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방직공으로부터 이름난 영화음악가수로

 

최삼숙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명가수이다. 최삼숙이라는 이름은 해방후 남쪽에서 살던 부모들이 북으로 들어오다가 38˚선에서 그를 낳았다고 하여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평범한 방직공에 불과했던 그가 과연 어떻게 되여 관록있는 음악가로 성장할수 있었는지…


 

유명한 영화음악가수, 명가수로 인민의 사랑을 받는 영화 및 방송음악단의 성악배우 최삼숙(59살)의 예술창조활동은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영광과 행복, 긍지로 가득차있다.

원래 그는 공장예술소조에 망라되여 노래를 부르던 평양방직공장의 평범한 방직공이였다.

그러던 그가 꿈결에도 뵙고싶던 어버이수령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공연하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으니 이날 수령님께서는 방직공처녀들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과분한 치하의 교시를 주시였다. 

그후 20살에 영화음악단(당시)의 성악배우로 선발된 그는 크나큰 사랑의 손길에 받들려 영화음악가수로서의 첫걸음마를 뗐다.

주체60(1971)년 8월과 9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배우생활을 갓 시작한 그의 노래를 여러차례나 들어주시고 노래를 순진하게 불러서 좋다고, 방직공처녀가 가수로 되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그에게 조선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의 주제가를 형상하도록 하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주 그를 만나주시고 노래형상방도와 마이크를 쓰는 묘리까지 하나하나 일깨워주시며 참다운 스승의 손길로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절세위인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그는  《꽃파는 처녀》와 《열네번째 겨울》, 《곡절많은 운명》, 《도라지꽃》, 《금희와 은희의 운명》 등 수백편의 예술영화주제가들과 3 000여곡에 달하는 노래들을 훌륭히 형상해낼수 있었고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관록있는 명가수로 자랄수 있었다.   

인민배우 최삼숙은 영광과 행복, 긍지로 가득찬 지나온 예술창조의 자욱자욱을 아름다운 추억속에 더듬어보며 선군시대 음악예술의 화원을 더욱 풍만하게 장식해갈 일념을 안고 오늘도 창조의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외국방문공연의 나날에

 

아들, 딸과 남편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최삼숙가수

 

그는 어디 가나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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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미친새끼 - 경기도 - 음악인 - 2020-10-02
한상렬목사를 무지막지하게 연행하는 이명박파쑈패당들, 저게 10년전의 일인데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었던가? ㅠㅠㅠㅠㅠㅠㅠ
다시는 이명바끄네같은 보수패당이 대통령되는것은 있을수없다는것을 똑똑히 명심해두어야한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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