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겨울의 짧은 해가 어느새 져버렸다. 사라진 해의 자취인양 서켠 하늘에 감빛노을이 황홀하게 펼쳐졌다. 저택의 창가에 노을빛이 곱게 어리였다.

새집들이를 축하하려고 온 손님들로 흥성이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격적인 상봉으로 이 하루를 보내시였다. 오전에는 강상호와 주도일을 비롯한 경위대의 옛 전우들이, 오후에는 평양에 먼저 온 녀투사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그릇이며 바가지며 무엇이든 한가지씩 들고와 시간가는줄 모르고 즐겁게 회포를 나누다가 방금전에 돌아갔다.

조국개선의 길에 오르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녀사와 어린이들이 달린 녀대원들은 원동훈련기지에 당분간 남아있도록 하시였다. 그날에는 넉달 가까운 긴 작별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시였다.

원동훈련기지를 떠나 조국에 돌아오신 녀사께서는 동행한 녀투사들과 함께 청진에 계시면서 정치사업을 하시였다. 평양을 향해 청진을 떠나시게 되였을 때 그곳 일군들은 려객렬차를 마련해보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으나 왜놈들이 도망치면서 다 마사놓아 좀처럼 구할수가 없었다. 두루 수소문을 하던 끝에 두량의 유개화차가 있다는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차창도 없고 위생시설과 난방시설이 전혀 없는 유개화차에 녀사를 모실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두시간 달리는 거리라면 또 모른다. 거의 2천리가 되는 로정이였다. 더구나 추운 계절이였다. 일군들은 더없이 안타까와했다.

이런 사실을 아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유개화차도 일없어요. 산에서 싸울 때 기적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언제 저런 기차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갈수 있을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서 떠나도록 해주세요.》

이리하여 유개차를 숙영차로 꾸리였다. 바닥에는 멍석을 깔고 그우에 노전을 폈다. 차실안의 한켠에는 난로와 풍로를 놓고 화식기재를 갖추었다.

녀사께서는 10여명의 녀투사들과 함께 그 차를 타시였다.

녀투사들은 군복차림 그대로였지만 애기어머니들이였다.

렬차가 청진역을 떠난것은 12월 22일 오후였다. 그러니 29일 저녁 평양역에 도착할 때까지 여드레나 흐른셈이다. 정상이라면 기차로 하루길이다. 철도가 아직 혼란에서 풀려나지 못하다보니 이렇게 여러날이 걸렸다. 마음은 살같이 평양으로 달리건만 역에 멈춰서면 렬차는 좀처럼 떠날줄을 모르군 했었다. 마침내 평앙역에 내리셨을 때였다. 몇명의 항일혁명투사들이 화물자동차를 구해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시는 반가움은 이를데 없었다. 화물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달리실 때 가슴에 젖어드는 감개도 무량했다.

드디여 평양에 왔구나!

녀사께서는 거리의 전경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뇌이시였다. 도로며 집들은 눈에 설었지만 마음속에는 유정하게 자리잡은 도시였다. 빨찌산시절 장군님께서 우등불가에 앉아 이야기해주시던 평양이였다. 광복의 길에 오르시기 전까지 장군님의 발자취가 무수히 찍혀있는 거리가 차창밖으로 흘러가고있었다.

3. 1인민봉기때 어른들을 따라 고무신을 두손에 벗어쥐시고 맨발로 달리셨다는 보통문거리는 어데일가? 강반석어머님의 손을 잡고 아버님께서 갇히신 평양감옥으로 걸어가시던 길은 또 어데일가?

내 나라를 기어이 찾고야 돌아오리라는 굳은 맹세를 남기고 평양을 떠나시던 겨울밤에 강윤범이라는 동무와 그토록 가슴아프게 작별하신 곳은 방금 떠나온 역두일것이다. 평양에 돌아오시여서 낯익은 거리를 밟아보신 장군님의 심회는 어떠하셨을가.…

화물자동차는 어느새 저택에 도착하였다.

《정숙동지가 오시기 전에 집을 한채 구해야 한다고 김책동지가 벼르다가 며칠전에 이 집을 잡았습니다.》

차를 함께 타고온 강상호의 말이였다. 저택은 2층벽돌집이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과 함께 간밤을 이 집에서 보내시였다. 하지만 아직도 남의 집에 오신것만 같아서 이 저녁 조용한 틈에 집을 돌아보시는 발길이 조심스러웠다. 집은 가정생활의 요람이다. 집없는 아낙네의 설음을 가장 큰 설음으로 일러오리만큼 집은 가정을 가진 녀자들의 최대의 소원이다. 하지만 자기 한몸을 혁명에 바칠 각오를 가졌던 빨찌산녀대원들은 그 소원을 현실적인 감정으로 품어본 일이 없었다. 오직 꿈속에서 펼쳐지는 먼 미래의 생활속에서만 그려보군 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자신에게 이런 집이 차례졌다는것이 꿈만 같으셨다.

(이건 당신의 집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속삭이는듯 한 환각에 흠칫 놀라시였다. 누구의 목소리일가? 김책동지일가? 아니면 강상호일가? 아니다. 아득한 공간으로부터 들려오는듯 한 속삭임소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혹시 가슴속깊이에 잠재해있던 자신의 목소리가 부지중에 울려나온것은 아닌지…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이방, 저방으로 걸음을 옮기시는 녀사의 머리속에는 스스로도 놀랍게 가지가지의 공상과 계획들이 떠올랐다. 여기는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을 꾸리자, 나라를 찾았으니 새조국건설을 위해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을것이다, 그래 저 벽에는 그림들을 걸자, 장군님께서 그토록 사랑과 긍지를 안고 들려주시던 조국의 명승지들을 그린 그림을 걸어야지, 참, 여기 널직한 방에는 서재를 꾸려야지, 독서를 즐기시는 장군님을 위해 책들을 갖추자.…

생각이 서재에 미치자 문득 몇해전의 일이 추억되시였다.

어느날 김책이 찾아와서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정숙동무, 며칠전 장군님께서 나에게 자신의 꿈이야기를 하셨는데 말이요.…》

《꿈이라니요?》

《어떤 궁궐같은 집에서 정숙동무가 책이 가득찬 서재를 꾸려놓고 <장군님, 여기에 이 세상의 책들을 다 꽂아놓았으니 이젠 마음놓고 편히 책을 읽으십시오.> 하고 말씀드리더라는거요. 그래서 난 장군님께 대통령이 되실 꿈이라고 말씀드렸소.》

내처 눈덮인 밀림속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책을 읽으셨기에 장군님께서 그런 꿈을 꾸셨을것이다. 아무튼 잊을수가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 꿈속에서 그려보시던 서재를 성의껏 꾸려드리자.

《정숙동지!》

밖에서 귀에 익은 부름소리가 울리였다.

《아저씨!》

밖에서 노시던 아드님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급히 마중을 나가시려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아드님을 품에 안은 청년이 들어섰다.

《아니, 성국동무가…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요.》

《어제 저녁 정숙동지가 오셨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에 들었습니다. 즉시로 달려오고싶었는데 학교에서 틈을 낼수가 없어서 이제야 왔지요.》

녀사께서는 응접실에서 그와 마주앉으시였다. 반가움이 넘치여서 성국을 다정히 바라보시였다. 헤여져 그립던 친동생을 만나신것처럼 류다른 정회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생사를 함께 한 빨찌산시절의 전우들모두가 친근하지만 김성국과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1937년 가을 가재수에서였다.

정치공작을 나갔다가 그곳에 돌아오시니 새로 입대를 하였다는 소년이 있었다. 람루한 토스레를 걸쳤지만 곱게 돌려맺힌 얼굴의 륜곽과 빛나는 눈은 령리한 인상을 주었다. 그 모습은 적들에게 희생된 동생 기송이를 련상시켰다. 그가 바로 김성국이였다. 다정히 래력을 물어보시였다. 김성국은 일찌기 어머니를 잃고 11살부터 머슴살이를 해온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헐벗고 굶주리며 자란 그는 15살나이에 비해 키가 작은편이였다. 하지만 담차고 똑똑하였다. 마을사람들을 따라서 지원물자를 지고 가재수에 왔던 성국은 기어이 입대를 시켜달라고 떼를 썼다. 소년의 결심이 기특하고 확고하여서 장군님께서는 그의 입대를 승인하시였다.

가을이였지만 가재수에는 추위가 시작되였다.

녀사께서는 소년에게 군복을 지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마침 그가 가재수에 올 때 가져온 이불이 있었다. 유격대생활에는 이불이 필요없었다. 그것을 뜯어서 광목천에 가둑나무껍질을 우린 물을 들이시였다. 베실로 소년의 몸을 재여보고 밤새워 겨울용군복을 지어주시였다. 새 군복을 입은 성국은 제모습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마주보는 눈에는 물기가 어리였다.

《누님!…》

떨리는 입술사이로 짓눌린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때로부터 며칠간은 만날적마다 《누님》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그의 소대장인 오백룡이 엄하게 성국을 타일렀다. 유격대에서는 오직 동지나 동무라고만 불러야 한다고. 그후부터 김성국은 누님이라는 부름을 삼가하고 동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시기에 또다시 누님이라고 부른적이 있었다.

이틀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행군하던 성국은 눈속에 쓰러졌다. 이악하기로 소문이 난 성국이였지만 소년의 몸으로서는 감당할수 없으리만큼 굶주림이 한계를 넘었다.

그를 발견한 녀사께서는 자신의 배낭을 뒤져서 노루고기를 주시였다. 며칠전에 부대에서는 다행 노루 한마리를 잡았는데 그 고기를 구워 말리워서 비상용으로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먹어버렸으나 녀사께서는 그냥 간수해두셨던것이다.

극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던 성국은 녀사께서 주시는 말린 고기를 사양치 않고 덥석 받아 삼켰다. 되살아나는 원기를 느끼며 일어설 때에야 정신이 들어서 울먹이며 말했다.

《누님도 배가 고프실텐데…》

오백룡이 곁에서 지켜보고있었지만 그때에는 성국을 탓하지 않았다. 다만 그득해지는 목을 열어보려고 건기침을 톺았을뿐이다.

김성국의 가슴속에는 김정숙동지가 언제나 다정하고 친근한 누님으로 자리잡고있었다.…

《요즘은 건강이 어때요?》

녀사께서 물으시였다. 10여군데나 총상을 입었던 성국의 건강이 늘 걱정되시였다.

《일없습니다. 훈련기지에서 저를 잘 보살펴주신 덕에 지금은 건강합니다.》

김성국은 흔연히 웃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 혈색이 돌지 못하였다. 녀사께서는 그의 건강에 관심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화제를 바꾸시였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우리가 장군님을 모시고 왔을 때 평양에는 이미 여러 당파에 소속된 무장조직들이 있었습니다. 적위대, 자위대, 보위대… 명칭도 각각인것처럼 무장조직들의 지향은 서로 달랐습니다. 서로 총부리를 맞대는 일도 벌어지군 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무장조직들을 하나로 통합하실 구상으로 건국청년학교를 내오시고 저를 거기에 파견하시였습니다. 청진도 그렇겠지만 여기서도 반동놈들의 책동이 우심합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학교의 선발된 청년들로 특별경비대를 조직하시고 그 대장사업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낮에는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밤에는 특별경비대를 이끌고 시내를 순찰하면서 반동놈들의 책동을 짓부시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군요.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겠어요.》

《저야 뭐… 입성하신 후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하루도 편히 쉬신날이 없었습니다. 여북 바쁘시면 정숙동지가 오신 어제 밤조차 집에 돌아오지 못하셨겠습니까?》

《알고있어요. 장군님께서 오늘 저녁에는 들어오시겠다고 하셨어요.》

《정숙동지.》

조용히 부르는 김성국은 방금전과 달리 심중한 표정이였다. 그는 간곡한 어조로 뒤를 이었다.

《앞으로 신변을 주의하십시오. 어제 밤에도 서평양에서 반동놈들이 회의를 하는 공산당원들을 기습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시내에 숨어있는 놈들이 처처에서 날뛰고있습니다. 백주에 살해사건이 벌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거리에 나가실 때에는 되도록 혼자 다니지 않도록 하여주십시오. 우리 학교에 전화를 걸어주시면 제가 믿음직한 학생들로 호위조직을 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야… 내 걱정은 말아요.》

김성국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마디에 힘을 주며 다시 말씀드렸다.

《청진에 계실 때와는 다릅니다. 미군놈들은 다른 도시들보다 평양에 테로분자들을 더 많이 들이밀고있습니다. 우리가 무장을 잡지 못하도록 책동하고 간부들을 살해하는데 주되는 목적을 두고있습니다.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저의 당부를 꼭 명심해주십시오.》

녀사께서는 성국의 얼굴에 간절한 빚이 떠오르는것을 보시였다.

그의 왼심이 고맙게 여겨지셨다. 동시에 엄혹한 정세를 극복하고 나라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무장력을 하루빨리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나라는 해방되였지만 원쑤들과의 싸움은 계속되고있다.

김성국은 시계를 보더니 벗어놓았던 군모를 썼다.

《아니, 벌써 돌아가려구 그래요?》

《가야 합니다. 앙력설을 계기로 심상치 않은 일들이 생기고있습니다. 돌아가서 오늘 밤 순찰조직을 해야겠습니다.》

만나자 헤여지는것이 무척 아쉬웠으나 듣고보니 만류할수 없으시였다. 녀사께서는 성국을 따라 일어서시였다.

방을 나서던 성국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아, 내 깜박 잊을번 했군요. 새집들이에 오는 손님들은 이걸 가져와야 한다는데 받으십시오.》

그는 군복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냈다.

《아니, 성국동무가 어떻게 이런 풍습을 다 알고있어요?》

소년시절부터 유격대생활을 하여온 성국이가 이런 민속을 알고있다는것이 참으로 놀랍게 여겨지셨다.

성국의 얼굴에 갑자기 어줍은 기색이 떠올랐다.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전 이미 새집들이를 해봤습니다.》

《그럼 그사이 결혼을 했어요?》

《익현동무가 자꾸 부추기는통에 공청에서 사업하는 처녀와 얼마전에…》

성국은 낯색을 붉혔다.

《잘됐군요. 내 며칠내로 동무네 집에 가겠어요.》

녀사께서는 성국의 결혼이 더없이 기쁘시였다. 훈훈한 감정에 휩싸여서 그와 함께 밖으로 나오시였다.

성국은 담장밖의 나무에 매여놓았던 밤색말을 타고 나는듯이 달려갔다.

녀사께서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냥 서계시였다. 빨찌산시절 국내정찰을 떠나는 그를 바래주시던 심정이 되살아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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