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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인 정규진선생은 남조선에서 살다가 공화국의 품에 안긴 의거자의 한사람이다. 그가 남조선사회를 등지고 결단코 의거입북을 단행한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이였다. 강원도 철원군 복면 보막리(당시)에서 태여난 그는 6살 잡히던 해인 1951년 1월 미군의 원자탄위협공갈에 속아 어머니와 함께 남조선으로 나가게 되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두고온 고향산천이 못견디게 그리워 고향땅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남강원도 철원을 자주 찾군 하던 그였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 깊어질수록 통일에 대한 열망 또한 높아만 갔다. 그는 경기도 포천군 운천리에서 10여년간 사립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통일열의를 높여주기 위해 노력하였고 조국통일에 더 힘껏 이바지할 마음을 안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도 되였다. 그러나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것이 남조선당국이 저들의 《승공통일》정책을 비호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낸 한갖 정치도구라는것을 안 그는 《중앙정보부》의 공갈과 회유를 뿌리치고 주저없이 대의원감투를 벗어던지고말았다. 남조선당국의 사대매국적이며 분렬주의적인 책동에 환멸을 느낀 그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로선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향해나가는 공화국에 대한 끝없는 동경심을 안고 주체78(1989)년 11월 주저없이 공화국에로의 의거를 단행하였다. 공화국에서는 그가 통일애국활동에 전념할수 있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으로 사업하도록 하여주고 생활에서 사소한 불편도 있을세라 따뜻이 보살펴주었다. 지난 20여년간 공화국의 품에서 보람찬 삶을 누려온 정규진선생은 지금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에 헌신하고있다. 사진 어윤철, 글 조제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원으로 사업하고있는 정규진선생(왼쪽)
개선청년공원에서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정규진선생과 그의 가족
정규진선생은 조국통일에 대한 절절한 념원을 담아 딸의 이름은 조국, 아들의
이름은 통일이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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