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2

 

김정숙동지께서는 문가에 귀를 강구고 부엌바닥에 앉아계시였다. 벌써 몇번째나 아궁이안에 나무개비들을 다시 쌓으셨는지 모른다. 장군님께서 오시면 새집들이 첫불을 손수 지피도록 하실 생각이였다.

종이를 불쏘시개로 뭉그려놓고 그우에 깨끗이 마른 장작개비들을 가로세로 차곡차곡 쌓아놓으시였다. 소담한 그 더미에 성냥을 그어대기만 하면 금시 빨간 불길이 피여오를것이다,

《아버진 왜 안오시나?》

연신 물으며 문밖을 바라보던 아드님은 무릎에 기대여 어느새 살포시 잠에 드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을 안고 방안으로 들어와 잠자리를 펴주시였다. 전등불이 밝게 흐르는 방안에는 고즈넉한 고요가 깃들었다.

강상호의 말에 의하면 장군님께서 오늘 저녁에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오시지 않았다. 이제나저제나… 마음은 줄곧 밖으로 쏠리고있었다. 여전히 인기척은 없었다. 무심한 바람소리만이 들릴뿐이다.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할수록 장군님께서 얼마나 분망하시면 그러시랴 하는 생각이 깊어지셨다.

지금 장군님의 어깨우에는 여느때없이 무거운 력사의 짐이 실리고있다. 외세에 의한 국토분렬로 정치적혼란이 벌어지고있다. 어데서나 민주세력과 반동들과의 투쟁이 격렬해지고있다. 경제사정은 더 어렵다. 일제가 패망하며 마사버린 공장들은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있다. 곳곳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쌀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장군님께서 불철주야로 고심하시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애타게 기다리는 자신의 마음이 죄스럽게 여겨지셨다. 움쭉 일어서서 장군님께서 드실 저녁밥이 식지 않았는가를 알아보시였다. 풍로우에 놓인 가마에 손을 대여보니 따끈한 열기가 느껴지셨다.

이윽하여 어데선가 자동차발동소리가 어슴푸레 들려왔다. 발동소리는 시각마다 점점 크게 울리였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황황히 현관을 나서시였다. 집앞에 이른 승용차가 멈춰섰다.

장군님께서 차문을 열고 내리시였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녀사께서는 머리숙여 인사를 올리시였다. 넘치는 반가움에 목소리가 잠기시였다. 헤여져 넉달가까운 기간이 아득히 길었던것 같기도 하였고 불과 며칠밖에 안되는 짧은 나날이였던것 같기도 하였다.

《어제 저녁부터 무척 기다렸을텐데 늦어 돌아와서 미안하오.》

장군님께서는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정겨운 시선이 스미듯 가슴에 안겨왔다. 녀사께서는 얼른 장군님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어스름속에 륜곽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집을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집이 마음에 드오?》

녀사께서는 대답을 못하시였다. 분에 넘치여서 자신의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으시였다.

《너무 기뻐서 말이 안 나가는 모양이구만. 김책동무한테랑 인사를 잘해야겠소. 새해에 들어가 동무들을 데려다 대접을 합시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분께서는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얘야, 아버지 오셨다!》

아드님의 몸을 흔드시였다.

《둬두오. 잠이 깊이 든것 같은데.》

《저녁은 잡수셨습니까?》

《들었소.》

장군님께서는 잠이 든 아드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였다.

《그사이 정일이가 퍽 큰것 같구만.》

그 순간 아드님께서 깨여나시였다. 눈을 비비더니 벌떡 일어나며 부르셨다.

《아버지!》

장군님께서는 아드님의 볼을 부비시였다. 아드님께서는 그이의 목을 담쑥 껴안으시였다.

《우리 정일이도 이제 이틀만 있으면 한살 더 되겠구나.》

아드님의 성장을 두고 대견스러운 감회에 잠기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아드님을 품에 안고 방들을 돌아보시였다. 뒤따르던 녀사께서는 장군님께서 다 돌아보셨을 때 성냥을 찾아드시였다.

《인젠 새집들이 첫불을 지피셔야 하겠습니다. 오늘 낮에 성국동무랑 여러 동무들이 성냥을 가져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사뭇 의아해하시였다.

《그럼 여적 아궁이에 불을 때지 않았소?》

장군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방안이 춥지 않았소?》

《집을 꾸리던 동무들이 어제 저녁에 방안을 후끈하게 덥혀주어서 춥지 않았습니다.》

《그럼 성냥을 가져온 여러 동무들의 뜻을 따라봅시다.》

장군님께서는 싱긋이 웃으며 아드님을 안으신채 부엌으로 내려가시였다. 한가정의 주인으로 민속적인 풍습에 잠겨보시는것이 즐거우시였다. 부엌바닥에 무릎을 꺾고 앉으신 장군님께서는 정성스레 불쏘시개와 장작을 가려놓은 아궁이안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시더니 녀사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첫불은 동무가 지피오.》

정성스레 가려놓은 불쏘시개와 장작개비를 보시자 녀사께서 거기에 얼마나 마음을 쓰시였는가를 헤아리시였던것이다. 한가정의 주인으로 잠겨보는 민속적인 즐거움을 녀사에게 돌리고싶으셨다.

《아니, 장군님께서 지피십시오.》

녀사께서는 상긋이 웃으며 사양하시였다.

《빨찌산시절에도 작식대의 불을 동무가 지피군 하지 않았소. 어서 성냥을 그어대오.》

장군님께서 감회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잠시 난감해하시던 녀사께서는 장군님께서 또 한번 권고를 하시자 성냥을 받아드시였다. 성냥개비를 그으시는 순간 화끈하게 눈시울이 달아오르는것을 느끼시였다. 불이 당긴 성냥개비를 아궁이에 가져가시는 손이 가볍게 떨리였다.

불쏘시개에 달린 불은 인차 장작개비로 번져갔다. 우릉우릉 타오르는 불길은 부엌바닥을 환히 비치였다.

세분께서는 그 불길을 오래도록 지켜보시였다. 백두의 수림에서 타오르던 빨찌산의 우등불이 오늘의 이 집에 그대로 옮겨진것이나 아닌지…

《산에서 싸울 때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는 더 어려운 투쟁을 하고있소. 사실 오늘 저녁은 좀 일찌기 집에 오자고 했는데 평양학원문제를 놓고 벌리던 토론이 예상밖으로 길어졌소.》

장군님께서는 리해를 바라듯 녀사를 돌아보며 학원의 창립을 준비하게 된 사연을 펼치기 시작하시였다. 밤은 깊었지만 쌓였던 회포를 나누고싶으셨다. 숙영지의 우등불을 련상시켜주는 아궁이안의 불길을 바라보시니 오늘 저녁 협의회에서 정규군건설을 다그쳐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신 심정이 되살아나기도 하셨다.

《내가 평양에 입성한 다음날이였소. 함께 온 동무들과 같이 평양시내를 돌아보는데 왜놈들이 사는 거리에서 놀라운 사실을 보았소. 여라문살 나보이는 어린애가 자기 집에 리조때의 국기를 걸고있었소. 그래서 그 애를 불러다가 너희집에서 왜 저 기발을 거느냐고 물어보았소. 한데 순진한 어린애의 대답이 우리를 격분케 했소.

<조선사람들이 밀려올가봐 아버지가 내게 시켰습니다. 우리 일본은 패전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할수 없어서 저 기발을 걸지만 앞으로는 또다시 일장기를 걸게 될거라고 했어요.> 글쎄 이렇게 대답하는게 아니겠소. 최용진동무는 당장 집주인을 끌어내겠다고 펄펄 뛰였소. 내가 만류했소. 그 왜놈에게 분풀이나 해서 뭘하겠소. 그날 동무들에게 말했소. 보라,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이 북조선까지 먹어보려고 날뛰는데 패망한 일제놈들까지 언젠가는 우리를 다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고 앙심을 품고있다, 군력이 약해서 나라를 잃었던 력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 하루도 지체없이 정규무력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더니 모두들 주먹을 떨며 공감했소.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로선을 이미 제시했지만 조국에 나와보니 건군의 절박성을 더욱 느끼게 되였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규군의 군사정치간부를 키우게 될 평양학원을 내오기로 결심을 하고 그 준비를 다그치고있소. 학원으로 쓸 건물보수를 하면서 책임일군들과 교원들을 일부 선발했소. 원장으로는 김책, 군사교무주임으로는 최용진, 당조직책임자로는 전창철, 공청책임자로는 조정철동무를 임명했소.

그런데 걸린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요. 교원과 교재, 식량과 피복, 교구비품들과 훈련기재… 어느것 하나 해결하기가 쉽지 않소. 건군의 절박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소.》

장군님의 얼굴에 심뇌의 그늘이 비끼시였다.

녀사께서는 장작개비를 아궁이에 더 넣으며 심중한 낯빛으로 듣고계시였다.

《한달전에 고향집에 갔을 때였소. 건군사업에 우리 만경대의 일가부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원주를 학원에 보내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물었소. 그런데 삼촌어머니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소. 원주가 8. 15후 평양감옥에서 나왔을 때 달구지에 실려서 집으로 왔소. <조국해방단>조직자로 활동하던 원주였으니 그를 체포한 왜놈들이 얼마나 악착한 고문을 들이댔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 아니요. 죽지 않고 살아남은것만도 다행이지. 고문으로 몸이 채 추서지 못한 아들을 학원에 보내자니 삼촌어머니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수가 없지. 실상 그런 권고를 하는 내 마음도 괴로웠소.

그래서 더 말을 안하고 돌아왔는데 원주는 어지간히 몸이 회복되자 얼마전에 학원으로 떠나갔소. 그의 건강이 걱정되여 마음이 놓이질 않소.》

장군님의 손에 들린 담배대는 제풀에 타들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만경대일가가 나라와 인민을 위해 바치는 헌신의 과거와 오늘이 새삼스레 가슴에 마쳐오는것을 느끼시였다.

장군님의 부모님과 삼촌, 동생… 그분들은 일찌기 항일전에 목숨을 바치셨다. 늙으신 조부모님들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항일전을 후원하시였다. 이역땅과 국내의 감옥에서 련이어 날아오는 희생의 비보에 그분들이 흘린 눈물은 얼마였으랴. 나라를 찾는 성업에 목숨을 바쳤으니 무슨 한이 있으랴만 한 가문에서 그처럼 값높은 희생을 련이어 가져온 전례는 없을것이다. 해방된 오늘에도 조국과 민족의 수호를 위해 만경대일가는 남먼저 총을 메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 수호전에서 또다시 누구보다 앞장에 서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은 수난많은 우리 나라의 현대사가 만경대가문의 어깨우에 얹어놓은 숙명이 아닐가? 문득 자신도 그 가문의 장손며느리로 지녀야 할 력사의 의무를 의식하시였다.

장군님께서 펼치시는 건군위업에 나로서는 무엇으로 어떻게 기여할수 있을가?

깊어가는 밤과 더불어 녀사의 생각도 깊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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