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위훈담

                                                 

요즘 ㅂ화력발전소에서 증기타빈운전공 강철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땅크병출신 제대군인이라고 해서도 아니요, 잘 생기고 겸손한 총각이라는 처녀들의 류별난 호기심에서도 아니다. 위대한 변혁의 해로 부각될 올해에 온 나라 모든 화력발전소들이 참가하는 겨울철 전력생산경쟁에서 올린 그의 생산실적이 모두를 매혹시킨것이다.

한다하는 상대들을 뒤에 떨구고 경쟁도표판의 붉은 줄이 하늘을 꿰지를듯 치달아올라간 강철성의 생산기록앞에서 누구라없이 그의 이름을 외워보며 첫째가는 우승자로 떠올리고있다.

여기에 또 다른 행운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 행운을 맞게 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낮교대에 나온 강철성이 타빈을 넘겨받고 수많은 계기들로 벽을 이룬 계기판앞의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는참에 소식을 듣게 되였다.

《…아버지의 부탁이니 래일 저녁 우리 집에 꼭 들려요.》

순화는 기쁨이 남실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나서 수집은지 수태를 머금었다.

환한 하늘빛반외투에 연미색목도리를 둘렀는데 첫눈에도 알뜰하고 총명해보이는 처녀다. 보아하니 출근하자 이리로 곧추 온것 같았다. 경제분석실에서 분석원으로 일하고있는 순화는 대형기관차의 몸뚱아리를 방불케 하는 타빈들이 주런이 들어앉은 이곳 타빈기계실현장에 드물게 나타나 필요한 자료들을 적어가지고 돌아가서는 콤퓨터건반을 잽싸게 두드려 발전소의 생산실태를 뽑아내여 우에 올려보낸다.

철성은 오래전부터 순화를 알아도 잘 알았다. 그러나 화력발전소에 입직하는 제대군인환영모임에서 자기에게 선참 달려와 꽃묶음을 안겨주는 순화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부흥중학교 수학소조원 순화, 순화예요!》

처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이 소리쳤어야 철성은 정신이 펀뜩 들어 몰라보게 성숙한 순화를 알아보았다.

중학시절 학교수학소조에 다닐 때 자주 학습방조를 주군 했던 아래학년 소조원인 귀염성스러운 소녀의 얼굴이 화보장처럼 눈앞에 찍혀졌던것이다.

《아하, 순화!》

철성은 하도 반가운김에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질러 숱한 사람들을 웃겼었다. 언제인가 강철성이 순화에게 가파로운 산고지로 땅크를 들이몰아 훈련에 진입한 사단의 전투작전에 혁혁한 위훈을 세운 자기의 병사시절 위훈담을 들려준적이 있었는데 처녀는 두손을 가슴우에 모두어잡고 듣다가 《야!―》환성을 올렸다.

병사들에게만 차례지는 최고표창인 전사영예훈장 제1급을 이때 수여받았다는 말로 끝을 맺자 손벽까지 쳐주었었다.

그때부터인지 새별같은 눈으로 철성을 쳐다보며 별스럽게 따른다. 철성이도 순화를 그저 다정다감한 처녀로만 보지 않았으니 그들의 애틋한 정은 나날이 움터올라 꽃망울을 터치게 되였다.

그런데 순화의 아버지가 이들사이를 알고 눈을 부라리는통에 그만 가물탄 꽃송이처럼 되고말았다.

《내 알지도 보지도 못한 청년이지만 처녀들앞에 제 자랑이나 하며 으시대는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요란한 겉모양에 반해 맺어진 인연은 앞으로도 행복할수 없구 쉽사리 금이 가기마련이야.》

두부모 베듯 잘라버리는 아버지의 태도는 엄엄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 약비가 내려 생기를 되찾게 되였다. 순화의 아버지가 철성을 만나보고싶다는 소식을 보내온것이다. 순화의 끈질긴 《함화공작》이 드디여 은을 낸것 같았다. 사연은 의외에도 랭대했던 위훈담을 상세하게 들려달라는 요청이다. 허나 뒤에 숨은 진의도를 누가 모르랴. 의도가 어떻든 비탈각이 기준치가 넘는 천연요새를 성난 사자마냥 무한궤도로 깔아뭉개며 타고넘은 이야기를 들으면 순화의 아버지도 기필코 눈이 휘둥그래질것이고 어떤 청년이 앞에 서있는가를 통절히 깨닫게 될것이다. 그러니 순화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도 싫든좋든 위훈담을 다시 해서 늙은이의 너럭바위같은 마음을 량껏 흔들어놓아야 한다!

철성은 눌러썼던 하얀 수지안전모채양을 밀어올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대범하게 일어서고보니 희떱게 여겨져 귀밑을 붉히며 뒤목을 어루쓸었다. 사위감을 크고 단 참외 고르듯 물색하는 그 욕심을 채워주기에는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하찮게 보였던것이다.

군인의 패기가 배인 몸가짐이며 어져보이면서도 어딘가 강한 의지가 은근히 느껴지는 철성의 구리빛얼굴에 활기가 사라지고 비구름이 드리우는듯싶었다.

이때 순화가 낮으나 힘이 되는 소리를 해주었다.

《전국적인 전력생산경쟁에서 1등을 하게 되였다는 이야기도 해드리면 아버지는 깊이 생각하실거예요.》

《!…》

속에서 징이 울고 북이 울었다.

철성은 흥떠오르는 마음을 애써 눅잦히며 처녀를 마주보았다.

《그러니 위훈담을 련속편으로 끌고간다.… 챠, 이거 아직 1등을 할지 못할지 알지도 못하는데 또 허풍이 많다고 나무랄게 아닐가?》

피뜩 위훈담에 단마디로 면박을 가한 순화의 아버지가 떠올라 철성은 눈살을 찌프리였다. 실은 그때 한 위훈담은 순화의 지꿏은 간청에 못이겨 몇마디로 굼때버린 설익은것이였다. 위훈담이 유명하나 언제 한번 제입으로 번져본적이 없는 철성이였다.

《허풍이라니요. 우리 분석실에서 실적들을 정확히 내여 우에 올려보냈는데 경쟁조직위원회에서는 철성동지를 높이 평가하고 1등으로 찍어놓고있대요.》

《그게 믿음직한 정보요?》

《네, 아주 딱소리가 나는… 1등이 철성동지를 포함해서 열두명… 아이, 더 캐여묻지 마세요.》

순화는 말꼬리를 사리며 곱게 눈을 할겼다.

철성은 희한한 소식만을 아름지게 안아온 순화의 수완에 탄복하며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내 생산실적에서 부족점은 없었소?》

《다른 실적보다 경제성이 좀 낮은게 흠이라면 흠이예요. 하지만 생산량이 훨씬 앞서는데야 누가 당하겠어요.》

《경제성이라니?》

《그러니까 생산한 전력에 비해 증기를 지내 썼다는… 그래 얼마나 더 썼소? 0.1프로라…》

저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0.1프로라면 많은 증기를 받아 전력을 생산하는 대출력증기타빈에서 적지 않은 량이다. 대충 속구구를 해보아도 생산경쟁기간에 석톤이라는 석탄을 그냥 태워버렸다는 결과가 나온다. 경쟁에서 우승만 바라고 타빈에 만부하를 걸며 내처 달려왔더니 이런 깨끗치 못한 거스름이 묻어다닐줄이야.

《그래요. 아주 작지요 뭐. 이건 경쟁조항에도 없어요. 전기를 꽝꽝 생산해내는 타빈에서 그만한 소비도 없겠어요? 1등은 된것이나 다름없으니 우리 아버지에게 위훈의 그 이야기나 잘하세요, 호호…》

철성의 내심을 모르고 순화는 입을 가리우며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철성도 웃고말았다. 하긴 순화의 말에도 비슷한데가 있다. 점잖게 혁신자가 되여 사랑의 꽃향기속에 묻힌다고 누가 탓하랴.

그러나 석톤이라는 수자가 어지럽게 돌아가며 사라지지 않는다. 이 수자를 책상머리에 앉아 하얀 종이에 옮겨적기는 쉬워도 실물로 쌓아놓으려면 조련치 않은 역사를 치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갈마들자 이런 일을 제때에 귀띔해주지 않은 순화를 탓하기에 먼저 자신이 몹시 미워났다. 전기를 생산한다는게 여기에 눈을 밝히지 못하다니.… 분했다.

제딴에는 누구에게도 짝지지 않게 일한다고 생각해왔다. 타빈을 깨끗이 거두고 실수없이 운전하여온것은 물론 운전을 하다가 설비에서 약간의 증기류실이 생겨도 스스로 스파나를 들고나섰고 지어 전기생산을 일시 멈추어야 없앨수 있다는 불량개소를 생산을 계속하면서 기발한 방법으로 고쳐낸적도 있었다. 그래서 우렁찬 축하의 박수갈채속에 혁신자의 꽃목걸이도 걸었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전력생산실적을 올리는데서 이런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내가 눈이 멀었지.… 석탄 석톤이 어디요.》

철성은 낯빛을 흐리며 높다란 타빈기계실 천정의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박았다.

《네?…》

처져내리는 철성의 기색에 순화는 웃음을 거두고 샘같이 맑은 두눈에 의혹의 그늘을 지었다. 그러다 알만 하다는듯 상긋 웃었다.

《일자리를 크게 내고 번듯하면 공적이고 위훈이예요. 거기에 들어간 비용이나 로력과 시간 등을 시시콜콜이 캐여보며 시비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디서나 전기, 전기 하는 이 추운 겨울에 전기를 많이 낸 사람이 으뜸이고 우승자가 아니예요?》

《…》

철성은 서글픈 웃음을 지을뿐이였다.

순화의 말처럼 위훈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나라의 재부를 어떻게 가꾸고 늘이며 그처럼 바라는 강성대국의 새날을 언제 맞으랴. 이는 하나의 기만이고 위선이다.

이날 떳떳치 못한 생산실적으로 심사가 울적해난 철성은 저녁에 함께 퇴근하자던 순화의 말을 까맣게 잊고 제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 순화는 자기 아버지앞에 내세울 철성을 두고 할 말도 많았을것이다. 허나 철성은 이를 한번도 되새겨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방안에 붙박혀 방책을 찾기 위해 타빈운전교범과 기술도서들을 한장한장 번져가며 온밤 모대기였다.

다음날 철성은 날이 밝자마자 집을 나섰다.

간밤에 눈이 내려 거리는 온통 은빛세계를 이루었다. 변색을 모르는 은빛이여서인지 페부에 스며드는 대기마저 여느때없이 청신하게 느껴진다. 가로수의 우듬지에서 이따금 꽃보라처럼 날아내리는 눈가루를 맞으니 밤새 쌓인 피로가 가셔지고 기분이 날듯이 거뜬해진다.

철성은 눈을 걷어차며 헌걸차게 걸어나갔다.

어제밤에 애쓴 보람이 있어 소득이 괜찮았다.

아리숭한 문제들도 더러 없지 않았지만 새로운 눈으로 파고드니 여느때 흘러보내던 대목이 번쩍 눈에 띄였다.

(타빈에서 보이라에 보내주는 물온도를 높이는게 이처럼 중요한걸 대수롭지 않게 대했구나.)

철성은 손에 쥔 연필로 책장우에 동안이 뜨게 그루를 박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이를 명심하고 타빈운전을 하면 연료소비를 초과하는 페단이 없을것이다. 그러자면 운전공으로서 부단한 숙련이 필요하고 책임성이 높이 안받침되여야 한다!

의욕이 북받치니 그는 한시가 새로와져 이처럼 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사전에 현장설비들을 깐깐히 눈여겨보고 동무들과 의논도 해보자는 심산이였다.

화력발전소정문과 곧바로 잇닿은 신작로에 접어들자 철성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길목을 지키고있던 순화가 그를 불러세운것이다. 그제야 철성은 함께 퇴근 못한 어제일이 피끗 떠올라 몸을 옹송그리였다.

《왜 먼저 갔어요? 난 그런것도 모르고…》

순화의 기상은 가시돋친 장미같았다.

《미안하오.》

당황한 철성은 마음속 고충을 털어놓으며 처음부터 량해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철성의 언변으로 순화의 앵돌아진 속을 돌려세울수 없었다.

《듣기 싫어요. 그렇게 속을 태우는 법이 어디 있어요. 철성동진 일생에서 흔치 않을 기회를 외면하고있어요.》

불미스러운 일을 두고 든장질하니 속이 괴여올라 철성은 잠자코 듣다못해 한마디 내뱉았다.

《난 이번 경쟁에서 1등을 단념한 사람이요.》

결김에 한 소리가 아니였다. 이것은 이미 엊저녁에 단호하게 내린 자신에 대한 선고였다.

순화의 꽃잎같은 입술이 파르르 떨었다.

《굴러오는 복을 차버리겠다는거예요? 공들인 탑을 제손으로 허물어요? 어떻게 쌓은 탑이라구… 철성동진 응당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해요.》

《아니, 난 평가를 받을 한푼의 가치도 없는 속이 빈 탑을 세웠소.》

《아이참, 정 마음에 걸린다면 앞날의 교훈으로 삼으면 되는게 아니예요.》

《교훈으로 삼겠소. 하지만 가만있을수는 없소.》

《그러니 어쩌자는거예요?》

깔끔하게 좁혀졌던 순화의 눈이 불시에 불안에 질려 동실해졌다.

《생산경쟁을 위한 조직위원회 위원장이 우리 발전소에 내려왔다는데 당장 만나 내 이름을 우승자명단에서 지우게 할테요. 그래야 이 속도 다소 편할게구 그다음…》

《뭐예요? 어리석은짓은 말아요. 찾아가지 마세요!》

순화는 불에 덴듯 놀라며 철성의 앞을 두팔 벌려 막아서기까지 한다.

《어리석다?》

철성은 순화를 흡떠보았다. 처녀가 이처럼 콩튀듯 나올줄 몰랐다. 누구보다도 자기를 리해해주고 바른 길로 떠밀어줄 순화라고만 믿고있었다. 의분에 가까운 반발심이 치솟았다.

《저리 비키오! 날 뭘로 만들자는거요.》

철성은 한손으로 순화를 가볍게 밀어내며 앞으로 쑥 걸어나갔다. 등뒤에서 울음에 젖은 순화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그 위원장이 우리 아버지예요.… 아버질 노엽히지 말아요!》

《뭐?!》

철성은 흠칫 놀라 멈춰섰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버지가 위원장이라니?!

순화가 흐욱― 하고 흐느끼며 입을 싸쥐고 스쳐지나갔다. 처녀의 연미색목도리가 바람결에 날리며 멀어져가는것이 눈을 아프게 자극한다.

순화의 아버지가 전력공업성의 어느 부서에서 일한다는 말은 얼핏 얻어들은적은 있으나 생산경쟁을 위한 조직위원회 위원장의 직을 겸임하고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화가 함부로 내돌리지 않는 생산경쟁결과를 남달리 사전에 잘 아는 비결이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놓고보면 아버지를 노엽히지 말라는 부르짖음에는 심상치 않은 의미가 담겨져있다.

이제 받게 되는 1등에 자기 아버지의 후원도 있다는, 아니면 그 어떤 기대와 희망을 얹고 왼심을 쓰고있다는… 위훈담을 련속편으로 이어가면 아버지를 만족시킬것이라던 순화의 장담도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형편에서 1등을 포기한다고 선언한다면?… 강한 회오리바람에 휘감긴듯 방향을 가릴수 없었다. 가뜩이나 철성을 탐탁치 않게 보던 순화의 아버지다. 딸자식의 설복으로 달라지기는 했지만 순화의 말대로 대노할것이고 십중팔구는 경솔하고 괴벽한 청년이라며 퇴를 놓을것이다. 일이 이렇게 번져지면 순화와의 무지개비낀 래일의 행복은 허황한 꿈으로 끝나고만다.

속이 허전해왔다.

방금 순화에게 너무 지나쳤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그랬는데 내가 제 주장만 미욱하게 내세운것이 아닐가?

순화… 철성이 견습을 거쳐 타빈운전을 혼자서 갓 시작한 첫날 야밤중에 있은 일이였다. 돌아가던 타빈이 별안간 돌이수가 떠지며 실내조명마저 전부 꺼져버리는 정황에 부닥치게 되였다.

현장고성기에서 타빈의 돌이수를 올릴 준비를 빨리 갖추라는 다급한 소리가 울려나왔다. 전혀 예견 못한 정황이였다.

타빈기계실현장이 캄캄하기도 하거니와 이럴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으니 더 난사였다. 수십수백의 크고작은 공장들과 주민지구들에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중요하기 이를데 없는 기대다.

일을 조금이라도 그르치면 큰일이다! 마음을 단단히 도슬러먹었으나 모르면 겁부터 앞선다고 담이 있다는 철성도 속에서 쌍방망이질이 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거긴 위험해요!》

때아니게 녀자의 야무진 목소리가 귀청을 째더니 전지불이 펀뜩 비쳐졌다. 타빈둘레를 무턱대고 뛰여다니기만 하던 철성은 와뜰 놀라 멈춰섰다.

순화였다. 처녀가 비쳐주는 전지불에 발밑을 내려다본 철성은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엉뚱한 곳에 와있는 자기를 발견한것이다. 한걸음만 더 내짚었으면 들쑹날쑹한 쇠구조물에 발부리를 채우던가 배허벅을 얻어맞고 나딩굴었을지 모른다.

《제길, 어두워서 어디…》

그는 마치나 어둠때문인듯이 짐짓 짜증을 냈다.

《어쩌나, 먼저 기름뽐프들의 가동을 잘 봐야 하는데…》

타빈운전에 대한 조예가 깊은 순화의 이 말이 기술학습에서 배운 글줄을 튕겨주었다.

(그렇지, 기름뽐프들을 봐야지!)

창황중에도 반가왔다. 철성은 바삐 방향을 바꾸어 뜀박질을 하려 했다. 그런데 순화가 또다시 만류했다.

《거긴 열풍이 세서 접근 못해요. 사람들을 부르자요.》

그제야 주변의 후끈한 더위가 느껴졌다. 여기까지 열기가 미치는것을 봐서 저기 철계단아래에 자리잡은 고압의 증기설비에서 사달이 난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더 가봐야 한다.

《무슨 소릴, 이 타빈은 내 기대요!》

철성은 더 지체하지 않고 타빈동체밑으로 드리워진 철계단을 타고 달려내려갔다.

증기를 내뿜는 대상물에 가깝게 다가가니 열풍은 지독했다. 쏴― 소리를 지르며 들씌워지는것이 살갗을 지지고 허비는듯 했다. 눈조차 바로 뜰수 없었다. 그러나 철성은 입술을 옹쳐물고 이쪽저쪽으로 몸을 날리며 비호같이 일처리를 해나갔다. 조항륜처럼 솟아오른 조작손잡이들을 세괃게 돌리고 재빨리 조작단추들을 누르며…

증기가 새는것을 막아내고 모두 제대로 바로잡아놓고서야 아까부터 마음을 조이며 전지불로 앞을 밝혀주던 순화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이들을 축복이나 하듯 전등불들이 일제히 켜지며 실내가 환해졌다.

《정말 수고가 많았어요.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순화는 더위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고 땀투성이, 기름때투성이가 되여 돌아온 철성을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바라보았다. 철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숙부드러워진 눈매로 처녀를 마주보며 씩하니 웃었다. 그런데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친 순화를 보니 순간이나마 갈팡질팡하며 처녀앞에 못난 꼴을 보였던 자신이 민망스러워져 쓴입을 다셨다. 첨부터 잘했으면 무더운 여기에 순화를 세워두지 않는것이였다. 터놓고 말하면 못난 꼴을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였다.

어느 명절놀이에서였다.

철성이 점직하게도 순화와 한패가 되여 하모니카2중주로 뽑히게 되였다. 철성이 부대에서 손꼽히는 하모니카수였다는것을 어떻게 알고 순화가 뒤사업을 벌려 마련된 자리였음을 그는 후에야 동무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였다. 그러나 모처럼 마련된 기회는 철성의 어처구니없는 연주실수로 하여 관중의 큰 웃음거리가 되고말았다. 얼굴이 사과알처럼 된 순화는 너무도 부끄럽고 분해서 《무대》를 뛰쳐나갔다. 철성은 처녀에게 사죄하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순화는 오히려 그때를 즐겁게 회상하며 밝게 웃어주었다.

그때문인지 처녀를 더 위해주고싶었다. 하지만 마음뿐 위해주는쪽은 언제나 순화였다. 철성이 있었다면 아득한 소시적에 수학문제를 풀어준 그것밖에 없었다.

《고맙소.》

철성은 제잡담 순화의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짜르르 아릿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아이참, 고맙긴요.》

처녀는 부끄러움을 타며 총각의 줌에서 얼른 손을 빼더니 뒤걸음쳤다.

차림새를 보아 집에 퇴근하다말고 달려온것이 분명한데 물어보니 도리질하며 생글생글 웃었었다.… 꿈결에도 안겨오는 땀에 젖은 그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습은 정녕 한떨기 이슬을 머금은 장미처럼 황홀하기 그지없다.

이어 생산경쟁총화가 있기 전부터 철성을 추어올리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걸걸한 동무들의 얼굴이 서서히 흘러간다. 철성의 기대에 증기가 더 가도록 자리도 내주고 기대에서 이상이 생기면 팔을 걷고 도와주던 동무들이다.

(사랑에서 실패하고 생산경쟁에서 락선된 나를 동무들이 안다면?…)

가랑잎이 흩날리는 마가을의 쓸쓸한 들판에 홀로 서있는듯 한 외로움과 까닭모를 설음이 북받쳐 올랐다. 눈덮인 길복판에 퍼더버리고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소리 웨치고싶었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고, 지금껏 위해주지 못한 사랑하는 처녀의 소망과 그리고 동무들의 성의를 봐서 결심을 바꾸어야 되지 않는가고.

한동안 얼나간듯이 서있던 철성은 깊은숨을 몰아쉬며 앞을 내다보았다. 눈꽃이 소담하게 핀 가로수의 아지들너머로 우유빛안개를 휘감고 성벽마냥 일떠선 화력발전소의 웅건한 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높다란 굴뚝에서 아구리가 메게 뿜어져나와 멀리 흩날려가는 흰 연기를 이윽토록 바라보느라니 어느덧 철성의 심혼은 한생 잊을수 없는 땅크사격장에서 있은 지난날로 거슬러갔다.

…나타난 과녁을 모조리 요정낸 자랑을 안고 훈련총화를 받는 대오속에 의젓하게 서있던 철성, 이런 그에게 하는 부대장의 준절한 목소리.

《강철성동무는 오늘 〈적〉을 소멸하는데 포탄 한알을 더 썼소. 빗쏜 포알이 섞인 위훈은 벌써 위훈이 아니요. 그 한알한알이 어떤것이요?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난의 행군〉을 하는 그 어려운 나날에도 중단없이 만들게 하신 포탄들이 아니요! 조국과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이 슴배인 목숨과 같은 포탄알이 아닌가!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는 단 한방도 빗쏘아서는 안되오. 오직 백발백중의 명중탄만을 쏘아야 하오, 명중탄만을… 이것이 우리가 아는 위훈이요.》

부대장의 억실억실한 눈가에 맺힌 진한 물기!

철성은 눈물을 쏟으며 어깨를 떨었다. 멸적의 포신을 추켜든 땅크를 배경으로 숭엄하게 굳어진 대오, 강산을 울리는 함성은 없었으나 가슴 쩌릿이 안겨오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거룩한 영상을 우러러 다지는 마음속 맹세는 하늘에 닿았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이 전사는 명중탄만을 쏘겠습니다.》

만약 이 길에서 조금이라도 탈선된다면 스스로 벌을 받으리라 모질게 속다짐하며 철성은 백발백중의 사격수로, 그 어떤 난공불락의 요새도 단숨에 돌파하는 용감한 땅크병으로 자랐다. 수백리 진격로를 질풍쳐나가며 다른 사람들이 저어하는 천길낭떠러지가 발밑에 굽어보이는 산비탈로 땅크를 몰아갈 때 그는 이 맹세로 심장을 불태우며 나아갔었다.

가슴이 이글이글 달아오르고 눈굽은 쩌릿쩌릿 저려들었다.

아, 내가 헛되이 태워버린 석탄이 포탄알에 실린 무게에 비기랴만 전기며 석탄생산에 마음쓰시는 우리의 최고사령관동지를 생각하면 어찌 포탄알과 다르다 하랴. 빗쏜 포알이 섞인 위훈은 결코 위훈으로 될수 없듯이 헛되이 태워버린 석탄이 섞인 생산기록은 결코 찬사를 받을 실적도, 위훈으로도 될수 없다!

그는 분연히 걸음을 내디디였다.

이날 저녁 철성은 약속대로 퇴근길에 순화의 집을 찾았다.

《자넨가, 내 순화 아버질세, 이리 와 앉게.》

오십중반기의 풍채좋은 사나이가 위엄있게 올방자를 틀고앉아 각근히 례절을 차리며 들어서는 철성을 맞아들였다. 상대방을 아래우로 훑어보는 품이 록록치 않은 군사강평원의 인상과 흡사했다. 그러나 먹은 마음 남다른 철성인지라 여기에 주눅이 들리 없었다. 그는 권하는대로 앉았고 묻는대로 대답했다. 자기의 경력이며 집안래력을 소개하고난 철성은 위훈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품고온 다른 뜻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번 전국전력생산경쟁에서 1등을 하게 되였습니다.…》

떼놓고보니 말꼭지가 참으로 싱겁게 되였다. 이런 자리에서 밑도끝도없이 본인이 이런 말을 하는것은 경망한 언행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순화 아버지도 저으기 듣기가 거북한지 시들한 웃음을 띠웠다. 거기에 (역시 자랑기가 많은 녀석이야.…)하는 비난조가 흐른다.

삽시에 분위기가 어성버성해졌다.

철성은 뒤말을 서둘렀다.

《아버님은 경쟁조직위원회 위원장이시지요?》

《음? 그… 그래, 위원장일세.》

뜻밖의 질문에 순화 아버지는 어리둥절해서 철성을 쳐다보았다.

《예― 그러면 저의 이름을 경쟁우승자명단에서 지워주십시오. 전 자격이 없습니다.》

《엉?》

아닐세라 순화 아버지의 커진 눈에 섬광이 일었다. 점잖게 듣고있자니 별난소리가 다 나온다는 불괘한 표정이다.

《자네 이름이 오른 우승자명단이 그저 종이장으로만 보이나? 내 이미 거기에 수표까지 했는데 무슨 소린가. 이건 군대에서 말하면 명령서에 수표한것이나 같애.》

금시 뢰성이 울릴것만 같았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했다.

《저의 생산경쟁실적에서 석탄을 석톤이나 그냥 태워없앴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게 무슨 우승잡니까?》

《허허.…》

별안간 순화 아버지는 고개를 제끼고 허거픈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철성이쪽에서 어정쩡해졌다.

《그래서 단념한다? 누가 그러던가? 석탄을 초과해썼다고?》

《우리 발전소 경제분석실 분석결과가…》

《그러니 순화겠지.》

《저두 반복해서 계산해보았는데 모든것이 명백합니다.》

철성은 부지불식간에 휩쓰는 자책감에 눈길을 내리깔았다.

《음… 순화가 그러는데 자네야 중학시절부터 수자에 아주 밝았다니까 계산이 틀리지 않겠지. 하지만 우린 경쟁에서 무엇보다 생산실적을 우선시했으니 지내 신경을 쓰지 말게.》

예상밖에 순화 아버지의 음성이 느긋해졌다.

《자네 혹시 이번 경쟁에서 우승의 진가를 잘 모르는게 아닌가? 내놓고 말할건 못되지만 우승자들이 상을 받는건 둘째치구 잘되면 앞으로 큰 대회에 참가할수도 있네. 다시 생각해보라구.》

제 집 쇠절구가 황금절구였음을 안건만큼이나 놀라왔다. 그러나 떠오르던 기분은 잦아들었다. 철성은 온갖 미련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저었다.

《저는 백발백중의 명중탄으로 이루어진 위훈만을 인정합니다. 여기에서 탈선된다면 설사 그 어떤 평가나 명예가 차례진다 해도 거절할 결심입니다.》

《!…》

이렇게 위훈담이 시작되였다.

순화 아버지의 초지이기도 하거니와 그를 충분히 납득시키고저 해도 위훈담을 펼쳐놓아야 했다. 처음 철성의 어조는 무겁고 궁글었다. 그러나 점차 세차게 떠오르며 높은 파도를 일으키더니 사품치는 쇠물처럼 뜨겁게 끓어번졌다.

철성에게 열띤 시선을 준채 그린듯이 앉아있던 순화 아버지는 위훈담에 어언간 심취되여 앉음새를 흐트려버렸다. 《아니지!… 그렇지!…》 하며 격조높이 응수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야기도중에 다음번생산경쟁에서는 《명중탄으로 이루어진 실적만이 위훈》이라는 조항을 꼭 박아놓아야겠다고 기염을 토하는가 하면 흘러간 자기의 인생체험들을 끄집어내여 위훈담이 한정없이 길어지게 했다. 그러다 땅크사격장에서 있은 마감이야기로 끝이 나자 한참이나 숨을 죽이고있더니 갈린 목소리로 읊조리듯 격정을 터쳤다.

《과시 제대병사가 달라. 화력발전소사람들이 다르단 말이야.…

〈내 불붙는 석탄이 되여

어느 발전소 화실에 날아들어도 좋아라〉

이 시구절이 가슴을 치누만! 이 절절한 웨침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지 내 오늘 똑똑히 알게 되네.》

그리고는 뭇별들이 반짝이는 창너머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그 부리부리한 두눈에 뜨거운것이 빛났다.

《전 그만…》

철성도 눈시울이 쿡 쑤셔올라 더 앉아있을수 없어 일어섰다. 은연중 따라일어선 순화 아버지는 옷걸이에서 철성의 솜옷을 벗겨준다, 신장에서 신발을 찾아준다 어쩐다 하며 부산을 피우더니 생각난듯 순화를 찾으며 동구밖까지 바래주라고 소리쳤다. 한편 순화는 순화대로 건너방에서 이 모든것을 온몸으로 감수하며 손수건으로 조용히 눈굽을 찍고있어 이날 밤은 그야말로 온통 강철성의 밤처럼 되여 설레이는듯싶었다.

그러나 사흘후 겨울철 전국전력생산경쟁을 총화하는 마당에서 발표된 우승자명단에는 강철성이가 없었으니 그 내막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영문을 몰라하는 청높은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울려나왔으나 강철성이에게서는 다른 기색을 찾아볼수 없었다. 대출력증기타빈의 조작쇠를 그러쥐고 선 그의 모습은 무쇠철갑의 조종간을 틀어잡고 《적진》에 육박하던 그때의 태연자약하고 배심든든한 모습그대로이다.

그는 얼마전에 연료와 증기소비를 크게 줄일수 있는 몇가지 타빈운전묘리들을 터득해냈고 지금 눈총기를 모으고 긴장하게 생산에 림하고있다.

여기에서 순화를 무시하면 안된다.

《그 진정 가슴에 깊이 새겨져요.》 하고 울먹이며 철성을 바래주던 그날밤의 처녀는 타빈기계실에 새로 깃을 들인 날새와도 같이 쉬임없이 기대사이를 누비며 보다 실리가 나는 전기생산에로 타빈운전공모두를 부른다. 철성과 어깨나란히 걷는 저녁노을 곱게 핀 퇴근길에서조차 앞선 타빈운전방법에 대해 속삭이군 한다. 요전에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자기 아버지를 움직여 귀한 타빈기술도서들을 구해왔는데 철성이 골머리를 앓던 중요한 실머리를 푸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한마디로 순화의 지성은 동무들이 부러워 말하듯이 《돌우에도 꽃을 피울》 지성이였다. 큰 파문을 일으키며 위훈담의 전후사연이 알려진 후에는 화력발전소사람치고 강철성이와 함께 순화의 이름 또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달포가 지났다.

ㅂ화력발전소의 대문짝같은 대형속보판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다음과 같은 글발이 두드러지게 나붙었다.

《어제날의 용감한 땅크병 강철성동무.

병사시절 그 정신, 그 기백으로 새 기적 창조!

같은 연료, 같은 증기로 전력생산 1.2배!》

 

         (평양화력발전련합기업소 타빈직장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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