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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8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철
비가 내린다. 억수로 퍼붓는다. 산골물이라 갑자기 불어난 개울은 자그마한 방뚝을 넘을 지경이다. 그 방뚝과 방뚝우로 작은 다리가 놓여져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우에 올라서있다. 어머니와 함께 약속된 처녀를 만나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집에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후숙이라고 했지요, 후숙이!…》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놀라신다. 《왜?! 너 그 처녀를 벌써 지내보았느냐?》 《아니, 아니. 그저 그 이름이 너무도 류달라서요.》 다리에 깐 판자가 미끄러워서 란간을 꽉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 처녀 후숙이니 선숙이는 언니겠군요, 언니! 하하하.》 내가 호탕하게 웃자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래그래, 선숙이다. 먼저 나서 선숙이, 후에 나서 후숙이… 이름보다도 내용이…》 하던 어머니는 별안간 내 팔을 꽉 잡았다. 《얘 철림아, 가만 좀.》 얼결에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손을 홱 내리그었다. 《됐다. 저―기 온다. 이게 정말〈오작교〉인가부다!》 《예―에?!…》 나는 다급히 다리 반대쪽을 살펴보았다. 한 처녀가 금방 다리우에 첫발을 올려놓고있었다. 우산을 들었고 가쯘한 양복차림이다. 하얀 방울이 달랑거리는 새파란 장화가 이채롭다. 그럼 저 처녀가 바로… 금시 가슴이 울렁거린다. 손발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처녀는 한걸음한걸음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엉겁결에 한발자욱 뒤걸음했다. 그러던 나는 그만 나의 눈을 의심했다. 《?!…》 나는 재빨리 우산으로 앞을 가리우고 어머니를 잡아끌었다. 《어머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를 따라오십시오!》 우리는 누가 쫓기라도 하는것처럼 처녀의 곁을 지나쳤다. 쏟아붓는 비줄기와는 관계없이 무슨 생각엔가 골똘해있던 처녀는 우리와 엇갈리는 순간에 지나치게 길을 비키다나니 몸의 절반이 란간너머에 가있고 그 바람에 기우뚱해진 우산밑으로 비물이 주르르 흘러 그의 옷을 적셨다. 다리를 다 건너서자 어머니는 황황히 나를 세웠다. 처녀도 어느덧 다리반대쪽에서 땅에 마지막발을 내짚고있었다. 《너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귀한 새를 놓친것 같은 아쉬운 표정이다. 나는 쩍하면 걱정부터 앞세우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참, 어머니도… 저 처녀가 그래 그 후숙이란 말입니까?》 《그래, 저 처녀가 바로 송후숙이다. 얼마나 좋은 처녀이겠니, 쯧쯔.》 어머니는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혀까지 찼다. 하지만 나는 웃음을 거두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극구찬양하던 처녀가 바로 저 녀자란 말인가. 나는 다리 건너 마을의 집들짬으로 사라져가는 후숙을 점도록 바라보고있는 어머니를 흔들었다. 《가십시다, 어머니. 그리고 다시는 이런 걸음을 하지 맙시다.》 어머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윽하여 가볍게 웃으시였다. 《왜, 마음에 들지 않니?》 《…》 나는 걸음을 멈추고 품안에서 편지봉투를 끄집어냈다. 그속에는 이제 그 처녀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너 이것을 어디서?…》 나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는 오늘까지의 인생에서 두번 갈림길에 서보았다. 한번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이고 한번은 인민군대에서 제대될무렵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대학에 가느냐, 인민군대에 입대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그것은 간단히 락착지어졌다. 미제의 무모한 《핵사찰》소동에 의한 우리 공화국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 준전시상태의 선포 등은 피끓는 우리 청년들을 조국보위초소에 서게 하였다. 그것은 의무였고 량심이였다. 그러나 인민군대에서 제대될 때에는 사정이 달랐다. 당에서는 전초선에서 복무한 우리들에게 자기의 리상과 포부에 맞게 마음껏 앞날을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이겨내고 강성대국건설에로 줄달음치는 조국의 벅찬 현실은 우리의 가슴을 한없이 끓어번지게 하였다. 신문과 텔레비죤을 통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치하해주신 강원도토지정리전투장을 보느라면 용약 불도젤운전수가 되고싶었고 수풀처럼 일떠서는 중소형발전소들을 보느라면 청년발전소건설자가 되고싶기도 했다. 언듯언듯 지나가는 군모의 오각별이 대학생모표로 돼보인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길잃은 나그네와 같이 번거로운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중대가 다 취침한 고즈넉한 밤에 나는 교양실에서 한장의 신문을 들고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정치지도원동지가 래일 아침 상학시간전에 독보하라고 준 당보의 기사였다. 3면 상단에 사진을 받쳐 대서특필한 기사의 제목은 이러하였다. 《강철전선은 이렇게 사수되고있다》! 신문속의 사진, 과묵스레 입을 다문 너부죽한 얼굴이 나를 지켜본다. 내가 이 기사를 어떻게 감수하는가 하고 짙은 눈섭아래서 두눈이 나를 주시하고있다. 글줄들이 살아 움직인다. 커다랗게 확대되여 다가오는 글발―《강철전선은 이렇게 사수되고있다》… 북방 대야금기지의 한 야금기술자는 이렇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강성대국건설의 전초병, 밑뿌리, 개척자라고 높이 내세워주신 제철소를 지켜 우리 식의 주체철생산에 심신을 바치고 영생의 언덕에 올라선것이다! 나의 피는 후두둑 뛰였다. 드디여 나는 길을 찾았다. 시대의 영웅을 따라 오늘의 강철전선에 서는것― 이것이 바로 내가 갈 길이다! 이리하여 나는 용해공이 될 푸르른 꿈을 안고 제대배낭을 멘채 여기 제철소로 달려왔다. 나는 가슴을 쭉 펴고 련합기업소 로동과장한테 씩씩하게 보고했다. 《어제날 특무상사였던 한철림, 용광로직장 용해공으로 배치되여왔습니다.》 《배치되여오다니?… 어디서?》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할사 한 로동과장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보았다. 그러나 나는 제대군인이였다!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심장이 배치하였습니다.》 《허허, 이 친구 괴짠데?… 우리 송진건영웅의 기사가 온 나라를 들었다놓는군 그래?》 로동과장은 방안에 둘러앉은 자기 사람들을 보며 한눈을 찡긋했다. 《그러나 이보게 친구, 배치는 동무의 심장이 아니라 우리 로동과가 한다네. 참, 동무 고향이 어디라구?》 그는 나의 제대증과 파견장을 번갈아보며 느슨히 물었다. 《금산입니다.》 《오, 그래. 금산이로군, 금산.》 로동과장은 한동안 앉아 무엇인가 써넣더니 출입문가에 서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한철림동무, 우린 이미전에 동무의 배치문제를 토론했소. 동무는 래일부터 로동안전교양을 받고 금산석회석광산에서 일하게 됩니다. 일을 잘하기 바랍니다.》 석회석광산이라니?… 나는 와뜰 놀랐다. 아니다. 나는 용광로에서 쇠물을 끓이는 용해공이 되련다! 그러나 로동과장은 나 하나만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바빴다. 그래서 말도 간단히 했다. 《석회석이 딸려서 용광로가 설판이요.》 나는 개운치 않은 마음을 안고 로동과 문을 나섰다. 나무그늘밑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박현삼이가 내손을 잡았다. 그는 나의 소꿉친구로서 이미 공업대학을 졸업하고 용광로직장 현장기사로 일하고있는데 벌써 돌이 되는 아들을 가진 아버지이다. 나는 여러가지 의미로 그를 부럽게 생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가 배운건〈알았습니다.〉뿐이지. 허참, 금산에 올라가라는구만.》 《석회석광산에?…》 현삼은 그럴수 있느냐는 눈길로 나를 훑어보더니 미구에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긴 지금 련합기업소적으로 금산에 힘을 집중하고있는건 사실이네. 석회석이 나와야 용광로를 돌리지.》 현삼은 흐린 나의 기색을 늦출양으로 싱긋 했다. 《차라리 잘됐네. 어머니도 금산에 계시는데 그동안의 회포도 나눌겸 한동안 가있게나. 용광로로 다시 오는 문제는 내가 힘을 좀 써보겠네. 이거 친구의 마음을 든장질해놓고 내가 참 미안하구만.》 박현삼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나는 인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삼이는 펄쩍 뛰며 야단이였다. 10년만에 만났는데 하루밤 함께 자지도 않고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고말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일단 판이 난바하고는 우물거리고싶지 않았다. 《어머니도 기다리실터이니 빨리 가는것도 옳지. 좌우간 현삼이, 자네는 내가 이 마음 전부를 용해장에 두고간다는것을 명심하게.》 박현삼은 어쩌는수없어 입만 다시더니 《참 철림이, 조금만.》 하고 나를 제지했다. 부리나케 다시 집안에 들어갔다나온 그는 웬 사진을 나에게 내미는것이였다. 《뭔가?》 내가 묻자 현삼은 다시한번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음, 금산에 있는 어떤 처녀인데 처음엔 무엇이 되는듯 하더니 아, 이건 갑자기 처녀쪽에서 싫다는거야.》 《그건 왜?》 부지중 호기심이 나서 나는 현삼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아서라는듯 머리를 털며 그 사진을 나의 손바닥우에 탁 놓았다. 《녀자들의 변덕이란 참… 에익, 이런 처녀는 아예 상대도 말게.》 나는 격분한 현삼으로부터 내 손바닥우의 사진에로 눈길을 돌렸다. 옛날 영화의 녀주인공들처럼 퉁퉁한 얼굴, 먼산을 보는듯 한 눈길로 고개를 쳐들사 한 어떤 처녀가 나를 보고있었다. 흔히 볼수 있는 수수한 처녀인데 왜 싫다고 했을가?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현삼이에게 물었다. 《그래, 이 사진을 어떻게 하라는건가?》 현삼은 그 사진을 편지봉투안에 넣고는 다시 내 손에 들려주며 말했다. 《미안하네만 금산기사장이 우리 외삼촌인데 좀 전달해주게.》 이렇게 되여 후숙이의 사진은 나의 손에 들어오게 되였다. 인차 기사장을 찾아가 사진을 돌려준다던것이 그간 안전교양을 받고 또 새로 배치된 우리 설비중대가 요즈음 장마와 관련하여 들볶이우다나니 사진생각은 까마득히 잊었던것이다. 송후숙, 내 이제 갓 배치받다나니 중대 수십명 처녀운전공들의 이름을 미처 다 외우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만 이런 실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진도 사진이거니와 그는 오늘 새벽교대에 나가 권양기운전도중 권양기가 바람이 났는데 다행히도 마지막순간에나마 제동을 잡아 승강기는 별일 없었으나 전동기는 부하를 받아 타게 되였다. 물론 함께 교대에 들어갔던 1수갱 권양기운전공처녀가 갑자기 열이 나면서 몹시 앓는 정황이 발생하였고 또 중대부에 련락하여 새벽교대운전조장의 승인도 받은 후 부득불 남의 기대에 손을 대긴 했지만 어쨌든 사고는 사고였다. 당장 들이닥칠 큰비때문에 눈코뜰사이 없는데 기본작업통로인 수직갱권양기가 죽었으니 전동기를 살릴 때까지 당분간 생산은 멎을것이다. 어쨌든 처녀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재촉했다. 《어두워지겠습니다, 어머니.》 잠자코 나의 말을 듣고만 있던 어머니는 혀를 찼다. 어머니는 점점 어두워지는 시커먼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얘 철림아, 그래도 녀자를 보는 눈이야 내가 좀 낫겠지. 후숙이가 그 청년을 싫다고 했다면 거기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것이고 사고로 말하면 어찌 그 하나를 가지고 사람전체를 평가할수 있겠느냐. 나는 새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데… 나는 후숙이를 절대로 그렇게 보고싶지 않구나. 명심하거라. 땅속 깊은 곳에 가야 금싸래기가 있고 사람의 속은 지내보아야 아는 법이란다.》 어머니의 말씀은 심중하였다. 나는 좋지 않은 인상만을 안겨준 송후숙이라는 처녀를 마음속에서 조용히 지워버렸다. 나는 어머니가 왜 그토록 의미심장히 말씀하셨는지를 그뒤에야 알았다. 다음날 아침, 현희 어머니가 갱사무실에 나타났다. 어제 아침에도 왔던 녀인이여서 나도 첫눈에 알아보았다. 현희란 바로 어제 새벽교대부터 8중단에서 물을 푸는 뽐프운전공처녀이다. 현희 어머니는 중대장아바이앞에 다가서더니 무랍없이 책상우에 보자기에 싼 꾸레미를 올려놓았다. 《밥을 가져왔어요. 우리 현희가 아무리 혁신자라 해도 밥이야 먹어야겠지요?》 《아니, 그건 또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요?》 중대장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현희 어머니는 어질게 생긴 커다란 눈을 밉지 않게 흘겼다. 《에그, 모두들 그럽디다. 우리 현희가 괜찮다구…》 중대장아바이의 얼굴에는 후더운 미소가 봄아지랑이같이 피여났다. 그는 지령전화기단추를 지그시 누르며 미더움에 찬 눈길로 현희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 밥이야 먹어야지. 그러지 않아도 이제 사람을 내려보내려던 참이요.》 삑― 호출음이 나자 중대장은 다급히 송화구에 대고 말했다. 《8중단, 8중단… 오, 현희냐? 나 중대장이다.》 《호호. 알아요. 벌써 몇십번 전화하게요.》 증폭도가 높은 수화기로는 깔깔대는 현희의 웃음소리가 또랑또랑 울려나왔다. 《참, 이번엔 또 무엇이 걱정되세요, 네? 중대장아바이, 우리가 물도 시간맞춰 꼭꼭 푸고 기대관리도 알뜰히 다 하는데…》 《오 안다, 알아. 아동단원 금순이보다 나이가 2배나 된다는것도 말이다.》 《네―에? 아이참, 어제 저녁 당비서동지가 너무 걱정하시기에 한마디 올렸는데 어떻게 벌써…》 현희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럴수록 중대장의 목소리는 젖어들었다. 《됐다, 현희야. 너희들이 나먹은 이 중대장보다 몇갑절 낫구나. 참, 너의 어머니가 밥을 가져왔는데 이제 곧 들여보내마. 이런 때 쓰라는 수직갱 비상통로가 아니냐?》 통화를 끝내려 하는데 현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중대장동지, 밥… 밥은 놔두세요. 후숙언니가 지금 밥을 가지고 올라오고있어요!》 《올라온다구?… 후숙이가?!… 모를 소리다. 그가 대체 어디로 올라온단 말이냐?》 중대장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러나 현희는 총알같이 내쏘았다. 《3수갱으로요.》 《아―니, 뭐라구?!…》 중대장은 화닥닥 일어났다. 《당장 내려서지 못할가! 거기가 어디라구?!》 중대장의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관자노리가 움씰거릴 때마다 커다란 귀바퀴가 따라놀았다. 《이젠 거의다 올라왔을거예요. 정희가 벌써 마중갔는데… 아이, 이걸 어쩌나!》 《이 철없는것들아! 3수갱이 뭐 공원미끄럼대인줄 아느냐? 그 갱은 작년 큰물때 얻어맞아 대보수하기 전엔 얼씬도 못한단 말이다.》 아마도 후숙이는 수직갱통로보다 더 빠른 길이기에 그 길을 택했을것이다. 하지만… 중대장은 머리를 싸쥐였다. 중대장은 정신을 차린듯 웨쳤다. 《중대 <폭풍>!》 드디여 중대장은 결심하였다. 운전공처녀들은 자기 맡은 기대현장으로 뛰여서 갔고 초조한 수리공들은 저마다 벌컥벌컥 장들을 열고 고무비옷을 떨쳐입었다. 《삑!―》 이 혼잡우에 긴 호출음이 울렸다. 경보신호같이 예리한 소리에 하나같이 굳어졌다. 야속한 눈길들이 일시에 지령전화기에로 창끝같이 박혔다. 또다시 울리는 삑!― 소리… 중대장아바이는 허리에 차고있던 안전등을 맥없이 놓으며 통화단추를 눌렀다. 《예― 설비중대요.》 《아이, 중대장아바이.》 현희의 목소리다. 다급히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됐느냐?》 《무사히 올라왔어요. 무사히! 아이, 후숙언니가 얼마나 많이 메고왔는지 아세요? 풋고추와 함께 지진 감자반찬에 구운 이면수, 흰쌀밥에 빵까지 있어요! 우린 먹어요, 중대장아바이? 일없지요?》 《뭐? 풋고추에 빵?!…》 중대장은 한동안 벙벙해있더니 정신없이 웃었다. 희비극이라더니…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우리도 웃었다. 천진란만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현희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무엇을 모를게 있는가. 여기서는 《폭풍》이지만 그들은 배가 고팠을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웃었다. 눈굽에 눈물까지 슴새여난 중대장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안되겠소. 아무리 바빠도 저녁에 모임을 가져야겠소.》 가마에 집어넣은 눈덩이같이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이제껏 긴장하게 서있던 운전소대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청년동맹에서 저녁에 시랑송모임을 한다던데요?》 《시랑송모임?…》 중대장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그 말을 음미해보더니 인차 수긍했다. 《시랑송모임도 해야지. 그래 몇시부터 한다오?》 《6시라는것 같습니다.》 《6시?… 그럼 우린 좀 당기지.》 중대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선 규률부터 세워야겠소. 갱안에서 규률은 생명과 같소. 그런데 지금은 질서가 없단 말이요. 3수갱붕락구간을 밥을 메고 오르다니… 인정이나 리해만으로는 풀수 없는 일이요. 오후 4시 30분부터 규률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모임을 바로 이 자리에서 하겠습니다.》 하루작업조직이 시작되였다. 오늘은 있을수 있는 큰물피해와 관련하여 진행하여오던 복선배수체계를 마감짓는 날이다. 중대의 기본력량이 사갱에 새로 늘이는 물관공사에 달라붙고 일부는 새로 설치한 고압뽐프들의 시운전을 한다. 기능공들이 맡아할 일이 산더미같았다. 하지만 중대장은 운전소대장을 따로 남겼다. 《운전소대장동무, 동무는 이제 8중단에 내려가 운전공들을 다 데리고 올라와야겠소. 후숙이까지 해서 세명을 몽땅… 본인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권양기가 살아나는 오늘 밤까지 기다려보았으면 좋겠지만 알겠소? 이제 무슨 〈벼락〉이 또 들이닥칠지… 나도 인차 따라가겠소.》 그가 지시를 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발뒤꿈치를 딱 소리나게 붙였다. 《중대장동지, 제기할만 합니까?》 《뭐요?》 《저도 운전소대장동지와 함께 8중단에 들어가도록 해주십시오.》 《동무가?…》 《예. 저도 한주일동안 안전교양을 받으면서 갱내실정을 구체적으로 알았을뿐아니라 인민군대때…》 《음, 동무가 최전연에서 군사복무를 했다지?!》 중대장은 미더운 눈길로 나를 보았다. 《좋―소. 함께 가도록 하시오. 하지만 헐치 않은 일이요. 동무네한테 후숙이랑 그 애들의 안전이 담보되여있소.》 《믿어주십시오. 중대장동지.》 나는 신심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믿음과 불안이 한데 뒤엉킨 중대장의 어진 눈길을 보며 어쩐지 사태를 점점 복잡하게 엮어가는 송후숙이라는 처녀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두툼한 고무비옷을 꽁꽁 껴입었으나 수직갱의 석수는 벌써 가슴속으로 기여든다. 수직으로 240m. 우리는 전투장으로 가듯 한단 또 한단 사다리를 조심스레 내렸다. 어느 한 사다리의 경간에서 나는 균형을 잃으며 손을 놓을번 했다. 아찔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그 순간 이보다 더 험하다는 3수갱을 밥을 해가지고 톺아올라왔다는 송후숙이라는 처녀에 대한 생각이 이상하게도 불쑥 떠오르는것이였다. 드디여 8중단에 도착하였다. 윙―하는 고압뽐프의 전동기 돌아가는 소리가 지심을 울렸다. 나는 운전소대장의 뒤를 따라 수직갱을 벗어나 커다란 집수정곁을 지나가고있었다. 광산의 기본채굴장이 있는 2수갱 10중단에서 올라오는 물은 여기 집수정에 모여서 다시 4중단뽐프장으로 가고 거기서 내쏘면 갱안의 물은 드디여 바깥으로 나가는것이다. 아까 후숙이가 톺아올라왔다는 3수갱은 바로 그 2수갱의 10중단과 1수갱의 8중단을 련결하는 가장 짧은 보조수직갱인것이다. 우리가 집수정을 거의 에돌아가는데 문득 뽐프장출입문이 열리며 한줄기 불빛이 춤추며 달려왔다. 《?!…》 엉거주춤 멈춰섰다. 우리가 안전등불을 비치자 쪼르르 달려오던 그 불빛도 멈춰서며 《어마나!》하는것이였다. 《오. 너 현희로구나!》 운전소대장이 알아보았다. 《수고했다, 수고했어. 그런데 또 무슨 일이 있었니?》 운전소대장이 묻자 현희는 똘랑똘랑 솟아나는 눈물을 머금느라 그 고운 입술을 깨물더니 이윽해서 말했다. 《우리가 한창 물을 푸는데 뽐프소리가 약해지겠지요. 그래서 후숙언니가 감시봉을 뽐프에 대고 귀를 강구었는데 글쎄 후두가 막혔다는거예요. 오물들이 후두그물에 걸렸지요 뭐. 제가 수리공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니 후숙언니는 나를 꾸짖었어요. 〈현희, 생각 좀 해봐. 우리가 왜 세상의 하많은 일을 두고도 하필 이 땅속깊은 곳에서 일을 하겠니. 그것은 세상만물이 뿌리에서부터 자라듯이 용광로의 화광도 바로 땅속 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기때문이야. 우리가 물을 제때에 푸지 못해 석회석생산에 지장을 주면 그만큼 용광로의 쇠물이 적어진단 말이야!〉 그리고는 저 집수정에 들어가 후두에 걸린 오물들을 몽땅 걷어내고 지금 계속 물을 푸고있어요. 나는 지금 너무 좋아 물이 어떻게 빨리 줄어드는가 보려고 나오던 참인데…》 쿵!― 가슴속에 돌뭉치가 내려앉는것 같았다. 도대체 저 후숙이라는 처녀는 과연 어떤 녀자인가. 다시 돌아서 올라올 때 우리는 어느 한 사다리의 경간을 지나서 잠시 휴식하였다. 이제부터는 떨어지는 물량도 적고 하여 한결 쉬울것이다. 《아이, 혼이 났네.》 털썩 주저앉으며 하는 현희의 말이다. 《쉿―》후숙이가 경계했다. 현희의 허리와 련결하여 매고오던 안전바를 푸는 나를 보며 아마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나무랬다. 《놔두십시오. 어린 처녀들에게야 사실 힘에 부치지요.》 말해놓고보니 스스로 어색했다. 그를 《저울》에 달아보던 어제 저녁의 일이 생각났던것이다. 《어떻게 인사를 했으면 좋겠는지… 저때문에 이렇게…》 한동안 지나서 후숙은 입속말처럼 속살거렸다. 나는 먼곳의 소리인양 처음엔 그 말을 음미해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이 뜨끔해났다. 말짱 옷이 젖고 저자신도 힘에 부칠테지만 그러면서도 오히려 나를 념려하는 소리였던것이다. 《아, 일없습니다. 저는 명령을 집행했을뿐입니다.》 나는 나쁜짓을 하다가 들키운 사람같이 황급히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참, 후숙동문 여기서 일한지 오래되는가요?》 《네, 한 5년쯤 됐어요.》 《아, 그렇군요. 5년이라… 이제 시집을 가야… 제대되겠군요?》 《제대요?…》 후숙은 나를 보았다. 꼭 쏘아보는것 같았다. 컴컴한 굴속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바깥이라면 아마 나는 당황한 나의 얼굴을 숨기지 못했을것이다. 불쑥 어제 저녁의 일이 떠오르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지만 후숙은 나를 본것이 아니였다. 나에게 그렇게 느껴졌을따름이였다. 그는 내 어깨너머 수직갱벽면을 바라보고있었다. 잠시 그렇게 한모습으로 서있던 그는 고무비옷을 벗어 동발짬에 걸어놓고나서 머리를 꼼꼼히 다듬었다. 허리에서 풀어 바닥에 내려놓은 안전등불빛이 그의 모습을 바위벽에 커다랗게 그려놓았다. 그는 이마로 내려온 머리칼을 다시 추슬러 올리고나서 나를 피끗 돌아보았다. 《동무는… 아이참, 초면에 안됐어요. 동무는 그래 이제 장가들면 뭐 제대되겠어요? 호호호…》 후숙은 옹색하게 앉아있는 내가 퍼그나 지쳐보였는지 웃음을 터쳤다. 그러더니 이내 정숙해졌다. 《시집갈 나이도 되였으니 응당 시집도 가야지요. 그런데 난…》 후숙은 잠시 말을 끊고 입술만 감빨았다. 초면인 나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선뜻 터놓기가 힘들었던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을 다잡고 또박또박 씹어말했다. 《내가 이 광산으로 탄원해올 때 제일 먼저 꽃다발을 안겨준 동무가 있었어요. 용해공이였는데 너는 지하천척 갱막장에서, 나는 소소리높은 용광로에서 마음을 합쳐 더 많은 쇠물을 뽑아내자고 얼마나 절절히 약속했겠어요. 그러던 그 동무가 글쎄 손에서 벌써 쇠장대를 놓고는 좋은 집도 마련했으니 절더러 이젠 갱에서 나오라는거예요. 남들처럼 보란듯이 살아보자면서… 어쩌면… 어쩌면 그럴수가 있을가요? 우리 함께 다진 소중한 그 약속을 너무도 쉽게 저버린 사람, 쇠물을 집어던진 그의 심장이 뜨거우면 과연 얼마나 뜨겁고 그런 남자가 과연 한 녀자와 일생을 영원히 같이할수 있을가요?…》 처녀는 눈굽을 훔쳤다. 그러면서 웃어보이려 했다. 《!…》 나는 불시에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그리고 차마 나의 품속에 그 못난 청년이 되돌려보내는 후숙이의 사진이 있다는것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후숙은 돌아서서 손가락끝으로 눈굽을 꼭꼭 찍더니 나직이 말했다. 《미안해요. 이렇게 해서…》 《아, 뭐… 일없습니다.》 나는 어정쩡히 대답했다. 후숙은 《호―》하고 가느다란 한숨을 몰아쉬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가 헤여진 날 저녁이였어요.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기대장에 앉아있는데 〈후숙이 있나?〉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돌아보니 글쎄 우리 광산합숙의 관리원어머니였어요. 나는 애써 웃으며 어머니를 맞아들였어요. 〈오늘은 왜 꽃 가지러 오지 않았나?〉 〈꽃―이요?…〉
내가 처음 보는 사람처럼 어머니를 보자 어머니는 느슨한 미소를 지었어요. 〈이걸 보지.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 얼굴에 온통 그늘뿐이니… 자, 꽃을 가져왔네. 3년세월 번지는 일이 없더니 오늘은 웬 일인가?〉 어머니는 고운 꽃들이 한아름이나 든 바구니를 내놓았어요. 참, 나는 얼마나 맹꽁이일가요? 제 생각에만 옴해있다가 글쎄 어머니가 이 먼길을 걷게 하다니… 그래서 나는 그늘을 걷고 활짝 웃었어요. 〈고마워요, 어머니.〉 〈그래, 그래. 우리 후숙이가 어떤 처녀라고…〉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도 밝아졌어요. 그 어머니는 젊었을 때 원예사였는데 이 금산땅에 오신 뒤로는 비록 합숙관리원을 하시지만 그래도 남들이 터밭에 고추며 마늘을 심을적이면 그 밭에 언제나 꽃을 심군 하시지요. 한번 가보세요. 꽃이 얼마나 많은가.… 신비경같아요. 나도 짬만 있으면 어머니를 도와 꽃을 가꿔요. 그리고 그 꽃을 여기 갱막장의 모든 기대장들마다에 갖다 피웠어요. 모두들 얼마나 좋아할가요? 지하의 갱막장에 종이꽃이 아니라 싱싱한 생화가 만발한것이였어요! 그렇게 꽃과 함께 3년세월이 지나갔는데 그날 나는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 광부들과 한 약속을 어긴것이예요. 매일 싱싱한 꽃을 막장에 피운다는 그 마음의 약속을 말이예요. 그렇게 한번, 두번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될가요? 아마 여기로 올 때 다진 약속― 용광로에 쇠물 한방울 보태주려던 그 큰 약속도 어기게 될거예요.…》 나는 숨이 꺽 막혔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처녀는 지금 우리 어머니 소리를 하고있었다. 이런 처녀이기에 어머니는 바로 이 송후숙이를 며느리감으로 점찍어두신 모양이다. 깊고깊은 갱막장, 그러나 여기에 바로 조국을 받드는 주추돌들이 억척같이 뿌리를 박고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문득 내 마음속에 잡을 자리가 있을것 같지 않던 송후숙의 모습이 마치도 새 교과서의 첫 제목과도 같이 뚜렷이 새겨지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우리는 다시 수직갱을 타고 1중단에 올라섰고 드디여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중대부에 도착했다. …생활은 엄격하다. 주관적인 욕망이나 감정이 생활을 되돌려세울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이것은 오후에 시작된 회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로서는 이미 후숙이에 대한 리해와 동정이 일정하게 섰지만 이미 잡도리를 단단히 한 중대장의 얼굴에는 추호의 양보도 없을 랭혹성이 짙게 어려있었던것이다. 먼저 나타난 현상을 세세히 보고하고나서 마지막으로 덧붙이였다. 《… 단 한번의 오조작이나 무규률적인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일들을 발생시키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미장공이나 무용수가 하는 일과는 다르오. 미장공은 실수하여 떨어진 몰탈을 다시 바르면 되고 무용수도 실수한 동작을 다시 하면 되지만 우리는 귀중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단 말이요. 따라서 나는 이번 1수갱권양기에서 나타난 현상을 엄중하게 처리하자는것을 중대앞에 제기합니다.》 무거운 긴장이 뜬김같이 서려났다. 나는 고개를 숙인채 얼핏 후숙이쪽을 띄여보았다. 눈을 내리깔고 손톱여물을 써는듯 하는 그의 얼굴은 초불에 비치운듯 창백하였다. 그토록 열정에 넘치던 저 처녀에게 어찌하여 이런 《변》이 다 차례진단 말인가. 침묵을 깨뜨리며 일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후숙이네 교대의 운전조장이였다. 《잘못은 저한테 있습니다. 1수갱운전공이 갑자기 앓을 때 응당 제가 먼저 들어가 후숙동물 립회해야 했었습니다. 급한 일때문에 일이 좀 별스럽게 번져졌는데 이번 일은 전적으로 운전조장인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처벌을 주려면 저에게 주었으면 합니다.》 중대장의 단호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물론 동무에게도 책임이 없는것은 아니요. 하지만 후숙동무의 잘못으로 귀중한 혁명동지가 잘못될번 하지 않았는가. 안 그렇소? 현희동무.》 중대장은 교대조장으로부터 후숙이를 거쳐 현희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귀중한 혁명동지》란 바로 그 승강기에 타고있던 현희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던것이다. 현희는 지금 겁에 질린 산양같이 잔뜩 움츠린채 일이 어떻게 벌어지나 주시하고있었다. 머루알같은 두눈은 더욱 동그랗게 커지고 더욱 빛을 뿜고있었다. 그 어떤 노기가 어울리지 않게도 어른들의것처럼 짙게 어려있었다. 그러던것이 마침이라 하고 발딱 일어서며 총알처럼 내쏘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중대장동지!》 《?!…》 의외의 대답이다. 중대장은 놀라며 머리를 젖혔다. 《무엇이 그렇지 않다는거요?》 한껏 부드럽게 한다는것이 약간 높아졌다. 그 바람에 현희는 대뜸 쿨쩍거렸다. 《후숙언니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교대를 해야겠는데 1수갱권양기운전공은 갑자기 앓지.… 그래서 우리가 교대운전조장에게 말하고 사갱권양기장에 있는 후숙언니에게 가서 졸랐단 말입니다. 만약 이 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저에게 처벌을 주십시오.》 현희는 그렇지 않느냐 하는 눈길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 눈길에는 동정을 바라는 애틋한 빛이 어려있었다. 《후숙언닌 우리를 위해서 권양기를 잡았고 우리를 위해서 그 위험한 3수갱을 타고 밥을 가져왔어요. 그러니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어―엉?!…》 중대장은 책상을 탕― 쳤다. 《이건 뭐요? 여긴 책임을 론하는 마당이 아니란 말이요. 이 회의에서 중요한건 규정이란 말이요, 규정. 규정은 목숨같이 귀중한것이구 자각성을 전제로 한단 말이요. 후숙동문 권양기사고를 치구 또 3수갱붕락구간을 올랐단 말이요. 자의대로 말이요. 이런 무규률적인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겠소? 후숙동무, 말 좀 해보오.》 나는 불쑥 솟구치는 련민의 정에 후숙이를 띄여보았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애꿎은 손가락만 비틀고있었다. 자기문제를 광산에 제기하여 결론을 받겠다는 중대장의 마지막결속이 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그렇게 하고있었다. …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우산을 펼쳐들고 집으로 향했다. 청년들은 자기네 청년동맹비서를 따라 시랑송모임이 진행될 문화회관으로 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일어서는데 중대장이 불렀다. 중대장은 사업일지를 덮으며 가까이 앉으라고 눈짓했다. 《자네 생각엔 어떤가?》 근심에 싸인 어조였다. 얼결에 나는 생각나는대로 말했다. 《인민군대에서 규정은 사실…》 《아니, 아니…》 중대장은 담배불을 붙이려다 말고 내 말을 꺾었다. 《내가 말하자는건 그런 뜻이 아니야. 규정을 지키자는거야 뭐 두말할것 있나. 그보다 내 묻는 뜻은 후숙이 말일세. 자네 생각엔 어떨것 같은가?》 《네―에?》 그제야 나는 말뜻을 알아차렸다. 새 교과서의 첫 제목같이 새겨지던 후숙이의 모습을 상기하며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는 훌륭한 처녀라고 생각합니다.》 중대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가로세로 금을 긋고 쪼박쪼박 들여다보는듯싶었다. 그물그물 담배연기가 갖가지 의문부호같이 피여올랐다. 그러더니 그는 이윽해서 확신성있게 말했다. 《그래그래, 후숙인 좋은 처녀야. 자네가 사람을 볼줄 아누만.》 중대장은 또다시 담배를 길게 들이빨고나서 말을 이었다. 《물론 후숙이가 사고는 쳤어. 그런데 그 사고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였는지 알고있나?》 아니… 사고가 어떻게 일어나다니… 나는 의문이 실린 눈으로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나의 심중을 들여다본듯 그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날 새벽 있은 일을 현희가 이야기했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야. 담당권양기운전공이 나왔다가 갑자기 아파서 들어갔지, 당장 막장의 물은 퍼야 하겠지, 후숙이가 권양기를 운전하려 나섰지. 자네도 알고있겠지만 후숙이의 전교대때 1수갱 뽐프설치로 1시간동안 정전이 되지 않았나. 그래서 그 교대는 계획을 수행하려고 교대시간까지 광석을 올렸지. 그런데 운전공이 마지막광차를 올리며 보니 권양기 제동띠에 이상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누만. 그래 교대하러 들어온 운전공에게 이야기하고 기대를 점검하려고 했지만 교대운전공이 자기가 하겠으니 어서 들어가보라고 등을 밀어 할수없이 운전공은 집에 들어갔다네. 그런데 교대운전공이 기대를 점검하다가 갑자기 몸이 아파나는 바람에 그것을 미처 알려주지 못했지. 원래 기대점검은 교대시간전에 하게 되여있으니 기대에 이상이 생겼다는것을 후숙이가 알수 없었지. 그 기대를 자기 기대처럼 생각했으니까. 결국…》 나의 귀엔 중대장의 뒤말이 들리지 않았다. 후숙이의 잘못으로만 여겼던, 그래서 더 동정이 가던 후숙이가 아니였던가. 《참, 자네 후숙이가 누군지 아나?…》 라는 중대장의 말에 펀뜻 정신이 든 나는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껏 후숙이를 두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후숙이가 누구라니… 중대장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새로 오다나니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군. 그가 바로 송진건영웅의 외동딸이라네. 우리 련합기업소가 낳은 시대의 영웅이지, 영웅…》 《네―에?!…》 나는 몹시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니… 나를 제철소의 용해공이 되라고 길을 가리켜준 그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 《강철전선은 이렇게 사수되고있다》의 주인공 송진건영웅, 그의 외동딸 송후숙!… 그러고보니 신문기사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주체철생산에 한생을 바친 영웅이 병환으로 생을 마치는 순간 그를 앉혀놓고 네가 아들이였다면 내 저 용광로 꼭대기우에 끌끌한 용해공을 남기였을걸 하였다는 대목이였다. 아, 그래서 후숙이의 심장이 그리도 뜨거웠구나. 나는 뭉클해나는 가슴을 어쩔수 없었다. 중대장은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대고 힘껏 비벼서 껐다. 《후숙이, 류다른 처녀지. 만사람이 지켜보는 우람찬 용광로에 쇠돌을 장입하는 스키프운전공으로 일하다가 용약 이 광산으로 자원해온지도 어언 5년, 그동안 권양기면 권양기, 압축기면 압축기 모두 정통한 다기능공이 되였네. 일에서도 생활에서도 모범이야. 그러더니 갱안의 공기를 일신한다면서 기대장들마다에 종이꽃대신 싱싱한 생화를 피우네. 우리 광부들이 얼마나 좋아했겠나. 후숙이! 난 함께 일하면서도 그에 대하여 너무도 몰랐어. 상급당에서는 내가 미처 다 모른 그런 일까지 다 알고있었는데 참… 기대의 정상가동을 위해 휴식날이면 기술자들을 찾아가 방도를 모색하고… 또 언젠가는 스키프의 소음을 제거하기 위해 어느 한 현대화된 공장에 찾아가 그것을 해결할 묘안을 찾고 지금은 그 준비가 끝나가고있다는것도… 아, 내가 눈이 멀었어. 후숙인 이렇게 우리 광부들의 마음속에 쇠물을 끓이고있네. 아버지의 당부대로〈용해공〉이 된걸세.》 중대장은 말을 끊고 마치도 내 얼굴에 무엇이 씌여있기나 한듯 꼼꼼히 뜯어보았다. 《그런데 내 오늘 가슴에 내려가지 않는것이 있구만.…》하며 그는 말을 이었다. 《원인이야 어떻든 사고와 무규률적인 행동은 론의되여야지. 그런데 그는 왜 용서해달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엉, 이사람 철림이!》 후숙이, 그는 왜 말 한마디도 없었는지… 사무실을 나온 나는 억수로 퍼붓는 비줄기속을 뛰여갔다. 단숨에 회관문을 잡아제꼈다. 당장이라도 그를 찾아 말없는 그 심중을 파헤치고싶었다. 하지만 짝짜그르― 터지는 박수갈채에 정신이 들었다. 의문을 풀기 위해 한 처녀를 찾기에는 너무도 신성한 장소였다. 나는 맞춤한 장소를 찾아 소리없이 앉았다. 《다음은 설비중대 송후숙동무가 나오겠습니다. 제목은 〈쇠물은 여기에서 먼저 끓는다〉!》 하얀 샤쯔에 빨간색넥타이를 산뜻하게 맨 곱슬머리청년이 소개를 했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후숙이가 지금 시를 읊을 경황이 있겠는가. 하지만 수많은 청년들의 눈길을 받으며 연단에 나서는 처녀는 틀림없는 송후숙이였다. 눈부신 조명이 그를 에워싸고 어루만지고있었다. 시원히 트이게 동정을 뺀 진분홍색의 우아한 조선옷을 입고 하얀색의 굽높은 구두를 받쳐신은 그의 모습은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왔다. 마이크를 두손에 모아쥐고 천천히 인사를 한 그는 장내를 한번 빙 둘러보고나서 조용히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이 깊고깊은 막장길이 어떤 길인가고 반문하고나서 격정을 터치기 시작했다.
우리 장군님 용광로우에 높이 오르시여 폭포치는 쇠물앞에서 환히 웃으실 때 쇠물아 이름없는 이 처녀의 마음속에서도 너는 뜨겁게 뜨겁게 끓어번졌거니
알아다오 쇠물아 사랑하는 내 조국의 붉은 숨결 너를 위해 차거운 석수도 웃으며 맞는 천길막장 이 쇠물처녀의 뜨거운 소원을 뜨거운 진정을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그런데 후숙은 좀처럼 자리를 뜰념을 않고있었다. 의아한 눈길들이 무대우로 날아갔다. 좀 있어 장내는 조용해졌다. 그 순간 후숙은 마이크를 입에다 가져다대며 간절히 말했다. 《동무들, 저는 이제 금방 있은 중대모임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꾸 말하면 그것이 마치 그 어떤 용서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가 하여…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저의 교만한 태도였습니다. 제가 저지른 사고때문에 동무들이 얼마나 걱정했습니까. 저는 마땅히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모두가 나를 위해주고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데… 저는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하고싶습니다. 우리 조국을 받들고 빛내여가는 쇠물을 위해 나는 영원히 여기서 살며 한점의 쇠물꽃이 되겠다는것을 말입니다.》 한점의 쇠물꽃! 후숙이의 말은 끝났다. 그의 눈에는 맑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별안간 《헉!》 하는 흐느낌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나의 뒤좌석에 앉은 중대장이 주먹으로 눈굽을 훔치면서 《그래… 그래…》 하고있었다. 나의 심장은 다시금 쿵쿵 뛰였다. 활활 불타는 쇠물빛의 노을과도 같이 찬란할 우리의 미래가 어려와 눈뿌리가 시큰거렸다. 땅속 깊은 곳에 금싸래기가 있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씀이 공명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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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후 박현삼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나의 희망대로 용광로직장 수속이 전망이 있다는것이였다. 장마가 끝난 때였다. 달밝은 밤, 나는 그에게 회답을 썼다. 쇠물은 용광로에서만 끓이는것이 아니라는것 그리고 송후숙의 사진은 이미 나의것이라는것 등 이런 내용이였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 직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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