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6

 

최용진은 반겨맞아주실 김정숙동지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저택을 찾아가는 걸음이였다.

평양역에 마중을 나갔던 이후로는 김정숙동지를 뵙지 못하였다. 학원일이 바빠서였다. 물론 그사이 두번인가 평양에 올라온 일이 있었지만 어찌된셈인지 그때마다 지체없이 현지로 급히 내려가야 할 사정이 생기군 하였다. 오늘은 마침 볼 일을 마치고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저택이 보이자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저택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경위대장 강상호가 이쪽을 띄여보고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최용진은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정숙동무랑 잘있소?》

《예, 잘있습니다. 언제 올라왔습니까?》

《오늘 아침에 올라왔소. 왔던김에 정숙동무를 만나자고 왔소.》

《잘 왔습니다. 정숙동지는 용진동지가 학원을 꾸리느라고 수고가 많다고 늘 얘기하셨습니다. 평양에 왔다가 그냥 돌아간다면 몹시 섭섭해하실겁니다.》

《수고야 무슨… 새살림을 꾸린 다음에 우리 동무들 뒤치닥거리를 하느라고 정숙동무가 더 수고를 한다더군.》

《이곳 소식을 들었군요.》

강상호는 싱긋이 웃으며 계속했다.

《아닌게아니라 방금전에도 명준이, 도일이, 오송이서껀 그 총각패들이 쓸어들어서 정숙동지의 점심대접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식량사정이 넉넉치 못한데 그렇게 번번이 밥을 축내서야 되나. 그 친구들이 아직 철이 없다니까.》

《어디 그들뿐인줄 압니까. 집에 지금 군식구도 여럿이지요.

게다가 지방과 남조선에서 장군님을 만나뵈러온 손님들도 대체로 집에서 숙식을 하지요. 정숙동지의 손에서는 물기가 말라보지 못합니다. 수고도 수고지만 손님들때문에 밥이 모자라서 정숙동지는 종종 끼니를 번지군 하십니다. 곁에서 보기가 참 딱합니다.》

최용진의 낯색이 대뜸 근엄해졌다. 산에서 싸울 때 동지들을 위해 끼니를 번지군 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 해방된 오늘에도 그런 경우가 빈번하다니 가슴이 쓰렸다.

《딱한줄 알면서 동무는 뭘하고있소. 출입자들을 엄격히 제한하지 못하고…》

《전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숙동지의 마음이야 용진동지도 잘알지 않습니까. 그리구 당조직위원회나 행정10국에 아직 손님들을 위한 숙소가 없다보니…》

《아무튼 곁에 있는 동무들이 수고를 덜어드리도록 해야겠소!》

최용진 특유의 엄한 눈빛에 부딪치자 강상호는 부지중 차렷자세를 취했다.

《알았습니다.》

최용진은 마당에 들어섰다.

처음 찾아오는 저택이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담한 벽돌집을 둘러보았다. 불현듯 밀림속 사령부귀틀집이 련상되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저택의 지붕우에도 사령부에 나붓기던 붉은 기폭이 그대로 나붓기는듯이 생각되였다. 저택의 마당에 들어서니 망치질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울타리를 수리하는 사람의 뒤모습이 보이였다. 저게 김홍구가 아닌가. 장군님을 모시고 한 숙소에서 지낼 때 보았던 홍구가 분명했다. 그가 저택에까지 따라왔단 말인가?

《용진동지!》

부름소리가 들리였다. 무척도 귀에 익은 친근한 목소리였다. 불시로 가슴이 설레이는것을 느끼며 휙 돌아섰다.

현관을 나서신 김정숙동지께서 다가오시였다. 강상호가 보초소에서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정숙동무, 잘 있었습니까?》

마주향해 급히 걸음을 옮겼다.

《예, 잘 있어요. 그런데 성옥동무는 지울리에 내려가서 수고가 많다더군요.》

김정숙동지와 함께 청진에서 평양으로 올라온 김성옥은 그날 저녁으로 남편이 있는 지울리로 내려갔다.

《집살림이나 하는 그 사람이 뭘 수고하는게 있겠습니까.》

최용진은 시쁜 표정으로 시뭇이 웃었다.

《그곳에 내려가자 학원 지휘관가족들의 당사업과 녀맹사업을 책임졌다더군요.》

《밥먹고 그만 한 일도 안하겠습니까. 헌데 꼴을 보니 그쯤한 일도 제대로 못하는것 같습니다. 정숙동무도 아다싶이 그 사람이 워낙 좀 모자라지 않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안해에 대한 불만기를 내비치는 최용진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으시였다.

《용진동진 성옥이앞에서는 꼼짝 못하면서 뒤소리는 곧잘 하는군요.》

참말로 그랬었다. 사내다운 과단성과 결패가 남다른 최용진이지만 안해앞에서는 그 어느 남편보다도 공손하다고 할수 있었다. 녀자치고는 성옥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자기의 주장이 뚜렷하고 한번 결심을 하면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북만의 어느 농촌에서 함께 자랐다. 청춘기를 맞이하면서 서로 사랑했다. 공통된 대찬 성미가 두 청춘의 가슴에 련모의 정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첫사랑이 그러하듯이 그 무슨 고백이나 언약은 없었다. 서로의 심장이 그것을 확인하며 설레였을뿐이다. 그 순진한 사랑이 망울도 터치기 전에 가슴아픈 리별이 있었다.

형님의 영향으로 일찌기 혁명투쟁에 나서기를 열망하던 최용진은 소문없이 집을 탈가하여 유격대에 입대했다. 떠날 때 성옥을 만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처녀의 눈물겨운 애원이 자기의 발목을 잡을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성옥은 종적없이 사라진 애인을 두고 속을 태웠다. 끝없이 원망하고 저주하면서도 어찌된셈인지 그에 대한 그리움이 못 견디게 사무쳐왔다. 그렇게 두해가 흘렀다. 벌써 유격대중대장이 된 최용진이 잘 싸우고있다는 소식이 뜻밖에 날아왔다. 성옥은 부모와 친척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를 찾아 떠났다.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싸우는 최용진의 중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로상에서 막심한 고생을 했다. 다른 녀자라면 도중에서 돌아서버렸을것이다. 그러나 성옥은 끝내 찾아냈다. 최용진은 처음 성옥을 만났을 때 그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중병이라도 앓고난듯 수척한 모습이였다. 그 모습에서 그가 겪은 고생의 크기를 헤아렸다. 목이 메여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얼없이 마주보기만 하였다.

《왜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도망치듯 하였나요?》

성옥이가 먼저 쌓였던 원한과 분노를 터치였다. 보통이면 이런 때 눈물을 앞세울수 있었으나 성옥의 눈에서는 서리찬 광채가 흘렀다. 상대의 대답여하에 따라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을상싶었다. 극적인 상봉의 이 순간에 눈물을 보인것은 용진이였다. 그는 어떤 경우든지 눈물을 경멸했다. 아녀자들이라면 몰라도 사나이가 울수 있다는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때만은 줄지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수 없었다.

《성옥이, 용서하오. 동무의 각오와 진정을 미처 몰랐댔소. 내가 덜된 놈이였소.》

용진은 얼마후에야 입을 열었다. 성옥의 울분을 풀어줄수만 있다면 그의 손에 뺨이라도 맞고싶었다. 이날에 느끼던 죄스러운 감정이 먼 후날까지 용진의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안해앞에서 누구보다 공손한 남편으로 되였다.

알고보면 그들부부가 서로 속에 없는 비난을 하는것도 류다른 련애생활의 타성이라고 할수 있었다. 김성옥은 유격대에 입대하여 최용진과 한부대에서 싸웠다. 그들은 저들의 관계를 남들앞에서 내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로출되는 사랑이 부대의 군기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출수 없는것이 사랑의 감정과 터지는 기침이라고 하지만 의지가 굳센 그들은 열렬한 사랑을 가슴속 깊이에 묻어두었다. 서로 만났을 때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덤덤히 대하였다. 헤여져서는 동무들이 들으라는듯이 상대를 두고 흔히 이렇게 말했다.

《용진동무처럼 뚝박쇠 총각한테는 어느 처녀도 시집을 안 갈거야. 나는 그 동무를 보기만 해도 정이 뚝 떨어질것 같애.》

《성옥동무야 어디 녀자요? 사내번지개지. 무슨 처녀가 그렇게 드살이 센지 모르겠소.》

간혹 상대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은 누구보다 날카롭게 비판했다.

원동훈련기지에서 그들이 결혼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처음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성옥이와 가까이 지내던 녀동무들조차 깜짝 놀랐다.

성옥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가슴에 묻어둔다는건 정말 참기 어려운 일이였어. 글쎄 내색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속에서 불이 일질 않겠니. 용진동무에게 험담도 하고 비판도 하면 한결 속이 후련했어.》

비로소 내심을 헤쳐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여러해를 두고 숨겨두었던 사랑의 괴로움이 쓸쓸한 미소로 비껴흘렀다.

다정한 속삭임과 뜨거운 포옹이 아니라 속에 없는 비난과 상대의 잘못을 두고 아픈 심정으로 터치는 비판이 그들의 사랑이였다. 그러한 생활의 과거가 굳어진 습관처럼 오늘까지 이어지고있다. 지금 최용진이 안해를 두고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하는것은 그때문이였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들처럼 다정하고 살틀한 부부는 흔치 않을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그리며 최용진을 집안으로 안내하시였다.

《점심을 잡수셨어요?》

《어느때라고 아직 점심도 못 먹고 다니겠습니까. 거 듣자니 총각패들이 오늘도 이 집에 와서 밥을 축내고 갔다더군요.》

《강상호동무가 공연한 말을 했군요.… 나는 평양에 올라온 용진동지가 우리 집이 아니라 딴데서 점심식사를 하였다니 섭섭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응접실에서 최용진과 마주앉으시였다.

최용진은 검소한 방안을 둘러보더니 피끗 창밖에 시선을 주며 물었다.

《참, 마당에서 홍구가 어물거리던데?…》

《홍구야 우리 집 식구나 같지요.》

최용진은 놀라듯 짙은 눈섭을 치켜올렸다.

《아니, 손님이 그칠새 없고 군식구가 많은 이 집에 그 총각까지 덧얹혀살다니내 이번 걸음에 그를 학원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용진동지, 홍구는 장군님곁을 떠나서는 못살겠다는 동무예요.

그러니 이왕이면 제곁에 두고 글도 배워주고 세상보는 눈도 틔워주는게 좋지 않겠어요. 후에 평양학원에 가도 늦지 않을거예요.》

《지금 학원에 온 학생들중에도 문맹자가 더러 있습니다. 가뜩이나 손에 물기가 마를새 없는 정숙동무에게 홍구까지 부담을 끼쳐서야 되겠습니까. 눈치가 무디거던. 제 먼저 페를 끼치지 않을 생각을 해야지. 이번에 무조건 내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최용진은 결연한 낯빛이였다. 만일 홍구가 곁에 있다면 호되게 꾸짖으며 학원으로 가자고 다그칠상싶었다.

《용진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정색하신 표정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원동훈련기지를 떠날 때 장군님을 따라서 조선으로 오겠다던 련합동동무를 용진동지가 꾸짖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 일을 두고 장군님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셨나요. 홍구동무는 이러나저러나 평양에 오신 장군님께서 처음으로 깊은 인연을 가지신 청년입니다. 만일 용진동지가 우격으로 홍구동무를 학원에 데려간다면 장군님의 심정은 어떠하시겠어요?》

최용진은 눈시울을 내리깔며 더는 말이 없었다. 저릿한 충격이 가슴에 마쳐왔다. 사람은 운명의 갈림길에서조차 론리적인 사고보다 인정의 견인력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다. 련합동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만이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는 다른 대원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쏘일강화조약의 체결로 승리의 신심을 잃었던 대원들도 장군님과 얽혀진 인정을 저버릴수가 없어서 산을 내리지 않았다. 장군님의 인정세계는 그처럼 비상한 견인력과 포옹력을 가지고있다. 련합동의 경우를 미루어보면 장군님의 슬하를 떠나서는 못살것만같이 생각하는 홍구의 심정도 리해가 된다. 김정숙동지의 깨우치심이 아니였다면 홍구의 일로 하여 두번 다시 장군님의 심중에 큰 아픔을 안겨드릴번 하였다. 성급하고 과격한 성미때문에… 그 성미를 스스로 탓하며 지워버리듯 넙적한 손으로 얼굴을 힘주어 쓸어내렸다.

《그동안 평양학원 창립사업에 수고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애로와 난관이 많을겁니다. 그곳 형편이 지금 어떻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밝은 표정을 되살리며 화제를 돌리시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걸리지 않는게 없지요.》

최용진은 구체적인 사정을 펼쳐보이더니 더욱 난감한 기색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어려운 물질적조건은 극복하면서 점차 갖추어도 되지만 학원창립을 앞두고 제일 급한것은 교원문제입니다. 정치과목이나 일반군사과목 교원도 부족하지만 전문병종교원은 더구나 부족합니다. 적어도 그 분야의 군사학교를 나온 사람이라야 학생들을 가르치겠는데 그런 군사인재는 찾기가 힘들단 말입니다.》

최용진은 한숨을 토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한숨소리가 자극적으로 가슴에 마쳐오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어떤 난관앞에서도 한숨을 모르던 최용진이다.

완강한 의지와 희생적인 헌신으로도 해결할수 없는것이 인재일것이다. 여북 속이 상하면 저러랴 싶으셨다.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평양학원졸업생들을 밑천으로 여러 군종과 병종의 군관학교를 내올데 대한 구상을 품고계신다. 보병만으로는 현대적인 정규군을 꾸릴수가 없다. 공군과 해군도 있어야 하고 륙군에서도 땅크, 포, 통신, 공병 등 여러 분야의 전문병종이 있어야 한다.

《나도 노력해보겠어요. 용진동지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전문병종교원문제가 정말 절박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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