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3

 

강상호는 부관장의 집터를 돌아보고있었다. 목조건물이였던 집은 기둥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타버렸다. 재가루우에 깨여진 기와장들만이 널렸을뿐이다. 다행히 사람은 상하지 않았으나 가장집물은 몽땅 타버렸다. 휘발유를 뿌리고 지른 불길이여서 손쓸겨를 없이 확 번지였던것이다.

이른아침에 김정숙동지께서 부관장의 안해를 데리고 밥가마 하나와 숟가락 두개를 재무지속에서 찾으셨다고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지에 나앉게 된 부관장네 량주를 저택에서 함께 살도록 하시였다. 그들이 결혼을 한지는 몇달밖에 되지 않는다.

부관장은 지난해 말 함흥에서 사업을 할 때 처녀와 눈이 맞았다.

이것을 아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콩나물을 길러서 조촐한 잔치를 차려주셨다. 식탁에 오른 식찬과 안주로는 콩나물밖에 없어서 결혼식에 참가했던 빨찌산전우들중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들의 잔치를 《콩나물잔치》라고 하였다. 그들의 생활은 너무도 소박했다. 당그랗게 이불 한채와 간소한 부엌세간만을 갖추고 살았다. 그러나 부부간의 정은 남달리 두터웠다. 그처럼 열렬한 사랑이 꽃펴나던 그들의 집은 처참한 흔적만을 남겼다.

매캐한 재가루냄새가 코끝에 알싸하게 풍겨왔다.

강상호는 가슴이 쓰렸다. 페허를 돌아보는 괴로움만은 아니였다. 간밤의 방화가 종당에 어데를 겨냥할것인가는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무엇인가 경위대에 빈틈이 있다고 보았기때문에 놈들이 감히 그런 흉계를 꾸민것이 아닐가? 자기의 불찰로 이런 일이 벌어진것만 같은 자책감이 머리속을 짓눌렀다. 그러한 자책은 장군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각오로 뒤바뀌였다. 경위대의 력량을 결정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대오도 늘이고 보다 준비된 성원들로 꾸려야 한다!

련락병이 나타났다.

《대장동지, 장군님께서 찾으십니다.》

《어데서?》

《림시인민위원회에서 부르십니다. 방금 직일관실에 전화가 왔습니다.》

강상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장군님께서 무슨 일로 찾으실가? 혹시 간밤의 사건때문은 아닌지, 어쩌면 장군님께서도 경위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아무튼 마침 찾으신 오늘의 기회에 그 문제를 강경히 제기하리라고 마음을 다졌다.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집무실에 들어서니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걸고계시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 교원과 지휘관문제는 내가 대책을 세우겠소. 류경수동무에게도 철도경비대에서 우수한 사람들을 10여명 뽑아보내라고 했소. 용진동무는 인차 개교를 하도록 건물보수를 다그치시오. 지울리에서 대안리를 오가면서 두곳의 일을 보자니까 힘들겠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에 류의하시오.》

전화를 끝내신 장군님께서는 강상호에게 머리를 돌리시였다.

《강동무, 지금 경위대에 산에서 싸우던 동무들이 몇이나 있소?》

강상호는 이때라고 생각하며 빠른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인제는 저까지 4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평양학원 반장과 조장으로 뽑아갔던 동무들을 인제는 경위대로 소환해야 하겠습니다. 어제 밤 사건은…》

《가만.》

장군님께서는 말허리를 자르고 근엄한 시선으로 마주보시였다.

강상호는 가슴에 품은 생각이 간절하던 나머지 무랍없이 서둘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동무를 제외하면 3명이구만. 누구누구요?》

강상호는 경위대에 남아있는 항일투사들의 이름을 알려드렸다.

수첩에 그들의 이름을 쓰신 장군님께서는 온화한 표정으로 말씀하시였다.

《그 동무들을 포함해서 우수한 초급지휘관 10명을 이삼일내로 중앙보안간부학교에 보내야 하겠소.》

《네?》

강상호는 너무도 상상밖이여서 두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제 평양학원 1기졸업생들중에서 10명을 경위대에 보충해주겠소.》

강상호는 뒤집히는 기대에 일순 혼란되였던 자신을 수습하며 절절히 말씀드렸다.

장군님, 지난밤 사건을 봐서라도 경위대에서 핵심력량을 다시 뽑아가는 일은 고려해주십시오. 놈들은 저택을 기습하려다가 뜻대로 할수 없으니까 부관장동무네 집을 불태웠습니다. 이건 누구에게나 명백합니다. 어디 이런 일이 어제 밤뿐이였습니까. 지난 3.1인민봉기기념행사때를 비롯해서 여러번이였습니다. 형세가 이렇기때문에 저는 경위대의 력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동들 몇놈이 날뛴다고 해서 이 김일성이가 잘못될것 같소? 일없소.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그 누구의 주택경비를 강화하는것이 아니라 정규군을 하루빨리 일떠세우는것이요. 지금은 남조선을 틀고앉은 미국놈들이 문제이지 대내에 숨어있는 반동 몇놈이 문제로 되는것이 아니요. 미제는 제1차 쏘미공동위원회를 파탄시키고 세계의 면전에서 북반부까지 강점할 속심을 드러냈소. 동무는 왜 정규군건설을 다그치려는 내 뜻을 리해하려고 하지 않소.》

《압니다. 제가 왜 장군님의 뜻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경위대의 력량만은 약화시키지 말고 더 보강해주십시오. 우리가 장군님을 잘 보위하지 못해서 아슬아슬한 고비가 거듭되고있습니다. 그런데 이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돌이킬수 없는 후과가 초래된다면 력사와 인민이 저를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강상호는 북받치는 안타까움에 부지중 눈물을 머금었다.

장군님께서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타이르듯 말씀하시였다.

《어째서 동무는 경위대만이 나를 호위한다고 생각하오? 나는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인민의 보호속에 있소. 반동들 몇놈이 좀스럽게 쏠라닥거리는것을 보고 신경이 곤두서서야 안되지. 작은것에 집착하면 큰것을 보지 못할수 있소. 우리는 미제와 같은 대적과 대결해야 하오. 어서 중앙보안간부학교에 보낼 성원들을 선발하시오.》

장군님!…》

강상호는 느닷없이 부르짖고 고개를 숙였다. 가슴속에서 고패치는 안타까움을 더 설명할수 있는 말을 찾을수 없었다.

《왜 아직 그렇게 앉아있소? 어서 돌아가시오!》

장군님의 절절한 음성이 머리우에 떨어졌다. 강상호는 주밋거리다가 집무실을 나섰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경위대로 돌아온 그는 김정숙동지를 찾아갔다.

녀사께서는 저택에서 부관장부부의 방을 꾸려주고계시였다. 알몸으로 옮겨온 그들이였다. 당장 살림에 필요한 식량과 찬거리, 침구와 식기도 없었다. 녀사께서는 저택에서 쓰시던것을 아낌없이 날라오시였다. 그것을 하나하나 받아서 방안에 놓고있는 부관장의 안해는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고마움에 목메여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거듭 훔쳤을것이다. 강상호는 그를 보니 가슴에 안고온 안타까운 마음이 곱절로 더해졌다.

《정숙동지, 잠간…》

한창 녀사의 일손이 바쁘인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말했다.

《무슨 일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전에없이 심각한 표정이 떠오른 강상호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조용히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상호의 표정과 어조로 보아 매우 심중한 문제가 제기되였다는것을 직감하시였다.

《응접실로 가자요.》

응접실에 들어선 강상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방금 장군님을 만나뵙고 오는 길입니다.》

그는 저간의 사연을 말하고 이렇게 계속했다.

장군님께서는 자신보다 혁명을 먼저 생각하시지요. 그거야 장군님을 모시고 오래동안 싸워온 나도 모를리 있습니까. 그러나 반동놈들이 그처럼 분별없이 날뛰는데 경위대 핵심들을 또다시 중앙보안간부학교로 보내라고 하시니 나로서는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하도 가슴이 답답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정숙동지가 장군님께 좀 말씀드려주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바닥에 눈길을 떨구고 생각하시였다. 여태껏 언제 한번 장군님의 뜻에 다른 생각을 품어보신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장군님의 정사에 조금이라도 비껴드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자각하시였다. 다만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그 길에서 자신의 사명감과 위치를 찾으시였다. 하지만 이 일은 장군님의 신변안전과 관련되는 문제였다. 장군님께서 펴시는 일련의 정치적시책들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강상호의 심정이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공명되여오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강상호보다도 몇배로 더 그 문제를 두고 마음을 써오시였다.

《상호동무, 저녁에 장군님께서 돌아오시면 동무의 의견을 말씀드려보겠어요.》

긴 침묵끝에 무거운 어조로 수긍하시였다.

강상호는 다소 안심이 되는지 한결 밝아진 얼굴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밥상을 물리신 장군님께 조심히 말씀드리시였다.

《강상호동무가 저를 찾아왔댔습니다.》하고 기탄없이 그 사실을 터놓으시였다.

주의깊게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서서히 시선을 들어 녀사를 바라보시였다.

《그래 정숙동무도 강상호동무의 의견에 동감이요?》

물으시는 어조에 무게가 실리였다.

《그렇습니다.》

녀사께서는 짧게 대답하시였다. 굳이 설명이 없어도 장군님께서 자신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시리라고 생각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돌리고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침묵이 흘렀다. 녀사께서는 길게 흐르는 그 침묵에 시각마다 더해오는 압박감을 느끼며 가슴을 조이시였다.

이윽하여 장군님께서 침묵을 깨치시였다.

《정숙동무야 누구보다 내 마음을 잘 알지 않소.》

서운함과 믿음이 교차되여 울리는 말씀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말씀 한마디에서 몇천마디의 말로써도 대신 못할 깊은 충격을 받으시였다. 더는 말씀을 못 드리고 고개를 숙이시였다.

두분사이에 언어를 초월한 감정이 교감되는 한순간이 지났다.

장군님께서 먼저 화제를 돌리시였다.

《홍구동무의 총상이 어떤지 모르겠소?》

《강상호동무가 낮에 병원에 갔댔습니다. 진찰결과 뼈는 상하지 않았다는것이 확증되였답니다.》

《다행이군, 그렇다면 젊었으니까 인차 회복될거요.》

《저도 인차 면회를 가보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서재로 가시였다.

아드님의 잠자리를 보아주신 녀사께서는 장안에서 권총 한자루를 꺼내시였다. 지금까지 밤마다 집주변을 돌아보실 때 몸에 지니셨던 권총은 사거리가 짧은 호신용이였다. 줌안에 들만큼 작은것이였다. 그러나 새로 꺼내신 권총은 크기도 하고 사거리도 길었다. 어느때인가 적후 멀리로 정치공작을 떠나실 때 장군님께서 선물로 주신 권총이였다. 뜻이 깊은것이여서 평양에 오신 후 지금껏 고이 보관해두시였다. 그러나 이밤에는 경위대의 빈구석을 자신이 메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꺼내시였다. 인제는 밤마다 두 자루의 권총을 지니고 친위전사의 위치에 서실 결심이였다. 량손에 권총을 들고 이쪽저쪽에서 달려드는 적들을 동시에 쓸어눕히던 과거에로 자신을 되돌려세우려고 하시였다. 불현듯 대사하치기전투가 되새겨지셨다. 그날에 맞다든 적들은 악질반동들로 꾸려진 악명높은 《신선대》였다. 전날 밤 부관장의 집을 기습했던자들과 그 족속이 같다고 할수 있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계급적원쑤들과의 판가리싸움은 거듭되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이 순간 그 전투가 떠오른지도 모른다. 사령관동지를 겨냥한 총구를 발견하고 몸으로 그이를 막으며 지체없이 권총을 쏘시던 순간의 아찔한 흥분, 숨어서 다가오는 놈들에게 사령관동지와 총성의 박자를 맞추듯 겨끔내기로 총탄을 퍼붓던 통쾌감, 총탄이 꿰지른 사령관동지의 모자를 부여안았을 때 그 총탄자국을 보는 눈에서 설명할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치던 기억… 그 모든것이 머리에 생생히 떠올랐다.

녀사께서는 새로 꺼낸 권총을 분해하여 부속들을 닦기 시작하시였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소중히 여기는 그 권총에는 어제날의 추억이 어려있었고 오늘에도 변함없는 준엄한 현실이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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