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동     음

                                             백 인 문    

 

 

전야근교대운전공으로부터 타빈발전기를 인계받은 련철은 근무일지가 놓여있는 책상앞에 흥심없이 마주앉았다. 근무일지를 펼치니 《23시 20분, 고압가열기 5호 증기입출구변 원격자동조종장치해체》라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아마 정기적인 보수정비를 위해 자동조종장치를 떼여냈을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고압가열기 5호로 통과하는 증기의 량을 입출구변이 붙어있는 위치에 운전공이 직접 다가서서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수동으로 조작해야 할 정황은 극히 드물게 생긴다. 련철의 교대시간에는 생기지 않을수도 있다. 그것은 화력타빈이 최대의 안정된 부하를 걸고 정상적인 회전을 하기때문이다.

기세좋게 동음을 울리며 정상적인 회전을 하고있는 타빈발전기처럼 련철의 심신이 거뜬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의 귀안에서는 작업지시를 주는 모임에서 지종세반장이 내쏜 말마디들이 점점 더 뾰족이 날을 세운다.

《련철동문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소!》

여느때는 그저 련철이, 련철이 하더니 오늘은 별스럽게 련철동무라고 부른 반장이다. 그래야 자기의 말이 위엄있게 들릴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련철은 언짢아지다못해 모순점에로까지 치닫는 자기의 심사가 불만스럽기도 했다. 사실 얼마나 듣고싶던 그 부름인가. 그는 일상시 조꼬만 애를 찾듯이 련철이, 련철이 하는 사람들이 반갑지 않을 때가 많다.

그는 눈길을 들어 책상너머의 종합계기반우에 올라앉은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거의 자전거바퀴만큼 크다. 15분전 0시. 이제 0시가 되면 묘하게도 새날, 새주, 새달이 동시에 시작된다.

(3년!… 벌써 3년이 되였구나…)

의자등받이에 웃몸을 잔뜩 기댄 그는 두다리를 천천히 내뻗쳤다. 두눈은 어느새 지그시 감겼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다니고있는 화력발전련합기업소 타빈직장에 배치된것은 3년전이였다. 하얀 살갗에 호리호리한 몸매, 발기우리한 입술과 아직도 소년단원때처럼 맑고 애되게 울려나오는 목소리…

《그녀석 참, 지내 곱살하군. 꽃치마까지 입혀놓으면 처녀들이 다 울상이 되겠는걸.》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는 심한 창피를 느끼군 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하지 않는가…

타빈직장에 배치되기 전에 그는 기업소 기능공양성과정을 거쳤다. 그 기간 그는 남들보다 쑥 앞서리라는 결심을 사려물고 기능습득에 달라붙었다. 달라붙어 밑창까지 들추어내려고 애썼다. 이왕이면 남보다 앞서는 재미! 그 재미에 싫증날 사람도 있을가… 책들과 씨름하며 몇밤을 팼는지 모른다. 《열공학》, 《전기기본》, 《타빈발전기운영지도서》… 그럴 때면 그의 코등에는 유리알이 두툼한 도수안경이 무겁게 올라앉군 했다. 좋지 못한 시력, 그것도 몹시 좋지 못한 시력!… 그는 남들보다 못하다는 언질이 자기에게서는 조금도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화풀이할데도 없다. 그저 자기보다 더 두터운 안경을 끼는 외할아버지만을 원망할뿐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직도 눈들이 《만리경》이다.

중학시절에도 그랬지만 공장에 출근하면서도 웬간해서는 남들앞에서 끼지 않는 그의 안경이 타빈직장의 드넓은 현장에서, 그 현장의 구석구석에서 때없이 번쩍거렸다. 타빈직장뿐이 아니였다. 전기직장, 열생산직장… 그는 타빈발전기운전과 직접련관된 부문이라면 삼거웃처럼 뒤엉켜있는 각종 계통(전기계통, 증기계통, 윤활유계통, 랭각수계통 등)들의 무수한 도관들을 첫시작부터 마감까지 참빗으로 흝듯 하였다. 그리고 그 도관들에 붙어있는 허다한 발브들과 설비들을 모조리 눈에 익혀두었고 그것들의 기능과 동작원리를 꿰뚫어내느라 밥먹는 시간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였다.

그가 보조운전공기간을 한달이나 단축하고 단독운전근무에 들어서는 날 지종세반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련철이가 머리는 확실히 좋거던.》

머리가 좋은것이 아니라 열성이 높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러면서도 련철은 그 칭찬이 싫지 않았다. 그는 지금 타빈발전기 한대를 맡아보고있지만 장차 교대장이나 직장장처럼 십여대의 각이한 류형의 타빈발전기들과 더 나아가서는 기업소의 전력생산공정전반을 속속들이 파악해낼 포부를 품고있다.

《눈은 너무 일찍 나빠졌어. 유전인가?》

지종세반장한테서 이런 말도 들었었다.

(흥, 눈이 나쁜게 어쨌단 말인가.)

련철은 기껏해서 타빈발전기 석대의 운전을 책임지고있는 반장의 능력정도에 올라서는것쯤은 셈에도 치지 않고있다. 27년째 반장사업을 해온다는 그에 대해 련철은 그닥 좋은 감정을 품고있지 않다. 얼마나 딱딱한 사람인지… 뒤로 젖힐사하게 꼿꼿이 편 버쩍 마른 몸, 쌕쌕하는 소리가 섞인 가늘면서도 청낮은 음성… 게다가 반장의 눈은 열흘에 한번되나마나하게 웃을 때를 내놓고는 늘 흘겨보는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때는 웃을 때조차 흘겨보는것 같았다. 머리를 너무 뒤로 젖혀서일가. 어쨌든 반장한테서 다정다감한 측면을 기대한다는것은 찬물로 화력타빈을 돌리려는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였다. 오늘 일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련철은 오늘 인계인수전 작업지시모임에 그만 늦게 참가하였다. 늦어진 시간은 3분, 그것도 이런 일은 그의 3년간의 로동생활기간에 정말이지 처음으로 빚어진것이였다.

《련철동문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겠소. 지금이 어떤 때요? 온 나라가 150일전투로 들끓고있지 않는가?》

지종세반장의 목소리는 여느때처럼 낮았으나 매 말마디들에 력점을 꾹꾹 박은것이였다.

《3분이라는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30분 아니, 3시간을 허실하고도 아까운줄 모르게 되고마오. 그런 사람은 사실 전투에 참가할 자격이 없소.》

반장의 추궁은 련철의 얼굴과 목덜미를 증기발로 마구 휘감는듯 했다. 그는 약간만 떨구고있던 고개를 괴롭게 틀었다.

(내가 뭐 근무시간에 늦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3초의 시간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때가 많소!》

(3초까지야 뭘…)

반원들이 다 있는데서 훈시를 계속하는 반장이 고까왔다. 어쩌다 딱 한번 늦은걸 가지구…

《반장동지한텐 부득이한 사정이 한번도 없었습니까?》

련철은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쏟으려다가 조약돌을 목구멍으로 넘기는것보다 더 힘들게 꿀꺽 삼켰다. 30년이라는 그 오랜 기간에 단 한번의 지각이나 조퇴도 한적이 없는 사람으로 온 기업소에 알려져있는 지종세반장이기때문이였다. 결근은 더 말할것도 없었다.

단 한번도?!… 처음엔 놀랐었다. 그리고는 무척 감탄했었다.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그러나 그 감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단 강심을 먹기만 하면 그런 일은 다른 사람들도 해낼수 있으니까. 일이란 다 마음먹기에 달린것이다.…

《반장동진 너무해. 내가 그래 빈둥거리려는 사람인가. 쳇, 전투에 참가할 자격도 없다구?》

련철은 입속으로 이 말을 곱씹으면서 지그시 감고있던 눈을 떴다. 의자등받이에 잔뜩 기댔던 웃몸도 바로 세우고 쭈욱 내뻗치고있던 두다리도 끌어당겼다. 시계를 보니 정각 0시다.

그는 30분전에 인계인수를 하면서 중요설비들과 부분들의 상태를 확인하였었지만 다시금 순회점검을 시작하였다. 타빈을 돌리기 전과 돌린 후의 증기압력과 온도, 윤활유탕크의 유위, 랭각수의 입구 및 출구온도, 타빈발전기에 붙어있는 각종 회전기대들의 가동상태를 깐깐히 살펴보면서 그 정형을 기록일지에 깨알같이 써넣었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힘껏 켰다. 모든것이 정상이였다.

한시간후에 순회점검을 또 하였다. 그다음 한시간 지나서도… 한시간에 한번씩 순회점검을 하고 그 정형을 정확히 기록하는것은 타빈운전공에게 맡겨진 책임적인 임무였다.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련철은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시시각각으로 그를 더욱 괴롭혔다. 저주받을 놈의 졸음!… 졸음은 찬물로 얼굴을 씻어대는데도 바싹바싹 다가들었고 머리를 아예 푹 적셨는데도 물러나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면 덮치듯 달려들겠기에 서있기도 하고 걷기도 해보았으나 검질기고 악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서있거나 걷다가는 미처 어쩔사이도 없이 쾅 하고 넘어져버릴것 같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나온것이 이 꼴을 만드는구나!)

련철은 끝내 더 참아내지 못하고 근무일지가 놓인 책상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졸기 위해서가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물거리는 의식속에 각종 계기들의 눈금을 가리키며 바르르 떨고있는 바늘들이 안겨온다.

복수기진공계, 고압가열기 5호, 6호, 7호의 압력계…

련철은 꿈속에 빠져들고야말았다. 꿈속에서는 둬달전에 한 작업반에서 일하는 조작공이 들려준 이야기가 영화화면처럼 방불하게 펼쳐지고있었다.

근무를 인계하고난 작업반원들은 총화를 짓는 자리에 모여앉아 직장사무실에 들린 반장을 기다리고있었다.

《련철이, 자넨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긴장하게 일해야겠어.》

이렇게 말한 사람은 련철이보다 나이도 다섯살우이고 몸집도 거의 두배로 컸다. 이름은 한민.

《그건 어째서요?》

《자네가 안경쟁이니까.》

련철의 하얀 얼굴이 파릿해질사 했다. 그가 인격을 건드리운다고 느낄 때 나타내는 증상이였다.

《아아, 그렇게 성낼것까진 없구. 내 말을 마저 들어보라니까.》

한민은 담배연기를 몇모금 련속 들이키고나서 후-하고 길게 내불었다.

《언젠가 후야근교대에 나온 타빈운전공이 졸음때문에 연신 턱방아를 찧다가 종시 책상우에 머리를 떨군적이 있었네. 아직 후야근에 습관되지 않아 휴식조직을 잘못했거던. 이런 일이 두세번 반복되는것을 본 곁에 있는 타빈에서 일하는 운전공이 졸군 하는 친구의 버릇을 떼주리라 결심하고 조심조심 다가갔지. 참 그 졸고있는 친구도 안경쟁이라는걸 알아두게.》

련철은 속으로 픽 코웃음을 쳤지만 은연중 흥미도 동하는지라 대꾸를 하지 않았다.

《조심조심 다가가 〈1단계작전〉을 수행한 그는 십여메터쯤 물러나 〈2단계작전〉을 개시했네. 갑자기 〈불이야!-〉하는 웨침소리에 와들짝 놀란 안경쟁이운전공이 눈을 흡떠보니 현장은 온통 불바다였지, 시뻘건 불길속에서 건너편 타빈운전공이 물바께쯔를 들고 다급히 뛰여다니는것을 본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잠시 어쩔바를 몰라하더니 소화장치가 있는 곳으로 어푸러질듯 달려갔어. 그가 막 소화용호스를 풀어내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두팔을 움켜잡았네. 뒤돌아보니 물바께쯔를 들고 뛰여다니던 그 운전공이였어. 그런데 그 운전공은 꽉 움켜쥐였던 손을 풀더니 갑자기 앙천대소를 하기 시작했네. 나중엔 배를 그러쥐고 꿇어앉기까지 하면서 말이야. 영문을 몰라 두눈을 더 크게 흡떴던 안경쟁이운전공은 그제서야 현장이 온통 시뻘겋기는 하지만 대기가 전혀 뜨겁지 않다는것을 알아차렸네. 그는 급히 안경을 벗었네. 그러자 현장은 정상상태에서 자기의 기운찬 동음을 울리고있는것이 아니겠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불바다〉로 하여 퀭해진 눈을 몇번씩이나 껌뻑거리던 그는 손에 쥐고있는 안경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안경유리알의 바깥면에는 아주 엷은 빨간색의 비닐쪼각이 붙어있었네. 그런 안경을 끼고있었으니 어디를 보아도 시뻘겋지 않을수 없었지. 자기의 간담을 떼팽개치듯 한 그 가슴에이는 놀음의 연출자가 바로 그 시각까지도 자기앞에서 배를 그러쥐고 웃어대는 친구라는것을 간파한 그는 손에 쥐고있던 안경을 콩크리트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네.》

손까지 써가며 이야기를 엮어대는 한민의 말에 반원들은 어느 한사람도 웃지 않았다. 련철은 그들이 이미 그 이야기를 여러번 들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있던 그는 안경쟁이운전공의 분풀이가 가엾게 여겨졌다. 졸아도 분수가 있지. 끼고있는 안경에 비닐쪼각을 붙이는줄도 몰랐다면 그거야 푹 잠에 곯아떨어졌다는것이 아닌가.

《자기의 〈작전〉이 지나쳤다고 생각한 안경쟁이의 친구는 그날로 새 안경을 사주었다고 하더군.》

련철은 대뜸 한쪽입귀를 쭝긋 들어올렸다.

《그래 그가 안경은 선뜻 받았대요?》

《문제는 거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안경쟁이가 자기를 혼내준 친구한테 한달동안이나 미안해했다는데 있어.》

련철은 뭔가 석연치 않으면서도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대꾸하였다.

《미안할수밖에 없지요 뭐. 분풀이를 그런 식으로 했으니까.》

한민은 한손을 홱 내리그었다.

《챠, 이런. 그게 아니라는데. 자기 친구가 한달동안 운전근무에서 제외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였는데 얼마나 딱했겠나.》

 《처벌을 받다니요?》

《응당한 처벌이였어. 그때 그들의 반장은 이렇게 말했다네. 〈근무시간에 졸던 동무도 나쁘지만 그를 놀려댄건 더 한심하오. 동무넨 오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냈소. 한사람은 졸음에 못이겨 그랬지만 다른 한사람은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도 근무에서 리탈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근무의 매분과 초를 오직 타빈의 정상가동을 위해 바칠줄 알아야 하오. 그런데 오늘 무슨짓을 벌려놓았소. 어디 대답해보오, 두사람중에 누가 더 나쁜가.〉》

(이건 꼭 우리 반장이 말한것 같군.)

련철은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반장은 졸던 사람이 아니라 놀려댄 사람에게 처벌을 주었네.》

한민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는듯 했다. 그러나…

《난 여직껏 반장이 그때처럼 성난것을 본적이 없어.》

련철의 눈은 갑자기 동그래졌다가 서서히 좁혀들었다.

(아하! 그러니 저 형님이?!)

한민은 본의아니게 새여나간 자기의 마지막말을 듣고 뭔가 낌새를 챈듯싶은 련철은 향해 시뭇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린 그때 둘 다 혼쭐이 났어. 그통에 셈이 들었지. 안경쟁이 내 친구는 지금 다른 작업반에 일하는데 앞으로 반장재목이라는 평판을 듣고있네. 나보담 한참 빠르지?》

련철은 다시금 한쪽입귀를 쭝긋했다. 얼마나 빠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동댕이친 안경처럼 《쩍하면 조는 버릇》도 산산이 부서져나갔다는 소리인것만은 분명하다.

(반장동지가 성났을 때 표정이 어떠했을가. 그때에도 목소리는 높이지 않았을가. 어쨌든 요구성이 보통 아니구나!)

콩크리트바닥에 부딪쳐 박살났을 안경이 깨지는 소리가 느닷없이 들려온다. 쨍!…

 

련철은 그 어떤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끼며 번쩍 눈을 떴다. 서서히 다가들어 그를 괴롭히던 졸음이 달아날 때에는 한달음에 삼천리였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종세반장이 코앞에서 근무일지를 책상우에 놓은채로 내려다보고있었던것이다. 수치감이 등줄기를 휘감았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버리고싶었다. 그는 두눈을 꽉 감고말았다.

《이제 또 그렇게 졸리면 작업반에 알리오.》

반장은 상체를 꼿꼿이 펴고 조작반실로 갔다.

(오늘은 왜 이렇게 망신만 당하는가.)

련철은 생각할수록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무리 졸려도 독하게 맞서면 얼마든지 이겨낼수 있다던 그였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꼴을 보였는가. 어제밤 전야근교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아침까지 내처 《타빈발전기운영지도서》를 본것이 잘못이다. 아니, 아침에 밥을 먹은 다음 잠을 푹 자자고 했던것이 그만 집에 찾아온 중학동창생과 마주 앉은것이 실책이였다. 일요일이라고 오래간만에 찾아온 동무를 인츰 돌려보낼수 없었다. 그래도 늦게까지 마주앉지는 말아야 했었다. 정말 후회막심하기짝없는 일이다. 그래가지고도 후야근 하루쯤은 얼마든지 견뎌낸다구? 뭐 마음먹기에 달렸다구? 에― 어쩌면 좋담. 반원들앞에서 또 욕을 먹어야겠으니.

자신에 대한 타매를 거듭하고있던 련철은 문득 꿈속에서 헤매이던 자기를 지종세반장이 어떤 눈으로 흘겨보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입술을 꽉 깨물어놓고싶어졌다. 흉하게 입을 헤― 벌리진 않았는지.…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홧홧 단다. 근무에 정식 들어서기만 하면 누구도 흠할수 없으리만큼 자기 일에 정통하고있다던 그 배심과 어떤 정황에도 능히 대처할수 있다던 그 자부는 희떠운것으로 돼버리고말았다.

기계를 보니 새벽 4시가 거의 되였다. 결국 30분정도의 시간을 꿈나라의 턱방아밑에 던져놓고 온셈이다.

련철은 순회점검을 하려고 책상우에 놓여있는 기록일지에 손을 뻗쳤다. 그 순간 그의 온몸에 짜릿한 전률감이 흐르더니 어느새 딱 굳어지고말았다. 온몸의 신경은 귀로만 줄달음쳤다. 이게 무슨 소린가?

현장을 꽉 채운 그 우렁찬 동음, 둬발자국앞에 있는 사람의 말도 소리로가 아니라 입술놀림을 보고 알아맞혀야 할 때가 많은 귀멍멍한 동음속에서도 련철의 귀는 그속에 섞인 미세한 불협화음을 정확히 포착해냈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이것은 분명 굉장한 압력을 가진 증기가 강철도관의 틈사리를 찢고 뿜어져나오는 소리이다!

련철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급히 다가갔다. 하얀 증기발이 타래쳐오르는것이 보였다.

(고압가열기들이 있는데서 사고가 났구나!)

그는 증기발에 휩싸여 뜨겁기도 하거니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철계단우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눈을 꾹 감은채로 날아내렸다. 눈감고도 오르내릴수 있게 철계단의 수자까지 익혀둔 그였다.

고압가열기들이 있는 곳에 내려선 그는 세차게 뿜어져나오는 증기소리를 들으며 두뇌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분명 고압가열기 5호로 들어가는 증기의 도관과 발브의 이음짬에서 바킹이 터져나간것이다. 현재는 터져나간 바킹의 틈사리가 바늘굵기정도일것이다. 그러나 그 틈사리는 수십기압이나 되는 증기의 힘에 의해 시시각각 확대될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막대한 량의 증기류실은 둘째치고 증기로 인한 습기와 수분때문에 주변에 있는 전기자동장치들이 련쇄적인 사고를 일으킬수 있다. 혹심한 경우에는 돌이킬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것도 장담할수 없다. 서둘러야 한다. 순간도 지체할수 없다!

련철은 결단성있게 증기발에 휩싸인 철계단우로 다시금 몸을 날렸다. 내릴 때보다 갑절 더 어려웠다. 숨이 헉헉 막히고 얼굴이 막 쪄지는듯 했다. 숨이 턱에 닿아 철계단우에 올라선 그는 타빈발전기에 비상정황이 생긴 경우 강제정지를 할수 있는 조작쇠가 있는 곳으로 내처 달려갔다. 조작반실에 보고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자기의 사고처리에 대해 누구앞에서든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그가 타빈정지조작쇠를 힘껏 누르려던찰나였다. 누군가가 사정없이 그를 콱 밀쳐버렸다. 바닥에 나동그라질듯 비칠거리다가 겨우 몸중심을 수습한 그는 퀭해진 눈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지종세반장이였다. 충혈진 그의 눈에서는 불같은것이 쏟아져나오는듯 했다. 조작반실에서 고압가열기의 압력이 떨어지고있는것을 감시하다가 달려나온 모양이였다.

증기발때문에 손에 쥐고있던 안경을 뻑뻑 문다진 련철은 그것을 낄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사고정황을 급히 보고하였다.

《타빈을 세우지 않았다간 큰일납니다!》

련철은 목청을 다해 마지막말을 부르짖었다.

그 순간 지종세반장의 목소리는 더 새되게 터져나왔다.

《정신있어? 그건 안돼!》

《?…》

반장은 자기의 웃옷 앞자락을 와락 제꼈다. 단추알들이 후두두 떨어져나갔다. 웃옷을 재빨리 벗어든 손으로 련철의 가슴을 마구 두드릴것처럼 다가선 긴내의바람의 반장은 다시금 새된 목소리로 웨쳤다. 그의 표정은 무척 근엄했다.

《명심하오! 타빈은 순간도 멈춰세울수 없소. 정신을 바짝 차리구 여길 지키고있소!》

반장은 철계단쪽으로 뛰여가면서 웃옷을 들어 얼굴앞을 가리우는듯 하더니 어느새 증기발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련철은 어리뻥뻥한 의식속에서도 차츰 반장의 의도를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반장은 지금 매우 위험한 일에 뛰여들었다. 고압가열기 5호로 가는 증기의 발브를 막고 그것을 우회하는 장치를 동작시키려는것이다. 그렇게 하면 바킹이 터진 곳의 증기를 차단하고 고압가열기를 정상상태에서 계속 가동시킬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을 내대야 할수도 있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원격자동조종장치를 해체한 상태여서 사람이 직접 접근하여 수동조작을 해야 하기때문이다. 수백도나 되는 증기의 열풍!… 수십기압의 증기가 직사로 내뿜는데를 피해가며 우회장치를 동작시키기 위한 조작을 한다고 해도 터져나간 바킹부위가 어느 순간에 대폭 증가될지 누구도 짐작할수 없는것이다.

련철은 조작쇠곁을 떠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초조하고 불안하기 이를데없는 한초한초가 쿵쿵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은 함마질소리를 내는듯 했다. 3분, 4분… 8분, 9분…

몇사람이 조작반실에서 나와 이쪽으로 오는것이 보였다. 련철은 그들속에서 교대장과 기업소 생산부기사장을 띄여보았다. 고압가열기쪽으로 눈길을 돌린 그는 숨을 딱 멈추고 두눈을 한껏 쪼프렸다. 자기의 눈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확실히 증기발이 설피여지고있었던것이다.

(아! 반장동지가 해냈구나!)

그는 무슨 말인가를 성급히 주고받으며 고압가열기쪽으로 가고있는 사람들을 밀치다싶이 하면서 증기의 열기가 화끈 배여있는 철계단을 두세개씩 뛰여내렸다. 고압가열기주변은 온도를 올릴대로 올린 한증탕처럼 뜨거웠다.

《반장동지!》

련철은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지만 목청을 다해 소리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반장도 눈에 뛰우지 않았다. 뿜어져나오던 증기에 의해 조명등들이 다 꺼졌는지 주위는 몹시 어두웠다. 그는 온몸에 긴장을 주고 손더듬, 발더듬을 해가며 고압가열기 5호의 증기발브들과 우회장치들이 있는 곳으로 한치한치 다가갔다.

무엇인가 뭉클한것이 발에 걸치였다. 그는 황급히 꿇어앉았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지종세반장이 쓰러져있었다.

《반장동지!》

련철은 반장의 여윈 팔과 가슴을 마구 흔들었다. 반장의 얼굴에는 그의 웃옷이 반쯤 감겨져있었다. 반장의 팔에서 약간 힘을 주는것이 감각되더니 이내 스러져버렸다.

(의식을 잃었구나!)

련철은 당황해났다. 그는 반장의 웃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제잡담 반장을 안고 일어서려 하는데 힘이 모자랐다. 증기와 땀에 물주머니가 된 반장의 몸에서는 열기가 후끈후끈 풍겨왔다. 그가 반장을 둘쳐업으려는데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업히우게!》

조작공 한민이였다. 련철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한민의 넙적한 잔등에 반장을 업히웠다.

《반장동물 빨리 병원으로… 다른 사람들은 자기 위치롯!》

이렇게 웨친 사람이 교대장인지 기업소 생산부기사장인지 잘 가려지지 않았다. 련철은 반장의 얼굴에서 풀어낸 그의 웃옷을 손에 든채 한동안 망연히 서있었다. 그가 거의나 무의식적으로 반장의 웃옷을 비트니 뜨스한 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지종세반장의 체온이 온몸에 퍼져간다. 벌거우리하게 보이던 반장의 얼굴과 두손!

그는 타빈발전기 비상정지조작쇠앞으로 무거운 걸음을 내짚었다. 반장이 1초만 늦게 달려왔어도 타빈은 이미 숨을 죽였을것이다. 1초! 문득 3초의 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할 때가 많다고 하던 반장의 말이 머리속을 휘저었다. 어째서 나는 타빈을 세울 생각부터 하였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반장처럼 증기의 《도가니》속에 뛰여들 용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였는가. 육체가 약해서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평시에 나는 위훈에 대해 얼마나 곧잘 외웠던가. 결심만 하면 무엇이든 못해낼 일이 없다고 자처해왔었다. 결심! 정신력! 그것은 티끌만 한 사심도 허용치 않는다. 공명심따위가 한쪼각이라도 박히면 벌써 그것이 아니며 그런것은 조국이 바라는 길에서 성스러운 폭발을 일으키지 못한다.

련철의 눈앞으로는 지종세반장의 모습이 환등사진처럼 지나갔다. 뒤로 젖힐사하게 꼿꼿이 편 몸, 늘 충혈이 진듯 한 눈, 자기를 밀쳐버릴 때조차 흘겨보는듯 하던 눈길, 《정신있어? 그건 안돼!》하고 소리치던 새된 음성… 그 눈길, 그 음성은 옴짝 못하게 자기를 타빈앞에 못박아놓고 용약 증기의 《도가니》속으로 뛰여들었다. 목숨을 내댈수는 있을지언정 순간도 타빈을 멈춰세우지 않는 길을 선택한 그! 반장동지야말로 순간의 멈춤도 없는 타빈발전기처럼 30여년을 하루와 같이 정신력의 폭발과정으로 이어온, 또 오늘처럼 150일전투의 날들을 《1500일전투》, 《15000일전투》의 날들로 이어갈 사람이였다.

《련철이, 언젠가 우리 반장이 뭐랬는지 아나.》

돌아다보니 조작공 한민이였다. 지종세반장을 업어다주고 곧장 왔는지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우리는 타빈의 동음을 순간도 멈출수 없다. 타빈의 동음이 멎으면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조국의 심장의 박동이 그만큼 약해진다. 항상 명심하자. 우리의 매 타빈발전기들은 조국의 심장과 직접 련결된 하나하나의 피줄이라는것을!》

새벽 5시… 창밖이 이제는 휘연히 밝아졌다. 만부하를 건 각이한 류형의 타빈발전기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한본새의 동음을 하냥 울리고있다.

《현장을 부탁하네.》

한민은 조작반실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련철은 안경을 꼼꼼히 닦아끼고 기록일지를 무겁게 받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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