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9

 

(2)

 

준비를 끝내고 얼마쯤 기다렸을 때 김정숙동지께서 오시였다. 조선치마저고리와 고무신, 너무도 소박하고 평범하신 차림에 놀랐다. 진하게 화장을 하고 값진 옷을 골라입은 리다는 심한 대조를 느끼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집엘 다 오셨습니까?》

반겨 그이를 방안에 모신 한동훈이 물었다.

《한동무와 같이 유능하고 용감한 조선사람 땅크병군관이 있다는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얘기를 듣고 진작 한번 만나보자고 했는데 틈을 낼수 없었습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한동무는 몇살때 조국을 떠났습니까?》

《여섯살때였습니다.》

《나도 어린 나이때 조국을 떠났습니다. 알고보니 우리는 다같이 너무 어린시절에 이역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군요.》

한동훈은 조심스럽던 마음이 순간에 풀리는것을 의식했다.

그이께서 깨우쳐주시는 어린시절의 공통된 처지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였다. 물론 조국을 떠난 시기는 다를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감하신 표정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릴 때 떠났지만 고향에 대한 표상은 얼마간 남아있겠군요.》

《다른것은 모르겠는데 우리 집의 뒤울안에 있던 밤나무가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발바닥이 가시에 찔려서 피가 흐르는줄 모르고 밤알을 줏던 일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고향을 떠나서는 그처럼 알이 크고 맛이 좋은 밤을 별로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한동훈은 저도 모르게 쓸쓸한 추억에 잠겨버렸다.

《그런줄 알았으면 거리를 지나오면서 구운 밤을 좀 사오는걸 그랬습니다.》

《아니, 우리 집에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가을철부터 늘 구운 밤을 사다 먹습니다. 그것도 정주토산품으로 말입니다.》

한동훈은 안해를 돌아보며 일렀다.

《리다, 어서 밤을 가져오우.》

《아이참, 껍질도 벗기기 힘든 밤을 어떻게 내놓으라고 그래요. 쵸콜레트와 커피를 가져오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웃음어린 시선을 리다에게 보내셨다.

《나도 한동무처럼 쵸콜레트나 커피보다 조선밤이 더 좋습니다.》

리다가 쟁반에 구운 밤을 가져왔다.

한동훈은 크고 탐스러운것을 골라서 김정숙동지께 드리고 자기도 한알 집어들었다. 알맞추 구워진 밤알의 노란 속살은 참으로 별맛이였다. 몇알 달게 잡수신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일전에 차영환동무가 찾아왔댔지요?》

《그렇습니다. 그가 나더러 평양학원 교원을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한동훈은 그날에 차영환과 벌렸던 격렬한 론쟁이 되살아났다.

《실은 오늘 나도 그 문제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한동무와 같은 전문군사인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평양학원의 사명과 실태를 설명하시고 이렇게 계속하시였다.

《새로 꾸려지는 군사학원이고 지금 나라사정도 어렵다보니 교직원들의 생활조건도 어렵습니다. 한동무에게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쏘련군대의 생활조건과는 대비할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한동무가 고생을 무릅쓰고 자기 조국의 건군위업에 나서주리라고 믿고싶습니다.》

《저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렇게 믿으십니까?》

《차영환동무에게서 동무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무야 아버지로부터 열렬한 애국의 피를 이어받은 조선청년이 아닙니까.》

《뜻밖입니다.》

한동훈은 다소 놀란 기색이였다.

《무엇이 뜻밖인가요?》

《민족주의리념밑에 의병투쟁을 한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값높이 사주시니 하는 말입니다.》

한동훈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대치되는 리념으로 리해하고있었다. 어려서부터 그가 받은 교육이 그러한 견해를 깊이 심어주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과거를 누구한테도 자랑스레 이야기하여본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완고한 민족의식때문에 억울하게 박해를 받은 일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녀사로부터 아버지가 열렬한 애국자로 불리우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내심을 꿰뚫어보시고 친절히 깨우치시였다.

《기성리론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민족주의를 몰밀어 반동사상으로 보지만 우리는 견해를 달리합니다.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부터 자기 민족의 리익과 요구를 첫자리에 놓고 싸우셨습니다. 자기 민족을 떠난 혁명이란 있을수 없고 사회주의혁명도 철저히 민족국가단위로 진행된다고 보시였습니다. 민족은 하나의 피줄로 이어진 가장 폭넓은 사회적집단입니다. 민족이 있고야 계급도 있고 민족을 위한 사랑속에 계급을 위한 사랑도 있습니다. 한동무, 보세요.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언어가 통하고 정이 통합니다. 리념이나 지향에 앞서 한피줄이 야기하는 감정이 흐른단 말입니다. 생활은 이렇습니다. 동무의 아버지는 비록 공산주의자가 아니였다 하더라도 나라를 찾자고 왜놈들과 싸운 그 애국애족의 마음은 누구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훌륭한 아버지를 해방된 조국에서 떳떳이 자랑하십시오.》

《저는 난생 처음 녀사님으로부터 우리 아버지에 대한 값높은 평가의 말씀을 듣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곁에 계신다면…》

한동훈은 충격이 너무도 커서 말끝을 삼켰다. 멀리 이역땅 지하에서도 아버지가 녀사의 말씀을 듣는다면 얼마나 감격하랴 하는 생각으로 목이 메였다.

《그런데 한동무는 평양학원 교원이 되기를 거절했다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리며 한동훈의 낯색을 살피시였다.

한동훈은 흥분된 감정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거절했습니다. 평양학원의 생활조건이 어렵기때문이 아니였습니다. 조국의 인민들이 이겨가는 어려움을 저라고 이겨내지 못하겠습니까. 저로서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 정규군창설이 필요없다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강력한 쏘련군대가 나라의 안전을 지켜주고있는데 무엇때문에 정규군창설을 서두르겠습니까?》

《두말할것없이 쏘련은 우리의 형제국가입니다. 그러나 쏘련군대에 나라의 안전을 떠맡기는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원쑤들이 덤벼들 때 쏘련군대는 피흘려 싸우게 하고 주인인 우리가 구경만 한다면 그처럼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라의 방위를 외세에 맡긴다는것은 예속을 의미하고 망국을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 리조의 망국사가 우리 민족의 모든 성원들에게 그것을 피의 교훈으로 새겨주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동무의 아버지는 그 교훈을 두고 가슴을 치며 화승대를 잡았을것입니다.

어느 시기에나 국사중의 국사가 군사라는것은 력사의 진리이고 정치학의 상식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디까지나 온화하고 친근하신 표정이였다. 하지만 말씀의 마디마디에는 절절한 여운이 흘렀다.

한동훈은 심각한 얼굴로 침묵했다. 그로서는 처음 듣는 론리였다. 같은 문제를 놓고 론담이 벌어지지만 차영환과 마주앉았을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자기의 주장을 폈을 때 차영환은 론박할 론리를 찾지 못하교 우격을 앞세웠다. 그래서 거친 말마디들이 오가는 다툼으로 번져졌다. 하지만 녀사의 사리정연한 말씀앞에서는 스스로 머리가 숙어졌다. 다시 이어지는 그이의 말씀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동무에게 그 무엇을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쏘련군 군관인 동무에게 그럴수도 없지요. 그러나 동족의 청년인 동무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감정에 호소하고싶습니다. 동무가 가지고있는 전문군사기술지식을 우리의 건군위업에 바친다면 조국과 민족앞에 자랑스러운 일로 될것입니다.》

한동훈은 응대가 없었다. 일순 침묵에 잠겼던 그가 서서히 눈을 들었다.

《녀사님, 그런데 지금 당장은 결심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좀 더 두고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럴수 있었다. 그로서는 운명적인 선택을 일순간에 쉽게 결심할수가 없을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가 우리의 건군위업에 나서주리라고 믿고싶으시였다. 직접 만나보시니 한동훈에게는 민족적 감정과 애국심이 없지 않았다.

며칠후에 그의 집을 다시 찾으신 녀사께서는 보다 절절히 호소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심중한 표정으로 말없이 듣고있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장군님께서도 좋은 동무를 찾았다고 기뻐하시면서 커다란 기대를 두고계십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요?》

한동훈은 급히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동훈은 숨을 몰아쉬더니 눈에 광채가 어리였다.

《녀사님, 평양학원으로 가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굳게 잡아주시였다. 여적 곁에서 말없이 듣고있던 리다가 참견을 했다.

《그곳에 가면 인차 가정생활을 할수 있습니까?》

그에게는 그것이 제일 큰 관심사였다. 오가는 대화의 심각한 의미를 리해하지 못했다.

《학원에 교직원사택은 마련되여있습니다. 앞으로 리다동무네 가정생활을 힘이 닿는껏 도와주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리다에게 눈웃음을 보내시고 한동훈에게 머리를 돌리시였다. 《한동훈동무, 고맙습니다. 나는 지금 동무의 노력으로 우리 군인들이 현대적인 군사장비와 무기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합니다. 역시 동무들은 조선사람들입니다.》

한동훈은 말씀의 마지막구절이 세차게 흉벽을 두드리는듯 한 느낌을 받았다. 녀사를 우러러 눈을 슴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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