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7호에 실린 글

   

     □ 단편소설 □

 

                                                          김 대 성

                                     

1

 

태양절을 맞으며 모스꼽스끼는 그리도 바라마지 않던 소원을 성취하여 참으로 오래간만에 평양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외교려권을 가지고 어느 나라의 국경이든 마음대로 넘나들었는데 쏘련의 붕괴와 함께 일반려권조차 구할수 없는 처지에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이번에 조선대사관에서는 모스꼽스끼의 간절한 소원을 알게 되자 그가 평양을 방문할수 있도록 해당한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 고마운 사람들은 모스꼽스끼가 한때 평양주재 쏘련대사로 사업한것을 오늘까지도 잊지 않고 이런 친절을 베풀어준것이였다.

오매에도 그립던 평양에 찾아가서 오늘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 영생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경모의 마음을 담아 삼가 인사를 드리자는것이 모스꼽스끼의 소원이였다.

주체의 최고성지인 금수산기념궁전광장에 들어선 그는 광장정면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뵈옵게 되자 가슴이 뭉클해져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을 접견해주실 때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환하게 웃으시며 《모스꼽스끼동무, 반갑습니다. 자, 어서 오시오.》라고 친절하게 맞이해주시는듯싶었다.

이것은 국가수반과 외국대사와의 접견때에 흔히 있기 마련인 외교적이며 공식적인것을 초월한 동지적인 상봉이였다.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자기를 전우처럼, 친구처럼 대해주시는 그이앞에서 모스꼽스끼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고 그럴수록 죄송함으로 하여 얼굴이 뜨거워지군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본국의 지도부는 크레믈리가 사회주의나라들의 참모부라도 되는듯이 과신하고있었다. 때문에 저희들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이 나라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이모저모로 압력을 가하려고 시도하군 했었다. 그러다나니 대사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선임대사는 주재국에서 쏘련의 대외정책을 적극적으로 집행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처신한다는 리유로 소환되였다. 외무성의 미국담당국에서 사업하던 모스꼽스끼는 그 후임으로 자기가 선정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러나 크레믈리의 지도자는 쏘미간의 관계개선에서 적극적인 활동력과 신축성이 있는 외교적수완을 보여준 그를 평양에 주재시킬 둘도 없는 적임자로 선정한것이였다.

그럴만한 리유는 충분했다.

행성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자처하는 두 초대국인 쏘미의 관계는 서로 경계하면서도 리해하고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가고있었는데 지나칠 정도로 반미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평양에 의하여 그 관계가 파국적인 사태에 처할 우려가 다분했던것이다. 조미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된지도 15년이 되였지만 조선반도의 정세는 완화되기는커녕 더 악화되고있었으며 거기서 불꽃이 이는 경우에는 세계가 다시금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야 했다. 지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도 돌이켜보기에 끔찍한것이지만 이제 겪어야 할 제3차 세계대전의 참화는 다름아닌 핵전쟁으로 인한것이기에 상상해보기조차 몸서리쳐지는것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시작된 쏘미간의 핵경쟁은 오늘에 와서 행성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폭탄으로 되였다. 쏘련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생산해놓은 핵폭탄들을 일시에 터뜨리면 지구가 산산쪼각나는 판이다.

그 싸움에서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이겠는가?

그런즉 변화된 국제적환경은 서로 대립되여 대결하던 두 세력이 무모한 핵전쟁을 피하여 될수록 사이좋게 지낼것을 요구한다고 크레믈리의 두뇌진은 생각했다.

이른바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제때에 리성을 회복한 두 세력의 대표자들은 워싱톤에서 상봉하고 키스를 했다.

이것이 심히 굴욕적인 처사임에도 불구하고 쏘련의 지도부와 외교관들은 핵참화의 위협으로부터 전체 인류를 《구원》해낸 자부심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는데 그때 워싱톤회담의 전제조건을 마련하기 위하여 맹활약한 모스꼽스끼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과 양보는 《까리브해위기》를 발생시켰다. 세계평화와 안전이라는 대의명분에 의하여 미국의 코앞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자그마한 섬나라가 침몰직전의 위기에 처하게 되였던것이다.

국제당의 행세를 하던 크레믈리로부터 배반당하고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미국에 의하여 봉쇄된 그 나라를 지지해나선것은 평양이였다.

평양의 목소리는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통에 쏘련의 지도부는 현대수정주의의 더러운 정체를 더 적라라하게 드러냈고 미국은 꾸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일단 해체하지 않을수 없었다.

바로 이때로부터 모스크바는 날로 커지는 평양의 영향력에 우려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으며 따라서 평양에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던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소득이 없기에 대사를 교체한것이였다.

평양에 어찌도 정이 들었던지 거기서 떠나온것을 몹시도 서운해하는 선임대사는 모스꼽스끼를 바래워주며 쓰겁게 말했다.

《크레믈리는 확실히 과대망상증에 걸린것 같소. 조선이 뭐 우리 장단에 춤을 추는 동유럽나라들과 같은줄 아오? 당신이 대미외교에서 솜씨를 보였다고 하지만 평양에서는 그런게 통하지도 않을거요.》

《길고 짧은거야 대봐야 알지요.》

《그럼 어디 한번 솜씨를 발휘해보오. 당신은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게 되면 자기가 무엇을 오산했는가를 인차 깨닫게 될거요.》

 

2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로동운동의 탁월한 지도자로 공인되여있는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하여 모스꼽스끼는 제나름의 일가견을 가지고있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김일성동지는 한 세대에 미일 두 제국주의와 싸워이긴 군사가로서 반제반미적립장이 매우 투철한분이시였다.

시대가 달라진 오늘에 와서 그러한 반제반미적인 립장이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였다.

모스꼽스끼는 외교를 예술로 간주하고있었다. 그의 외교생활의 대부분은 적대되는 세력의 전쟁광신자들을 구슬리고 어루만져주어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나날속에 흘러갔다.

그는 이 나날에 탐욕스럽고 리성이 부족한 전쟁광신자들을 길들이려면 때에 따라 타협과 양보가 불가피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조미간에 조성되여있는 뿌리깊은 불신과 첨예한 대결을 해소하고 완화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외교적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해볼 생각이였다.

평양에 도착한 모스꼽스끼는 우선 신임장을 봉정하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접견을 받게 해줄것을 외무성에 정중히 요청하였다.

그 요청은 즉석에서 수락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내각청사의 검소하게 꾸린 집무실에서 그를 접견해주시였다. 그 집무실은 요란하게 장식한 다른 나라들의 대통령관저나 궁전들과는 너무나도 대조를 이루었다. 대체로 국가수반들은 외국대표를 공식적으로 접견할 때 틀을 차리고 위엄을 돋구려고 애를 쓰는것이 상례였다.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어쩌다 웃음을 지어보이는 순간에조차 그것이 넘을수 없는 장벽으로 느껴지는것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장벽을 허물고 친교를 맺으려면 외교적수완과 함께 적지 않은 시일과 노력이 필요했다.

외교적인 관례에 따라 격식을 차려서 신임장을 봉정한 모스꼽스끼는 예상외로 친절하고 소탈하게 자기를 대해주시는 김일성동지앞에서 일순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반갑습니다. 모스꼽스끼동무, 우린 초면이지만 구면친구나 다름이 없습니다.》

《예?!》

《우리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하면서 제국주의를 반대하여 한전호속에서 싸우는 전우들이 아닙니까.

자, 어서 앉으시오.》

역시 반제적인 립장이 매우 투철한분이시구나.

모스꼽스끼는 이런 생각을 하며 덤덤히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이끌어 자신의 곁에 앉히시였다. 그리고는 먼저 쏘련의 당과 정부 지도자들의 안부를 물으시고 소환된 이전 대사의 안부까지 물어주시였다.

《나는 그와 허물없이 지냈습니다. 당신과도 그렇게 지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친절히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사이에 무슨 그런 인사가 필요한가고 가볍게 나무라시였다.

《앞으로 나를 만나고싶으면 아무때든지 찾아오시오. 우리 함께 두 나라사이의 친선협조관계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 자주 의논하고 머리를 쉬울겸 낚시질을 하거나 사냥도 합시다.

이전 쏘련대사는 사냥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는 로씨야사람들이 사냥하기를 매우 즐긴다고, 대문호인 똘스또이와 체호브도 유명한 사냥군이였다고 자랑했습니다. 참, 당신도 사냥을 좋아합니까?》

모스꼽스끼는 별치 않은것 같은 이런 질문에 그 어떤 의미심장한것이 깃들어있을것만 같아서 자신의 철저한 평화애호적인 립장을 에둘러서라도 표명해드리기로 했다.

《저는 사냥총을 만져본적도 없습니다. 총소리를 듣거나 화약내를 맡으면 속이 좋지 않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모스꼽스끼의 내심을 꿰뚫어보신듯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좋아합니까?》

모스꼽스끼는 변명조로 말씀드렸다.

《저는 그저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기를 좋아합니다.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가면 극장과 미술박물관에
먼저 찾아가군 합니다.》

《그건 아주 고상한 취미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평양에도 세상에 자랑할만 한 학생소년궁전과 대극장이 있고 미술박물관도 있습니다.》

모스꼽스끼는 소박하게 꾸린 집무실을 새삼스레 둘러보고나서 고개를 기웃거렸다.

《저… 학생소년궁전이란 무엇입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랑겨운 어조로 대답하시였다.

《말그대로 학생소년들의 궁전입니다. 아이들이 과외에 모여와서 자기의 취미와 소질에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그림도 그리고 체육과 오락을 즐기는 곳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참 재능이 있습니다.》

이 순간에 모스꼽스끼의 눈에 비낀 김일성동지의 모습은 수령이라기보다 자식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한가정의 아버지였다.

《저… 실례의 말씀이지만 귀국에서는 아직 국가수반이 사업할 관저를 짓지 못한것 같은데 어째서 아이들에게 먼저 궁전을 지어주었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왕이니까요.》

모스꼽스끼는 정녕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나라들을 다녀보았지만 아이들을 왕으로 떠받드는 그러한 나라, 그러한 수령은 처음으로 보게 되는것이였다.

《왜 놀랍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다 미래의 주인인 그 애들을 위한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후복구건설시기에 해야 할 일들이 많고 부족되는것도 많았지만 평양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학생소년궁전부터 먼저 지어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지방들에도 그런 궁전을 다 지어주려고 합니다.》

김일성동지의 자애에 넘치신 모습을 우러러보면서 모스꼽스끼는 이분이야말로 평화를 가장 사랑하는분임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는 선물로 가지고 온 미술작품을 김일성동지께 삼가드리면서 이렇게 말씀을 올리였다.

《이건 〈쓰딸린국제평화상〉을 수여받은 비까쏘가 직접 그린 명화 〈비둘기〉입니다.

나는 총비서동지께서 조선반도의 정세를 안정시키는데 보다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술작품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더니 고맙다고 사의를 표시하시였다.

모스꼽스끼는 용기를 내여 속에 품고있던 조미간의 관계개선문제를 언급했다.

《지금 조미간에 조성되여있는 첨예한 대결을 완화시키는것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귀국이 미국과 앞으로는 사이좋게 지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은 쏘련의 안전과 리익에도 전적으로 부합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모스꼽스끼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시더니 단호한 어조로 언명하시였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와 결코 사이좋게 지낼수 없습니다.》

모스꼽스끼는 갑자기 철벽에 부딪친 심정이였다.

《지금이야 평화공존의 시대가 아닙니까. 세계적인 추세로 보아도…》

《지금은 자주성의 시대입니다.》

《예?!》

모스꼽스끼는 저으기 당황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결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생각해보시오. 미제가 우리 나라의 절반땅을 강점하고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미국과 사이좋게 지낼수 있겠습니까. 미제의 침략적인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은 날로 우심해지고있습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며 귀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걸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약 미제가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려 한다면 호된 징벌을 받게 될것입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립장은 이처럼 단호하고 명백했다.

조선은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자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가만있지 않을것이다, 그 만약의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스꼽스끼의 심정은 불안하고 착잡해졌다.

 

3

 

모스꼽스끼가 내심 우려하던 그 만약의 경우는 끝내 닥쳐오고야말았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주체57(1968)년 1월 23일.

조선인민군 해군경비정은 정상적인 순찰근무를 수행하던중 령해깊이 침입한 미제무장간첩선《푸에
블로》호를 나포하였던것이다.

모스꼽스끼가 아니, 쏘련의 지도부가 우려하던바 그대로 조선반도의 해상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즉시에 전세계를 폭풍전야와도 같은 초긴장상태에 몰아넣었다.

새벽 2시에 이 급보를 받고 침실에서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온 죤슨대통령은 부랴부랴 긴급안전보장
회의를 열고 《푸에블로》호는 해양관측선으로 공해상에 있었다느니, 때문에 그 배를 나포한것은 북조선의 도발행위라느니, 그 배와 승무원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평양과 원산을 폭격하겠다느니, 《유엔》에 이 사건을 상정시켜 국제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느니 하고 떠들어댔다.

한편 평양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자백서를 받아내여 정부비망록으로 세상에 공개하고 미국의 간첩행위를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로 신랄하게 규탄했다.

그러자 미국은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항공모함분함대를 조선동해로 급파하고 오끼나와에 있던 항공대를 남조선에 날려보냈다.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들은 일제히 경계상태에 들어갔다. 이에 편승하여 남조선은 전투사단들과 기갑련대, 전투비행단을 새로 편성하고 비무장지대안에까지 중무기들을 끌어들이여 만단의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죤슨은 크레믈리에 직통전화를 걸어 이번 사건이 발생하게 된데는 모름지기 쏘련측에도 책임이 있을거라고 《점잖게》 경고하면서 북조선으로 하여금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을 빨리 돌려보내도록 협조해줄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본국의 긴급호출을 받은 모스꼽스끼는 즉시 비행기편으로 모스크바에 날아갔다.

크레믈리는 모스꼽스끼를 되게 추궁하였다.

우리가 바로 당신을 평양에 주재시키고있는것은 이런 비상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푸에블로》호사건을 놓고 평양이 강경하게 나오고있어 사태가 수습할수 없을 지경으로 악화되고있는데 당신은 뭘 하고있었는가?

모스꼽스끼는 조선은 동유럽나라들과는 다르다고 그 리유를 설명했는데 결국 선임대사가 자기에게 준 조언을 되풀이한것이였다.

크레믈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이번에만은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평양이 지금처럼 계속 강경하게 나간다면 미국과의 전쟁은 피할수 없게 된다. 그 경우에 쏘련은 조선에 대한 유관국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할수 없다. 우리가 개입하면 조선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산되기때문이다. 워싱톤은 그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것이다. 이처럼 세계는 핵참화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조선은 이런 돌이킬수 없는 파국적인 후과를 예상하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기 위하여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을 돌려보내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해야 할것이다. 그렇게밖에는 달리 할수 없도록 평양을 설득시킬 임무를 받은 모스꼽스끼는 지친 걸음으로 크레믈리광장에 나섰다.

한낮이여서 날씨가 좀 푸근해졌는지 비둘기들이 나래를 펴고 광장의 상공을 유유히 감돌고있었다.

설광에 눈이 부셨다. 피로를 느끼며 두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서있던 모스꼽스끼는 뭔가 무서운 힘으로 자기의 두어깨를 내리누르는 중압감을 종시 이겨낼수가 없어 비칠거리다가 하마트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번했다. 마치 지구가 통채로 자기의 어깨우에 올라앉은것만 같았다.

뻐근한 어깨에 무심중 손을 가져가니 어느새 내려와앉았댔는지 눈처럼 하얀 비둘기 한마리가 푸드득 기세좋게 나래쳐올랐다.

푸르른 창공에 자유롭게 나래쳐가는 비둘기를 바라보노라니 긴숨이 절로 나가면서 어깨가 한결가벼워진것처럼 느껴졌다.

비둘기가 저렇게까지 무거웠단 말인가?

느닷없이 갈마드는 이런 엉뚱한 생각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그는 허거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소가 이내 사라져버린 그의 얼굴엔 다시금 난감하고 착잡한 기색이 되살아났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지. 그래서 그처럼 무겁게 여겨졌는가? 그래 평화의 무게는 지구의 무게인셈이다.

이 무거운 짐을 한몸으로 받들어올릴 위인, 평화의 수호신은 정녕 어디에 있는가?

문득 그의 눈앞에는 자신이 올린 미술작품 《비둘기》를 보시고 즐거운 미소를 지으시며 고맙다고 사의를 표시하시던 김일성동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인가, 평화인가? 선택의 권리는 바로 그분에게 있었다.

누구보다도 평화를 귀중히 여기지만 자주권도 생명처럼 여기시는 그이께 무슨 말씀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 모스꼽스끼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4

 

려객기는 밤이 퍽 깊어서야 평양비행장에 내렸다.

모스꼽스끼는 마중나온 승용차를 타고 외무성청사로 향했다. 평양은 한치앞도 가려보기 힘든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등화관제를 얼마나 철저히 했는지 어디서도 불빛 한점 새여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어둠을 깨뜨리며 우렁찬 대렬합창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는 공화국의 로농적위대

로동당이 키워낸 억센 아들딸

당과 수령을 목숨으로 보위해가며

사회주의전취물을 지켜나간다

나가자 적위대 항일의 전통이어

나가자 적위대 굳게 뭉쳐나가자

 

그 노래소리를 들어보니 언제 대공습이 진행될지 모를 밤거리를 행진하며 기세를 올리는것은 로농적위대원들이였다.

제2차세계대전시기 봉쇄된 레닌그라드나 최후의 지탱점으로 되였던 쓰딸린그라드를 방위할 때 민간무력이 큰 역할을 한것은 주지의 사실이였다. 쓰딸린그라드시민들은 군수생산을 하면서도 매일 18만여명이나 떨쳐나와 방어공사를 하였으며 5만여명의 《인민의용군》을 조직하여 붉은군대와 함께 4개월간이나 도시를 지켜내고 전전선에서 반공격으로 넘어가기 위한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았던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핵전쟁이 터지면 군대가 무색해지는 판인데 기껏해야 보총정도로나 무장한 민간무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모스꼽스끼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외무성에 들려서 위대한 수령님을 빨리 만나뵙게 해달라고 요청한 다음 대사관으로 갔다.

평양시내의 분위기는 기세충천하고 전투적인데 대사관의 분위기는 함락직전의 운명에 처한 도시에서 피난을 앞둔것처럼 자못 어수선했다. 직원들과 가족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갖추어놓고 소환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다른 대사관들의 실정도 마찬가지라는것이였다. 그들은 보따리를 싸놓고 쏘련대사관의 눈치를 살피고있었다. 쏘련대사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다른 나라의 대사나 무관들이 승용차를 타고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이것은 《까리브해위기》때 아바나에 주재한 대사관들에서 벌어졌던 소동을 방불케 했다. 그때 꾸바앞바다에 미국군함들이 나타나자 적지 않은 외교관들이 이 핑게, 저 핑게를 대고 본국으로 꼬리를 사렸었다. 그러나 조선대사관은 대사를 포함한 직원들과 가족들모두가 형제적꾸바인민들과 함께 싸울 결사의 각오로 손에 무장을 잡았다.

봉쇄된 꾸바가 여기서 큰 고무를 받았다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조선대사관은 꾸바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쏘련미싸일들보다 더 위력한 정치사상적무기로 되였다.

모스꼽스끼는 국제적의무에 이처럼 충실한 조선인민을 배신한다는것은 씻을수 없는 죄악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다름아닌 이런 경우에 다른 나라 대사들이 눈치를 보지 않을수 없는 쏘련대사이기에 발언과 행동에서 최대의 신중성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쏘련대사관은 철수할 생각이 없으며 그런 행동은 시기상조라고 력설했다.

《쏘련대사관은 박두한 전쟁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당신들도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일것을 호소합니다.》

동유럽의 어느 나라 대사가 미덥지 않은 기색으로 물었다.

《당신은 파국적인 현상태에서 외교적인 노력으로 평화를 담보할수 있다고 봅니까?》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지요.

여러분, 나는 래일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접견을 받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전쟁을 바라지 않으며 평화를 귀중히 여기십니다. 그것을 나는 여러기회에 확신할수 있었습니다. 이제와서 파괴를 받아들이기에는 조선인민이 땀을 흘리며 건설해놓은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모스꼽스끼는 이런 론거로 다른 외교관들을 일단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하지만 마음은 무겁고 불안했으며 자신심이 생기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모대기던 그는 방안을 거닐다가 지구의앞에서 멈춰섰다.

광대한 령토를 차지한 자기의 조국이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북돋아주며 시야에 벅차게 안겨왔다. 지구의를 빙그르르 돌리자 또하나의 초대국인 미국이 나타났다.

그는 무심결에 세계군사정치세력의 량극을 이루는 두 초대국을 대비적으로 살펴보았다.

 

쏘련: 면적 2 240만평방키로메터

미국: 면적 938만여평방키로메터

 

그런데 조선은 면적으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너무도 작은 나라가 아닌가. 게다가 불행하게도 북과 남으로 분렬되여있다. 그렇다면 북조선의 면적과 인구수는 도대체 얼마인가? 경제력은? 군사력은? 미국과 맞서싸워 승산이 있겠는가? 쏘련이라는 든든한 성벽에 의지하지 않고서 이 나라가 과연 존재할수 있겠는가?

모스꼽스끼는 가슴을 쭉 펴며 긴숨을 내쉬였다.

번거롭고 착잡하기 그지없던 사색이 이런 곬을 타고 흘러가자 도저히 불가능하게 여겨지던것도 가능해보였으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자신심도 생겨나는것이였다.

 

5

 

모스꼽스끼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반항공대책이 철저히 세워진 최고사령부의 작전실에서 자기를 접견해주실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가 의례국장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곳은 너무도 낯익은 내각청사의 그 소박하게 꾸려진 집무실이였다.

나들문을 열자 뜻밖에도 가을날에 들길에 나선것처럼 무르익은 낟알향기가 감미롭게 풍겼다. 집무탁의 앞상에는 놀랍게도 벼이삭과 강냉이, 감자와 호박을 비롯한 농산물들이 차례로 놓여있었는데 한결같이 잘 여문 우량종들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얹으신채 매우 만족한 기색으로 그것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모스꼽스끼가 정중히 인사를 드리자 그이께서는 반색을 하시였다.

《모스크바에 다녀왔다던데 건강은 어떻습니까?》

모스꼽스끼는 떳떳치 못한감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었다.

《수령님께서 념려해주시는 덕분에 전 언제나 건강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더니 근심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아니, 내 보기엔 당신이 몹시 피로한것 같습니다. 며칠간 푹 쉬는것이 좋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집무탁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물동이처럼 커다란 호박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려보시였다.

《잘 여물었거던. 이걸 쪄놓으면 참 별맛입니다. 우리는 일제와 싸울 때 호박으로 며칠씩 끼니를 에운적이 많았습니다.》

소중한 추억에 잠겨 말씀하시던 그이께서는 묻는듯 한 기색으로 덤덤히 서있는 모스꼽스끼를 돌아보시더니 빙그레 웃으시였다.

《이건 어느 한 협동농장에서 시험적으로 심어본 우량품종들입니다. 작년에 전반적으로 농사가 아주 잘 되였습니다. 대풍입니다. 이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구수한 낟알향기에 머리가 다 거뜬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목전에 다닥친 엄중한 정세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는듯싶으시였다.

《나는 대풍을 이룩한 우리 농업근로자들을 축하하여 평양에서 농업대회를 성대히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경사에 경사가 겹쳤습니다.》

경사에 경사가 겹치다니?!

모스꼽스끼는 완전히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친절히 설명해주시였다.

《다가오는 2월 8일은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킨지 스무돐이 되는 날입
니다. 이 뜻깊은 날을 그저 지내보낼수 있습니까? 뒤이어 농업대회를 열어야 하니 경사가 겹쳐졌다는겁니다.》

이처럼 화제가 처음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통에 모스꼽스끼는 조급해졌다.

《저… 실례입니다만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하시겠는지 전 그걸 알고싶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즐거운 경음악을 감상하다가 불쑥 튀여나온 불협화음을 들으신듯 약간 미간을 쪼프리고 모스꼽스끼를 주시하시였다.

《〈푸에블로〉호라?! 참, 당신은 그것때문에 모스크바에 갔댔습니까?》

상대방의 심중을 낱낱이 꿰뚫어보고 직방으로 물으시는 그 말씀에 모스꼽스끼는 솔직히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귀국에 조성된 엄중한 위기를 쏘련이 어떻게 수수방관할수 있겠습니까. 크레믈리에서는 이 사건이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때문에 몹시 우려하고있습니다.》

《우려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뇌이시더니 엄해진 안색으로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하긴 죤슨은 얼마든지 그런 모험을 할수 있는 대통령입니다. 〈바크보만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닙니까.》

모스꼽스끼는 무엇에 찔리우기라도 한듯이 흠칫 몸을 떨었다.

몇해전 여름 어느날, 미국간첩선들인 《마도크스》호와 《다나죠이》호가 북부윁남의 해안에 접근하다가 윁남인민군 경비정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을 구실로 수십대의 비행기와 군함들을 윁남민주공화국의 령해인 바크보만에 침입시켜 북부윁남의 령토에 함포사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윁남인민군이 반격으로 나오자 죤슨대통령은 윁남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명령했으며 50만이상의 미군을 남부윁남에 투입시켰다.

이 사건이후 윁남에서의 전쟁은 계단식으로 확대되여 전면전쟁으로 번져진것이였다.

만약 그때 쏘련이 외교적인 압력을 가했더라면 미국은 감히 그런 전횡을 부리지 못했을것이였다.

그런 까닭에 모스꼽스끼는 그 사건을 상기하게 되는것이 괴로왔으며 죄의식조차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그래 어떻습니까? 〈푸에블로〉호사건과 〈바크보만사건〉이 류사하지 않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 쏘련의 립장과 태도를 념두에 두고 하시는 질문인것 같아서 모스꼽스끼는 몹시 난처해졌다.

《죤슨은 그런 전적을 지닌 호전적인 대통령입니다. 그는 재작년 가을에 남조선에 날아들어 괴뢰들에게 〈국토통일〉을 위한 준비를 갖추라고 훈시했으며 군사분계선에까지 나와서 참호들을 싸다니며 우리와의 힘의 대결을 고취했습니다.

때문에 나는 이 사건을 우발적인것이 아니라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이라고 봅니다.》

《푸에블로》호사건의 본질을 명백히 까밝히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옹색하게 침묵을 지키는 모스꼽스끼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주시하시였다.

《〈푸에블로〉호는 우리 령해에 침입하기에 앞서 쏘련령해에 들어가 간첩행위를 감행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그걸 몰랐습니까?》

립장이 더욱 난처해진 모스꼽스끼는 쏘미사이의 야릇하면서도 미묘한 관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모스크바와 워싱톤사이에는 서로의 정탐활동에 대하여 피차 묵인할데 대한 〈신사협정〉이 체결되여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쌍방이 서로 군사적우세를 차지하려고 시도하던 과정에 어쩔수 없이 스스로 이렇게 됐는데 바로 이것이 쏘련으로 하여금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귀국에 적극적인 지지와 련대성을 표시할수 없게 하는 리유로 됩니다.》

《그렇다?! 우리와 미국사이에는 그런 타협이 없었고 애당초 있을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령해에 정탐함선들을 들여보낸적이 없으며 무력을 가지고 미국을 위협한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조선을 어떻게 대하고있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격분하여 언성을 높이시였다.

《미국은 정말 오만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간첩행위를 하다가 덜미를 잡힌 주제에 사죄할대신 우리를 핵무기로 위협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 인민들뿐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진보적인류에 대한 악랄하고 파렴치한 도전입니다. 나라의 자주권을 생명으로 여기는 우리는 이 사건을 결코 조용히 처리할수 없습니다.》

모스꼽스끼는 초조해진 내심을 가리우느라 애써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세계 평화와 안전의 견지에서 귀국은 이 사건을 신축성있게 다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식적인 태도로 물으시였다.

《그렇다면 쏘련은 무엇을 바랍니까?》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을 빨리 돌려보내…》

모스꼽스끼는 짜내듯이 말씀을 올리며 갑자르다가 흠칫 굳어져버렸다.

갑자기 번개불같은것이 눈앞에서 번뜩인것처럼 느꼈기때문이였다. 그 섬광이 자기의 가슴을 뚫고들어와 심장을 찌른것만 같았다. 뒤미처 주먹으로 집무탁을 내려치는 소리가 우뢰소리처럼 울리는듯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환각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몹시 심각하고 근엄하신 안색으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신채 모스꼽스끼를 찬찬히 여겨보고계실뿐이였다. 마치 그를 통하여 질적으로 변질된 쏘련의 실태를 재삼 확인해보시는듯싶었다. 일순 비꼈던 분노가 사라진 그이의 눈빛에는 불치의 병에 걸린 환자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시는듯 한 안타까움과 동정이 어려있었다.

모스꼽스끼는 그만에 자신심을 잃어버리고 주눅이 들었으며 처음으로 느껴보는 렬등감과 수치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는 고개를 떨구면서도 이렇게 부언했다.

《그런 정도의 양보도 없이야 어떻게 전쟁위험을 가실수 있겠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참기 어려운 자제력을 발휘하고계신듯 고르롭지 않은 숨을 내쉬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다름아닌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문제이기때문에 사소한 타협이나 양보도 있을수 없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미국놈들을 단단히 혼쌀내서 버릇을 가르켜주자는것입니다.》

모스꼽스끼는 한방망이 되게 얻어맞은듯 한 심정이였다.

《우리가 국제적인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응당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이 앞으로는 혁명하는 작은 나라들을 깔보고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게 됩니다.》

모스꼽스끼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전쟁은 불가피하다는겁니까?》

《미국이 우리를 계속 위협하고 공갈하면 재미가 적을것입니다. 신성한 우리 령토에 미국제폭탄이 한발이라도 떨어지면 즉시에 〈푸에블로〉호 승무원전원이 총살될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제라도 죄과를 인정하고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한다면 달리 될수도 있을겁니다.》

모스꼽스끼는 자기의 외교적인 노력이 아니, 쏘련의 압력이 이 접견석상에서는 통하지 않으며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수 없다는것을 통절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만 작별인사를 드리려는데 문득 이전 미국무장관이였던 덜레스가 입버릇처럼 뇌이던 말이 생각났다.

《전쟁접경에서 균형을 이룩한다. 이러한 균형이 없이 미국은 단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다. 미국의 외교는 이에 기초하여 진행되여야 할것이다.》

지금 조미간에 판문점을 내놓고는 외교적인 통로가 전혀 설정되여있지 않았다. 실정이 이러하기에 모스꼽스끼는 워싱톤과 평양과의 간접적인 협상에 중개인으로 나선셈이였다. 미국은 지금 덜레스가 제창한 상투적인 수법대로 정세를 전쟁접경에 몰아넣고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을 당장 돌려보내라고 호통치고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바라는 균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미국이 힘을 사용하리라는것은 너무도 명백했다.

모스꼽스끼는 이대로 물러설수가 없었다.

《저… 이건 제 개인적인 부탁입니다만 심사숙고해주십시오. 전쟁이 일어나도 쏘련은 유관국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할수 없을겁니다. 때문에 〈푸에블로〉호사건은 〈바크보만사건〉의 참극을 반드시 되풀이하게 될것입니다. 나는 귀국인민이 허리띠를 조이며 땀흘려 건설해놓은 이 아름다운 수도가 무차별적인 폭격에 페허로 되는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렇게 간청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정이 담겨져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어둠에 잠긴 창밖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그이께서는 뜻밖에도 미소가 어린 눈길로 고개를 돌리시였다. 그 미소는 불안에 휩싸여 전전긍긍하고있는 모스꼽스끼의 마음을 따뜻이 어루만져주는듯싶었다.

《우리를 진정으로 념려해주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건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전쟁위협을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받는게 아닙니다.》

그 말씀을 듣고서야 모스꼽스끼는 이 크지 않은 나라가 미국의 전쟁도발책동이 어느 하루도 그칠새 없는 상태에서도 끄떡없이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하여왔다는 세상이 다 알고 경탄하는 그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것이였다.

《우리가 호박으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일제와 싸워 이겼는데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하고 해마다 대풍을 이루는 오늘에 와서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미국놈들은 우리를 감히 어쩌지 못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의미있는 눈길로 모스꼽스끼에게 집무탁우에 있는 알알이 무르익은 낟알들을 가리켜보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풍년농사를 지은 농장원들을 축하하여 계획대로 농업대회도 하고 2월 8일도 성대히 기념하려고 합니다.》

《예?!》

모스꼽스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그는 제노라 하는 군사가, 정치인들을 적지 않게 만나보았지만 이처럼 강철의 심장, 강철의 담력을 지닌분은 처음 뵈옵는것이였다.

《나는 그 경축연회에 당신과 부인을 초청합니다. 거기서 다시 만납시다.》

모스꼽스끼는 고맙다는 인사도 미처 올리지 못했다. 그럴만 한 마음의 여유조차 그에겐 없었던것이다.

 

6

 

대사관에 돌아온 모스꼽스끼는 김일성동지와의 접견정형을 요약한 긴급전문을 모스크바에 보냈다.

그러면서 이 전문이 즉시에 직통전화로 워싱톤의 백악관에도 가닿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미국은 가만있지 않을것이였다. 쏘련외무성에서 만든 참고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국은 이런 경우에 무력으로 보복하지 않은 례가 한번도 없었다. 그러니 이 나라의 수도에 대한 대공습은 시간문제다.

그것이 오늘인가? 아니면 래일인가?

밤하늘에서는 요란한 우뢰소리가 울려오고 번개불이 번뜩이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소나기는 쏟아져내리지 않았다. 왜서인지 미국은 다리 부러진 장수가 집안에서 호통을 치듯이 법석 고아대면서도 정작 어쩌지는 못하는것이였다.

날을 따라 악화일로로 줄달음치는 첨예한 정세속에서 며칠간이 지나 드디여 2월 8일이 왔다.

평양은 이른아침부터 명절분위기에 휩싸였다. 축하의 꽃보라인양 함박눈이 춤을 추며 내리는 시내의 이르는 곳마다 람홍색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렸다.

국가경축연회가 곧 진행되게 될 옥류관의 대기실에서는 동부인을 한 여러 나라 외교관들이 요즘 어디서나 화제의 중심이 되군 하는 《푸에블로》호사건에 대하여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있었다.

《이제보니 미국은 종이범입니다. 당장 벼락을 칠듯이 고아대면서도 정작 평양하늘에 〈까마귀〉한마리 날려보내지 못하는군요.》

《그럼 조선은 뭐라고 해야 할가요?》

《비록 크지 않은 나라지만 전민이 무장하고 전국이 요새화되여있으니 호랑이도 범접을 못하는 고슴도치라고 불러야지요.》

《그러고보면 이 나라가 초대국인셈입니다. 덩지가 크지만 할 말도 변변히 못하는 그런 나라는 약소국인거예요.》

이처럼 쏘련을 빗대놓고 비난하는 소리도 들린다. 모스꼽스끼는 그 신바람난 이야기판에 끼여들지 못하고 외토리가 된채 멋적게 서성거렸다.

크레믈리가 우려하던바와는 너무도 상반되게 《푸에블로》호사건은 날이 갈수록 조선의 위신을 최절정에로 끌어올리는 반면에 미국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내보이고있었다. 아울러 쏘련의 영향력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게 해주는것이였다.

꾸바대사가 여느때없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까리브해위기》가 있은 다음부터 꾸바외교관들은 이러루한 장소에서 쏘련외교관들을 만나게 되면 쌀쌀하게 외면하군 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알수 없었다.

《요즘 모스크바의 날씨가 어떻습니까?》

모스꼽스끼는 뭔가 도전적인것이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그 질문에 은근히 긴장해졌다.

《좋습니다. 춥긴 하지만 고기압이 계속되고있으니까요.》

아닐세라 꾸바대사는 짜장 놀라는 기색이였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워싱톤이 저기압인데두요?》

《당신은 모스크바와 워싱톤이 한 위도선상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스꼽스끼의 반문에 상대방은 픽 웃었다.

《물론이지요. 지리적으로는 다를테지만…》

《위도란 어디까지나 지리적인 개념이지요.》

《정치적인 개념의 위도도 있을수 있지 않을가요? 이거 명절날에 부질없는 언쟁을 걸어서 실례합니다. 참, 당신은 〈푸에블로〉호가 나포될 때 함장이 어떤 추태를 부렸는지 아십니까?》

모스꼽스끼는 별스레 이죽거리는 상대방을 덤덤히 쳐다보기만 했다.

《듣자니 〈푸에블로〉호의 지휘소에 뛰여올라가서 로이드 마크 부처중좌님의 가슴팍에 총구를 들이대며 〈손들엇!〉하고 웨친 해병은 애젊은 병사라고 합니다. 함장은 두손을 번쩍 들었지요. 그런데 다음부터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겁니다. 그 병사는 마침 펼쳐진채로 있는 해도우에 연필로 양키의 대갈통을 그리고 곁에 의문부호를 쳐보였지요. 그러자 함장은 제꺽 연필을 받아쥐고 물음표옆에 83이라는 수자를 적어넣더라나요.

그 광경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그대로 정치만화지요.》

주위에 있던 외교관들과 부인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조선의 해병들은 정말 용감무쌍합니다. 그런데 당신네 해병들은 그렇게 많은 함선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자기 령해에 들어온 간첩선을 못본척 했다면서요?》

모스꼽스끼는 수치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이 수치감은 커다란 의문부호를 남겨놓았다.

우리는 령토상으로나 인구상으로, 국방력에 있어서나 경제력에 있어서 초대국인것만은 사실이다. 우리의 함대 역시 배수량이나 무장장비에 있어서 세계최강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기의 령해를, 자주권을 지켜내지 못하고있는가? 《신사협정》이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제국주의의 압력에 양보하는가? 왜 양보하고 구걸하지 않고서는 평화를 유지할수 없는가? 결국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누가 지키고있으며 무엇에 의하여 담보되고있는가?

그의 머리속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이런 심각한 의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려는듯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고 활기에 넘친 걸음으로 연회장에 들어서시였다.

연회참가자들은 물론 온 나라가, 전세계가 경모의 정을 담아, 하지만 자못 긴장한 눈빛으로 강철의 령장이신 그이만을 지켜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장중히 울려퍼지던 애국가의 음향이 잦아들자 마이크앞에 나서시였다.

감회가 깊은 눈길로 장내를 둘러보신 그이께서는 먼저 정규적인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된 영웅적조선인민군이 걸어온 자랑찬 승리의 로정을 개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지금 세계최대의 관심사로 되고있는 《푸에블로》호사건에 대한 조선의 립장을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단호히 표명하시였다.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이 계속 무력을 동원하여 위협공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로부터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을것입니다. 있다면 오직 시체와 죽음뿐일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입니다.》

이것은 그대로 침략과 략탈의 원흉인 미제에게 내리는 최후통첩적인 준엄한 경고였으며 지구를 통채로 뒤흔들어놓은 폭탄선언이였다.

순간 연회장에는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박수갈채가 일어번졌다.

모스꼽스끼는 박수를 칠념도 못하고 꿈을 꾸는듯 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에게는 박수갈채와 만세소리가 마치도 축포가 터져오르는 가운데 수천수만마리의 비둘기들이 푸르른 창공으로 일시에 나래쳐오르는 소리처럼 들려오는것이였다.

귀청을 아프게 하던 요란한 우뢰소리는 홀연 씻은듯이 가셔졌다. 태평양너머에서 밀려왔던 핵전쟁의 검은 구름은 비 한방울 못 떨군채 해솟는 아침의 어둠처럼 사라지고 찬란한 빛발은 이 땅 그 어디나 아낌없이 쏟아져내린다.

《오! 평화란 이런것이였구나!》

때아니게 자아망각의 신비롭고 황홀한 세계에 심취된 그는 연설을 끝마친 김일성동지께서 연회참가자들이 올리는 만수축원의 잔을 차례로 받으며 외교대표들이 있는 곳으로 친히 다가오시는것도 알지 못했다.

《모스꼽스끼동무!》

친근하신 음성이 지척에서 들려와서야 그는 자신을 되찾으며 두눈을 크게 떴다.

정오의 찬란한 태양을 바라볼 때처럼 눈이 부셨다.

붉은 포도주가 남실거리는 축배잔을 드시고 자기앞에 우뚝 서계시는분이 인간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는것이였다.

선임대사가 의미심장하게 하던 말이 불현듯 그의 귀전에 되살아났다.

《당신은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게 되면 자신이 무엇을 오산했는가를 인차 깨닫게 될거요.》

선임대사는 현명한 외교관이였다. 그는 인차 깨달았지만 모스꼽스끼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소용돌이치는 현시대의 격류속에서 어느분이 한몸으로 세계의 평화를 거인의 의지와 힘으로 떠받들고있는가를… 령토의 크기나 인구수, 경제력과 군사력, 모스꼽스끼가 나라와 민족의 위대성을 특징짓는 요인들로 생각해왔던 그 모든것이 이 순간에는 하등에 보잘것 없는것으로 여겨지는것이였다.

그렇다! 이런분을 수령으로 모시였기에 크지 않은 나라지만 조선이 위대한것이다.

《얼굴이 몹시 축간것 같구만. 걱정할건 조금도 없습니다. 마음을 푹 놓으시오.》

이처럼 자기의 마음속을 헤아려보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자애로운 그이앞에서 모스꼽스끼는 불쑥 목이 메였다. 그는 그 위대한 품에 와락 안기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며 잔을 들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 당신께서 계시는데 제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평화로운 세계를 위하여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당신과 부인의 건강을 바랍니다.》

뜻깊은 두 축배잔이 공중에서 가볍게 부딪치며 쨍그랑! 하고 귀맛좋은 소리를 냈다.

지금도 못 잊을 바로 그 순간에 모스꼽스끼는 외교관으로나 인간으로나 생의 절정에 올랐었다.

그후 그는 선임대사처럼 당치 않은 리유로 소환되였는데 오늘에 와서는 자기에게 그처럼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던 넓고넓은 나라 쏘련을 잃어버리고말았다. 한걸음으로 시작된 양보가 이런 쓰거운 패배를 초래하였던것이다.

모스꼽스끼는 자기가 오늘도 쏘련대사로서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닐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는가.

평화는 구걸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전취물임을 산모범으로 보여주신 그이께서 오늘도 여기 주체의 최고성지에서 영생하고계신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 그대로이신 강철의 령장 김정일동지께서 계신다. 하기에 조선은 미제와의 핵대결에서 또다시 력사적인 쾌승을 떨칠수 있는것이다.

그는 눈부신 태양처럼 밝게 웃으시는 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러 삼가 큰절을 올리려고 무릎을 꿇고앉은 자신을 뒤늦게야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한마리의 비둘기런듯 해빛이 찬란한 평양의 봄하늘로 높이높이 나래쳐오르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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