 부끄럽기만 하였다. 생각할수록 기도선놈을 놓쳐버린 한스러움이 사무쳐와서 밥도 당기지 않았다.

녀사께서는 기양호앞에서 굽신거리는 나를 두고 그처럼 준절히 꾸짖으셨지만 나는 또다시 그 조카놈을 때려잡지 못하고 놓쳐버렸구나! 자책이 갈마들며 마음을 괴롭혔다. 자기를 향해 총을 쏘던 기도선의 낯짝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꿈에서처럼 그놈을 깔고앉아서 단죄를 하고 복수를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어느덧 입원실의 창가에 아침해빛이 비치였다.

복도에서 조심스레 옮겨디디는 발자국소리가 울리였다. 뒤이어 살며시 출입문이 열리더니 간호원을 앞세우고 김정숙동지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홍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서려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부상당한 한쪽다리를 가눌수 없었던것이다.

《바쁘실텐데 녀사께서 이렇게…》

말끝을 삼키며 눈을 슴벅였다.

《인차 와본다는게 그만 늦어졌어요.》

녀사께서는 간호원이 권하는 걸상에 마주앉으시였다. 간호원은 상두대에 놓인 밥그릇들을 열어보더니 녀사에게 말씀드렸다.

《오늘 아침도 아직 식사를 안했습니다. 인제는 열도 떨어졌는데 이 동무는 여전히 끼니를 번지군 합니다.》

《알겠어요.》

간호원이 머리를 숙여보이고 물러갔다.

녀사께서 홍구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방금전에 담당의사를 만났는데 쉽게 회복될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동무가 식사를 잘하지 않는것이라더군요.》

《전혀 먹고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어째서요?》

《그 반동놈을 놓쳐버린것이 분해서 그럽니다.》

잠시 머리를 숙이고 침묵하던 홍구는 이즈막에 내처 마음을 괴롭히는 자기 심정을 헤쳐보이였다. 오늘 새벽에 있었던 꿈이야기도 하였다.

주의깊게 들으신 녀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내 신경을 쓰지 마세요.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지요. 그날 밤에 동무는 큰일을 했어요.》

《아닙니다. 내 걸음이 한발 늦었기때문에 그놈을 놓쳤습니다.》

홍구는 두고두고 그것이 분하고 안타까왔다.

《사람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고 해도 총알을 당할수는 없어요. 그놈은 어떤 경우든지 동무를 먼저 쏘았을거예요. 동무의 손에 총이 없었기때문에 그놈을 놓쳐버렸어요.》

《총이요?!》

홍구는 저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머리속에서 섬광이 번쩍이는듯하였다. 듣고보니 참으로 총이 있었다면 도망치는 그놈을 놓치지 않았을것이다. 왜 여적 그 생각을 못했는가. 경위대원들이 메고 있는것과 같은 총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날 밤의 대결이 그처럼 허망하게 끝나버리지 않았을것이다. 새로운 깨달음에 정신이 번쩍 드는듯 하였다. 녀사의 다정하신 음성이 다시 울리였다.

《홍구동무, 원쑤를 갚고 원한을 풀자면 반드시 총을 잡아야 해요. 원쑤들이 총을 잡고 접어드는데 맨주먹으로 맞서서는 희생밖에 가져올것이 없어요. 동무는 꿈에서 총을 가진 기도선놈을 복수하였다고 하는데 실지는 그럴수 없어요. 계급적원쑤는 어디까지나 총대로써만 보복하고 쳐부실수 있어요.》

홍구는 괴롭고 안타깝던 가슴이 금시 열리는듯 했다. 홍구는 이윽하여 열띤 어조로 입을 열었다.

《녀사님, 이제 퇴원을 하면 제 경위대에 입대해서 총을 잡겠습니다.》

《그것도 좋겠지만 내 생각에는 홍구동무가 평양학원으로 갔으면 해요.》

《평양학원에요?》

홍구는 뜨직하게 반문했다. 평양학원으로 가면 장군님과 녀사님의 곁을 떠나야 한다. 그것은 이를데없이 서운한 일이다.

녀사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그리며 타이르시였다.

《기왕 총을 잡을 결심을 하였다면 홍구동무가 지휘관이 되였으면 해요. 이제 머지않아 평양학원 2기생을 모집하는데 학원에 가는게 어때요?》

《제가 어떻게 군관이 된다는 그 학원에서 공부를 하겠습니까?》

홍구는 아무래도 장차 지휘관이 된다는 그 학원에서 공부를 한다는것이 자기의 푼수에 어울리지 않는 일처럼 생각되였다.

《우리 글을 빨리 깨치는걸 보니 동무는 얼마든지 그 학원에서 공부할수 있어요. 나는 동무가 우수한 성적으로 학원을 졸업하고 훌륭한 지휘관이 되리라고 믿어요.》

신뢰어린 녀사의 시선을 느끼며 홍구는 가슴이 설레였다.

녀사께서 우리 글을 배워주시고 세상리치를 깨우쳐주시던 지난날의 하많은 사연들이 되새겨졌다. 그 모든것이 자기를 앞으로 조직된다는 우리 나라 정규군지휘관의 한사람으로 키우시기 위해서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녀사님, 평양학원으로 가겠습니다!》

힘주어 대답을 올린 홍구는 오랜 숙원을 이루신듯한 기쁨이 녀사의 얼굴에 어리는것을 보았다.

《좋아요. 학원에 가자면 식사를 잘해서 하루빨리 몸을 회복해야 해요.》

《이제부터는 꽝꽝 밥을 먹겠습니다.》

홍구는 이 순간의 깨달음을 터놓고싶었으나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녀사께서 들고오신 보자기를 푸시였다. 빵과 과일이 드러났다. 홍구는 녀사께서 권하시는대로 그것을 들기 시작했다. 며칠간 끼니를 설때려서인지 특별히 맛이 좋았다. 방금전에 들려주신 말씀이 자기 인생의 전환을 가져오는 자양이 된다면 지금 권하시는 음식은 그대로 자기의 회복을 앞당기는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달게 먹었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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