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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10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리 명 호
1
길은 몹시 험했다. 해토무렵이여서 주변의 산골짜기들에서 흘러내린 눈석이물이 군데군데 물곬을 냈고 간밤에 비까지 내려 길은 아예 엉망진창이였다. 승용차가 들출 때마다 김일현은 송구스런 마음으로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앉아계시는 뒤좌석에 눈길을 돌리군 했다. 어제밤도 꼬박 밝히신 그이이시였다. 《다 일현동지탓입니다. 장군님께서 일현동지를 만나보신 다음부터 신색이 좋지 않습니다.》 평양을 출발할 때 하던 나어린 경위대원의 볼 부은 목소리가 다시금 귀전에 되마치자 일현의 마음은 더욱 옥죄여들었다. 어제 늦은저녁 김일성동지께서는 전국의 토지개혁정형을 료해하시기 위해 곳곳에 파견하였던 일군들과의 협의회를 진행하시였다. 농민들의 세기적숙원인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자 나라의 방방곡곡에서는 지주의 땅을 몰수하여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나누어주는 사업이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있었다. 벌써 나라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는 토지분여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고 난생처음 땅의 주인으로 된 농민들은 봄씨붙임준비를 서둘렀다. 때를 같이하여 반동놈들의 책동이 더욱 우심해졌다. 평양의 근방에서는 지주놈들이 반동단체를 조작하고 토지개혁을 파탄시키기 위해 갖은 발악을 다 했고 어느 한 지방도시에서는 반동들이 퍼뜨리는 거짓선전에 속은 학생들의 소요가 일어났다. 전복된 계급적원쑤들은 토지개혁의 성과를 파탄시키며 민심을 혼란시켜보려고 《공산당이 땅을 거저 줄줄 아느냐. 소출은 다 빼앗아간다.》고 악선전하며 종곡창고에 불을 지르고 농기구들을 파괴했고 투기업자들을 추동하여 부림소들을 밀도살했다. 방금 도착하여 회의장의 한끝에서 열띤 토론들을 듣고있던 일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나갔던 강서지방에서는 토지개혁을 반대하는 지주놈들의 책동이 그 방법에 있어서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는 지주놈이 사상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일부 농민들더러 제놈들의 땅을 몰수하지 말아달라는 〈진정서〉까지 써서 군에 올려보내도록 부추겼습니다.》 바람 잔 호수가에 돌덩이가 떨어진듯 장내가 술렁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탁우를 다독이시던 연필을 멈추시였다. 동안이 지나자 장내는 조금 진정되는듯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를 마감지으시려는듯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토지개혁은 우리 나라에서 수천년동안 내려오던 봉건적토지소유제도를 없애는 력사적사업인 동시에 땅의 주인으로 살려는 농민대중과 그를 반대해나선 지주세력과의 치렬한 계급투쟁이며 진보와 반동간의 싸움입니다. 지금 일부 지역들에서 나타난 사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빈고농을 비롯한 핵심군중을 계급적으로 각성시키고 사상적으로 무장시키지 않고서는 토지개혁의 완전한 승리를 거둘수 없다는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습니다. 동무들, 우리는 바로 여기에 선차적인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일현은 천만근의 짐이 어깨우에 실린듯 한 중압감을 느끼였다. 자기가 담당했던 강서군내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이 꼭 제 불찰인듯싶었고 늘 바쁜 시간을 보내고계시는 장군님께 죄된 마음을 지울길 없었다. 그는 맨 나중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현동무는 잠간 남으시오.》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에 그는 주춤 자리에서 굳어졌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어째서 벌써 돌아왔소?》 일현은 닭알침을 힘들게 넘기고나서 고개를 푹 수그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가 해방된지 반년이 넘도록 고향에 다녀오지 못한 그의 일이 마음에 걸리시여 강서군내 토지개혁실태도 료해할겸 이번에 기회를 마련해주시였었다. 일현을 떠나보내시며 고향마을에서 며칠 머물도록 왼심도 쓰시여 이번 협의회엔 참석하지 말고 그곳 토지개혁실태를 전화로 보고하도록 이르기까지 하셨던것이다. 《가서 며칠 푹 쉬도록 하오. 일현동무의 그 친구가 이름이 혜명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반가와하겠소.》 1939년 봄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왔을 때 《혜명이 그 친군 〈위만군〉놈들의 병영에서 탈출할 때 날 살리려다가 어깨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혁명군입대는 도리여 짐이 된다면서…》하고 울먹이던 일을 그이께서 잊지 않고계셨다는 생각에 일현은 얼마나 가슴뜨거웠던가. 평양을 떠나 고향마을이 있는 강서땅으로 말을 달리는 그의 마음은 벌써 혜명에게 가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서 산간오지의 깊은 수림속을 헤매던중 《위만군》놈들에게 붙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혜명의 부상으로 하여 다시 헤여지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들이였다. 혜명이가 어깨를 부여잡고 비척이며 멀어져갈 때 일현의 가슴속에 먹장구름속의 한줄기 빛인양 위안으로 될수 있었던것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수 있다는 아니, 꼭 만나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처럼 고대하던 상봉의 시각이 김일성장군님의 남다른 관심속에 마련된것이다. 그러나 강서군당에서는 뜻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고향마을에서 제출했다는 《진정서》가 군당일군의 사무탁에 놓여있었던것이다. 지주의 땅을 몰수하지 말아달라는 어리석은 청원이였다. 지주놈들의 간악한 흉계임을 모르는 그가 아니였으나 크게 배신당한 기분이였다. 반동놈들의 술책에 속아넘어갈 정도로 고향사람들의 정신상태가 그리도 암둔했단 말인가. 더우기 그가 놀란것은 마을의 농촌위원회 위원장이 다름아닌 김혜명인것이였다. 망연자실하여 고향쪽을 바라보고 선 그에게로 군당일군이 다가섰다. 《그곳 일이 심상치 않습니다. 며칠전에 리농촌위원회가 반동놈들에 의해 불타버렸습니다. 인명피해도 나고… 혜명동무는 〈진정서〉를 올려보낸 몇몇 농민들을 토지분여명단에서 삭제해버리겠다고 하더군요. 그들중에 그의 장인도 끼운것 같습니다. 그 일로 해서 안해도 고민하다가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이런 처지에서 저는 혜명동무가 농촌위원장일을 계속 해낼수 있겠는가 우려됩니다.》 일현은 일어난 사태의 엄중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혜명의 장인이라면 분명 빈농출신의 농민 주원배가 틀림없을것이다. 그런 그들을 토지분여명단에서 삭제한다는것은 결국 장군님의 토지개혁로선과 심히 어긋나는 행위였다. 새로 선 인민정권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며 온갖 시비를 걸어 비방중상하던 반동놈들에게 언질을 주는 기회로 될것이다. 일현은 이 사실을 장군님께 보고드려 결론을 받으며 곧 열릴 협의회에 참가해서 모든 동무들이 다 알고 각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양으로 급히 말을 다우쳐몰았던 그였었다. … 《뭐요? 그렇다고 혜명동무를 만나지도 않고 그냥 돌아섰단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일현의 처사를 두고 매우 못마땅해하시였다. 한동안 서운한 표정으로 일현을 일별하시던 그이께서는 조용히 뇌이시였다. 《안해까지 없는 집안에서 그가 지금 얼마나 쓸쓸해하겠소. 동무를 만났더라면 몹시 기뻐했을텐데…》 《장군님, 저도 그를 만나보고싶었지만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혜명동무가 토지개혁사업을 해낼수 있겠는지 우려하고있습니다.》 일현의 말에 그이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그들은 그렇다치고 동무의 생각을 말해보오.》 《저도 지금 그의 현 사상정신상태와 능력으로써는 리내 토지개혁사업을 성과적으로 이끌수 없다고 봅니다. 그를 소환했으면 합니다.》 《그를 소환한단 말이지?…》 《예… 소환해서 공부를 좀 시켰으면 합니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별들마저 새벽잠에 조으는듯 어둠에 싸인 하늘가를 바라보시는 그이의 심중에 깊은 사색이 깃들고있었다. 집무실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이윽하여 그이께서는 일현에게로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안광에는 그 어떤 확신이 비껴흐르고있었다. 《물론 우리는 아무때건 혜명동무를 공부시킬수 있을거요. 그러나 지금 그를 소환한다는것은 가뜩이나 이번 일로 의기소침해진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로밖에 달리 될수 없소. 그는 식민지노예살이를 강요하는 일제의 폭정에 항거하여 손에 직접 총을 들고 싸울 결심을 품고 나섰던 애국청년이요. 마을사람들이 그를 첫 농촌위원장으로 내세웠을 때에야 그의 됨됨을 잘 알아서가 아니겠소. 나는 혜명동무가 토지개혁사업을 통하여 자기의 의지를 키우고 혁명성을 단련하며 사상적수양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이께서는 피뜩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시더니 말씀을 이으시였다. 《빨리 차를 준비하오. 함께 혜명동무에게로 가기요.》 순간 일현은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강렬하면서도 진지한 소망의 빛이 뿜어져나왔다. 《장군님, 이번 걸음만은 삼가해주십시오. 혜명동무에게는 제가 가보겠습니다. 반동놈들의 책동이 심한 그곳에 장군님을 모실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난 거기 일을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올것 같지 않소. 해방된 이 땅에서 그게 어디 될법이나 한 일이요? 우리가 혁명을 하는것도 인민을 위해서가 아니겠소.》 《!…》 … 깊은 상념에서 깨여난 일현은 두눈을 슴벅이며 또 뒤로 고개를 돌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밖으로 흐르는 산천경개에 눈길을 주고계시였다.
2
부릉 부르릉… 승용차는 용을 쓰면 쓸수록 점점 홈채기속으로 빠져들었다. 차체에 어깨를 대고 미시는 김일성동지의 옷자락에 흙탕물들이 점점이 튀여올랐다. 갑자기 승용차의 발동이 꺼졌다. 《장군님, 좀 쉬십시오. 기관을 좀 봐야겠습니다.》 운전사의 말에 그이께서는 허리를 펴시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좀전에 지나온 곳을 더듬어 살피시였다. 아까 차를 타고오시면서 보았던 누런 암소를 다시 찾아보시려는것이였다. 소가 돌보는 주인도 없이 인가와 떨어진 산기슭에 매여있거니와 터질듯 불어난 젖통을 두 다리사이로 데룽거리며 아픔에 못이겨 울던 구슬픈 영각소리가 그이의 주의를 끈것이였다. 젖통을 보면 낳은지 얼마 안되는 송아지가 주변 어디에 있음직한데 아무리 살펴보시여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도 그 송아지를 찾아보시려 했으나 낮은 언덕에 가리워 그 어미소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찬기운을 실은 바람이 한줄금 불자 그이의 옷자락이 흩날리고 모양없이 자란 눈앞의 소나무우듬지에서 마른 솔잎들이 떨어져내렸다. 엷은 해볕의 후광속에 든 저쪽릉선아래에서는 떨기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떨고있다. 우중충 키를 솟군 산마루의 여러 군데에 희끗희끗 보이는것이 채 녹지 않은 눈무지들임을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양지쪽으로 고개를 돌리시였다. 곰처럼 웅크리고 앉은 바위밑의 안침진 그곳 역시 진달래가 필듯말듯 망울져 있을뿐이였다. 계절을 보면 봄을 맞아 노래하듯 활짝 피여있어야 할 진달래가 아직 추위에 몸을 옹송그린듯 해끗해끗한 꽃잎들을 잔뜩 오무린것이 어쩐지 혜명의 모습을 보는것만 같으시여 그이께서는 안색을 흐리시였다. 애틋한 시선으로 꽃나무를 보시던 그이께서는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아픈 심정을 억제 못하시며 허리를 굽혀 연약한 꽃망울을 쓰다듬으시였다. 연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손끝에 마쳐오자 가슴이 찌르르해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윽하여 산기슭아래 펼쳐진 마을의 정경을 내려다보시였다. 빈장산기슭의 후미진 곳에 벼짚이영을 한 추녀낮은 초가집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모여앉았고 그리 넓지 않은 개천이 앞으로 지났는데 그 흐름을 따라 올망졸망한 뙈기논들이 실뿌리에 매여달린 감자알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것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뙈기논들이 오구구 몽킨 벌판에 달구지길조차 나있지 않는것이였다. 모내기철에 벼모를 운반하재도 그래, 가을에 벼단을 실어나르재도 벌의 일정한 구획마다에 소달구지쯤 다닐 길은 나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이께서는 눈아래 벌판을 유심히 살피시다가 그만 아연해지시였다. 마을앞 개천에서부터 뻗어나간 논최뚝들이 잔디밭속의 오솔길처럼 유표하니 드러나있는것을 알아보신것이다. 땅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고 저들의 배를 채우는 지주놈들에겐 소달구지길마저도 눈에 걸렸단 말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곳 지주놈들의 잔혹성에 격분을 금치 못하시면서 그만큼 토지개혁을 반대하는 놈들의 책동이 그 어느곳보다 악랄하고 교활하리라는것을 절감하시였다. 불끈 주먹을 틀어쥐신 그이의 안광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이였다. 《…그깐 놈들, 이 주먹만 흔들면야 고양이앞의 쥐새끼지요.》 느닷없이 국수집에서 기염을 토하던 한 청년의 말이 상기되시였다. 두달전의 어느날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내형편을 료해하시기 위해 어디로 나가셨던 길에 나어린 경위대원과 함께 어느 국수집에 들리시였었다. 아늑한 방안에서는 여러 식탁들에 사람들이 나뉘여앉아 국수를 맛나게 들고있었다. 구석쪽 식탁으로 다가가신 그이께서는 상고머리를 바투 깎은 한 청년과 자리를 마주하시였다. 나이가 서른서넛쯤 됐을가. 훤칠한 이마에 그 아래서 빛을 뿜는 두눈… 그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느끼시였다. 그런데 그는 국수 한그릇을 받아놓고도 웬일인지 먹을념을 않고 바깥쪽에 정신을 팔고있었다. 그쪽으로 눈길을 주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창밖에서는 호함진 황소 한마리가 밤빛꼬리를 흔들면서 셈평좋게 새김질을 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다 국수가 다 풀어지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넌지시 말을 건네시였다. 그제서야 청년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한순간 몸을 솟구듯 하더니 자세를 바로 하며 어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까짓 뭐랍니까.》 《소가 부러운 모양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청년의 얼굴은 금시에 밝아졌다. 《정말 신통하게 알아맞추십니다.》 그는 이러며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대동군과 린접해있는 강서땅의 농촌마을에서 사는 농사군인데 이름은 김혜명이라고 소개를 했다. 《지금 어디 가나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농민들에게 땅을 주신다는 소문이 돌고있습니다. 꿈같은 소리이지만 정말인것 같습니다. 제 그래서 장군님 주신 땅에서 농사를 잘 지어 저런 황소를 사맬 생각을 하던참이였습니다.》 겉볼안이라고 그는 성격이 호방스러웠다.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던 그는 옆식탁들에서 이쪽을 여겨보는 눈치를 채자 장군님 계신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옆의 경위대원이 그를 제지시키려 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눈짓을 해보이시며 청년에게로 귀를 기울이시였다. 《내 이래뵈두 동네아근에선 호남아라고 소문났었습니다. 해방전엔 지주놈 소작살이에 입에 풀칠두 겨우 했지요. 그런데 내 오늘에야 옛날 평양감사 부럽지 않게 호기를 부렸습니다. 오늘 새벽에 옷고개를 넘으려니 이 고개도 이젠 우리것이로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참, 왜 저 옷고개를 그렇게 부르는지 아시는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린시절부터 그 사연을 알고 계시였으나 짐짓 모르는체 하시였다. 그는 정말로 성수가 났다. 옛날 대동군을 비롯한 여러 고을의 량반, 선비들은 평양성으로 들어올 때 그 초입구인 고개마루에서 입고온 옷을 벗고 새옷을 갈아입군 하였다. 평양감사가 옷이 덞거나 땀내를 풍기며 관청에 나타난 사람들은 아예 만나주지조차 않았던것이다. 고개마루에는 량반, 선비들의 옷이 하얗게 걸려있군 하였는데 그런 연고로 옷고개란 이름이 붙은것이였다.… 《오늘 새벽 옷고개를 넘으려니까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옷고개도 이젠 우리것이 되였으니 내 두루마기도 걸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옆을 슬쩍 돌아다보았다. 《헌데 한창 고개를 내려오느라니 옛날 량반놈들이나 무서워서 옷을 갈아입었지만 이제야 우리 세상인데 뭐가 무서워서 옷을 벗어놓으랴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 부랴부랴 다시 올라가서 두루마기를 도루 입구 내려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넌지시 이런 말을 건늬시였다. 《이것 보시오. 농민들이 땅의 주인으로 된다는게 그리 헐한 일은 아닙니다. 지주놈들이 땅을 순순히 내놓겠다고 할가요?》 방금까지 웃음이 늠실대던 그의 낯색이 청동색으로 변했다. 《그깐 놈들 이 주먹만 흔들면야 고양이앞의 쥐새끼지요. 제까짓것들이 어디라구 감히 덤빕니까.》 말을 마치자 청년은 국수를 게눈 감추듯 해제끼고는 장군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더니 문가로 향했다. … 그처럼 서슬이 푸르딩딩해서 호기를 뿜던 그가, 토지개혁투쟁의 맨앞장에 서서 지주놈들을 때려엎고 분여된 땅을 갈아엎으며 오는 가을에 황소 사 맬 궁리를 하고있으리라 믿으셨던 그가 난관앞에 주저앉아 어쩔바를 몰라하고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급투쟁의 심각성을 다시금 절감하시며 진달래 꽃나무에 눈길을 주시였다. 그래, 저 해끗해끗한 꽃잎들을 오무린 망울들은 따뜻한 봄을 맞아 아름다운 꽃송이로 필것이다! 이때 다시 발동소리가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차있는 곳으로 가시였다. 바퀴밑에 큼직한 돌덩이를 밀어넣으시고 차체에 어깨를 대시였다. 《동무들, 내 구령에 맞추시오. 자, 하나 둘― 다시 하나 둘― 셋!》 들썩들썩하며 용을 쓰던 승용차는 마침내 차체가 허궁 들리우는가싶더니 홈채기에서 빠져나왔다.
3
…뱀의 혀처럼 널름거리며 지붕우를 핥던 불길은 때 맞추어 터진 북풍에 더욱 기세를 돋구었다. 마침내 농촌위원회건물은 커다란 불기둥으로 화해버렸다. 불에 튀는 돌기와장들, 밤하늘 공중으로 날리는 불찌들, 코를 메우는 매캐한 연기… 이윽해서 서까래장들이 불길을 끄을며 하나, 둘 떨어져내리더니 집은 신음소리처럼 우직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렸다.… 페허로 변해버린 농촌위원회건물은 간밤에 내린 비를 맞아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떨어져내린 판자쪼각들이며 깨진 기와장들을 한쪽 구석에 모아놓다말고 흐릿한 하늘가를 올려다보던 혜명은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보람찬 새생활을 약속해주던 집, 생의 약동과 삶의 희열을 시시각각으로 느끼며 고향의 래일을 가꿔가던 보금자리가 반동놈들손에 불타버린것이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으흐흑…) 혜명은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봄씨붙임날이 바둑바둑 다가오는데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고있는 자신이 안타까왔다. 그러느라니 더욱 기다려지는 일현이였다. 어제 군에 내려왔었다는 투사가 일현이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정서》가 어느 마을에서 올라온것인가를 알자 흠칫 놀라며 격분으로 몸을 떨었다는 투사… 그가 이러고있는 내 몰골을 본다면 얼마나 격분해하겠는가 하면서도 그가 그리워졌다. 혜명은 이제나저제나 일현이가 기다려질 때면 나가보군 하던 빈장산기슭으로 눈길을 주었다. 갑자기 그의 시선이 긴장해졌다. 호흡이 빨라졌다. 나지막한 언덕길에 난데없이 승용차가 나타난것이다. 이런 농촌에 어떻게 승용차가? 혜명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나가는 차일테지 … 그는 거멓게 그슬린 서까래장들을 한군데에 모으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면서 재가루가 일었다. 어느새 땀방울이 내밴 코등에 재티가 앉았다. 그는 허청허청 걸음을 옮기는것이 꼭 꿈속을 헤매는것 같았다.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혜명이.》 목멘 부르짖음. 혜명은 반나마 타버린 서까래장을 안은채 우뚝 멈춰섰다.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웠다. 이게 꿈속은 아니겠지? 《혜명이, 이 친구야.》 《!…》 혜명은 몸을 홱 돌렸다. 《!…》 《일현이…》 몇발자국 다가서던 혜명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일현이, 난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난… 난…》 《혜명이…》 《일현이.》 그들은 그제서야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격정의 파도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흘러갔다. 《혜명이, 어서 가자구.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고향을 찾아오셨단 말이네.》 《?!》 혜명은 멍한 눈길로 일현을 바라볼뿐이였다. 이 친구가 지금 무슨 말을… 어느분이시라구? 일현은 다짜고짜로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를 따라서면서도 혜명은 자기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 나는 꿈을 꾸고있는거야. 꿈을 꾸고있어.… 혜명의 집은 비여있었다. 그를 찾아오라고 일현을 보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마당안팎을 둘러보시였다. 집은 어린 소년의 머리우에 농립모를 눌러씌운것처럼 벼짚이영이 추녀낮게 드리웠으나 깨끗이 회벽칠을 하여 한결 산뜻해보였다. 농촌위원회간판을 금방 써붙인듯 한 웃방은 문짝까지 새로 해달아 솔향내가 풍겼다. 토방아래 좁은 길을 제외하고는 온 마당이 벼짚과 강냉이짚을 씌운 마늘밭인데 토담벽을 친 울타리를 의지해서 만든 돼지우리옆에는 집높이만큼한 거름무지가 쌓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거기로 다가서시여 구석에 박힌채로 있는 쇠스랑을 잡으시였다. 한번 거름무지를 뚱기쳐내니 살진 지렁이들이 서너마리 섞인 잘 썩은 부식토가 한삽 실히 쏟아져내렸다. 들크무레한 거름내를 실은 흰김이 공중으로 피여올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릴 때 할아버님의 일손을 도우시던 만경대시절을 기억에 떠올리시며 절기를 가늠해보시였다. (이러다 때를 놓치겠군.)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어 뒤울안으로 가보시였다. 거기엔 우물터가 아담하게 꾸려져있었다. 깊이가 다섯메터는 실한 우물에 통나무로 네귀를 맞춰쌓았고 역시 나무기와로 지붕을 해씌웠다. 우물곁에 있는 빨래판과 방치를 눈여겨보시던 그이께서는 이내 안색을 흐리시였다. 비스듬히 배가 나온 그것의 앞쪽은 너무 닳아 뭉툭해졌으나 작은 손안에 들수 있게 깎은 손잡이엔 퍼런 물때가 앉아있었다. 집에 녀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가 이미 오랜것이다. 예로부터 가정을 이루면 녀성들은 남편과 자식들의 뒤거두매를 하며 그들의 생활을 돌봐주는것을 저들만이 할수 있는 의무로, 락으로 여기는것이 아닌가. 그들은 녀성특유의 고유한 진미를 남편과 애들의 덞어진 옷을 빨래방치로 두드리면서 느끼기도 한다. 사회생활의 기복많은 와류속에서 제나름의 삶을 창조해가는 남편과 애들의 체취를 가슴뿌듯이 느끼며 애들의 성장에서 행복의 단즙을 맛보는것이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안해의 밝은 웃음이 사라진지가 이미 오랬다. 우물가의 나무기둥에 길게 매달려 바람결에 데룽거리는 드레박을 띄여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을 벗겨 늘어진 줄을 바로 하신 다음 다시 걸어놓으시였다. 이어 빨래판에 눈길을 주시였다. 빨래판으로 리용하는 타원형에 가까운 넙적한 판돌을 내려다보시던 그이께서는 고개를 한번 기웃하시고는 물이끼가 돋은 빨래방치를 손에 잡으시고 그앞에 마주앉으시였다. 앉으신 위치에서 빨래판과의 거리를 가늠해보시였다. 줌안에 든 빨래방치의 손잡이를 보면 혜명의 안해는 몸이 체소하고 키가 작은편인듯 한데 빨래판은 자신께서도 허리를 실히 굽혀야 닿을만큼 너무 앞쪽으로 기울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군당에서부터 동행한 군당일군을 부르시여 넙적한 판돌을 함께 들어 한켠에 밀어놓으시였다. 돌들을 놓아 자리를 돋구고 그 우에 판돌을 올려놓으시였다. 다시 거리를 가늠해보시는 그이의 안광에 밝은 미소가 비끼였다. 《장군님!…》 혜명의 목멘 부르짖음이 가까이에서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시였다. 퍼그나 낯익은 그러나 기백있고 패기에 넘쳐있던 그전과는 달리 창백해지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혜명의 얼굴을 보시니 아픈 마음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다가가시여 절을 올리는 그의 어깨를 꽉 부둥켜안으시였다.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소.》 《장군님, 그때 버릇없이 군 이 못난 놈을…》 그날 국수집에서 김일성장군님의 존안을 바재이는 심정으로 뵈오면서도 애써 자기를 부정해버렸던 혜명이였다. 어디선가 꼭 뵈온듯 한 낯익은 모습이 지난해 모란봉공설운동장에서 개선연설을 하신 김일성장군님과 신통하다는 생각에 가슴속이 쇠물끓듯 했으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었다. 먼 발치에서 그이를 뵈온게 후회됐고 강도 일제를 때려엎고 나라를 찾아주신 천하제일장군께서 하찮은 농군과 마주앉아 국수를 자시랴싶었다. 혜명은 어느 기회에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뵈왔을 때에야 자기 실책을 깨달았다. … 《얼굴이 많이 축갔소. 일이 힘들지?》 불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오고 코마루가 시큰해나자 혜명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디 말 좀 해보오. 그렇게 배짱 세고 호기있던 혜명동무가 왜 이런 꼴이 됐나 말이요?》 《장군님, 저는 재목이 못되는가 봅니다.…》 김일성장군님의 물으심에 혜명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얼마전의 일이 눈앞에 떠오르며 가슴속 한귀퉁이를 깎아내렸다. 혜명은 김일성장군님께 자초지종 사연을 말씀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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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농촌위원장, 말 들었나? 송지주놈의 땅을 몰수하면 안된다는 소문 말이네.》 《?!》 상동마을에서 선출된 나이지숙한 농촌위원의 말에 혜명은 깜짝 놀랐다. 대낮같이 밝은 세월에 어느 시러베자식이 그따위 허튼수작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지주의 땅을 무상몰수해서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는것은 김일성장군님의 뜻이다. 지주놈의 편역을 들고다니는 놈은 과연 어떤 놈이냐? 그날 저녁 밥상을 물리기 바쁘게 상동으로 건너간 그는 곧장 처가집으로 향했다. 예고없이 불쑥 나타난 사위를 처가집에서는 무척 반갑게 맞이하였다. 노전을 깐 바닥우에 새하얀 도끼밥들을 널어놓고 호미자루를 맞추고있던 장인 원배는 혜명을 손 이끌어 아래목에 앉혔다. 그리고는 조글조글한 손으로 사위의 어깨에 붙은 짚검불을 뜯어내고있는 로친더러 뙤창곁벽에 데룽 매달린 보퉁이를 가리켜보이며 술상을 차리도록 분부했다. 등잔심지를 크게 돋군 그는 그제서야 흡족한 얼굴로 농촌위원장인 사위와 무릎을 마주했다. 《요새 눈코뜰새 없을텐데 용케 시간을 냈군그래.》 《예, 뭘 좀 알아볼게 있어서…》 사연을 얘기하던 혜명은 마음속이 차츰 긴장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가 상동으로 오면서 부디 주원배를 찾은것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그가 모를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인정이 헤프고 마음이 후더분한 그의 집은 저녁녘이면 마실 온 사람들로 한방 가득차넘치군 했다. 혜명의 얼굴을 걱정스레 마주보는 원배의 눈가에 당황한 빛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염낭에서 마라초 쌈지를 꺼내여 두툼하게 담배를 말기 시작했다. 입에서 마당비모양으로 터져나온 담배연기가 방안에 휘 흩어진다. 《임잔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송지주놈은 마을에서 첫째가는 청산대상입니다. 그런 놈을 비호해나서는자를 어떻게 봐야 하겠나요?》 이때 마당밖에서 쇠말뚝 끄는 소리와 함께 《음머―》하는 소영각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왔다. 그러자 집안팎에서 뜻하지 않은 소동이 벌어졌다. 단칸방과 잇달린 헛간에서 무엇인가 후닥닥 하더니 밖으로 쇠가 잠긴듯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요란스레 들렸다. 《음아―》 송아지의 애처로운 화답에 어미소는 헛간쪽의 담곁으로 쇠말뚝을 끄을며 굵은 울음소리를 냈다. 《음머―》 헛간문이 왈각절각거리는것이 당장에 떨어져나갈듯싶다. 《저런, 저, 저놈의 소가?…》 밖으로 뛰여나간 원배는 헛간문을 더 든든히 비끄러매는가싶더니 담너머에 대고 주먹질을 해댔다. 《가라 가. 이놈의 소, 언제까지 이 성활 멕일 작정이냐?》 그러다가 제풀에 숙어버렸는지 소건사를 방임한 주인한테 눈먼욕질을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건 가슴을 벅벅 긁어내리는게 저 미물들한테 꼭 죄를 짓는것 같다니까.》 《웬 송아진가요?》 원배는 잠시 사위를 바라보고섰더니 무엇인가 결심한듯 장농을 열어제꼈다. 허리굽혀 한참이나 뒤적거리더니 두툼하니 유지에 싼것을 꺼내놓았다. 《?!》 《금정천곁에 있는 천평짜리 논을 내게 준다는 토지증서일세.》 《아니, 그럼 송지주가 아버님께 땅을 주었단 말인가요?》 벼룩이 간이라도 빼먹을 송가놈이 땅을 거저 주었다는것은 승냥이가 양새끼를 낳았다는 소리만큼이나 믿어지지 않았다. 그놈의 속심이라는게 헨둥하다. 인민정권의 치하에서 제 살구멍을 찾아보자는 수작이다. 《그러니 저 송아지도 송가가 주었겠수다?》 《…》 혜명은 속이 확 달아올랐다. 저 송가놈이 골라골라 원배를 점찍은것은 그의 됨됨이 어리숙한데도 있겠지만 사위가 농촌위원장이라는 점을 타산한것이다. 《정말 답답하군요. 전에야 그놈들의 세상이여서 우리가 속아 살았지만 지금이야 왜 속히우는가 말이예요. 오늘 밤중으로 모두 갖다줘요. 그놈이 어떤 놈인줄 벌써 잊었는가요?》 《글쎄 그 송가가 해방전 구장노릇도 하면서 거들먹거리기야 했지. 허지만 변한가부데.…》 일인즉 보름전에 송가가 집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며칠밤을 잘 팬 모양 기름이 번지르하던 볼편이 자귀로 깎이운듯 훌쭉 꺼지고 두눈은 사흘 술 퍼마신 놈처럼 게슴츠레 해진 그를 보며 원배는 속으로 흠흠했다. 옆구리에 삐죽하니 솟구친 술병까지 보니 지금 세상은 참 별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야 꿈인들 꿔보랴. 참말 세상이 변하니 사람의 처지도 밤낮 바뀌듯 변했어.… 서너순배 잔이 오고가자 원배는 그전날의 대하기조차 어려웠던 옛 《주인》을 너나들이로 대했다. 술이 혈관에 퍼지면 곧잘 어려움을 잊군 하던 그였었다. 하물며 해방이 되였는데야… 《거기서 요새 맘고생이 있는가보군. 수태 늙어보이니 말이네.》 《강은 건너봐야 알구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구 한 고향사람들이 너무하구만. 글쎄 내가 왜놈세상에서 구장노릇을 하고싶어 했겠소. 내 땅을 부치면서 신세진 사람들이 날 쓴외보듯 대하니 그 신경에 살이 대패밥 깎이듯 여윕니다그려.》 원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가는 지난날 제 땅의 소유권을 아예 맡겨버리다싶이 봄에 소작지를 주는 일로부터 가을에 소작료를 받는 일까지를 모두 마름이 주관하도록 했다. 마을에서는 마름을 벼락맞아 뒈질 놈이라고 욕질해도 송가를 두고는 내놓고 대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가 해방되기 한해전엔가는 송가가 소작료를 곱으로 받고 제 사욕을 채운 마름의 죄행을 《신소》받고 다음날로 갈아치운 일도 있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송가는 담이 커진듯 했다. 《농군에게 제일 부러운거야 땅과 황소지요. 내 이제 많은 땅뙈기를 어디에 쓰겠소. 저 금정천기슭의 천평남짓한 논을 형님에게 아예 떼줄 생각이우다. 그리구 우리 집 암소가 낳은 송아지 있잖소, 그놈두 가져다 키우시우.》 《?!…》 원배는 믿어지지 않았다. 술상머리에서는 아흔아홉칸짜리 대궐도 공짜로 지어준댔다. 그러나 다음날 송가가 토지증서와 송아지를 끌고 집에 나타났을 때는 눈확이 커다래졌다. 《아―이거 정말인가?》 《형님두 참, 난 그렇게 쬐쬐한 놈이 아니우다.》 둘이서 술마시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은 이 집에서 래일은 저 집에서… 한 보름이 지나서 토지개혁법령이 발포되자 그날밤 또다시 송가가 그의 집에 찾아왔다. 원배는 그를 동정했다. 밤중으로 《진정서》를 만들어 송가놈의 꼬임에 넘어간 몇몇 사람들의 손도장을 받아 다음날엔 그것을 강서군당으로 올려보냈다.… 《아니, 송가놈을 두둔하는 〈진정서〉를요?》 《왜 그러나. 우리가 주인인 이 세상에서야… 백성들에게도 제 뜻을…》 혜명이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솟구치는 바람에 원배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지금 제정신을 갖고있어요? 그게 나쁜 놈들이 하는짓과 뭐가 달라요. 반동이 뭐 다른게 반동인줄 아시우?》 《뭐라구? 그럼 내가 반동이란 말인가.》 《지주를 두둔했으니 반동이지요.》 《저런… 뱉으면 말이 다 된줄 아느냐? 어허이구… 야, 이놈. 날더러 반동이라면 네 처두 반동이렷다. 됐다, 두말할게 없다. 그럼 창석 에미를 여기로 돌려보내라.》 아까부터 문지방에서 방안의 동정을 엿보며 불안에 떨던 그림자가 안으로 뛰여들었다. 《령감, 실성했소. 큰소린 웬 큰소리요.》 《그럼 반동이래두 참아야 해?》 늙은 녀인의 손을 물리치고 집을 나선 혜명은 격분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장에 송가의 집으로 짓쳐들어가 모든것을 깨고 부시고 뒤엎고싶었다.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3월의 마지막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밤 이런저런 번거로운 생각에 잠 못이루던 혜명은 갑자기 밤대기를 째는 총성에 몸을 솟구었다. 뙤창너머 농촌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쪽에서 화광이 충천하고있었다. (반동놈들이 끝내…) 내의바람으로 헐떡이며 그곳에 당도한 그는 뜻밖의 광경에 굳어져버렸다. 밤경비를 섰던 상동마을의 나이지숙한 농촌위원이 마당 한가운데 쓰러져있고 그와 조금 떨어진 토방아래서 도끼날에 정수리가 찍힌 송가동생놈의 시체가 나딩굴고있었던것이다. 땅과 입맞추듯 어푸러진 농촌위원의 입에서 마감숨소리와 함께 처절한 말마디가 새여나왔다. 《주원배, 이 어리석은 놈아.…》 원배는 농촌위원의 시체곁에 무릎꿇고 엎드린채 일어설념을 못했다. 바람이 불며 그의 어깨우에 눈가루가 들씌워졌다.… 사건이 벌어진 후 마을에서는 이상한 공기가 떠 돌았다. 농촌위원회가 불타버리던 그날 송가놈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자 사람들속에서는 주원배가 그놈과 짝맞추어 그런짓을 했다는 소문이 나 돌았고 밤에는 누구도 나다닐 생각을 못했다. 농촌위원회 사무실로 림시 정한 혜명의 웃방으로는 별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혜명은 생각던끝에 주원배와 그리고 《진정서》에 손도장을 누른 몇몇 농민들을 토지분여명단에서 삭제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을 안 주원배는 성이 독같이 나서 자기의 청렴결백성을 증명하려 애썼으나 며칠전에 군보안서로 불리워갔다와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더 말을 못하고 집밖에는 얼씬도 안했다. 이것을 알게 된 안해는 까무라쳤다. 인츰 의식을 회복했으나 얼굴이 새하얘가지고 자리에서 일어설념을 못했다. 며칠동안 눈물만 흘리던 그는 온다간다 말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저녁 늦게 찬 기운이 도는 방안에 혜명이가 들어섰을 때 멍석우에 한장의 글쪽지가 놓여있을뿐이였다. 《창석이 아버지, 난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제가 당신을 돕는 일이란 이뿐인가봐요. 아, 우리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찌 될가요.》 안해가 본가로 간것이 분명했으나 혜명은 가지 않았다. 앓는 안해가 측은하고 불쌍했으나 토지개혁을 반대하는 반동놈들과 한짝으로 놀아난 장인을 결코 용서할수가 없었다.… 저으기 심중하게 이야기를 듣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얼핏 격분으로 떨고있는 혜명의 손에 눈길을 주시였다. 그때 국수집에서 그가 헌걸차게 흔들어보이던 주먹을 상기하시였다. 정말 그의 말대로 한번 휘두르기만 하면 고양이앞의 쥐 한가지로 옴짝 못하고 떨수밖에 없는 쇠몽치같은 주먹이였다. 땅의 주인이 되려는 열망으로 맥박이 뛰고 맘껏 농사를 지어 한평생 품어왔던 소원을 풀어보려는 열의로 피가 통하던 주먹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쇠메는 고사하고 솜뭉치보다 못한 신세가 돼버리지 않았는가.… 사색을 이으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혜명에게 물으시였다. 《혜명동무의 처가집이 어디쯤 되오?》 혜명은 황황히 고개를 돌렸다. 장군님께서 그리로 가시려는것이였다. 상동으로 가는 길이 눈에 밟혀왔다. 눈석이 물이 흘러내린탓에 길은 온통 물웅뎅이투성이여서 승용차로는 갈수 없는 곳이였다. 비까지 내려 질적해진 감탕길로 어떻게 장군님을 모시랴. 더구나 보안서의 혐의를 받는 장인이 아닌가. 그가 미처 대답을 못 올리고있는데 옆에 섰던 일현이가 눈짓을 해보였다. 《여기서 낮은 산언덕을 사이두고있는데 한 5리쯤 가야 합니다. 길두 험하구 그리고 그는 아직…》 《길두 험하구 또 장인의 요즘 경향이 좋지 못하다 이 소리겠소. 괜찮소, 자, 혜명동무가 주인이니 어서 안내해야지. 우리 걸으면서 얘기나 나눕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혜명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곁에 세워주시였다. 아침부터 흐릿하던 하늘이 휘영청 열리더니 따뜻한 봄볕이 쏟아져내렸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빈장산기슭에서 향긋한 솔향기가 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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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장군님을 모신 일행은 마을 한끝에 자리잡은 집앞에 이르렀다. 잠시 대문앞에 서서 마당안의 동정에 귀기울이던 혜명은 짧은 한숨을 내그으며 문을 열었다. 안으로 빗장이 걸려있었다. 《누구예요?》 겁기에 질린듯 한 녀인의 가냘픈 목소리. 《나요. 어서 문을 여우.》 대문은 열리지 않고 안에서 안해의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울음소리는 차츰 멀어지더니 부엌문 닫기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혜명은 너무도 죄송스런 마음에 뒤를 돌아볼념도 못하고 대문을 두드렸다. 뒤이어 부엌문이 다시 열리는가 싶었다. 《네놈이 반동으로 몬 이 집엔 왜 왔느냐? 옳지, 보안서루 가자는것이렷다?》 대문이 와짝 열리더니 서슬이 퍼래서 이쪽을 노려보는 주원배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놈아, 하늘이 내려다본다. 내가 눈이 멀어 그 여우같은 송가놈에게 속았댔기로서니 아주 나쁜 놈인줄 알았더냐?》 가슴속에 더미더미 쌓였던 울분을 쏟아놓던 주원배는 사위의 뒤에 웬 낯모를이들이 서있는것을 띠여보고 흠칫했다. 《로인님, 우리 동무들이 일을 쓰게 못해서 그렇게 된것이니 널리 량해하십시오.》 《?!…》 로인은 코마루가 시큰해옴을 느끼며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분을 우러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로인앞으로 한발작 나서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로인님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김일성입니다.》 《?!…》 순간에 로인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어리벙해진 시선으로 묻는듯이 사위를 쳐다보았다. 대답대신 혜명이가 고개를 떨구자 주원배는 앞에 선 그를 밀어내며 대문밖으로 허겁지겁 나서더니 김일성장군님앞에 넙적 엎드리였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로 다가오시여 얼른 팔을 부축여 일으키시였다. 《아버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장군님, 저는 죽어 마땅한 놈이올시다. 옛날부터 임금의 령을 거역한 죄인은 참형을 당했구 가족은 사람 못살 곳으루 귀양보냈습니다. 지지리 천대받던 우리 농군들을 잘살게 해주시겠다구 땅을 거저 노나주시는 은혜에 고맙다구 큰절은 못올릴망정 장군님의 뜻을 어기는 망녕된짓을 했으니…》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랜 세파에 부대껴온 고생의 흔적인듯 뼈가 앙상해진 로인의 등허리를 쓰다듬으시였다. 불쑥 만경대에 계시는 김보현할아버님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예로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입버릇처럼 외우며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으시고 한평생 땅을 가꿔오신 할아버님의 준수한 모습이 온통 주름투성이인 주원배로인의 얼굴에 겹쳐 안겨오시였다. 슴슴한 마라초의 대진내며 텁텁한 땀냄새마저도 어쩜 이리 신통할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무슨 거름전시장처럼 마당 한켠에 따로따로 무져진 거름무지쪽으로 눈길을 주시였다. 속으로 탄복하시였다. 한무리의 병아리들을 거느린 어미닭이 꾸꾸거리며 헤집어대는 거름무지는 당장 밭으로 내가도 될 잘 썩은 진거름이고 곁에는 감자를 심을 때 쓰려고 마련해놓은듯 한 돼지건퇴비가 쌓여있다. 또 그 옆으로는 벼짚으로 엮은 원주모양의 퉁구리들이 여러개 세워져있었는데 그안에는 소, 개, 닭, 토끼 등 집짐승들의 배설물들이 배나오게 가득차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등 기쁘시였다. 로인은 절기를 옳게 타산하여 올해농사준비를 착실히 해놓았다. 이것은 오직 제 땅을 자식 다루듯 하는 주인의 일본새에서만 느낄수 있는게 아니랴. 김일성동지께서는 곁에 선 혜명을 돌아보시였다. 《난 아까 동무의 집에서도 이런 거름무지를 보았더랬소. 그것을 보면서 하루빨리 땅의 주인이 되여 맘껏 농사를 짓고싶어하는 불같은 열망을 느꼈더랬소. 모름지기 아버님도 같은 생각을 했을거요. 자 혜명동무, 대답해보오. 주인이 제 집에 불을 지를수 있소?》 《!…》 원배는 쏟아지는 눈물을 겨우 참고있었다. 간교한 송가놈의 꾀임에 넘었던 자기를 때늦게 후회하며 로친 몰래 베개잇을 적시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였다. 사위가 땅을 분여할수 없다는 통지서까지 보내왔을 때 그는 혜명을 원망하고 자신을 저주했다. 《싸지 싸. 이 눈뜬 소경같은게 어떻게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시는 땅을 받을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한뉘 땅과 함께 늙어온 농사군의 몸배인 습관은 어쩔수 없는것이여서 씨붙임시기에 때맞춰 거름들을 장만해두었던 그였다.… 이때 헛간의 판자문이 떨어져나갈듯 왈가닥거리더니 송아지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미물이 끝내… 김일성동지께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저기 송아지가 갇혀있는게 아닙니까?》 《예.…》 원배의 얼굴은 금시에 수수떡이 되여버렸다. 《그 송지주가 〈선심〉을 썼다는 송아지군요. 한치의 땅도 아까와서 저 넓은 벌에 소달구지 길조차 내지 않은 지주가 무슨 마음이 싸서 아버님에게 송아지를 그냥 주겠습니까. 울음소리를 들으니 송아지가 아직 어미젖을 더 먹어야 할 새끼가 분명한데… 아버님, 저 송아지를 놓아보냅시다. 아까 오면서 보니 암소가 계속 울면서 제 새끼를 찾고있던데 저것들이 서로 만나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저 송아지도 이제야 우리의것인데 무럭무럭 키워서 부림소로 리용해야지요.》 장군님의 말씀에 원배는 얼굴이 확 밝아져가지고 허위허위 토방으로 올라서더니 헛간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코등에 흰점이 박인 애송아지가 후닥하니 뛰여나왔다. 그놈은 껑충 대문가로 달음박치더니 빈장산기슭으로 네굽을 놓았다. 그 정경을 바라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혜명에게 말씀하시였다. 《혜명동무, 토지개혁은 수천년동안 지속되여온 봉건적착취의 기반에서 농민들을 해방하고 그들을 땅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되게 하는 위대한 혁명이요. 지난세월 땅은 지주놈들의 부를 쌓아주는 착취의 수단이였기에 농민들이 원한다고 절대로 순순히는 내놓으려 하지 않소. 오직 누가 누구를 하는 판가리싸움을 통해서 쟁취해야 하는거요. 이 치렬한 계급투쟁의 선봉에 설 사람들이 바로 동무이고 동무의 장인이며 안해이고 마을사람들이요. 그런데 동무는 집안에서도 물우에 뜬 기름방울이였단 말이요. 저 개천을 보시오. 아마 저 개천을 막는데는 동네장정 서넛이면 충분할거요. 저런 개천들이 모여 이룬 큰 강의 격류는 누구도 막지 못하는거요. 고농이 빈농과 힘을 합치고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깨우쳐서 마을사람들전체를 하나로 묶어세워야 하오. 땅의 금새를 잘 알고 가꿀줄 아는 부지런한 농군에게는 나쁜 땅이 따로 없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요. 마을사람들을 계급적으로 각성시키고 사상교양을 강화해야 하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혜명의 손을 굳게 틀어잡으시였다. 《혜명동무, 이 손이 원쑤들을 전률케 하는 무쇠주먹으로 되자면 마을사람들의 뜻과 마음을 대변한것이라야 되는거요. 흩어지면 패하고 뭉치면 승리하는것이 수십년간의 투쟁에서 우리가 얻은 진리요!》 혜명은 코마루가 시큰해졌다. 친부모인들 저렇듯 다심하랴. 이 못난 놈을 질책하고 엄벌을 줄대신 철없던 자식을 타이르듯 걸음걸음 일깨워주시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에 그는 목이 메여올랐다. 《그리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곁에 선 수행원들속에서 강서군당일군을 찾으시였다. 《혜명동무의 사업을 당적으로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배짱도 믿을데가 있어야 생기는 법입니다.》 《흐흑…》 혜명의 어깨가 가볍게 물결쳤다. 외람된짓인줄 알면서도 언제까지라도 그이의 따뜻한 품에 얼굴을 묻고 얼었던 가슴을 녹이고싶었다. 방안에서 누구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명은 그가 안해임을 알았다. … 스륵… 스르륵… 대패질소리가 들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 머지않아 주원배로인이 분여받을 땅에 꽂을 표말뚝을 깎고계시였다. 이윽하시여 표말뚝을 손에 드시고 쓸어도 보고 이리저리 살펴보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주원배더러 먹과 붓을 청하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먹물을 듬뿍이 찍은 붓을 천천히 표말뚝 가까이로 가져가시였다. 주위에 빙 둘러선 사람들모두가 지난날 노예로 살아오던 농민들이 이제는 당당한 땅의 주인임을 알리는 력사의 순간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왜서인지 붓을 손에 드신채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혜명을 부르시였다. 《혜명동무, 여기 이 표말에다 장인의 이름을 큼직하게 써주시오. 온 세상이 다 보게 말이요.》 《장군님!…》 붓을 받아든 혜명의 손이 떨고있었다. 한자, 두자이름이 씌여질 때 뜨거운 눈물방울이 해빛에 그을며 흘러내렸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하며 일현은 커다란 자책감에 휩싸여있었다. 언제면 그이의 심원한 뜻을 따르랴싶었다. 김일성장군님의 품에 처음 안기던 1939년의 잊지 못할 봄날이 눈앞에 떠올랐다. 진달래꽃 활짝 피여있던 봄날의 그 언덕, 하늘가에선 종달새의 청아한 지저귐소리가 울려퍼지고 봄볕에 무르녹는 대지우에서는 노르끼레한 새싹들이 빠금 얼굴을 내밀고 봄을 속삭이고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고향의 봄언덕에 혜명이가 서있다.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인간사랑의 최고높이에 서시여 따뜻한 봄빛을 부어주시는 그이의 품에 안겨있다. 아, 김일성장군님의 보살핌속에 보람찬 새 삶을 창조해가는 그의 앞길은 얼마나 휘황찬란한것인가. 일현은 후더워지는 마음을 안고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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