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11호에 실린 글  

 

전국군중문학작품현상모집 1등 당선, 《6월4일문학상》작품

 

단편소설

  

                   최충혁

 

 

학교때 나는 온 마을에 소문난 장난꾸러기였다. 메뚜기잡이에서 나를 당할 아이는 동네에 없었다.

가을철엔 겨울잠차비로 땅속에 들어간 미꾸라지들을 파내려고 논두렁밑을 두더지처럼 마구 뚜져놓기도 하고 반두에 구멍이 나도록 수로바닥을 훑어대기도 하였는데 고무총을 만들어가지고 탈곡장으로 기여들어 참새사냥을 할 때는 여불없는 《소년포수》였다.

집집마다 자래우는 과일나무들에도 주인보다 먼저 오르는것이 바로 나였다. 동네 개들도 내앞에서는 감히 짖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장원이 되여서도 나의 이 데설궂은 성미는 여전하였다.

《언제면 제구실을 하겠는지…》하고 부모들은 안타깝게 나를 꾸짖기도 하였다.

그런데 학교때부터 데면데면하게 굴던 나에게도 두려워지고 슬슬 눈치를 보게 되는 한 아바이가 있었다.

옆집에 사는 위아바이였다.

부모들이 나의 그런 속심을 미리 짐작하고 조처했는지 나는 그 아바이와 같은 분조에서 일하게 되였다. 이를테면 나를 그 아바이에게 그대로 넘겨준셈이였다.

기가 막히기란…

그는 일할 나이가 지나 분조장을 인계하고도 무엇이 못미더워선지 분조에 나와 일손을 잡군 하였다.

그래서 우리 분조에서는 위아바이를 《고문분조장》이라고 부르고있었다.

 

×

 

옆집에서 사는것이 이리도 성가실줄이야.

아침에 좀 늦잠을 자자고 해도 어머니보다 먼저 위아바이가 야단을 쳤다. 퇴근을 일찍 하자고 해도 《고문분조장》이 함께 들어가자고 하니 어쩔수없이 기다려줘야 하고…

사실 기다린다는것은 아바이와 마지막까지 일감을 놓고 씨름해야 한다는것이였다.

조퇴나 결근 같은것은 꿈도 꿀수 없었다.

나로 말하면 소문난 장난군에 익살군이라 아바이에게 《로망》이라는 《진단》을 내려보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손맥을 늦출 아바이가 아니였다.

분조장이건 어머니이건 다 빼돌릴수 있었지만 아바이에 대해서만은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글쎄, 볼기 서너대쯤 건사하면 어떨는지.

그러나 위아바이의 그 가래날같은 손바닥을 생각하면 그 볼기 서너대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구척같은 키에 놀라우리만치 커다란 주먹, 네모난 턱에 마름쇠처럼 꽛꽛하게 돋은 구레나룻, 왁살스럽게 번뜩이는 두눈이며 날이 선 억센 코…

우리 분조장 역시 위아바이에 못지 않은 거쿨진 체격이였으나 아바이앞에서는 왜 그런지 대번에 주눅이 들군 하였다. 쌍둥이아버지인데 아주머니가 딸을 둘이나 낳은 다음부터는 사람이 퍽 순해빠졌다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했으나 내 보기엔 그것때문도 아닌것 같았다. 좁은데 장모 끼운다고 위아바이가 편제도 없는 《고문》노릇을 하려드니 고지식한 분조장이 그 《시집살이》에 오죽이나 바쁠텐가.

언젠가 분조장이 한 분조원의 로력일평가에서 아량을 베푼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바이가 위엄있게 훈시를 하는 바람에 그들 두사람은 다 얼굴이 수수떡이 되였었다.

작년도 가을걷이때 분조장은 분조에 나온 지원자들에게 비지나 해먹으라고 콩 몇단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래서 아바이에게 부탁하여 퇴근길에 가져다주라고 했는데 아바이가 분조콩이 아니라 제집 터밭의 콩단을 들고가는 바람에 분조장은 말복날 단고기를 먹은 사람처럼 된땀을 뽑았었다.

위아바이가 《고문》노릇을 착실히 하는 바람에 우리 분조원들은 퇴근할 때 논밭에서 모아걷은 돌쪼각들을 해당한 장소에 내가야 하는 전례없는 규정도 생겨났다.

온실자리의 땅이기때문에 이제부터 반년동안 매일 여가시간을 타서 있는껏 돌을 추자나.…

오늘 아침 나는 분조장에게서 작업반창고로 가서 비료 세마대를 타가지고 모판으로 나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달구지를 몰고가 비료를 타온 나는 모판두렁에 마대들을 척척 가려쌓았다.

《이보게 분조장, 어째서 모판이 전해보다 작은가?》

위아바이가 가래삽끈을 풀어내며 안심치 않은 기색을 짓는것이였다.

일순 분조장의 넙죽한 얼굴에 놀라와하는듯 한 면구한 빛이 한바퀴 에워흘렀다.

《원, 아바이두… 작다니요?》

《아니야. 전해엔 182판이였는데 이번엔 158판일세. 24판이나 작은걸 모른단 말인가?》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귀신같은 아바이라니까. 어느새 모판 개수까지 다 꼼꼼스레 세여보았을가?

평안도 참빗장사도 울고가겠군.

자기가 분조장이기나 한것처럼 분조의 삽, 낫, 호미가락수는 물론 밭에 묻는 강냉이알수까지 미주알고주알 캐고드는데 아마 그 아바이는 자기 턱수염이 얼마인지도 다 알것이다.

분조장의 번들이마에 개구리힘살이 욱 살아올랐다.

《거 뭐, 별걸 가지고 다 그러시누만요. 내가 아무렴 분조땅뙈기를 비여두겠나요. 걱정마시우, 아바이.》

《자네 혹시 뚝감자논에 모내기를 안하자는건 아니겠지?》

그런 논이 있었다. 분조의 제일 골치거리논인데 수렁논이여서 모내는기계도 댈수 없고 토질도 변변치 않아서 수확도 시원치 않다고 했다. 그 논뚝에 뚝감자가 많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나.

분조장이 대답을 가무리며 작업반사무실로 멀어져갔다.

모판에 비료를 뿌리던 아주머니들이 빈 주머니들을 들고 논머리로 걸어나왔다.

나는 후한 내 인심을 시위하듯 주머니들에 비료를 듬뿍듬뿍 채워주기 시작했다.

《이녀석!》

뒤에서 벼락이 쳤다.

위아바이가 가래장부를 짚고서서 나를 바라보는데 눈꼬리가 호미날처럼 치째져오르는것이 저도 모르게 바지가랭이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눈짐작으로 주는게 아니야. 당장 휴계실에 뛰여가서 손저울을 가져와.… 여긴 모판이 서른다섯이니 얼마만한 량이면 되겠는지 계산해봐.》

《뭐 그만한걸 모르겠어요. 이 마대가 마흔키로짜리니까 한 이쯤 쏟으면…》

《이쯤? 농사엔 이쯤이라는게 없어. 넌 벌써 그런 얼치기농사군이 되고싶다는거냐? 덜된녀석! 일을 배우겠으면 똑똑히 배워라. 땅을 밟고 다닌다고 땅이 너를 올려다볼줄 아느냐? 학습장에 락제국을 먹이면 다시 쓸수 있어도 땅에다 락제국을 먹이면 다야, 알겠냐? 똑똑한가 했더니…》

나는 격분했다. 그럼 내가 머저리란 말인가?

씽 돌아선 나는 눈을 찔 흘겼다.

마지막말만 안했어도 개운한 마음으로 저울을 가지러 갔겠지만 아바이가 나의 인격을 여지없이 떨군것으로 하여 나는 심사가 뒤틀려버렸다.

그런데 저녁총화때 위아바이가 나의 일을 꼬집어들며 분조장이 신발을 잘 신겨야겠다고 하는것이였다.

흥, 누군 뭐 절름발인가 하는게지.

미운 사람 고운데 없다고 아바이의 모든것이 나에겐 밉광스럽기 그지없었다.

정말 좁쌀알같은 아바이라니까.

 

×

 

우리 분조에서는 올해부터 지원로력을 받지 않고 자체로 농사를 짓자고 떨쳐나섰다. 그래서 분조에 오기로 되였던 지원자들이 3분조에로 돌려졌다고 한다. 그 일과 관련하여 위아바이는 개별담당제라는것을 내오자고 분조에 제기하였다.

말하자면 분조의 후치날은 누구, 소달구지는 또 누구, 모내는기계는 누구, 모뜨는기계는 분조선동원이…

결국 위아바이와 나는 분조의 부림소를 맡기로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제 이름을 쓴 표쪽까지 달아놓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부림소에게는 다리가 있어서 위아바이와 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부림소가 함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대신 나와 위아바이의 잔등에는 소가 먹을 풀단이 항상 매달려있었다.

집이 함께 있는 덕을 정말 단단히 입는셈이였다. 온 마을이 나를 《소몰이군》이라고 부를지도 몰랐다. 젠장!…

모내는기계가 퉁퉁 가락지같은 연기를 피우며 나간다. 소금쟁이처럼 슬슬 논물우로 미끄러져가며 실토리를 풀어내치듯 벼모들을 꽂아가는데 그 사품에 일어난 파문이 무늬를 그리며 자주 발목에 휘감기기도 했다.

그뒤를 따라가며 보식을 하는 나는 허리, 다리 할것없이 쿡쿡 쏘는것이 따벌에게 단단히 쏘이기라도 한것 같았다.

옆에서는 위아바이가 우악스러워보이는 그 꺽지손으로 모를 얼마나 재빠르게 꽂아가는지…

모춤을 풀어서 벼매끼를 훌 던지고 보식을 하려는데 아바이가 또 나를 핀잔한다.

《매끼를 흙속에 묻어라. 바람이 불면 그게 떠돌아다니면서 벼뿌리를 흔들어놓느니라. 고지논매듯이 해서야 되냐?》

《아이쿠.》

발을 내짚던 나는 대뜸 미간살을 찌프렸다. 흙속을 헤집어보니 밤톨만 한 돌쪼각이 잡힌다. 젠장, 나는 신경질을 피우며 돌쪼각을 휑 줴뿌렸다.

텀벙…

《얘 학성아, 돌이 있으면 들고 나가야지 버리면 어떡허냐? 뒤에 들어올 사람이 밟을 생각을 해야지.》

정말 위아바이와 일하기 싫다.

잔소리, 잔소리 해도 이건 꼭 호랑이 개어르듯 한다니까.

이제부터는 아바이와 일을 못하겠다고 분조장에게 제기해야겠어. 이러다간 정말 그 잔소리에 내 머리칼이 다 벼뿌리가 되고말겠군.

이웃배미의 논에서 개골개골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쉬여하렴, 쉬여하렴.》

《안돼. 아바이가 있지 않니?》

《꾀병해라, 꾀병해라.》

《그러다 혼날려구?》

《쉬여해라, 꾀병해라, 쉬여해라, 꾀병해라.》

구들목처럼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른 대기속에서는 연기를 들여마신것처럼 숨쉬기도 여간 거북스럽지 않다. 논물도 가마목 물그릇처럼 미적지근 하다.

물면에서 반사된 해빛이 용접광처럼 두눈을 새그럽힌다.

길 둔덕에 핀 나팔꽃들이 취주악을 연주하느라고 사기가 충천했건만 주변에 운집한 길짱구꽃, 조뱅이꽃들은 벌써 식곤증이 와서 끄덕끄덕 턱방아를 찧고있었다.

불쑥 모내는기계가 멎었다.

《왜 그러나?》

아바이의 술통을 두드리는것 같은 석쉼한 목소리가 아닐세라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던 운전공에게로 날아갔다.

《기름을 넣어야겠어요, 아바이.》

《빨리 갔다오게. 미리 타놨어야지. 학성아, 제꺽 기름통을 들어주고 오너라.》

됐구나!

나는 속으로 환성을 지르며 허리를 쭉 폈다. 모기계 운전공과 함께 작업반창고로 갔다.

그런데 창고문앞에는 큼직한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이것 참… 당장 모내기를 해야겠는데… 또 위아바이가 야단치겠네. 그러지 않아도 올해엔 지원로력이 없기때문에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겠는데…》

우리는 창고문앞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개골… 개골…》

개구리들의 지성어린 권유의 목소리가 내 귀에 흐뭇하게 들려온다.

한숨을 돌릴가 하는데 먼발치에 위아바이의 성이 꼭두까지 난 모습이 나타났다.

《아니, 왜 아직도 안 오는가 했더니… 이게 뭔가? 해가 중천에 솟았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는 기색을 지어보이는데 아바이는 우리의 대답에 대뜸 얼굴빛이 불그락푸르락 해서 창고장아바이를 욕질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딜 싸다니는지 이러다간 여기서 해구멍을 틀어막겠군.》

그때에 창고장아바이가 나타났다. 그러자 위아바이는 다하지 못한 욕설을 장마비처럼 퍼부어댔다.

《창고장이 열쇠를 걸고 어디에 돌아다니는건가. 창고장은 농장사람이 아닌가.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논판에 가서 모 한대라도 꽂으라구.》

가게방령감처럼 체격도 보잘것없이 작은 창고장아바이는 무어라 모기소리로 앵앵거리더니 위아바이쪽은 본척만척 창고안으로 힝 들어갔다.

기름을 늦게 타온 덕에 모내기는 저녁이 박두해서야 끝났다.

일을 끝마치고 분조휴계실을 지나는데 안에서 위아바이의 기침톺는 소리가 강대를 찍듯이 텅텅 울려나왔다.

나는 속이 한줌만 해졌다.

《모가 다 떨어지는데… 뚝감자논엔 어떡하겠나?》

《걱정마시우. 그 논엔 강냉이를 심기루 관리위원회에서 군에 제기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물을 잡지 않았수다. 아무렴 이 분조장이 그만한거야 생각 못했겠소? 모내는기계도 대기 힘든 논들인데 올해부터 아예 강냉이밭으로 만들고말자구요. 우리 분조야 자체로 농사를 짓기로 했는데 첫 모내기부터 뒤꼬리를 차지해서야 안되지요.》

《뭐, 뭐라구?! 임자 그게 진심의 소린가? 그렇게 하는게 다 분조를 위해서라구?》

문틈으로 슬그머니 들여다보던 나는 눈이 뎅그래졌다. 마주선 두사람의 이마에서 금시 박달나무 터지는 소리가 날듯…

《그렇게 모내기면적을 줄여서 1등을 해선 뭘하나?

그렇게 할바에야 차라리 지원로력을 받는게 낫지. 땅을 가지구 자기 능력을 과시해보자는건가?

어떻게 하나 그 땅을 가꿔내고 살찌워야지 그렇게 오이꼭지 버리듯 해서 어쩐다는건가. 땅을 밟고 다니기가 무섭지 않은가.》

《감투를 씌우지 마시라요. 벼건 강냉이건 심으면 되지요. 분조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하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 지원로력도 안받고 모내기를 시작한건데…》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하나 단 한평이라도 논을 늘일 생각을 해야지, 그래선 못쓰네. 참외도 가꾸기탓일세. 기계를 못대면 손모를 내서라도 하자구.

그리구 내 보기엔 자네가 너무 돌아다니는것 같네. 분조장이야 논을 떠나지 말아야지. 자네가 앞채를 메라구. 그러면야 분조원들도 모두가 따라 나서지 않으리.

분조장, 정신차리게. 학성이도 점점 자네를 닮아가.》

《쳇!》

나는 입이 한발 나왔다. 난 왜 껴드는거야, 내가 뭐 동네북이야.

《난 정말 모르겠수다. 그 논들까지 붙안고 제기일을 보장할것 같애요? 굴우물에 돌넣기지요.》

아바이는 말이 없었다. 굵직한 마라초가 손가락짬에 끼인채로 뭉씰뭉씰 타들어가는것이 벼락맞은 고목같았다.

《그래도 해보자구. 이제라도 그 논들에 물을 대게. 모가 모자라는건 내가 이웃작업반들에 들려서 좀 변통해보겠네. 두루 알아보니 모들이 좀 남는다더군. 여보게, 나이만으로는 땅과 친할수 없지 않나.》

아바이의 마지막말에 마음이 찔린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날 밤이였다.

일기를 쓰고있던 나는 마당에서 간드락간드락 울리는 소음에 정신이 쏠렸다. 어느 집에선가 게으름뱅이강아지가 낑낑 갑자르는 소리가 토방우로 돌돌 굴러온다. 아래방에서는 부모님들이 벌써 주무시는지 잠잠했다.

나는 일기장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왔다. 깨진 반지처럼 찌그러진 달이 넝마같은 구름에 휩싸여버리자 두리는 칠흑같은 어둠에 덮이고말았다.

토방에 엉거주춤 섰는데 옆집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호기심을 안고 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삽날이 덜컥 무엇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어둑시니같은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충전등빛이 희붐히 새여나오는 메탄가스탕크에로 다가간 나는 겁질린 목소리를 간신히 내뽑았다.

《누구야요?》

《학성아, 네가 웬일이냐?》

나는 막혔던 숨을 후 내뿜었다.

《아바이였군요.》

《조용조용 한다는게 너를 깨웠구나. 들어가서 어서 자거라.》

《일없어요. 아바이, 그런데 한밤중에 메탄가스탕크는 왜 털어요?》

《녀석, 별걸 다 알자고 그러누나.》

대뜸 아바이는 나를 면박주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누긋한 어조로 나에게 뒤말을 달아주었다.

《뚝감자논에 덧거름을 주자고 그런다. 그 논엔 모내기를 안할 잡도리로 거름도 제대로 내지 않았는데 이제라도 바로잡아야지. 탕크의 거름이 잘 썩었으니 보탬이 되겠지.》

나는 생각에 잠겨 아바이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한밤중에 우정… 하긴 낮에야 틈을 낼수 있을라구.

위아바이는 언제한번 이 메탄가스탕크를 털 때 나오는 거름을 제집 터밭에 뿌려본적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지어는 집 돼지우리에서 나오는 두엄도 고스란히 한덩이도 흘리지 않고 분조논으로 지고 나갔다. 그래서인지 아바이네 터밭은 산자드락에 금방 일군 땅처럼 손맛도 들지 않았다.

언젠가 창고장아바이가 마실을 왔다가 《여보게, 남들은 다 제집 터밭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데 자넨 되려 그 반대구려. 그게 작아뵈도 가꾸는 재미가 있다네. 자네도 터밭재미맛을 좀 보라구.》 하고 념려해주다가 되려 면박을 당했었다.

《농장원에게야 논벌이 진짜 터밭이지.…》

나는 아바이가 퍼내는 거름을 모아놓느라고 거리대를 찾아가지고 나왔다.

밤은 더욱 깊어갔다.

아바이가 일을 할 때 여담을 하기 싫어한다는것을 잘 아는 나는 우정 입을 봉하고 묵묵히 거들기만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전혀 심심하지도 적적하지도 않았다.

하고싶어 하는 일은 열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은것이다.

 

×

 

《찌르릉…》

자명종이 소리를 질러댔다.

눈을 꺼끔 떴던 나는 엉치에 숯불이 묻은것처럼 후닥닥 뛰여일어났다.

하마트면 지각을 할번 했다. 아바이가 또 날 다몰아대겠는데…

밥상을 챙기느라 서두르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며 나는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었다.

금시 마당에서 《학성아, 왜 늦느냐?》하는 질책이 날아올듯…

텅 빈 마당을 둘러보고나서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아바이네 집은 조용했다.

어떻게 된거야. 아바이가 혹시 앓는게 아닐가.

나는 근심스러운 심정으로 아바이의 집으로 갔다.

《아바이! 위아바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바이대신 푸수한 몸집에 얼굴이 넙죽한 옆집어머니가 가시물에 젖은 손을 털며 나왔다.

《학성이로구나. 글쎄… 이 령감이 아직 오지 않았구나.》

《예?!》

《오… 넌 모르는게구나. 령감이 어제 저녁에 달구지를 끌고 나갔다. 다른 작업반들을 돌아다니면서 뭐 모가 남은걸 얻어오겠다나. 령감두… 제가 무슨 분조장이기나 한것처럼… 새벽엔 돌아온다더니 아직 안왔구나. 늙은이가 영 주책이 없다니까, 쯧…》

머리를 끄덕거리며 나는 선자리에서 머뭇거렸다. 서운한 생각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매도 맞다가 안 맞으면 섭섭하다더니 아바이의 그 귀쏘는 잔소리도 정작 듣지 못하고보니 저도 모르게 아바이생각에 옴하게 되는것이였다.

아바이두… 옆집에 살면서 그런 일에선 왜 날 빼놓았을가. 내가 그렇게도 못미더워보였던게지.

하긴 매일 생강 씹은 인상을 하고 다니니 아바이가 나를 온곱게 생각할리가 만무하지.

소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리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농립모를 벗어들고 가슴에 활활 부채질하며 아바이가 소고삐를 잡고 걸어오는데 달구지를 끌고 오느라 어지간히 지친 누렁소가 미련을 부리는지 철썩 잔등을 갈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학성아, 넌 여기서 뭘 하느냐? 나와 같이 지각할셈이냐? 먼저 출근해야지.》

아바이는 그 잔소리를 또 꺼내놓을 차비다.

그러나 나는 아바이가 전혀 고깝지 않았다. 말은 비록 자기의 손처럼 투박하지만 그속에는 뜨거운것이 한가득 들어차있음을 그때 비로소 깨달은것이였다.

《여보, 내 저래 뚝감자논에 모를 부리우고 올테니 우선 이거나 좀 내리기요. 와 와, 이놈의 소…》

달구지우에 모춤들이 가득 쌓여있는데 그우에 밥사발뚜껑처럼 덮어놓은것은 녹물이 오른 큰 소여물가마였다.

《아바이, 이건 왜 가져왔어요?》

《누렁이때문에 가져왔다. 먹은 소가 힘쓴다는데 가마가 저렇게 작아서야 어떻게 소가 기운을 쓰겠니. 분조에서 우리를 믿고 소를 맡겼는데 씨름소처럼 한번 잘 키워보자꾸나.》

《음머-》

눈뭉치같은 코김을 힝 내불며 누렁이가 대가리를 주억거리는것이 마치나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것 같았다.

《그곳 사람들이 구두쇠를 부리길래 강짜를 좀 써봤다. 파철처럼 만들바에야 뭣하러 거기에 그냥 둬두겠니…》

그러니 아바이는 밤새 리의 온 작업반들을 다 돌아다닌것이다.

나는 령감의 옷주제를 나무라며 지청구를 들이대는 옆집어머니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다가 소를 몰고 논으로 나갔다.

정말 아바이처럼 소를 아끼는 사람이 있을가. 위아바이는 빈 달구지라고 해도 절대로 소달구지를 타고다니지도 않았고 설혹 가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제 잔등을 발로 밟은듯이 얼굴을 찡그리군 했다. 그리고 된욕을 퍼부었다. 농장원이 아니라 건달뱅이라고…

때로 뜨락또르운전수청년들이 소들을 우습게 알고 롱말이라도 던질라치면 아바이는 이런 말로 그들을 눌러놓군 했다.

《웃지들 말아, 녀석들.… 씨름경기에서 1등을 하면 왜 뜨락또르가 아니라 소를 주는지 아냐?

소는 땅처럼 고지식해 거짓말을 할줄 모르거던.

그런데 어떤 녀석은 제 깊이도 안갈고 시치미를 떼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은 처녀한테 채웠다고 심술을 부리면서 뜨락또르를 마구 몰아 논뚝을 허물어놓는데 그게 도대체 누구냐?》

그러면 히히닥거리며 갈갬질을 하던 축들은 대뜸 기가 쑥 죽어 먼산을 보는척 하는것이다.

뚝감자논 어구에서 나는 소를 황급히 세웠다.

멀리 분조장이 두눈을 부릅뜨고 서있는것이 보였다. 부릅뜬 두눈이 바라보는것은 내가 아니라 논머리에 두둑하니 무져놓은 거의 두달구지나 되는 모춤들이였다.

《후…》

나는 어깨를 펴며 소를 다시 몰았다.

《위아바인 안오냐?》

한참동안 내쪽은 본척만척 고개를 돌리고섰던 분조장이 가슴을 비집고 꺼낸것처럼 풀어진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보는것이였다.

《저… 누렁이… 여물가마때문에… 인차 올겁니다.》

침묵… 또 침묵.

《수고했다.》

그의 칭찬에 나는 더욱 당황해졌다.

분조장이 이 늦잠꾸러기가 아바이와 함께 이 모들을 날라오는것으로 알고있으니 이런 야단이라구야.

모춤을 하나 들고 빨개진 얼굴을 가리우고싶은 심정이였다.

《아바이와 함께 식사하거라.》

묵직한 보자기를 달구지우에 올려놓으며 나를 련민의 눈길로 바라보던 분조장이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멀어진다.

감색보자기에서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이것 참… 어쩐다.》

왜서인지 행복한 생각에 잠겨들며 나는 빙그레 웃음지었다.

《음머…》

저도 군침이 도는지 누렁이가 나를 바라보며 두눈을 끔벅거린다.

 

×

 

모춤이 박격포탄처럼 휘 날아간다. 오늘까지 이 논의 모내기를 끝내면 우리 분조는 모내기를 완전히 끝낸다.

《아이쿠…》

나는 아부재기를 쳤다. 모춤 하나가 위아바이의 옆에 날아가 떨어진것이다.

철써덕!_

젖은 빨래처럼 떨어지는 모춤에 아바이가 호랑이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호랑이》의 얼굴 절반은 웃고있었다.

《에… 이녀석!》

분조원들은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모줄을 옮겨간다.

지원로력과 함께 냅다 돌격전을 벌려 우리보다 이틀 먼저 모내기를 끝낸 3분조원들이 멀리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긴듯 하다.

벼모를 든 손가락이 물속으로 쏙 매끄러져들어간다.

한번, 두번… 한번, 두번…

속으로 박자셈을 세며 벼모를 꽂아나가는 나의 옆에는 분조장과 위아바이가 있어 여간 흐뭇하지 않다.

오늘은 아바이가 어떻게 된걸가? 일하면서 말을 하다니… 전에는 기침 한번 없었는데.

《<고난의 행군>때였지. 수도 평양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우리 농장으로 자원진출했어. 굉장했지, 얼마나 일을 잘했다구. 온 농장 아니, 온 군적으로 소문이 날 지경이였지. 그는 앓는 몸으로도 논벌을 떠나지 않았어. 학성이는 바로 그런 모습을 따라배워야 하는거야.》

나는 그 청년이 아바이에게서 분조장사업을 이어받았다는것을 안다.

슬그머니 왼쪽을 바라보니 분조장은 자책어린 기색으로 묵묵히 모를 꽂고있는데 잘못 꽂은 모 한대가 떠오르는것을 보고 허둥지둥 다시 꽂는것이였다.

분조장의 그런 눅눅한 기분도 풀어주고싶은 생각으로 나는 슬그머니 한마디 끼웠다.

《그후엔 보름달같은 처녀에게 장가를 갔고 딸 쌍둥이를 낳았지요.…》

《허허… 녀석!》

《하하…》

웃음이 터진다. 정오의 나팔꽃처럼 활짝 피는 저 웃음소리!

에참, 저러다 분조원들의 허리가 다 끊어지겠네. 나의 잔등을 철썩 갈기며 분조장도 연신 껄껄댄다.

저녁이 어슬어슬 다가와서야 모내기가 완전히 끝났다.

《아바이, 뭘 하세요. 나오세요, 어서요.》

나는 입가에 손을 오무리고 소리쳤다.

《오냐!》

마지막모대를 지경돌처럼 꽂아놓고 나오던 아바이가 하늘가를 쳐다보며 우스개삼아 한마디 던졌다.

《거 북두칠성 참 잘 생겼군. 주전자같지 않나. 우리가 모내기를 다 끝내느라 수고했다고 한잔 부어줄 차비 같구만, 허허.》

《하하하, 아바이. 날래 들어가서 로친에게 부어달래시우다.》

《호호호.》

《하하하.》

 

×

 

우리는 올해모내기총화에서 농장적으로 6등을 했다.

아쉬웠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으로 분조자체의 힘으로 모내기를 제기일내에 끝낸것이다.

단 한평의 논도 비여둠이 없이…

명년에는 남아있는 강냉이밭들도 군에 제기하여 다 논으로 풀 결심이라고 분조장이 호소하였다.

까짓, 1등을 못하면 뭐라는가, 진짜등수는 이 땅이 매겨줄텐데…

총화에서 1등을 한 3분조장이 되려 더 컴컴한 낯빛이 되여서 우리 분조장에게 말했다.

《우리 분조도 이제는 진짜주인이 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똑똑히 알게 됐네.》

그날 총화에서 돌아오던 위아바이가 나의 어깨에 묵직한 손을 얹는것이였다.

《학성아, 이 잔소리군령감하고 일하기가 싫지 않느냐?》

나는 문득 입가에 장난기 심한 웃음이 피여오르는것을 느꼈다.

《네, 싫어요.》

아바이는 정말 내 말을 곧이 들은가부다.

《그럴테지, 아닌게아니라 나두 가끔 학성이한테 지나치지 않았는가 생각해보군 했지. 그러면서도 네가 이 땅의 주인으로 성장하는걸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더구나. 손에 흙을 주무른다고 진짜농사군이 되는건 아니란다. 이 땅을 제 살붙이처럼 아끼고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 진짜배기농사군이지. 난 학성이가 그런 사람이 되기만을 바래.》

《아바이.》

가슴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뜨거움이 마음속 깊은곳에서 세찬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말은 다르게 나간다.

《난… 난 아바이가 정말 싫어요. 왜… 왜…》

왜 나같은 놈을 더 꾸짖고 아프게 매를 들지 못했는가 눈물겹도록 하소연하고싶었다.

그것이 사랑인줄, 그것이 믿음인줄 왜 미처 몰랐던가!

이제부턴 일을 잘해서 진정 땅처럼 고지식하고 성근한 실농군이 되리라.

나는 아바이의 넓은 가슴에 축축해진 뺨을 묻었다.

《난… 아바이가 제일 좋아요.》

아, 나는 정말 행복하다.

오로지 모든것을 훌륭한 풍작을 안아오기 위한 길에 바치는 참된 주인, 땅처럼 고지식하고 성근한 이런 아바이와 함께 일하는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옆집에 사는것이 이리도 좋을줄이야…

《학성아, 뭘 하느냐?》

아침이면 언제나 위아바이의 친근한 목소리가 구수한 땅냄새처럼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예, 나가요.》

밥상에 마주앉아 어머니에게 이 타발, 저 타발 늘어놓던 나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선다.

문이 벌컥 열린다.

토방우에 오만하게 서서 《꼬끼요!》 하고 흰목을 뽑아대던 싸움군수닭이 기겁하여 줄행랑을 친다. 바자문을 열고 달려나가는 나의 눈앞에 한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농장벌의 아름다운 전경이 우렷이 펼쳐진다.

오, 아름다운 내 고향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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