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1

 

(2)

 

녀사께서는 그 웃음이 아프게 가슴에 마쳐오는것을 느끼셨다.

묻지 말아야 할것을 물었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한창나이의 청년들이 배고픔을 참는다는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창즈에서 겪으신 기아와 며칠씩 낟알구경을 못하고 눈을 씹어삼키며 행군을 했던 옛 기억이 떠오르시였다. 주림의 고통이 어떤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였다.

《의지가 약해서 달아난것은 잘못이지만 다시 돌아온건 반가운 일이군요.》

《저도 리해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보초장한테 걸렸습니다.》

《그를 내가 한번 만나보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보초막뒤로 가시였다. 초간히 떨어진 소나무밑에 웅크리고앉은 원명철은 곁에 사람이 다가오는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형언 못할 수치와 괴로움이 그를 사로잡고있었다. 큼직하게 마라초를 말아서 입에 물고 부시를 치는 손이 떨렸다. 매번 부시가 깃을 얹은 차돌을 때리지 못하고 빗나갔다.

《동무.》

조용히 부르시였다. 원명철은 와뜰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얼핏 이쪽을 스쳐보더니 한껏 붉어진 얼굴을 짓숙이고 외면을 했다. 투박한 무명옷과 마디가 굵은 손은 농촌청년이라는것을 말해주었다. 그도 지방당조직에서 선발해 보냈던것만큼 워낙은 성실한 청년이였는데 참기 어려운 배고픔이 일시 리성을 흐려놓았을것이다.

《고향이 어디예요?》

《서포입니다.》

서포라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다. 기차편으로는 한두시간에 닿을수 있다.

《한번 고향집에 다녀올 생각으로 떠났댔는데 그만 늦어진게 아니예요?》

《아닙니다. 처음은 돌아올 생각이 없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왔어요?》

친절히 물으셨으나 대답이 없었다. 원명철은 눈을 꺼벅거리며 대동강쪽을 바라볼뿐이다.

《원주적은이도 동무를 리해하더군요.》

《원주 누님인가요?》

이번에는 김정숙동지께서 웃음을 지을뿐 침묵하시였다.

《원주동무는 좋은 사람입니다. 누님앞이여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동무한테는 이미전에 집에 가겠다고 은근히 내심을 비쳤댔습니다. 그는 펄쩍 뛰면서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우리가 나라를 지키고 사람답게 살자면 총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주동무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도망을 쳤습니다. 듣자니 어느 나라 군대나 탈영죄는 군사재판에 걸어서 엄벌에 처한다더군요. 사실 학원에 다시 오면서도 지은 죄가 두려워서 발이 저렸습니다.》

어느새 친근감에 이끌린 청년은 저도모르게 자기의 심정을 솔직히 터놓았다.

《학원의 책임일군들도 동무를 용서할거예요.》

《아닙니다. 최용진동지는 규률은 군대의 생명이기때문에 규률을 어긴자는 용서치 않는다고 늘 강조해왔습니다.》

《그렇게 엄벌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다시 왔어요?》

진작 알고싶던 사연을 물으시였다. 그가 돌아올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류다른 까닭이 있을것이다.

《제가 집에 돌아간지 한달만에 고모네 집으로 나들이를 갔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어요. 나를 보더니 후들후들 흰수염을 떨면서 당장 마당가에 나가 엎드리라고 호령하더군요. 우리 집에선 할아버지 말씀이면 누구도 엇서지를 못한답니다. 할아버진 내 볼기와 장딴지를 도리깨로 후려쳤습니다. 내 네놈을 보내면서 제일 국사가 강병이라고 몇번이나 일렀느냐, 이 할아버지가 왜놈들과 피를 물고 싸우던 이야기를 네놈이 철이 들자부터 들려주지 않았느냐, 그만 한 고생을 참지 못하고 가문을 욕되게 한 이놈, 군법으로 다스리기전에 가법으로 다스리겠다.… 이렇게 꾸짖으며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다시 학원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매를 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의병으로 싸웠는가요?》

할아버지가 왜놈들과 싸웠다기에 그렇게 물으시였다.

《아닙니다. 리조 말기에 시위대 병졸로 있었는데 조선군대 해산령이 내렸을 때 왜놈과 싸웠답니다. 그때 부상을 입어서 의병에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리조 말기에 우리 나라 군대는 서울의 시위대와 지방의 진위대를 통털어 만명도 채못되였다. 무장장비도 보잘것이 없었다. 그마저 조선강점에 저애로 된다고 여긴 일제는 1907년에 조선군대에 대한 해산령을 내렸다. 이에 격분한 태반의 장병들은 총을 놓지 않고 왜놈들과 필사적으로 싸웠다. 원명철의 할아버지도 그때의 반일항전에 아낌없이 피를 흘렸던 이 나라의 병사였다. 그를 통해서 피맺힌 력사의 체험으로 건군의 절박성을 깨닫고있는 우리 인민의 지향을 보는듯 하시였다.

《동무의 할아버지는 참 뜻있는분이시군요.》

《그런데 이튿날 내가 정작 떠나자고 하니까 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처음은 매를 맞은 볼기가 채 아물지 않아서 그러는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게 아니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회중시계를 팔아서 쌀 두말을 구해오시였습니다. 총탁으로 골통을 까부신 왜놈장교한테서 떼냈다는 회중시계였습니다. 무척 소중히 여겼어요. 소학교 3학년에서 학비때문에 퇴학을 당했을 때 나는 울면서 할아버지에게 그 시계를 팔자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건기침을 톺으며 돌아앉아버렸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 시계를 팔아서 나에게 쌀을 지워보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나무밑둥에 기대여세운 큼직한 쌀자루를 보시였다. 낯모를 그 로인은 청춘시절에 목숨을 걸고 획득한 전리품을 오늘의 건군사업에 바친셈이다.

《저… 원주 누님!》

부름소리에 머리를 돌리시였다. 원명철의 어줍은 눈길이 간절한 빛을 담고있다. 잠시 바재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쌀을 식당에 보내도록 원주동무에게 말해주십시오. 할아버지를 봐서라도 내가 도로 지고갈수는 없습니다. 나는 여기서 개원식구경이나 하고는 돌아가겠습니다.》

《원동무, 그럴수 없어요. 가지 마세요. 내가 책임일군들에게 동무의 사정을 말해보겠어요. 최용진동지도 동무를 리해하고 다시 공부를 하도록 할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정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개원식이 끝난 다음에도 여기서 절대로 딴데 가지 마세요. 동무를 다시 찾아오겠어요.》

《고맙습니다.》

병영쪽에서 집합나팔소리가 울려왔다.

 

×

 

학생들의 대오가 운동장에 들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림시로 꾸린 주석단뒤에 서계시였다. 주석단에 오르시는 장군님을 보위할 초병으로 자신의 위치를 거기에 정하시였다. 외투주머니에는 장탄을 한 권총이 있었다. 오늘 장군님과 동행을 하신것은 개원식구경을 하고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보다는 행사시에 그이의 신변안전을 보장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어데서나 테로분자들과 암해분자들이 준동했다. 물론 학원에서도 필요한 대책을 취하고있었다. 주석단주변에 여러명의 호위병들이 배치되였다. 하지만 그들을 믿을수 없어서가 아니였다. 항일의 그날부터 장군님의 안녕을 자신의 제일사명으로 여겨오신 굳어진 신념이 호위병의 위치로 떠밀었다.

《정숙동무!》

주변을 돌아보시는데 누군가가 다급히 찾았다. 그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최용진이 숨가쁘게 달려오더니 무작정 팔굽을 잡고 이끌었다.

《자, 빨리 갑시다.》

《어델 간다는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리둥절하시였다.

《어덴 어데겠소. 주석단이지. 우리가 장군님을 맞이할 때 나는 정숙동무도 뒤따라 휴계실로 들어오는줄로 알았댔구만. 그사이 어데 가있었습니까?》

장군님과 간부동지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에 제가 어떻게 끼우겠어요.》

《이제 곧 개원식이 시작됩니다. 주석단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최용진은 절대로 사양할수 없다는듯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어떻게 주석단에 오른다고 그래요.》

《자, 이런… 정숙동무가 주석단에 올라야 개원식의 뜻이 더 깊어진단 말입니다. 김책동지도 기다리고있습니다. 자, 어서.》

김정숙동지께서는 하는수없이 따라서시였다.

주석단에는 장군님과 녀사를 복판에 모시고 김책, 최용진, 조정철을 비롯한 학원의 책임일군들과 도당위원장들이 량옆에 갈라섰다.

개원식이 시작되자 김일성동지께서 축하연설을 하시였다.

《동무들!

오늘 우리는 전체 조선인민이 해방된 조국에 자유로운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거족적인 투쟁을 벌리고있는 환경속에서 앞으로 새 조국건설과 우리 인민의 혁명적인 정규무력건설에 이바지할 첫 중앙간부양성기관인 평양학원의 개원식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이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을 무릅쓰고 학원의 창립을 준비하는 사업에 자기의 모든 힘과 성의있는 노력을 다한 평양학원의 여러 간부들과 학생들에게 열렬한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장군님을 우러러 주석단성원들은 박수를 치고 운동장에 정렬한 학생들은 만세의 함성을 터치였다. 학원의 창립을 발기하시고 그 실현을 위해 만난을 헤쳐오신 장군님이시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받으셔야 할 축하와 감사를 간부들과 학생들에게 보내시였다. 뒤바뀐 인사에 격동된 대오의 환호성이 점점 높아지며 산천을 진감했다. 그것은 그대로 장군님께 드리는 축하와 감사의 폭발이였다. 장군님께서도 그에 화답하여 박수를 치시였다. 축하와 감사의 열풍속에 한순간이 지났다. 정숙이 깃들자 장군님께서는 퍼그나 쉬운 말로 정규군창설의 필요성과 우리 혁명의 성격을 차근하게 설명하시고 정치학습과 군사훈련에서 나서는 과업들을 밝혀주시였다.

《평양학원 학생들에 대한 당과 인민의 기대는 매우 큽니다.

나는 동무들이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중대한 책임을 깊이 자각하고 새 조선을 건설하는 사업에 적극 이바지하는 충실한 군사정치간부가 될것을 바랍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연설을 마치시자 또다시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뒤이어 학생들의 분렬행진이 시작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세차게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굳세게 받들어든 총과 땅을 구르며 힘있게 내딛는 발걸음은 하나와 같았다. 이른봄의 찬 대기속으로 행진대오가 내뿜는 더운 입김이 안개발처럼 피여올랐다. 종대들앞에는 항일빨찌산시절의 옛 전우들이 서있다. 주석단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그들의 얼굴은 전에없이 빛나고있다. 학생들속에서 강현수를 비롯한 만경대와 칠골의 낯익은 청년들이 보이였다. 하나같이 미더운 모습들이다. 오늘은 비록 보병총을 든 수백명이 나아가고있다. 그러나 그 대오는 머지않은 래일에 현대적인 군사기술장비를 갖춘 수천수만의 대오로 자랄것이다.

녀사의 마음속에는 그날의 강철의 대오가 흐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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