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8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향순

 

나는 어머니의 바래움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추억을 불러주는 길이였다.

아버지의 발자취가 어려있고 그옆에 나의 작은 발자욱도 자박자박 찍혀있는 못 잊을 길이였다. 줄당콩넌출이 서로 경쟁을 하듯 하늘로 뻗어올라 높은 울타리를 친 터밭들사이를 뛰여다니며 장난에 정신없던 그 시절 나는 동무들의 부러운 눈길을 등뒤에로 느끼며 으쓱하여 아버지의 커다란 손을 꼭 잡고 이 길을 처음으로 걸었었다.

그때부터 십여년세월이 흘렀어도 한모습으로 묵묵히 이 길을 걷는 아버지가 나에게 말없이 새겨준것, 그것은 무엇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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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아버지가 왔다!》

나는 만들던 딱지를 집어던지고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떻게 인사하라고 어머니가 몇번이나 배워준 인사말도 순간에 다 까먹고 아버지에게 달려나갔다.

《우리 성금이가 그새 더 무거워졌구나.》

아버지는 웃음을 지으며 등에 진 배낭도 벗지 않고 나를 닁큼 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얘 성금아, 아버지 힘드시겠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도 턱수염이 볼을 찌르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떼지 않고있다가 아버지에게 불쑥 물었다.

《아버지, 꿀 가져왔나요?》

《꿀?!》

《어머니가 이제 아버지가 꿀 가지고온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아버진 거기에서 꼭 예순여섯밤 자구 왔어요.》

나는 손가락을 분주스레 폈다접었다하였다. 그리고는 쭈르르 미끄러져내려와 아버지가 지고온 배낭앞으로 갔다.

어머니는 배낭안에서 풋강냉이를 꺼내고있었다.

배낭이 터진 풍선처럼 후줄근해질 때까지도 꿀을 넣은 병 같은것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꿀은 안 가져왔나요?》

나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실망이 짙게 어려있었다. 아버지는 그러는 나의 머리를 쓸어주며 《우리 성금이가 꿀을 먹고싶은게로구나. 아버지하구 양봉장에 같이 갈가?》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기쁨에 눈을 빛내이며 한꺼번에 떠오른 물음들을 억제할수 없었다. 얼마나 멀리 가야 하며 언제 가는가, 그리고 거기엔 동무들이 몇명이나 있는가.…

그런데 아버지는 껄껄 웃기만 하셨다.

《이거 방안이 굉장하구나. 우리 성금이가 〈대장〉역할을 활발히 하는게지?》

방안에는 나의 재산인 딱지가 한벌 쫙 깔려있었던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나는 자랑스레 말했다.

《아버지, 저건 내가 혁철이한테서 딴거예요, 해해.… 혁철인 맨날 나한테 떼우면서도 〈복수전〉을 하겠다구 지금도 딱지를 만들고있을거야요. 그래서 나도 또 만들지요뭐.》

《우리 성금이가 이젠 소학교 2학년생이 됐는데 딱지대장 자리를 넘겨줄 때가 되지 않았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넘겨주다니?! 아버지도 이젠 엄마처럼 말하네. 중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깨고소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어머니도 이때라고 한마디 했다.

《어이구, 저 놀란 토끼눈을 보지? 가뜩이나 남자번지개같은데 동무라군 온통 남자애들뿐이니…》

어머니말은 사실이였다. 내가 사는 아담한 2층아빠트에는 신통히도 남자애들만이 있었다.

자식을 낳는 집도 아들, 이사를 오는 집도 아들형제만 있는 집이 오군 했다. 남자애들 틈에서 자라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더퍼리》라는 별명을 머리꽁지에 매단 리봉처럼 늘 달고다녔다. 동네에 처녀애란 유독 나 혼자뿐이여서 나는 내또래의 처녀애들이 즐겨 노는 세간놀이가 아니라 동갑이나 손우의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딱지치기, 못치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축구장에서 셈에도 넣지 않는 선수가 되여 공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무르팍이 벗겨져도 욕을 먹을가봐 울지도 못하고 참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찡그린 나의 얼굴에서 모든것을 다 알고는 《저 더퍼리같은게, 전번에 발라준 빨간약이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그러다 네 무르팍이 아예 빨간색이 되고말겠구나. 크면 뭐나 하겠는지…》 하고 욕을 하군 했다.

이제는 너무 들어 귀에도 걸리지 않는 그 욕을 수도물과 함께 흘려보내며 세면장에서 물장난을 치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어보였다.

《왜, 우리 성금이가 어드래서. 이제 크면 큰일을 하겠는데.》

아버지가 나를 두둔해주는 이 말을 처음으로 쓴것은 내가 태여났을 때라고 한다. 어머니는 나를 구역병원에서 낳았는데 처음 나를 받아안았을 때 놀랐다고 한다. 아마 내가 처녀애처럼 생기지 못했던 모양이였다. 그래서인지 퇴원하던 날 아버지와 함께 왔던 고모가 나를 보고 《아니? 이게 계집애가 옳나?》하며 아버지에게 나를 흘 넘겨주더라는것이였다. 그러는 고모에게서 나를 받아안은 아버지는 인자한 눈빛으로 들여다보더니 《왜, 어드래서.》하면서 나를 꼭 안고 집까지 왔다는것이였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거울로 달려가군 한다. 아무리 깐깐히 살펴보아도 하루종일 장난에 미쳐 해빛에 탄 감스레한 살빛은 어릴 때의 그 살색이 아직 가셔지지 않은것 같고 선이 명백한 두툼한 입술과 장난기가 넘실거리는 반짝거리는 두눈은 얌전한 처녀애라는 맛은 전혀 없고 어머니의 말대로 《남자번지개》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웃을 때 피여나는 보조개나 짙은 눈섭과 입술은 아버지를 닮은게 분명했다.

그래, 내가 어드래서, 난 아버지를 닮았고 또 아버지는 공부밖에 모르는 오빠보다도 날 더 고와하는데…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아버지의 말에 번쩍 머리를 들었다.

《성금아, 아버지와 양봉장에 가서 방학을 보내자!》

나는 콩당 뛰였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간다! 나는 제꺽 오빠와 어머니를 곁눈질했다. 오빠의 얼굴에는 이미 깨고소한 빛은 가을바람에 안개걷히듯 사라져버리고 부러움이 짙게 어리고있었다.

어머니는 웃는지 나무라는지…

나는 방금전까지의 고민과 왜 꿀을 못 가져왔는가를 물으려던 생각도 싹 잊어버리고 환성을 지르며 아버지에게 보란듯이 매달렸다. 하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제 가서 내가 가져오면 되지 않는가. 다음날 아버지는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나는 동무들앞에서 꿀을 만드는 굉장한 곳에 간다고 자랑을 하며 우쭐해있었다. 동무들의 부러운 눈길앞에 마음이 후해진 나는 거기에 가서 내가 만든 꿀을 가져다가 맛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딱지대장》자리를 혁철이에게 《대범》하게 인계하고 나의 그 숱한 《재산》을 애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산골의 대기는 맑고 청신했다. 자그마한 코구멍을 벌름거리면서 무슨 향기인지 알수 없는 싱그러운 냄새를 들여마시며 나는 뭐라고 표현할수 없는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산길을 걷고있었다.

하늘에서는 아버지가 사주군 하던 솜사탕처럼 생긴 구름들이 서로 모였다가 헤쳐졌다가 하면서 재미나게 잡기놀이를 하고있었다. 이름모를 나무들과 새들, 숲속에 난 자그마한 오솔길옆에 신기한 열매를 오롱조롱 매단 떨기나무들이 나의 발목을 쉴새없이 붙잡았다.

나는 산딸기를 나무잎에 가득 담아가지고 달려와 발돋움으로 아버지의 입에 넣어주며 물었다.

《아버지, 아직 많이 가야 하나요?》

아버지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나만 말했다, 끊임없이 조잘대며 흐르는 시내물처럼.

《아버지, 어머닌 나보다 오빠를 더 고와해요. 나한텐 늦잠꾸러기, 발개돌이, 딱지질군 하면서 욕만 하고…》

그래도 아버지는 반응이 없다. 허나 나는 이런 아버지에게 습관이 되여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내가 부지런히 입과 발을 놀리며 아버지를 따라 산의 정점에 올라서니 저아래 골짜기에 아동영화에 나오는 곰네 집같이 지붕이 뾰족뾰족하게 생긴 아담한 집이 내려다보였다.

《야, 저 집이나요?》

나는 환성을 지르며 고무공처럼 통통 뛰여 한달음에 집앞에까지 다달았다. 수십통의 벌통에서 울려나오는 윙― 윙거리는 소리에 멈춰선 나는 갑자기 나타나 짖어대는 개를 보자 겁을 먹고 아버지의 등뒤에 가 숨었다.

《아니… 벌써 교대나왔습니까? 명절이나 쇠구 올줄 알았는데…》

등뒤에서 울리는 챙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꽤 젊어보이는 사람이 반기며 하는 말이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좀더 있다가 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구나. 저렇게 기뻐하는걸 보고싶어서 그랬을가? 어쨌든 어머니는 섭섭해했지만 난 여기에 빨리 오는게 얼마나 기뻤게.)

아버지는 소리없는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 사람은 아버지를 《조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동안에 있은 일을 보고하였다. 지루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에 참견하면 안된다던 아버지의 말을 어길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고양이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눈길을 돌려 《곰집》구경을 했다. 밖에는 개가 무서워 나갈수가 없었다.

《곰집》은 세칸짜리의 멋있는 집이였다. 나란히 놓인 세칸방중에 한 방은 살림방이고 한 방은 창고, 나머지 한 방은 작업장이였다.

그날밤 나는 《갓 장가간 사람은 적적할거야.…》하는 아버지의 말과 《색시》가 어쨌다는 그 아저씨의 말을 어렴풋이 가려들으며 꿈나락으로 빠져들어갔다.

다음날 아저씨는 챙챙한 그 목소리로 《조장동지, 그럼 갔다오겠습니다.》하는 인사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주위를 둘러싼 이깔숲의 솨솨하는 설레임소리, 앞뜰에서 흐르는 맑은 시내물소리와 새들의 명랑한 지저귐소리, 벌들의 붕붕소리가 한데 어울려 기분좋은 음향으로 들리는 신기한 자연속에 묻힌 《곰집》에 아버지와 나만이 남게 되자 나는 어제부터 묻고싶었던 말을 꺼냈다.

《아버지, 조장이면 어만큼 쎄나요? 소년단반장만큼 쎄나요?》

나는 내 왼쪽팔소매에서 대룽거리는 소년단반장표식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이 그랬는데 분단위원장, 학급장도 다 소년단반장의 말을 들어야 한댔어요.》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나를 한참 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조용한 어조로 나에게 심어주듯 말을 했다.

《성금아, 사람의 직위가 높은가 낮은가 하는데 신경을 쓰지 말아. 그것이 기본이 아니다. 마음이 중요한거다. 저기를 좀 보렴.》

아버지의 투박하고 뭉틀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서는 꿀벌들이 부산스레 드나들며 꿀을 나르는것밖에는 보이는것이 없었다.

《꿀벌이요?》

《그래 꿀벌이다. 저것들도 자기들의 무리에서 다 제할 일이 따로 있다. 왕벌은 알낳이를 하고 둥지를 거느리고 로동벌은 집을 짓고 꿀을 생산하고. 그러나 수벌만은 하는 일이 없이 로동벌들이 날라오는 꿀을 먹기만 하지. 그래서 그런 수벌들을 없애버린단다. 이렇게 자기의 집단에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 그 존재를 인정받을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수벌처럼 쫓겨나게 된다. 알겠니?》

나는 아버지의 그 말뜻을 다 알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로동벌처럼 살면 집단의 사랑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생각하며 머리를 까딱거렸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두툼한 학습장과 작은 학습장 그리고 소설책을 배낭에서 꺼냈다.

《성금아, 방학숙제장이랑 일기장이랑 가져왔니?》

나는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기뻐서 덤비는통에 일기장을 넣지 못한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소학교입학 첫날부터 일기쓰는 법을 배워주었다. 그리고 출장갔다 오면 일기장을 꼭꼭 검열하군 했다.

어머니가 별스레 부산을 피우며 음식을 준비하는 날 저녁이면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군 했는데 나는 그런 기미가 느껴지면 불이 나게 일기장을 꺼내놓고 《벼락작문》을 짓군 하였다.

《성금아, 아버지가 왜 일기를 쓰라고 하는지 생각해봤니?》

《거야 뭐 앞으로 글쓰기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오빠가 말해줬어요.》

나는 시무룩해서 대답했다.

《오빠의 말도 틀리진 않다. 그러나 아버진 앞으로의 재능이나 재간을 위해서만 일기를 쓰라고 하는게 아니다. 난 성금이가 일기를 쓰면서 내가 좋은 일은 얼마나 했고 또 잘못을 왜 저질렀는가, 그리고 자기와 남들을 속인 일은 없는가를 매일저녁 총화해보면서 언제나 깨끗하고 솔직한 마음을 간직하고있길 바라서 그런거다. 우리 성금인 솔직하고 착한 애지.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게 아니란다. 네가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착한 마음대신에 나쁜 마음이 들어올수 있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고 매일 일기를 써야 한다.》

그때도 역시 나는 늘 깊은 뜻을 담군 하는 아버지의 말을 다 알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기장을 까먹고 왔으니…

꾸물거리며 대답을 못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작은 책을 하나 주었다. 아버지는 두툼한 큰 책에 《작업일지》라고 쓰고 내 책에는 《일기장》이라고 써주었다.

나는 아버지가 준 일기장에 일기를 썼다.

오늘은 아버지네 《곰집》에 온지 2일째 되는 날이다.

모든것이 다 재미나고 훌륭하다. 이제는 나를 보고 짖지 않는 개와 놀기도 재미나고 시내물에서 물장구를 치는것도 좋다. 꿀벌통을 들여다보는것이 제일 재미난다.

나는 꿀을 따가지고 온 꿀벌이 《집》에서 얼마나 쉬다가 다시 일나가는가를 알고싶어 금방 들어서는 벌을 잡아 검댕이표식을 해놓으려고 했다. 그 순간 때끔하며 피검사를 할 때처럼 몸을 흠칫했다. 벌을 내동댕이치고 손가락을 보니 왼손 셋째손가락에 박힌 꿀벌의 검은 침이 움직이는것이였다. 한참 지나서야 땅바닥을 보니 글쎄 내가 던진 그 벌이 날지도 못하고 상한 다리를 끌고 모지름쓰며 기여오고있지 않는가. 마치 나에게 다리를 고쳐달라고 애원하는듯. 나는 그 자리에서 뺑소니쳤다. 아버지는 웬일이냐는듯 나를 보았지만 나는 붓기 시작하는 손가락을 등뒤에 감춘채 아무 말도 안했다. 손가락이 쿡쿡 쏠 때마다 그 꿀벌생각이 계속 났다. 그 벌이 집에 들어갔을가? 수벌은 나쁘지만 로동벌은 좋다고 아버지가 말했지. 참, 침을 쏜 벌은 죽는다는데… 내가 또 잘못을 저질렀구나. 아버지에게 말할가?

나는 일기를 쓰다말고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무엇인가 쓰고있었다.

나는 몰래 들여다보았다.

나처럼 오늘 날자를 쓰고 그 다음에는 벌통청소, 주변정리, 벌개수리…

《아버지, 이제 공장가서 이 책을 누구한테 검열맞히나요?》

《아니다.》

《검열맞히지도 않는데 아버지가 한 일을 적으면 누가 아나요?》

아버지는 의문어린 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오늘 방학숙제를 다 했느냐?》

《아니요, 아직 못했어요. 음…》

나는 숙제장을 꺼내 아버지앞에 펼쳐놓았다.

《자기가 직접 본 새들의 이름 5가지 하구 풀과 나무들의 이름 10가지씩 쓰라고 했는데 내가 아는것은 그렇게 안돼요.》

아버지는 삐뚤삐뚤한 나의 글씨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래일 산에 가서 그걸 다 알아가지고 오자꾸나.》

나는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 나는 숙제장을 책장에 꽂다가 《우리 나라 동식물》이라고 쓴 책을 보았다. 그림까지 그려서 소개된 새들과 풀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있는 책을 보다가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산에 가지 않아도 돼요. 여기에 굉장히 많아요.》

그러는 나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엄해졌다.

《선생님이 숙제에 네가 직접 본것을 써오라고 하지 않았니?》

그리고는 더 말이 없이 책에다가 뭔가 계속 적었다.

나는 그만 물러나고말았다.

(어쨌든 산에 가보는건 좋아. 그러나 왜 저렇게까지 엄한 얼굴을 하고있을가?)

다음날 아버지와 나는 산으로 갈 차비를 하고 나섰다. 아버지는 구멍이 숭숭한 큰 마대 같은것을 들고 나는 버섯따러 가는 소녀처럼 조그마한 싸리바구니를 옆에 끼고… 딱친구가 된 개도 따라나섰다.

《저리 가, 넌 집에서 고양이하구 놀라!》

그래도 계속 따라오는 개를 내버려두고 나는 벌써 산속풍경에 정신이 팔렸다. 그리고는 계속 묻고물었다. 저 새는 무슨 새인가? 좋은 샌가 나쁜 샌가? 왜 저렇게 우는가?

아버지는 호기심이 가득한 나의 얼굴을 너그러운 웃음을 짓고 보면서 매번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도 무슨 풀들을 자꾸 캐서 마대에 넣었다.

《아버지, 이건 왜 캐나요? 약초? 그럼 먹는 풀이나요?》

아버지는 그 풀들의 이름도 대주고 어디에 좋은가도 대주었다. 나도 한뿌리 캐고는 물어보고 물어보고는 또 캐면서 부지런히 바구니에 담았다.

이제는 아버지가 진 마대에도 나의 바구니에도 약초가 가득찼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새와 나무, 풀들도 10가지가 넘었다.

저녁에 방학숙제장에 자신있게 오늘 본것들을 써넣고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가니 아버지는 또 작업일지에 뭔가 열심히 적어넣고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내 손에 있는 숙제장을 보았다.

《봐라. 책에서 베꼈더라면 네가 이것들을 알수 있었겠니? 그리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는걸로 되지 않겠니?》

(선생님이 그걸 어떻게 안다구.)

나는 속으로 이런 말을 하며 아버지의 작업일지를 더듬었다. 《약초캐기》란 단어가 책표지에 씌여있었다.

《예, 잘못했어요. 그런데 아버지, 저 약초들은 뭘하나요?》

나는 창문너머로 눈길을 보내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다 쓸데가 있단다.》

아버지는 다음날도 비가 온 그 다음날도 약초캐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어느날 나는 다 마른 약초를 거두어들이는 아버지에게로 갔다.

《아버지, 여긴 꿀 만드는덴데 약초도 캐야 하나요?》

《그래, 하면 좋지.》

아버지는 약초를 천꾸레미들에 포장하고는 거기에다 이름을 써넣었다.

《1직장 3작업반 강문철.》

《2직장 1작업반 허철혁.》

아버지는 왜 많은 약초를 캐서 저 사람들에게 보내줄가.…

어느덧 수확의 날이 왔다.

벌들이 부지런히 지은 꿀《농사》의 수확인것이다. 수확의 주기는 따로 없었다. 매일 벌통을 관찰하며 벌집에 꿀이 가득차게 되면 하는것이다. 농사군이 일한것만큼 열매를 거두게 되듯 꿀벌이 부지런히 일한것만큼 수확의 주기는 빨라지는것이다.

아버지는 머리에 그물을 쓰고 벌통뚜껑을 열었다. 그안에는 직사각형의 나무들에 의거해서 지은 구멍이 숭숭한 판대기모양의 벌집들이 있었다. 그런 벌개들이 10개정도 되였다. 아버지는 그중 한개의 벌개를 들었다. 벌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따라올라왔다. 그 모양을 보고 내가 희한해하니 이것은 벌들이 건강하다는것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그것을 비자루로 털어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수업》을 받은대로 그것을 채밀통에 끼워넣고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왱왱 돌려댔다. 그러면 꿀이 가득찼던 벌집은 텅 비군 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수확을 하고나니 저녁녘에는 채밀통안에 꿀이 절반도 훨씬 넘게 찼다.

아버지는 그 꿀들을 커다란 통에 차례로 넣고 봉인을 했다.

나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생산일지에 그 수량을 적어넣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꿀을 그렇게 다 넣으면 오빠하구 엄마한텐 뭘 가져가요? 그리고… 동무들에게도 약속을 하구 왔는데…》

나는 거의 울상이 되여 아버지의 팔을 잡아당겼다.

《성금이가 오빠생각을 하는걸 보니 마음이 자랐구나. 용타, 그러나 성금아, 이 꿀은 아버지의것이 아니란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데서 한병쯤이야… 아버지와 나만이 알고있지 않나요.》

아버지는 나를 자세히 보았다. 그러다가 엄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이건 나라의 재산이란다. 나라의 재산에는 그 누구도 맘대루 손을 댈 권한이 없단다.》

나는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엄한 얼굴을 한 아버지를 이때껏 본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누가 알든 모르든 자기의 마음을 속이고 남들을 속이는것은 량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누가 보든 말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한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앞에서 볼 때가 다르고 옆에서, 뒤에서 볼 때가 다르면 안된다. 아버지의 말을 알겠니?》

나는 무슨 말인지 다는 알수 없었지만 머리를 까딱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외워보았다.

(량심, 한모습, 그러니 내가 숙제를 보고베끼려고 한것도 량심이 없는 행동이여서 아버지가 그렇게 성났댔을가?)

나는 그 생각에 잠겨서 놀자고 까불대는 고양이를 심상하게 바라보았다.

이제는 여름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일요일이 세번이나 지나갔다. 아침에 깨여나보니 아버지가 책에다 무엇인가 적고있었다. 출근부였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집에 간 아저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출근부란게 뭐나요? 우리 선생님이 가지고다니는 출석부하고 같은거나요?》

《그래.》

《애개개, 도제 2명밖에 없구나. 선생님처럼 이름 부르는 사람도 없는데 아버진 왜 여기에다 매일 수표를 하나요?》

아버지는 그저 머리를 끄덕거렸다. 나는 더 물으려다가 혼자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버진 누가 보든말든 자기 일을 하는게 량심이라고 했지. 그럼 이것도 아버지의 량심이 하라는 일인게로구나.)

그러다가 나는 문득 다섯밤만 자면 집으로 가는 날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등산배낭을 꺼내서 방바닥에 거꾸로 쏟았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방안에 가득 쏟아졌다.

채 익지 않은 개암과 도토리, 시내가에서 한나절 품을 들여 고른 새하얀 조약돌 5개 (내 동무가 모두 5명이였기때문이다.)그리고 아버지와 산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수십가지가 넘는 풀과 약초들이 들어있는 식물채집수첩, 꿀벌이 만든 벌집, 주먹만 한 밀랍덩어리, 껌을 씹고싶어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가 만든 송진덩이는 세개나 되였다. 이 모든것이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꿀을 못 가져가는것은 아무래도 알찌근했다. 뭐니뭐니해도 학교동무들앞에서 내 체면이 설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나의 머리속에 창고에 가득 쌓여있던 사탕가루포대가 떠올랐다. 겨우내 꿀벌들이 먹어야 할 식량이였다. 포대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세다가는 계속 삭갈리군 했다.

(아버지에게 졸라대야지. 꿀은 안되지만 사탕가루는 굉장히 많으니 그건 일없을거야.)

아버지는 졸라대는 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나를 앉으라고 하였다.

《남의것에, 국가재산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앞으로 좋은 사람은 고사하고 사람으로서 구실을 하기도 힘들다. 성금인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었구나.》

아버지는 마음속에 새겨주듯이 말을 했다.

《성금아, 사람은 어려서부터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 솔직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자기의 리속을 채우는것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의 말뜻을 알겠니?

이런 마음이 바로 량심이라는것이다. 이 량심이 있어야 사람이라고 할수 있고 그래야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다.》

나는 그날처럼 아버지앞에서 부끄럽고 창피한감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였다.

세월은 흘러갔다. 이제는 내가 중학교졸업학년이 되였다. 그동안 나는 《곰집》에 여러번 갔었다.

모두 방학때였다.

마지막으로 갔던적은 5학년 겨울방학때였다.

두텁게 쌓인 흰눈의 무게에 가지들을 축 늘어뜨리고 서있는 이깔나무숲속의 《곰집》은 여전했다.달라진것이 있다면 벌들의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얼음장밑에서 흐르는 시내물소리가 약하게 들리는것뿐이였다. 그리고 여름에는 꿀을 생산해서 봉인했다면 겨울에는 창고에서 사탕가루를 저울로 달아서 물에 타서는 꿀벌에게 주는것이였다.

보름이 지나갔다.

그날은 아버지의 생일날이였다. 짧은 겨울해는 산너머로 빨리도 사라져가고 서둘러 찾아온 밤은 얼마나 기승스러운 바람을 몰아왔는지 이깔나무숲에서 가지 꺾어지는 소리가 연방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흠칫흠칫 놀라며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있었다. 작업장에서는 여전히 대패질소리며 망치질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손을 씻으면서 부엌에서 나와 작업장으로 갔다.

《아버지, 그만두세요. 오늘같은 날에야 하루쯤 쉬여도 되지 않아요.》

나는 억지로 아버지의 손에서 공구를 빼앗아들었다.

이때 갑자기 불이 꺼졌다.

《야, 참 어쩌나. 아직 다 못 만들었는데…》

나는 부엌에 펼쳐놓은 료리들을 생각하며 속상해서 말했다.

아버지는 말없이 전지를 찾아들고 시계를 비쳐보고는 신을 신었다.

《아버지, 그만두시라요. 밖이 스산한데…》

그래도 아버지는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확 쓸어들어왔다.

(아버진 고집쟁이야, 이런 밤에…)

이런저런 생각끝에 나는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기라도 한듯 눈보라가 와락 달려들어 얼굴을 때렸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흰눈에 찍혀진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전기줄을 따라 마을로 내려간것 같았다.

(아버진 어디까지 갔을가?)

《성금이냐?》

멀리서 전지불빛이 번쩍이며 아버지의 웨침소리가 바람소리에 짓눌려 가늘게 들려왔다. 몇달만에 아버지를 만나는 반가움에는 대비도 할수 없는 기쁨이 온몸을 휩싸안았다.

나는 달려가서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곰집》에서 전기불이 반짝이고있었다.

《바람에 전기줄이 끊어졌더구나. 보도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서 가서 텔레비죤을 켜렴. 우리 장군님의 현지지도소식을 들어야 할게 아니냐. 아버지는 전기선을 다시 살펴보면서 가겠다.》

《?!》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이제는 내 나이 15살! 할머니의 말대로 하면 옛날에는 이 나이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15살이 되도록 아버지의 마음을 아직 다 몰랐단 말인가?

이 《곰집》에 올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아버지!

난 언제면 아버지의 그 깊은 속을 다 알게 될가?

나는 뭉클해지는 마음으로 말없이 어둠속에서 머리를 까딱이고는 불빛이 반짝이는 《곰집》을 향하여 뛰여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스위치를 넣으니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지지도소식을 전하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화면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버지, 아버지, 빨리 오시라요. 아버지장군님께서 아버지네 공장을 찾으셨어요.》

《뭐라구?!》

아버지는 허둥지둥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아쉽게도 보도가 끝났다.

아버지는 공훈국가합창단의 힘찬 노래소리가 울려나오는 텔레비죤을 굳어진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길을 돌려 아직도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는 창밖너머 먼곳을 바라보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최전연초소를 시찰하시더니 오늘은 우리 공장을 찾으셨구나. 장군님께선 하루밤동안에 그 멀고도 먼길을 이 강추위속에서 강행군하신게 아니냐. 그러니 장군님의 로고인들…》

아버지는 말을 맺지 못했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나갔다. 이윽고 대패질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나는 작업장으로 갔으나 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성금아,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힘든들 우리 장군님 로고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따르겠니.》

나는 말없이 아버지를 거들어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밤을 새웠다.

아직은 날이 밝기 전, 자연의 목소리만이 울리던 골안에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울렸다.

나는 먼저 달려나갔다. 공장의 당비서, 지배인아저씨들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것이였다.

아버지가 뒤미처 달려나와 인사를 했다. 지배인아저씨가 나와 아버지의 옷에 묻은 대패밥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영수동무, 뭘 만드오?》

아버지는 어줍게 웃으며 말했다.

《예, 올해엔 벌통수를 2배로 늘이려고 새 벌통을 만들댔습니다.》

《아니, 그런거야 공장에 말하면 제꺽 해결하겠는데 혼자서 그 많은 벌통을…》

지배인아저씨는 말끝을 흐렸다. 당비서아저씨가 머리를 수굿하고있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영수동무, 축하하오!》

《?!》

아버지는 놀라운 눈길을 들었다.

《영수동무, 어제 우리 공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공장에서 로동자들에게 꿀도 공급해주고 약초도 채취하여 보약으로도 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기뻐하시였소. 지배인동무가 10여년동안 거기서 성실하게 일한 동무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누가 보든말든 깨끗한 량심으로 우리 당을 받드는 그런 고지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말씀하시였소. 그러시면서 이런 동무들이 바로 선군시대의 애국자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소.》

당비서아저씨의 손등에 아버지의 소리없는 눈물이 비오듯 떨어져내렸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눈물속에서 아버지가 한 말은 이 말뿐이였다.

모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그 품에 안겼다.

불쑥 어린시절 동무들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타까와하던 때가 생각났다.

《넌 네가 만든 꿀을 가져다가 노나주겠다구 하구선?》

《우리 아버지가 그건 량심없는 행동이라고 했어. 그래서 못 가져왔다.》

《피, 거짓말. 넌 꿀을 못 만들어보았지?》

《량심이란게 뭐가? 꿀 못 가져가게 하는거가?》

동무들이 갑자기 들이대는 물음에 나는 뗑해졌었다. 아버지앞에서는 머리를 까딱거렸는데 정작 말하자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나는 궁지에 몰려 울먹울먹하며 돌아서버렸었다. 그래 내가 채밀통손잡이를 돌리며 꿀을 생산하지 않았단 말인가?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것을 저 애들은 왜 그렇게 믿으려 하지 않을가.

나는 그때 아버지에 대한 고까움이 다시금 움씰거리며 살아오르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꿀 한병이 뭐라고 날 이렇게 몰리게 하나?

나의 눈물을 본 동무들이 수군거리며 물러갔다. 무르팍이 벗겨져도 울지 않던 내가 우는걸 처음 보았던것이다.

나는 다시는 꿀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입술을 옥물었다.…

그러나 이젠 동무들앞에서 아버지의 량심이 어떤것인가를 떳떳하게 말할수 있다!

나는 이깔숲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난 알아. 얘들아, 난 대답할수 있어!》

나의 목소리는 멀리 멀리로 메아리쳐갔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곰집》에서 병원으로 실려갔다. 2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고 병원생활을 하였다. 아버지의 공장사람들이 입원실문이 닫길새없이 찾아들었다.

《아니, 영수동무. 어쩌다가 이렇게 됐소? 나에겐 해마다 꼭꼭 약초를 보내주던 동무가…》

나는 그 아저씨가 언제인가 아버지가 천꾸레미에 이름을 쓰던 그 사람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는 억이 막힌듯 한 얼굴로 아버지를 보다가 보약을 내놓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온 공장의 사람들이 내가 가지고 싶었던 꿀이며 약들을 안고 왔다.

아버지는 병문안온 지배인아저씨에게 절절하게 부탁하였다.

《지배인동지, 거기에 새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지금은 한창 꽃철인데… 박동무 혼자서는 일손이 모자랍니다.》

지배인은 앞에 있는 사람이 환자라는것도 잊은듯 대번에 어성을 높이며 딱 잘랐다.

《아니, 무슨 소릴 하는거요? 양봉장엔 동무가 있어야 하오!》

지배인이 간 후 나는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울고있었다.

《아버지, 난 아버지의 그 눈물을 알고있어요.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예요.》

아버지는 놀라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성금이가 다 자랐구나.》

아버지는 생각깊은 눈매로 나를 바라보며 계속했다.

《성금아, 내가 언제나 말하지만 량심과 의리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린시절 그 말뜻을 다 리해하지 못한채 그저 까딱거리던 그런 끄덕임이 아니였다. 아버지는 나의 두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

 

추억의 오솔길도 끝나고 어느덧 《곰집》이 바라보이는 정점에 이르렀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너무나도 낯이 익은 모습이 안겨왔다. 그물을 씌운 모자를 쓰고 벌통을 여는 그 모습!

《아버지!》

달려가 아버지앞에 섰다. 그물속에서 아버지의 미소가 안겨왔다.

《우리 성금이가 올줄 알았다.》

당비서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인사를 하고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럼 아버진 병원에서 곧장 오셨나요?》

《그래, 너의 아버지가 거기에 있을 사람이냐? 내가 졌다.》

당비서아저씨는 젖은 목소리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내미는 파견장을 보고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당비서아저씨는 파견장을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보석은 땅에 묻혀도 보석이지. 티없는 량심은 보석처럼 빛을 뿌리기마련이다.》

나는 아버지의 품에 어릴 때처럼 꼭 안겼다. 그리고 행복에 넘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버지, 난 아버지가 제일 좋아요!》

나의 아버지! 평범한 로동자이지만 나는 아버지를 깊이 존경한다. 그리고 세상에 높이 자랑하고싶었다.

우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고 온 공장이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나도 되리라!

아버지는 너그러운 미소를 띠우고 좋은 일을 했을 때처럼 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나는 《곰집》을 둘러보았다.

이깔나무의 설레임소리, 벌들이 붕붕거리는 소리, 시내물소리가 신기한 음향으로 들리는 이 《곰집》은 얼마나 정다운 곳인가!

 

(김책공업종합대학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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