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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나의 선택 우 향 미
공장의 여기저기에서 조용조용 속삭이며 울리던 말들이 점차 커졌다. 마치 가을바람에 부산하게 흔들리는 나무잎새들처럼. 《진화가 어쩜 그 청년을… 그게 정말일가?》 《그 청년이 어째서? 지금은 비록 현장에서 어물거리지만 앞날의 큰사람이 된다는걸 알아야지.》 《그렇긴 하지만 그 앞날이 너무 멀어서 그런다. 공장에 내려온지 벌써 언제인데…》 《하긴 우리 진화야 그 청년에 비하면… 인물 잘났지, 공장적인 혁신자지… 선반에서야 진화를 당할 사람이 있니?》 … 다 나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항상 작업복을 벗을새없이 새형의 절단기연구사업에 정력을 쏟아붓는 소박하고 고지식한 연구사청년에 대한 말이였다. 그렇다. 나는 기계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한 연구기관에 있으면서 연구사업때문에 우리 공장에 내려온 그 청년을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두고있다. 사랑의 뿌리가 아직 무성하게 내리지 않아 그런지 때때로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정말 그들의 말처럼 대상자선택을 잘못 하지 않았는가 하고 저도 모르게 흔들리는 마음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람들은 결혼을 매우 중시한다. 그것은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가 즉 자기의 배우자를 어떻게 선택하며 그 선택을 어떻게 지켜내는가에 따라 가정생활이 직선주로를 그릴수도 있고 기복이 심한 곡선주로를 그릴수도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거듭되는 고민끝에 나는 어머니에게 모든것을 털어놓고 의논하는것이 제일 좋은 방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의 생활에 흔들리지 않을 버팀목을 든든히 박아줄것만 같았다.
뜻밖에 나타난 녀인
어느덧 나의 이야기는 끝났다. 그 어떤 긍정이라든가 부정, 하다못해 추궁이나 훈시라도 있을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그린듯이 앉아있기만 했다. 오랜 시간 그렇게 앉아있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착잡한 마음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잠시후에야 어머니는 입을 열고 힘들게 말을 꺼냈다. 《사람을 옳게 보는것도 중요하지. 그러나 일단 옳다고 생각했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은 가꿀줄 알아야 한다.》 나는 속시원히 마음을 활 열어놓고 이것저것 바재이는것없이 직선적으로 빠개줄것을 바라며 어머니쪽으로 바투 다가가앉았다. 바로 이때 난데없는 전화종소리가 따르릉 하고 울렸다.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는 마당에 불청객처럼 뛰여든 전화가 달갑지 않았지만 하는수없이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받습니다.》 수화기에서는 잠시 전류흐르는 소리만 잔잔히 들리더니 조금후에야 주저주저하는 목소리가 진동판을 울렸다. 어머니를 바꿔달라는것이였다. 어머니는 《전화받습니다.》하고 흔연히 말하다가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는 놀라며 한동안 말을 번지지 못했다. 《명희… 명희 네가 어떻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넘겨주고 무심한 태도로 경대를 들여다보던 나는 어머니가 부르는 그 이름에 그만 눈이 커졌다. 아! 나는 그 녀자를 안다. 가슴에 맺히는 추억도 있다. 《리명희.》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웬일인지 어두워진 기색으로 수화기에 귀를 대고 그 녀자의 말만 듣고있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바라기무늬가 그려진 책가방을 메고 다닐적에 나는 놀음이 싫증나거나 한가할 때면 어머니의 사진첩을 들여다보기 좋아했다. 제일 볼만 하고 재미있는 사진들은 어머니가 대학시절에 찍은 사진들이였는데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끌어당긴것은 어머니와 사진을 매번 함께 찍은 한 처녀의 모습이였다. 사진들에는 《리명희와 함께》, 혹은 《영원한 벗》, 《어디 가도 변치 말자》라는 글들이 활달한 필체로 씌여있었다. 언제인가 하루는 그 사진들을 보다가 어머니에게 넌지시 물어본 일이 있었다. 《어머닌 왜 이 녀자와만 사진을 많이 찍었나요. 딱친구였나요?》 어머니는 사진을 오래도록 뜯어보다가 《그래, 딱친구였지…》하고 말끝을 가무리며 호기심에 넘쳐있는 나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사진속의 두 처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친근한 사람들처럼 떨어져서는 못산다는듯이 다정한 미소속에 팔을 끼고 서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그런지 알수 없었다. 얼마전에도 나는 어머니와 함께 1백화점앞에서 뜻밖에도 그 녀인과 마주친적이 있었다. 사진속에서 익혀온 그의 모습은 언제나 수수하고 평범한 모습이였다. 그렇지만 실물로 본 그의 모습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물우에 뜬 기름과도 같은 그런 모습이였다. 《아니… 옥선이… 너 참 오래간만이구나.》 어딘가 어색한, 그러면서도 떳떳치 못한 목소리였다. 그와 달리 어머니의 목소리는 온화하였다. 《정말 그렇구나.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 저… 미안해. 그만 난 바빠서…》 명희는 웃으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는 총총히 사람들속에 끼여들어 가버렸다. 가까운 대학동창생들 치고는 너무도 짧은 대화였고 딱딱한 상봉이였다. 어머니를 극력 피하려고 조급해하는 그를 보며 나는 어머니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는것을 느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안타깝고 야속한 감정이 슴배여있었다. 아직은 내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나는 더이상 그에 대해 묻지 않았었다.… 《됐어, 명희야. 진정해라.》 무엇때문인지 그를 위안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도간도간 새여나오는 《남편이란 사람이》, 《잘못된 선택》, 《실패한 인생》 등의 말을 가려들으며 그의 가정생활에서 가볍지 않은 그 어떤 일이 생겼다는것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어머니는 전화를 끝내자마자 외출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의문이 가득 실려 지켜보는 나를 보며 조용히 일렀다. 《아버지한텐 말하지 말아.》 나는 앞뒤사연을 알길이 없었으나 어머니가 그 녀인때문에 나간다는것만은 확신할수 있었다. 어머니는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나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맞이하면서도 어머니의 당부대로 침묵을 지켰다. 허나 늘 그랬듯이 그 당부를 먼저 깨뜨린것은 어머니였다. 저녁식사를 물린 뒤 어머니는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이럴 때는 의례히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방을 나섰지만 안에서 도란도란 울려나오는 말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무역기관에서 사업하고있는 리명희의 남편이 맡은 일을 잘하지 못하여 나라에 큰 손실을 주었다는것이였다. 뒤늦게야 과오의 엄중성을 깨달은 그의 남편은 나라에 준 손실을 씻기 위해 스스로가 로동현장에 나갈것을 결심하였다는것이다. 아버지는 사연을 다 듣고나서 묵묵히 담배를 붙여물었다. 한동안 방안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문득 아버지가 어머니더러 자기와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나는가고 물었다. 어머니는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기꺼운 마음으로 아름답던 사랑의 나날들을 더듬는듯 했다. 나는 전실에 옹송그리고앉아 바싹 귀를 강구고 이때껏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에 가슴을 들먹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결합되였는가 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와 대학시절에 동창생이였던 리명희는 아버지와 한 아빠트에서 살았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와 어머니의 오작교역에 그가 적합했던것 같다. 아버지는 지금도 수수하고 눈에 별로 띄우지 않는 남자였다. 그때 대학시절에는 단정한 학생복차림에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공부에 전심하는 그런 청년이였다.… 처녀가 청년의 모습에 시선이 끌린것은 청년의 출근시간이 항상 고정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언제봐야 꼭같은 시간에 보게 되는 꼭같은 모습이였다. 한번도 자세를 흐트리거나 탈선함이 없이 항상 사색에 잠겨있는 청년의 리지적이고 소박한 모습에서 처녀는 고지식하고 진실한 마음을 엿보았다. 이러한 처녀의 호감은 청년을 잘 알고있는 명희의 부채질로 더욱 커졌다. 《네가 사람을 잘 봤다. 영준동문 대학적으로 소문난 수재야. 또 품성은 얼마나 단정하다구.…》 그때까지만도 관심에 불과했던 청년에 대한 생각은 전국대학생문답식경연에서 1등한 청년을 축하해서 꽃다발을 안겨주며 부끄러움으로 볼이 빨갛게 물들 때 애틋한 사랑으로 움터났다. 처녀는 변함없는 그의 한모습을 보며 그의 인생길도 언제나 곧바르고 진실할것이라고 믿었다. 청년은 처녀와 만난 자리에서 사랑의 표적으로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소설책 한권을 주었을뿐이였다. 그들의 사랑이 점차 익어가자 뜻밖에도 오작교로 나섰던 명희가 처녀에게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대상자선택인데 잘 생각해보라고 하는것이였다. 처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자 리명희는 그의 어머니를 찾아와 설복해나섰다. 《어머니, 하나밖에 없는 딸을 꼭 그런 사람에게 보내야겠어요? 옥선이야 인물도 곱지 또…》 《임잔 영준이란 청년이 똑똑하구 훌륭하다고 소개할 땐 언젠데 지금은 왜 이렇게 달라졌나. 시집을 잘 간다는게 뭐겠나.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거야. 사람자체는 보지 않고 번쩍거리는 다른것에 순간이나마 유혹되면 안되네. 우리때에는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정확했네. 그땐 자신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나라일에 발벗고 나서는 그런 사람을 제일로 보았지. 암, 놀라운 기적을 창조하던 천리마시대였으니까. 그때 처녀들은 천리마휘장을 단 사람이 아니면 보려고도 안했어. 나도 우리 령감도 한다하는 천리마기수였지. 우리가 재산이요, 직업이요, 인물이요 하는걸 보았는줄 아나? 그저 나라일에 극성인 사람이면 가정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다고 믿었지. 난 지금도 이 기준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후회없이 걸어온 인생길이 그대로 너희들, 새 세대들의 기준이 되길 바란다.》 명희는 외할머니의 이 말에 꼼짝도 못하고 굳어져버렸다. 이렇게 되여 대학을 졸업하고 교편을 잡고있는 아버지와 동진료소의사로 배치받아 일하고있는 어머니의 결혼식은 부모님들의 축복속에 진행되였다.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저저마다 자기들의 성의가 깃든 소박한 기념품들을 안겨주었다. 그때 아버지의 동무들이 가져온 기념품은 아직도 우리 집에 가보처럼 간직되여있다. 정교한 액틀속에 붉은색으로 수를 놓은 《오직 한마음》이라는 기념품이다. 아버지의 동무들은 이 기념품을 주면서 《이게 사연이 깊은겁니다. 뭔고하니 이 친구의 별명이지요. 이 글처럼 변함이 없을테니 믿으십시오. 우린 신랑신부가 이제 어떤 노래를 부를지 벌써 알고있습니다.〈오직 한마음〉, 이 노래를 부를겁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정말 그날 신랑신부는 그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지금도 제일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노래였고 오늘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애창곡이였다. … 잠시 이야기가 끊어졌다. 아마 서로가 못 잊을 그날을 돌이켜보고있는것 같았다. 아버지는 따뜻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여겨보았다. 《난 지금도 눈에 선하오. 그 약때문에 당신이 바빠하던 그 일이 말이요. 우리가 갓 결혼하였을 때였던가.》 《그 말은 왜 꺼내요. 부끄럽게…》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빛은 행복감으로 하여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날도 여느날과 같이 아버지와 퇴근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어두워지는 낯색을 보고 조용히 물었다. 《얼굴색이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애써 웃으려고 했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대답을 피하자 어머니는 등이 달아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고집스럽게 말했다. 《말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안 갈래요.》 아버지는 심술궂은 아이처럼 발그스레한 볼이 잔뜩 부어오른 어머니를 바라보며 그만 씩― 웃고야말았다. 《사실은 감기가 왔는지 머리가 무겁고 몸이 오싹오싹해서 그러오.》 그제야 어머니는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익숙된 동작으로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갖다댔다. 그 거동에서 금시 소독약냄새가 물씬 풍기는것 같아 단번에 주눅이 든 아버지는 어머니가 하는대로 잠자코 있었다. 《열이 있군요. 약은 잡수셨나요?》 어머니의 따뜻한 정이 마음을 후더웁게 덮어주어 아버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솔직히 대답했다. 《언제 병원에 갈새가 있소. 강의준비도 할래, 학생들 과외지도도 할래, 시간이 어방없이 모자라는데…》 《약을 꼭 드셔야겠어요. 지금 약을 들면 좋겠는데…》 어머니는 안타까운 기색으로 손에 들었던 자그마한 꾸레미를 보며 잠시 주저하다가 단호히 머리를 들었다. 《당신의 그 마음이면 난…》 이때 뒤에서 자전거종소리가 급하게 울렸다. 뒤를 돌아본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어머니는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질번하였다. 그 순간에 어머니의 손에서 자그마한 꾸레미가 떨어지면서 터졌다. 바닥의 여기저기에 약봉지들이 흩어졌다. 《아니…》 어머니는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거기에는 감기약도 있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약봉지들을 모아 다시 꾸레미에 넣었다. 《자, 받소.》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못박힌듯 서있었다. 《용서해요, 이 약들은 제가 담당한 환자에게 나온 약이여서…》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맑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 눈물에는 티없이 깨끗한 량심이, 인민들에게 바치는 지극한 정성이 담겨져있었다. 《됐소, 어서 가기요.》 아버지는 이날 어머니의 마음의 세계를 보았고 가정의 앞날의 행복을 보았던것이다.
나의 추억
어릴 때 나는 어머니볼을 동네볼이라고 불렀다. 발그레한 홍조가 깃들어 언제나 부드러운 온기가 따스하게 감도는 어머니의 볼, 그 볼에 살그머니 내 뺨을 가져다대면 마음속에 후더운 숨결이 흘러드는것만 같아 소르르 잠이 들고 꿈속에서도 그 볼의 연연한 촉감을 느끼며 해죽거리군 했다. 어머니는 병에 걸린 아이들을 진찰하거나 주사를 놓을 때마다 싫다고 버둥질하는 애들을 꼭 품에 안고 따뜻한 볼로 비벼주군 했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품에 안긴것처럼 안도감을 느끼군 했다. 그러면 나의 가슴속에는 시새움이 자라고자라 《엄마볼은 동네볼이야!》하고 마침내 불만으로 터져나오군 했다. 어찌 아이들뿐이랴. 그가 환자라면 어머니의 정성이 가닿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내가 소학교졸업반때라고 생각된다. 그날 공부를 마치고 아이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뜀줄놀이를 하던 나는 급기야 바람을 일구며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 담임한 선생님이 우리 집에 가정방문을 오시겠다고 했던것이다. 바쁘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밥타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부엌에 들어가보니 밥이 타서 가마에 새까맣게 붙어있었다. 짜증기어린 목소리가 절로 튀여나왔다. 《엄만 뭐야.… 밥 다 태우면서…》 분명 급한 환자가 제기되여 밥생각을 잊고 황급히 달려나갔을것이다. 그럴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방안을 살펴보고나서야 나는 부엌에 되는대로 퍼더버리고앉았다. 《조금 있으면 선생님이 오시겠는데… 씨.》 울고싶도록 안타깝고 어머니가 미웠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인차 오시지 않는게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안 오셨으면 하는 생각까지 불쑥 치밀었다. 나는 더는 앉아있을수가 없어 인민반장을 찾아갔다. 인민반장은 《진화야, 어머니는 7호동 3층 1호집에 갔다. 환자가 급한 모양이드라.…》하며 내 걱정을 했다. 나는 그리로 향했다. 내가 3층 1호집 문을 두드렸을 때 《예―》하고 길게 대답하며 문을 열어준 사람은 집주인이 아니라 뜻밖에도 잠자는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서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무슨 일이 생겼니?》 《엄만 뭐야. 밥은 다 태우구… 당장 선생님이 집에 오시겠다고 했는데… 난 몰라.》 나의 울먹이는 소리가 높아지자 《쉿!》하고 손가락을 입가에 세운 어머니는 말소리에 놀라 잠을 깨려는 아이를 두드리며 그 애의 볼에 살며시 자기 볼을 가져다대고 부비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부아가 치밀어 언제부터 맴돌던 말이 저도 모르게 튀여나왔다. 《체, 엄마볼은 진짜 동네볼이야, 동네볼.》 어머니는 그만 어이가 없었는지 밝게 웃음을 짓더니 나를 억지로 잡아끌고 방안에 들어섰다. 나는 방안에서 나를 보며 웃고있는 녀인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놀라며 웨쳤다. 《아니, 선생님!》 선생님은 이미 어머니와 할말을 다 나누었는듯 의미있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니 선생님의 아이때문에… 순식간에 어머니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증발해버린 나는 선생님에게 손목을 잡히운채 자리에 앉았다. 우리가 선생님의 집을 나선 때는 별들도 아물거리며 조는 밤이였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한절반 졸면서도 나는 작은 손을 뻗쳐 어머니의 볼을 살그머니 쓸어보았다. 따뜻한 볼은 여전히 부드럽고 한량없는 정이 넘치는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나직한 말소리가 들렸다. 《진화야.》 《응?》 《배고프지?》 《응, 배고파.》 《그런데 밥이 다 타서 어쩌니.… 정말 너에게 미안하다. 이 엄만 일이 바쁘다면서 언제한번 우리 진화를 잘 돌봐주지 못했구나.》 《엄마…》 나는 울지 않으려고 어머니잔등에 얼굴을 쿡 박았다. 그때에는 밥이 타면 새로 지을 쌀이 넉넉치 못하던 시련의 시기였다. 그 시기 가정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뛰여다니고도 성차지 않아 이렇게 밤길까지 또 걷던 나의 어머니였다. 얼마나 힘이 들고 피곤할가. 난 그런것도 모르고… 《엄마, 나 배고프지 않아. 그저 엄마만 있으면 돼.》 하지만 내 말이 엉터리라는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배에서는 그만 얄궂은 꼬르륵소리가 들렸다. 《그것봐. 지금 네 배가 〈진화는 거짓말을 해요.〉하고 말하고있지 않니.》 《아니야.》하는데 연방 꼬르륵소리가 들리자 어머니는 까르르 웃음을 터쳤다. 나도 어머니의 그 맑은 웃음소리가 좋아서 함께 깔깔 댔다. 현관앞에 다달으니 꺼져있던 우리 집 불이 환히 켜있었다. 바삐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마중나오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어머니는 늦은 자신이 민망스러워 어쩔바를 몰라 허둥댔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진화 아버지. 밥이 그만…》 《됐어, 오늘 저녁준비는 내가 다 했소.》하며 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다. 어머니와 나는 밥상우에 차려놓은 무둑히 담겨져있는 군고구마와 김치 등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당신 군고구마를 좋아하지. 자, 앉소. 진화야 , 오늘 저녁에 우리 군고구마잔치를 하자.》 《야.》 나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아직 온기가 스며 따끈한 군고구마를 닁큼 집어들었다. 《아버진 오늘 어떻게 밥이 없는줄 알고 이걸 가져왔나요?》 나는 어느새 고구마 한개를 게눈 감추듯 해버리고 또 큰것을 넘보며 물었다. 《오늘이 우리 집에서는 의의있는 날이란다.》 《의의있는 날?! 무슨 날이나요?》 《글쎄… 잘 생각해보렴.》 나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아 아버지에게 졸랐다. 《모르겠어요. 아버지, 대달라요.》 《그럼 엄마한테 물어봐라.》 아버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앉아 생각에 젖어있는 어머니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가 아버지와 만나서… 어쨌든 좋은 날이란다.》 《말하자면 어머니하고 큰 〈약속〉을 한 날이지.…》 《큰〈약속〉?! 그런데 난 왜 몰랐을가?》 《너야 모를수밖에.》 아버지는 내 코를 잡아흔들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철이 들면서야 그날이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식을 한 날이라는것을 알았다. 웃음을 지은 아버지가 날 일으켜세웠다. 《오늘 우리 진화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자꾸나.》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면…》하고 시작을 뗀 나의 청아한 노래소리는 화기가 도는 집안에 울려퍼졌다. 노래가 끝나자 정겨이 박수를 치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럼 이젠 내 차례다.》하면서도 아버지는 정작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여보… 고맙소. 그저 늘 나와 진화만을 위해주느라 당신한테 차례진건 아무것도 없구만. 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것 같아 마음이 무겁소. 정말 미안하오.》 어머니의 두볼로는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꼭 부여잡았다. 《무슨 소릴 해요, 새삼스럽게. 난 이 이상 더 바랄게 없어요. 당신의 일이 잘되구 또 우리 진화가 잘 자라구. 그러면 충분해요. 난 오늘 정말 기뻐요. 글쎄 우리 진화가 엄마볼은 동네볼이라고 사랑스러운 칭호를 달아주었단 말이예요. 동네볼, 얼마나 좋아요. 당신의 사랑, 진화의 사랑, 주민들의 사랑속에 떠받들려있는것이… 이게 행복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 행복이겠어요.》 나도 아버지도 어느덧 뜨거움에 젖어 어머니의 속삭임을 말없이 듣고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울렸다. 이런 좌석이면 늘 들어오던 아버지의 지정곡 《오직 한마음》의 선률이 그날처럼 내 가슴을 파고들어 감동을 불러일으킨적은 없었다. 어느덧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합쳐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결혼식날에 불렀다던 그 노래가 오늘도 아버지, 어머니를 조국을 위한 한길로 변함없이 떠밀어주고있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할수 있었다.… 《하긴 명희 남편이…》하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추억의 갈피에서 깨여났다. 《…얼마나 정직하고 대바른 사람이였나. 그런데 변했거던. 조국보다 먼저 자기자신과 가정을 생각했거던. 그러고보면 명희에게도 큰 잘못이 있소.》 《명희가 저 길로 나가면 안되겠는데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잘 도와주지 못한 제가 무슨 동무겠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자책으로 떨려났다. 사실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 그길로 명희의 집을 찾아갔었다. 《어쩌면 그럴수 있니? 좋을 땐 안해이고 나쁠 땐 남이란 소리야? 넌 우리 녀성들을 모욕하고있어.》 성이 나서 웨쳐대는 어머니의 모습에 명희는 그저 눈물로 대답할뿐이였다. 눈물로 얼굴을 적시던 명희는 한참만에야 어머니의 두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난들 왜 남편과 갈라지고싶겠니. 너무 속이 타고 자신이 저주스럽고 미워서 그랬던거야.…》 《그럼 됐다. 남편의 과오는 곧 안해의 잘못이라고 생각해라. 난 네가 진심으로 자신을 깨끗이 반성하고 남편과 함께 새 출발을 했으면 한다. 아니, 꼭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래.》 《고마워,… 난 이때껏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건… 오산이였어. 진짜 행복은 바로 너에게 있었어, 너에게…》 명희는 고개를 떨구었다. 문득 처녀시절에 명희에게 했다던 외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우리 령감도 한다하는 천리마기수였지. 우리가 재산이요, 직업이요, 인물이요 하는걸 보았는줄 아나? 그저 나라일에 극성인 사람이면 가정도 행복하게 해줄수 있다고 믿었지. 난 지금도 이 기준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후회없이 걸어온 인생길이 그대로 너희들, 새 세대들의 기준이 되길 바란다.》 자신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것은 행복이다. 허나 좋은 사람에 의하여 자신이 선택되는것은 더 큰 행복이다. 오늘날 아버지는 학위학직소유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한개 학과를 책임진 강좌장으로 사업하고있다. 어머니는 요즈음에도 생기어린 모습으로 바쁘게 뛰여다니는데 항상 미소가 남실거려 온 집안이 매일매일 명절기분이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군 하는데 눈에서는 마르지도 지지도 않을 영원한 그런 사랑의 빛이 타오르군 한다. 아무런 사심도 없이 오로지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하려는 고결한 마음에 끌려 인생의 길동무로 손을 잡은지도 25년,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무런 주저와 동요도 없이 자기의 길을 곧바로 걸어왔다. 지금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제끼는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에 발맞추어 자기들의 사업에 전력을 다하고있으며 그것으로 하여 가정의 행복은 날이 갈수록 커만 가고있다.… 《아무래두 명희한테 한번 가봐야겠어요. 어려울 때 힘이 되여주는것이 진짜 동무가 아니겠어요.》 《거 그럴것없이 나두 함께 가기요. 명희 세대주도 만나볼겸…》 《언제 내려갈가요?》 아버지는 이렇게 물어보는 어머니를 사랑과 신뢰의 정이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있었다. 당을 따라 변함없이 한길을 걷는 아버지의 모습도 어머니의 외유내강한 모습에서 후광을 받아 그처럼 굳세고 숭고하게 안겨오는것이 아닐가. 부모님들의 결곡하고 강직한 모습은 내 가슴속에 영원한 군상처럼 안겨왔다. 이야기에 심취되여 어느새 퍼더버리고앉은 나는 그만 《아―취》하고 재채기를 하였다. 얼결에 입을 싸쥐고 방안의 동정을 살피던 나는 엄하게 날아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 들었니? 여기 들어오너라.》 나는 방안에 조심히 들어섰다. 어머니는 그윽한 미소가 담뿍 실린 눈길로 나를 지켜보며 담담히 말하였다. 《난 너에게 강요하고싶지 않다. 이야기를 다 들었으니 네가 결심하고 선택하여라.》 나는 당당한 눈길로 어머니를 쳐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나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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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심을 내렸다. 할머니가 선택한 사람은 천리마기수였고 어머니가 선택한 사람은 할머니의 천리마정신을 기준으로 하여 택한 《80년대속도》창조의 기수였다. 나도 나의 할머니, 어머니가 사랑했던 그런 사나이들을 나의 배우자로 선택하고싶다. 그렇다, 나는 그 연구사동무를 사랑할것이다. 일신의 향락보다 조국의 번영에 자기의 적은 힘이나마 바치기 위해 남모르는 열정과 땀을 바쳐가는, 오늘의 강성대국건설에서 영예로운 승리자로 살려는 그 미더운 청년을 나는 영원히 사랑할것이다. 나에게는 그를 사랑하는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전세대들의 정신을 지키고 계승하는 일처럼 생각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의 심장은 열렬하게 그를 가리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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