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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김 철 원 1 후우욱― 후우욱― 눈보라는 사납게 기세를 올리며 몰아쳤다. 파도처럼 밀려오며 온몸을 휘감는다. 콕콕 얼굴에 들이박히는것은 눈가루가 아니라 예리한 바늘묶음이다. 순간 숨이 떡 막히는것 같은 착각에 눈을 감고 돌아섰다. 한참 서있느라니 속이 열리고 숨이 나갔다. 정말 텔레비죤에서나 보아오던 백두산의 눈바람이였다. 아까 대대를 떠나 고개길에 접어들었을 때만도 바람 한점없이 그저 맵짜기만 했었다. 그래 듣던것하고는 다르다 했더니 웬걸 등성이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듯 눈바람이 밀려와 이리 치고 저리 치는데 마치도 백두산에 나타난 너의 속대가 어느 정도인가 한번 보자는듯싶었다. (첫 인사가 괜찮은걸…) 나는 모두숨을 내불고 다시 돌아섰다. 어깨에 둘러멘 착암기가 자꾸만 미끄러져내렸다. 여기로 떠나던 날 아침 어머니가 내주는대로 두터운 내의며 털조끼며 닥치는대로 껴입어 어깨가 둥실해진것이 원인으로 되였다. 나는 착암기를 추슬러올린 다음 성큼 걸음을 내짚었다. 사실 대대장은 나를 떠나보내면서 착암기는 래일 후방물자와 함께 자동차로 운반해가겠다고 했었다. 그런걸 내가 강짜를 부리다싶이하여 둘러메고 나섰다. 《도착성명》을 범상히 하고싶지 않은 속심에서부터였다. 지금 대대는 삼지연지구전기화를 위한 발전소건설의 첫 공정인 물길공사를 벌리고있다고 한다. 압록강으로 흘러내리는 여러 골짜기들의 물을 잡아 계단식발전소를 건설해야 하는 그 방대한 공사에서 대대가 맡은 차가수구간은 제일 길고 작업조건이 불리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대에서는 제일 전투력있는 1소대를 중대력량으로 꾸리고 작업장가까운 곳에 따로 병실을 정하고 독립적으로 그 전투를 맡아 수행하게 하였다. 나는 바로 그 소대에 배치되였다. 처음엔 도로공사를 하는 2소대에 배치되였었는데 의견을 제기하여 옮겨앉았다. 목적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그렇게 1선에서 본때를 보여야겠다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그처럼 마음에 끌려 오기 전부터 상봉을 고대하던 사람이 있기때문이였다. 내가 오기 며칠전, 나의 교대자는 이곳 돌격대생활에 대하여 이것저것 말해주다가 무슨 큰 비밀이라도 대주듯 나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거기 가면 1소대에 꼭 가라구. 광산내기들로 무어진 소대인데 소대장이 멋있는 사람이야. 일할줄도 알고 생활을 꾸릴줄도 알고 하여간 이거야. 군사복무를 한 제대군인인데 경쟁만 붙으면 매번 1등이야. 그래서 은률대대 〈강타〉소대장 하면 려단에서두 모르는 사람이 없어.》하며 그는 이제 체육단출신인 내가 가면 손발이 맞을거라는둥 이왕 돌격대에 가는바엔 그런 사람밑에서 일해야 보람이 있다는둥 바람을 불어댔다. 귀를 강굴수록 마음이 열려지는 소리였다. 다른것보다도 《강타》라는 그 부름이 마음에 들었다. 학교때부터 다년간 권투생활을 하며 너무도 귀에 배인 그 《강타》라는 말이 애틋한 친근감과 함께 잊을수 없는 체육단시절의 책임감독의 모습을 련상시켰다. 비록 전망성없는 선수로 평가되여 체육단에서 나왔지만 엄격하면서도 뜨거운 인정미를 지니였던 책임감독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자리잡고있다. 그래서인지 《강타》소대장이 구면처럼 생각되고 무엇인가 남다른 인연이 맺어질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더욱 친근감을 나타내는것은 그의 이름이 용국이라는것과 고향이 같다는 사실이였다. 나에게도 중학교시절 용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무가 있었다. 혹시나해서 따져물었지만 《강타》소대장에 대하여 그가 아는것은 그게 전부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강타》소대장의 모습을 상상해보았으나 용국이의 모습은 아니였다. 아무렴 용국이가 《강타》소대장이 될수 없지… 지금 눈판길을 걸어가고있는 나의 생각은 대체로 이러하였다. 어느덧 등성이끝에 이르렀다. 순간 차가수골짜기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백설을 떠이고 키돋움하는 우중충한 산발들… (다 왔구나.) 나는 서서히 차오르는 격정을 지그시 누르며 건너편 산기슭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건물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넘어올 때 갈림길목까지 따라온 2소대장이 길을 대주며 눈판에 그린 그림을 상기해보니 앞에 보이는 건물은 분명 소대병실이였다. 병실 한쪽 추녀끝에 빠금히 돋아난 굴뚝에서 가물가물 실연기가 피여오른다. 그것이 또 이름할수 없는 흥분을 솟구쳐올렸다. 저기가 바로 돌격대생활을 시작하려는 나의 정든 보금자리이다. 내 이제 보람찬 돌격대의 나날을 너와 함께 보내리라. 그 모든 날과 날들을 내 한생에서 가장 긍지높고 빛나는것으로 되게 하리라. 구름처럼 부풀어올라 한껏 가지를 치는 공상속에 몸을 맡기고 두눈을 스르르 감노라니 떠나오던 날 어머니에게 하였던 말이 되새겨졌다. 《어머니, 내 꼭 어머니가 바라는 훌륭한 아들이 되여 돌아오겠어요. 그때까지 편지를 하지 않겠으니 나무람하지 마시고 그날을 기다려주세요.》 나는 터질듯 한 가슴을 억제할길 없어 숨을 길게 내그었다. 후우욱― 눈보라가 또다시 불어친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고개길로 내려섰다.
2
《아니, 이게 누구야? 철상이가 아니야?》 아까부터 마당가에 서서 고개길로 내려오는 나를 유심히 살피던 우람찬 체격의 돌격대원이 껑충껑충 달려왔다. 그는 뜻밖에도 군체육대회때마다 경기장에서 맞다들리군 하던 광산축구선수 창식이였다. 광산에서 중앙공격수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친구였다. 《도대체 철상이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어, 응? 이게 꿈은 아니겠지.》 창식이는 착암기를 받아내린다, 배낭을 받는다하며 연신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무척 반가왔다. 새생활의 마당에 나를 아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한편으로 이런 한다하는 친구들까지 대원으로 두고 일하는 《강타》소대장에 대한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소대장이 없다고 한다. 《새벽부터 기술혁신안을 가지고 모대기다가 참고서적이 필요하다면서 군도서관에 갔는데 일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야. 지금쯤이면 오고도 남았겠는데…》 창식이는 걱정어린 눈길로 눈보라치는 산등성이를 바라보다가 나의 잔등을 떠밀었다. 나의 마음은 허전하였다. 그래도 소대에 도착하면 맨 처음 《강타》소대장의 헌헌한 목소리부터 들을줄 알았는데… 서운한 기색을 감추며 병실에 들어서니 방금 밤교대를 마치고 들어온 성원들이 잠자리를 펴고있었다. 창식이의 소개에 따라 그들과 인사를 하고나서 슬며시 방안을 둘러보니 말할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꾸려졌다. 참대무늬벽지를 바른 벽에 걸려있는 크고 시원한 원형거울이며 족자며 한쪽구석의 원탁우에 소담하게 피여난 꽃화분이며가 주인들의 알뜰한 생활기풍과 포근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또 번호가 있는 칸칸에 질서있게 걸려있는 수건들과 그옆에 놓인 세면도구들, 모가 나게 개여놓은 침구류들… 이모저모로 보아도 완전한 군대식생활이였다. 은근히 나의 반응을 지켜보던 창식이가 한마디 했다. 《이게 다 우리 소대장의 모습이라고 할가…》 그는 호기심으로 충만된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소대장에 대한 자랑을 한참동안 늘어놓았다. 소대장의 강한 요구성에 의해 소대가 려단적으로 제일 첫 손가락에 꼽히는 소대로 평가된다는것, 삼지연읍살림집건설때도 그랬지만 지금 굴뚫기에서도 계속 앞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것, 그렇게 일을 내밀면서도 생활은 생활대로 꾸려 일요일이면 꼭꼭 체육경기와 오락회를 벌린다는것, 그런 속에서도 소대원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차려준다는 등 열이 올라 이야기를 하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설레였다. 마치도 내가 그 소대장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온듯싶었다. 과연 그 손탁 세고 팔방미인같은 소대장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가. 불쑥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데 창식이가 문득 《가만, 너도 알수 있을거야. 용국이라구 중학교때 수재로 불리우던…》하는것이였다. 가슴이 후두둑 방망이질을 한다. 교대자에게서 그에 대한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설마했던 그것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수재였댔다는 말을 들으니 그가 틀림없었다. 나는 그만 아연해졌다. 그로부터 한시간후, 나는 마치도 링그장안에서 예상치 않은 타격을 얻어맞는 선수마냥 얼빤해서 기쁨에 넘쳐 얼싸안는 용국이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다음 그가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했으며 30분나마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용국이는 일방적인 대화에서 흥심을 잃은듯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피곤하겠는데 좀 쉬라구.》하며 자리를 펴주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을 다잡을수 있었다. 《용국이!》자리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부지중 이렇게 뇌이는 나의 눈앞에는 10여년전 일이 떠올랐다. 중학교졸업무렵이였다. 내가 전국청소년경기대회를 앞두고 학교권투소조훈련장에서 한창 훈련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용국이가 찾아왔다. 《나에게도 권투를 좀 배워주렴.》 용국이는 속눈섭이 긴 반달눈가에 어줍은 미소를 띠우고 땀을 씻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뭐, 권투?! 하하하.》 나는 너무도 어이없어 그를 마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체육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조용히 책장이나 들추던 그였기때문이였다. 나는 그의 밋밋한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여, 용국이, 권투는 아무나 읽을수 있는 책이 아니야. 대중체육종목이 아니란 말야. 말그대로 중경기야, 중경기. 너같은 약골은 어림두 없어. 괜히 사람 웃기지 말고 하던 공부나 착실히 해서 제2의 뉴톤이 될 생각이나 해.》 그래도 그는 어떻게나 마음을 지어먹었는지 물러설 생각을 안했다. 《그건 나도 잘 알고있어. 하지만 이제 졸업후 군대에 나가려고 하는데… 다문 몇달이라도 몸단련을 하자는거야.》 순간 그의 마음속 고충이 헤아려졌다. 해가는줄 모르고 잠자리 쫓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귀다툼 한번없이 지내온 그 정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권투장갑을 끼워 타격대앞에 세워주고싶었지만 보름후에 치르어야 할 경기때문에 선뜻 응할수 없게 되였다. 《용국이, 날 리해해라. 난 이제 운명적인 경기를 해야 돼. 이번 경기는 권투소조원으로서 학교의 명예를 빛내이는 마지막경기인 동시에 내가 조국의 명예를 걸구 세계무대에 나설수 있는 권투선수로 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결정된단 말이야. 그러니 나에겐 지금 1분1초가 새로와.》 용국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머리를 수그렸다. 나는 더이상 시간을 랑비하고싶지 않아 권투장갑을 끼고 타격대앞에 돌아섰다. 한동안 줄땀을 뽑다가 돌아보니 언제 갔는지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우리사이에는 어성버성한 간격이 생겼다. 학교길에서도 그는 조만해서 말을 건네지 않고 조용히 뒤떨어지지 않으면 고개를 숙이고 앞서걷군 하였다. 그럴 때면 그에게 미안한감도 없지 않았지만 명예욕에 들뜬 나의 감정은 그것을 흔연히 지워버렸다. 며칠 지나 경기를 끝내고 돌아오니 용국이는 이사를 가고 없었다. 바로 이렇게 헤여졌던 그를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된것이다. 이때 창밖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갔던 일은 잘됐습니까?》 창식이의 목소리였다. 《좀 애를 먹었소. 군도서관에 가니 그 기술서적이 대출됐다기에 그 출처를 찾느라고 늦어졌소. 이젠 걸린 고리가 풀릴것 같소.》 《그렇습니까, 그게 빨리 성사돼야겠는데…》 《인차 될거요. 내 갱에 좀 들어가보겠소.》 《오늘은 좀 쉬십시오. 어제 밤도 현장에서 꼬박 새웠는데 그러다간 쓰러지고말겠습니다.》 《고맙소.》 다시 되새겨보면 용국이는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남자치고는 좀 고운 얼굴에 날이 선 코마루, 속눈섭이 긴 눈동자에 샘처럼 고여있는 미소… 아니, 달라진것이 너무도 많다. 세련된 행동거지와 탄력있는 몸매, 침착하면서도 상냥스러운 말투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하여 저으기 저력이 느껴진다. 나는 다시금 그에 대한 생각에 빠져버렸다.
3
다음날 아침 나는 용국이와 마주앉았다. 먼저 내 속을 툭 털어놓았다. 체육단에서 나와 사회에 진출한 후 소리칠만 한 큰일을 제끼지 못하고있다가 여기 돌격대로 왔는데 잘 도와달라는것과 잘못하는것이 있으면 제때에 일깨워달라는 등 솔직한 심정을 피력하고나서 제일 어렵고 힘든 착암수로 배치해줄것을 부탁하였다. 용국이는 심중한 표정을 짓고 나의 말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서로 힘을 합쳐 잘해보자구. 사람이 마음먹어서 못해낼 일이란 없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용국이와 한교대에서 그의 보조공으로 일하게 되였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의 《수련생》이 된셈이다. 《여기서두 〈명중사격〉을 위한 정확한 자세가 필요하지.》 마치도 사격참호에 나선 사수마냥 암벽에 뻗친 착암기를 쥐고 분동작수행을 하던 그의 손이 마지막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기변을 들어올렸다. 순간 따따따― 기관총련발사격같은 소리가 귀따갑게 울리고 암반에 들이박힌 정대는 기운차게 돌아갔다. 그의 자세는 점점 유연해졌다. 돌격대적으로 손꼽히는 착암명수라더니 실로 감탄할만 한 솜씨였다. 후날에야 나는 그의 능란한 착암기술이 여기 돌격대에서가 아니라 군사복무의 나날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에서 터득하고 세련시킨것임을 알게 되였다. 나는 며칠동안 밤잠을 잊다싶이하며 그의 강의와 시범동작을 익히기에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공배치는 어떤 식으로 하고 속심뽑기는 무엇이고 하는 기초리론을 습득하고 제법 착암기를 다루게 되였다. 창식이는 나의 이 발전이 비행기보다 더 빠른 속도라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유로 턱없는 과장을 하였지만 용국이는 내가 뚫은 구멍의 깊이를 재본다, 각도를 따진다 하며 깐깐히 따져보고나서 《그만하면 첫 시작이 괜찮아. 래일부터 단독으로 하라구.》하는 말로 나의 실력을 평가했다. 어떻든 나는 짧은 기간에 착암수로 되였다. 그때로부터 보름후 소대는 본격적인 전투에 진입하였다. 그러던중 우리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삼지연지구 인민들이 전기문제로 불편을 느끼고있다는것을 아시고 몹시 마음쓰고계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 소식은 돌격대원들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우리는 즉시 결의모임을 가지고 발전소조업을 기어이 앞당기자고 토론들을 하였다. 발전소조업을 앞당기자면 물길공사를 올해 가을까지 끝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막장이 점점 깊어지는것과 함께 운반길이가 길어진것이였다. 교대당 세발파, 네발파를 해도 시원치 않을판에 두발파도 못해서 헉헉거렸다. 그래서 내가 제기한것이 발파해제시간을 줄이자는것이였다. 물론 유해가스가 빠지지 않은 막장에서 버럭운반도 하고 착암을 한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지만 굴진속도를 높이는 일이라면 웃으며 뛰여들어갈 우리 청년돌격대원들이였다. 몇몇 착암수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용국이의 반응은 너무도 랭담하였다. 《물론… 하자는 정신은 좋지만 그 방법은 로동안전규정상 허용할수 없는것이요.》 요만한것도 허용하지 못하다니… 나는 슬그머니 차오르는 불만을 지그시 눌러버렸다. 《그렇다면 무슨 수가 있어야겠는데… 이거 우리가 너무 제 한몸이나 생각하면서 앉아뭉개는건 아니요?》 용국이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너무 덤비지 말게, 즉흥은 금물이니까…》 그러며 뒤주머니에서 보풀진 학습장을 꺼내여 내 앞에 펼쳐놓았다. 언제봐도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던 학습장이다. 나는 무심히 책장에 눈길을 던졌다. 《도갱식에 의한 확장천공법》이라는 제목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용국이는 붕대로 감싼 두툼한 손가락으로 그아래 그려진 단면도를 짚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난 지금의 갱도를 절반으로 줄이자는거요. 그렇게 되면 22개가 되던 발파구멍이 10개로 줄어들게 되고 천공속도는 3배로 빨라지게 될거란 말이요. 이렇게 먼저 굴을 관통시킨 다음 다시 돌아나오면서 자기 규격대로 확장하자는거요. 여기서 좋은것은 버럭돌을 피복공사에 그대로 리용한다는거요. 결국 우리는 속도는 속도대로 보장하면서 많은 시간을 얻어낼수 있게 되오. 어떻소, 동무들?》 나는 신음소리인지 탄성소리인지 알수 없는 애매한 소리를 내며 책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순간에 리해가 되는 멋진 방안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때는 격이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무런 과학적타산도 없이 그저 주먹치기로 윽윽거리던 자신이 창피해졌다. 무작정 발파가스속에 뛰여들자고 하던 나의 《착안》에 비하여 용국이의것은 얼마나 과학적이고 실리적인것인가. 용국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철상이, 사람이 일을 하자면 무엇보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배우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다는것이 오늘 시대발전의 요구야. 난 이걸 군사복무나날에 체험했어.》 그는 조용히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갔다. 흘러간 시절을 되새겨보는듯 달빛이 어린 그의 얼굴에는 뜨거운 감회가 비끼였다. 《우리 안변청년발전소군인건설자들이 창조한 그 모든것들은 결코 함마나 휘두르고 주먹다짐이나 해서 이룩된게 아니요. 그때 우리가 한 일들을 론문으로 썼다면 많은 병사들이 발명권을 받았을거요. 그러나 제 이름을 내자고 하는 병사는 한명도 없었소. 오직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하루빨리 관철하자는 이 하나의 생각에 불타고있었지.》 나는 머리를 숙이였다. 너무도 높은 경지에 서있는 그를 마주보기가 부끄러웠던것이다. 나는 주먹을 틀어쥐였다. 그래,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실현할수 없다. 용국이가 고마왔다. 그는 한쪽구석에 있는 철궤함에서 밤색표지의 두툼한 책을 꺼내여 나에게 내밀었다. 《자, 우선 이걸 먼저 보라구. 굴진공에게 필요한 초보적인 상식과 경험을 적은 책인데 참고할게 많을거요.》 《소대장동무, 내 이제부터 머릴 싸매고 해댈테니 옆에서 채찍질을 잘 해주시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즐겁게 웃었다.
4
용국이의 타산대로 새 공법이 도입된 막장에서는 굴진속도가 높아졌다. 늘 얼굴이 컴컴해있던 소대원들이 환성을 질렀다. 창식이는 나의 목을 얼싸안고 《어때, 이게 바로 우리 소대장의 강타라는거야, 강타!》하며 돌덩이같은 주먹으로 잔등을 두드려댔다. 또 밥상에 앉아서 머리도 못 들던 착암수들이 《자, 오늘 세발파를 했으니 먹는것두 곱배기를 해야지.》하며 식당근무성원들을 바빠나게 한다.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교대가 따로없는 전투를 벌렸다. 교대를 마친 후에는 다음교대까지 뛰여들어 한발파를 더 해제껴야 직성이 좀 풀리는듯싶어 나의 작업은 계속되였다. 그리고 짬만 있으면 용국이가 준 책을 펼치고 하나라도 더 익히기 위해 애썼다. 그런 속에서 어지간히 기술이 늘고 안목도 넓어져 속심뽑기를 종전처럼 하지 않고 더 합리적으로 할수 있다는 기술적타산을 세우고 대중토의에 붙여보았다. 누구보다 기뻐하며 지지해준 사람은 용국이였다. 그것이 곧 도입되여 굴진속도는 더 빨라지고 거의다 따라왔던 옹진대대는 다시 까맣게 뒤떨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려단에서는 중간총화를 진행하였다. 물론 우리 대대가 1등이였다. 나는 려단적으로 실적이 제일 높은 혁신자로 등록되여 총화에 참가했다. 거기에서 곧바로 현장에서 진행되는 텔레비죤축하무대에까지 올랐다가 소대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엔 날개가 돋혔다. 어쩐지 한바탕 달리고싶은 충동에 고개너머까지 주로를 설정하고 땀이 나도록 달리였다. 그리고는 네활개를 쭉 펴고 눈우에 누웠다. 푸른 하늘이 눈이 시게 안겨들었다. 목화송이같은 흰구름이 손을 뻗치면 닿을듯 낮추 떠있다. 그것이 또 가슴속에 차넘치는 환희를 배로 해주었다. 귀전에는 축하무대에서 울리던 박수소리가 그냥 울리고 눈앞에는 혁신의 비결을 묻던 방송원의 상냥한 눈길이 사라질줄 모른다. 아, 기쁨이란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는 눈덩이와 같은것인가. 생각하면 오늘의 축하무대가 마치 나를 위하여 마련된것 같았다. 이제 고향의 어머니와 형님들, 직장사람들이 텔레비죤화면에 나타난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가. 아마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서 《아무렴, 우리 막내가 어련하겠지.》하며 기뻐할것이고 형님들은 형님들대로 흐뭇한 웃음속에 이 동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것이다. 또 작업반장아바이는 틀림없이 하루작업총화의 《기본안건》으로 제기하고 《우리가 지원포를 좀 더 세게 쏴줘야 하겠네.》라고 하실것이다. 그려볼수록 마음은 자꾸만 부풀어오른다. 한동안 기쁨에 도취되여있던 나는 문득 용국이가 생각나 몸을 일으켜 고개길을 바라보았다. 대대지휘부에 들려 다음단계 전투일정을 토의하겠다면서 갈라졌는데 지금쯤이면 올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갈림길 초입구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손에 든것이 무엇인지 흔들거린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속에서 따뜻한 정이 그윽히 피여올랐다. 사실 오늘 텔레비죤축하무대에 올라서야 할 주인공은 바로 용국이였다. 낮이면 현장에 나가 착암기를 쥐고 밤이면 기술학습반을 운영하고 창의고안을 하면서 언제한번 발편잠을 자본적 없는 그였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 총화에서 《이 모든 성과들은 다 우리 소대원들의 집체적힘과 정열, 지혜에 의하여 이룩된것입니다.》라는 겸손한 말로 함축해버렸다. 정말 지내볼수록 믿음이 가고 저도 모르게 존경이 가는 사람이다. 이제는 동창생이라는 관념이 없어진지 오래다. 내 언제면 저 인간의 높이에 서겠는지. 어느덧 그의 모습이 가까와졌다. 순간 나의 눈은 둥그래졌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것이 축구공구럭이였기때문이였다. 《아니, 이거 축구뽈이 아니요?》 《래일 전투시작에 앞서 사기도 돋구어줄겸 하루 푹 쉬면서 축구경기를 하자는거요.》 그제서야 나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늘 이런 《창안》으로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전투성과를 올린다. 그런데 축구를 하려면 대대에서도 시오리 더 나가서 있는 주변학교에 가야 한다. 나의 생각을 알았다는듯 용국이는 싱긋 웃으며 마주 보이는 산정을 가리켰다. 《저우에서 해보자는거요. 아마 무연한 등판에서 축구경기를 하면 볼만 할거야.》 등판에서의 축구경기라.… 나는 온몸에 피가 솟구침을 느꼈다. 이건 말그대로 특이한 돌격대식 축구경기다. 이름할수 없는 환희가 솟구쳐오르고 벌써부터 발이 근질거렸다. 《정말 멋진 생각이요, 소대장동무. 하하하.》 나는 그의 손에 들었던 축구공을 구럭채로 힘껏 떠올렸다. 다음날 아침 포태산마루의 이깔나무우듬지에 눈부신 아침해가 솟아오르자 소대원들은 와― 환성을 지르며 돌격선에 나선 병사들마냥 등판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부축하고 떠밀며 눈속을 헤쳐 산정에 오른 우리들의 눈앞에 눈부신 백설의 광야가 펼쳐졌다. 해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판은 그 어떤 발자취도 찍히지 않은 숫눈판이였다. 한동안 백설광야를 부감하고나서 우리는 꼴문대를 세우고 솔가지들로 눈판에 측선을 표시하였다. 용국이의 제의에 따라 나를 주장으로 《삼지연》팀과 창식이를 주장으로 《소백수》팀이 무어졌다. 이윽고 첫공이 하늘로 올랐다. 동시에 뽀얗게 뿌려진 눈가루가 해빛에 부딪쳐 반짝반짝 빛났다. 창식이는 처음부터 자기의 빠른 속도에 의한 련락으로 중앙공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나는 전면공격, 전면방어를 계획하고 역습속공의 기회만 노렸다. 창식이의 중앙돌파는 매번 보기 좋게 제지당하였다. 드디여 우리는 전반전 마감무렵에 첫 꼴을 넣었다. 부아가 한껏 치밀어오른 창식이네는 후반전에 들어와 전술을 바꾸어 측면돌파를 시도하였다. 그래서 경기는 더욱더 치렬하게 벌어졌다. 바로 이때 공교롭게도 바람이 터졌다. 우리 꼴문쪽에서 불어치는 바람이였다. 잔뜩 목을 빼든 눈보라는 늦잠을 자다가 뒤늦게야 우리를 발견한듯 횡포한 기상을 해가지고 독설의 혀바닥을 휘둘렀다. 후우욱― 후우욱― 축구경기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제는 공을 차는것이 아니라 밀고나간다. 공은 바람이 부는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두 팀이 다 공을 따라다닌다. 그러다 요행 누구의 발길에 걸려 중앙선을 넘어갔다가는 다시 바람을 타고 넘어온다. 그때마다 으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고무풍선처럼 날아오른다. 모두가 배를 그러쥐고 웃어댄다. 여기저기에 주저앉은 선수들도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참으로 잊지 못할 등판의 축구경기였다. 나는 그때 한생 웃을 웃음을 다 웃은것 같다. 결국 경기는 우리 《삼지연》팀의 승리로 끝났다. 뒤이어 시상식이 진행되였다. 압축기수리공이 얼음《우승컵》을 수여하였다. 그것은 그가 밤새도록 깎아내고 다듬어 만든것이였다. 《우승컵》중심에 백두산과 이깔나무숲을 부각하고 그밑에 《618건설돌격대》라는 글발이 새겨져있었다. 요란한 박수갈채와 함께 이깔나무가지로 만든 목걸이가 매 선수들에게 걸려졌다. 우리가 받은 《우승컵》은 겨울내껏 병실마당에 세워져있었다. 그날밤 나는 용국이와 베개머리를 같이하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국이는 군사복무시절에 있었던 가지가지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그중에서 제일 인상깊은 이야기는 그의 입당보증인이였던 《나가자》소대장에 대한 추억이였다. 붕락된 갱안에서도 《나가자 나가자…》노래를 부르며 착암을 했다는 불굴의 사나이, 손풍금이면 손풍금, 북이면 북, 못 다루는 악기가 없고 손에 무엇이든 쥐기만 하면 신묘한 음악을 연주했다던 재간둥이락천가… 무너지는 동발을 막아 동지들을 구원하고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한다. 그 소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용국이의 성장이 어디에서 시작되였는가를 알게 되였다. 나는 달아오른 손으로 용국이의 손을 꽉 그러쥐였다. 《그 소대장처럼 날 이끌어달라구. 그래서 내가 일을 잘해 당원이 되는 그날 나의 보증인이 되여주게. 약속하지?》 용국이는 얼굴에 웃음을 함뿍 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 마주잡은 손을 으스러쥐게 틀어잡았다. 참으로 행복한 밤, 사나이들의 우정으로 깊어지는 밤이였다.
5
어느덧 이깔단풍계절이 왔다. 얼마전 우리는 물길굴을 관통하였다. 그때 우리는 갱안에 뛰여들어 마치도 사선을 헤쳐넘어온 사람들처럼 서로서로 손을 마주잡고 머리를 비비면서 환희를 터쳤다. 나의 눈앞에는 이 나날들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장화목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석수를 맞으며 착암기를 돌리던 일, 발파구멍에서 때아닌 석수가 터져 다짐하였던 화약봉지가 밀려나 다시 화약을 싸들고 막장에 뛰여들던 일, 버럭운반길의 얼음을 까던 일… 정말 눈물과 웃음, 힘겨움과 환희가 쌍둥이처럼 엇갈려지는 나날이였다. 그러나 아직은 웃음을 터치기에는 일렀다. 수십리밖에서 모래를 져나르고 혼합물을 이겨 몰탈작업을 해야 하는 피복공사는 암벽을 까내고 굴을 뚫는 일 못지 않게 힘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소대장으로 임명되였다. 대대참모장으로 소환되여가는 용국이는 나에게 미더운 눈길을
보냈다. 《소대를 부탁하오.》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일할테니 믿어주오.》 그날부터 나는 소대의 명예를 잃지 않으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여다녔다. 그런 속에서 피복공사완공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었다. 그날은 결승선에 다달은 소대가 총동원하여 마지막구간에 대한 피복공사를 다그치고있었다. 창고에서 공구들을 꺼내가지고 갱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후방물자를 타러갔던 창식이가 헐썩거리며 올라왔다. 《저, 소대장동무.》미처 말을 잇지 못하는 그는 무슨 일인지 시무룩한 표정이였다. 창식이는 후― 숨을 내불고나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우리가 대대참모장동질 더 보지 못할것 같구만. 며칠전에 대학추천을 받고 떠났다오.》 나는 반갑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늘 용국이가 잘되기를 바랐으며 이런 날이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어째서인지 서운한 감정을 금할수 없었다. 불현듯 언젠가 입당보증인이 되여달라고 하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모습이 되새겨졌다. 나는 공구를 둘러메고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갱안에는 쉬임없이 물이 흐른다. 오늘따라 물량이 더 많아진듯 장화목에까지 넘실거렸다. 혼합물 다짐소리가 가락맞게 울려오는 안쪽에서 누군가가 저벅저벅 마주왔다. 휘틀해체작업을 하던 압축기수리공이였다. 《마침 소대장이 들어오누만. 이걸 어쩌면 좋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어제 밤에 작업한 구간들에 기포가 생겼네.》 눈앞이 아뜩해졌다. 나는 황급히 달려갔다. 살펴보니 크지 않은 기포구멍들이 보였다. 속도를 높이는데만 급급해서 몰탈다짐을 잘 하지 못한 탓이였다. 뒤따라 들어온 압축기수리공이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생각했던것보다는 그리 심하지 않구만요.》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안전모를 벗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래도 재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가?》 근심어린 압축기수리공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재작업을 한단 말이지… 그러면 사나흘은 더 걸린다. 게다가 로력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1등 자리를 옹진대대에 양보해야 된단 말인가. 나는 벽에 다가가 기포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굳고 예리한 돌부리들이 만져졌다. 《이렇게 합시다. 강도높은 세멘트로 기포구멍을 메꾸고 더 든든히 보강해줍시다.》 드디여 공사는 끝나고 나는 철수명령을 내렸다. 대원들이 공구를 들고나가자 나는 다시금 보강한 부분을 더듬어보았다. 이미 굳어진 벽면에 새 몰탈을 붙인 부분은 색갈이 확연하게 알렸다. 그것이 가슴 한구석에 무거운 연덩이같은것을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어찌겠는가. 내가 입술을 감쳐물고 막 나가려고 하는데 앞에서 《수고들 했소. 정말 수고했소.》하는 흥분에 찬 목소리가 울려왔다. 용국이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소대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잔등을 쳐준다. 그러다가 나를 띄워보고는 바삐 다가왔다. 《소대장동무, 수고했소.》 나는 멋적은 웃음을 띄우고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불쑥 나타난것도 놀라왔지만 그의 오른쪽손목에 걸린 파란색의 도래자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작업정형을 료해하려고 온것이였다. 하마트면 결승의 테프를 끊는 오늘을 보지 못할번 했다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무량한 감개가 어려있었다. 이윽고 미끈하게 피복을 입힌 갱안을 멀리서부터 쭉 훑어오던 그의 눈길이 다시금 보강한 구간에 이르러 멎어섰다. 가까이 다가가 그 부분을 손으로 만져보고 오래동안 살펴보던 그는 내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화살처럼 날아오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어제 밤에 작업한 구간이 잘 안됐는데… 다행히도 기포구멍이 크지 않아서…》 용국이의 얼굴색은 어두워졌다. 《아니, 이렇게 해서는 안되오. 이제 더 굳기 전에 퇴치하자구.》 《…》 《왜 대답을 못하나?》 《크지도 않은 일인데 이제와서…》 《뭐라구, 크지 않은 일이라구?!》 용국이의 서늘한 눈길이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크지 않으나 절절한 용국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난 자네가 제 이름이나 내고 그 어떤 명예를 얻자고 여길 왔다고 생각질 않네. 보이지 않는 곳일수록 더욱 자기의 량심을 묻어야지. 더우기 우리가 하는 일은 대를 두고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만년대계의 창조물들이라는것을 잊지 말라구. 그렇게 땜때기나 한다구 량심의 티가 가리워질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지둥하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용국이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라구. 조국해방의 성전에 나섰던 항일혁명투사들이 무엇을 바라고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싸웠겠나. 오직 조국을 위하여, 우리 후대들을 위하여 한목숨 바쳤을뿐이지. 명심하라구, 여긴 항일혁명투사들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성스러운 땅이야. 땀이나 몇방울 흘리고 그 어떤 명예나 대가를 바란다면 그분들이 용서치 않을거네.》 나는 비칠거리며 병실로 갔다. 맥없이 쓰러진 몸은 아득한 천길나락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직일근무를 서던 대원이 조용히 다가와 대대장이 온다고 알려주었다. 무겁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던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앞서오는 대대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비껴있었고 그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뜻밖에도 낯익은 군기동예술선동대원들이였다. 대대장과 나란히 걸어오던 기동예술선동대장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색을 지었다. 《아, 〈권투선수〉! 여기 와서 본때를 보이누만.》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대대장이 나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었다. 《수고했소. 이번에도 또 1등이란 말이지, 하하.》 나는 바빠나 한걸음 물러섰다. 《저… 이번엔… 제가 그만…》 《말을 다 들었소. 하지만 그거야 고치면 되는거지. 내 그래서 지원포를 쏴주자고 이렇게 이 동무들을 데리고 왔소. 참모장동무가 어떻게나 뭉클시켰는지 모두가 다 올라왔단 말이요.》 나는 대대장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대대장동지, 고맙습니다.》 《아니, 인사는 참모장동무에게 하라구. 이번에 참모장동무가 큰일을 했소.》 대대장은 나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참모장동무는 정말 쉽지 않은 사람이요. 대학으로 떠나는 날까지 동무를 도와주겠다고 다시 여기로 왔소. 지원물자랑 한가득 가지고 말이요. 그속에 동무에게 오는 편지도 있더구만.》 나의 귀전에 윙―하고 고압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니 용국이가 나때문에…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울컥울컥 치밀어올랐다. 아 진실한 인간, 뜨거운 인간! 나는 정신없이 물길굴안에 들어섰다. 저 앞쪽에서 벽을 까내는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쩡쩡― 함마질소리가 온 굴안에 울린다. 함마를 휘두르는 용국이의 모습이 확대되여 안겨온다. 땀이 흐르는 얼굴이며… 어깨에 조명등빛이 어려 그의 모습은 그대로 숨쉬는 불덩어리이다. 그의 모습우에 수많은 모습들이 겹쳐진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고 웨치며 혁명적군인정신을 창조한 그 불굴의 모습들이…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함마를 쥐였다. 그는 흔연히 넘겨준다. 얼굴에는 맑고 깨끗한 미소가 그윽히 흘러넘치고있었다. 그날밤 우리는 기동예술선동대원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나에게는 그때 용국이가 읊었던 즉흥시의 한구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 누구든 참된 인간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여기로 오시라 그리고 티없이 깨끗한 량심을 바치라 그러면 백두산이 너를 보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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