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9

 

(1)

 

일요일 아침이였다.

한동훈부부는 빵과 우유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워낙 그들의 아침식사는 간소했다. 그런데 안해인 리다가 푸지게 늦잠을 자다보니 오늘 아침에는 국도 끓이지 못했다.

즐거운 휴식의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낼것인가?

식사를 끝낸 젊은 부부는 다정히 의논했다. 저녁에 쏘련군사령부 회관에서 춤을 추자는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낮시간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안해는 봄볕이 찾아드는 시내의 자연풍치를 구경하자고 했다. 오전에는 대동강반을 거닐고 오후에는 모란봉에 올라가보자고 했다. 그가 살던 씨비리보다 어방없이 봄을 앞당겨오는 평양의 자연이 그를 유혹했다. 그러나 남편은 낮동안 집에 붙박혀서 책을 읽어야 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하필 오늘 읽어야 한다는거예요?》

리다는 어지간히 토라진 기색으로 물었다. 여태껏 휴식일의 일과는 리다의 주견대로 하여왔다. 리다는 토요일 오후부터 품을 놓고 다가올 휴식일을 가장 즐겁게 보낼수 있는 일과를 짜놓았다. 한동훈은 거기에 기꺼이 응하군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례외적으로 안해의 의견을 물리치고 책을 읽겠다는 고집이다.

《어제 다행 리순신전을 손에 넣을수 있었소. 어릴 때부터 한번 보자던 책이요.》

한동훈은 어깨에 얹은 리다의 손을 더듬어잡고 리해를 바라듯 싱긋이 웃었다.

《리순신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임진왜란때 왜적을 물리친 장군이요. 이를테면 로씨야의 쑤워로브와 같은 우리 나라의 애국명장이란 말이요.》

《조선에도 그런 명장들이 있었단 말이예요?》

《있어도 많았소.》

한동훈은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안해의 무식을 탓하지 않았다. 생활의 경위로 보아 그럴수밖에 없는 리다였다. 그는 쏘련땅에서 나서자랐다. 리조 말기에 살길을 찾아 로씨야로 흘러간 그의 부모들은 농사밖에 지울줄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였다. 우리 글조차 몰랐던 그들은 커가는 자식들에게 조국의 력사를 가르쳐줄만 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뜻도 있고 식자도 없지 않았던 한동훈의 아버지는 아들애가 철이 들기 시작하자 을지문덕, 강감찬, 리순신을 비롯한 애국명장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었다. 어린시절에 들었던 그 이야기들은 한동훈에게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멀리 흘러간 옛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리순신전》을 읽는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그 어떤 유혹도 그것을 대신할수 없었다.

리다는 남편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쳐서 책상우에 놓인 책을 집어들었다. 참지에 국한문 혼용으로 인쇄를 한 고서에서는 곰팡내가 연하게 풍기였다. 호화판으로 양장을 한 책들만 보아오던 그는 놀란 기색이였다. 몇장 번져보았으나 읽을수 없었다. 한자는 말할것도 없고 아직 우리 글도 채 깨치지 못한 그였다.

《어서 이리 주오. 내 읽은 다음에 당신에게 내용을 말해주겠소.…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산천구경을 하오.》

《나 혼자는 안 가겠어요.》

리다는 책을 책상우에 도로 놓고 길게 한숨을 쉬였다. 남편의 팔을 끼고 걷는 멋이 없다면 산천구경에 무슨 흥취가 나랴. 오히려 집안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것이 더 즐거울수 있었다.

리다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류다른것이였다. 안해로서만 아니라 어머니와 누나의 사랑까지 겹친 지극하고 열렬한것이였다.

그들이 처음 알게 된것은 한동훈이 치따의 어느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그때 리다는 그 학교의 3학년에 다니였다. 한동훈보다 두학년 우였던만큼 나이도 두살 우였다. 조선족 학생이 몇명 안되는 학교여서 리다의 눈에 한동훈은 쉽게 뜨이였다. 고모의 집에 덧얹혀 공부를 하던 한동훈은 생활이 궁했다. 리다는 그를 동정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사춘기를 맞이한 리다는 감상적인 기분이 짙었다. 한동훈이 일찌기 어머니를 여의고 누나도 없이 홀아비의 손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머금었다. 그의 어머니와 누나를 대신해주고싶었다. 부모들이 주는 학비와 용돈을 여투어서 한동훈에게 학용품도 사주고 먹을것도 사주었다. 두살의 나이가 성장의 현저한 차이를 가져오던 시기여서 전혀 색다른 감정은 없었다. 한동훈은 아직 이성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였다. 리다는 학창의 전기간에 동생처럼 그를 보살펴주고 도와주었다. 리다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재학중이던 한동훈을 여전히 돌보아주었다. 한동훈은 최우수생으로 중학을 졸업했으나 상급학교로 가지 못했다. 치따를 떠나서 아버지의 유해가 묻혀있고 동포들이 사는 우즈베끼스딴으로 갔다. 그때의 리별은 눈물겨운것이였다. 이 세상 어디에 있던지 서로 편지를 하자고 굳게 약속했다. 그들은 그 약속을 지켰다. 군대에 초모되여 땅크군관학교를 거친 후 쏘도전쟁의 포화속에서도 한동훈은 리다에게 편지를 썼다. 그때까지도 자기들의 장래가 하나로 결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잊지 못할 인연이 그대로 이어지고있었다. 쏘도전쟁이 끝난지 한달만이였다. 한동훈은 휴가를 받고 리다를 찾아갔다. 부모형제가 없는 그에게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리다였다. 치따역에 마중을 나간 리다는 한동훈을 알아보는 순간 굳어져버렸다. 중학시절의 애숭이 쎄료자가 아니라 름름한 쏘련군 소좌가 자기앞에 나타났던것이다. 키도 자기보다 훨씬 더 컸다. 가슴에는 여러개의 훈장이 달렸다. 곱살하던 소년이 처녀의 가슴을 뒤흔들만큼 미모의 청년으로 성장했다.

《리다!》

한동훈이 먼저 소리쳐 부르며 다가왔다. 반가움과 기쁨이 넘쳤다.

《쎄료자!》

마주 달려갔다. 하지만 서로 손을 맞잡고 마주보며 눈물속에 웃었을뿐이다. 순결하던 과거의 관계가 어느쪽이나 지나친 감정의 폭발을 억제했던것이다.

한동훈은 리다의 집에서 10여일간의 휴가를 보냈다. 그들은 매일 저녁 공원의 록음속을 거닐었다. 어깨를 붙이고 거니는 과정에 이성으로서 상대의 체취와 체온을 느꼈다. 마침내 달빛이 슴새여 흐르는 봇나무밑에서 포옹을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누가 먼저 용기를 내여 주저하던 한계점을 넘어섰는지는 알수 없다. 하나의 맥박으로 고동치던 두 청춘의 심장이 동시에 떠밀었을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했다. 하지만 황홀하던 신혼생활은 사흘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휴가를 끝낸 한동훈은 부대로 돌아가야 했다. 그가 속한 땅크사단이 원동으로 이동했다. 땅크를 실은 렬차들이 치따역을 지났지만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대일작전을 앞둔 은밀한 이동이였다. 한동훈이 평양에 온 후에야 리다와 다시 만나 살림을 폈다. 이를테면 비로소 안정된 신혼생활이 흐른다고 할수 있었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 리다에게는 가정이 생활의 전부였다. 충족을 모르는 애무의 욕망으로 남편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고싶지 않았다. 부대에 출근을 한 남편을 기다리는 낮동안은 지루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런데 휴식일의 오늘 혼자서 산천구경을 가라고 하니 야속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책에만 정신을 파는 남편을 곱지 않게 흘겨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후에는 무료함을 이기려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시금 남편을 쳐다보았다.

책장을 겨눈 시선에 흐르는 사색적인 정기, 부드럽게 선을 그은 볼편에 떠오른 홍조, 성큼하면서도 억세여보이는 목과 정녕 의지하고싶으리만큼 실팍한 어깨… 리다는 불쑥 치미는 충동에 떠밀리우며 벌떡 일어나서 남편의 목을 담쑥 껴안았다.

《이건 무슨 짓이요?》

한동훈은 가볍게 놀라며 머리를 뒤로 돌렸다.

《그 책이 그렇게 재미나요?》

《재미나오. 우리 나라에 리순신과 같은 명장이 있었다는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요.》

《소리내여 읽어요. 나도 듣게.》

리다는 남편의 목에서 팔을 풀었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것이 아니였다. 남편의 정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감정에 자신의 감정을 결합시키고싶었다.

《그럼 조용히 앉아 듣소.》

한동훈은 소리내여 《리순신전》을 읽기 시작했다.

전화종이 울렸다. 부대와 련결된 전화였다.

한동훈은 긴장했다. 휴식일에 부대에서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오랜 군관의 예감으로 비상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조심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쎄르게인가?》

귀에 익은 랴쉔꼬사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동지, 그렇습니다.》

《마침 집에 있었구만. 이제 동무네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갈거요.》

명령이나 지시를 줄 때와는 달리 흥겨워하는 어조였다.

한동훈은 호기심을 느끼며 반문했다.

《그가 누굽니까?》

김일성장군의 부인이신 김정숙동지요. 내 이미 동무에게 말한바가 있지만 조선빨찌산의 녀장군이시오.》

《그런데 무슨 일로?…》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동무가 오늘 집에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전화를 걸어왔소.… 아무튼 동무로서는 뜻깊은 일이요.》

랴쉔꼬는 전화를 끊었다.

한동훈은 흥분했다. 김정숙동지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바가 있었다. 저택을 방문했던 쏘련군사령부 장령들과 랴쉔꼬는 그이를 두고 경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차영환에게서도 그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시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한번 만나뵈옵고싶던 간절한 숙원이 풀렸다.

《오늘 집에 있기를 정말 잘했소.》

한동훈은 가슴을 설레이며 군복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는 방안을 정리했다. 리다는 경대에 마주앉아 화장을 했다.

 

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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