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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학습당을 찾은 한장호선생
얼마전 나는 평양동안중학교 학생들과의 상봉모임을 진행하였다. 그날 연탁에 나서서 수백수천쌍의 맑고 빛나는 눈빛을 마주하고있노라니 지난날의 교단에 다시 선듯 마음은 마냥 세차게 울렁이였다. 함경북도 명천군(당시)의 가난한 빈농의 자식으로 태여난 나는 지주놈의 소작살이로 목숨이나 겨우 부지해가던 가정을 뛰쳐나와 14살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나는 일본에서 갖은 민족적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며 고학을 하다가 조국이 해방된 후 서울에 돌아와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식민지노예교육을 강요하며 신성한 교단을 더럽히고 애국적인 교원들과 학생들까지 마구 체포구금하는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집요하고 악랄한 책동으로 말미암아 나는 교원생활을 더는 할수가 없었다. 비관과 좌절, 저주와 울분을 안고 마가을의 락엽마냥 여기저기 떠돌던 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어버이의 품,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품에 안겨서야 그처럼 바라던 교단에 다시 설수 있었다. 평양시교외에 있는 어느 한 중학교 교원으로 사업하면서 삶의 참된 희열과 행복을 난생처음 맛본 나는 조국을 찾아주신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살아갈 유일한 길이라는 철의 신념을 가슴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조국통일성전에 나섰던 내가 놈들에게 체포되여 수십년세월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회유를 꿋꿋이 이겨낼수 있은것은 삶의 참된 진리를 가르쳐준 어머니조국앞에, 사랑하는 제자들앞에 한점 부끄럼없이 떳떳이 살아야 한다는 숭고한 자각과 의지가 마음속깊이 자리잡고있었기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깨끗한 량심이 없인 설수 없는 신성한 교단에 나선 심정으로 조국과 후대들의 눈동자에 비낀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영원히 참되게 살기 위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주체의 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위업에 나의 적은 힘이나마 깡그리 바쳐가고있다.
비전향장기수 한장호
가족들과 함께 휴식의 한때를 즐겁게 보내고있는 한장호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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