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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6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전 충 일
1
미친듯이 들이닥친 미군용찌프차, 군화발로 살림방에 뛰여들어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호령질하던 징그러운 낯짝들… 소박한 나의 영업(나는 그때 자그마한 만두집을 경영하고있었다.)은 이렇게 파산되였다. 이것을 발단으로 나는 서울이 해방되자마자 주저없이 군사동원부로 찾아갔고 지금은 들추는 자동차적재함에 몸을 맡긴채 남진의 길에 오른 중대로 배치되여가는 길이다. 불타버린 초가집들, 허리부러진 전주대들, 버짐먹은 소잔등마냥 엉망진창이 된 논밭들이 쉴새없이 마주 오고 지나간다. 《동무도 물을 세게 마시오?》라고 묻던, 통나무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군관의 석쉼한 목소리가 금시런듯 귀전에 울려온다. 질문의 의미를 몰라 두눈만 껌벅거리고있는데 그 군관은 벌쭉 웃는것이다. 《오, 다른게 아니구… 동무가 이제 배치될 중대에 문성진이라는 분대장이 있소. 체격이 동무처럼 <황소>요. 물을 특별히 좋아해서 <물성진>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있지. 그래서 난 몸이 좋은 사람들은 특별히 물을 좋아하는가부다 하고 생각했지.… 그래서 물은거요.》 《보통사람들보다는… 좀… 더…》 나는 어줍게 웃었다. 《하하, 이거 사단장동지 물통을 뺏아갈 사람이 또 하나 나타났군.》 만약 그때 전화종소리만 아니였다면 나는 그 《물성진》분대장에 대하여, 사단장동지의 물통에 대하여 좀더 들었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화를 받은 그 군관은 책상우의 문건들을 급히 거두어가지고 방을 나서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밖에 후방물자를 실은 자동차가 동무넬 태워다줄거요.》 그리하여 나는 여덟명의 신입병사들과 함께 쌀가마니며 물고기목통이며 기름통들을 가득히 실은 자동차에 오르게 되였다. 차가 사단지휘부를 떠나서부터 나는 줄곧 그 《물성진》분대장에 대하여 생각했다. 어쩐지 《물성진》이라는 그 분대장이 체격의 공통성으로 해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차길은 몹시도 험했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포탄구뎅이들을 피하느라 자동차는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달렸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훌쭉해진 담배갑을 보고 나는 놀랐다. (어느새 이렇게 많이?) 구겨진 담배갑안에서 그나마 씨가 빠지기 시작한 담배 넉대가 불쌍하게 나를 올려다보고있었다. 나는 담배피우기를 단념하고 씨가 더 빠지지 않게 담배끝을 오무라뜨렸다. 도착해서 한대, 저녁식사후 한대, 자기 전에 한대… 나의 마음은 쓸쓸하였다. 《항공―》 도래굽이에서 처녀의 야무진 목소리가 울려왔다. 자동차가 길가녁으로 대가리를 비튼다. 엉성한 소나무숲에 들어서자 운전칸문이 급하게 열리고 사람들이 뛰여내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철부지아이마냥 비행기동음이 들려오는 곳을 손채양하고 바라보면서 비행기를 찾으려고 애썼다. 《여― 죽자그래! 빨리 뛰여내리라!》 운전사가 나를 나꿔챘다. 자동차를 발견한 적기들이 꼬리를 물고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기총탄이 자동차주변을 누비며 폴싹폴싹 먼지를 일쿤다. 여기저기서 폭탄들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온 내장을 들었다놓는 폭음, 귀전을 스치는 파편들의 아츠러운 음향… 속이 메슥메슥하였다. 나는 그때 화염내 배인 폭탄구뎅이에 코를 박은채 내 몸뚱이가 남보다 류별나게 큰데 대하여 끝없이 저주하였다. 적기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운전칸에 탔던 군관이며 운전사며 신입병사들이 적재함의 불을 끄느라 북적거릴 때에도 나는 폭탄구뎅이에 엎드린채 돌처럼 굳어져있었다. 폭격에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하고 떠나느라 우리는 저물녘에야 각기 자기의 중대들에 도착할수 있었다. 보통키에 다부진 체구의 중대장은 그 무슨 박물관의 진귀한 진렬품이라도 감상하듯 나의 아래우를 찬찬히 뜯어보고나서 《이거 <물성진>이 또 하나 나타났군.》하며 사단의 그 군관처럼 호탕하게 웃는것이다.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반토굴 한구석에서 졸고있던 전사는 벌떡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후에 알고보니 그 전사는 중대의 막냉이―중대장련락병이였다. 중대장은 이것저것 많은것을 물어보았다. 했으나 성미가 뚝한 나로서는 그 많은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느라 땀을 빼지 않으면 안되였다. 아니, 실지로 땀을 더 많이 빼는것은 내가 아니라 대답을 기다리느라 참을성을 발휘해야 했던 중대장일것이다. 단마디로 할수 있는 대답도 한참이나 갑자르다가 겨우 입을 여는 나의 말을 듣느라 중대장은 자주 이마살을 찌프렸다. 담화과정에 만두집소리가 나오자 중대장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탄성이 터져나왔다. 《원, 이런!… 좋소, 그만하기요.… 동무는 이 시각부터 중대취사원이요. 련락병! 인성동무를 식당으로 안내하시오.》 송진내가 채 빠지지 않은 반토굴집에서 중대장과의 따분한 담화는 이렇게 끝났다. 중대취사원이라… 자동차행군중에 겪은 폭탄세례로 하여 생겼던 공포증이 중대취사원이라는 임명과 함께 다소나마 가라앉는듯싶다. 련락병은 나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면서 무던히도 좋아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소개하느라 열성이였다. 《우리 중대에 새로 온 동집니다. 이름은 허인성, 나이는 서른두살, 만두를 얼마나 맛있게 빚는지 모릅니다.》 마치도 자기 친형이나 되는것처럼, 내가 빚어준 만두를 먹어보기라도 한것처럼 련락병은 엄청난 과장도 서슴지 않았다. 《저…》 나는 그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끄당겼다. 《왜 그럽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다음말을 기다리는 그앞에서 나는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문성진…》 그러자 그는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진분대장은 지금 사단군의소에 입원중이라는것, 련대는 물론 사단적으로도 싸움군으로 소문이 난 분대장이라는것, 사단군의소나 통신중대처녀들의 관심사속에 있다는것… 그러다가 그는 걸음발을 늦추며 생긋 웃는것이였다. 《얼마전에 중대에 내려왔던 사단장동지앞에서 사람들을 되게 웃겼습니다.… <음, 동무가 이번 전투에서 한몫 단단히 했다는 문성진동무요?> <그렇습니다.>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신다면서?> <그렇습니다. 밥은 굶어두 물은 굶지 못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련락병은 제먼저 한참동안이나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아… 그랬더니… 사단장동진 그 자리에서 함께 내려왔던 담당간호원의 물통(그건 멋들어진 물통이였답니다.)까지 기념으로 주었답니다. 성진분대장동진 늘 그 물통을 몸에서 떼놓지 않습니다. 이제 전쟁이 승리하면 뭐 그 물통이 박물관에 전시된다나요. 체, 그까짓 물통이 뭐라구…》 식당에 도착해서도 련락병은 있는 말, 없는 말 보태가며 나를 요란하게 소개하고는 씽 돌아갔다. 그가 사라져버리자 내 마음은 불시에 허전해졌다.
어느새 중대에 소문이 퍼졌는지 너도나도 식당천막에 얼굴들을 들이민다. 《고향이 서울이라지. 고향친구를 만났구만. 그렇다는 의미에서 만두국 곱배기를 미리 신청하는바이요.》 만두나 빚는 내 재간을 이렇게까지 일러줄줄이야. … 만두를 빚으며 해와 해를 넘겨온 나였지만 이런 대접은 처음이다. 저녁무렵 련대후방부에 갔던 특무장이 밀가루 한포대를 메고 나타났다.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싱긋 웃었다. 《그동안 냅다 미느라 특식 한번 변변히 해먹이지 못했소. 마침 래일 동무네 문성진분대장도 퇴원하겠다… 어디 동무솜씰 한번 보이오.… 일인당 만두 다섯개씩, 해낼수 있소?》 《그야… 뭐…》 특무장이 사라지자 나는 밀가루포대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일인당 만두 다섯개라! 만두 다섯개면 극상 10전어치다. 아무리 배집이 작은 사람이라도 20~30전어치는 축내고야 일어서군 했는데… 하여튼 명령이니 그대로 할수밖에 없지. 다음날 아침 일찌기 문성진분대장이 중대에 도착했다. 그의 출현으로 온 중대는 한동안 명절이라도 맞는듯 들썩거렸다. 개울가에 엉치를 붙이고 삶은 돼지고기며 데친 배추따위를 뚝딱거리면서 탕치고있는 나역시 몹시도 가슴이 설레였다. 먼길 갔던 어머니를 기다리는듯 한 그런 심정이랄지… 에라, 모르겠다!… 취사복에 뻑뻑 손을 문지르며 강기슭의 우거진 버들숲을 지나 나지막한 둔덕우에 올라섰다. 중대천막이 자리잡은 널직한 풀판에서 온 중대가 문성진분대장을 둘러싼채 떠들어대고있다. 멀찌감치에서 보기에도 그는 듣던바 그대로 체격이 우람찼다. 병아리를 거느린 엄지닭마냥 유표하다. 한걸음… 한걸음… 나는 문성진분대장을 둘러싼 울바자뒤에 바투 붙어서서 목을 빼들었다. 어떻게 생겼을가?… 떡판같은 잔등만 보인다. 그 잔등에 서말 찰떡이라도 치겠다. 이제나저제나 그가 돌아서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느라니 문득 《인성동지, 여기서 뭘해요. 물이 설설 끓는데…》하며 누군가가 소리친다. 식당일의 방조를 나왔던 오가성을 가진 애어린 전사가 눈이 올롱해서 나를 쳐다본다. 아차! 시내가를 향해 냅다 달렸다. 탕쳐놓은 만두속감이며 칼도마며 가지고나왔던 잡동사니들을 버치에 처담은채 취사장으로 달려갔다. 밀가루반죽을 해댔다. 아뿔싸! 덤비는 밥이 어디로 들어간다더니 반죽이 묽어졌다. 부랴부랴 덧가루를 친 다음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반죽을 했다. 맞춤해졌다. 통나무를 깔고 취사장바닥에 퍼더버리고앉아 만두를 빚느라니 쿵당거리던 나의 가슴도 어느덧 가라앉았다. 엎어놓은 솥뚜껑우에 하나, 둘 늘어나는 만두를 바라보느라니… 상머리에 바투 나앉은채 닭알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어린시절의 녀동생의 동실한 얼굴이 밟혀온다. 하루에도 몇가마씩 삶아내였건만 언제한번 그 작은 배마저 채워준적이 없는 만두였다. 만두도 다 되고 밥도 다 되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였다. 식당문이 열리며 련락병이 바람처럼 달려들어왔다. 《인성동지, 다 됐어요?》 나는 대답대신 주런이 놓인 식기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보면 몰라? 《만두는… 안 빚었어요?》 국그릇을 본 련락병이 락심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안 빚어?!》 《어데 있어요?》 《거기…》 그제서야 식기 하나를 집어들고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던 련락병은 웃음이라 해야 할지, 울음이라 해야 할지 애매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 … 찌는듯이 무더운 날씨였다. 뜨거운 만두국그릇을 마주한 병사들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속은 날씨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히야, 요거. 밀가루공예품이구만!》 천막이 들썩하게 울리는 웃음소리… 저마끔 국물속의 만두 한개씩을 끄집어내서는 마치도 그 무슨 금, 은세공품이라도 들여다보듯 이리저리 신비스럽게 살펴본다. 그다음은 침묵이 깃들었다. 식기채로 후룩후룩 국물을 마셔버리는 사람, 만두국우에 밥식기를 통채로 엎어놓고는 와락와락 말아 게눈감추듯 먹어버리는 《대식가》들… 《정말 별식이구만.》 《맛있게 먹었소.》 한마디씩 던지며 식탁에서 물러서는 얼굴표정들은 좋다는건지 나쁘다는건지 종잡을수가 없었다. 곱배기를 청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맨 나중에야 식탁에서 일어선 성진분대장이 멍청히 서있는 내앞으로 다가왔다. 동정어린 눈빛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던 분대장은 《만두국을 맛있게 먹었소. 정말이요. 그런데 같은 값이면 큼직큼직하게 빚을걸 그랬소. 장사군음식처럼 빚지 말구.》하면서 내 어깨를 툭 치고는 밖으로 나가버리는것이다. 나는 설겆이할 생각마저 잊은채 또 한참이나 멍히 서있었다. 장사군음식이라!… 결국 내가 빚은 만두가 병사들의 입에는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두빚는 솜씨로 하여 둥둥 떠받들렸던 내가 바로 그 작게 빚은 만두때문에 땅바닥에 떨어진셈이다. 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담배들을 피우며 휴식하고있었다. 혹시나 해서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도사렸으나 만두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웃고 떠드는 병사들의 모습을 내다보니 엄지손가락만큼이나 두툼하게 만 마라초 한대가 이손저손으로 흘러가고있었다. 《두어모금 더 빨라구.》 《됐다는데, 어서 받기나 하라구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은 몇갑절이나 더해졌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했으나 댕그랗게 남은 두가치의 담배대를 들여다보고난 나는 담배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말았다. 하루해를 지우자면 아직 한나절이나 남았는데 모자라는 담배를 어디가서 얻어야 할지 막연하다. 《어! 련락병동무, 나 좀!》 문성진분대장의 청청한 목소리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두사람은 무슨 말인가를 몇마디 주고받더니 련락병이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분대장에게 통채로 넘겨준다. 분대장이 담배갑에서 담배가치를 한웅큼 꺼내여주려 하자 련락병은 손을 내저으며 어디론가 급히 달려가버린다. 벙글거리며 대원들에게 담배를 나누어주던 분대장이 피끗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다우쳐온다. 얼른 머리를 돌렸다. 설겆이그릇을 마주하였다. 분대장이 왜 여기로 오는지를 짐작한 나의 심장은 도적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마냥 쿵당거렸다. 아니나다를가! 《인성동무! <차렷>담배요. 자, 받으라구.》 엉거주춤 일어섰다. 물묻은 손을 옷자락에 문질렀다. 그러나 차마 분대장이 내미는 담배를 받을수가 없었다. 받자니 주머니속의 담배때문에 낯이 간지럽지, 안 받자니 분대장의 미소가 너무도 진지하고 정차다. 《자, 어서!》하며 코앞에 담배를 들이대는 분대장의 그 두리두리한 눈동자가 나의 마음속을 빤히 들여다보는것만 같아 모닥불이라도 뒤집어쓴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성진분대장은 주밋거리는 내 손에 담배를 쥐여주고는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생각지 못했던 횡재를 했으나 나의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2
나에 대한 소문은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빨리도 퍼져갔다. 사흘이 멀다하게 나는 이 중대, 저 중대로 초청되여 만두를 빚어주게 되였다. 하여 우리 중대에는 《만두중대》라는 또 하나의 별명이 새로 붙게 되였다. (그전에는 《호랑이중대》로 불리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것이 문성진분대장의 신경을 건드려놓았다. 《챠, 이게 무슨 망신이야. <호랑이중대>가 하루아침에 <만두중대>로 변하다니. 시시하게… 하, 이젠 군의소처녀들까지 <만두중대>, <만두중대>하는 판이니. 내 원!…》 어느 조용한 기회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동문 군대에 미국놈 잡으러 왔나, 만두를 빚으러 왔나? 차라리 사단후방부에 떨어졌더라면 제격이였을텐데… 왜 하필 우리 중대로 왔소?》 하여 문성진분대장에게 품었던 나의 은근한 호감과 기대는 아침안개처럼 삽시에 흩날려버렸다. 후에 련락병으로부터 분대장이 중대장한테 불리워가 호되게 추궁을 받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의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 중대는 끝없이 행군해갔다. 자지러진 총포성은 중대로부터 먼 앞쪽에서 울려왔다. 인가 한채 없는 깊은 산중의 작은 시내가에서 방금 저녁식사를 하고났는데 갑자기 중대에 련대장이 내려왔다. 30분내로 행군준비를 끝내라는 지시와 함께 중대군관들은 물론 부소대장, 분대장들까지 련대장에게 불리워갔다. 쉬쉬하며 구대원들이 하는 말이 이쯤되면 중대가 큰 싸움판에 뛰여들게 된다고 한다. 잠시후, 우중충한 수림속에 중대가 정렬하였다. 전투명령이 하달되였다. 드디여 첫 싸움판에 나서게 된다는 생각으로 하여 나는 몹시도 흥분하였다. 귀전에는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만이 들릴뿐 명령을 하달하는 중대장의 말소리조차 잘 가려들을수가 없었다. 어렴풋이나마 내가 알아들은것은 이밤중으로 적진을 뚫고들어가 어느 철도역을 습격한다는것뿐이다. 칼로 토막치는듯 하는 중대장의 말소리가 끝나자 문득 《허인성동무가 누구요?》하는 련대장의 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대오가 술렁거렸다. (중대에 허인성이란 사람이 또 있는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모두의 눈길이 나에게 쏠리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린 나는 놀랐다. 《허인성동무, 대렬앞으로!》 낮으나 엄격한 중대장의 구령소리. 《여, 인성이 뭘해?》 《빨리 나가라구!》 다급한 목소리들이 속삭이듯 재촉한다. 《예… 접… 니다.》 나는 큰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짓숙인채 대오앞에 나섰다. 《음, 정말 체격이 요란한걸! 문성진<2세>로구만… 동무가 만두를 그렇게도 잘 빚는다면서?!》 내앞으로 다가온 련대장이 어깨우에 손을 얹으며 하는 말이다. 《듣자니 만두빚는 솜씨가 공예사 찜쪄먹는다며? 하하… 다른게 아니구 인차 인민군협주단이 뒤따라 나온다는데 동무신세를 한번 지기요. 이건 내 개인적인 부탁이요.… 어떻소?》 련대장은 마지막말을 나의 귀가에 대고 속삭이다싶이 하였다. 련대장이 나같은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의 잔등에 박혀있을 성진분대장의 시선이 칼끝처럼 마쳐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중대는 동녘이 희끄무레해지기 시작한 새벽녘에야 굉장히 큰 철도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도착할수 있었다. 수라장이였다. 호각소리, 고함소리, 기적소리… 지선에서 왈카닥절커덩 차갈이를 하는 소리, 힘껏 내쏘는 기관차의 증기소리, 빵빵거리는 자동차들의 경적소리… 방통들마다에서 개미떼마냥 와글거리는 적병들… 숨돌릴새없이 중대는 다시 정렬하였다. 역구내의 전철기들과 급수탑, 역건물, 간선에서 증기를 올리며 떠날 차비를 하는 유개화차들이 소대와 분대별로 할당되였다. 각기 습격대상들을 향해 소리없이 산을 내릴 때 문성진분대장이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이 시각부터 내곁에서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마오. 알겠소?》하고 낮으나 엄격한 목소리로 오금을 박는것이다. 우리 소대의 습격대상은 간선의 유개화차에서 와글거리는 적들이였다. 잠시후 불끈 솟아오르는 붉은 신호탄과 함께 소대는 역 한복판을 향하여 총창을 비껴들고 소리없이 전진하였다. 소대가 미처 구내에 들어서기도 전에 역사쪽에서 먼저 뚜루룩거리며 싸움이 시작되였다. 그다음 사방에서 와지끈거리며 수류탄들이 터지고 자지러진 총소리들이 역구내를 메웠다. 지선의 연유차량들이 터져나가면서 온 역구내는 삽시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인성이! 뭘해?》하고 벼락같이 소리치는 분대장의 목소리에 나는 번쩍 정신을 차리면서 무턱대고 그의 떡판같은 잔등을 바라보며 달렸다. 유개방통들에 연방 수류탄들이 날아갔다. 기관단총들이 사납게 울부짖으며 적병들을 삼대베듯 쓸어눕혔다. 와글거리는 적병들을 향하여 나도 총을 쏘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손탁에서 빠져나갈듯이 푸들쩍거리는 총을 떨어뜨릴가봐 총가목에 있는 힘을 다하였다. 분대장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는가? 갑자기 나의 앞쪽에서 화광이 번쩍하더니 내 몸이 하늘중천으로 솟아오른다. 그다음은 그 무엇엔가 부딪치며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총소리도, 수류탄 튀는 소리도 삽시에 사라져버린다. 목덜미에 닿은 차거운 레루장… 눈앞에서는 무수한 별찌들이 춤을 춘다. 왜 이리 조용할가?… 나를 버리고 다들 어디로 갔을가?… 아, 끝장이구나!… 마음이 서글퍼졌다. 두고온 안해와 토끼이발같은 하얀 앞이발을 드러내며 웃고있는 두살잡이 아들애의 얼굴이 애모쁘게 떠오른다.… 목이 타는듯 한 갈증에 간신히 의식을 차렸을 때 나는 누군가의 잔등에 업혀가고있었다. 나를 업은 사람은 달리고있었다. 화차방통사이를 타고넘기도 하고 부서져나간 급수탑벽체를 에돌기도 하면서 달린다. 물… 물… 물!… 나는 목에서 불이 이는것만 같아 참을수가 없었다. 나의 신음소리를 들었는지 먹었는지 그는 나의 두다리를 집게마냥 꽉 틀어잡은채 달리는데만 열중했다. 그러다가 엿가락처럼 휘여든 레루장에 걸려 통나무처럼 나가넘어지는통에 나는 다시 의식을 잃고말았다.… 림시로 굴설한 엄페부에서 내가 의식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날이 환히 밝은 한낮이였다. 나를 죽음에서 건져준것은 문성진분대장이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이 신세를 무엇으로 갚는단 말인가?… 온몸을 들쑤시는 동통속에서도 왜서인지 주머니속에 담배 두가치를 건사하고서도 분대장이 주는 담배를 받아쥐던 모습이 마치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처럼 안겨왔다. 《좀 어떻소?》 어느새 나타났는지 문성진분대장이 근심어린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타박상이요. 크게 걱정하지 마오. 하루 푹 쉬면 나을거요. 빨리 나아야 협주단배우들한테 만두솜씨를 보이지.》 그래놓고는 벌씬 웃는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따뜻한 정이 흐르는 그의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하였다. 글쎄!…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니까! 《…이…신셀 뭘루…》 나의 입에서 갑자르며 겨우 새나간 이 말이 문성진분대장의 얼굴에서 미소를 몰아내였다. 이마살이 찌프려지면서 손가락같은 주름살 두개가 깊숙이 패인다. 나의 두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를 할듯싶더니 눈섭이 닿도록 모자를 푹 눌러쓰며 은페부밖으로 저벅저벅 사라져버린다. 그래, 내가 미련한 놈이지. 신세야말로 갚는게 아니지! 네 떡이 서말이면 내 떡도 서말이여야지!… 그의 말대로 나는 이틀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바람으로 련대지휘부로 《초청》되여 협주단배우들앞에 나의 만두빚는 솜씨를 보이게 되였다. 배우들은 두말할것 없고 련대장은 내가 무슨 큰 군공이라도 세운것처럼 칭찬하였다. 련대의 《위신》을 세우는데 단단히 한몫 하였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것이였다. 나는 련대취사원아바이에게 부탁하여 얼마간의 군만두를 꾸려가지고 중대로 돌아왔다. 중대장에게 도착보고를 한 다음 나는 곧장 분대원들과 함께 무기소제를 하고있는 문성진분대장을 찾아갔다. 조용히 그를 불러낸 나는 산으로 올랐다.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는 숲속에 이르러서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맞춤한 풀판우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나는 분대장을 돌아보며 웃었다. 그러자 그는 둥그래진 눈으로 나와 배낭을 번갈아 바라보며 엉거주춤 풀판에 앉았다. 배낭을 풀었다. 꾸레미를 꺼냈다. 꾸레미를 풀어 기름에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만두를 그앞에 펼쳐놓았다. 《?》 그때까지도 성진분대장은 영문을 몰라 나와 만두를 번갈아보면서 어서 내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입을 꾹 다문채 나의 페장속 깊이까지를 들여다보는듯싶은 커다란 눈동자가 나의 두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눈앞에 펼쳐놓은 군만두의 《값》이 얼마인지 기어이 알아내자는 눈빛이다. 어느때든지 내가 살아있는 한 기어이 은혜를 갚으리라는 굳은 마음으로 나는 그의 두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들어붙은 입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할것인가? 정작 마주서서 정색해진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니 두루두루 머리속에 준비해두었던 말마디들은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나의 뚝한 성미, 린색한 말주변때문에 단골손님들을 더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늘 푸념질하던 안해의 말이 생각난다. 성진분대장은 더 참지 못하겠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건 뭐요?》 《저…》 말꼭지를 떼놓고도 나는 한참이나 갑자르다가 죄지은 사람마냥 머리를 떨구었다. 《…이거 뭐 변변치… 않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않겠수다.…》 생각해두었던 말보다는 좀 소박했지만 나는 진심을 말하였다. 말을 하고나니 속이 다 후련하였다. 용기를 내여 머리를 든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였다.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것이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길이 나의 어깨너머 숲속 어딘가로 옮겨졌다. 《인성동무, 하나 묻기요.》 《?》 《동무는 하루 세끼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에게 매번 절을 하며 먹었소?》 《?!…》 분대장은 움쭉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기의 물통을 돌려잡더니 마개를 열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입 한번 떼지 않고 마지막까지 다 마셔버린다. 손바닥으로 입을 뻑 문지르고나서 물통의 마개를 막으며 나직하나 엄격한 어조로 덧붙인다. 《사랑앞에 돈을 내미는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요.… 오늘일은 없었던걸로 치기요.》 저벅저벅 산을 내린다. 납덩이같이 무거운 정적이, 고독이 나의 온몸을 짓눌렀다. 그 어떤 보이지 않는 끈오래기에 묶이우기라도 한것처럼 종이우에 무둑히 쌓인 만두를 내려다보며 못박힌듯 서있었다. 어느새 기름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맹렬히 공격해온다. 뾰족한 만두귀퉁이를 입에 물고 끌어내보겠다고 버둥거리던 개미 한마리가 아무래도 힘에 부쳤는지 한걸음 물러나 기름묻은 주둥이를 열심히 문질러댄다. 그다음 어디로 갈것인지를 몰라 주춤거리는듯싶더니 쌀알만 한 만두부스레기를 물고 좋아라 귀로에 오른 다른 놈을 향해 달려간다. 뒤미처 당도한 서너마리의 개미들까지 합세하는통에 쌀알만 한 만두부스레기를 놓고 필사적인 싸움이 벌어진다.…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속이고 속히우며, 물고 뜯으며 살아온 나의 지난날을 보는것만 같아 두눈을 꾹 감아버렸다. 마라초 한대를 놓고도 너 한모금, 나 한모금 나누어 피우며 웃고 떠들던 병사들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밟혀온다. 다 죽었던 목숨을 살려주고도 한마디 인사를 받는것조차 불편해하던 분대장의 찌프린 얼굴이 어째서인지 이 순간에는 이름할수 없이 뜨겁게 안겨온다. 개미들을 털어버리고 주섬주섬 만두를 싸들었다. 했으나 그 만두꾸레미를 들고 내려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손에 든 그것이 마치도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썩은 음식이기라도 한듯 역스럽게 여겨진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무성한 풀숲에 꾸레미를 훌 집어던지고 성큼성큼 산을 내려갔다.
3
그날 밤 중대는 다시 행군길에 올랐다. 초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보슬비는 밤이 깊도록 멎을줄을 몰랐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탕, 홀딱 젖은 군복이며 배낭… 갑절이나 걷기가 힘들었다. 열댓채 되나마나한 초가집들이 행길을 마주하고 자리잡은 크지 않은 부락에서 적패잔병들과의 짧은 접전이 있었을뿐 동녘이 푸름해질무렵에 중대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행군길에서도, 엎어놓은 철갑모마냥 둥그렇게 생긴 야산기슭에서 아침식사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한마디말도 건네지 않았다. 큰 전투를 눈앞에 둔 때문인지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단 한번,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다시 행군을 시작할무렵에 문성진분대장이 《지금 몇시요?》 하고 물었을뿐이다.(중대병사들중에 손목시계를 찬 사람은 유독 나 한사람뿐이였다.) 사람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는것이 오히려 마음편했다. 하루낮동안 탄약도 보충하고 충분히 휴식하고난 다음 우리 소대는 전방으로부터 약 이십리계선에 틀고앉은 적 사단지휘부에 대한 습격전투에 나섰다. 경기관총 한개 분대와 두명의 공병, 무선기를 휴대한 한명의 통신병을 증강받은 소대는 사단정찰병들의 안내를 받으며 밤 12시에 무사히 전선을 넘었다. 번개같이 들이치고 바람같이 철수해야 한다!― 이것은 출발전에 소대장이 몇번이나 강조한 《성공의 열쇠》였다. 잡관목들이 들어찬 산기슭을 따라 소리없이 전진하였다. 한치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캄캄한 밤, 우리가 지나온 전선쪽에서 이따금씩 잠꼬대라도 하듯 자지러진 총소리가 들릴뿐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하다. 정각 새벽 2시. 철길이 지나간 군소재지에 자리잡은 적사단지휘부에 대한 습격은 그야말로 《번개》같이 진행되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적사단참모부와 통신처, 연유창, 화약창고, 경비구분대가 틀고앉은 건물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방의 푸른 신호탄이 솟구쳐오르자 소대는 《바람》같이 시내를 빠져나왔다. 집결장소에서 인원을 점검한 다음 지체없이 강행군을 시작하였다. 한밤중에 지휘부를 잃은 적들이 쉬파리떼처럼 달려들었다. 맞다드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히며 소대는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부상자들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행군속도는 점점 떠졌다. 꼬리를 바싹 문 적들을 떼버리기 위하여 우리 분대는 대오에서 떨어졌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치렬한 싸움이 시작되였다. 사격위치들을 정하고 한바탕 사격을 해댄 다음 분대는 적들을 꼬리에 단채 소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푸름푸름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적들은 더욱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한사람, 또 한사람, 대오는 줄어들었다. 탄약도 떨어져갔다.
×
총소리가 멎었다. 살아남은 우리 네사람은 사방에서 조여드는 적들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보총에 총창을 꽂았다. 마지막결사전을 위해서… 그다음 분대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대가 무사히 빠졌을가?》 누군가가 누구에게라없이 묻는 말이다. 《빠져나갔을거요.》 문성진분대장이 아름드리소나무밑둥에 털썩 기대여앉는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수류탄 한알을(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수류탄이였다.) 떼내여 발치에 놓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담배를 피우려는 모양이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나의 담배갑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말없이 분대장앞에 내밀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던 문성진분대장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도 불시에 맞다든 낯선 사람을 보는듯 한 그 시선에 나는 한순간 당황하였다. 숨막히는 이 순간 문득 숲속에 던져버린 그 군만두꾸레미생각이 나는것이 나로서도 이상스러웠다. 분대장이 웃는다. 담배갑을 받는다. 나의 손목을 잡아 곁에 앉혀놓고는 말없이 한대를 뽑아 내 손에 들려준다. 우리 네사람은 겁먹은 눈알들을 디룩거리며 사방에서 다가드는 적병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마냥 둘러앉아 담배를 피웠다. 문성진분대장이 나를 보며 또 웃는다.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을것만 같은 그 정찬 웃음때문인지 아니면 주머니속에 담배 두가치를 남겨놓고도 문성진이 주는 담배를 받아야 했던 불과 며칠전의 나의 모습에 대한 슬픈 마음에서였던지 눈앞이 흐려오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담배불들이 꺼졌다. 지척에서 적병들의 숨소리마저 들리는듯싶다. 문성진분대장이 발치에 놓았던 수류탄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모두의 얼굴을 주욱 둘러본다. 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걸음으로 성진분대장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무섭나?》 문성진이 물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없어. 끝까지 해볼 판이지. 이것도 병사의 의무야.》 마치도 자기는 한번 죽어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태평스럽게 하는 문성진분대장의 말이다. 나는 황급히 도리머리를 저었다. 《죽는게 무서운게 아니라… 살아날가봐 겁이… 납니다. 수류탄은 한발인데… 나 혼자만 죽지 않고 살아나면…》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성진분대장에게 군만두꾸레미를 내놓을 때처럼 미리 준비해두었던 말이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성진분대장의 두눈이 커지는듯 싶었다. 나의 속삭이는듯 한, 떠듬거리는 말이 그 무슨 구령이기라도 한듯 나머지 두사람도 더 바투 다가앉아 총창들을 힘있게 틀어잡았다. 《어느때든 인성동무가 빚어주는 만두를 실컷 먹어보리라 별렀댔는데… 내 참…》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며 문성진분대장은 수류탄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는 사람은 이미 없었다. 말없이 서로의 얼굴들을 바라보는 눈가마다에는 물기가 번들거렸다. 나는 가슴이 떨렸다. 억울했다. 분했다.… 얼마나 깨끗한 사람들인가.… 얼마나 소중한 전우들인가!… 이런 전우들과 영원히… 문득 누군가의 두손이 수류탄을 잡은 성진분대장의 손을 움켜잡는다. 깜짝 놀란 모두의 눈길이 그가 가리키는 쪽, 귀에 익은 기관단총의 자지러진 소리가 울려퍼지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전우들이 달려온다. 맨 앞장에 소대장이, 그곁에 만두국을 미리 신청하던 한고향내기, 그곁에 2분대장이, 그다음엔 또 누구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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