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8(2009)년 제1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서두수바람

               한웅빈

                                                                               

1

 

전민항쟁의 숨은 불씨로 온 나라가 분출을 앞둔 활화산의 분화구처럼 달아오르던 1944년 7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급류하는 서두수와 연면수의 물소리가 메아리쳐 울리는 연사지구의 등판에 이르시였다.

등판아래에서는 강줄기가 구불구불한 강철띠처럼 거무스레하게 번쩍거린다. 쫙 펼친 손가락처럼 쭉― 쭉― 뻗어나간 여러 갈래의 산릉선사이 골짜기에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등판을 휩쓸고있었다. 산세처럼 물살도 세차고 바람도 세찬 고장이였다.

김정숙동지에게는 이미 친숙해진 강과 산발들이였고 귀익어진 음향이였다. 륜곽이 굵은 산발을 달음질치는 바람소리와 정열적인 물소리, 무산지구진공전투를 전후로 그이께서 한두차례만 아니게 밟아오신 땅이였다. 서두수수전공사장의 언제며 200리 물길굴의 여러 구간에서 파내놓은 버럭더미들, 인부들의 함바집들… 두 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원골산, 사지령이며 연면수너머로 보이는 상단산이며, 갈래갈래 뻗어내려간 골짜기들이 그이께서는 이제 만나시게 될 이곳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핵심성원들의 얼굴들처럼 안겨왔다.

고향을 떠나 살길 찾아 헤매이다가 주저앉은 인부들의 절망과 탄식, 신음소리로 포화되였던 골짜기들, 이곳에서는 왜놈들이 미리 찍어놓았던 수천장의 사망통지서가 동이 났을 정도로 공사 첫날부터 각종 사고들이 어느 하루도 번지지 않았다.

지금도 수전공사장은 하루하루가 각종 사고로 이어져가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신음과 한숨을 불러내는 사고만이 아니였다. 왜놈들이 골머리를 싸쥐게 하는 《사고》들이 더 많았다. 파업과 태업, 설비의 파손, 폭약과 도화선, 전기줄의 빈번한 대량적인 분실, 밀정들의 행방불명…

얼마전에 서두수수전공사장을 휩쓴 파업은 이곳 지하조직의 전투력의 일대 과시였다고 할수 있었다.

먼저 원봉언제공사장에서 로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여 파업이 일어났다. 왜놈들은 여느때처럼 경찰을 내몰았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공사장의 파업진압에 달려들자 지하물길갱 5갱에서 또 파업이 일어났다. 그쪽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대자 이번에는 지하물길갱 2갱에서의 파업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와 함께 일여덟을 헤아리는 지하물길갱들은 태업으로 일이 완전한 중단상태에 빠졌다. 온 공사장이 파업과 태업의 도가니로 화하였다. 《북선수력전기회사 니시마쯔구미 서두수사무소》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현지경찰들은 한구석에 몰켜 꼬리를 샅에 끼고 짖어대는 개몰골이 되였다. 결국 머리와 꼬리를 돌아볼수 없게 된 왜놈들은 이발을 갈면서도 주저앉아버리지 않을수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투쟁을 승리에로 이끈 조직성원들의 얼굴을 그려보시였다. 2년전 원골산에서 만났던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시였다. 그사이 몰라보게 성장했을 그들을 어서 만나보고싶으셨다.

전나무, 이깔나무와 물황철나무, 떡갈나무의 혼성림이 우거진 등판의 변두리에 얼핏 보면 웅크리고 앉아있는 곰처럼 보이는 바위가 자리잡고있었다.

(저게 곰바위로구나.)

바위우에 나무군이 되는대로 내던진듯 한 떡갈나무가지가 놓여있었다. 안전신호였다. 앞서 떠나보낸 련락원은 어딘가 그 주변에 있을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인차 련락원이 있는 위치를 알아보시였다. 곰바위에서 스무발자국쯤 떨어진 잡관목우에서 범나비 한마리가 앉을듯 하다가는 다시 떠오르고 내려앉을듯 하다가는 또다시 날아오르군 하고있었다.

주위를 다시한번 확인하신 그이께서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련락원은 이미 모든것을 보았을것이지만 나오지는 않고있었다. 그는 몇곱절 더 날카로와진 시선으로 주위의 안전을 확인하고있을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범나비가 아직 떠나지 않고있는 잡관목덩굴앞에 멈춰서시였다.

《온지 오랬어요?》

《…》

그것은 당황한 침묵이였다.

몇초 지나서야 저으기 붉어진 얼굴이 잡관목속에서 솟아올랐다.

《제가 여기 있는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이께서는 다시 미소를 지으시였다.

《나비가 알려주더군요.…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그냥 빙빙 날고있는 범나비에게 눈을 흘기던 련락원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어렸다.

《조직책임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긴장한 빛은 곧 불안한 빛으로 변했다.

《정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서두수수전공사장에 총독부 경무국의 고관놈이 갑자기 내려왔답니다. 다년간 국내의 지하조직망색출을 전문으로 한 놈이라고 합니다. 그놈은 자기를 다까하시라고 했다는데 그놈의 본명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답니다.》

《경무국 고관?》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되새겨보시였다. 연사, 무산지구를 비롯한 북부조선일대 혁명조직들의 실태를 료해하고 더욱 튼튼히 꾸리며 확대해나감으로써 전민항쟁준비를 한단계 더 높이 끌어올리는것이였다. 상단산비밀근거지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열리게 되는 전국조국광복회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준비하는것이였다. 회의준비란 무엇보다 혁명조직들을 더 튼튼히 확대해나가는것이였다.

북부조선일대의 전민항쟁준비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서두수수전공사장에 경무국 고관이 나타났다는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공사장은 거미줄같은 놈들의 밀정망으로 덮여있었다.

《그자가 무엇때문에 나타났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답니까?》

《그놈은 여기에 도착한 이래 밖으로 나온적이 없이 사무소안에만 처박혀있다는데 경찰들이 분주히 드나든다고 합니다. 적들속에 박아놓은 한 조직성원도 아직 그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주 교활한 놈이군요.》

《이곳 조직책임자는 조직성원들과의 모임을 고려하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이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를 저으시였다.

《모임은 계획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해두기는 했습니다.》

《잘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직 그에게 해야 할 말이, 어쩌면 앞에서 말한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소식이 있음을 느끼시였다. 련락원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늘이 그냥 가셔지지 않고있었던것이다.

련락원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곳 조직은 조직을 보존하기 어려운 정황에 처해있다고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의아해지시였다.

이곳의 조직은 수년간을 두고 꾸려졌고 투쟁속에서 단련된 조직이였다. 얼마전 파업에서의 승리는 이곳 조직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것이였다.

그런데 조직을 보존하기 어려운 정황에 처했다니… 참으로 뜻밖의 소식이였다.

그이께서는 침착한 표정으로 련락원의 다음말을 기다리셨다. 지하공작이란 항상 뜻밖의 정황, 상상할수 없는 일과 부딪치기마련이다.

《왜놈들이 이곳 수전공사를 당분간 중지하기로 했다는겁니다. 이곳의 로동자들을 분산시켜 전국각지의 여러 공사장들에 끌어가려 한다고 합니다. 아직은 놈들이 비밀에 붙이고있는데 틀림없는 사실같다고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사실일거예요. 당분간이 아니라 왜놈들로서는 영영 중지하는것으로 될거예요.》

《예?》

전쟁에서 궁지에 몰린 일제가 여러 광산들에 《광업휴지령》을 내리고 인부들을 《징용》으로, 설비들을 바닥이 난 전략예비물자로 돌리고있다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미 알고계시였다.

이 수전공사장이라고 달리 될수 없었다. 왜놈들의 계획대로 하면 공사는 벌써 끝났어야 했고 군수생산을 위한 전기를 생산해야 했다. 처음은 그런대로 그럭저럭 진척되여가던 공사가 1940년에 들어서면서 공사장을 휩쓴 파업과 각종 형태의 태업으로 침체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미 건설해놓은 시설물들이 파괴되여 공사전반이 뒤걸음치는 일도 빈번해졌다. 또한 공사용물자들이 밑빠진 독에 부은 물처럼 자취를 감추어버려 왜놈들을 당황망조하게 했다.

전쟁에서는 패전이 계속되고 전시물자예비가 바닥이 난 일제로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 이 공사를 더 계속할 힘이 있을수 없었다.

이것은 일제의 패망이 눈앞에 박두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하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그런데 이 사태가 이곳 혁명조직에는 매우 불리한 정황으로 된것이다.

적들이 공사를 중지하고 로동자들을 분산시켜 전국의 여러 공사장들로 끌어간다면 투쟁속에서 단련된 혁명군중은 흩어지지 않을수 없고 조직성원들도 역시 흩어지지 않을수 없게 된다. 애써 꾸리고 키워온 조직성원들이 여기저기 사방으로 끌려가버린다면 조직으로서는 치명적손실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이곳의 조직성원들은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잃어서는 안될, 투쟁속에서 단련된 귀중한 존재들이였다. 그들을 한사람이라도 잃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김정숙동지의 머리속에 떠오른 첫 생각이였다.

《조직에서는 어떤 대책을 취했다고 합니까?》

《조직성원들이 최대한 떠나지 않고 남도록 할 방도를 찾고있다고 합니다. 영록동무 같은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사람도 이곳을 떠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있답니다.》

《영록동무가?》

그이께서는 이미부터 알고계시던 조직성원들중의 한사람인 영록을 회상하시였다.

크지 않은 키, 여위여보이는 사람이였으나 무쇠처럼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한때는 책속에 묻혀 진리를 찾던 사람이였다.

맑스와 레닌의 저서도 읽었고 이런저런 사상가들의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한다는 패들을 따라다니다 파쟁의 희생물로 감옥살이를 한 전적도 가지고있었다.

그 모든것에 환멸만 느낀 그는 왜놈들과는 오직 주먹으로 싸워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공사장에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주먹대장》이였다. 《공부가 들어있는 머리》에 (인부들의 표현이였다.) 《주먹》까지 가진 그는 십장들과 감독들은 물론 경찰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가 바라는것은 왜놈들이 쩔쩔매는, 왜놈들에게 무서운 존재로 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1942년 원골산에 나오셨을 때 영록은 그런 사람이였다.

그때 서두수 수전공사는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서고있었다. 상원봉에는 《북선수력전기회사 니시마쯔구미 서두수사무소》와 원봉경찰관주재소 그리고 수십호의 왜놈들의 집이 하나의 거리를 형성하였고 공사장에 끌려온 인부들은 5천명을 넘어섰었다. 언제공사장과 취수구공사장 그리고 10여개를 헤아리는 지하물길갱 공사장들에서는 왜놈들의 폭행과 로동재해가 멎는 날이 없었다.

《왜놈들은 그저 두드려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땅에 있는 왜놈들이 조선사람보다야 많지 못할게 아닙니까? 우리 조선사람들이 모두 왜놈들 한놈씩만 아니, 열명이 한놈씩만 제껴치워도 조선땅엔 왜놈종자가 없어질게 아닙니까!》하고 영록은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시였다.

《그러면 왜 여기 공사장의 얼마 안되는 왜놈들이 수십배나 많은 우리 인부들을 제 마음대로 부려먹을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기 사람들이 아직 조직화되여있지 못하기때문입니다.

동무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이 십만, 이십만인줄 압니까? 무장도 인원도 그놈들에게는 대비할바가 아니지만 우리는 일제의 백만관동군과 싸워서 늘 이겼고 이기고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때문이겠습니까? 조직의 힘이기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직이 그놈들의 조직보다 더 강하고 굳세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주위에 강철같이 뭉친 무장을 잡은 조직이기때문에 불과 수백명, 때로는 수십명일 때도 그 몇십, 몇백배되는 왜놈들과 싸워 언제나 이겨온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영록은 지하조직성원으로 자라났다. 때때로 결함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투쟁속에서 성장했다.

그런 사람이니 죽는 한이 있어도 조직을 지켜내려고 할것이다.

《지금 영록동무가 다까하시란 놈의 속심을 알아내려고 애쓰고있다는데…》

련락원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아무래도 정숙동지는 영록동무의 보고가 들어올 때까지는 좀… 다까하시라는 놈의 속심도…》

《일없습니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자가 이곳에 나타난것은 공사의 중지와 관련한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일것입니다.》

《…》

련락원은 그이의 침착하신 어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그이께서는 이 사태에 대하여 이미 알고오신것이 아닐가 하는 의혹까지 느꼈던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가 김정숙동지께는 뜻밖의 불의의 정황이였다. 그이께서는 다만 그 어떤 정황앞에서도 지체하여서는 안된다는것을 똑똑히 알고계셨을뿐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나오실 길을 개척하는 일에서는 순간의 주저도 있을수 없었다. 원쑤들의 음모가 있다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파탄시켜야 했다. 사소한 의혹도 허용할수 없었다.…

사태는 엄중하였다. 공들여 꾸리고 단련시켜온 혁명조직이 보존이냐 해체냐 하는 위기에 처하여있었다. 조직의 비밀을 고수하고 조직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조직성원들도 적지 않았다. 그처럼 생명으로 지켜낸 조직이 이런 뜻밖의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람결에 한없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더덕과 참나물향기가 풍겨왔다. 정답게 가슴깊이에 스며드는 그 냄새는 습기찬 골짜기의 등성이에서 풍겨오고있었다.

그곳의 잡관목속에 더덕과 참나물이 자라고있는 모양이다. 그이의 눈앞에는 정성들여 마련하여 올린 더덕찬, 참나물김치를 대원들과 함께 나누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시였다.

그것이 소탕하에서였던가, 무송으로 행군할 때였던가.

추격해오는 적들을 뒤에 달고 강행군을 할 때 앞에서 또 적《토벌》대가 나타났었다.

장군님께서는 앞에 나타난 적들에게 벼락같은 타격을 안기고 빠져나가도록 하시였다. 불의의 맹렬한 타격에 넋을 잃었던 놈들은 얼마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응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응전이라는것이 뒤따라오던 자기네 《토벌》대에 대한 몰사격이였다.

그자들이 서로 쏘아대는 총소리를 들으며 숙영하는 등판에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짬짬이 뜯어모은 더덕, 참나물로 찬과 김치를 만드시였었다.

《적들을 때리지 않고 빠져나올 생각만 했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거요. 우리의 타격에 놈들은 넋이 빠져 서로 죽일내기를 하고있소. 우리 녀대원들은 이렇게 더덕과 참나물을 뜯어서 특식을 만들 여유를 가지게 됐고… 이 더덕찬과 참나물김치도 적에 대한 하나의 공격이라고 할수 있소. 쫓겨다니면서야 참나물김치 담글 생각을 할수 없지. 그렇지 않소?》

그날의 참나물김치 향기가 여기 서두수등판에까지 풍겨오는듯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가슴설레게 하는 참나물향기를 한껏 들이키시였다.

공격에는 공격으로!… 이것은 장군님의 사상이다. 교활한 적들은 이번 수전공사의 중지로 이곳의 혁명군중과 조직을 무력화시키는것도 꾀하였을것이다. 경무국 고관이라는자가 나타난것만 보아도… 원쑤는 항상 간악하다. 최후의 시각이 다가올수록 더욱 악착해지는것이 원쑤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어서 가서 조직성원들을 만나보자. 그들과 마주앉아 방도를 찾자. 피동적인 방어가 아니라 주동적인 공격으로 나간다면 방도는 반드시 찾아질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옮기셨다. 적들의 기도를 알아내려고 긴장한 시간을 보내고있을 영록을 생각해보시였다. 참나물과 더덕향기가 점점 멀어졌다.

 

2

 

차잔에서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하얀 김을 다까하시가 랭랭한 표정으로 지켜보고있었다. 그의 내심은 표정과는 달리 매우 흐뭇한 상태에 있었다. 랭랭한 표정은 그의 얼굴에 항시적으로 씌워져있는 탈이라고 할수 있는것이였다. 그 탈이 갑옷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자기를 보호해준다는것을 그는 오랜 기간의 경험으로 터득했다.

그는 앞에 막대기처럼 꼿꼿이 서있는 현지경찰관들의 존재를 망각한듯 차잔만 지켜보고있었다.

일은 그의 의도대로 잘 되여가고있었다. 이곳에 내려와 며칠사이에 그는 두가지를, 이곳 서두수 수전공사장에 매우 치밀하고 강력한 지하조직망이 든든히 뿌리박고있다는것과 이곳의 경찰들이 비록 바보거나 무능력하지는 않지만 지하조직과 싸우기에는 적당치 않은자들이라는것을 확인했다.

좀도적이나 잡으라면 꽤 솜씨를 보였을지 모르는 이런자들이 이곳의 치안을 담당해온때문에 이곳의 사태가 오늘에 이르게 된것이다. 숱한 자금과 로력,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몇년전에 완공을 보았어야 할 공사가 점점 더 깊은 침체상태에 빠져들었고 오늘은 완전히 중단되게 되였다.

이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업과 태업을 두고 어리석은자들은 《생활조건개선》, 《로동조건개선》이라는 파업자들의 구호에 주목을 돌렸지만 다까하시는 그것이 모두 백두산과 련결된것으로서 조선해방, 나아가서는 《대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을 깨강정으로 만들어버릴 강타의 준비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바보들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파업과 태업, 《도난사고》들을 헐레벌떡 쫓아다닐뿐 지하조직망은 건드려보지도 못하고있는것이다. 바보, 죄다 바보들이다!…

그는 차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부드러운 차향기가 코에로 흘러들고 따끈한 차물이 입술을 기분좋게 적셔주었다.

그는 차잔을 내려놓으며 짐짓 혼자소리처럼 하면서도 온 방안이 다 들리게 말했다.

《차도 제대로 끓일줄을 모르는군!》

앞에 서있던자들은 더 꼿꼿한 자세를 취하며 조그마한 차잔에로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그들은 다까하시라는 괴물앞에서 완전히 납병정처럼 되여버렸다. 본명이 무엇인지도 알수 없는 인물, 총독부 경무국 특고에서 실력자라고도 하고 그 유명한 《혜산사건》의 막후조종자라고도 했다.

총독부에서도 그의 본명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런 《거물》이 여기에 나타났다는것은 이곳에서 이제 일어날 그 어떤 큼직한 《사건》을 예고하는것임을 머리가 잘 돌지 않는 현지경찰들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다까하시는 이미부터 이 지역의 《치안상태》가 얼마나 험악한가를 잘 알고있었다.

이 지역에서의 파업과 태업은 다른 지역에서의 파업이나 태업과는 달랐다. 모든것이 조직적이였고 주도세밀하게 진행되였다. 한쪽을 누르려고 하면 다른쪽에서 일어나 옆구리를 쥐여지르고 그쪽을 돌아보려고 하면 또 다른쪽에서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전설의 모모다로가 맞다들었다는 대가리가 수십개인 괴물과도 같았다. 여기에는 모모다로를 데려다놓는다 해도 동서남북을 잃고 허둥대다가 늘씬하게 얻어맞고 도망갈수밖에 없었을것이라고 다까하시는 생각했다.

줄곧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폭약, 도화선, 전선줄,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는 생각해보기조차 무서운 일이였다.

그보다도 더 무서운것은 강력한 지하조직망과 그것을 들추어낼수 없게 덮어주고있는 수천명의 인부들이였다. 그것은 곧 거의 사단에 맞먹는 인원이였다.

다까하시는 공사장에 대한 보고를 받을 때면 공포와 분노로 이발을 갈았었지만 현지에 내려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자기가 내려간다해도 속수무책일것이고 명성만 떨구게 되리라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그는 능력이란 불가능한것을 해내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가능한것을 재빨리 포착하고 거머쥐는데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이 《능력》이 그를 총독부 경무국의 숨은 실력자로까지 되게 해주었다.

그는 《황군》졸병놈들의 《군대는 요령을 본분으로 한다.》라는 말을 혼자서 되뇌이기를 좋아했다.

이런 일에는 우에서 내려다보며 욕설을 퍼붓는것이 현명한것이다. 꾸짖는 사람은 항상 현명해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문득 수전공사 중지령이 떨어졌다.

경무국에서는 《불온지구》, 《불온세력》이 없어지게 되였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다까하시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조선사람들의 속담대로 하면 《집이 타도 빈대 죽으니 좋다》는 격이 아닌가.

다음순간 그는 자기에게 혁명군사령부와 련결되여있는 지하조직망을 들추어 낼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그 지하조직망을 들추어내면 지금 온 조선땅을 반일항쟁의 화약고로 만들고있는 혁명군사령부에까지도 손을 뻗칠수 있을것이다.

그는 서둘러 이곳으로 내려왔다. 서두수에 이르러 차에서 나오던 그는 세찬 바람에 모자를 날려버릴번 했다.

《무슨 바람이 이리 센가?》

현지경찰관들은 날려갈번 했던 모자에 대고 차렷자세를 취했고 경찰우두머리는 센 바람이 제탓인듯 목이 꺾어지게 머리를 깊이 숙였다.

《각하, 죄송합니다. 원래 이곳은 대륙성기후로 바람이… 서두수바람에 소대가리 터진다고 합니다.》

《소대가리 터진다?》

그는 눈살을 찌프렸으나 곧 입가에 랭랭한 미소를 지었다.

《두고보자. 서두수바람이 센가, 다까하시 바람이 센가.》

그만큼 그는 자신만만했다. 이 다까하시는 확실히 할수 있는 일에만 손을 댄다!

며칠동안 그는 분주히 《일하여》공사장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면밀히 쳐놓았다.

지금 그는 현지경찰들에게서 그 결과를 타진해보고있었다.

《인부들의 동향은 어떤가?》

《매우 불안해하고있습니다.》

다까하시는 얼굴을 찌프렸다.

《구체적으로 말하라!》

《그자들이 공사를 중지하게 되였다는것과 자기들을 여러 공사장으로 흩어져보낸다는걸 거의다 알고 있는것 같습니다. 공사장분위기가 매우 뒤숭숭합니다.》

《알고있다?》

경찰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비밀이 샌것으로 정수리에 떨어질 벼락을 예감했다.

다까하시는 아무런 표정변화도 없이 차잔을 다시 들어 입에 가져갔을뿐이였다. 비밀루설은 그의 밀정들이 한 일이였던것이다.

《그래서?》

《하잇!》

경찰우두머리는 몸을 전주대처럼 펴며 《황국신민서사》라도 외우듯이 냅다 엮어댔다.

《어데로 가는지 알아내려고 기웃거리는 놈도 있고 미리 도망치는 놈도 있고 가지 않으려고 벌써부터 꾀를 부리는 놈도 있고… 그래서 기웃거리는 놈은 비밀내탐죄로 잡아들여 버릇을 가르치고 도망치려는 놈은 류치장에 쓸어넣고, 가지 않으려고 하는 놈들은 몽땅 첫탕에 몰아보내려고 만전을 기하고있습니다!》

《바보!》

차잔이 탁 소리나게 책상에 내려놓이며 차물이 넘쳐흘렀다.

《바보들!》

바보들이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통》우에서도 둥글모자를 쓰고 호통쳐대는것이 아니겠는가.

하기는 지금같은 시국에는 이런 바보들이 더 쓸모가 있다. 《대일본제국》을 위해 《옥쇄》도 할수 있을것이고 《야스구니진쟈》에 몇개의 위패를 더 보태게 해줄것이다.

그는 언성을 낮추었다.

《이 수전공사의 중지는 제국으로서는 긴급해지는 전쟁정황으로 하여 더 중요한 대상을 빨리 끝내기 위한것이다. 여기의 인력은 중요기지건설에 투입될것이며 설비들은 대포와 군함으로 되여 전쟁판으로 갈것이다. 이것은 제국으로서는 커다란 리익이다.

또한 〈치안유지〉를 놓고보아도 수천명의 〈불온화〉된 인부들을 열곳, 스무곳으로 헤쳐놓으면 이 북선지역의 가장 위험한 〈시한탄〉이 제거되는것이며 따라서 그속에 박혀있던 지하조직도 사분오렬될것이니 일석이조, 하나의 돌멩이로 두마리의 새를 잡는셈이다.

그러나…》

그는 손가락을 세워서 쳐들었다.

《우리는 하나의 돌멩이로 새를 세마리, 네마리, 더 많이 잡아야 한다. 다다익선! 많을수록 좋은것이다!》

앞에 서있는자들은 그의 세워든 손가락끝에서 세마리, 네마리의 새를 찾아내기라도 하려는듯 반들거리는 손톱에 부릅뜬 눈길을 모았다.

《일은 이제부터다. 똑똑히 들어두라, 떠나지 않겠다고, 여기에 떨어지겠다고 하는자들은 모두 떨구어주라. 열놈도 좋고 백놈도 좋다. 이렇게 저렇게 떨어지려고 꾀하는자들은 모두 떨구어주라는거다. 그런 다음…》

다까하시는 손가락을 내리웠다. 모두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에서부터 얄팍한 입술에로 옮겨갔다.

어리뻥뻥해하는 표정들이 다까하시의 기분을 더 흐뭇하게 했다.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랴.

《그런 다음!》

그는 다시한번 곱씹었다.

《떨어진 놈들을 한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잡아들여야 한다!》

《…》

멍청하던 얼굴들이 잡아들인다는 소리에 다소 활기를 띠였다.

《그자들은 다는 몰라도 5할, 6할은 지하조직성원들일것이다.》

《?》

《왜서인가? 지하조직이란 만들어내기가 매우 어려운것이다. 생사를 내걸고 하는 일이다. 그런만큼 그들은 꾸려놓은 지하조직을 목숨으로 지키려고 한다. 어떻게 하든 여기에 떨어져 지하조직을 보존하려고 할것이다. 때문에…》

그는 다시 손가락을 쳐들었다. 잘 다듬은 손톱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떨어지려는자들은 거의 모두가 지하조직성원들일것이다. 처자도 없는 이 심산속에 그것이 아니면 무엇때문에 떨어지려 하겠는가. 저절로 그물안으로 날아들어오는 새를 잡자는거다. 그물아구리를 제때에 홀쳐매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이 일대의 지하조직망을 일망타진할뿐 아니라 그것을 조종하는 혁명군사령부에까지 그물을 펼칠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군들과 함께 단행하려는 〈서두수사건〉이다. 알겠는가?》

《하!―》

다까하시는 이 수전공사의 중지가 《대일본제국》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임을 알고있었다. 전쟁의 결말은 이미 지어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가미가제》가 아니라 《가미가제 오지이상(가미가제할아버지)》이 불어온다고 해도 변화시킬수 없을것이다. 전쟁은 《대일본제국》의 일이고 그는 이곳의 지하조직망, 나아가서는 혁명군사령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그러면 《대일본제국》이 망한다 해도 그에게는 살길이 열릴것이다.

그는 이번 싸움에서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이번의 《작전》에는 적수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 그 어떤 인위적이거나 교활한 속임수가 없다.

대세의 흐름을 방치해두고 관망하다가 때가 되면 덮치는것일뿐이다.

다소간 경계심을 갖는다 해도 지하조직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다. 지하조직이란 목숨으로 지켜야 하는것이다! 다까하시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들의 기질을 알고있었다. 체포되여 조직을 지키려고 죽음도 불사한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무의식중에라도 조직의 비밀을 루설할가봐 스스로 혀를 물어서 끊어버린 혁명군공작원에 대한 보고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이곳의 지하조직성원들도 조직을 지키기 위해 할수 있는바를 다할것이다.

할수 있는바란 조직성원들을 한명이라도 더 떠나지 않게 하는것밖에는 없다.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간다면 그것은 조직이 없어지는것이기때문이다.

지하조직을 지키라, 한명이라도 잃지 말고 튼튼히 지켜내라 하고 다까하시는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너희들을 통채로 잡아들일것이다.

다까하시는 그렇게 되리라는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3

 

영록은 주먹을 부르쥐고 걸었다. 사람들의 눈길만 아니라면 그는 륙상주로에라도 나선듯 달렸을것이다.

길 량옆에 자름자름 박혀있는 술집들에서는 취한 노래소리와 고함소리들이 울려나오고 가게방앞에서는 무엇때문엔지 싸우는 소리로 소란하다.

여기저기에서 찾는 《사이상, 사이상.》하는 소리가 걸음을 더 빨리 할수 없게 한다. 앞에서는 다 굽신굽신하지만 그중의 어느 놈이 밀정인지 어찌 알랴. 저것들이 일시에 눈이라도 콱 멀어져버렸으면!…

적들의 음흉한 기도를 한시라도 더 빨리 알려야 했다. 지금쯤은 혁명군공작원이 모임장소에 와있을것이다. 모임은 시작되였을것이고… 더 빨리, 한시라도 더 빨리 적들의 음모에 대하여 알려야 했다.

영록은 방금전에야 다까하시란 놈의 속심에 대하여 똑똑히 알게 되였다.

《사이상, 가지 않고 여기에 떨어지겠다고 하진 않았소?》

영록에게 끌려 술집에 들어가앉은 경찰관 요시다는 술냄새에 닭알침을 삼키고나서 그 말부터 물었다.

영록은 눈을 껌벅껌벅대며 어리뚱한 대답을 했다.

이런 때에는 좀 얼간이 시늉을 하는것이 좋다.

《글쎄 어떻게 할지 아직은…》

《절대 떨어지겠다고 하지 마오. 그랬다간 갈데 없는 깜장콩알감이요.》

하는 말에 영록은 픽― 웃었으나 부지중 긴장했다.

《가지 않겠다 한다고 깜장콩알을 먹인단 말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꾸마.》

《안되겠어. 사이상은 말귀가 어두워.》

요시다는 술을 무척 좋아했는데 공짜술이라면 끝없이 마시는 특질을 가진자였다.

영록은 그자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달갑지 않은 십장을 하면서 인부들보다 몇배로 두둑이 받는 돈은 거의다 요시다의 술값으로 들어가다싶이 했다.

그대신 그자의 입에서는 술이 들어간만큼 많은 말이 쏟아져나오군 했다. 할말이 없으면 전에 했던 말이라도 곱씹어대여 흥을 돋구었다.

그자의 그런 술버릇이 영록은 여간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자의 또 하나 좋은 점은 술취하여 지껄인 소리를 술이 깨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말짱 다 잊어버리는것이였다. 그것은 영록의 마음에 더 쑥― 드는 《장점》이였다.

이날도 같았다. 요시다는 술이 들어감에 따라 다까하시에게서 들은 말을 곧이곧대로 쏟아놓았다. 차 마시는 모양이며 표정의 변화까지 그대로 흉내냈다. 영록은 마치 그 자리에 참석했던듯이 내용을 말짱 알게 되였다.

영록은 가까스로 자신을 억제하며 걸어가고있었다.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빨리!…

마침내 소란스러운 골목을 빠져나왔다. 자기를 따르는 시선이 없음을 확인하자 그의 걸음은 달리듯이 빨라졌다. 빨리, 빨리!

산골짜기 길에 접어들자 저절로 걸음이 느려졌다.

적들의 음모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것이 조직을 지켜낼 방도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있는지를 알려줄수만 있을뿐이다. 암담한 분위기를 더 무겁게 할뿐일것이다.

얼마나 교활하고 악착한 왜놈들인가. 그자들은 영록이네가 조직을 내버리고 도망치던가 아니면 제놈들의 함정으로 빠져들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아넣은것이였다. 다른 길이란 있을수 없었다.

참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사태였다. 혁명군공작원의 지도를 받으며 꾸려진 조직이였고 투쟁속에서 매 성원들이 조직의 튼튼한 주추돌로 단련된 조직이였다. 파업과 태업, 밀정들과의 투쟁, 전민항쟁을 위한 로동자돌격대의 무장준비… 투쟁속에서 누구나 자기 몫을 두배, 세배하는 조직성원들로 자라났다. 또 그들의 움직임대로 숨쉬고 행동하는 수천명의 군중들… 영록은 온 수전공사장이 하나의 무장부대로 되여 일제를 때려부실 시각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고있었다. 사는맛이 있었다. 잠들었을 때도 피가 펄펄 끓는 나날이였다.

그 통쾌한 시각을 앞두고 조직이 뚫고나갈수 없는 난국에 부닥친것이였다.

이런 때 영록은 사령부에서 공작원이 왔다는 소식을 받았다.

아, 김일성장군님께서 이 사태를 헤아리시고 공작원을 보내주시였구나. 영록은 환성을 올렸었다.

그러나 다까하시라는 놈의 악랄한 시도를 알게 된 지금은 가슴이 꽉 막히는듯 했다. 공작원인들 어떻게 할수 있겠는가. 방도란 적들의 수전공사중지를 그만 두게 하는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조직을 지키려고 하는것은 조직성원들모두가 체포망에 스스로 뛰여드는것과 다름없다.

영록은 그런 혼란한 생각속에서도 뒤를 면밀히 살피며 모임장소로 가는 길을 멀리 에돌았다.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면서 이제는 체질로 되여버린 습관이였다. 더우기 지금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공작원이 와계신다. 그분의 신상에 추호의 위험도 없게 해야 한다.

공작원은 어떤 사람일가. 영록은 두해전에 만났던 녀성공작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보통농촌녀인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수수한 옷차림, 흰 광목수건을 쓴 뒤모습을 보면 완전한 보통 녀인이였다.

그러나 마주서면 류달리 영채가 도는 안광에 눈이 부시는듯 했다. 어떤 정황이든 순식간에 포착하고 순식간에 판단하고 결심을 주저하지 않던 녀성공작원.

아, 그분을 다시 만나뵐수 있다면! 그분은 이곳의 지하조직이 어떻게 무어졌고 성장하여왔는가를 낱낱이 알고계신다. 이 영록이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그분으로 하여 절망과 환멸, 타락의 심연에서 헤매던 그는 오늘의 영록이로 재생할수 있었다.

아, 이런 때 그분을 다시 만나뵐수 있었으면!…

 

4

 

얼핏 보기에는 사냥군들이나 심메군들이 하루밤씩 고달픈 다리를 쉬여가려고 대충 만들어놓은 초막같기도 한 집이였다. 안침진곳에 자리잡고있어 몇걸음만 떨어지면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으면서도 시계와 사계가 좋았다.

림시비밀근거지로는 위치가 아주 좋았다.

사방을 개처럼 싸다니는 밀정놈들도 여기에는 코를 들이밀어본적이 없다는 책임자의 말이 우연치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가운 인사가 끝나자 무거운 침묵에 잠겨버린 지회핵심성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그들은 당황해있었고 혼란에 빠져있었다.

지회책임자의 정황보고는 이미 들었던것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그저 좀 구체적인것으로 인부들을 강계지구로도 보내고 서해안과 남부지방의 비행장, 해군기지건설장들에로 보내려고 하는것 같다는 소식이 더 있을뿐이였다. 그는 《애써 키워온 조직성원들과 투쟁속에서 단련된 로동자들이 흩어져가게 되였으니 우리로서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하는 말로 정황보고를 끝냈다.

모두 침울한 기색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의 심정을 리해하시였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치지 않고는 방도토론에서 성과를 기대할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밝은 음성으로 그러나 저력있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지금 조성된 사태와 관련하여 당황하여 맥을 놓고있는데 당황해할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합니다.》

《?!》

놀라움에 찬 눈길들이 일시에 쳐들렸다.

《수전공사의 중지는 일본제국주의의 또 한차례패배이며 우리의 빛나는 승리입니다. 동무들은 정말 잘 싸웠습니다.

동무들이 무엇때문에 싸웠습니까? 왜놈들의 이 수전공사를 지연시키고 파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였습니까.

오늘 동무들의 투쟁으로 적들은 수전공사를 포기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앞으로도 더는 계속하지 못할것입니다.

동무들은 마땅히 이 승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공작원동지!》

조직성원들은 서로 마주보았다. 이것이 정말 우리의 승리란 말인가. 그들이 당황해하고 락심도 하고 절망도 하며 몸부림친 이 사태가 우리의 빛나는 승리였단 말인가.…

그때 망원초에서 신호가 왔다.

《아마 영록이가 왔을겁니다.》

《영록동무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가움으로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어서 데리고 오세요. 몹시 보고싶었는데…》

잠시후 모임장에 나타난 영록은 자기 눈이 믿어지지 않는듯 못박힌듯 서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영록동무, 오래간만이예요.》하셨을 때에야 그는 한달음에 달려와 그이께 인사를 드리며 목메여 부르짖었다.

《공작원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보시였다. 가슴이 아프시였다. 얼마나 속을 태웠으면 이 강의한 사나이 눈에 물기가 어렸을것인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건강하십니까?》

《예, 건강하십니다. 저는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렇습니까!》

지회책임자가 눈짓을 하자 영록은 덤벼치며 입을 열었다.

《공작원동지, 저― 다까하시란 놈이…》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다까하시는 다까하시고 2년만에 만난 혁명동지들이 그놈때문에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서야 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서 빨리 적들의 음모에 대하여 말하려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시였다. 조직성원들모두의 심정도 같을것이다. 그이께서도 그것은 한시바삐 아셔야 할 문제였다.

그이께서는 그의 건강에 대해 알아보시였고 평안도 룡강이라는 그의 고향소식도 물으시였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항상 공작나갔다 돌아오는 대원들을 맞이하면 건강에 대해서부터 물으시였고 밀영에 찾아오는 지하공작원들에게는 건강과 집안식구들에 대해서부터 물으시였었다.

영록의 고향소식까지 들으신다음에야 김정숙동지께서 《이제는 우리 영록동무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그놈의 이름이 다까하시라고 했지요?》하고 말씀하시자 모두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피여올랐다.

영록의 이야기를 듣자 그들의 얼굴색은 다시 컴컴해졌다. 다까하시라는 놈이 그처럼 악랄한 음모를 꾸미리라고는 생각 못했던것이다. 약속이라도 한듯 일시에 김정숙동지를 바라보는 눈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는 한결같은 물음을 담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시종 침착한 표정으로 앉아계셨으나 생각은 열스무갈래로 서로 엉키고 부딪치며 줄달음치고있었다. 될수록 많은 조직성원들과 혁명화된 로동자들을 이 지구에서 떠나지 않게 하려는 조직의 조치는 적들의 함정에 스스로 뛰여드는것과 다름없다. 사방으로 헤쳐져 가는것은 조직도 혁명군중도 다 잃는것으로 된다.

명백한것은 적들의 기도를 파탄시켜야 한다는것이였다. 무조건 파탄시켜야 한다. 이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단 한명도 잃거나 적들의 마수에 걸리게 해서는 안된다.

문득 고난의 행군때 검질기게 따라오는 왜놈 《토벌》대를 두고 장군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르시였다. 우리는 이 겨울동안 왜놈들을 눈속으로 끌고다니며 실컷 맥을 뽑아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적들의 추격에서 빠져나가려고 할것이 아니라 적들을 눈속으로 끌고다녀야 합니다, 적들이 눈속에서 맥빠져 주저앉아버리면 우리는 나팔소리를 높이 울리며 조국으로 진군합시다 하시며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우리 혁명군을 얼쿼죽이고 굶겨죽이려 하지만 골탕먹을것은 왜놈들이며 100년래의 강설과 추위가 우리를 도울것이라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 웃음소리에 나무우에서 흩어져내리는 눈송이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던가.…

적들에게서 빠져나가려 할것이 아니라 적들을 끌고다녀야 한다, 끌고다녀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확 열리는듯 하셨다. 장군님께서는 오늘의 이 정황을 그때 벌써 예견하고계신것이 아니였을가. 장군님의 가르치심이 있는 한 이 세상에 극복 못할 난국이란 없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밝은 눈길로 지하조직성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거듭 말하지만 수전공사의 중지는 동무들의 완강하고 대담한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빛나는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 승리를 다음의 더 큰 승리로 이어나가야 합니다. 물론 적들도 이 패배앞에서 그저 물러서지만은 않을것입니다. 적들은 이 기회에 단련된 혁명군중을 무력화시키고 우리 조직이 저절로 사분오렬되게 하려는 목적도 추구하고있습니다.

다까하시라는 놈은 이 기회에 우리 지하조직을 들추어내려고 틀고앉아 기회만 노리고있습니다.

동무들이 이곳을 뜨지 않는것으로 조직을 지켜내려는것은 적들의 공격에 대한 피동적인 방어이며 적들에게 우리의 조직을 로출시키는것으로 될것입니다.》

《…》

머리우의 물황철나무에서 돌연 새소리가 울렸다.

하도 잔잔하고 침착한 음성이시여서 새도 안정을 느낀듯 했다.

혼성림의 설레임소리만이 솨― 솨― 하고 강물소리처럼 들려왔다.

《조직을 지키려는 동무들의 그 마음은 귀중한것입니다. 우리가 조직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 하고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치는것은 무엇때문입니까? 단순히 조직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확대하고 또 확대하여 온 나라에 퍼져나가게 하며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직을 무력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일망타진하려는 적들의 기도를 방어가 아니라 공격으로 좌절시키고 파탄시켜야 합니다.》

《!》

서로 마주보는 눈길들에서 섬광과도 같은것이 번쩍거렸다.

(공격으로! 좌절!… 파탄!)

얼마나 그들이 갈망하고 듣고싶어했던 말인가.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일제의 패망이 눈앞에 있고 조국해방의 날이 가까와오는 지금 우리의 임무는 전민항쟁조직을 온 나라 방방곡곡으로 확대해나가는것이라고 하시였습니다. 조국해방의 시각이 오면 온 나라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시에 전민항쟁의 불길이 타올라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산산이 태워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온 나라에 확대해나가야 할 전민항쟁조직의 조직자들은 누구겠습니까?》

김정숙동지의 빛나는 안광이 한사람한사람을 눈여겨보았다. 그이의 시선과 부딪칠 때면 누구나 가슴을 쭉 펴며 어깨를 솟구친다.

《지금 온 나라 방방곡곡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지하공작원들이 나가있고 조직들이 있습니다. 동무들도 바로 그 조직자들이 되여야 합니다. 동무들은 투쟁을 통하여 단련되였고 이번의 이 승리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조선인민혁명군 지하조직성원들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게 성장하였습니다. 2인조, 3인조 혹시는 혼자서 갈수도 있습니다. 동무들은 어데가나 조직을 찾고 조직이 없으면 조직을 무어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전민항쟁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하여야 합니다. 동무들은 그렇게 혁명의 불씨들로 되여야 합니다. 불꽃으로 되여야 합니다.》

나무우에서 챙챙한 새소리가 다시 울려나왔다. 그놈은 갑자기 뿜어오르는 뜨거운 열기에 놀랜듯 하늘중천으로 날아올랐다. 챙챙한 새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며 울렸다.

영록의 가슴속에서는 우뢰와 같은 시구절이 울리고있었다. 《수천수만의 불꽃에서 불길은 타오르리라, 삼천리 온 강토에!》 얼마나 장쾌한가.

이것은 한 도시가 아니라 《대일본제국》을 통채로 묻어버릴 백두화산의 분출이다!

《적들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주동적위치에서 공격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항일혁명투쟁의 첫날부터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것입니다. 우리는 적들이 만들어놓은 함정을 그들자신의 함정으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동무들이 이제 어디에 가건 그곳 조직을 찾거나 새로 조직을 꾸린다면 우리는 일시에 수십수백의 새로운 항쟁조직을 더 가지게 될것이고 전민항쟁의 불길은 더 세차질것입니다. 적들은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전구에로 우리를 보내주게 될것입니다.》

《아!》

그것은 누구의 입에서나 저도 모르게 터쳐나온 탄성이였다. 얼마나 통쾌한가. 이것이야말로 잔꾀를 꾸미고있는 왜놈들에 대한 《통장훈》이다!

《동무들은 이제 2인조, 3인조를 구성하고 자기들의 작업장 조직성원들과 핵심군중들에게 이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데 가나 어디에 있건 항쟁조직을 꾸리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리시는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명령을 대기하라고 말입니다.》

《공작원동지!》

영록은 녀성공작원을 우러러보았다. 빠져나갈 길이 없어보이던 함정이라고밖에 할수 없는 사태를 순간에 더 큰 승리를 위한 출발선으로 되게 하신 녀성공작원, 저분은 누구실가. 저분이 혹시 전설처럼 알려져있는,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있다는 백두의 녀장군이 아니실가. 총을 쏘면 한총알에 왜놈을 열놈, 스무놈씩 쓰러뜨리고 적들의 그 어떤 모략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동무들, 조국해방의 날이 다가오고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사는, 동무들의 인사는 〈조국해방의 날에 다시 만납시다!〉로 되여야 합니다.… 동무들, 조국해방의 날에 다시 만납시다!》

숲의 설레임소리가 대하의 흐름소리처럼 솨― 하고 장엄하게 울려왔다.…

 

×

 

《대붕이 나는 뜻을 참새가 어찌 알랴.》하고 중얼대며 다까하시는 사무소울바자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떼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인부들이란 개미떼와 같은것들이지.

개미떼는 부산스레 제 구멍으로 드나들며 흙알갱이를 물어내다 구멍앞에 《뚝》을 쌓고있다. 큰비가 올것을 예감한 모양이다. 큰비예보를 받은 사무소에서는 인부들을 끌어다 울바자옆의 배수로를 다시 파게 하고있다. 사람은 사람대로, 개미는 개미대로 폭우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있다. 세상리치란 령물이나 미물이나 별로 다를바 없는것 같다.

배수로를 파는 인부들의 커다란 삽이 땅을 푹푹 파나오는데 개미떼는 제나름의 《뚝》을 쌓기에만 분주해있다. 이것들은 이제 자기들의 굴이나 《뚝》이나 삽날에 통채로 뒤집혀질줄은 상상도 예감도 못하고있다. 이것들로서는 불가항력이며 불가사의이다. 그것이 개미들의 운명이다. 그리고 이제 어데로 끌려갈지도,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웅성웅성대는 인부들의 운명이다.

아무리 총명한 개미라고 해도 삽날에 대해서는 예견할수도 리해할수도 없는것이다.

《각하!》

현지경찰 우두머리가 뒤에 와 서있었다.

《절반은 몰아갔고 나머지 절반도 닷새후면 다 몰아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행방없이 도망쳐버린자들이 오백명을 넘습니다.》

《…》

다까하시는 그냥 개미떼만 내려다보았다. 도망친 인부들은 그에게 아무 흥미도 없었다. 도망치라지.

천명, 이천명이라도! 무리를 떠난자들은 설사 몇만이라도 오합지중일뿐이다.

《실어갈 때까지 기계설비를 지킬 인부들을 2~3백명정도 떼놓았습니다.》

《그런데?》

다까하시는 경찰대장에게로 눈길을 획 돌렸다. 이 바보가 언제까지 군소리를 주절대려는가. 이 다까하시를 로무계장으로 아는게 아닌가.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경찰대장은 꼿꼿해졌다.

《하이! 이런 저런 핑게를 대여 떨어진자들은…》

흥, 완전한 알바보는 아니였군.

《몇명이나 되는가?》

《서른명, 거의… 스물다섯명가량 됩니다.》

《스물다섯?》

적다. 너무 적다. 쉰이나 백쯤은 끌고갈것으로 예견했는데… 강한 조직망은 정예분자들로 이루어지는것이다. 이 스물다섯명이야말로 서두수수전공사장이라는 《시한탄》의 《신관》일수 있다.

《그래, 그자들을 어떻게 했는가?》

《한놈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잡아넣었습니다. 절대로 떠날수 없다고 뒤공작을 벌리고… 실로 진드기같은 놈들입니다.》

《좋다!》

마침내 다까하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잡아들이는데서야 대일본제국경찰이 으뜸이지!

《어떤 놈들인지 보자!》

경찰제복의 깊은 안주머니에서 나온 착착 접은 종이장이 정중히 펴져서 그의 앞으로 내밀어졌다. 보통종이장이지만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류달리 좋다. 지하조직을 홀친 그물망태기와 같은것이니 말이다.

종이장을 들여다본 그의 눈길은 얼어버린듯 멍―해졌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종이장은 그의 손안에서 마치 사시나무잎처럼 파르르 떨리다가 땅에 떨어졌다.

《각하!》

경악실색한 경찰대장의 부름도 그는 듣지 못했다. 그 체포한자들이란 거의다 그가 이곳에 박아넣은 밀정들이였다. 잡으려던 물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품들여 뿌린 미끼만 건진셈이였다. 어찌하여 일이 이렇게 되고만것일가.…

그는 부지중 하늘을 쳐다보았다. 자기의 《비상한》계획을 제잡이로 만들어버린 무서울 정도의 비범한 초인간적인 두뇌가 자기의 일거일동을 고소속에 내려다보고있는듯 한 느낌에서였다. 눈부신 해빛에 안경알이 일순간 새까매진다. 황급히 눈길을 땅으로 내렸다. 《어델 감히?!》하는 우뢰같은 소리가 울린듯 했다.

땅바닥에 떨어진 종이장우로 기여가는 개미가 보였다. 개미둥지를 통채로 푹 떠올리는 인부의 커다란 삽날이 보였다. 개미들은 삽에 담긴 흙우에서도 여전히 흙알갱이를 문채 어데론가 기여가고있었다.

문득 인부들이 아니라 자기가 그 개미와 같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개미에게서 커다란 삽날은 불가사의의것이며 불가항력의것이다. 인간의 현명함은 불가항력의 힘앞에서 빨리 도망치는데 있다!…

다까하시는 지체없이 그날 저녁차로 떠났다.

《각하, 그 잡아넣은자들은 어떻게 할가요?》하는 경찰대장의 물음에 그는 내뱉듯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라, 죽이든 살리든!》

아무리 값진것이라도 한번 쓴 미끼는 다시 쓸모가 없는 법이다.

그날 저녁에도 바람은 세찼다. 미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덕에 날려버릴번 하지는 않았으나 처음 왔을 때의 《두고보자, 서두수바람이 센가, 다까하시바람이 센가!》하였던 호언장담이 돌이켜지며 일본인들이 바라고있는 《가미가제》(귀신바람)라는 말이 련상되여 떠올랐다. 《가미가제》인간이란 절망에 빠지고 자기 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신을 찾는 법이다. 그러자 하나의 발견이 그의 《총명》한 머리속으로 줄달음쳤다. 아마데라스오미까미 (천조대신)앞에 두손을 모아잡고 《가미가제》를 바라는 일본이라는 제국은 원래 절망우에 세워진 나라인것이 아닌가.…

 

5

 

《영록동무 , 무슨 생각을 합니까?》하는 김정숙동지의 물으심에 영록이 머뭇거렸다.

《저―》

그는 며칠후에 서해안 군사기지건설에 끌려가는 인부들속에 끼여 남포지구로 가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고향이 룡강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가 그 지구로 가도록 조직사업을 하게 하시였었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기다리겠어요? 아이들은 또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왜놈들때문에 집을 떠난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이번엔 꼭 부모님들을 찾아뵈오세요. 아이들과 안해도 만나보고… 그들을 가장 믿음직한 혁명동지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부모님들과 처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그이의 눈에 짙게 어린 류다른 빛이 얼마나 강렬한 아픔과 따뜻한 그리움이였는지 영록은 물론 알수 없었다. 다만 그이의 류다른 눈빛에 까닭모를 가슴아픔을 느꼈을뿐이였다. 조국이 해방되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그때 그이께서 얼마나 큰 아픔과 그리움을 안고계시였는지를 그는 알게 될것이였다.

그것은 아직 먼 후날의 일이였고 이때 그는 대답을 찾기에 바빠있었다.

《…다까하시라는 놈이 도망치듯 떠나가던 몰골을 생각했습니다.》

그 몰골을 영록은 요시다에게서 들었었다.

서두수바람이 센가, 다까하시바람이 센가, 소대가리 터진다는 서두수바람이 이번에는 다까하시의 골통을 터뜨려놓은것이다. 그것은 그놈이 서두수바람이란 곧 백두산바람임을 깨닫지 못한때문이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영록동문 솔직하지 못하구만요. 뭔가 묻고싶은것이 있지요?》

영록의 얼굴이 붉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제 새로운 곳에 가서 제대로 일할수 있겠는지… 걱정됩니다. 공작원동진 어떻게 이번과 같은 어려운 난국에서 순식간에 방도를 찾을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환하게 웃으시였다.

《아까부터 꿍져가지고있는게 무얼가 했는데 그것이였군요. 이렇게 서로 먼길을 앞두고 물으니 그 〈비결〉을 대드려야지요.》

《예? 정말입니까?》

서두수와 연면수의 물소리가 메아리쳐 울리는 등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거무스름한 강철빛으로 번쩍이며 급류하는 강물을 이윽히 내려다보시였다.

《그 〈비결〉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어떤 난관에 부딪치거나 역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말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부터 생각하고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만 하는것입니다.》

《!》

그이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사이 분초를 아껴가며 위대한 장군님의 국사봉회의에서 하신 말씀사상과 령활한 전법에 대하여 지하조직성원들에게 깊이 심어주신 김정숙동지이시였다.

대기중에는 거세찬 물소리와 바람소리, 이깔과 분비, 물황철나무와 떡갈나무, 혼성림의 설레임소리가 가득 서려있었다. 하여 온 등판이 거세찬 흐름에 실려 앞으로 힘차게 떠가는듯이 느껴졌다. 송진냄새와 해묵은 락엽의 떫은 냄새, 참나물의 류다른 향기가 짙게 풍겨왔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그대로 한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일에 부딪치건 항상 승리한다는것은 우리가 항일투쟁의 긴 나날에 찾은 진리입니다.》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히시였다. 그리고 소복이 자라난 참나물을 조심히 어루만지시였다.

야들야들한 참나물에서는 참나물김치의 류다른 향기가 가슴사무치게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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