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6호에 실린

   

   단편소설

 

전혜옥

 

 

작업반 세포비서로 일하게 된 이 아들에게 어머니는 책상 깊숙이 보관했던 자기의 옛 《취재수첩》을 꺼내놓았다.

나는 그것을 남다른 호기심으로 받아보게 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문을 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된 길지 않은 글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왜 이 책을 나에게 주었는가를 알게 되였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작업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이 아들의 무거운 책임감을 어머니는 자식보다 더 먼저 마음속으로 걸머진것이였다.

나는 밤늦도록 그 책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

 

한채의 자그마한 단층건물은 창문들을 모두 활짝 열어놓고있었다.

창밖에는 키낮은 채송화가 아름답게 피여있고 몇그루의 오동나무가 드문드문 서있었다.

이 깨끗하고 아담한 건물의 다섯개 방은 모두 사무실이였다. 그리고 내가 들어온 이 방은 1가공직
장 사무실이라고 한다.

열려진 창문너머 어디선가 나의 귀에는 땅을 스치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이내 출입문이 열리면서 한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쉰대여섯쯤 되여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사나이였다.

나는 그를 향해 반갑게 자기를 소개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도일보사 기자입니다.》

볕에 탄 퉁퉁한 그의 얼굴에 어줍은 미소가 얼핏 비껴지나갔다. 첫인상에 벌써 어질고 무던해보였다.

《가공직장 만능원통연마공… 정예범이라구… 합니다.》

그도 짧게 자기 소개를 하였다. 기색을 보니 벌써 알만큼은 다 알고 온 모양이였다.

나의 직분이며 이렇게 마주하게 된 까닭에 대해서.

나는 마음이 즐거워져 웃으며 자리를 권하였다.

《저의 이름은 신은경이라고 합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그에 대한 나의 취재는 사실 두말할 여지가 없이 만족한것이였다. 그는 오늘 《80년대속도》창조에로 내닫는 이 끓어번지는 일터에서 놀랄만 한 실적을 내고있는 우수한 혁신자였다.

나는 기자로서뿐아니라 동시대에 살고있는 공민으로서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취재의 순간들을 행운으로 간주하고있었다.

고스란히 묻혀있던 보석을 캐여내는 광부의 심정이랄가. 성실한 마음속에 깊숙이 묻고 사는 티없이 아름다운것을 꿰뚫어보게 되는 때에야말로 얼마나 감동깊은 순간이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초면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내앞에 앉아있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무뚝뚝하게》 기자들을 대하는지 나는 안다.

내가 나이지숙한 기자라면 또 몰라도 갓 대학을 졸업한 처녀이고보면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와 나사이에는 해빛에 반들거리는 넓은 책상 하나만이 가로놓여있었다.

방안엔 어느덧 침묵이 깃들었다.

그는 좀 멋적은듯 몸을 궁싯거렸다.

《전 뭐… 신문에 날… 그런 사람까지는… 못됩니다.》

나는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일이 사랑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는 티없이 맑고 깨끗한 자기의 로동생활에 대하여 응당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것이다.

《일을 잘한다는거야 사람의 제일가는 장점이 아닙니까?》

《…》

그는 더욱 어쩔줄을 몰라 책상우에 올려놓은 두손을 마주 비비기까지 하였다.

《그런 장점이야 뭐… 다른 사람들도…》

그러고보니 무던히도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반장은 나에게 《그 사람은 그저 생산에서 최고의 실적을 내였을 때에야 얼굴이 밝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답니다.》라고 말해주었었다.

작업반 세포비서인 동우진은 그 사람은 인간된 도리를 지킬줄 아는 진국이라고 말하였었다.

그보다 앞서 제일먼저 나에게 그를 소개해준 1가공직장 직장장은 정예범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전도 아니고 바로 엊그제일인데 그날 그 동무의 아침출근이 별루 늦어졌습니다. 내가 그날 9시쯤 해서 현장을 한바퀴 돌아보고있었는데 어느 기대 하나가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고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리로 다가가보니 작업반장하구 동우진비서가 얼굴이 컴컴해서 서성거리고있더란 말입니다.

정말 귀중한 시간에 숨죽은 기대를 보니 막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이건 뭐요? 일감이 그냥 여기에 와 쌓이고있는데 기대공은 아직까지두 안 나오구… 이게 무슨 전투하는 본때요?> 하고 언성까지 높이게 됐더랬습니다.

지금 우린 발전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생산설비들을 새롭게 갱신하느라 온 공장이 상당히 긴장한 전투를 벌리고있단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기대가 차지하는 몫이 특별히 크다 이겁니다.

높은 정밀, 정결도를 요구하는 중요가공품만 해도 여섯종류에 그 개수는 수백개나 되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생기니 원…

나는 그날 벼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다시한번 현장에 나와보니까 그 기대공이 한창 정신없이 일하고있는게 보였습니다. 그래 방해하지 않고 물러났는데 저녁에 와보니 그 많던 제품이 하나도 없이 말끔해졌더란 말입니다. 역시 고급기능공 솜씨가 달랐습니다.

기분이 대뜸 좋아져서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수고했소, 동무.〉

내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데 갑자기 살얼음이 꺼지는것처럼 그 사람이 배를 그러쥐면서 주저앉더구만요. 붉어진 얼굴을 수그리고 몸을 비트는 모양이 과연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게 뭐야?〉 나는 속이 덜컥해서 그를 등에 업고 운수직장 차들이 있는 곳까지 뛰여나갔습니다.

다행히 구역인민병원은 공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병원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내과과장이란 사람이 진찰을 하는게 아니라 욕부터 하더란 말입니다.

〈이 동무가?! 아니 다시는 안 들어올것처럼 부득부득 나가더니 왜 또 들어왔소?〉

알고보니 기대공동무가 아침에 늦어진건 바로 여기 병원에 들렸기때문이였습니다. 그는 급성신석증으로 아침부터 된 진통을 겪었던것이였습니다.

내과과장이 경과를 두고보려고 침대까지 내주었는데 예범동무는 그냥 일을 나가야 한다구 우겨서 그들사이엔 언쟁이 터졌다더군요. 그 바람에 별의별 욕이 다 차례졌다고 합니다.

전 그때 많은것을 생각했습니다. 뭐라구 할가…

하여간 우선 그를 만나보십시오. 1가공직장의 정예범입니다.》

물론 이 일은 그에 대한 단적인 이야기에 불과한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이 말주변이 없는 사람을 위하여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편이 나을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그때의 일을 곰곰히 상기시키고나서 이렇게 물었다.

《그날 예범동지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공장으로 달려나왔습니까? 단순히 늦었거나 또 공장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그 전투적분위기때문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는 점차 더 진중한 빛이 떠오르고있었다.

수월히 입에 담을수 없는 거대한 무엇이 심중에서 태동하는듯 자세까지 고쳐앉으며 무거운 생각에 잠겨들었다.

나는 방해하지 않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열려진 창문밖 오동나무우에서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지 않아 저 나무에도 늦여름에 보게 되는 꽃이 필것이다. 나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투박한 손바닥으로 큰머리를 고이고있는 그는 시험문제를 풀지 못해 애를 먹는 학생같았다.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순박한 그의 모습에 나는 은근히 정이 끌렸다.

그렇다. 동지여, 한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자.

그때 그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까지 현장으로 이끌었는가를.

《아니, 결코 전투적분위기때문만이 아니였습니다.》

불현듯 그에게서는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나는 다소 굳어진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좀 덤비면서 말을 이었다.

《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전 그때 사실… 동우진비서동무가 생각나서… 그래서 한사코 나왔던것입니다.》

나는 그 의미가 얼른 리해되지 않았으나 좀더 이야기할수 있는 여유를 가지도록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우리 비서동문 저에 대해서 잘 알구있었습니다. 온 공장이 들끓구 한초가 새로운 때 이 예범이가 기대를 비우리라구는 생각도 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전 그때 돌아가지 못하는 내 기대를 보면서 이 예범이에 대해 생각하고있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제가 그날 10시가 다 돼서야 도착하니 우리 비서동무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다가와 손을 잡았습니다.

〈왔군요!〉

왜 늦어졌는가는 묻지도 않았습니다.

늘 지각 한번, 조퇴 한번 하지 않던 이 예범이가 이렇게까지 늦어질 땐 아마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구 믿고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 믿음에 어그러질가봐…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나오게 되였습니다. 그리구… 일했습니다.》

나는 서서히 심장이 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전 할 말을 다했습니다.》

그는 더 말하기가 힘에 부쳤는지 성급하게 의자를 뒤로 밀었다. 하지만 일어서서도 잠시 동의를 바라는듯 말없이 서있었다.

나는 그만 뜻밖의 정황에 대처할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그는 머리를 숙여보이고나서 출입문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갔고 나는 혼자 남았다.

허전했다. 마치 다 잡았던 무지개를 놓쳐버린듯 한 느낌이였다. 게다가 아직 기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한 자신에 대한 야속함까지 밀려들었다.

정예범, 그는 훌륭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마음의 문을 열수 없었다. 나에게는 굳게 닫긴 그 장벽을 열어제낄만 한 재능과 묘술이 부족한것이다. 그러나 물러설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사무실안을 한바퀴 돌며 생각해보았다.

기대공인 정예범, 그의 작업반 세포비서인 동우진… 어떻게 되여 이 두사람사이에는 그처럼 진실한 관계가 맺아졌을가. 정예범은 어떻게 그의 믿음을 두텁게 사고있으며 동우진은 또 정예범을…

나는 점점 취재의 대상이 달라지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이 인간관계속에서 분명히 반짝이고있는 그것을 보지 않을수가 없었으며 그것을 잡아야 한다는것을 절감하였다. 이제 쓰려고 하는 소개기사는 벌써 그 인간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하기 어려운것이였다.

결과가 어떻든 이제는 두번째 취재대상을 만나야 한다. 그 대상은 물론 동우진이였다.

나는 그를 찾아 방을 나섰다. 현장까지는 멀지 않았다.

가공직장현장은 단가마에 든 물처럼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머리우를 지나는 천정기중기의 동음소리며 경제선동의 북소리, 노래소리며 여러 기대들의 각이한 동음소리가 울리는 현장은 격렬한 전투장을 방불케 하였다. 현장 한가운데에 이르러서야 나는 동우진의 모습을 찾을수 있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앞이마가 좀 벗겨졌을뿐이지 50대를 넘긴 사람치고는 주름살도 그닥 눈에 뜨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안경속의 눈은 노상 웃음기어린 빛을 띠고있어 한결 더 젊어보였다.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무슨 용무가 있다는것을 알아차렸는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만나보았습니까?》

《예, 만나보았습니다.》

나의 대답을 듣자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습니까? 그를 인차 신문에서 보게 되겠는지…》

웃음이 섞인 그 물음속에는 자식을 내세우고싶어하는 어머니의 심정같은것이 배여있었다.

《그걸 그렇게도 바랍니까?》

《칭찬은 아이들만 좋아하는것이 아니지요. 하물며 모두 받아보게 되는 신문인데야…》

그는 능청스럽게 웃어보였다.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그럼 비서동지까지 함께 칭찬해드릴가요?》

《아, 그럴수만 있다면!》

우리는 소리내여 즐겁게 웃었다.

그는 손을 들어 나에게 현장문을 가리켜보였다. 여기서는 너무 큰 소음때문에 이야기를 나눌수가 없었다.

때마침 현장밖 구내길은 조용하였다.

이 공장의 오랜 력사를 보여주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량옆으로 나란히 늘어서있었다.

《무슨 생각을 합니까?》

그는 침묵을 깨뜨리면서 이렇게 물었다.

《초점을… 다시 맞추어야 하겠다구 생각하는 중입니다. 전 이번 기사를 정예범동지의 독사진처럼 준비하고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닌것 같습니다. 아마 비서동지와 함께 찍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귀를 가늠하느라고 미간까지 쪼프리였다.

《그건 무슨 소린지.…》

《예범동지가 누구보다두 성실하구 근면하게… 또 그날두 기어이 현장에 달려나와 기대를 잡게 된데는… 비서동지와 어떤 련관이 있다고 보아지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

《그는 자기를 알아주고 믿어주는 비서동지의 기대에 바로 다름아닌 그런 사람으로 살고싶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신중히 들으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걷기만 할뿐… 말이 없었다.

그는 지금 정예범에 대해서만 생각하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퍼그나 동안을 두고서야 나직이 입을 열었다.

《기자동문 지금두 그날 그가 나때문에… 기대를 잡구 일을 하였다구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만약 우리들이 그날… 어느 대사집에나 함께 가기로 약속되여있었더라면… 그는 절대 불편한 몸으로 병원에서 나올 생각을 못했을겁니다. 그러니 그의 행동을 어느 한사람과의 신의에 귀착시키는것은 큰 착오라고 생각합니다.》

《?》

《말하자면 그는 중요한것이 무엇인가를 알고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대해서도… 또 참된 삶에 대해서도… 다만 그것을 말로 표현할줄 모를뿐입니다.》

그는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것은 응당 기자동무의 몫이 아닌가 하는 그런 눈으로 나를 피끗 쳐다보았다.

우리는 어느덧 시원하게 그늘이 진 포도덩굴속으로 들어서고있었다. 포도덩굴아래에는 마침 든든하면서도 소박하게 만든 돌의자들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앉아서 이야기하기에는 그저 그만이였다.

《그럼 비서동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 대한 보답이 기본은 아니라는건가요?》

동우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몸을 약간 뒤로 젖히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덩굴밖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흘러온 세월을 더듬는듯 한 표정이였다. 그는 과거를 돌이켜보듯 푹 젖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기자동무쯤 되는 젊은 나이에 작업반 세포위원장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글쎄 점심시간마저도 아까와 교대를 하면서 밥을 먹고 기대를 잡던 그런 때였습니다. 온 나라가 증산과 절약으로 부글부글 끓던 천리마대고조시기였으니까요. 군대에서 제대되여와 갓 세포위원장으로 사업하던 때에 있은 일입니다.

월말 전투로 여간 바쁘지 않았던 어느날인가 정예범동무가 직장사무실에 나타났었습니다. 여느때없이 안색이 어두워보였는데 직장장 있는데로 다가가서는 머리를 푹 수그리며 가까스로 입을 여는것이였습니다.

〈오늘 오후 한겻 조퇴를 하도록 좀 승인해주십시오.〉

그때 벌써 그는 우리 직장의 1등가는 볼반공이였습니다. 그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만큼 볼반기능에서 기둥으로 되고있었지요. 그래서 들어서는 그를 보자 눈가에 만족한 빛을 띄웠던 직장장인데 그의 말을 듣고나서는 인상을 달리했습니다. 떫은 감을 먹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정동무, 사정이 그렇게 딱하우? 동무기대가 멎으면 월계획은 다하는게 아니요. 웬만하면 좀 월계획을 끝낸 다음에 보기요. 이달 지나서는 시간을 달라는대로 줄테니까.〉

정동무는 눈길을 떨어뜨리고 물끄러미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몇번 끄덕끄덕 하더니만 몸을 돌려 다시 사무실에서 나가고말았습니다.

어깨가 축 처져 돌아나가던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나의 눈에 아프게 새겨지던지.… 그때만 해도 그 동문 직맹원이였습니다.

그날 점심을 먹을 때 보니 정동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후 작업시간이 빠듯해서야 나타났는데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습니다. 다음날도 역시 그랬습니다. 집이 좀 멀어서 늘 점심밥을 싸가지고 오군 하던 그가 왜 매일 집으로 가군 하는지 통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잡은 기대에서도 작업능률이 오르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어느날에는 점심에 집으로 달려갔다가 끝내 늦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때 난 그의 기대에 대해 파악이 없었습니다. 멎어있는 기대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때 내가 그를 대신할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정동무가 바빠맞아서 기대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정동무, 내 이제부터 동무의 보조공으로 일하겠소.〉

〈?!〉

그날부터 나는 틈틈히 볼반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퇴근한 뒤에도 다음교대에 나온 기대공과 함께 기대를 돌렸습니다. 원래 기대공들은 자기 기대를 붙잡고 하루해를 다 보내기때문에 누구와도 말할 기회가 드문데 그런중에서도 예범동무는 열흘에 두서너마디 말을 할가말가한 사람이였습니다. 벙어리가 아닌가 하고 생각될 지경이였지요. 그러나 같이 일하느라면 문제가 좀 다르단 말입니다. 처음엔 그가 말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차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꿈은 천리마기수의 영예를 지니고싶은것이였고 그러기 위하여 우선 기능을 높이는데 모를 박아 더 많은 제품들을 더 빨리 가공해내자는것이였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오직 자기가 다루는 기대속내만 꿰뚫어보다나니 어느덧 기대와만 말을 나누고 정을 나누게까지 되였다는것이였습니다. 그 동무가 조퇴를 받으려고 했던것은 안해가 해산을 하였기때문이였습니다.

생산은 긴장했지만 집에 혼자있는 안해의 모습이 그를 불판우에 올려놓은것처럼 불안하게 했습니다. 전쟁통에 부모형제를 다 잃은 외로운 두 사람이 모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동무 마음이 오죽하였겠습니까. 그래서 생각한것이 점심시간에라도 집으로 뛰여가는것이였습니다. 그러니 일에서 능률을 더 낼수가 없었던것입니다. 그걸 알았을 때 나는 가슴이 질리우고 속이 떨렸습니다. 마치도 뒤골을 한방망이 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였습니다.

누구보다 일 잘하고있는 성실한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속마음을 더 뜨겁고 깊이있게 헤아려보았어야 할 내가 어쩌면 소 닭 보듯 해온것만 같아 쿡쿡 심장까지 아파났습니다. 나의 고충을 다 알게 된 어머니가 그때 발벗고나서 도와주었습니다. 정동무의 집을 찾아가 산모시중을 친정어머니의 심정으로 돌보아주었던것입니다.

난 후에… 상급당조직을 찾아가 자신을 뼈가 저리게 반성하였습니다. 사람 하나를 알자면 그와 소금 한독을 다 먹으라고 했는데 이제부터 이 공장, 이 직장에서 한생 이들과 함께 살면서 동지로 뜻을 같이 하겠다는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이렇게 이 직장에서 일하고있습니다. 난 그저 내가 아는 이 사람들속에서 모든 기쁨을 맛보군 합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서로 알게 되구 믿게 되구 그 믿음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예범동무와 같은 마음을 보게 될 때의 심정을 나는 지금도 행복이 아닌 다른 말로는 표현할수가 없습니다.》

나는 꼭 아름다운 별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였다.

무한한 사랑으로 빛나는 그의 두눈을 보는 내 마음은 황홀해졌다. 우리의 생활속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것은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좋은 사람!)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나는 동우진비서를 뜨거워지는 눈으로 바라다보았다. 그와 더불어 사랑과 정으로 얽히고 맺아진 이런 아름다운 화원을 펼치여준 우리 당에 한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어졌다.

《정예범동무는…》 하고 그는 이런 말로 끝을 맺았다.

《그후 기계공업의 현대화에 따라 새로 직장에 받아앉히게 된 만능원통연마기의 주인이 되였구 아시다싶이 맡은 기대에서 다시 또 1인자로, 혁신자로 일을 잘하고있습니다. 그 나날속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지니게 되였습니다.》

동우진은 정예범을 잘 소개해줄것을 신신당부하였다. 부탁하는 그의 눈가에 후더웁게 타고있던 사랑의 그 미소!

그는 어제도 오늘도 마음에서 마음에로 통하는 문을 여는 사람이였다.

 

×

 

나는 어머니의 취재수첩을 덮었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퍼그나 많이 흘러왔다.

천리마대고조시기, 《80년대속도》창조시기, 그리고 오늘의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시기…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뚫고 걸음걸음 창조와 변혁으로 이어져온 무수한 생활의 매 갈피마다에는 이렇듯 사심없이 사람들을 위훈의 한길로만 손잡아이끌어준 뜨거우면서도 다심한 어머니당의 손길이 슴배여있는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취재수첩을 보면서 동우진과 같은 혁명선배들의 뒤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겠는가를 새삼스럽게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정이 통하면 뜻이 통하고 뜻이 통하면 동지가 되는 법이다라고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며.

밤은 깊어간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더 깊어진다.

오늘밤은 끝없는 사색을 불러주는 좋은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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