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소백수는 얼지 않는다

                          

                               김 도 환

 

늦가을의 음산한 마칼바람이 밀림속을 세차게 휘저으며 기승을 부리였다. 잡관목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한두개의 가랑잎들이 그 바람에 회오리치듯 하늘로 날아오른다.

살풍경을 이룬 그속으로 두 녀인이 목도리자락을 펄펄 날리며 길아닌 길을 헤쳐가고있었다. 자주색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으신 김정숙동지께서 연사지구에서의 공작을 마치시고 리경순이와 함께 창평으로 가시는 길이였다.

가쁜 숨소리를 내는 경순의 얼굴색은 흐려있었다. 행군길이 힘겨워서만도 아닌듯싶다.

《정말 언니는 너무해요.》

앞에 드리운 전나무가지를 들어올리며 마침내 리경순이 볼부은 소리를 터쳐놓는다.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도 몰라준단 말입니다.》

앞장서 걸으시던 김정숙동지께서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돌아보시였다.

《경순동무, 그런 말은 더 하지 말자요. 내가 왜 동무들의 마음을 모르겠나요. 지금은 그런데까지 신경을 쓸 때가 아니예요.》

《글쎄 정세가 아무리 어려워두 우리가 그래…》

《경순동무.》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시며 경순의 말을 막으시였다.

《어서 가자요. 창평동무들이 우릴 기다릴거예요.》

그러시고는 한걸음 더 앞서시며 잡관목숲을 헤쳐나가신다.

경순은 그이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나직이 한숨소리를 내였다.

(고지식하게 말을 뱉아놓은 내 잘못이였어.)

아까 연사읍에 들어섰을 때였다.

섬유가게앞을 지나던 경순은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환성을 내질렀다. 어린이용양털담요가 많이 들어왔다는 광고가 출입문에 나붙어있는것이였다.

《언니…》

그는 주위를 살펴보며 김정숙동지께 말씀올렸다.

《가게방에 잠간 들렸다 가겠어요.》

《?…》

그이께서는 말없이 의혹어린 눈길을 보내시였다.

《저 광고를 보세요.》

경순은 이런 경우를 생각하여 밀영의 동무들이 찔러넣어준 돈을 품안에서 만지작거리며 조바심을 쳤다.

김정숙동지의 긴 속눈섭이 순간적으로 움직이셨다.

무엇인가 가슴에 짚이신듯 안색이 엄해지시였다. 그리고는 경순의 손을 부여잡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방을 지나치시였다.

한마장을 실히 지나서야 그이께서는 걸음발을 약간 늦추시며 타이르시였다.

《공작임무외에 일체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것이 적후공작의 초보적인 요구예요.

더구나 여긴 왜놈들의 눈초리가 여간 예민한 곳이 아니잖나요.》

경순은 얼굴색이 꽈리처럼 되여 그이께 간절한 눈길을 보내였다. 어쩌면 우리 녀대원들의 성의를 그렇게도 마다하신단 말인가?…

밀림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바람새는 한결 뜸해졌다. 겨울철이 림박한 때에 맞지 않게 별로 아늑한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긴장감을 풀지 못하신듯 주위를 예리하게 살피며 걸음발을 다그치고계셨다.

동안동안 걸음을 멈추시고 앞뒤좌우로 귀를 강구기도 하신다.

경순은 펄쩍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이를 바싹 따라갔다. 인적없는 숲속에 들어섰다고 마음의 탕개를 잠시나마 늦추었다는 자책이 명치끝에 묵직이 매달린다.

사실 이즈음의 국내정세는 매우 험악하였다.

쏘련과 《중립조약》을 체결하고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침략자들은 《후방의 안전》을 보장한다면서 국내의 혁명조직들을 야수적으로 탄압말살하고있었다. 적지 않은 혁명가들이 검거투옥되고 지하조직망이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시급히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전반적인 혁명정세가 위태로와질수 있었다.

조성된 사태에 대처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쑤들이 발악할수록 주저하거나 움츠러들것이 아니라 소부대와 정치공작소조들의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벌려나감으로써 국내의 광범한 대중을 반일조직에 튼튼히 묶어세워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에 합세하게 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어 국내 여러 지방으로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이 떠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장 위험한 연사지구를 맡아나서시였다. 백두산밀영의 모든 대원들이 펄쩍 뛰였다. 특히 녀대원들은 발까지 동동 굴렀다.

《김정숙동지는 안됩니다. 아드님은 어떻게 하고 … 더우기 그곳은…》

김정숙동지께서는 흔연히 웃으시며 고개를 가로 저으시였다.

《위험하기때문에 연사지구에서 공작한 경험이 있는 제가 가야 하는거예요. 걱정말아요. 그리고 우리 정일이는 지금껏 동무들이 나보다 더 극진히 돌봐주지 않았나요.》

어찌할수 없는 일이였다. 지금껏 김정숙동지께서 한번 결심하신것은 누구도 막아본적이 없었다. 오직 그이께서만이 이 난국을 타개하실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떠나기 전날 밤 녀대원들은 경순을 불러내여 신신 당부했다.

《정숙동지의 신변안전을 부탁해요. 그리구 잊지 말건…》

경순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어요. 내가 그것을 왜 잊겠어요. 잊을게 따로 있지.…》

그리고는 긴숨을 들이키며 귀틀집쪽을 돌아보았다.

광솔불빛이 희미한 들창가에서 조용히 부르시는 김정숙동지의 《자장가》소리가 흘러나오고있었다.

아가아가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어서 자라 속히 자라 총칼을 메고

조국해방 만세소리 활발한 곳에

너 앞서고 나 뒤에 나가 싸우자

 

쉬임없이 계곡을 줄달음치는 소백수의 물소리가 그윽히 울려퍼지는 《자장가》소리와 어울려 백두산 깊은 골안의 정서를 더욱 돋구어주고있었다.

 

아가아가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어서 자라 속히 자라 붉은기 들고

공산주의 새 세상 떨치는 곳에

너 앞서고 나 뒤에 나가 싸우자

 

경순은 눈굽이 쩌릿하여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는 젖어든 눈을 슴벅이며 동남쪽을 바라보았다. 이 밤이 새면 김정숙동지께서 사랑하는 아드님과 헤여져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떠나셔야 한다.

그러니 마음인들 오죽하시랴.

그이를 대신할수 없는 안타까움이 쇠붙이처럼 가슴을 훑어내렸다. 어쩔수 없는 이 길…

경순은 종주먹을 힘껏 틀어쥐였다. 이 몸이 열백번 찢겨진대도 김정숙동지의 신변안전을 보장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자제분께 드릴것들도 꼭 내손으로 장만하리라.… 백두산말기의 하늘가에서 도글도글 여문 빛을 뿌리는 뭇별들도 그에게 간절한 부탁을 하여오는듯 싶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날도 저 하늘엔 별들이 유난히도 반짝이였었다. 전날까지도 눈바람이 사납게 울부짖었지만 그날만은 신기하게 잠풍하고 하늘이 높게 들려있었다. 겨우내 지줄대던 소백수의 맑은 물도 정갈한 입김을 뿜어 골짜기에 하얀 서리꽃을 아름답게 펼쳤고 장수봉(오늘의 정일봉)정수리에서는 은백색눈사태가 꽃보라마냥 쏟아져내렸다. 그것은 보기 드문 황홀경이였다. 뭇별들의 옹위를 받으며 유난히 밝은 빛을 뿌리는 새별…

경사로운 그날 아침 밀영에 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모두 떨쳐나 환호성을 올렸고 격정을 누를수 없어 너도나도 주변의 나무들에 글발을 새기였다.

그렇지만 북받치는 감격과 격정에 비해 어리신 장군님께 드린것은 경순이네들이 자기 배낭에서 크고 작은 자투리천을 모아 꾸며놓은 쪽무이포단뿐이였다.

《용서하세요. 마음같아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포단을 해드려야 하는건데…》

경순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억제하며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으시며 갈린 어조로 말씀하셨다.

《정말 고마워요. 우리 동무들의 뜨거운 지성이 슴배여있는 이 포단보다 더 훌륭한것이 어디에 있겠어요.

천만금을 주고 구해온다 한들 이 포단에 대겠어요.》

그러시고는 환히 웃으시며 그 포단에 어리신 장군님을 감싸안으시였다.

경순이와 녀대원들은 눈물을 삼키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기회를 마련하여 좋은 포단을 구해드리자고 속마음을 합치였던것이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경순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가슴속에 타고 또 타버린 재만 안은채로…

그간 김정숙동지께서는 수백리길을 오가시면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시느라 모든 정력을 집중하시였다. 때로는 왜놈들의 추격을 받아 2~3백리씩 달리며 솜씨있게 적들을 멀리 따돌리고 파괴된 조직선들을 하나하나 다시 이어가시는 그이의 견인불발의 의지를 느끼면서 경순은 《정말 정숙동지가 아니시였다면…》하고 몇번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순이가 조금이라도 《자기 일》을 하려고 하면 엄하게 막으시군 하였다. 지하조직원들에게 좀 부탁하려고 해도 어느새 아시고 《그런 사사로운 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큰일을 그르칠수 있어요.》하며 또 다른 곳으로 떠나군 하시였다.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제 창평쪽으로 가서는 그곳 반일무장대 책임자를 만나 해당한 조직사업을 하신 후 사자봉밀영으로 해서 백두산밀영으로 가셔야 한다, 빈손으로…

경순은 저도 모르게 두손을 내려다보고 꺼질듯 한 숨을 내그었다. 혼자서라면 왕왕 소리내여 울고싶은 심정이였다. 밀영의 동무들은 나를 또 얼마나 책망할가.

×

백두산의 대원시림과 잇닿은 심산골짜기의 한 초막앞에서 자그마한 모닥불이 사위여가고있었다.

사냥군이 쓰던 낡은 초막인듯 지붕에서 흘러내린 새초줄기들이 바람에 휘적휘적 흩날리군 한다.

초막기둥에 기대인채 쪽잠에 드셨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온몸에 스며드는 랭기에 깨여나시였다. 백두산밀영을 떠나시던 달포전만 하여도 수림속의 밤은 이렇게까지 춥지는 않았었다.

그이의 어깨에 기대인채 쌔근쌔근 자고있던 경순이가 알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린다. 잠꼬대를 하는 소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 애티가 가셔지지 않은 그의 얼굴을 미소어린 눈길로 돌아보시다가 자신의 목에서 밤색목도리를 풀어 처녀의 어깨를 감싸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사그라져가는 모닥불에 삭정이를 덧놓으시였다.

어디선가 골개물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어제 밤 이 초막에 이르셨을 때는 너무도 지쳐 저 소리도 미처 가려듣지 못하시였다. 그런데 이 시각에는 계곡을 울리는 물소리가 소백수의 용용한 흐름을 련상시키며 그이를 백두산밀영의 아담한 귀틀집으로 이끌어가는것이였다. 이제 이곳의 창평동무들을 만나고나면 사랑하는 아드님을 품에 안아보게 되리라고 생각하니 행복감으로 가슴이 쩌릿해지신다.

김정숙동지의 그윽한 눈길이 백두산쪽의 하늘가로 향하시였다. 벌써 먼동이 트고있었다.

이윽고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들쑹날쑹한 수림의 우듬지들이 차츰 선명해졌다.

문득 어디선가 막대기로 굵은 나무밑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이께서는 귀를 강구시였다.

고요한 밀림의 정적을 깨뜨리며 이번엔 《텅텅…》하고 또렷하니 들려온다. 어느새 깨여났는지 경순이도 눈빛을 빛내이며 숨을 죽이였다.

그이께서는 반색을 하며 준비했던 나무막대기를 찾아들고 가까이 있는 참나무밑둥을 두드리시였다.

《텅텅… 텅텅…》

약속된 신호이다.

한동안이 지나 잡관목을 헤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우중충한 나무숲에서 개털모자에 털가죽조끼를 걸친 장대한 사나이가 마른 나무잎을 걷어차며 성급히 걸어나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앞으로 나서시였다.

《귀동이 아버지!》

그이의 부르심에 귀동이 아버지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아!―》

허둥지둥 달려와 환희넘친 얼굴로 잠시 어찌할바를 모르더니 꾸벅 인사를 드린다.

《이게 꿈은 아닙니까? 차, 이런… 먼길을 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흔드시며 기쁨에 달이 뜬 얼굴을 정깊이 바라보신다.

《정말 모두들 보고싶었어요. 창평동지들은 다들 무사합니까?》

젊은이는 검스레한 얼굴에 함박같은 웃음을 피워올리며 대답올렸다.

《여기선 모두 잘있습니다. 그런데 정숙동지가 이번에 오실줄은… 이런 살벌한 때에 나오시다니… 그 몸으루 절대 여기로 와선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두 한편으로는 자꾸만 기다려지니… 난 이자 첫순간에 꿈이 아닌가 했습니다, 허허…》

귀동이 아버지는 그이를 다시 만나뵙게 된것이 너무도 기뻐 커다란 두손을 썩썩 맞부비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경순은 김정숙동지께서 이곳에 오신것이 얼마나 책임적인 일이였는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뇌리를 쳤다. 지나보낸 이번 공작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마다 느꼈지만 그 누가 연사지구로 나온들 그이를 대신할수가 없을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순을 귀동이 아버지와 인사를 시킨 후 그의 등에서 지고온 커다란 망태기를 받아서 곁에 놓으시였다.

이윽하여 귀동이 아버지를 불무지곁에 앉히신 그이께서는 집안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그다음 창평의 반일무장대에 대한 실태료해를 시작하셨다.

귀동이 아버지가 책임지고있는 창평반일무장대로 말하면 한해전 김정숙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에 합세하여 떨쳐나설데 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방침에 따라 조직하신 비밀무장대였다.

귀동이 아버지는 부리부리한 두눈에 열기를 띄며 성수가 나서 말씀드렸다.

《그새 우리 무장대는 대오가 퍼그나 불었습니다. 린근까지 합해서 70명정도 됩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개 조로 나누어 매일과 같이 나무군차림을 하고 산속에 들어가 훈련하고있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견한 눈길로 귀동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그런데 적들의 동태는 어떤가요? 무슨 낌새를 챈건 없는가요?》

《뭐, 아직은 이렇다할…》

《그래도 안심해서는 안돼요. 근간에 적들이 더욱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어요.

젊은이들이 산속으로 몰켜 드나드는것을 왜놈들이 그리 심상하게 여기지 않을거예요.》

《그래서 경계근무도 단단히 서군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만일의 경우에 대처할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마감단계에서 준비하고계셔요. 왜놈들이 지금 미친듯이 날뛰고있지만 그것은 멸망을 눈앞에 둔자들의 발악에 불과해요.

그러니 동무들은 신심을 가지고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조선인민혁명군의 공격전에 합세할 준비를 더욱 다그쳐야 합니다.》

귀동이 아버지의 부리부리한 눈에서 번쩍 광채가 일었다. 으스러지게 틀어쥔 주먹에서 힘줄이 툭툭 뛰였다.

아침해가 솟아오르자 검푸른 숲언저리가 금빛으로 빛났다.

구체적인 사업이야기가 끝났을 때 귀동이 아버지는 이제야 기본화제라는듯 벙글서 웃음발을 피워올리며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건강하신가고 묻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마주 웃음을 피워올리신다.

《예, 건강해서 잘 자라고있어요.》

귀동이 아버지는 대번에 얼굴색이 환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다가 불곁에 놓인 망태기를 끄르기 시작했다. 망태기안에서 기장쌀주머니와 가락으로 된 깨엿이 들어있는 종이봉지가 나왔다.

《?!…》

그다음은 망태기밑에서 보자기에 싼것을 끄집어내여 헤쳐보였다.

《아, 비단포단!》

두손을 모아잡은 경순의 입가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올랐다.

《이미전에 마련해놓고도 보내드리지 못해 여간만 애타하지 않았는데 마침 정숙동지께서 오셨으니 잘 되였습니다. 변변치 못하지만 우리 창평마을사람들의 성의니 자제분이 사용하도록 해주십시오.》

부드러운 솜을 두툼히 두고 어찌나 정성스레 바느질을 했는지 보기에도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이 안겨오는 포단이였다.

《아니, 이런!…》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여 외마디소리를 내시였다. 불시에 안개같은것이 눈앞을 흐린다.

문득 지난해에 이곳에 왔을 때 귀동이네 집에서 목격했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어린애를 누덕누덕 기운 치마폭에 감싸안으며 어줍게 웃던 귀동이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터슬터슬한 치마자락밖으로 드러나 버드럭거리던 귀동이의 여윈 종다리를 보시였을 때 그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쓰리셨던가. 너무도 가슴벽이 저리시여 귀동이를 품에 꼭 껴안고 이제 조국을 해방하면 이 애들을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동이로 키우자고 절절히 말씀하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없는 살림에 이런 귀한걸 다 마련할래기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정말 고마와요. 하지만 … 이건…》

그이께서는 더 말씀을 이을수가 없으시였다.

《정숙동지, 우리 창평마을사람들은 백두산마루에서 광명성이 솟아올랐다는 희소식을 듣고 너무도 기뻐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귀동이 아버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격정에 떨기 시작했다.

《마을의 천도교인들은 배달민족의 앞길에 대통운이 텄다고 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백두광명성의 안녕을 축원하고있습니다.

약소하지만 우리의 진정으로 아시구 사양말아주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뜨거운것을 삼키시며 머리를 숙이시였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을 잊지 않겠어요.

그리고 기대에 꼭 보답하도록 힘껏 노력하겠어요.》

경순은 포단을 받아 정히 포개이며 흐느끼는듯 긴 숨을 들이키였다. 창평사람들의 진정이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진정이고 온 겨레의 마음이라는것을 격정속에 다시 절감하였다.

김정숙동지를 모시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경순이와 귀동이 아버지의 얼굴표정은 유난히도 밝게 빛나고있었다.

×

 

하늘에서 희끗희끗 눈꽃이 날리기 시작했다.

백두산주변의 천리수해는 온통 흩날리는 눈꽃으로 하여 뽀얀 장막속에 잠기였다.

포단이 든 배낭을 어깨에 멘 경순은 씨엉씨엉 걸음발을 빨리 하였다. 이제 한참동안이면 사자봉밀영이 나타날것이고 그다음은 백두산밀영이다.

해묵어 덧쌓인 락엽무지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면서도 경순은 조금도 힘든줄을 몰랐다. 연사지구에 대한 공작도 성과적으로 끝냈고 오늘은 이렇게 비단포단까지 생긴것이다. 애초에 계획했던대로 털내의나 옷가지들까지 마련되였더라면 더 좋았으련만 이제는 그런걸 바랄 엄두조차 낼수 없는것이다. 이만해도 여간만 다행스럽지 않았다.

줄기가 희끗희끗한 봇나무들이 듬성듬성 선 나지막한 등성이를 넘자 자그마한 개울이 나졌다.

훌쩍훌쩍 징검돌을 밟으며 먼저 개울을 건너간 경순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얼핏 뒤를 돌아보았다. 아닌게아니라 김정숙동지께서는 개울가에 서신채 저 아래쪽을 이윽히 바라보고계시였다.

경순은 의혹어린 눈길을 더듬었다. 그이께서 계시는 멀지 않은 곳에서 람루한 차림의 녀인이 고깔불을 피우고있었는데 그옆에는 품이 후렁후렁한 토스레옷을 대수 걸친 한 어린애가 누데기같은 포단우에 앉아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 발길을 돌려 거기로 다가가시자 경순은 할수없이 다시 개울을 건넜다.

녀인은 새까맣게 그을음이 간 쭈그렁남비를 돌우에 걸쳐놓고 개울가에 널린 삭정이를 주어다 불을 지피고있었다.

누데기포단우에 앉아있던 어린것은 큰 팔소매끝에서 고사리같은 손을 내뻗쳐 허비적거리며 풀대끝에 매달린 까만 열매를 쥐려는듯 애를 쓰고있었다.

녀인은 인기척에 고개를 얼핏 돌렸으나 지나가는 행인으로 생각되였는지 개의치 않는다는 기색이였다.

여윈 얼굴에 호기심에 가까운 빛이 얼핏 스쳐지났을뿐이였다.

녀인은 풀열매를 따 입에 가져가는 어린애는 보지 못하고 보짐에서 꺼낸 대두박덩이를 부스러뜨려 김이 나는 남비안에 집어넣었다.

《엄마! 가재 잡았다.》

개울가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래쪽에서 예닐곱살 나보이는 총각애가 두손으로 가재 한마리를 움켜들고 이쪽으로 건둥건둥 뛰여왔다. 베잠뱅이우에 걸친 어른의것이 분명한 웃저고리는 팔소매만 줄인것이여서 앞섶이 두루마기자락처럼 너풀거렸다.

녀인은 가재를 잡느라 벌겋게 언 아들애의 손을 어루만졌다.

《에그, 너더러 가재를 잡으라니? 어서 불을 쬐여라.》

여위고 지친 얼굴에 그지없이 상냥스런 표정이 그려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신다.

《어디 멀리에서 오는가 봅니다.》

그이의 인정 넘친 살뜰한 목소리에 녀인은 눈길을 마주하더니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저 강건너에서 오지유. 화룡현 자양툰이라는 곳에서 살댔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모두들 살길을 찾아 이국땅으로 가는데 이들은 조국땅으로 나오는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이때 녀인의 옆에 앉았던 어린애가 까만 풀열매를 입에 넣고 씹다가 쓰거운지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얜 조금만 참으라는데.》

녀인이 급히 아이를 붙안고 입에서 씹던 풀열매를 끄집어내였다. 그래도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곁에 선 더벅머리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얼리였다.

《호범아, 내 이제 가재를 구워줄게 울지 마. 울지 말라는데두.》

그들의 정상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시는 김정숙동지의 가슴속은 에이는듯 아파나셨다. 아이들 아버지는 어떻게 됐기에 애들만 데리고 이처럼 눈내리는 무인지경에 나섰을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변변한 낟알 한그릇 끓여먹이지 못하고 옷가지 하나 온전한것을 입히지 못한채 찬바람속에서 헤매이는 녀인의 모습에서 나라잃고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민족의 불행을 그대로 감수하시였다.

모성애는 불보다 더 뜨거운것이다. 그런데 어린애의 입에서 먹지 못할 풀씨들을 끄집어낼 때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미여지듯 하였으랴.

김정숙동지께서는 더벅머리의 손을 당기여 줌안에 쥐시였다. 조그마한 주먹이 얼음덩이처럼 차거웠다.

《네 이름이 뭐냐?》

《호철이.》

그이의 따스한 줌안에서 어린것의 손가락들이 꼼지락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이 덩둘해서 쳐다보는 더벅머리를 끄당겨 안으시였다.

《아지미가 맛있는걸 줄가?》

곁에 서있던 경순은 그이께서 배낭을 돌아보시자 반사적으로 눈길을 내리깔았다.

《경순동무, 배낭을 이리 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배낭을 받아 끄르고 귀동이 아버지가 넣어준 가락엿봉지를 꺼내여 호철에게 통채로 내미시였다.

아이는 눈이 둥그래졌다.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며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녀인의 눈에는 놀라운 표정이 어렸을뿐 이런 경우를 처음으로 당해서인지 무척 당황해하였다.

《호철이, 어서 받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엿봉지를 아이의 가슴에 안겨주시였다.

호철이는 무슨 진귀한 보물이라도 얻은듯 엿봉지를 붙안은채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고마와유. 저게… 난생처음… 이런 엿을…》

녀인의 음성은 불시에 콱 잠겨버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에게 다정히 물으시였다.

《어떻게 아이들만 데리고있습니까?》

녀인은 누데기포단속에서 꼼지락대는 애를 추슬리며 꺼질듯 한숨을 내쉬였다. 어느사이 눈에는 눈물방울이 내돋는다.

《애들의 아버지는… 저 화룡현의 목재소에서 품팔이를 했어요. 그런데 얼마전에 내리쏠리는 통나무에 치여서 그만…》

녀인은 이윽토록 끅끅 느껴울며 어깨를 떨더니 코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애아버지를 목재판 뒤산에 묻을 때 나도 죽고싶었어요. 그러나 이것들때문에 차마 그럴수가 없었어요.》

김정숙동지의 눈등이 불깃해지셨다. 어느새 맑은것이 그윽한 눈동자에 맴돌았다.

《그래도 어떻게 조국으로 나올 생각을 했군요.》

녀인은 입귀를 실룩거리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깊은 눈길로 눈내리는 조국의 산발너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애아버지가 숨을 거두면서 남긴 당부가 있었어요. 이 애들을 데리구 백두산가까이에 가서 살라고…》

녀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큰 비밀이나 터놓듯 속살거렸다.

《목재판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얼마전에 저 백두산마루에 광명성이 솟았답니다.

백두산대장수님이 계신데다 그분의 뒤를 이을 어리신 장수님께서 탄생하셨으니 우리 조선은 대통운이 텄다면서…》

녀인의 여위고 거무스레한 뺨에 홍조가 떠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놀란 눈길로 녀인을 바라보시였다. 깊은 산속, 눈꽃이 날리는 길에서 모진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절망에 빠져있는듯싶던 녀인으로부터 뜻밖에도 이런 소리를 들으시니 뜨거운것이 가슴가득 차오르는것을 금할수 없으셨다. 악몽같은 세월을 보내면서도 아이들의 장래를 백두산에 의탁하려는 그 마음이 참으로 소중하게 안겨오신다.

이때 녀인의 품에서 잠들었던 어린애가 깨여나 누데기포단밖으로 팔을 내뻗쳤다.

《엄마, 호범이가 깨났어.》

더벅머리 호철이 동생의 손에 엿가락을 하나 쥐여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추위때문에 닭살이 돋은 어린애의 가느다란 팔을 팔소매안에 넣어주시고 입을 오물거리는 그 애의 하얀 볼편을 쓰다듬으시였다.

어린애의 토스레옷속에 목깃 가장자리가 다슬러지고 볼품이 없이 해여진 내의가 보이였다. 큰애가 입던 내의같았다.

그이께서는 추위속에서도 입귀로 엿물을 흘리면서 정신없이 먹고있는 애를 보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셨다. 무언가 더 주고싶은 마음이 불쑥 치미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저없이 배낭안에서 보자기에 싼 포단을 꺼내셨다.

조금전부터 안절부절 그이의 거동을 살피던 경순이가 풀썩 주저앉으며 비단포단이 든 보퉁이를 끌어안았다.

《언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젖은 눈길로 경순이를 바라보시다가 타이르듯 말씀하신다.

《그러지 말아요. 이 추운 길가에서 헌 누데기포단에 싸여있는 애의 정상을 보면서도 그래요?》

《…》

경순은 애원어린 눈길을 거두지 못하였다.

녀인은 영문을 몰라 눈이 둥그래서 이쪽저쪽을 번갈아쳐다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보퉁이를 꼭 껴안고 놓을줄 모르는 경순을 엄한 눈길로 보시다가 귀전에 대고 소곤거리셨다.

《어서 내놓아요, 빨리. 곁에서 보지 않아요.》

끝내 경순은 흐느끼듯 한숨을 내쉬면서 포단보퉁이를 그이앞에 내놓았다. 누구보다도 김정숙동지의 마음을 잘 알고있는 그로서 더는 어찌할수가 없었다. 눈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단포단을 녀인에게 내미시였다.

《아주머니, 이 포단으로 애를 감싸주세요.》

《예에?…》

녀인은 외마디소리를 내지르고는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이윽해서야 사연을 알아차린듯 황급히 두손을 내저으며 한발 뒤로 물러선다.

《아니, 이러지들 마시우. 원 이런 놀라울데라구야…》

《우리 앤 일없어요. 좋은 집에서 좋은 포단을 쓰고있답니다.》

급기야 경순은 《흑.》하는 소리를 손바닥으로 막으며 몸을 돌렸다. 탄생하시자부터 모진 추위와 배고픔을 례사롭게 지내보내며 백두의 총포성을 자장가로 익히신 어리신 장군님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던것이다.

녀인은 울먹거리며 입귀를 비틀다가 목멘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리도 인정이 뜨거우실가.… 세상에 다시없을 귀인을 만났는가 봅니다. 헌데 그 집은 뉘신데 이렇게…》

멀리 큰길쪽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배낭에서 기장쌀까지 마저 꺼내여 녀인의 보짐에 바삐 넣어주시고나서 밝게 웃으시였다.

《아주머니, 저도 아주머니 같은 평범한 애어머니예요. 우리 마음을 굳게 먹고 살아가자요. 오래지 않아 김일성장군님께서 왜놈들을 쓸어버리고 조국땅에 해방의 봄을 안아오실겁니다. 고생스럽더라도 아이들을 잘 키워주세요. 나라를 위해 나서는 훌륭한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본분이 아니겠나요.》

녀인은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품에 안긴 어린애의 볼을 다독여주시다가 몸을 돌리며 호철에게 손을 저어주신다.

《호철아, 앓지 말거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경순은 눈물을 머금고 빈 배낭을 쥔채 그이의 뒤를 따라갔다.

숲속으로 들어가다 말고 돌아보니 녀인은 눈발속에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앞에서 호철이가 높이쳐들은 두손을 흔들며 발을 굴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손을 흔들어주시고나서 우중충한 나무숲속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

 

대륙의 찬바람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밀림은 잠에서 깨여난듯 우―우 설레였다.

몇걸음 동안을 두고 김정숙동지를 따라가던 경순의 걸음이 문득 멈추어졌다. 불시에 가느다란 환성이 입밖으로 새여나온다. 우로 고개를 쳐든 그의 시야에 몇송이의 잣이 나무가지에서 대롱거리고있었다.

처녀는 나무밑의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눈과 가랑잎에 반쯤 가리워진 잣송이를 발견하고 냉큼 집어들었다.

《경순동무, 왜 그래요?》

저쯤 앞서가시던 김정숙동지께서 무슨 말인가싶어 되돌아오신다.

《…》

두송이를 더 집어든 경순은 실망했다. 땅에 떨어진 잣송이들에는 벌써 다람쥐가 선손을 썼는지 알속이 하나도 없었다.

행여나 해서 다른 잣송이를 주어들었던 그는 입을 옥물고 나무우로 기여오른다.

《저런… 위험해요.》

경순의 의도를 알아차리신 김정숙동지께서 다급히 만류하셨다.

그래도 경순은 못 들은척 어느새 나무정수리로 가까이 올랐다. 도중에서 숨을 돌리며 나무가지를 꺾어 손으로 작대기를 만들고는 휘친거리는 나무우듬지들에서 잣송이를 따내기 시작한다. 하나, 둘… 다섯송이를 이악스레 따내고야 눈을 감았다.

밑에서는 김정숙동지께서 조마조마한 눈길로 올려다보시며 여차하면 자신의 몸으로 떨어지는 그의 몸을 받아안으실 자세이시였다.

손에 땀을 쥐시고 바재이던 그이께서 생각보다 안전하게 미끄러져내린 경순을 부축하시며 가벼이 책망하신다.

《잣 몇송이때문에 그런 모험을 하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어쩌자구 그래요?…》

경순은 날랜 동작으로 잣송이들을 배낭에 주어 담고서야 입을 열었다.

《밀영에 빈손으루 어떻게 들어갈가 했는데… 요행 눈에 나타나 그냥 지나칠수 없어서…》

그러면서도 주변을 더 살피며 아수해하는 기색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하시였다. 경순의 속마음을 그이께서 왜 모르시랴. 창평지구 사람들의 소박한 성의를 낯모르는 길가 녀인에게 아무 주저도 없이 양보하신데 대한 고까움이 아직도 명치끝에 매달려있는 모양이다.

그이께서는 경순의 팔을 끼고 걸으면서 뜨거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경순동무, 우리 밀영을 감돌아흐르는 소백수가 왜 혹한속에서도 얼지 않고 끝없이 줄달음치는지 알아요?

그건 백두산천지의 깊은 곳에 시원을 두고있기때문이예요.

우리는 후날에도 자식들을 잘입고 잘먹고 사는 귀공자가 아니라 백성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인민의 아들로 키워야 해요.

백두의 정기를 타고난 빨찌산의 아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낼거예요.

경순동무랑 우리 전우들의 지성에 떠받들려 자라는데 무슨 념려가 있겠어요.》

백두밀영을 가까이하면서 흩날리던 눈발은 즘즉해지고 주먹같은 함박눈으로 변하였다.

경순은 귀를 강구었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줄달음치는 소백수의 유정한 물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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